고등학교 정인경 김영민 손영운 이재붕 이준기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 2018-08-31 오후 4:22:28 머리말 과학은 인간이 만든 이야기다. 인간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를 보다 정확하게 알기 를 원했다. 그래서 우주와 지구, 생물, 물질, 인간을 탐구하고 이야기를 만들었다. 과학 교과서에는 지금껏 인간이 밝혀낸 가장 객관적인 사실들이 담겨 있다. 예컨대 과학자들 이 발견한 최첨단 우주의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우주는 말하지 않지만 우리는 과학자 의 입을 통해 우주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런데 과학 교과서에는 우주의 이야기만 있고, 우주를 탐구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없다. 과학은 인간이 생산한 지식 체계이기 때문에 과학자, 기술자, 정치가는 물론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을 과학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이라고 한다. 바로 과학사는 과학 교과서에 빠져 있는, 과학을 만든 인간의 이야기를 다룬다. 수많은 시행 착오를 겪으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은 인류의 지적 성취에 주목한다. 결국 과학사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고 과학과 제일 먼저 만나는 인문학이다. 지구에 인간이 없으면 과학도 없었을 것이다. 인간의 삶과 사회에서 벗어난 과학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류는 왜 과학을 발전시켰을까?’, ‘과학은 우리 삶을 얼마나 바꾸 었나?’, ‘앞으로 과학기술은 어떻게 발전해야 하나?’ 이런 질문을 하는 여러분은 지구에 사는 인류 중에 한 명이다. 과학을 만들고 사용하는 인간의 이야기에는 여러분의 자리 가 있다. 여러분은 미래의 과학사에 이름을 올릴 예비 과학자이고, 지구 환경을 살리고 과학기술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데 힘을 모을 세계 시민이다. 과학사는 우리가 만들어 가는 역사이며, 여러분은 과학사의 주인공인 것이다.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 2018-08-31 오후 4:22:29 시대가 변화하고 있다. 다가올 미래 사회를 준비하기 위해 2015 교육과정이 개정되었 다. 이제 우리 사회는 큰 그림에서 지식의 흐름을 읽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하다. 기존의 지식을 이해하는 차원을 뛰어넘어, 다른 지식과 융합하고 새 로운 아이디어와 가치를 창출하려면 생각하는 힘을 키워야 한다. 과학사는 새로운 교육과정의 취지에 가장 적합한 교과목이다. 과학사에는 물리, 화 학, 생명과학, 지구과학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이 있다. 과학 활동은 인간이 하는 것이기 에 역동적이다. 과학자들은 서로 다른 이론을 내놓고 논쟁했으며, 사회적으로 널리 받 아들여지기까지 많은 문제에 부딪혔었다. 그 과정에서 증거를 제시하고 해결 방법을 찾 아서 실행하고, 의사소통을 통해 설득했다. 과학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과학 활동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로 나온 지식보다 과학하는 과정에 있다. 우리는 과학사를 통해 이것을 배운다. 바로 과학적 사고와 문제 해결력, 합리적 의사소통 능력이다. 그리고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적 창조력이 무엇인 지 느끼고, 과학기술의 사회적 가치를 통찰할 수 있다. 과학사는 ‘모두를 위한 과학(Science for All)’을 표방한다. 이 교과서는 이공계열을 전 공할 학생뿐만 아니라 인문, 사회, 경영, 예체능을 전공할 모든 학생이 흥미롭게 과학을 만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과학을 바르게 이해하고 과학기술의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고,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이 교과서가 도움이 되길 진정 희망한다. 지은이 씀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3 2018-08-31 오후 4:22:29 교과서 구성과 특징 대단원 들어가기 대단원을 관통하는 내용을 삽화로 구성하여 한눈 에 단원의 내용을 파악하고 흐름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습니다. 주제 학습 효과적인 학습을 위해 총 27개의 주제로 구성하였 습니다. 1 주제 열기 과학사 에피소드를 통해 흥미롭 게 주제 학습으로 이끌어 줍니다. 2 본 학습 과학사의 흐름과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 록 풍부한 시각 자료를 제시하였습니다. 3 탐구 활동 과학과 핵심 역량을 기를 수 있 는 다양한 탐구 활동을 구성하여 제시하였습니다.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4 2018-08-31 오후 4:22:34 4 한 걸음 더 학습 내용과 관련된 흥미로운 갈릴레이 위성들 갈릴레이가 처음으로 관측한 목성의 4 개 위성을 갈릴레이 위성이라고 부른다. 것을 알아내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 체계에서 금성은 지구와 태양 사이에 있으므 로 절대로 반달 이상의 크기로 밝을 수 없지만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체계에서 금성은 그림 7-11갈릴레이가 그린 금성의 위 상 변화 지구에서 태양 반대편으로 갈 때 보름달처럼 빛난다. 갈릴레이의 금성 모양 변화 관측 아프겠다! 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 체계가 틀렸다는 첫 번째 직접적인 관측 증거가 되었다. 뉴턴 그 후 갈릴레이는 망원경으로 태양의 상을 스크린에 투영하여 태양의 표면을 관찰하 였다. 그는 이 관찰에서 태양의 표면에 검은 점이 있고, 이 점들이 태양을 가로질러 간 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는 인식이 확대되었다. 그러자 로마 가톨릭교회의 견제가 심해졌다. 1616년 교황청 추 기경 위원회는 갈릴레이의 학문을 이단이라고 결론짓고 갈릴레이에게 그의 견해를 주 그림 7-12갈릴레이가 그린 태양 흑점 장하거나 가르치지 말 것을 명령하였다. 1632년 갈릴레이는 『프톨레마이오스-코페르니쿠스 두 개의 주요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라는 긴 제목의 책을 출간하였는데, 이 역시 로마 가톨릭교회로부터 제지를 받았 다. 그래서 갈릴레이는 로마 교황청으로 다시 소환되어 유죄 선고를 받았다. 주제 학습을 마친 후 주제의 내 사과는 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일까?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같은 해 갈릴레이는 망원경으로 금성을 관찰하고 금성이 달처럼 위상 변화를 한다는 갈릴레이의 관측으로 우주는 천상계와 지상계로 구분된 곳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라 5 주제 마무리 뉴턴, 중력을 말하다 성이라는 것을 알아내었다. 이 사실은 태양도 주위에 행성을 거느릴 수 있다는 것을 의 이야기나 더 알고 싶은 내용을 제 시하였습니다. 5 1610년 갈릴레이는 망원경으로 목성 주위의 위성을 인류 최초로 관측하였다. 그는 처음에 그것들이 별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구 둘레를 도는 달처럼 목성 주위를 도는 위 미한다. 따라서 코페르니쿠스가 주장한 태양 중심설의 유력한 증거가 되었다. 종교 재판 이후 갈릴레이는 더 이상 천문학적 연구에 관여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지금까지 관측하고 연구한 천체에 대한 업적들은 유럽의 천문학을 획기적으로 발전시 켰다. 이후 그는 역학 연구에 더욱 매진하게 되었다. 갈릴레이가 세상을 떠나던 해 태어난 뉴턴은 대학에서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과 코 페르니쿠스의 우주 체계, 그리고 갈릴레이의 천문학 관측 자료들을 공부하였다. 이후 고향에 돌아온 뉴턴은 태양 둘레를 공전하는 행성들을 궤도에 잡아두는 힘과 지구 표면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힘의 연관성에 대해 연구하였다. 그는 지구 주위를 고대 원자론 고대 그리스의 자연 철학자 데모크리 토스는 지구나 태양을 비롯한 모든 사 물은 크기와 질량은 다르지만 동일한 물질로 되어 있고, 그 물질의 기본은 눈 에 보이지 않는 원자라고 주장하였다. 도는 궤도에 달을 묶어 두는 힘은 과수원에서 사과를 땅으로 떨어지게 하는 힘과 같은 중력으로 동일한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687년 뉴턴은 중력에 관한 연구를 정리하여 『프린키피아』를 출간하였다. 이 책에서 목성과 토성의 위성들이 케플러의 행성 운동 법칙을 따르며, 지구를 제외한 다섯 행성 들의 위상 변화는 그들이 태양의 주위를 공전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또한, 뉴턴은 목성, 토성, 지구 의 위성들이 행성으로 끌리고, 모 『프린키피아』 천상계와 지상계의 모든 운동을 하나 의 원리와 법칙으로 설명한 고전 역학 의 기본서이다. 세 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권은 운 동에 관한 일반적인 명제, 2권은 물체 의 운동, 3권은 태양 중심설과 행성의 타원 궤도 운동을 다루었다. 든 행성과 위성들이 태양으로 끌 리는 힘은 중력이며, 중력에 의한 가속도는 오직 물체의 질량에만 『프톨레마이오스-코페르니쿠스 두 개의 주요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 관련한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밝혔다. 뉴턴은 사람들에게 무엇 지구 중심설과 태양 중심설을 대화 형식을 빌려 객관적으로 비교 설 이 우주를 움직이게 하는지를 알 명하는 내용을 담은 책이다. 게 하였다. 이로써 천문학 혁명이 이 책에는 살비아티, 심플리치오, 사그레도 세 명의 인물이 나온다. 살비아티는 갈릴레이를 대변하는 지적인 인물로, 심플리치오는 아리스 그림 7-14화가 블레이크가 그린 「뉴턴」 (1795년) 인간의 감성을 중요 시 한 블레이크가 복잡한 세상을 기하학으로 표현하려 한 뉴턴을 비판하 기 위해 그린 그림이다. 일단락되었다. 토텔레스의 학문을 고집스럽게 주장하는 인물로, 사그레도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객관적인 입장에서 조정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세 사람의 대 화는 4일 동안 계속되고 주제는 날마다 바뀌었다. 이 책은 태양 중심설을 지지하는 새로운 역학 개념과 망원경으로 관 용을 스스로 정리할 수 있도록 하 였고, 사고력의 확장을 위해 생각 넓 측한 사실들을 제시하고 있다. 사실상 태양 중심설을 지지한 이 책으로 정리하기 천문학발전에중요한역할을한두사람의우주론을 다음단어들을넣어정리해보자. 갈릴레이는 로마 가톨릭교회로부터 심한 제지를 받았다. 종교의가르침과과학적사실이서로모순될때어떤태도 를취하는것이옳은지토론해보자. 70Ⅲ.과학 혁명 그림 7-13갈릴레이의 『프톨레마이오스 - 코페르니쿠스 두 개의 주요 우주 체계 에 대한 대화』 프톨레마이오스 지구 중심설 코페르니쿠스 태양 중심설 생각 넓히기 과학혁명이후에우주의중심에대한생각은바뀌 었다.우주의중심이달라진것이과학의발전에어떤역할을했는 지말해보자. 7. 과학 혁명의 시작, 천문학 혁명71 히기 문제를 제시하였습니다. 6 과학이야기 과학자의 일화나 과학사적으로 의미 있는 내 용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단원 매듭짓기 학습 내용을 정리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3단계로 구성하였습니다. 1 정리하기 단원 학습 내용을 흐름에 따라 스스로 정리하 도록 하였습니다. 2 이해하기 학습 내용을 이해하였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3 적용하기 프로젝트 활동, STEAM 활동 등을 통해 학습 내용을 적용하고 확장할 수 있습니다.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5 2018-08-31 오후 4:22:38 차례 과학이란 무엇인가 고대와 중세의 과학 과학 혁명 1. 과학이란 무엇인가 10 4. 고대의 과학 34 6. 르네상스와 과학 혁명 56 2. 과학에 대한 철학적 접근 18 5. 중세의 과학 46 7. 과학 혁명의 시작, 천문학 혁명 62 3. 과학을 보는 다양한 시각 26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6 8. 과학 혁명의 완성, 고전 역학 혁명 72 2018-08-31 오후 4:22:43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동양 및 한국 과학사 과학과 현대 사회 9. 근대 화학 체계의 성립 85 20. 중국의 전통 과학 172 25. 사회 속에서 과학의 역할 214 10. 현대 화학의 발전 96 21. 이슬람과 인도의 전통 과학 180 26. 과학기술과 윤리 221 11. ‘무엇’을 찾아 나선 생물학 105 22. 한국의 전통 과학 186 27. 과학기술과 사회의 상호 작용 226 12. ‘왜’를 찾아 나선 생물학 108 23. 서양 근대 과학의 수용 198 13. ‘어떻게’를 찾아 나선 생물학 116 24. 현대 한국 과학기술의 형성 204 14. 열과 에너지의 비밀을 밝힌 열역학 131 15. 빛이 가진 물리적 성질의 이중성 136 16. 전기와 자기 현상의 관련성을 밝힌 전자기학 142 17. 상대성 이론과 양자론의 탄생 148 18. 근대 지질학의 성립 155 19. 현대 지구과학의 발전 160 부록 주제 마무리 & 단원 매듭짓기 정답 232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7 과학사 연표 236 인용 자료 & 사진 출처 244 찾아보기 246 2018-08-31 오후 4:22:47 1 과학이란 무엇인가 2 과학에 대한 철학적 접근 3 과학을 보는 다양한 시각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8 2018-08-31 오후 4:22:49 과학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해. 관찰과 실험을 바탕으로 한 귀납적 방법이 과학이야. 과학은 합리적 이성으로……. 도대체 과학이 뭐지? 반증할 수 있는 것이 과학이지. 단원 설명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9 과학 혁명은 패러다임의 변화! 오랜 옛날부터 인간은 자연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왔으며, 과학에 대한 관점은 시대에 따라 변화되어 왔다. 과학의 방법론적 접근, 과학에 대한 철학적 접근, 과학에 대한 역사적 접근을 통해 과학이란 무엇인지를 알 아보도록 한다. 2018-08-31 오후 4:22:53 1 과학이란 무엇인가 학 습 목 표 ㅣ •연역 추론과 귀납 추론의 차이점을 이해하고, 베이컨의 귀납주의 와 그 한계를 설명할 수 있다. •가설 연역 방법과 귀추법의 의미를 설명할 수 있다. 하늘에서 물고기 비가 내린다면 2010년 3월 3일 영국 일간지 ‘더 선(The Sun)’ 인터넷 판은 ‘1일(현지 시간) 호주 북부의 작은 마을인 라 자마누에서 수백 마리의 흰 물고기가 비와 함께 내렸다.’고 보도했다. 당시 현장을 목격한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물고기들은 폭풍우와 함께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이 중 상당수가 죽지 않은 채 바닥에서 펄떡였다 고 한다. 라자마누 지역에서는 1974년과 2004년에도 ‘물고기 비’ 현상이 일어난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 나물이사금 18년(373년)에 물고기 비가 내렸다고 『삼국사기』에 전해지며, 1세기 로 마의 『박물지』에도 폭풍우처럼 개구리와 물고기가 내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늘에서 물고기 비가 내리는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최근까지 종종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세상의 종말이 다가오면 피의 비가 내리고 동물이 자기 살 던 곳이 아닌 곳에서 나타난 다고 했어요. 세상의 종말이 다가왔기 때문에 나타난 현 상이에요. 세상에 어떻게 하늘에서 물고기 비가 내리겠 어요. 이 물고기는 실제로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이 미리 뿌려 놓은 것을 착 각했겠죠. 좁은 지역이 강하게 가열되면 소용돌이와 함께 강한 상승 기류가 생기는데, 이때 물고 기나 개구리가 상승 기류를 타고 빨려 올라가 구름과 합 쳐졌다가 비와 함께 땅에 떨 어져서 생긴 현상이야! 저는 수백 마리 새 떼들이 함께 물고기 사냥 을 하다가 총소리나 포식자에 놀라서 도망가 면서 물고기를 놓쳐서 물고기 비가 오는 거 라고 생각해요. 하늘에서 물고기가 비처럼 떨어지는 일은 신비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두렵고 무서운 일이다. 이러한 자연 현상을 접한 사람들은 과연 이 일이 어떤 까닭으로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나름대로 설명을 하려고 노력한다. 자연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의 삶을 보다 안전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 나간다고 생 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과학으로 자연 현상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일체의 활동과 지식의 총 체를 과학적이라 말하고 있다. 물고기 비가 오는 까닭에 대한 위 네 사람의 설명 중 과학적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누구의 설명 이며, 그 근거는 무엇인가? 이와는 다른 자신의 생각이 있다면 설명해 보자. 10 Ⅰ. 과학이란 무엇인가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0 2018-08-31 오후 4:23:00 1 자연을 바라보는 눈 그림 1-1 노벨상 메달 뒷면의 자연의 여신과 과학의 여신 그림 1-2 과 학을 통해 베일이 벗겨지는 자연의 여신(바리아스, 오르세 미술관) 사람들이 자연과 과학을 바라보는 관점은 자연 과학 연구에 대해 수여되는 가장 명 예로운 상으로 알려진 노벨상을 통해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노벨상 수상자에게는 상 금과 메달이 수여되는데 노벨 물리학상과 노벨 화학상 메달 뒷면에는 두 명의 여신과 함께 ‘Inventas vitam juvat excoluisse per artes.’ (기예의 발견에 의해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일은 유익한 일이다.) 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여기서 베일을 쓴 여신은 자연의 여신이고, 오른쪽에서 자연의 여신의 베일을 들추고 얼굴을 엿보는 여신은 과학의 여신이다. 즉, 자연이란 풍요의 뿔을 든 채 베일을 쓴 여 어원을 통해서 본 과학의 본성 라틴어 Scientia는 체계화된 보편적 지 식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그리스어 Episteme에서 유래되었다. Episteme 는 그리스어 Doxa와 대비된다. Doxa 는 사실과 맞지 않는 거짓이나 사실과 맞더라도 논거가 결여되어 있는 지식 이나 주장을 말한다. 인처럼 살짝 감추어져 있고, 과학은 지적 호기심으로 베일을 걷고 자연의 참모습을 보 려고 하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과학은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지난 2,500 여 년 동안 인류는 자연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볼 것인지에 대해 탐구해 왔다. 고대는 과학적 지식이 거의 없었고 자연에 대한 경외감으로 막연한 숭배가 이루어졌 던 시기이다. 당시의 사람들은 정신과 육체, 생명과 물질을 구별하지 않고 자연에도 정 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중세에는 신이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을 지배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는 기독교 사 상이 팽배했기 때문에 자연과 인간을 분리시키고 인간이 자연보다 우월하다는 기독교 적 자연관이 생겨났다. 1. 과학이란 무엇인가 11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1 2018-08-31 오후 4:23:06 이러한 사고는 근대에 이르러 ‘자연은 생명이 없는 기계처럼 자율성이 없다.’는 사고 로 이어졌으며, 현대까지 지속되어 오고 있다. 정리해 보면, 고대는 자연 중심주의, 중세 는 신 중심주의, 근대는 인간 중심주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은 시대에 따라 변해 왔으며, 자연이 보여 주는 현상들 을 관찰하고 해석하기 위한 방법은 점차 정교해지기 시작하였다. 과학은 언제 시작되었는가? 과학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를 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을 과학이라고 하는가에 대 하여 정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과학을 보는 관점은 크게 실용적 관점, 이론적 관점, 포 스트모더니즘적 관점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실용적 관점에서 과학은 ‘인간이 자신의 주변 환경을 통제하기 위해 사용하는 과학의 의미 오늘날 ‘과학’이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으나 일반적으로 일 반인들은 과학을 하나의 지식 체계로, 과학자들은 탐구하는 방법으로, 철학 자들은 사고하는 방법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러 가지 행동 체계’라고 정의된다. 이 정의에 의하면 과학과 기술은 역사를 같이하며 기원전 3000년경에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론적 관점에서 과학은 자연 현상에 대한 합리적인 지식 체계로 정의한다. 이 정의 에 따르면 과학의 시작과 기술의 시작을 구분하는데, 과학은 기원전 6세기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적 관점에서는 과학이 다른 학문과 다른 특별한 것이 아니며 아주 오 래전부터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과학이 다른 학문과 다른 특징은 무엇인가 과학은 자연 현상으로부터 객관적인(합의된) 질서를 밝히기 위하여 과학적 사고와 과학적 탐구 방법을 사용하는데 이러한 모든 행동을 우리는 과학이라 생각해 왔다. 과학은 자연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고 관찰과 실험을 통해 검증 가능한 지식 이기 때문에 다른 학문과 구분된다고 하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과학철학자 들은 과학 활동이 이루어지는 방법에 의해 과학이 다른 학문과 구분되는 특징이 있다 고 한다. 과학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는 과학철학자라 하더라도 과학을 다른 학문과 비교하기 위해서는 과학 활동의 방법에 대하여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에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체계적인 지식 으로서 과학이 시작되었지. 우리도 과학을 했었다구. 과학이 별건가? 그림 1-3 과학은 언제 시작되었는가 12 Ⅰ. 과학이란 무엇인가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2 2018-08-31 오후 4:23:08 2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 현상에 대한 생각을 신화적이고 종교적인 것에서 논리적인 것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이후 수학자 유클리드가 정비한 논리적 추론과 공리 체계라 는 것이 더해지면서 고전적 과학 방법론이 구축되었다. 이러한 방법은 과학을 점차 ‘객 관적이고 합리적인’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고전적 과학 방법론의 토대인 논리적 추론 에는 대표적으로 연역 추론과 귀납 추론이 있다. 연역 추론은 보편적인 원리에서 개별적 사실을 이끌어 내는 추론이다 연역 추론은 이미 알고 있는 판단을 근거로 새로운 판단을 유도하는 추론이다. 여기 서 이미 알고 있는 판단은 전제, 새로운 판단은 결론이다. 즉, 연역 추론으로는 전제들 로부터 절대적인 필연성을 가진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연역 추론은 고대 이래로 연역 추론과 귀납 추론의 차이점 연역 추론은 보편 명제가 될 수 있는 가 능성을 따지는 귀납 추론과 달리, 명 제들 간의 관계와 논리적 타당성을 따 진다. 주어진 원리나 법칙으로부터 자연 현상을 설명하거나 예측할 때 주로 사용하는 추론 방식이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대전제 + 논리적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소전제 필연적 결론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그림 1-4 연역 추론의 방법 이러한 논증 방식을 일컬어 ‘삼단 논법’이라고도 하며, 아리스토텔레스가 체계화한 것 삼단 논법 구조 대전제 으로 유명하다. 연역 추론 혹은 연역법은 전제들이 참이면 결론도 참이 되는 진리 보존 사람 적 구조를 띠고 있다. 연역 추론은 명제들 간의 관계와 논리적 타당성을 따진다. 최초의 이론을 형성하는 것이 어려우며, 전제에 결론이 내포되어 있어서 새로운 지식의 생성이 어려운 ‘지식의 비확장성’을 지닌다. 또한, 연역의 토대를 이루는 대전제가 확실하지 않을 경우 그 결론 죽음 소전제 사람 A 역시 참임을 보장할 수 없게 된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다. 결론 A 죽음 이러한 구조는 오늘날에도 수학에서 사용하고 있는 논법이며, 유클리드가 『원론』에서 이용하였다. 연역 추론은 이미 알고 있는 보편적인 원리에서 개별적 사실을 이끌어 내는 추론이야. 귤도 과일이니까 맛있겠네. 그림 1-5 연역 추론 1. 과학이란 무엇인가 13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3 2018-08-31 오후 4:23:09 귀납 추론은 개별적 사실들로부터 보편적인 명제를 얻어 내는 추론이다 베이컨(Bacon, Francis; 1561~1626) 17세기 영국의 대법관이던 베이컨은 과학의 본성을 탐구하는 데 있어서 인간의 마음 을 배제하고 자연 그 자체의 관찰로부터 오는 지식을 누적하여 탐구하는 ‘귀납 추론(귀 납법)’을 주장했으며 이를 통해 오늘날 ‘과학적 방법’이라고 불리는 방법을 확립했다. 베이컨은 1620년 그의 저서 『신기관』에서 신앙이 아닌 데이터로부터 출발하는 새로 운 과학의 모습을 역설하면서 자연철학의 진리를 밝혀내는 데 있어 삼단 논법에 의한 연역 추론은 부적합하며, 귀납 추론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주장했다. 베이컨은 우리가 과학을 하면서 빠지기 쉬운 잘못된 사례로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 영국의 경험론을 연 베이컨은 데카르 트와 함께 근대 철학의 개척자로 알려 져 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그의 말은 유명하다. 상,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이라는 4가지 우상을 들어 설명했다. 이 중에서 극장의 우 상은 진실이 기존의 전제에서 유도되는 철학적이거나 신학적인 사고 방식에 집착할 때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베이컨은 이전의 사변 철학이나 종교에 지배받던 시절 과의 단절을 통해서만 올바른 과학을 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사변 경험에 의하지 않고 순수한 논리적 사 고만으로 현실 또는 사물을 인식하고 설명하려는 것을 말한다. 본문 137, 183쪽 참조 베이컨이 정립한 관찰과 실험을 바탕으로 하는 과학적 방법을 최초로 사용하여 자연 현상을 기록했다고 평가되는 사람은 이븐알하이삼이다. 그가 1021년 발표한 『광학의 서』 를 살펴보면 동일 매질에서 빛이 직진한다는 것을 추측이 아닌 관찰을 통해 증명했다. 귀납 추론은 새로운 지식을 생성하는 데 유리하여 지식의 확장성을 지니지만, 모든 대상을 검증할 수 없으므로 ‘비확증성’을 띠는 단점이 있다. 또한, 관찰 증거만으로는 여러 가설 중 무엇이 맞는지 결정할 수 없다는 미결정성 문 제에 봉착하게 된다. 현대 과학자들은 전제와 결론 사이의 개연성을 확률로 표현하여 귀납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관찰 사실 1 , 관찰 사실 , 관찰 사실 , 2 3 관찰 사실 관찰 사실 4 n 결론 그림 1-6 귀납 추론의 방법 그럼 과일은 맛있겠구나. 사과는 맛있어. 오호 새로운 방법이군. 바나나도 맛있어. 귀납 추론은 개별적 사실로부터 보편적인 명제 를 얻어 내는 추론이지. 그림 1-7 귀납 추론 14 Ⅰ. 과학이란 무엇인가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4 2018-08-31 오후 4:23:11 가설 연역 방법은 귀납적 방식과 연역적 방식으로 자연 법칙을 이끌어 내는 방 법이다 베이컨이 귀납법을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방법에서 연역법의 중요성은 사라 지지 않았다. 19세기 영국의 과학자 휴얼은 귀납법을 보완하기 위해 가설 연역 방법을 도입하였다. 가설 연역 방법은 관찰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 과학적 가설을 이끌어 내는 귀납적인 방식과 연역적으로 전개된 가설의 검증을 통해 자연 법칙이나 이론을 이끌어 내는 방 법이다. 이후 가설 연역 방법은 여러 과학 분야에 걸쳐 과학적인 연구의 방법으로 활용 되었다. 귀납법 연역법 관찰 가설 세우기 이론 연구 경험적 일반화 가설 NO 가설의 시험 YES 관찰 가설의 입증 그림1-8 과학적 탐구에서 귀납법과 연역법의 순환 법칙 그림 1-9 가설 연역 방법 헝가리 태생의 의사 제멜바이스의 산욕열 연구 사례를 통해 과학적 가설이 어떻게 적 용되는지 살펴보자. 1.문제 인식: 제멜바이스는 자신이 근무하는 오스트리아 빈의 1산부인과에서 산모들이 산욕열로 사망하는 비율이 2산부인과와 비교해서 매우 높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 원인이 궁금해졌다. 2.가설 세우기: 그는 여러 가설을 시험한 끝에 사체를 부검한 의사의 몸에 남아 있던 보이지 않는 사체의 조각들이 분만 시술할 때 산 모에게 전달되어 산욕열이 발병한다고 생각하였다. 3.가설의 시험: 그는 분만 시술에 참여하는 모든 의사들이 손을 소독하면 산욕열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하고 손 소독을 실행한 결과 산욕열로 인한 사망률이 18%에서 1%로 줄었다. 4.가설의 검증: 이를 통해 제멜바이스는 산욕열의 발생 원인이 사체 조각에 있다는 가설을 확신하게 되었다. 가설 예측 공기 중의 나쁜 기운의 영향 2 산부인과 및 주변 지역에도 산욕열이 창궐할 것이다. 식사의 차이 1 산부인과에서 제공한 환자식이 부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두 산부인과 사이에 차이가 없음. 각! 가설 기 분만 자세 차이 1-바로 누워서 2-옆으로 누워서 1 산부인과의 분만 자세 를 바꾸면 산욕열 발생 률이 떨어질 것이다. 산욕열 발생률이 감소하지 않음. 각! 가설 기 사체에서 나온 물질의 영향 진찰 전에 손을 소독 하면 산욕열 발생률이 떨어질 것이다. 산욕열 발생률이 극적으로 감소함. 용! 가설 수 .. . 그림 1-10. 제멜바이스의 산욕열 연구 관찰 결과 2 산부인과 및 주변 각! 가설 기 지역은 양호함. 그림 1-11 의 사들에게 손씻기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제멜바이스 (Semmelweis, I. P.; 1818~1865) 1. 과학이란 무엇인가 15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5 2018-08-31 오후 4:23:12 가설 연역 방법에서 검증 대상이 되는 ‘가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범인이 알코올 중독자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나요? 가설의 생성 많은 과학자와 과학철학자들은 가설은 순간적인 통찰이나 사고의 도약으로 생 성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일부 학자들 은 귀납의 결과로 가설이 얻어진다고 여 겨 왔으나, 귀납 추론으로는 나타나는 자연 현상을 단순히 기술할 수 있을 뿐 현상의 원인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운이 좋았고 확률에 근거해 생각했을 뿐입니다. 충전기 연결부 여기에 아주 작은 미세한 상처들이 있더군요. 매일 밤 충전기를 꽂을 때 손이 떨렸던 것이지요. 나는 술에 취하지 않은 사람의 핸드폰에선 이런 상처를 본 적이 없어요. 알코올 중독자 핸드폰에는 주로 이런 상처가 있지요. 19세기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자 퍼스와 과학철학자 핸슨은 과학적 사고의 과정을 보다 체계적으로 분석하였다. 이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고안해 내는 과정에서 귀납이나 연역 과는 다른 제 3의 추론 과정이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가설의 생성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 한 논리적 과정은 바로 귀추이며, 귀추는 최선의 설명으로서의 추론이라고도 한다. 연역 가설 귀추 예측 관찰 현상 (의문 현상) 귀납 그림 1-12 플라크와 카카스가 제 시한 과학적 탐구의 세 단계 모형 실제의 세계(자연 현상) ‘나는 터키 지방의 항구에 내린 적이 있다. 내가 방문하기로 되어 있던 집에 걸어가고 있을 때, 나는 머리 위에 덮개를 쓰고 네 명의 기수에 둘러싸여 말 위에 올라 타 앉아 있는 남자를 만났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지역의 통치자만이 그러한 대단한 영예를 누 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바로 이 사람이 이 지역의 통치자라고 추리했 다. 이것은 하나의 가설이다.’ 윗글은 퍼스가 자신의 책에서 귀추의 예로 든 일화이다. 귀추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자신이 알고 있던 일반적인 경험 중에 가장 유력한 사 례일 것이라는 가설을 채택하여 관찰된 현상을 설명하는 추론이다. 귀추는 일반적 규칙 이 사례는 진위 여부가 임시적인 명 제 즉, 설명 가설이다. 과 결과로부터 특정한 사례를 도출하는 종합 추리라고 할 수 있다. 귀추의 형식 논리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1. 어떤 놀라운 사실 C가 관찰된다. 2. 그런데 만약 A가 참이라면, C는 당연한 것이 된다. 3. 따라서 A가 참이라고 여길 만한 이유가 있다. 16 Ⅰ. 과학이란 무엇인가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6 2018-08-31 오후 4:23:14 모두 흰색이군. 아! 그 자루에서 꺼냈구나. ➊ 한 사람이 책상 위에 있는 한 움큼 ➋ 그는 방 안에 있는 자루에는 오직 자신이 알고 있었던 일반적 규칙 ➋로 의 콩이 모두 흰색이라는 것을 관찰 흰색 콩만이 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관찰된 결과 ➊을 설명하는 사례(‘책상 하였다. 떠올렸다. 위의 흰색 콩들은 방 안에 있는 자루에서 꺼냈다.’)를 도출한다. 그림 1-13 퍼스가 제시한 귀추의 사례 귀추의 과정을 통해 ‘이 콩이 왜 흰색인 것일까?’라는 의문에 대하여 ‘오직 흰색 콩만 이 들어 있는 자루에서 꺼냈기 때문이다.’라는 가설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귀추는 추리 소설에서 탐정들이 많이 사용하는 추론 방법이며, 의사들이 환자의 병을 진단하는 데 사용하는 논리이기도 하다. 경찰들이 증거를 수집하여 과학 수사를 할 때 나 법과학에서 주로 사용하는 추론법이기도 하다. 귀추와 인공 지능 현재 각광받고 있는 기술인 인공 지능 의 학습 기능인 기계 학습의 기본 알고 리즘은 귀추로부터 왔다. 구글의 알파 고가 사용한 딥러닝 역시 이미 가지고 있는 데이터를 이용해서 기계가 스스 로 학습하고 자신만의 새로운 아이디 어를 만들어 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귀추의 과학적 사례는 케플러가 화성 궤도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케플 러의 출발점은 바로 티코 브라헤의 ‘관찰 자료’였으며, 귀추적 과정을 통해 화성의 궤도 가 타원이라는 궁극적 가설에 도달했던 것이다. 케플러의 귀추 ● 관측 자료에 따르면 화성의 공전 궤도는 원 궤도를 벗어난다. ● 만약 화성의 공전 궤도가 타원이라면, 원 궤도로는 설명할 수 없는 관측 자료를 잘 설명할 수 있다. ● 그러므로 화성의 공전 궤도는 타원일 것이다. 즉, 과학은 ‘증거를 기반으로 하는 최선의 설명으로서 추론’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무엇을 안다는 ‘앎’은 증거(관찰과 실험)를 바탕으로 한 추론이다. 정리하기 주제 1에서 배운 내용들을 바탕으로 ‘과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자기만의 한 줄 답변을 해 보자. 과학은 생각 넓히기 ‘물고기 비’가 내린 자연 현상에 연역, 귀 납, 귀추의 추론 방법을 적용하여 설명해 보자. 이다. 1. 과학이란 무엇인가 17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7 2018-08-31 오후 4:23:16 2 과학에 대한 철학적 접근 학 습 목 표 ㅣ •귀납주의의 한계를 설명할 수 있고, 포퍼의 반증주의의 내용과 그 한계를 설명할 수 있다. •쿤의 과학관을 이해하고 그 한계를 설명할 수 있다. 어떤 것이 사실일까 ▶ 아래 사진들에서 보이는 것을 빈칸에 써 보자. ( ) ( ) ( ) ( ) ( ) ( ) 어두운 숲속에서 유령을 보았다는 사람들이나, 저녁 하늘에 나타난 UFO를 목격한 이야기, 빵 속에서 처 음 보는 남자가 웃고 있었다는 등의 이야기는 우리의 호기심을 잡아끈다. 실제로는 그냥 나뭇잎 그림자일 뿐이거나, 우연히 줄지어 선 구름들, 불규칙하게 탄 얼룩일 뿐인데 우리는 왜 엉뚱한 것을 보았다고 호들갑 을 떠는 것일까? 위의 사진에서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그것은 사실일까? X선이나 MRI 사진을 볼 때, 일 반인은 검은색과 흰색의 얼룩을 볼 뿐이지만, 진단 방사선과 전문의는 병의 징후를 발견한다. 우리에게는 이상스러운 그림에 불과한 이집트 상형 문자가 고고학자에게는 의미 있는 문장으로 보인다. 외견상으로는 동일한 것을 관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찰에 대한 해석이 사람에 따라 상이한 이유는 관 찰 결과를 해석하는 틀로서의 이론이 다르기 때문이다. 핸슨은 ‘순수한 관찰은 존재하지 않으며 관찰자의 지식, 신념, 기대, 이론 등이 관찰에 영향을 미친다.’는 관찰의 이론 의존성을 주장했다. 우리 속담에는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있고, 서양 속담에는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Seeing is believing)’라는 말이 있다. 과연 우리는 보는 것을 그대로 믿어도 될까? 18 Ⅰ. 과학이란 무엇인가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8 2018-08-31 오후 4:23:16 1 귀납주의적 과학관의 한계는 무엇인가 오리의 모습이 보이는가? 아니면 토끼의 모습이 보이는가? 같은 대상이 오리로도 보이 고 토끼로도 보인다는 것은 확고부동한 관찰 사실은 정해져 있지 않다는 의미가 된다. 직접적인 관찰 사례로부터 보편 명제를 도출하고, 보편 명제를 논리적 모순이 없는 체계로 구성함으로써 이론으로서의 과학이 성립한다는 귀납주의의 전제는 관찰이 이론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일한 것을 관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찰에 대한 해석이 서로 다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관찰 결과를 해석하는 틀로서 이론이 작 용하기 때문이다. 이론 없는 관찰은 불가능하고, 따라서 귀납주의적 과학관은 한계점을 가진다. 풍부한 관측 데이터를 가진 닭! 그러나 김장우 씨 농장의 닭들은 병아리 때부터 보살펴 준 그를 마음씨 좋은 농부로 믿는다. 하루, 이틀, 사 흘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그는 한결같이 미소를 머금고 나타나 모이를 주었다. 닭 들은 날마다 자고 나면 똑같은 미소와 맛있는 먹이 가 기다릴 것으로 기대했다. 똑똑한 닭 하나가 친절 한 김장우 씨의 저의를 의심하다 바보 취급만 받았 다. 40일째가 되던 어느 날 아침 김장우 씨는 가장 살진 닭들을 어디론가 데려갔고 그들은 끝내 돌아 오지 않았다.(그날은 복날이었다.) 40일 동안 되풀 이되던 일상의 안전은 갑자기 깨졌다. 하루하루 쌓 여 가던 믿음은 한 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관찰 결과 일반화의 위험성 영국 철학자 러셀은 『철학의 문제들』 에 소개된 닭 이야기를 통해 누적된 관 찰 결과를 일반화하는 것의 위험성을 제시하였다. 러셀은 ‘닭의 일생 동안 날 마다 먹이를 주었던 농부가 결국에는 닭의 목을 비튼다.’고 했다. 어떤 일이 아무리 오랫동안 되풀이되더라도 다음번에도 확실히 같은 일이 일어난다 고 확신할 수는 없는 것처럼 관찰된 결과를 일반화하는 것에는 위험성이 존재한다. 제 아무리 많은 관찰 결과도 단 하나의 예상치 못한 반대 사례로 무너져 내리고 마는 것 이다. 2. 과학에 대한 철학적 접근 19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9 2018-08-31 오후 4:23:22 2 과학은 혹독한 비판과 반증에 자신을 내던지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영국 과학철학자 포퍼는 앞에서 설명한 귀납의 한계를 깨달았다. 그는 귀납법은 더 이상 과학의 방법론일 수 없다고 판단하고 새로운 과학의 방법론인 반증주의를 제안하였다.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명제를 검증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모든 까마귀는 검다. 그런데 검지 않은 까마귀 따라서 모든 까마귀는 검 가 한 마리 발견되었다. 지 않다. 그림 2-1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명제의 검증 포퍼(Popper, K. R.;1902~1994) 모든 까마귀가 검은지 확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을 반증하는 것 은 가능하다. 단 한 마리의 ‘흰 까마귀’ 혹은 ‘검지 않은’ 까마귀면 충분하다. 포퍼에 따르면 과학의 발달은 귀납적 관찰에 의한 입증 사례의 누적이 아닌 끊임없는 추측과 논박을 통한 반증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설명하였다. 반증 가능성이 높은 진술 이 과학적 진술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하였다. 귀납주의자는 이론에 부합되는 사례를 많이 찾아 이론이 참일 개연성을 높여 나가지 만, 반증주의자는 이론에 반하는 사례를 찾음으로써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포퍼에 따 포퍼에 따르면 과학의 역사는 반증 가 능성이 낮은 이론들로부터 점점 반증 가능성이 높은 이론들로 변해 왔다고 볼 수 있다. 반증가능한 이론은 보다 포 괄적이고 구체적이고 조작적으로 정의 된 것이며, 반증 가능하지 않은 이론은 모호하고 조작적으로 정의되지 못하는 것이나 정의 그 자체 혹은 항진 명제( 언제나 옳을 수밖에 없는 명제)와 같은 것들이 있다. 일반 상대성 이론의 실험적 증명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은 빛 이 중력에 의해 휘어진다는 것이다. 그 이론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회의적이었다. 그런데 영 국의 천문물리학자인 에딩턴이 1919 년 남아프리카공화국 개기 일식 때 촬 영한 수성 사진으로 증명하였다.(151 쪽 그림 참조) 르면 과학은 혹독한 비판과 시행착오 과정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역사를 띠게 된다고 볼 수 있다. 과학과 과학이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있을까 포퍼는 반증 가능성 문제를 통해 과학과 비과 어떤 문제의 제기 학(혹은 유사 과학)을 나누어야 함을 주장하고 있 다. 포퍼는 귀납을 통해 현재까지 드러난 경험 사 대담한 추측(가설)의 발견(고안) 례들의 관계를 설명할 뿐 아니라, 높은 확률로 틀 릴 수 있는 주장을 담고 있는 이론이면서 동시에 연역을 통해 새로운 현상의 예측 닥쳐올 시련을 통과하는 것이야말로 과학이라고 보았다. 이런 대담한 추측과 혹독한 시험을 잘 견 No 딘 좋은 예로 포퍼는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반증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예측=관찰? Yes 용인 그림 2-2 반증주의와 과학의 진보 20 Ⅰ. 과학이란 무엇인가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0 2018-08-31 오후 4:23:23 천동설은 틀린 이론으로 판명되었지만 반증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천문학자들의 관 찰을 통해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것을 반증할 수 있으므로 여전히 과학적인 주장 이 될 수 있다. 이때 과학적이라는 것은 어떤 이론이나 가설이 참인지 거짓인지 자체와 는 무관하다. 그럼 유사 과학은 무엇인가? 유사 과학은 ‘틀린 이론’이 아니라 ‘맞은 적도 없고 틀린 진화론과 반증주의 포퍼는 반증 가능성이 어렵다는 판단 으로 인해 다윈의 진화론을 전형적인 비과학으로 언급하였으나, 자신의 생 물학과 진화론에 대한 이해가 모자랐 음을 깨닫고 이 언급에 대해 공식적으 로 사과하였다. 적도 없는’ 이론이다. 포퍼는 마르크스의 역사 이론이나 아들러의 개인 심리학, 프로이 트의 정신 분석학 역시 비과학의 전형으로 판단하였다. 이런 것들은 모두 경험적 이론 들에 속하며, 엄청난 입증 사례를 통해 일반화하려 한다는 것과 그들이 내세우려는 요 소가 모호하여 반증이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포퍼에 따르면 종교나 유사 과학은 독단적인 반면, 과학은 언제나 스스로에 대한 비 판도 서슴지 않는 태도가 있다. 때문에 포퍼는 과학이란 합리적 비판 정신의 보루이며, 전체주의의 위협으로부터 인간 사회를 지켜 내기 위한 무기라고 강조하였다. 탐구 활동 유사 과학의 정체를 밝혀보자 조사 토론 다음 ‘유사 과학 탐구 영역’이라는 웹툰을 보고 우리 주변의 유사 과학을 알아보고 토론을 통해 그 정체를 밝혀 보자. (http://webtoon.daum.net/webtoon/view/PseudoScience) 미세 먼지 흡수 식물 전자파 차단 스피커 커피와 에너지 드링크 만성 피로와 산성 체질 수소수와 자화수 파워 스톤 과정 1. 위 웹툰을 보고 자신이 알고 있는 유사 과학의 종류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툰에서 제시되는 각종 내용들이 과학인지 아니면 유사 과학에 해당하는지 ‘포퍼의 관점’에서 2. 웹 토론해 보자. 2. 과학에 대한 철학적 접근 21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1 2018-08-31 오후 4:23:23 3 과학은 수수께끼 풀이다 토마스 쿤은 1962년 초판이 출간된 『과학 혁명의 구조』에서 기존의 점진적인 역사관 이 아닌 ‘혁명’이라는 도약적인 역사관이 과학의 역사를 바라볼 때도 적용될 수 있음을 주장하였다. 쿤은 고대로부터의 물리학을 공부하면서 현대의 입장에서는 말이 안 되는 고대인들 의 설명 체계들이 그들의 관점에서는 딱딱 들어맞는, 소위 ‘정합성’이 생기는 반복적 체 험을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은 뉴턴 물리학으로 교체되는 과정에서 발전되는 것으로 여겨 왔으나 실제로는 설명하지 못하고 잃어버리는 영역도 존재한다. 이것은 뉴턴 역학에서 양자 역학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한다. 이렇게 발생되는 불가피한 손 실을 일명 ‘쿤의 손실’이라 부르며 이것은 과학의 역사가 더 이상 누적적으로 보기 어렵 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학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도그마(dogma) 독단적인 신념이나 학설을 의미하며, 무언가에 대한 굳은 믿음과 그러한 가 치관을 의미한다. 쿤은 과학에는 독단적인 신념이나 학설인 일종의 도그마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특정 시기에 과학자들이 하는 많은 연구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도그마에 기댄 행동들이 며,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과학 혁명은 논리적 수순보다는 과학자들 자신의 심리적 변화 에 기인하는 바가 더 크다고 하였다. 그가 말하는 과학 혁명이란 정치에서 사용하는 혁 명이라는 용어와 동일한 의미이며, 혁명에 의한 체제 전복은 언제나 힘의 논리와 설득의 문제에 기초하고 있다. 쿤은 과학 역시 이러한 역사의 흐름을 따라간다고 설명하였다. 과학 혁명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쿤이 사용한 독특한 용어는 바로 ‘패러다임’이다. 패러다 임은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테두리로서의 인식 의 체계, 또는 사물에 대한 이론적인 틀이나 체계를 의미하는 개념 정도로 볼 수 있다. 아니지요 ! 지구가 회전하고 있는 것이지요 ! 음, 태양이 떠오르고 있군 ! 티코 브라헤 케플러 그림 2-3 과학적 인식의 틀이 되는 패러다임 미국의 과학철학자 핸슨(Hanson, N. R.; 1924~1967)은 『과학적 발견의 패턴』에서 티코 브라헤와 케플러가 산책을 하다가 해 뜨는 장면을 보게 된다면 같은 자연 현상에 대하여 그들이 생각하는 자연관(패러다임)이 달라서 서로 다른 설명을 할 것이 라고 하였다. 22 Ⅰ. 과학이란 무엇인가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2 2018-08-31 오후 4:23:24 김 박사, A 세균으로 실험해 주세요. A 세균이 여기 있군. 실험을 해 볼까. 그날 저녁 아니, 김박사는 실험 안하고 어디로 간거야? 팀장님, A 세균으로 실험한 결과입니다. 네, 팀장님. 아니, 일주일 동안 실험실에 한 번도 나오지 않고서 실험을 했다는 거예요? 그림 2-4 서로 다른 패러다임에 속하는 전문 분야 간 소통 불가능 쿤은 서로 다른 패러다임에 속하는 전문 분야 간에는 서로 사용하는 어휘 가 다르기 때문에 아무리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더라도 소통은 불가능하 다고 보았다. 손에 물 묻히고 하는 것만 실험이 라고 생각하다니 말이 안 통하네. 컴퓨터로 무슨 실험을 한다는 거야?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군. 쿤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과학 혁명을 통해서 새로운 정상 과학으로 인정 받고 수용되는 패러다임의 전환 과정을 통해서 과학이 발전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쿤이 설명하는 패러다임의 전환 과정은 다음과 같다. 많은 패러다임 중 가 장 지배적인 패러다임 즉, ‘정상 과학’이 존재한다. 점점 그 패러다임으로 설명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지고, 그래서 기본 가정들이 도전을 받게 되면 기존의 정상 과학에 위기가 찾아온다. 이런 과정 속에서 다른 여러 패러다임들이 경쟁을 하게 되고, 그러다가 어느 패러다임이 득세하고 수용되면서 과학 혁명이 발생한다. 쿤이 그의 책 『과학 혁명의 구조』를 통해 설명하고자 한 과학이 발달하는 역사는 전 과학, 정상 과학, 위기, 과학혁명의 네 시기를 순환적으로 거친다. 쿤에 의하면 과학의 발전은 과학 혁명을 거치면서 과거의 패러다임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건너뛰는 형 태로 진행된다. 전 과학 (패러다임 없이 연구) 패러다임의 정립 정상 과학 1 변칙 사례의 등장 아인슈타인 상대성 이론 위기 패러데이 장 이론 과학 혁명 (새로운 패러다임) 정상 과학 2 그림 2-5 과학 혁명에 의한 과학의 발달 과정 뉴턴 고전 역학 아리스토텔레스 운동론 그림 2-6 과학사에서 나타난 패러다임 전환의 사례 2. 과학에 대한 철학적 접근 23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3 2018-08-31 오후 4:23:27 쿤이 주장한 전문 분야 간 소통 불가 능에 대한 반론 서로 다른 패러다임에 속하기 때문에 전문 분야 간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쿤 의 주장은, 후에 갤리슨에 의해 반박되 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수행한 레이 더 연구에서 서로 다른 전문 분야 사이 에 소통과 융합이 가능한 것을 보였기 때문이다. 갤리슨은 과학에서는 몇몇 사실이나 실험 방법, 실험 기구 등이 바 뀌지 않으므로 이를 통해 소통이 가능 하고, 실험과 기구 연구자들이 소통의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며 실험의 중요 성을 강조하였다. 과학은 관찰된 사실을 입증하거나 반증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기존의 과학철학자 들은 쿤의 주장을 비난했지만 모두가 중요하게 생각한 한 가지는 쿤의 접근 방식에 대 한 것이었다. 쿤이 시도한 이러한 접근 방식을 ‘역사주의적 과학철학’이라 부르며 그의 작업을 ‘역사론적 전회’라고 부른다. 실제 과학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과학의 역 사를 더듬으면 바로 ‘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의 질문에 대한 답을 더욱 명확히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쿤이 제시한 역사 해석 방식의 한계성을 지적하다 과학사학자이자 생물학자인 마이어는 지질학이나 생물 분류학과 같은 자연사 영역이 나 진화론을 토대로 하는 생물학 영역은 쿤의 혁명적 역사관이 전혀 맞지 않음에 대해 서 그의 저서 『이것이 생물학이다』를 통해 역설한 바 있다. 마이어(Mayr, E. W.; 1904~2005) 마이어는 이 책에서 쿤이 주장하는 ‘혁명’은 생물학의 역사에서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혹자들이 언급하는 생물학의 혁명은 단지 물리학을 관심의 초점으로 본 ‘과학 혁명기’에 시대적으로 같이 일어난 생물학의 사건을 기계적으로 혁명으로 해 석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쿤이 주장하는 과학 발달의 역사는 모든 학문에 통용되기 어려우며, 자연사의 전통을 이어받은 생물학 분야는 점진적이고 진화적인 방 식으로 변화해 왔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하며 쿤이 제시하는 역사 인식의 문제점과 한 계성을 지적하였다. 위기가 오면 정말 과학은 변화되는가 쿤에 의하면 변칙 사례의 누적으로 위기를 맞은 정상 과학은 마치 정치적으로 체제를 뒤집어엎는 것과 같이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해 정상 과학의 지위를 내어 주고 무너지게 된다고 역사를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과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과학자들은 변칙이 등 장해도 끈질기게 자신들의 생각을 고수하는 경우들이 허다하다. 이 문제로 대립하던 포 퍼와 쿤의 생각 사이에 다리를 놓은 과학철학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포퍼의 제자인 헝가리 출신의 러커토시이다. 과학이란 무엇인가? 수수께끼 풀이 활동 정상 과학 단계에서 과학자들이 자신 의 관찰과 기존의 이론이 일치하도록 실험과 이론의 정확성을 증진시키고, 더 많은 현상을 설명할 수 있도록 패러 다임의 범위를 확장하며, 결과를 더 정 확하게 결정하고, 명료하게 하는 활동 을 말한다. 예를 들어 뉴턴의 고전 역학 을 이용하여 물체의 운동을 설명하는 활동이 이에 해당한다. 반증주의 반증이 가능해야 과학적 진술이다. 포퍼(Popper, K.; 1902~1994) 패러다임 과학은 기본적으로 패러다임에 기반한 수수께끼 풀이이다. 쿤(Kuhn, T. S.; 1922~1996) 그림 2-7 과학이란 무엇인가(Ⅰ) 24 Ⅰ. 과학이란 무엇인가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4 2018-08-31 오후 4:23:27 4 과학은 진보적 연구 프로그램이다 러커토시는 쿤의 패러다임과 관련된 기본적인 주장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도 과학 자들이 경쟁하는 두 이론이 나타나게 될 때, 어떤 일반적인 원리나 기준에 준하여 한 이 론이 다른 이론보다 우월하다는 판단을 하여 그 이론을 선택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과학적 연구 프로그램의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러커토시의 연구 프로그램은 핵, 보호대, 규칙으로 구성되어 있다. 반증 과정은 직접 적으로 견고한 핵을 손상시켜 이론 전체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보호대의 가설들이 먼저 수정된다고 주장하였으며, 보호대의 가설들로는 견고한 핵을 유지하지 못하게 될 때 비로소 이론의 혁명적 전환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이는 포퍼가 주장한 과학의 연 역적, 합리적인 방법론을 옹호하는 동시에 쿤의 과학사적 접근 방법 또한 만족시킨다. 연구 프로그램의 퇴행과 전진 러커토시는 연구 프로그램이 부정적 발견법(과학자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지정하는 규칙)을 반복하게 되면 퇴행 적인 것으로, 긍정적 발견법(과학자가 해야 할 것을 지정하는 규칙)을 통하여 견고한 핵을 지키면서 설명해 낼 수 있 는 범위가 많아지게 되면 진보적인 것 으로 보았다. 과학이란 무엇인가? 보호대 (보조가설) 진보적 연구 프로그램 핵 새로운 사실을 예측해야 ‘진보적 연구 프로그램’ 즉, 과학이다. 러커토시(Lakatos, Imre; 1922~1974) 그림 2-9 러 커토시의 연구 프로그램 보호대는 공격받아도, 핵은 공격받지 않는다. 그림 2-8 과학이란 무엇인가(Ⅱ) 예를 들어 라부아지에가 플로지스톤의 존재를 부정했을 때 플로지스톤설에 집착한 본문 86쪽 참조 학자들이 ‘플로지스톤은 마이너스 무게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것과 같이 패러다임 을 고집하는 과학자들은 기존 학설을 땜질하기 위한 임시변통적 가설을 추가한다. 견고한 핵을 지키려는 독단으로 임시변통적 가설들로 보호대를 채우게 되는 상황은 부정적 발견법에 해당하며,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연구 프로그램은 퇴행적인 것이 되고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임시변통적 가설 기존의 학설에 배치되는 결정적 증거 가 나왔을 때, 기존 학설을 땜질하듯 임 시로 덧붙여지는(또는 추가되는) 가설 을 임시변통적 가설, 또는 애드혹 (Adhoc) 가설이라고 한다. 러커토시는 연구 프로그램 사이의 우열을 판단하기 위한 기준으로 참신한 예측을 내 놓고 관측 데이터를 통해 검증하는 방법을 제시하였고, 효과적인 예측을 제공하는 프 로그램이 그렇지 못한 프로그램을 대체한다고 보았다. 정리하기 주제 2에서 배운 내용들을 바탕으로 ‘과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자기만의 한 줄 답변을 해 보자. 과학은 이다. 생각 넓히기 풍수지리설이 무엇인지 조사해 보고, 이것 을 ‘과학’이라 할 수 있는지 포퍼, 쿤, 러커토시의 관점에서 말해 보자. 2. 과학에 대한 철학적 접근 25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5 2018-08-31 오후 4:23:27 3 과학을 보는 다양한 시각 학 습 목 표 ㅣ •과학의 역사적 발전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내적 접근과 외적 접근 의 차이와 이들의 상호 보완성을 설명할 수 있다. •과학을 다른 학문과 비교하여 생각해 보고, 과학의 본성이 무엇 인지 설명할 수 있다. 침팬지를 연구한 생물학자 구달의 연구 방법 구달(Goodall, J.)은 학부 및 대학원 교육을 통해 연구 방법을 배우고 견습 과정을 거쳐 과학자 공동체의 한 성원으로 성장하는 일반적인 방식을 따르지 않았다. 구달은 고등학교만 졸업한 채 바로 현장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당연히 침팬지에 대한 기존 연구에 대해 아는 것도 거의 없었고 침팬지 연구를 어떻게 하는 것이 ‘표준적’ 방법인지에 대해서도 무지했다. 그래서 구달은 관찰 대상 동물의 행동을 보다 객관적으로 관찰하기 위해 동물 개체에 번호를 붙여 관찰하는 통상적인 방법 대신, 자신이 관찰하는 침팬지에게 ‘데이비드’나 ‘파 벤’같은 이름을 붙여 감정적 교류와 연대감 등 ‘공감’을 강조하면서 관찰하였다. 이런 객관주의 방법을 따르 지 않는 ‘비표준적인’ 연구 방식은 관련 학계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 구달의 필드 노트 구달이 수행한 연구 방식은 ‘과학적 방법’이라 인정할 수 있는가?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과학적 방법’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이러한 말은 은연중에 우리에게 어떤 지식이나 결정이 합리적이고 타당한 과정을 거쳤다는 이미지를 전달하는 경향이 있다. 과학적 방법이라는 말 속에는 과학 탐구의 규준이 되는 특정한 절차가 존재하고, 합리적 의사 결정을 위해서는 과학적 방법을 따라야 한 다는 암묵적인 느낌이 녹아 있다. 표준적인 과학적 방법이라는 것은 존재하는 것일까? 26 Ⅰ. 과학이란 무엇인가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6 2018-08-31 오후 4:23:28 1 과학사는 어떤 학문인가 과학사는 과학을 하나의 역사적 현상으로 여기면서 그 변천 과정을 이해하고자 하는 휴얼(Whewell, W.; 1794~1866) 학문이다. 최초의 과학사학자라 할 수 있는 휴얼이 등장한 19세기부터 과학사가 연구 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20세기가 될 때까지 과학사의 연구 범위는 물리학 과 생물학에만 국한되었다. 과학사를 바라보는 관점에는 과학사를 ‘합리적 추론의 맥락(실증주의)으로 보는 관 점’, ‘자연을 보는 관점의 변화(사상)로 보는 관점’, ‘사회 문화적 맥락으로 보는 관점’,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려는 관점으로 보는 관점’의 네 가지가 존재한다. 과학의 역사적 발전을 이해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내적 접근법과 외적 접근법이 있다. 영국의 철학자, 과학사학자 내적 접근법은 과학 내용의 논리적 전개 과정을 이해하려는 것이다 과학사의 전통적인 연구 방법인 내적 접근법은 어떠한 과학적 개념이나 이론의 변천 을 과학 내적인 면에서 즉, 과학 내용의 논리적 전개 과정에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다. 내적 접근법은 과학자가 남긴 문헌을 통해, 과학자의 질문과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한 실 험과 사고, 그 과정에서 사용한 이론, 그 결과로 얻어진 새로운 개념이 어떻게 과학의 논리를 구성하는지에 관심을 갖는 연구 경향이라고 볼 수 있다. 내적 접근법을 중요시한 과학사 학자는 1960년대 중반까지 과학사는 내적 접 근법을 중요시하였으며, 『과학 혁명의 구조』로 잘 알려져 있는 과학사학자인 쿤과 코이레, 코언, 웨스트폴 등은 내적 접근을 통해 과학의 역사를 대하던 1 세대 과학사학자들이라 할 수 있다. 내적 접근법에서는 과학이 어떤 철학에 기반을 두는가를 중요시하게 된다. 과학의 역 사를 더듬어 보면, 과학적 이론의 발견이 실험 등을 통한 과학 이론의 논리적 전개에 기 인하기도 하지만, 같은 실험 결과라도 과학자의 사상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보다 궁극적인 과학의 역사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과학자 개인이 영향 받은 사상이나 철학의 실체와 기원을 밝히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대개 내적 접 근을 시도하는 학자들의 경우에는 과학사를 인류의 지성사의 일부분으로 보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그림 3-1 내적 접근법 3. 과학을 보는 다양한 시각 27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7 2018-08-31 오후 4:23:28 외적 접근법은 과학 이론이 나오게 된 사회적 환경을 이해하려는 것이다 내적 접근법이 해당 과학 이론의 배경이 된 철학이나 사상, 자연관과 같은 내적인 요 소에 집중하는 것과는 달리, 외적 접근법은 해당 과학 이론이 어떠한 사회적 환경에서 생산되었는지에 관심을 갖는다. 과학은 사회와 동떨어진 천재 과학자의 지적 유희가 아니며, 과학자는 사회의 일원 이자 그들의 지적 산물인 과학은 바로 그 사회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 사회의 시대적 요구 혹은 필요성과 이데올로기나 시대정신의 영향을 받게 되고, 과학사의 연구 과정에서 이를 살필 필요가 있다는 접근 방식이다. 외적 접근법의 사례 구소련의 헤센은 1931년에 뉴턴의 『프린키피아』가 당시의 항해술이 제기 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씌어졌다 는 충격적인 주장을 한 바 있다. 갈릴레 이가 대포의 탄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 해 투사체 운동을 연구했다든지, 토리 첼리가 산간의 물의 흐름을 조정하기 위해 수력학을 연구하게 되었다는 것 도 이와 유사한 주장이다. 외적 접근은 미국의 사회학자 머튼이 『17세기 영국의 과학, 기술, 사회』에서 17세기 영국에서의 과학 발전은 청교도주의 가치관과 기술, 항해, 전쟁 등 당시의 사회적 요구 에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제기되었다. 이러한 접근은 극단적인 사회적 결정론 의 입장으로 볼 수도 있지만, 1930년대의 학계의 지배적인 시선이었다. 그림 3-2 외적 접근법 사회적 구성주의가 등장하다 1930년대를 주도한 외적 접근법에 이어 1940~50년대에는 내적 접근법이 이를 압도 하였다. 1970년대에 들어 두 접근 방식을 조화롭게 융합할 제3의 접근 방법으로 등장 한 것이 ‘사회적 구성주의’였다. 이 과정에서 이제까지 과학사에서는 알 수 없던 새로운 사실을 많이 발견하게 되었으며, 과학자와 정치·사회의 관계 및 실험과 기구 그리고 이론들 간의 관계 등에 대한 밀도 있는 내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회적 구성주의 학자들은 이러한 분석 결과를 묶어 주는 강력한 축으로 맥락이라는 것을 채택하고 이것의 역할을 강조했다. 사회적 구성주의의 전형을 잘 보여 준 연구는 사회적 구성주의의 사회의 단위 1979년에 출판된 라투르와 울가의 『실험실 생활: 과학적 사실들의 구성』이다. 특히 이 외적 접근을 하는 과학사학자들이 바 라보는 사회의 단위는 미국이나 영국 과 같은 국가 단위나 유럽과 같은 거대 단위를 토대로 하였다. 그러나 사회적 구성론자들은 한 도시 혹은 단체, 심지 어는 연구소나 실험실 단위로 현미경 적 접근을 시도하였다. 들은 과학자도, 과학철학자도, 과학사학자도 아닌 철학·사회학 배경의 학자들이었다. 사회적 구성주의에 대한 여러 가지 논란이 있었지만, 과학사의 내적 접근법과 외적 접근법을 통합하고, 과학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 과학사·철학·사회학을 모두 담 아내는 효과적인 대안이라는 점에서 아직까지 각광받고 있다. 28 Ⅰ. 과학이란 무엇인가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8 2018-08-31 오후 4:23:28 2 과학은 특별한가 과학은 인류의 다른 문화유산이나 학문들과 비교할 때 남다른 ‘그 무엇’이 있는가? 콩트는 자연 과학적 실증주의 방법을 따르는 그 어떤 것도 모두 ‘과학’이 될 수 있다 파이어아벤트(Feyerabend, P. K.; 1924~1994) 고 주장하였다. 즉, 관찰과 사실을 기반으로만 한다면 심리학도 인간의 마음에 대한 ‘과 학’이며, 경제학도 ‘과학’인 것이다. 꼭 이러한 ‘특정한’ 방법이나 ‘철학적 관점’을 취해야만 과학인 것일까? 무정부주의 철 학으로 대표되는 파이어아벤트는 유일한 과학의 방법론이나 가치관이 있는 것이 아니 며, 서로간에 소통 불가능하기 때문에 낫고 못난 것을 판단할 수 없다고 하였다. 예를 들어 점성술도 그 체계 내에서는 정합성을 지니기 때문에 다른 과학의 체계로 합리성을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였다. 그는 저서 『방법에의 도전』에서 방법론적 무정부주 의인 ‘제멋대로의 원리’를 주장하였다. 즉, 무엇이든 ‘과학’이 될 수 있으며 나쁜 과학은 장하석(1967~ ) 없다는 것이다. 파이어아벤트의 이 주장은 수많은 유사 과학들에게 면죄부를 준 것으로 오해되어 많 은 과학자들에게 원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방법론적 다원주의 가치관 은 과학의 역사에서 방법의 틀에 매이지 않고 파격을 시도한 창의적 과정을 통해 과학 이 발전한 것을 의미한 것이었다. 이것도 과학, 저것도 과학……. 파이어아벤트 그래 네가 옳다, 너 역시 옳구나. 황희 정승 그림 3-3 제멋대로의 원리 파이어아벤트가 제시한 무정부주의 철 학 논리는 캠브리지 대학의 과학철학 자 장하석 교수의 다원주의 과학이라 는 관점과 맞닿아 있다. 그는 개별 과학 은 모두 자신만의 실천 체계를 갖고 있 으므로 겸허히 상호 이해와 학습, 협조 를 위한 태도를 지니고 존중해야 한다 고 하였다. 이러한 다원성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상호 교류를 위한 기본적 공 통 언어가 필요하며, 기초적 수학과 측 정 기구, 그리고 단위 등의 공유가 요구 된다고 설명하였다. 모든 학문은 ‘과학’인가 우리나라의 단과 대학 중 ‘사회 과학 대학’이라는 명칭이 붙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사회 과학’이라는 단어는 독일에서 유래했다. 독일에서 ‘과학’의 의미인 ‘Wissenschaft’ 는 ‘학문’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므로 독일 문화에서는 사회 과학은 사회학과 동의어가 된다. ‘과학’이라는 용어가 자연에 대해서 탐구하는 것에만 적용되어야 할지 인간 행동에 대한 탐구에도 적용되어야 하는 것인지 논란이 많지만 19세기 독일에서는 역사 과학, 문예 과학, 언어 과학, 군사 과학, 문화 과학처럼 다양한 ‘과학’이 존재했다. 이 관점으로 볼 때 최근 생겨나는 수많은 ‘과학’들에 대해 이해하기 쉬워진다. 예를 들어 데이터 과 학, 스포츠 과학, 의류 과학, 문화재 복원 과학 등이 좋은 예이다. 3. 과학을 보는 다양한 시각 29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9 2018-08-31 오후 4:23:28 3 과학과 인문학의 소통은 왜 중요한가 과학 기술 문화를 인문 전통과 나누어 보는 관점은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가장 깊은 인상 을 남기고 지금까지도 인용되는 것은 스노의 두 문화 담론이다. 그는 이 강연에서 현대 사회 의 두 문화, 곧 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의사소통 단절이 세계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큰 걸림 돌이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실제로는 인문 계통의 사람들이 과학에 너무 무지한 것에 대해 경종을 울리기 위하여 강연 을 한 것이지만, 현대적 의미의 두 문화 담론은 그림 3-4 두 문화 담론 이제 과학 계통 사람들의 인문 소양 부족에 대해서도 반성하는 소재로 사용된다. 사실 영국의 과학자 겸 소설가 스노(Snow, C. P; 1905~1980)가 행한 영향력 있 는 1959년 리드 강좌의 제목이다. (과학)을 토대로 가치 판단(인문학, 철학)을 하는 것이 과학과 인문학의 융합이며, 지식 의 올바른 방법이다. 『파우스트』를 쓴 괴테는 인문 문화의 사람인가, 아니면 색채론에 빛나는 과학 문화의 뉴턴과 괴테 과학 혁명을 이끌어 낸 거인 뉴턴은 시에 대해 ‘일종의 천재적인 쓸모가 없는 소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대문호이자 동시에 뉴턴과 견 줄만한 광학 연구를 통하여 색채론이 라는 책을 쓴 과학자이기도 한 괴테는 뉴턴의 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응수 했다. 사람인가? 또, 100편이 넘는 경제학 논문을 남긴 멘델레예프는 인문 문화에 밝은 사람 인가, 아니면 주기율표를 만들어 낸 과학 문화 진영의 사람인가? 이렇듯 한 사람의 성 향을, 혹은 어떤 학문의 범주를 인문 문화와 과학 문화로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경우 는 많다. 대학의 학과를 살펴볼 때 통계학과는 인문 문화에 속하는 문과 계열 학과이지만 학 “과학은 시로부터 탄생했다. 시대가 변 하면 과학과 시는 더 높은 수준에서 친 구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생들의 예상과는 달리 실증주의 전통에 빛나는 학과이며, 엄청난 양의 수학을 공부해야 한다. 반면에 과학사 혹은 과학 철학 전공 계열은 ‘과학’이라는 글자가 들어감에도 불 구하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과학 문화 진영인 자연 과학 계열이 아닌 역사·철학· 사회학을 통해 과학을 들여다보는 인문 전통 성향과 맞닿아 있어 놀라게 된다. 이렇듯 ‘과학’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다양한 범주로, 다양한 방법으로 해석되고 적용되 어 왔으며 지금도 우리의 삶 속에서 계속해서 쓰이고 변화되고 있다. 정리하기 주제 3에서 배운 내용들을 바탕으로 ‘과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자기만의 한 줄 답변을 해 보자. 과학은 생각 넓히기 진학을 원하거나 관심이 있는 대학의 학과를 찾아보고 과학이라는 단어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생각해 보자. 다. 30 Ⅰ. 과학이란 무엇인가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30 2018-08-31 오후 4:23:30 단원 매듭짓기 정리하기 포퍼, 쿤, 러커토시, 파이어아벤트의 과학관을 비교하여 정리해 보자. 이해하기 전적 과학 방법론으로서 귀납 추론과 연역 추론이 1. 고 학사를 바라보는 관점들 중 내적 접근법과 외적 접 2. 과 가진 장점과 단점에 대해 설명해 보자. 근법, 그리고 사회적 구성주의는 각각 어떤 차이가 있 는지 설명해 보자. 적용하기 STEAM 활동 준비 서류용 파일, 펀치, 테이프, 색연필, 흰 종이(A4 용지) 과정 ➊ 서류용 파일의 한쪽 면에만 ➋ 서류용 파일을 접은 후, 위 펀치로 구멍을 뚫는다. 와 아래를 테이프로 붙인다. ➌ 흰 종이에 여러 색깔로 원 하는 그림을 그린다. ➍ 그림을 서류용 파일 속에 넣는다. ➎ 다른 사람이 만든 장치와 바꾼 후, 뚫린 구멍으로 보이는 모양과 색깔로 파일 속 그림을 추측해 보자. 결과 및 정리 류용 파일에 구멍을 더 많이 뚫으면 그림 모양을 추측하기 쉬워질까? 그 까닭은 무엇일까? 1. 서 멍으로 전체 그림을 추측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은 무엇이며, 과학에서 담당하는 역할은 무엇일까? 2. 구 멍으로 보이는 모양으로 전체 그림을 추측하는 것과 과학자의 탐구 활동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3. 구 학자는 과학적 이론을 발견하는 것일까, 발명하는 것일까? 다음 보기 중에서 자신의 생각과 가장 비슷한 것을 고르 4. 과 고 그 까닭을 설명해 보자. ➊ 과학자들은 이론을 발견한다. 왜냐하면 이론은 드러나지 않았을 뿐 언제나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➋ 과학자들은 이론을 발견한다. 왜냐하면 이론은 실험적인 사실에 근거를 두기 때문이다. ➌ 과학자들은 이론을 발견한다. 하지만 이론을 발견하는 방법은 발명한다. ➍어떤 과학자들은 우연히 이론과 마주치므로 이론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과학자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에서 이론을 발 명하기도 한다. ➎ 과학자들은 이론을 발명한다. 이론은 과학자들이 발견한 실험적인 사실에 대한 해석이기 때문이다. ➏ 과학자들은 이론을 발명한다. 이론은 사람의 머릿속에서 창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➐ 과학자들은 이론을 발명하지도, 발견하지도 않는다. 단지 일정한 형식으로 정리할 뿐이다. Ⅰ단원 매듭짓기 31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31 2018-08-31 오후 4:23:30 4 고대의 과학 5 중세의 과학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32 2018-08-31 오후 4:23:34 물질의 근본은? 우리는 방정식도 풀었어. 하하하 지금 사용하고 있는 달력을 우리가 처음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물 공기 불 흙 원자 우주의 중심은 지구야. 아니야. 태양이 중심이야. 쓸데 없이 과학은 무슨. 로마로 통하는 길이나 잘 닦아야지. 다음에 번역할 책도 아리스토텔레스 것이 맞지? 시대 설명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33 공부 좀 그만하고 놀자. 겨우 살려낸 과학을 누가 다시 살리나……. 이번 페스트로 우리 마을에선 저만 살아남았어요.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과학은 실용적인 필요에 따라 탄생했고, 국가 주도로 발전했다. 과학이 과학다워진 것은 고대 그 리스의 자연 철학자들에 의해서이다. 이들은 관찰과 추론으로 우주와 물질의 본질을 탐구했고 과학에 추상성을 더했다. 과학은 국가의 이익이 아니라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인간 본연의 지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행해졌다. 그러나 헬레니즘 시대를 보내고 로마 제국이 무너지면서 유럽의 과학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다. 다행히 이슬람 제국이 그리스의 과학을 흡수하고 발전시켰다. 유럽 의 과학이 잠시 그 명예를 되찾은 것은 중세 후반기였다. 2018-08-31 오후 4:23:38 4 고대의 과학 학 습 목 표 ㅣ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문명, 그리고 고대 그리스 문명의 특징을 이해하고, 이들 문명에서 과학이 어떻게 생겨났고 어떤 역 할을 했는지 설명할 수 있다. 별을 보고 달력을 만든 고대 이집트인들 오늘을 시작으로 1년을 365일로 나누면 되겠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해마다 특정한 시기가 되면 나일강이 범람했다. 그럴 때면 상류에서 많은 양의 흙이 강물에 섞여 내려와 하류의 삼각주를 덮었고 거기에 곡식을 심으면 농사가 아주 잘되었다. 또한, 그 무렵 태양이 뜨기 직전에는 동쪽 지평선에 시리우스가 나타났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러한 일이 매년 반복되는 것을 경험으로 알았고, 이를 기준으로 삼아 인류 최초로 달력(태양력)을 만들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기원전 2787년 무렵 인류 최초로 1년을 365일로 하는 달력(태양력)을 만들어 사용했 다. 고대 이집트의 달력은 항성인 큰개자리의 시리우스와 태양이 동시에 동쪽 지평선에 떠오르는 날을 한 해 의 첫 번째 날로 정했기 때문에 같은 시대 다른 문명권의 달력에 비해 매우 정확했다. 이집트인은 이날을 기 점으로 1년을 12개월, 1개월을 30일로 나누었고 여기에 달에 속하지 않는 5일을 추가했다. 달력의 발명은 농업의 발전을 가져와 곡물의 생산량을 늘려 주었다. 그리고 관리의 임기나 세금을 내는 기간을 일정하게 하여 사회가 합리적으로 움직이도록 해 주어 이집트를 당시 최고의 문명 국가로 발전하게 해 주었다. 또한,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기록하고 분석한 것은 천문학이 발달하는 계기가 되었다. 모든 문명권에서 하루, 한 달, 일 년 등의 시간을 정할 때 천체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삼았는데 그 까닭은 무엇일까? 34 Ⅱ. 고대와 중세의 과학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34 2018-08-31 오후 4:23:40 1 서양 과학의 뿌리,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과학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과학이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이보다 훨씬 앞선 시대에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문명권에 상당한 수준의 과학이 있었다. 이들의 과학은 고대 그리스로 전해졌고 서양 과학의 뿌리가 되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과학은 실용적이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은 시간과 공간에 차이를 두고 발전했으나 닮은 점 이 많다. 특히 과학 분야가 그렇다. 두 문명의 과학은 대부분 일상생활과 경제에 관련 메소포타미아 문명 ‘메소포타미아’는 ‘두 강 사이’라는 뜻 으로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을 가 리킨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에서 최초 의 문명을 일으킨 것은 기원전 4000년 무렵 지금의 이라크 지역에 살던 수메 르인들이다. 이들은 문자와 바퀴를 발 명했고, 도량형을 통일시켰다. 이후 바 빌로니아인과 아시리아인들이 차례로 주도권을 잡고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발전시켜 나갔다. 된 것이 많아 매우 실용적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천문학과 수학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는 농업을 기반으로 한 문명이었으므로 농사 일정에 잘 맞는 달력이 필요했다. 또한, 국가의 의식 행위나 상인들의 경제 활동 그리고 개인들의 시간 약속을 위해서도 필요했다. 그래서 달력을 만들었는데 태양과 달의 위치와 움직임 을 기준으로 삼았다. 정확한 달력 제작을 위해 천체의 움직임을 꾸준히 관측하고 또 별 로 점을 치는 점성술이 중요하게 취급되면서 천문학이 자연스럽게 발전했다. 그림 4-2 수메르인이 발명한 바퀴 한때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주인공이었던 바빌로니아인들은 태양과 달의 주기를 정확 하게 알았고 하지와 동지, 춘분과 추분의 개념을 이해하고 사용했다. 일식과 월식이 일 어나는 원리를 이해하고 다음 일식과 월식이 일어나는 때와 규모를 예측할 수 있었다. 또한, 태양이 지나가는 길인 황도의 개념을 가장 먼저 알았고, 황도 주변에 있는 12 개의 별자리로 황도 12궁을 만들어 12개월과 일치시켰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천문학은 메소포타미아에서 발달한 60진법과 잘 어울렸는데 나중에 고대 그리스의 자연 철학자에게 전해져 천문학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집트 문명 이집트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문명보다 조금 늦은 기원전 3200년 무렵 나일 강 삼각주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기원 전 332년 무렵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 이후 헬레니즘 문명이 등장 할 때까지 유지되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여신 누트가 하늘을 받치고 있으며 죽은 파라오는 별이 된다는 등 의 신화적 믿음이 강했기 때문에 이집트의 천문학은 메소포타미아의 천문학에 비해 구체 적이지 못하고 다양성이 부족하였다. 그러나 고대 문명권 중 가장 과학적인 달력을 사용한 것은 이집트 문명이었다. 고대 이집트의 달력은 카이사르에 의해 로마로 수입되어 율리우스력이 되었고, 이 달력은 오늘날 전 세계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그레고 리력의 기원이 되었다. 그림 4-1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천문학 별자리가 새겨진 점토판(좌) 황도 12궁 중 사자자리와 전갈자리가 새겨진 석회암 경계석(우) 그림 4-3 이집트 신화의 여신 누트 그림 4-4 고대 이집트의 달력 4. 고대의 과학 35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35 2018-08-31 오후 4:23:43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대수학이 발달하고, 이집트 문명은 기하학이 발 달한 까닭 메소포타미아는 지리적으로 교류가 활 발한 곳에 있어서 상업이 발달하여 계 산에 필요한 대수학이 발달했다. 반면 에 이집트에서는 나일강이 범람한 후 에 농지를 다시 구획해야 했으므로 측 량술과 그 기초가 되는 기하학이 발달 했으며, 이는 내세를 위한 피라미드와 신 전 등 대형 건축 공사에도 이용되었다. 수학도 마찬가지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수학 중에서 계산술이 발달했고, 이 집트에서는 기하학이 발달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에서는 농업의 발달로 잉여 생산물이 생기자 이를 사고팔거나 분배하기 위해서 숫자를 발명하였고, 수천 년 전부터 자릿값의 개념을 포함한 숫자 체 계를 사용하여 계산술이 발달하게 되었다. 메소포타미아인들은 10진법보다는 주로 60진법을 사용했는데 60진법을 기초로 한 수표를 만들어 역수나 제곱수, 세제곱수 등이 들어 있는 복잡한 계산을 했다. 60진법은 후에 고대 그리스의 자연 철학자들이 천문학 분야에서 사용했고, 지금도 경도, 위도, 원 의 각도, 시간 등에서 사용하고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 파피루스를 만드는 모습 또한, 그들은 몇몇 형태의 방정식을 푸는 방법을 알고 있었고, 이를 이용하여 토지의 넓이, 곡식을 보관하는 창고의 크기, 토목 공사에 사용할 모래나 자갈의 양을 계산했다. 피타고라스 정리를 이해했으며, 원주율 π의 값으로 3을 사용했다. 이집트에서는 나일강의 범람으로 토지 경계선이 지워졌을 때 그 경계선을 정확하게 복구하거나, 피라미드, 신전 등의 대형 건축물을 지을 때 측량을 정확하게 하기 위해 기 고대 이집트에서는 나일강변에서 자라 는 파피루스의 줄기를 이용해 같은 이 름의 파피루스(종이와 비슷한 것)를 만 들어 기록 매체로 이용하였다. 린드 파피루스 하학이 특히 발달하였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기록한 파피루스를 보면 이들은 직사각형과 삼각형, 사다리꼴의 면적을 계산할 줄 알았다. 뿐만 아니라 원의 면적과 원기둥의 부피를 계산했고, 정사각 뿔인 피라미드 부피까지 계산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집트인들은 10진법을 사용했다. 기원전 2000년 무렵에 기록된 파피루스에 ‘16의 제곱근은 4이다.’ 등의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제곱근 계산도 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차 방정식과 비교적 간단한 2차 방정식을 풀 줄 알았다. 기원전 1600년 무렵에 쓴 것으로 고대 이집트인들의 높은 수준의 기하학이 기록되어 있다. π = 3 우리는 원주율 π 의 값으로 3을 사용했어.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숫자를 아라비아 숫자로 나타낸 것 우린 정사각뿔의 부피까지 계산할 줄 알았지. 그래서 피라미드도 지을 수 있었어. 고대 이집트의 숫자 그림 4-5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수학 36 Ⅱ. 고대와 중세의 과학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36 2018-08-31 오후 4:23:43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는 국가가 과학 발전을 주도했다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에서는 과학이나 수학에서 의미 있는 업적을 남긴 개인의 이름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것은 과학의 발전이 개인의 학문적인 만족을 위해서 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추구되었기 때문이다. 국가는 지도자들의 권력과 사회 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전문 지식인을 교육시키고 고용하여 과 학과 수학의 발전을 도모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이 남긴 점토판에는 인공 수분 등의 초보 단계의 생물학 지식 이 기록된 것뿐만 아니라, 동물의 지방으로 고약을 만들고, 감기나 위장병, 그리고 안과 질환을 치료한 의학과 관련된 내용이 기록된 것들도 발견되었다. 또한, 국가에서 연금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이집트처럼 파피 루스 원료가 되는 식물이 잘 자라지 않 았으므로 다른 기록 매체를 사용했다. 세모 모양의 뾰족한 갈대 줄기나 나무 막대기로 부드러운 점토판 위에 문자 를 기록한 다음 말려서 사용했다. 지금 까지 약 3만 개의 점토판이 발견되었다. 술을 지원했다는 기록도 있다. 한편, 이집트에서는 사람이 죽은 후에도 다른 세상에서 계속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는 믿음으로 미라를 만드는 풍습이 있었기 때문에 의학이 좀 더 발달했다. 미라를 만드 는 과정에서 해부학이 발달하여 인체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의학이 발달하는 바탕이 되었다. 덕분에 이집트에는 다양한 질병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안과, 내과, 외과, 치과, 산부인과 등 전문의 시스템이 일찍부터 갖추어져 있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과학은 백과사전식으로 정리되는 수준에 머물렀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을 보면 약 100종의 동물, 250종의 식물을 분류하여 이 름과 특징을 기록했지만 그 이상의 과학적 정보는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두 문명권의 과학은 자연 현상을 단순한 수준에서 정리하여 목록으로 만들고 분류하는 수준에 그쳤 다. 그러나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두 고대 문명권의 천문학과 수학, 의학과 기초적인 생물학과 화학은 나중에 고대 그리스 자연 철학자들에게 전수되어 서양 과학의 토대가 되었다. 과학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고 추상성이 내포된 과학 활동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고 대 그리스 시대의 자연 철학자들에게서 볼 수 있다. 그림 4-6 미라를 넣었던 황금 관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문자 1. 메소포타미아 문자 기원전 4000년 전에 수메르인이 사용한 상형 문자가 기원이다. 나중에 쐐기 모양의 설형 문자로 발전 하여 표음 문자의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 뼈나 갈대 줄기로 점토판 위에 문자를 기록하고 불에 구워 사용 했다. 페니키아인들에게 전해져 단순화되었고 여기에 모음이 보태져 알파벳의 모태가 되었다. 2. 이집트 문자 기원전 3000년~400년 사이에 사용되었으며 신성 문자, 신관 문자, 민중 문자, 콥트 문자 등 4종류가 있다. 신성 문자는 돌이나 나무에 새겨 사용한 상형 문자로 가장 초기의 문자이다. 이후에 등장한 신관 문 자는 주로 행정 및 종교에 사용했고, 민중 문자는 주로 지식층이 사용했다. 콥트 문자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이후 그리스 문화가 이집트에 들어오면서 사용했다. 이집트 문자는 로제타석의 발견과 샹폴리옹의 해독에 의해 널리 알려졌다. 그림 4-7 로제타석 4. 고대의 과학 37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37 2018-08-31 오후 4:23:44 2 그리스 시대에 물질의 근본 원소 를 탐구한 사람을 과학자가 아니고 철 학자라 부른 까닭 과학자라는 명칭은 19세기에 들어와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모두 자 연 철학자라고 했다. 뉴턴이나 갈릴레 이도 자연 철학자로 불렸다. 이러한 전 통은 고대 그리스 자연 철학자들에게 서 왔는데 이들은 자연을 설명할 때 사 물의 근본까지 함께 말했기 때문이다. 과학적 사고의 시작, 고대 그리스의 과학 기원전 6세기 무렵 그리스에서 이전과는 다른 관점과 사고 방식으로 우주와 자연을 탐구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우주와 자연을 설명하기 위해 신의 행위나 비자 연적인 요소를 끌어들이지 않고 자연 그 자체를 탐구했다. 우리는 그들을 자연 철학자 라 부른다. 고대 그리스 사회는 개인의 정신적 자유와 창조적 행위를 존중하였다 진정한 의미의 과학이 고대 그리스에서 출현하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사회적 배경이 있었다. 페니키아 알파벳 첫째, 그리스 사회의 특별한 정치 체제이다. 그리스인들은 기원전 6세기에 민주적인 정부 형태를 갖추었고, 덕분에 시민들은 일찌감치 사상의 자유를 누려 사고의 폭이 넓 고 유연했다. 둘째, 곳곳에 학교가 있었다. 그리스의 도시 국가들은 민주주의 정신에 입각한 사회 운영에 필요한 법과 토론 기술 등을 가르치는 학교를 운영했다. 여기서 그리스 문명을 이끄는 고급 지식인들을 배출했다. 셋째, 페니키아의 알파벳을 수용하여 발전시켰고 파피루스를 사용했으므로 지식인들 의 글쓰기가 보편화되었다. 이것은 그리스에서 자연 철학이 발달하고 이웃 나라와 후 세에 전파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페니키아 알파벳은 원시 가나안 문자 등의 영향을 받아 레반트 지역에서 만 들어진 문자로 페니키아 사람들의 교 역 활동을 통해 지중해 연안 곳곳에 널 리 퍼져 사용되었다. 넷째, 주변 지역과 활발한 문화 교류를 했다. 특히 아시아권 사람들과의 문화 교류는 그리스인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여 지적 활동을 왕성하게 했다. 다섯째, 그리스는 노예제가 운영되었다. 그리스 시민들은 노예들 덕분에 단순한 노동 행위에서 벗어나 추상적인 사고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사회적 배경으로 고대 그리스에는 개인의 정신적 자유와 창조적 행위를 그림 4-8 고대 그리스 사회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이를 토대로 자연 철학을 발전시켰다. 38 Ⅱ. 고대와 중세의 과학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38 2018-08-31 오후 4:23:47 고대 그리스의 자연 철학자들은 물질의 근본을 탐구하였다 고대 그리스의 자연 철학은 이오니아 지방의 철학자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들은 세계 가 변하지 않는 하나의 근본 원소로 이루어졌으며, 이들의 다양한 비율로 이 세상이 형태 를 갖추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탈레스는 만물의 근본 원소를 물, 아낙시만드로 스는 아페이론(무한자),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라고 주장했다. 반면에 피타고라스는 만물의 최초의 자연 철학자 탈레스는 자연을 신이나 자연의 신비 가 아니라 물질로 설명하려는 첫 시도 를 하였기 때문에 최초의 자연 철학자 라고 불린다. 근본 원소는 숫자이며 우주와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숫자로 설명할 수 있다는 다소 아페이론(apeiron) 추상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그리스어로 무한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근본 물질 은 실체가 정해져 있지 않으며, 사라지 지 않고 무한히 운동하는 것이어야 한 다.’라고 생각하고 이것을 아페이론이 라 불렀다. 그리스 자연 철학자들의 물질의 근본에 대한 탐구는 기원전 5세기 무렵 엘레아, 아테 네, 시칠리아 등으로 확장되었다. 대표적인 인물로 크세노파네스, 헤라클레이토스, 엠페 도클레스 등이 있다. 크세노파네스는 물질의 근본 원소를 흙, 헤라클레이토스는 불, 엠 페도클레스는 물, 불, 공기, 흙의 네 가지라고 주장했다. 만물의 상태를 변화시키는 근본적인 것이 바로 불입니다. 따라서 불이 물질의 근본 원소이지요! 흙은 가장 안정적이며, 우리를 지탱해 주는 땅을 구성합니다. 불안정하고 모호한 공기나 물은 근본 원소가 될 수 없어요! 우주의 모든 것은 숫자로 설명할 수 있는데……. 그림 4-9 고대 그리스 자연 철학자들의 물질관 공기가 엷어지면 불이 되고, 진해지면 바람이 되고, 더 진해지면 구름이 되고, 또 물이 됩니다. 그러다가 다시 흙이나 돌이 됩니다. 다른 물질은 모두 공기에서 나옵니다! 모든 생명체는 물이 있어야 삽니다. 따라서 만물의 근본 원소는 물입니다. 헤라클레이토스 (Heraclitus of Ephesus; B.C. 6세기 전후) 크세노파네스(Xenophanes; B.C. 570~B.C. 475) 피타고라스(Pythagoras; B.C. 570?~B.C. 495?) 모든 물질은 물, 불, 공기, 흙이라는 네 가지 원소들의 합성물이며, 사물은 이 기본 원소의 비율에 따라 서로 형태 를 바꿀 뿐 어떤 사물도 새로 탄생하거 나 소멸하지 않는 것입니다. 엠페도클레스 (Empedocles; B.C. 490~B.C. 430) 아낙시메네스(Anaximenes; B.C. 585~B.C. 528) 탈레스(Thales; B.C. 624?~B.C. 546?) 4. 고대의 과학 39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39 2018-08-31 오후 4:23:48 시대를 앞선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은 약 2,000년 후의 19세기 때 돌턴이 주장한 원자론 과 비슷할 정도로 앞섰다. 생각이 너무 진보적이어서 당시에는 크게 인정받지 못했고, 매우 오랜 시간 동안 사상의 맥 이 끊겨 있었다. 그리스의 초기 자연 철학자들은 감각으로 인식한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 러나 기원전 5세기경에 이런 경향에 반기를 드는 인물이 나타났다. 엘레아 출신의 파르 메니데스였다. 그는 오로지 로고스 즉, 이성만을 믿을 수 있고 감각은 사람을 속이므로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을 계기로 철학자들 사이에서 감각적 인식과 순수 사유를 두고 인식론 논쟁이 시작되었다. 한동안 감각적인 인식보다 순수 사유가 우세했다. 데모크리토스는 초기 고대 그리스 자연 철학자들 중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모든 물질은 원자로 구성되었다는 원자론을 주장했다. 그는 원자는 모양, 위치, 크 기가 각각 다르며 무게에 따라 원운동, 소용돌이 운동, 측면 운동 등을 한다고 했다. 가 벼운 원자는 바깥으로, 무거운 원자는 안쪽으로 모이는데 안으로 모인 원자는 땅을, 바 깥으로 향한 원자들은 대기를 이룬다고 주장했다. 원자가 없는 텅 빈 공간을 진공이라 고 했고 가장 정교한 원자가 모여 인간의 정신을 이룬다고 했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 론은 유물론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히포크라테스는 미신과 종교, 철학에서 의학을 분리하여 의사라는 전문 직업을 만든 히포크라테스의 의학관 히포크라테스는 모든 질병에는 신체적 인 이유가 있고 어떤 병도 신의 뜻과 상 관없다고 주장했다. 당시 그리스에서 는 간질을 신의 간섭으로 일어나는 발 작이라고 하여 신성한 병으로 여겼는 데 히포크라테스는 이를 두고 ‘신성한 병은 어떤 병보다 신성하지 않고 자연 적인 이유가 있다. 사람들이 신성하다 고 하는 이유는 그 병에 익숙하지 않고 신기해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인물이다. 그는 질병의 원인을 인간의 몸에서 찾았고 신의 간섭을 배제했다. 히포크라 테스는 인체는 물, 불, 공기, 흙의 네 가지 원소로 되어 있고 인간의 신체 활동은 이들 네 가지 원소에 상응하는 혈액, 점액, 황담즙, 흑담즙에 의해 좌우된다고 생각했다. 이 네 가지 액체의 조화가 깨졌을 때 질병이 생긴다고 주장했는데 이를 4체액설이라 한다. 그는 ‘병을 낫게 하는 것은 자연이다.’라는 믿음으로 인체가 스스로 몸을 회복하도록 하 는 치료법을 주로 사용했다. 플라톤 이전의 자연 철학자들은 주로 물체의 궁극적인 구성 요소가 무엇인지를 규정 하고 이것들의 결합과 분리로써 자연의 변화를 설명하고자 하였다. 사유와 존재(본질)는 동일한 것이다.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B.C. 515~B.C. 450?) 만물의 근원은 원자와 공허이다. 데모크리토스(Democritos; B.C. 460?~B.C. 370?) 병을 낫게 하는 것은 자연이다.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B.C. 460?~B.C. 377) 그림 4-10 고대 그리스의 자연 철학자 40 Ⅱ. 고대와 중세의 과학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40 2018-08-31 오후 4:23:49 서양 문명의 두 기둥,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기원전 4세기부터 고대 그리스 철학의 중심지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가 활동한 아테네였다. 이 중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대조적인 자연 철학 사상 은 서양 과학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플라톤은 우주와 자연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졌다. 그는 신이 만든 우주와 자연은 완벽하고 질서 정연해야 하므로 불변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 소크라테스는 왜 자연 철학자의 명단에서 빠져 있을까 소크라테스의 관심사는 우주와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었다. 그는 모든 것은 신 이 창조했고, 만물이 생겨나고 변화하 는 것은 신의 지혜와 목적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지만 실제로 우주와 자연은 늘 변했으므로 플라톤은 이에 맞는 사상을 제시해야 했다. 그는 우리가 눈으로 보는 우주와 자연의 변화는 참된 것이 아니며 그 너머에 있는 이데 아 세계가 진짜라고 주장했다. 이를 플라톤의 이데아론이라 한다. 플라톤은 우주와 자연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수단으로 인간의 감각적 경험을 배제한 수학과 기하학을 들었다. 수학과 기하학은 논란의 여지가 없이 명쾌하고 시간을 초월 하여 순수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세운 아카데미아의 정문에 ‘기 하학을 모르는 자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라는 문구를 적어 놓았다고 한다. 플라톤은 엠페도클레스처럼 우주를 구성하는 근본 물질로 4원소설을 받아들였다. 그 는 4원소를 간단한 정다면체로 설명하고자 하였다. 불은 정사면체, 흙은 정육면체, 공 기는 정팔면체, 물은 정이십면체라고 보았다. 그리고 우주는 정십이면체라고 보았다. 동굴의 비유 플라톤은 우리가 보는 현상의 세계는 동굴 안의 그림자에 불과하며, 동굴 밖 의 세계가 참된 실재인 이데아의 세계 라고 보았다. 동굴 안의 죄수들은 현상의 세계에 살 고 있는 우리이며, 참된 세계를 보려면 동굴 밖으로 나가 태양을 보아야 한다 고 생각하였다. 동굴 밖의 태양은 우리로 하여금 만물 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근원인 선의 이 데아를 상징한다. 플라톤의 이데아론(동굴의 비유) 플라톤(Platon; B.C. 427?~B.C. 347?) 정사면체 (불) 플라톤의 다면체 정육면체 (흙) 정팔면체 (공기) 정이십면체 (물) 정십이면체 (우주) 정다면체와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원소를 대응시켰다. 그림 4-11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4원소설 4. 고대의 과학 41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41 2018-08-31 오후 4:23:49 플라톤이 이데아를 내세우며 추상성을 강조했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감각으로 파악 되는 물질 세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현실성을 강조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의 감각 기관을 통해 얻은 정보를 상식에 비추어 해석하고자 했다. 그는 감각하기 어려운 이데 아론이나 원자론 등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론 - 자연 운동 과 강제 운동 아리스토텔레스는 ‘천상계에서는 원운 동, 지상계에서는 상하 수직 운동이 자 연 운동이고, 그 밖의 운동은 비자연 운 동 또는 강제 운동이다.’라고 하였다. 또 ‘지상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대부분 의 운동은 강제 운동인데 동물의 운동 과 물체의 운동을 모두 포함한다.’라고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와 자연에 대한 접근법은 이전과 많이 달랐다. 그는 추상적인 원리를 제시하기보다는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변화를 정리하고 분류하여 목록으로 만들었다. 이전의 자연 철학자들이 새로운 현상을 깊이 사색하여 하나의 원리로 이론 화하고자 했다면 그는 대상을 체계적으로 관찰하여 그 결과를 분석하고 정리하는 것에 초점을 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 최고의 종합 자연 철학자로 천문학, 역학, 동물학, 식물학, 기 상학 등 매우 다양한 영역에 관심을 두고 탐구하여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그의 사상과 저서는 라틴어, 히브리어, 영어, 아랍어, 시리아어 등으로 번역되어 각 나라로 전파되었고 중세의 유럽과 이슬람 철학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쳤다. 탐구 활동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과 물질관 조사 토론 아리스토텔레스는 전 생애 동안 자연 철학의 주요 주제들을 체계적이고 광범위하게 연구했고, 또한, 방대 한 글을 남겼다. 그의 우주관과 물질관은 코페르니쿠스 이전까지 2,000년 가까이 서양 과학을 주도하였다. 다음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과 물질관이다. 우주관 물질관 불 건조함 따뜻함 흙 공기 습함 우주의 중심에는 움직이지 않는 지구가 있다. 천상계와 지상계가 엄격히 구분되는데 천상계는 불변이고 완전하며, 지상계는 변화하며 불완전하다. 차가움 물 물질에는 따뜻함과 차가움, 건조함과 습함의 서로 반대되는 네 종류의 특성이 있 다. 근본 원소는 물, 불, 공기, 흙의 네 가지 이다. 특성과 근본 원소가 짝을 이루어 물질을 이룬다.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les; B.C. 384~B.C. 322) 과정 1.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과 물질관 중에서 오늘날 오류로 판명된 것에는 무엇이 있는지 조사해 보자. 2. 아리스토텔레스의 오류는 어떤 점에서 잘못되었는지 토론해 보고, 오류를 바로잡아 정리해 보자. 42 Ⅱ. 고대와 중세의 과학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42 2018-08-31 오후 4:23:51 3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의 과학 기원전 322년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상을 떠난 후 찬란했던 고대 그리스 문명도 한 시 대를 마감했다. 뒤를 이어 헬레니즘 문명과 로마 문명이 차례로 나타났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동서양 문명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과학이 발전했다 헬레니즘 문명은 고대 그리스 문명과 오리엔트 문명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발 전한 것으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해 시작되었다.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부하 장군들이 제 헬레니즘 문명 헬레니즘이란 그리스인들이 자신을 지 칭하는 헬렌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중동과 서남 아시아 지역을 정복하면서 그곳 에 그리스 문화를 전파하고 그 지역의 문화와 융합시켜 세계화된 문화를 탄 생시켰는데 이를 헬레니즘 문명이라고 일컫는다. 알렉산드로스 모자이크 국을 세 개의 왕국으로 나누어 다스렸다.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아시아의 셀 레우코스 왕조, 마케도니아의 안티고노스 왕조가 그것이다. 이들은 각각 헬레니즘 문명을 발전시켰는데 이 중에서 가장 먼저 강력한 중앙 집권을 실현한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자연 철학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프 톨레마이오스 1세와 2세가 의욕적으로 알렉산드리아에 도서관과 동물원 부속 학술 연 구 기관인 무세이온 등을 설립하고 전국에서 약 100명에 이르는 학자들을 모아 그들의 기원전 150년 무렵 제작된 모자이크 작품으로 기원전 333년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페르시아 다리우스 3세와의 싸 움을 표현한 것이다. 연구를 적극적으로 지원했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이집트의 왕실로부터 급여를 받으면 서 연구에 전념했고, 뛰어난 학자들이 많이 나왔다. 헬레니즘 시대에 활약한 대표적인 학자로 지리학자 에라토스테네스, 천문학자 아리 스타르코스와 히파르코스, 수학자 유클리드와 아폴로니오스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의 연구에서 서양 과학의 기초가 되는 뛰어난 업적들이 나왔고 학문은 천문학과 지리학, 수학과 역학 등으로 세분화되어 발전했다. 무세이온(Mouseion) 그림 4-12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기원전 300년 무렵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세운 고대 최대의 도서관 으로, 부속 학술 기관인 무세이온과 함께 헬레니즘의 학문 연구에 큰 역할을 했다. 장서는 파피루스 두루마리로 70만 권에 달했다고 한다. 카이사르에 의해 건물의 주요부가 소실된 후, 이것을 이교의 시설로 간주한 크리스트교 세력에 의해 4세기 말에 파괴되었다. 고대 헬레니즘 시대의 학술 연구소로 특 히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알렉산드리 아에 세운 것이 유명하다. 지중해 주변 여러 나라에서 많은 학자가 초청되어 학 예의 중심지가 되었다. 본래는 학술과 예술을 관장하는 여신 무사(영어로는 뮤즈 Muse)의 신전을 뜻하며, 영어로 박물관ㆍ미술관을 의미하는 museum 의 어원이다. 4. 고대의 과학 43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43 2018-08-31 오후 4:23:52 프톨레마이오스는 천체의 운동을 수학적인 방법으로 설명한 『천문학 집대성』을 저술 했다. 후에 『알마게스트』로 알려진 이 책에서 프톨레마이오스는 지구 중심설과 천체 불 변성을 강조했다. 갈레노스는 4명의 로마 황제의 의사를 역임할 정도 뛰어난 의술을 가졌다. 그는 히포 크라테스의 4체액설을 믿었으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돼지를 해부하여 발성 기관이 뇌 그림 4-13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 스트』 에 의해 조절된다는 것을 시연했다. 로마 제국 시대의 과학기술은 실용적이었다 갈레노스 해부학 기원전 30년 무렵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로마에 패한 후 헬레니즘 시대는 막을 내리고 로마 문명이 시작되었다. 로마인들은 고대 그리스 문명과 헬레니즘 문명을 더 이상 발전시키지 못했고, 특히 자연 철학은 전반적으로 쇠퇴의 길을 걸었다. 디오스코리데스의 약초학, 플리니우스의 박물학 등으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했다. 갈레노스 시대에 인간의 해부는 금지 되었으나 갈레노스는 원숭이와 돼지를 해부하여 얻은 지식을 인간에게 적용 했다. 이렇게 연구된 인체에 대한 지식 은 16세기까지 사용되었다. 디오스코리데스는 1세기 무렵에 활동한 식물학자로 『약물에 대하여』라는 저서를 남 겼다. 그는 그리스 문명의 약초학을 토대로 독자적인 조사와 관찰을 더해 수백 종의 약 용 식물을 연구하였다. 16세기까지 그의 책은 최고의 약초학 서적으로 유용하게 읽혔 다. 또한, 수은과 황의 화합물에서 수은을 분리하고, 아세트산염을 만드는 방법을 발견 하기도 했다. 로마 시대의 과학 수준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책으로 『박물지』를 들 수 있다. 『박물지』 는 37권으로 된 일종의 백과사전으로 군인이며 박물학자였던 플리니우스가 썼다. 이 책은 여러 분야의 잡다한 지식을 총정리한 것으로 새로운 연구는 거의 없고 오류가 많 았다. 로마가 이전 시대의 지적 유산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후세에 넘겼는지를 상징적으 그림 4-14 플리니우스의 『박물지』 그림 4-15 로마 제국의 수도교 로마 제국은 머나먼 수원지에서 도시 나 마을의 공중 목욕탕, 공중 화장실, 분수, 사유지로 수돗물을 공급하기 위 하여 다양한 수도교를 지었다. 로 보여 준다. 로마 시대의 부실한 자연 철학 연구는 중세 때 자연 철학이 헬레니즘과 그 이전의 시 대처럼 활발하게 발전하지 못한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정리하기 고대 그리스 자연 철학자들은 수백 년 동안 물질의 근본 원소에 대한 논쟁을 했는데 각각 어떤 주장을 했는지 다음 단어들을 넣어 정리해 보자. 생각 넓히기 고대 그리스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졌던 근본 원소 논쟁은 로마 시대, 이슬람 시대, 중세 동안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크세노파네스 에는 거의 행해지지 않다가 과학 혁명 이후에 다시 벌 헤라클레이토스 엠페도클레스 데모크리토스 아리스토텔레스 어지기 시작했는데 그 까닭을 토의해 보자. 44 Ⅱ. 고대와 중세의 과학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44 2018-08-31 오후 4:23:53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 자연 철학자들 에라토스테네스 (Eratosthenes; B.C. 275~ B.C. 194?) 지구를 구체로 생각하고, 두 지점 간의 태양 고도 차와 거리로 지구 둘레의 길 이를 처음으로 계산했다. 아르키메데스(Archimedes; B.C. 287?~B.C.212)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부력), 지레의 원리를 발견하고, 원주율 값과 곡선으로 둘러싸인 도형의 넓이를 계산했다. 유클리드(에우클레이데스) 아리스타르코스 (Euclid; B.C. 326?~B.C. 265?) (Aristarchos; B.C. 310?~B.C. 230) 기하학 책인 『원론』을 썼고 수학의 공리 개념을 도입했다. 코페르니쿠스보다 약 2,000년 앞서 태양 중 심설(지동설)을 제시하고, 지구와 태양 사이 의 거리를 최초로 계산했다. 히파르코스 아폴로니오스 (Hipparchos; B.C. 190?~B.C. 120?) (Apollonius; B.C. 262?~B.C. 190?) 지구의 경도와 위도의 개념을 발전시켰다. 지구 와 달의 거리를 비교적 정확하게 계산했고, 별들 을 밝기에 따라 여섯 개의 무리로 분류했다. 원뿔을 여러 각도로 잘라서 얻 어지는 포물선, 타원, 쌍곡선 등의 원뿔 곡선을 연구했다. 4. 고대의 과학 45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45 2018-08-31 오후 4:23:54 5 중세의 과학 학 습 목 표 ㅣ •중세 전반기에 유럽의 과학은 퇴보하고 이슬람의 과학이 발전하 게 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중세 후반기에 유럽의 과학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아리스토텔레 스의 자연 철학을 비롯한 그리스 고전과 이슬람 문화, 그리고 대 학 등이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설명할 수 있다. 연금술과 과학의 발전 연금술은 중국, 인도, 이집트 등에서 각각 독립적으로 발생했다. 그중에서 이집트의 연금술이 그리스와 이 슬람 문화권에서 발전했다가 11세기 무렵 유럽으로 들어와 서양의 연금술이 되었다. 중세의 서양 연금술사들은 현자의 돌로 불리는 물질을 얻는 것을 최고의 목적으로 삼았다. 현자의 돌을 얻으면 금속을 금으로 변화시키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실현 가능성이 매우 희박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자의 돌에 대한 욕망은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컸다. 뉴턴이나 보일과 같이 근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과학자들조차도 연금술에 많은 시간을 들여 연구했다. 금값이 더 올라야 할텐데. 본문 98쪽 참조 연금술사들은 연금술의 이론적인 배경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철학에서 찾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물 질관에 따르면 만물은 물, 불, 공기, 흙의 네 가지 원소로 구성되었고, 각각의 원소는 서로 다른 두 가지의 특성을 갖고 있으며, 원소가 가진 특성을 바꾸거나 물질을 구성하는 원소의 비율을 바꾸면 다른 물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연금술사도 현자의 돌을 얻지 못했고 물질을 금으로 바꾸는 일에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라부아지에 이후 근대 화학이 발달하면서 연금술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연금술사들은 자신들의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실험 과정에서 얻은 화학에 관한 많은 지식과 실험 기술, 그리고 실험 도구 등은 화학이 발전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근대 화학의 발전이 연금술사들의 꿈을 꺾은 셈인데 그 까닭은 무엇일까? 46 Ⅱ. 고대와 중세의 과학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46 2018-08-31 오후 4:23:56 1 중세 전반기, 이슬람 문화가 과학을 꽃피우다 중세 전반기 동안에 유럽인의 삶은 매우 어렵고 암울했다. 자연 재해가 많아 농작물 의 생산량이 좋지 않았고, 수시로 전염병이 돌았으며, 서로마 제국의 멸망으로 교역로 까지 잃어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북쪽에서 게르만족을 비롯한 야만족들이 유럽의 중세 시대 구분 일반적으로 유럽의 중세는 서로마 제 국이 멸망한 476년부터 비잔티움 제 국(동로마 제국)이 멸망한 1453년까 지를 일컫는다. 수시로 쳐들어와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했다. 그로 인해 유럽은 인구가 감소했고 사회 는 고립되었으며 문맹률이 매우 높았다. 한편, 유럽의 사상적 기반이었던 기독교의 신학자들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 때부터 알려졌던 과학의 기본적인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일례로 락탄티우스와 같은 신학자 들은 지구는 산 모양이며 그 주위를 해가 하루에 한 바퀴씩 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중세 최고의 신학자로 알려진 아우구스티누스는 성서에는 아담의 자손 중에 지구의 반대쪽에 사는 종족이 없으므로 지구 반대쪽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데모크리토스의 이름이 들리지 않았다면 훨씬 좋을 뻔했다.’면서 원자론자들을 눈이 먼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비난했다. 이처럼 유럽인들은 척박한 삶과 엄격한 기독교의 교리를 지키느라 고대 그리스와 로 마의 과학을 이어받을 지적 기초를 갖출 수 없었다. 과학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학문이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S. A.; 354~430) 중세 기독교에서 최고의 신학 이론가 이다. 그는 플라톤의 이데아계와 하늘 에 있는 신의 나라를 동일하게 여기고 그 아래에 있는 현실의 자연계와 인간 계는 사악함으로 충만한 세계로 보았 다. 따라서 자연을 연구하는 일을 성서 를 연구하는 일보다 낮은 수준의 일로 여겼다. 수백 년 전으로 퇴보했고 자칫 사라질 위험에 놓였다. 다행히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과학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이슬람의 학자들이 실 본문 181~184쪽 참조 용적인 목적으로 그리스와 로마의 과학을 흡수하고 잘 보존했기 때문이었다. 무슬림들 은 어디를 가더라도 하루에 다섯 번씩 정확하게 메카 방향으로 기도를 해야 했으므로 방향을 알려 주는 천문학이 필요했고, 페르시아 제국의 동전을 대체할 동전을 제조하 무슬림 기 위해 연금술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이슬람법에 따라 유산을 다수의 사람들에게 공정 이슬람을 믿는 사람 즉, 이슬람 교도를 뜻한다. 하게 분배하는 과정에서 대수학을 발전시켰다. 이슬람 과학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과학 위에서 자신들이 스스로 발전을 이루었고 많은 분야에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과학 수준을 훌쩍 넘어섰다. 어머나, 바다에서 너무 멀리 가면 위험하겠구나. 그림 5-1 중세 전반기 유럽의 문화 메카 방향도 알려 주고, 동전 재료도 찾고, 유산도 계산해 줘야 하고. 휴, 할 일이 너무 많네. 그림 5-2 중세 전반기 이슬람의 문화 5. 중세의 과학 47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47 2018-08-31 오후 4:23:56 2 중세 후반기, 르네상스를 준비하다 중세 후반기의 유럽은 중세 전반기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농업 혁명의 성공으로 본문 181~184쪽 참조 안정을 되찾았고 이슬람 문화와 접촉하면서 문화적 부흥의 토대를 마련했다. 유럽이 농업 혁명과 이슬람 문화 유입으로 번영을 되찾다 유럽의 농업 혁명 성공 요인은 11세기 이후 바이킹의 침입이 없어지고 큰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던 탓에 유럽인들은 첫째, 목재와 철로 이루어진 무겁고 거 대한 쟁기는 땅을 깊게 갈아엎어 땅을 기름지게 했다. 둘째, 소 대신에 말을 이용했다. 말은 소보다 속도와 지구력이 뛰어났다. 셋째, 경작지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 3 년 주기로 돌아가면서 용도를 바꾸었 다. 첫 번째 부분에는 가을에 거두는 밀 을 심었고, 두 번째 부분에는 봄에 거두 는 귀리나 콩, 보리 등을 심었으며 세 번째 부분의 땅은 쉬게 했다. 먹고 사는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농업 혁명이 일어나 농업 생산량이 대폭 증 가했고 인구도 많이 늘었다. 인구의 증가는 노동의 분화를 촉발시켰고 그 덕에 도시가 발전했다. 한편, 이슬람 문화권과의 접촉이 늘어났다. 수세기 동안 유럽과 이슬람은 이웃하고 있었으나 거의 접촉이 없었다. 그런데 유럽은 두 가지 사건으로 이슬람 문화를 접하게 되었고 그 문화를 대량으로 받아들였다. 첫 번째 사건은 유럽인들이 1085년에 에스파냐의 톨레도에 있는 무슬림 근거지를, 1091년에는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에 있는 무슬림 근거지를 각각 함락시킨 일이었다. 톨 레도에는 이슬람 문화의 산물이 가득 했다. 특히 그리스-로마 고전을 아랍어로 번역하 여 종이에 적은 것, 아시아에서 유입된 최신 학문, 그리고 이들을 발전시킨 이슬람의 수 준 높은 학문이 있었다. 중세 유럽의 인구 증가 10세기에는 6세기 무렵에 비해 유럽 전체 인구가 약 38% 증가했다. 프랑스 파리의 경우, 인구가 10배나 늘어날 정 도로 도시 규모가 커졌다. 유럽의 많은 학자들이 이 소식을 듣고 톨레도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로마 제국의 멸 망 이후 처음으로 다양한 그리스-로마의 고전과 뛰어난 이슬람 문화를 접했다. 두 번째 사건은 1095년부터 1272년 사이 모두 아홉 차례 치른 십자군 전쟁이었다. 십자군 전쟁은 1095년에 비잔티움 제국 황제가 교황 우르바누스 2세에게 신성한 땅 (팔레스타인)을 되찾기 위해 무슬림에 대항할 것을 요청하면서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전쟁에서 군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우세한 이슬람이 승리했고 십자군은 패했다. 이때 이 슬람의 문화가 유럽으로 대거 유입되어 유럽의 학문에 큰 자극을 주었다. 이슬람의 문화가 저렇게 발전했을 줄이야. 올해도 풍년이면 내년에는 도시로 이사를 가야겠다. 그림 5-3 중세 후반기 유럽의 농업 혁명 육로가 막혔으면 어때,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면 되지 뭐. 그림 5-4 십자군 전쟁의 영향 48 Ⅱ. 고대와 중세의 과학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48 2018-08-31 오후 4:23:56 십자군 전쟁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유럽의 서쪽 지역에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경제 를 발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십자군이 패배한 이후 유럽의 상인들은 이슬람 국가에 막혀 육로로 아시아에 가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자 바닷길을 적극적으로 개척해 새로운 항로를 열었다. 만약 십자군이 전쟁에서 이겼다면 상당히 오랜 동안에 유럽은 바닷길에 도전하지 않았을 것이고 대항해 시대도 도래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럽은 농업 혁명으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이슬람으로부터 뛰어난 문화를 받 중세의 대표적인 번역자와 번역물 크레모나의 제라르드(1114년~1187년) 는 이탈리아 학자로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 아리스토텔레스의 『기상 학』, 유클리드의 『원론』, 아르키메데스 의 『원의 측정에 관하여』 등과 같은 고 대 그리스 고전과 이슬람의 학자들이 쓴 『학문의 분류에 관하여』, 『의학 정 전』, 『광학』 등 87권의 책을 번역했다. 아들이고 아시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하여 빠른 속도로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번영을 되찾기 시작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슬람에서도 최고의 철학자로 대접받았다 유럽의 학자들은 톨레도와 시칠리아에서 발견한 옛 선조들의 저서를 아랍어에서 다 시 라틴어로 바꾸는 일에 열중했다. 학자들은 조를 이루어 그리스-로마 고전과 이슬람 의 서적을 아랍어에서 라틴어, 에스파냐어, 히브리어, 영어 등의 여러 언어로 번역했다. 번역의 주된 동기는 실용적인 지식을 얻는 데 있었다. 따라서 의학, 점성술, 연금술, 천문학 등 생활에 유용한 분야의 책들을 우선적으로 번역했다. 그 외는 주로 자연 철학 에 관련한 책들을 번역했다. 유럽인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은 책들이었다. 대부분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책들은 아랍어로 옮겨져 잘 보존되어 있었다. 덕분에 유럽인들은 아 리스토텔레스의 온전한 지식 체계를 전수받을 수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책들이 잘 보존된 것은 이븐시나나 이븐루시드와 같은 이슬람의 대학자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 특별한 애정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이븐시나는 종교와 철학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철학에 큰 관심을 가졌다. 이븐루시드는 아리스토텔레스 학문에 푹 빠져 그의 책을 번역하고 주석을 다는데 26 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냈다. 이들 덕분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자’라고 하면 그의 이 름을 떠올릴 정도로 막강한 지적 권력자가 되었다. 놀랍군요, 놀라워! 그리스-로마의 고전을 모두 아랍어로 번역해 놓았다니. 본문 184쪽 참조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철학을 이슬람인들이 높이 평가한 까닭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철학은 인간과 자연에 관한 일관적이고 통일된 시각 을 준다. 강력하고 통일된 자연관은 일 반인이나 지식인에게 정신적 안정감을 주었다. 부끄럽게도 우리 조상의 고전을 보존하고 있는 것이 없네. 아랍어로 된 것을 다시 라틴어로 번역해야겠다. 그림 5-5 이슬람의 지식 번역 사업이 유럽 문화에 끼친 영향 5. 중세의 과학 49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49 2018-08-31 오후 4:23:56 대학이 출현하여 그리스 과학을 수용하다 12세기 무렵 유럽인들은 이슬람 문화와 그리스-로마 고전에서 습득한 지식을 토대 대학의 기원 유럽의 대학은 성당에 소속된 학교의 명성 높은 교사 주위에 학생들이 모이 면서 자발적으로 성장했다. 대학의 운 영은 성당이 있는 도시에서 아무런 특 권이 없는 이방인들이 주로 맡았다. 이들 은 나중에 상인과 장인이 조합(유니버 시타스)을 결성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로 새로운 지식 체계를 세우기 시작했다. 이 무렵에 등장한 것이 대학이었다. 1088년 이탈리아의 볼로냐 대학을 시작으로 1109년에는 파리 대학, 1167년 옥스퍼 드 대학, 1209년 케임브리지 대학 등이 유럽 각지에 설립되었고 1500년까지 약 80개 의 대학이 탄생했다. 이들 대학은 이후 유럽의 학문을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학문의 발전에서 비슷한 생각과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고 탐구하는 마음을 강화시키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대학은 이런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대학은 배움에 뜻을 가진 학생들이 스스로 독립할 때까지 지식을 전수했고, 학자들이 학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대학이 성장하면서 특정한 연구 분야를 전담하는 개별 학부가 생겼는데 신학부, 법학 부, 의학부와 같은 상급 학부가 먼저 생겼다. 이는 유럽의 인구가 늘어나면서 사제와 변 그림 5-6 중세의 대학 호사, 그리고 의사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이들에게는 석사 학위가 주어졌는데 학위를 받기 위해서는 교양 학부에서 자연 철학을 배워야 했기 때문에 대 부분의 학생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철학을 배워야 했다. 당시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철학은 과학과 관련된 분야에서 유일한 개념적 수단 이었다. 이 때문에 유럽의 대학은 한때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을 연구하고 발전시키고 진공 논쟁 아리스토텔레스는 진공이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빈 공간이 개념 상 실재하지 않는다고 보았고, 속에 아 무것도 없이 펼쳐진 공간에 대한 논의 는 터무니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은 신의 전지전능함을 염두에 두고서 만약 신이 빈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면 아리스토텔레스를 포함해 어느 누구도 신이 그렇게 하는 것을 막지 못 한다고 주장했다. 방어하는 것을 주요한 사명으로 여기기도 했다. 일부 대학의 신학부 교수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철학이 이성적이고 논리적이었 기 때문에 신의 손발을 속박한다고 생각하고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래서 신학부 교수 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철학을 옹호하는 교양 학부 교수들과 자주 충돌을 했는 데, 신학부 교수들의 영향력이 큰 일부 대학에서는 한동안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철학 을 가르치지 못하게 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탐구 활동 아리스토텔레스 자연 철학 강의 금지가 과학의 발전에 끼친 영향 1277년에 신학부 교수들의 영향력이 컸던 파리 대학과 옥스퍼드 대학에 서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강의가 한동안 금지되었다. 조사 자연의 이치는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 토론 아니, 감히 전지전능 하신 신이 들으시면 어떻게 하려고. 이런 일은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사상과 학문의 자유를 방해하는 행위 로 볼 수 있지만 당시에는 일부 학자들이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기도 했다. 과정 1.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 중에서 어떤 부분이 논쟁의 초점이 되었는 지 조사해서 발표해 보자. 2.일부 과학사 학자들은 이 조치가 오히려 과학의 발전에 긍정적인 역할 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말해 보자. 50 Ⅱ. 고대와 중세의 과학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50 2018-08-31 오후 4:23:57 논리학과 자연 철학이 신학의 해석에 이용되다 13세기 이후 유럽인들의 지적 수준이 높아지면서 학자들은 큰 고민에 빠졌다. 새로 얻은 지식과 기존의 기독교 교리를 잘 조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스콜라 철학의 대가 아퀴나스였다. 그는 과학적 지식이 신의 권 능을 축소하지 않으며 오히려 신에 대한 인간의 이해를 심화시킨다고 보고 인간의 지 식과 기독교 교리의 융합을 꾀했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에 전통적인 기 독교 세계관을 접목시켜 스콜라 철학을 발전시켰고 이를 바탕으로 신과 인간과 자연에 대한 합리적 사고 체계를 구성했다. 스콜라 철학 스콜라(scholar)는 샤를 마뉴 황제 시절 에 궁정 학교를 가리키던 용어이다. 기 독교 신앙을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스콜 라 신학이 초기에 주로 이들 학교를 중심 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스콜라 철학은 9세기에 시작되어 13 세기 아퀴나스에 의해 전성기를 누렸 다. 아퀴나스는 신학에 대한 철학의 독 립성을 유지하면서 전체적으로 신학의 체계를 완성했다. 이후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은 서양 학문에서의 위치가 더욱 공고해졌다. 아리스토텔 레스는 과학 혁명 전까지 유럽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다. 그러나 모두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적 굴레에 갇힌 것은 아니었다. 옥스퍼드 대학의 초대 총장을 지냈던 그로스테스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철학을 그대로 믿기보다 는 실험과 관찰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가르침을 받은 베이컨은 과거의 숭배 받는 권위에 의지해서는 안 되고 스스로의 실험을 통해서 자신의 결론을 끌어내야 한다는 혁신적인 주장을 했다. 그는 관찰과 실험 을 동반하는 회의주의를 강조하여 인간의 지적 발전에 중요한 방향을 제시했다. 중세 학자들의 세계관 중세 학자들은 세계를 일차적으로 신 학적 관점에서 해석했으나 인간이 신 적인 것을 이해하는 데 이성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즉, 자연과 성경 을 연구함으로써 우리가 신의 존재와 본성을 알 수 있다고 믿었다. 이른바 자 연 철학이 학문의 여왕인 신학의 시녀 라는 관점은 줄곧 이어졌다. 안타깝게도 이런 발전은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 14세기 이후 유럽은 기후 변화로 인한 기근과 흑사병의 창궐로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사망률이 40%에 이르러 본문 56쪽 참조 뛰어난 학자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에 인구도 급감했다. 대학은 지원을 받지 못해 교육 체계가 무너졌다. 아퀴나스(Aquinas, T.; 1225?~1274) 그로스테스트(Grosseteste, R.; 베이컨(Bacon, R.; 1214~1294) 1175? ~1253) 그림 5-7 중세 후반기 유럽의 신학자와 자연 철학자 정리하기 중세의 후반기 때 유럽의 자연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을 중심으 로 발전했는데 그렇게 된 과정을 다음 단어들을 넣어 정리해 보자. 톨레도 십자군 전쟁 이븐루시드 대학 아퀴나스 스콜라 철학 생각 넓히기 중세 후반기에 대학에서 ‘자연 철학은 신학의 시녀다.’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 가 공공연히 나돌게 된 까닭을 토의해 보자. 5. 중세의 과학 51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51 2018-08-31 오후 4:23:57 단원 매듭짓기 정리하기 고대 그리스 시대의 자연 철학자 중심으로 서양 과학사의 흐름을 다음 용어를 활용하여 설명해 보자. ● 근본 원소에 대한 관점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크세노파네스 헤라클레이토스 엠페도클레스 데모크리토스 아리스토텔레스 에피쿠로스 ● 우주에 대한 관점 아낙시만드로스 피타고라스 학파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타르코스 프톨레마이오스 ● 수학의 발전 탈레스 피타고라스 히포크라테스 유클리드 아르키메데스 아폴로니우스 이해하기 소포타미아 문명 및 이집트 문명과 고대 그리스 문명에 1. 메 서 과학의 역할과 의미를 비교해서 말해 보자. 세 후반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철학이 유럽의 과 3. 중 학 문화를 지배하게 된 까닭이 무엇인지 아퀴나스의 신 학의 발전과 연관시켜 말해 보자. 세 전반기 유럽의 과학은 오히려 고대 그리스와 헬레니 2. 중 즘 시대의 과학보다 퇴보했다고 한다. 이렇게 단정 짓는 근거가 무엇인지 말해 보자. 52 Ⅱ. 고대와 중세의 과학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52 2018-08-31 오후 4:23:58 적용하기 프로젝트 활동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철학 비교 PPT 만들기 서양 문명의 두 기둥,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철학을 비교하는 PPT를 만들어 보자. 1.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와 물질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관점이 어떻게 달랐는지 조사해 보자. 우주관 물질관 신에 대한 생각 2.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계보를 잇는 서양 철학의 사조와 철학자들을 조사해 보자. 플라톤의 계보 아리스토텔레스의 계보 료를 토대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철학이 오늘날 서양인들의 문화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PPT를 만들어 발 3. 자 표해 보자. Ⅱ단원 매듭짓기 53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53 2018-08-31 오후 4:23:58 6 르네상스와 과학 혁명 7 과학 혁명의 시작, 천문학 혁명 8 과학 혁명의 완성, 고전 역학 혁명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54 2018-08-31 오후 4:24:00 아무래도 우주의 중심은 지구가 아닌 것 같아. 관측할수록 천상계는 불변하지 않는 쪽으로……. 내가 만든 망원경으로 보면 지구가 움직인다는 사실이 확실해. 티코 브라헤의 관측 사실로 보면 행성 궤도는 타원이어야 해. 사과가 괜히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관성의 개념은 내가 한 수 위지. 시대 설명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55 과학 혁명이란 1543년에 코페르니쿠스가 태양 중심설을 담은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출간한 이후, 1687년에 뉴턴이 중력과 운동 법칙을 설명한 『프린키피아』를 출간할 때까지 약 150년 동안 유럽의 과학계에서 일어난 변화를 말한다. ‘혁명’이라는 단어 를 사용한 것은 과학에 국한되지 않고 유럽 사회의 문화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과학 혁명은 신(神) 중심의 유신론적 사고에서 인간과 물질 중심의 유물론적인 사고로 인식의 흐름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 을 하였다. 2018-08-31 오후 4:24:03 6 르네상스와 과학 혁명 학 습 목 표 ㅣ 르네상스에 의한 사회적인 변화 이후에 16~17세기에 일어난 과학 혁명을 이해하고 근대 과학의 특징을 설명할 수 있다. 르네상스는 어떻게 태동했을까 유럽은 14세기 중엽에 큰 위기를 맞이하 였다. 이탈리아의 한 항구 도시에서 시작된 흑사병이 유럽 남부를 지나 전 지역으로 광 범위하게 퍼져 나갔기 때문이다. 질병에 대한 무지는 유럽인들에게 죽음보 다 더 큰 공포를 주었다. 공포는 신에 대한 불신과 사람에 대한 저주를 낳았다. 이로 인해 유럽의 중세 시대를 공고하게 떠받치던 신본주의와 봉건주의가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대흑사병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유럽의 동쪽에서 큰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다. 천 년 넘게 이어온 비잔티움 제국이 오스만 제국에 멸망당한 것이다. 콘스탄티노플에 있 빨리 피렌체로 가자. 던 많은 학자들은 유럽으로 도망쳤다. 이 때 이들은 이슬람에 의해 명맥을 유지 하였던 고대 그리스-로마의 고전 을 유럽으로 가져와 르네상스 발 전의 계기를 만들었다. 14세기에 이탈리아는 여러 도시 국가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들 국가의 지도자들은 비잔티움 제국의 학자 들이 그리스-로마 고전을 들고 이탈리아로 왔을 때 그들이 학문을 계속할 곳을 마련해 주었다. 또한, 당시 에 국가 지도자들 사이에는 그리스-로마 고전을 많이 소유하려는 경쟁이 있었다. 덕분에 오래 잊고 지냈던 고 대 그리스-로마 고전이 많이 발굴되었다. 더욱이 이탈리아인들은 그리스-로마 고전과 문화가 낯설지 않았 다. 이탈리아에는 이와 관련된 유적이나 유물이 흔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 그리스-로마 고전의 부활은 르네상스의 시작을 알렸고, 화려하게 꽃을 피우며 유럽의 각 나라로 퍼져 나갔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는 유럽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56 Ⅲ. 과학 혁명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56 2018-08-31 오후 4:24:05 1 르네상스, 사회를 변화시키다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진리야. 맞아요. 물질은 ……, 우주는 ……. 정말 그럴까? 아리스토텔레스 이탈리아의 피렌체를 중심으로 발전한 르네상스는 로마와 베네치아에서 전성기를 맞 이하였다. 그 후 15세기 말에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유럽인들의 정신세계에 큰 변 화를 주었다. 르네상스의 의미 르네상스는 재생을 의미한다. 여기서 재생이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학 과 철학에 있는 지혜의 재생이었다. 르네상스 이전의 유럽인들은 고대인이 자신들보다 훨씬 뛰어나고 지혜롭다는 믿음을 가졌다. 그래서 당시 유럽인들의 사고는 모든 분야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았 다. 그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진실의 기준으로 삼았다. 그런데 학자들이 다양한 그리스-로마 고전들을 연구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고대 그리스의 여러 철학자들 중 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최고의 학자로 여 겼던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가 무너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스스로 진리를 찾으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런 움직임은 인문주의라는 지적 운동으로 나타나면서 문학과 예술, 그리고 철학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었다. 대표적인 분야가 미술이었다. 르네상스 이전의 그림은 주제가 기독교에 제한되어 있었 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와 같은 르네상스의 미술가들은 그런 전통을 거부하고 훨씬 더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그들은 그림과 조각에 기하학적 관점을 도입하기도 하 고, 심지어 절대 신성의 신을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그림 6-1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의 한 장면 왼쪽은 아담이고, 오른쪽은 인 간의 모습을 한 신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중심의 전통적인 학문과 엄격한 교리의 기독교를 거부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려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르네상스는 세상의 중심에 신이 아니라 인간을 두었으며 인간의 이성에 바탕을 둔 합리적인 사유를 중요하게 여겼다. 이것이 르네상스가 가져온 가장 중요한 변화였다. 6. 르네상스와 과학 혁명 57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57 2018-08-31 오후 4:24:06 2 사회적 변화는 과학 혁명의 불씨가 되다 우주에는 수학적 질서가 있군. 갈릴레이 난 못들어가! 플라톤 르네상스 시대의 사회 변화는 인문주의자들에게 전과 다른 지적 풍토를 조성하였다. 엄격한 전통에 기반을 둔 기독교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와는 다른 신비주의적 색채의 사상이 등장한 것이다. 신플라톤주의와 헤르메스주의라고 하는 이들 사상이 널리 퍼지 면서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은 사고의 유연함과 실험 정신을 갖게 되었다. 신플라톤주의는 플라톤 철학을 계승한 학자들이 발전시킨 것으로 그들은 우주에는 수 학적 질서가 있어 우주의 신비를 수학으로 풀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 이 믿음은 우주 를 분석적인 시각으로 관찰하게 하였고, 학자들이 우주를 대하는 자세에도 큰 변화를 주 었다. 나중에 천문학 혁명을 이끈 코페르니쿠스도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헤르메스주의(Hermeticism) 1~3세기에 그리스 문화권에서 성립된 신비주의적인 문헌인 『헤르메스 문서』 에 기초한 사상이다.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이 짙으며, 크리스트교ㆍ유대교ㆍ이 슬람교의 신비 사상도 반영하고 있다. 헤르메스주의는 헬레니즘에 기반을 두고 신학과 철학, 그리고 점성술과 연금술 등 다 양한 영역을 폭넓게 다루었다. 마술적 신비주의를 믿는 헤르메스주의자들은 눈에 보이 지 않는 힘의 존재를 믿었고, 사람에게는 영적 영역에 다가갈 수 있는 능력이 있어 이 능력을 토대로 신과 교류하고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새로운 일에 도 전하는 실험 정신을 갖고 있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신플라톤주의와 헤르메스주의는 과학 혁명에 어떤 영 향을 주었을까? 유일신과 유일한 학문에 경직되었던 유럽인들은 사고의 유연함과 대상에 대한 실천적인 분석력을 갖게 되었다. 특히 눈에 보이지 않게 작용하는 힘의 가능성을 믿게 되었다. 이들의 생각은 나중에 케플러와 뉴턴의 사고에도 영향을 미쳤다. 케플러와 뉴턴은 서 로 접촉하지 않고 떨어져 있는 물체들 사이에도 어떤 힘이 작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 게 되었고, 중력의 존재를 생각해 낸 것이다. 두 물체가 접촉 하지 않아도 힘이 작용할 수 있지. 물체의 운동은 서로 접촉하거나 연속하고 있어야 해. 아리스토텔레스 중력은 접촉하지 않아도 작용해. 케플러 뉴턴 그림 6-2 떨어져 있는 물체에 작용하는 힘에 대한 생각 58 Ⅲ. 과학 혁명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58 2018-08-31 오후 4:24:09 신플라톤주의와 헤르메스주의는 전통의 권위를 부정하고 수학적 추론, 실험과 관찰, 과학기술을 응용하는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이에 호응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베살리우 스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였다. 베살리우스는 대학의 해부학 수업에서 직접 시체를 해부하면서 갈레노스의 인체 설 명에 200개가 넘는 잘못을 찾아냈다. 고대 이래 의학 이론의 바탕이 되어 온 갈레노스 의 이론보다는 스스로 관찰하고 행동하는 실험 정신을 더 중요하게 여긴 결과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대중적으로는 미술가로 알려져 있으나 해 부학, 광학, 기하학 등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과학자이자 기술자였다. 레오 나르도 다빈치는 인체 해부를 통해 자궁과 태아를 최초로 그리는 등 새로운 일에 도전 갈레노스의 인체 해부와 관련된 내용에 오류가 많은 까닭 갈레노스는 인체를 해부한 경험이 없 었다. 대신 원숭이나 돼지를 해부하고 그 내용으로 인간의 몸을 유추하였다. 갈레노스가 인체 해부 경험이 없는 것 은 당시에는 인체를 해부하는 것이 금 지되어 있기도 했지만 환자를 치료할 때 해부학적 지식이 크게 필요하지 않 았기 때문이다. 하는 실험 정신이 뛰어났다. 이러한 사조와 더불어 르네상스 시대에 발달한 항해술은 대항해 시대를 열었다. 항 해를 통해 콜럼버스와 같은 모험가들은 새로운 곳을 발견하였고, 그곳으로부터 새롭고 다양한 문물과 동식물, 광물 등을 유럽으로 들여왔다. 새로운 문물을 접한 유럽인들은 그동안의 지식이 부족했음을 깨달았고 새로운 사고와 지식의 확장이 이루어졌다. 비슷한 시기에 독일에서는 구텐베르크가 납 활자를 만들어 활판 인쇄를 시작하였다. 인쇄술의 발달로 1450년부터 50여 년 동안 약 2,000만 권의 책이 출판되었는데, 이 책들은 유럽 전역으로 르네상스 문명을 확산시켰다. 그리스-로마 고전이 유럽 곳곳에 보급되어 과학 혁명의 주역들이 고전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 1517년에 종교 개혁자 루터는 독일의 비텐베르크 대학의 교회 정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이며 종교 개혁의 시작을 알렸다. 종교 개혁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정치적・ 종교적 권위를 무너뜨렸으며 사회의 지배권을 약화시켰다. 사람들은 가톨릭교회로부터 점점 멀어졌다. 덕분에 과학자들은 전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연구 활동을 할 수 있 었고, 과학 혁명의 기운이 고조되었다. 그림 6-3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자궁 속 태아의 모습 대항해 시대가 준 깨달음 고대인이 가진 지혜에 대한 의심은 대 항해 시대 이후에 정점에 이르렀다. 베 이컨은 고대 그리스 철학을 ‘세상 물정 모르는 젊은이에게 주는 한가한 노인 의 말이다.’라고까지 하였다. 가톨릭교회에서 면죄부를 팔다니……. 그림 6-4 루터와 종교 개혁 과정을 그린 그림 6. 르네상스와 과학 혁명 59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59 2018-08-31 오후 4:24:11 3 과학 혁명,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다 관찰과 발견으로 새로운 이론을 찾아낼 거야. 본문 22~23쪽 참조 과학 혁명은 르네상스에 의한 사회적 변화의 영향을 받아 진행되었다. 이 과학 혁명 으로 유럽인들의 우주관과 자연관, 그리고 과학을 연구하는 방법에서 이전과 많은 차 이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차이점은 근대 과학의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우주관이 크게 달라지다 16세기 무렵에는 아직 고대의 우주관인 아리스토텔레스-프톨레마이오스 우주론이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즉,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었고, 달을 기준으로 위쪽에 있는 천상 계와 아래쪽에 있는 지상계가 엄격하게 구분되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그러나 과학 혁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코페르니쿠스 이후 우주의 중심은 태양이거 나 중심이 없는 것으로 생각되면서 우주는 천상계와 지상계의 구분이 없는 하나로 통 일되었다. 이것은 지상계로 한정되어 있던 세계관이 우주로 넓어졌음을 의미한다. 과학을 하는 태도가 달라지다 과학 혁명기 이전에는 우주와 자연, 인간에 관한 지식의 근거를 아리스토텔레스와 같 은 고대의 뛰어난 학자가 쓴 문헌에서 찾았다. 그러나 르네상스 이후, 진리는 연구 대상 을 직접 경험하고 관찰하면서 스스로 찾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과학자들은 새로 운 현상을 관찰하고 발견하며 새로운 이론을 창조하는 일에 높은 가치를 두었다. 과학을 표현하는 수단이 달라지다 과학 혁명기 이전에는 자연은 신에 의해 창조된 것으로 신성한 목적을 지녔다고 보았 다. 그러나 신플라톤주의에 따르면 자연은 조화롭고 질서가 잡혀 있는 곳이므로 이런 조 화와 질서는 수학이나 기하학으로 가장 잘 표현될 수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과학 혁명기 에 자연을 수학과 기하학으로 표현하는 것이 자리를 잡았다. 대부분의 실험 결과를 정량 적인 무게와 온도, 습도와 기압의 변화로 표현하고 이를 숫자로 나타내게 된 것이다. 60 Ⅲ. 과학 혁명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60 2018-08-31 오후 4:24:11 각 나라에서 과학과 관련된 학회가 탄생하다 과학 혁명기 과학자들의 주된 활동 무대는 새로이 만들어진 과학 단체였다. 17세기 유럽의 대학은 중세의 교과 과정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고수하며 새로운 과학에 적대적이었다. 그래서 새로운 과학을 위한 장소와 제도가 필요하였던 과학자들은 한곳 을 중심으로 모여 단체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17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아카데미아 데이 린체이’라는 이름으로 최초의 과학 학회가 결성되었다. 이후 17세기 중반에 영국에서는 왕립학회가 생겼다. 이 학회에서 보일, 훅, 뉴턴과 같은 걸출한 과학자들이 활동하였고, 지금까지도 많은 과학자들이 활동하면서 유지되고 있다. 이어 프랑스에서도 과학 아카데미가 결성되었다. 유럽 각 나라의 과학 관련 학회는 과학자들이 모여 서로 학문적 의견을 교환하고 실 험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여 근대 과학의 입지를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와 같이 새로운 근대 과학의 토대가 된 과학 혁명은 끊임없이 변화해 온 과학의 역 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과학 혁명이 완성되기까지 천문학 혁명과 역학 혁명이 이루어 놓은 성과와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림 6-5 실험실에서 진공 펌프를 설치하는 훅과 보일 그림 6-6 영국 왕립학회의 뉴턴(왼쪽에서 두 번째) 정리하기 르네상스 시대의 신플라톤주의와 헤르메스주의가 근대 과학의 토대가 되는 중력과 자기력 등 힘의 개념을 정립하는 데 중요 생각 넓히기 유럽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철학이 르네상 스 전에는 절대적인 지지를 받다가 르네상스 이후에는 크게 흔들 한 역할을 하였다. 그 까닭을 다음 단어들을 넣어 정리해 보자. 리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신플라톤주의 헤르메스주의 중력 뉴턴 케플러 6. 르네상스와 과학 혁명 61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61 2018-08-31 오후 4:24:13 7 과학 혁명의 시작, 천문학 혁명 학 습 목 표 ㅣ 코페르니쿠스, 티코 브라헤, 케플러, 갈릴레이, 뉴턴 등의 연구를 통하여 이루어진 천문학 혁명의 배경과 내용을 설명할 수 있다. 코페르니쿠스의 발상의 전환 과학 혁명은 1543년 코페르니쿠스가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출간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책으로 유럽인들은 우주를 바라보는 관점과 자연을 이해하는 방식에 큰 변화를 보였고, 이를 뒷받침하는 천 문학적 관측과 발견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모든 행성들은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한다. 나도 아는데. 16세기 이전까지 유럽인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 같은 뛰어난 학자들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체계화시켰기 때문이다. 게다가 실제로 사람들이 눈으로 볼 때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다. 당시 사회의 절대적 가치 기준이 었던 교회의 가르침도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 두었다. 그들은 객관적인 관점에서 우주를 탐구하는 이들을 적 대시하였다. 이런 속박으로부터 과학의 독립 선언을 한 인물이 코페르니쿠스였고, 그가 쓴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는 과학의 독립 선언서였다. 이 책이 출간된 이후 많은 과학자들이 종교와 신화, 관습의 틀을 깨고 관찰과 실 험에 기초한 객관적 입장에서 자연과 우주를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인간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평범한 행성인 지구에 살고 있는 한 생물체일 뿐이라는 우주적 관점을 갖게 되었다. 과학 혁명의 시작을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에서 찾는 까닭은 무엇일까? 62 Ⅲ. 과학 혁명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62 2018-08-31 오후 4:24:14 1 코페르니쿠스, 지구 중심설의 문제점을 인식하다 태양과 지구의 위치를 바꾸면 행성의 운동이 더 쉽게 설명되는데……. 전능하신 하느님의 우주가 이렇게 복잡할 리가 없어. 무슨 섭섭한 소리를……. 내가 원을 81개나 그리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당연하지! 코페르니쿠스 프톨레마이오스 과학 혁명의 시작을 연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는 폴란드의 크라쿠프 대학에서 천문 학을 배웠다. 그는 그곳에서 교수가 준 천문표로 밤하늘의 천체들을 관찰하였는데, 천체 들의 움직임이 천문표와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후부터 코페르니 쿠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 체계에 의문을 가지고 문제점을 파고들었다. 코페르니쿠스가 살던 시절의 유럽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만들고 프톨레마이오스가 발 프톨레마이오스(Ptolemaeos, C; 85?~165?)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 수학자이다. 지구 중심설을 토대로 한 『알마게스트』 를 썼다. 전시킨 지구 중심설이라고 부르는 우주론이 대세였다. 유럽인들은 우주 중심에 신이 창조한 인간이 사는 지구가 있고, 우주 가장자리에 천 구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천구의 안쪽으로 토성, 목성, 화성, 태양, 금성, 수성, 달이 차 례로 있으며, 이들은 각각 등속 원운동을 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목성이나 화성과 같은 일부 행성들은 공전 속도가 일정하지 않고, 겉보기 운동의 방향도 바뀌는 등 등속 원운 유럽인들이 행성들의 등속 원운 동을 믿은 까닭 당시 유럽인들은 원운동이 천상계의 본성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동에서 벗어난 운동을 하는 관측 자료가 큰 문젯거리였다. 프톨레마이오스는 모든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등속 원운동을 한다는 믿음 을 지키면서 이런 관측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주전원과 이심원이라는 개념을 고안해 냈다. 그는 관측되는 행성의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81개나 되는 원을 그려야 했다. 코페르니쿠스는 하늘에 그토록 많은 원을 그려야 하는 복잡 한 프톨레마이오스 우주 체계가 조화로운 신의 섭리에는 맞 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차라리 태양과 지구의 위치를 바 꾸고 지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 행성들의 겉보기 운동을 잘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새로운 우 주 체계를 만들기 위해 관측과 연구를 계속하였다. 그림 7-1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 체계 지구가 중심에 있고, 그 주변에 태양과 행성이 돌고 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행성 이 단순히 원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큰 원상에 있는 작은 원을 따라 움직인다고 생 각하였다. 이때 작은 원을 주전원이라고 하고, 큰 원을 이심원이라고 하였다. 7. 과학 혁명의 시작, 천문학 혁명 63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63 2018-08-31 오후 4:24:16 하늘 토성 하늘 항성구 토성 태양 금성 수성 지구 달 목성 지구 수성 태양 금성 화성 목성 화성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 체계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체계 그림 7-2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체계 1510년에 코페르니쿠스는 그동안 관측해 온 기록을 토대로 『짧은 해설서』라는 책을 썼다. 그는 이 책에서 우주의 중심에 태양을 두고, 태양과 달, 별이 뜨고 지는 것은 지 구가 스스로 돌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또한, 태양을 중심에 두면 굳이 수많은 주전원을 쓰지 않아도 행성의 겉보기 운동을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신이 창 조한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교회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일이었 다. 따라서 그는 책을 출간하는 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죽기 직전에 동료의 도움을 받아 수학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한 완결판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출간하였다. 이 책에서 코페르니쿠스는 아리스토텔레스-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 체계가 관측과 맞 지 않는다고 비판하면서 지구가 자전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태양과 행성이 모두 원운동을 하므로 지구도 태양을 중심으로 원운동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체계는 우주에 대한 사람들의 오랜 믿음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본문 42쪽 참조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 체계를 깨뜨리는 것은 그것의 바탕이 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 관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체계는 2,000년이나 유럽 사회를 지배 당시 사람들이 지구의 운동을 직 관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웠던 물음들 해 온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 체계를 •지구가 빨리 움직인다면 왜 우리가 그 운동을 느끼지 못할까? •지구가 움직인다면 수직으로 쏘아올 린 포탄이 어떻게 제자리로 떨어질 수 있을까? •태양이 우주의 중심에 있다면 통념 상 무거운 물체가 떨어질 때 왜 태양 을 향하지 않는 것일까? 깨고 새로운 세계관을 이 세상에 보여 주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생각을 쉽게 바꾸려하 지 않았다.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체계가 제대 로 받아들여진 것은 그로부터 1세기가 지난 17세기부터였다. 그 사이에 관측 결과 살금 를 바탕으로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보완하고 확산시킨 사람들이 나타났 다. 그들은 티코 브라헤와 케플러, 코페르니쿠스 그리고 갈릴레이였다. 64 Ⅲ. 과학 혁명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64 2018-08-31 오후 4:24:19 2 티코 브라헤, 초신성 발견으로 기존 우주관을 부정하다 다른 것보다 유난히 밝은 저건 뭐지? 난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티코 브라헤 코페르니쿠스가 세상을 떠나고 3년 뒤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가 덴마크에서 태어났 다. 그는 법학을 공부하러 대학에 들어갔으나 법학보다는 물리학이나 수학, 특히 점성 술에 관심이 더 많았다. 어느 날 티코 브라헤는 친구들과 부분 일식을 관측하였다. 이때 그는 일식 현상 자체 보다는 천문학자들이 일식이 일어나는 날을 정확하게 예측한 것에 더 큰 감동을 받았 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천문학에 깊이 빠져들었다. 티코 브라헤는 천문학의 고전인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를 열심히 읽었다. 그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 지구 중심설의 경전과 같은 책으로 천 체의 움직임을 기하학으로 설명하였 다. 또 태양, 달, 행성의 위치를 계산하 고 일식과 월식 현상을 예보하였다. 런데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 체계에 오류가 많다는 것을 알고, 이 오류를 수정하는 일 에 큰 관심을 가졌다. 이후 티코 브라헤는 카시오페이아자리에서 새로운 별, 지금은 초신성이라고 부르는 천체를 발견하였다. 그는 자신이 만든 육분의로 초신성을 수개월 동안 관측하여 이 별 이 일주 시차를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초신성 별의 진화 마지막 단계에 별이 폭발하 면서 평소보다 수억 배 밝기로 밝아지 는 천체이다. 을 알아냈다. 육분의 이 사실은 초신성이 달 아래에 있 천체 고도를 측정할 때 사용하는 관측 장치이다. 는 지구 상층 대기나 달 궤도보다 훨 씬 더 먼 천상의 세계에 있다는 것을 일주 시차 의미하였다. 지구의 자전 때문에 지구에서 볼 수 있 는 천체들의 위치가 매일 달라지는 현 상을 말한다. 이것은 중요한 발견이었다. 달 궤 도보다 위에 있는 천상계는 신들의 영역이므로 변화가 있을 수 없다고 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철학에 정면으로 위배되기 때문이다. 그림 7-3 티코 브라헤가 스케치한 1572년의 초신성(I ) 7. 과학 혁명의 시작, 천문학 혁명 65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65 2018-08-31 오후 4:24:19 16세기 중반 티코 브라헤는 프레데리크 2세의 지원으로 우라니보르라는 이름의 천문대를 지었다. 그는 그곳에서 천문 관 측을 하면서 방대하고 정확한 천문 관측 자료를 남겼다. 티코 브라헤의 혜성 관측 당시 유럽 사람들은 혜성을 지구와 달 사이의 대기에서 일어나는 기상 현상 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티코 브라헤는 혜성이 아주 먼 곳에서 행성의 궤도를 가로질러 오는 새로운 형태의 천체라 고 주장하였다. 1577년에 티코 브라헤는 혜성을 관측하 여 혜성도 일주 시차가 없다는 사실을 발 견하고 혜성이 달보다 멀리 있음을 밝혀냈 다. 이것은 달 궤도 위의 천상계에서는 아 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아리스토 텔레스의 가르침에 모순되는 일이었다. 또 혜성의 직선 운동은 천상계의 천체들이 등 속 원운동을 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프톨 레마이오스의 우주 체계와도 맞지 않았다. 사람들이 세상을 천상계와 지상 계로 구분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철학을 믿는 까닭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감각 기관을 통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변화를 직 접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지상계와 변 화를 직접 관찰할 수 없는 천상계로 나 누어 생각하였다. 이것은 일반인들의 인식 수준에 잘 맞았으므로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림 7-4 우라니보르 천문대에서 천체를 관측하는 티코 브라헤 이후 티코 브라헤는 지구가 정지해 있고 태양과 달은 지구 주위를 돌며 다섯 개의 행 성은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독특한 우주 체 계를 발표하였다. 그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우 주 체계에서 모순을 많이 발견했으나 항성 의 연주 시차를 0으로 관측하였기에 코페르 니쿠스의 우주 체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티코 브라헤가 천문학 혁명에 기여한 것은 그의 정확하고 풍부한 천문 관측 자료였다. 그림 7-5 티코 브라헤의 우주 체계 그가 남긴 관측 자료는 케플러가 행성의 법칙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티코 브라헤의 놀라운 천체 관측 티코 브라헤가 관측한 별과 행성 궤도 등의 여러 결과들은 양도 많을 뿐 아니라 모든 자료가 놀라 울 정도로 정확하다. 그는 이전의 어떤 천문학자들보다 관측 방법, 기구, 계산 등 모든 면에서 월등 히 뛰어났다. 그의 수년간에 걸친 관측은 그 정확성에서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극한까지 이르렀고, 망 원경을 사용하지 않은 관측으로 가장 정밀하였다고 한다. 티코 브라헤는 별의 위치를 측정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고, 그 결과를 정리하여 항성 목록으로 출판하였다. 그 목록에는 777개 항성의 정확한 위치가 기록되어 있다. 정밀한 육안 관측을 해 왔던 티코 브라헤는 연주 시차도 측정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 당시 관측 기술로는 정확한 측정이 어려웠다. 만약 티코 브라헤가 연주 시차 관측 에 성공하였다면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체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달라졌을까? 그림 7-6 티코 브라헤의 『루돌프 목록』 티코 브라헤가 관측을 시작하였고, 케플러가 이어받아 출간한 『루돌프 목록』의 표지 그림이다. 신전의 오른쪽 기둥 앞에 티코 브라헤가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66 Ⅲ. 과학 혁명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66 2018-08-31 오후 4:24:20 3 케플러, 행성의 궤도가 타원임을 밝히다 티코 브라헤의 자료를 아무리 분석해도 행성 궤도가 원이 아니야. 만약 타원이라면……. 내 관측 자료는 아주 정확하다고. 케플러 티코 브라헤 천문학자 케플러는 대학에서 신학과 수학을 공부하였는데,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 였다. 그는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체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와 관련한 천문학을 수 학적으로 탐구하는 일에 집중하였다. 그는 특히 행성 사이의 거리와 행성의 운동을 계 산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였다. 당시 많은 천문학자들은 행성의 궤도가 태양의 주위를 도는 투명한 구에 붙어 있는 다섯 종류의 정다면체 원형이라고 생각하였다. 케플러는 이 얇은 껍질과 같은 구들의 반지름이 미리 정해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섯 행성의 궤도 사이에 다섯 종류의 정다면체를 맞추어 넣 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이 구조가 모든 행성 궤도의 상대적인 크기를 결정하며, 정다면체는 다섯 종류 밖에 없기 때문에 다섯 개 행성과 지구를 포함해 여섯 개의 행성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케플러는 이런 생각을 정리하여 1596년에 『우주 구조의 신비』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이후 케플러는 티코 브라헤와 프라하에서 같이 지내면서 티코 브라헤의 정밀한 관측 ‘플라톤의 다면체’라고 불리는 다섯 종 류의 정다면체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은 플라톤처럼 정다면체는 정사 면체, 정육면체, 정팔면체, 정십이면체, 정이십면체 다섯 종류만 존재한다고 생각하였다. 자료를 보게 되었다. 그는 티코 브라헤의 자료를 참고하면서 화성의 운동을 연구 하였다. 케플러는 티코 브라헤의 자료가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론과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티코 브라헤가 세상을 떠난 후 케플러는 그의 뒤를 이어 루돌프 2세 의 왕실 수학자로 임명되었다. 케플러는 티코 브라헤의 정밀한 관측 자료를 바탕으로 행성들의 운 동을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에 맞추는 작업을 반복적으로 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이론과 관측 사이에 오차가 있었고 그 오차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림 7-7 케플러가 생각한 기하학적인 우주 모형 케플러는 당시까지 알려져 있던 6개 행성인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이 도는 궤도 는 플라톤의 정다면체들이 서로 겹쳐 있는 구조에서 내접, 외접하는 3차원 구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행성이 타원 궤도 운동을 한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이 모형을 스스로 폐 기했다. 7. 과학 혁명의 시작, 천문학 혁명 67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67 2018-08-31 오후 4:24:21 행성 6개월 6개월 태양 케플러 제1법칙 케플러 제2법칙 그림 7-8 케플러의 행성 운동 법칙 케플러의 세 가지 법칙 케플러 제1법칙: 타원 궤도 법칙 ● 케플러 제2법칙: 면적 속도 일정 법칙 ● 케플러 제3법칙: 조화 법칙 (각 행성들이 궤도 한 바퀴를 도는데 걸리는 시간의 제곱은 타원 궤도의 긴 반지름의 세제곱에 비례한다는 법칙이 조화 법칙이다.) ● 그러자 케플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었던 ‘행성의 궤도는 원이다.’라는 가정 대신 행성의 궤도는 원이 아니라 타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케플러는 지구를 포함한 모든 행성들은 타원 위에서 움직이고 태양은 행성 궤도의 중 심이 아니라 타원의 한 초점에 있다고 주장하였다(케플러 제1법칙). 행성이 타원 운동을 한다는 그의 주장은 행성들이 회전하는 구에 실려서 움직인다는 유럽인들의 오래된 우주론을 부정하는 일이었다. 케플러가 발표한 행성 운동 법칙 의 의미 사람들은 우주 체계가 신의 섭리가 아니 라 단순한 자연의 법칙에 의해 움직이 며, 나아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닌 행성 중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후 케플러는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 개론』에서 행성이 운동을 할 때 태양과 행성 을 연결하는 선이 같은 시간에 같은 면적을 쓸고 지나간다고 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행성이 태양과 가까이 있을 때 더 빨리 움직여야 한다고 하였다(케플러 제2법칙). 케플러는 자신이 발견한 새로운 행성 운동 법칙을 토대로 행성과 항성에 관한 루돌 프 목록을 완성하였다. 케플러의 행성 운동 법칙들과 그의 정확한 수학적 계산이 알려지면서 대다수의 천문 학자들은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체계를 받아들였다. 케플러에 이르러 주전원 없이도 행 성의 운동을 완전히 기술할 수 있게 되었다. 코페르니쿠스로부터 시작된 태양 중심 우 주론이 완성된 것이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이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체계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좀 더 실질적인 증거들이 필요하였다. 그것을 제공한 사람은 갈릴레이였다. 탐구 활동 케플러 제1법칙(타원 궤도 법칙)의 의미 조사 토론 ‘케플러 제1법칙’은 천문학 발전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케 플러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 법칙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과정 1.케플러가 ‘행성의 궤도는 타원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 가장 결정 적인 계기는 무엇인지 알아보자. 2.사람들이 ‘행성의 궤도는 타원이다.’라는 생각을 빨리 인정하지 않았던 까닭은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자. 3.‘행성의 궤도는 타원이다.’라는 사실이 천문학 발전에 주는 의미는 무엇 일까? 68 Ⅲ. 과학 혁명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68 2018-08-31 오후 4:24:23 4 갈릴레이, 망원경으로 태양 중심설을 증명하다 목성 주위를 별 같은 게 도는데? 나도 망원경 갖고 싶다. 갈릴레이 천문학자 갈릴레이는 당시 영원불변한 천상계인 달 바깥의 세계에 다양한 천문학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티코 브라헤와 케플러의 주장을 지지하고 있었다. 갈릴레이가 천문학 혁명에 직접적으로 기여한 것은 망원경을 제작한 후부터였다. 그 는 망원경을 스스로 제작하여 천문 관측에 사용하였다. 갈릴레이는 이 관측을 통해 아 리스토텔레스-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 체계와 상반되는 많은 사실을 알아내었다. 1609년 갈릴레이는 망원경으로 달의 표면을 관측하였다. 그는 인류 최초로 달의 표 면이 지구의 산과 계곡 같이 울퉁불퉁한 지형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관찰하였다. 갈릴 레이가 본 달의 표면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천상계가 수정구와 같은 것이 아니라 지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하였고, 당시 유럽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림 7-9 갈릴레이가 직접 제작한 망 원경 갈릴레이가 스케치한 달 표면 달은 천상의 천체를 닮지 않았고, 오히려 지구를 더 많이 닮았어. 우주를 천상계와 지상계로 나눈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을 모욕하지 마시오! 갈릴레이 그림 7-10 갈릴레이의 달 표면 관찰 또 갈릴레이는 망원경으로 플레이아데스 성단을 관찰하였는데, 맨눈으로는 여섯 개 의 별로 이루어진 별자리로 보였지만 망원경으로는 40개가 넘는 별이 보였다. 갈릴레 이는 은하수가 수많은 별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도 처음으로 밝혔다. 갈릴레이는 달의 산 높이를 측정하였 으며, 달의 어두운 부분이 희미하게 빛 나는 것은 지구 표면에 반사된 햇빛 때 문이라는 사실도 처음 알아내었다. 갈릴레이는 망원경으로 행성의 모양은 볼 수 있으나 별의 모양은 볼 수 없다는 점을 근거로 별이 행성들보다 훨씬 멀리 있다고 주장하였다. 갈릴레이 덕분에 우주의 크기는 엄청나게 확대되었다. 7. 과학 혁명의 시작, 천문학 혁명 69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69 2018-08-31 오후 4:24:25 갈릴레이 위성들 갈릴레이가 처음으로 관측한 목성의 4 개 위성을 갈릴레이 위성이라고 부른다. 1610년 갈릴레이는 망원경으로 목성 주위의 위성을 인류 최초로 관측하였다. 그는 처음에 그것들이 별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구 둘레를 도는 달처럼 목성 주위를 도는 위 성이라는 것을 알아내었다. 이 사실은 태양도 주위에 행성을 거느릴 수 있다는 것을 의 미한다. 따라서 코페르니쿠스가 주장한 태양 중심설의 유력한 증거가 되었다. 같은 해 갈릴레이는 망원경으로 금성을 관찰하여 금성이 달처럼 위상 변화가 일어난 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 체계에서 금성은 항상 지구와 태양 사이 에 있으므로 절대로 반달 크기 이상으로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체 그림 7-11 갈릴레이가 그린 금성의 위 상 변화 계에서는 금성이 지구에서 태양 반대편으로 갈 때 보름달 크기로 볼 수 있다. 갈릴레이 가 관측한 금성의 위상 변화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 체계가 틀렸다는 첫 번째 직접 적인 관측 증거가 되었다. 그 후 갈릴레이는 망원경으로 태양의 상을 스크린에 투영하여 태양의 표면을 관찰하 였다. 그는 이 관찰에서 태양의 표면에 검은 점이 있고, 이 점들이 태양을 가로질러 간 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갈릴레이의 관측으로 우주는 천상계와 지상계로 구분된 곳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라 는 인식이 확대되었다. 그러자 로마 가톨릭교회의 견제가 심해졌다. 1616년 교황청 추 그림 7-12 갈릴레이가 그린 태양 흑점 기경 위원회는 갈릴레이의 학문을 이단이라고 결론짓고 갈릴레이에게 그의 견해를 주 장하거나 가르치지 말 것을 명령하였다. 1632년 갈릴레이는 『프톨레마이오스-코페르니쿠스 두 개의 주요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라는 긴 제목의 책을 출간하였는데, 이 역시 로마 가톨릭교회로부터 제지를 받았 다. 그래서 갈릴레이는 로마 교황청으로 다시 소환되어 종교 재판을 받고 유죄 선고를 받았다. 종교 재판 이후 갈릴레이는 더 이상 천문학적 연구에 관여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그때까지 관측하고 연구한 천문학에 대한 업적들은 유럽의 천문학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 이후 그는 역학 연구에 더욱 매진하였다. 『프톨레마이오스-코페르니쿠스 두 개의 주요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 지구 중심설과 태양 중심설을 대화 형식을 빌려 객관적으로 비교 설 명하는 내용을 담은 책이다. 이 책에는 살비아티, 심플리치오, 사그레도 세 명의 인물이 나온다. 살비아티는 갈릴레이를 대변하는 지적인 인물로, 심플리치오는 아리스 토텔레스의 학문을 고집스럽게 주장하는 인물로, 사그레도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객관적인 입장에서 조정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세 사람의 대 화는 4일 동안 계속되고 주제는 날마다 바뀌었다. 이 책은 태양 중심설을 지지하는 새로운 역학 개념과 망원경으로 관 측한 사실들을 제시하고 있다. 사실상 태양 중심설을 지지한 이 책으로 갈릴레이는 로마 가톨릭교회로부터 심한 제지를 받았다. 종교의 가르침과 과학적 사실이 서로 모순될 때 어떤 태도 를 취하는 것이 옳은지 토의해 보자. 그림 7-13 갈릴레이의 『프톨레마이오스 - 코페르니쿠스 두 개의 주요 우주 체계 에 대한 대화』 70 Ⅲ. 과학 혁명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70 2018-08-31 오후 4:24:26 5 뉴턴, 중력을 말하다 사과는 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일까?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아프겠다! 뉴턴 뉴턴은 갈릴레이가 세상을 떠나던 해에 태어났다. 뉴턴은 대학에서 데모크리토스의 원 자론과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체계, 그리고 갈릴레이의 천문학 관측 자료들을 공부하였다. 이후 고향에 돌아와 태양 둘레를 공전하는 행성들을 궤도에 잡아두는 힘과 지구 표 면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힘의 연관성에 대해 연구하였다. 그는 지구 주위를 도는 고대 원자론 고대 그리스의 자연 철학자 데모크리 토스는 지구나 태양을 비롯한 모든 사 물은 크기와 질량은 다르지만 동일한 물질로 되어 있고, 그 물질의 기본은 눈 에 보이지 않는 원자라고 주장하였다. 달을 궤도에 묶어 두는 힘은 과수원에서 사과를 땅으로 떨어지게 하는 힘과 같은 중력 으로 동일한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687년 뉴턴은 중력에 관한 연구를 정리하여 『프린키피아』를 출간하였다. 그는 이 책에서 목성과 토성의 위성들이 케플러의 행성 운동 법칙을 따르며, 지구를 제외한 다 섯 행성들의 위상 변화로 그들이 태양의 주위를 공전한다는 것을 설명하였다. 또한, 뉴턴은 목성, 토성, 지구 의 위성들이 행성으로 끌리고, 모 『프린키피아』 천상계와 지상계의 모든 운동을 하나 의 원리와 법칙으로 설명한 고전 역학 의 기본서이다. 세 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권은 운 동에 관한 일반적인 명제, 2권은 물체 의 운동, 3권은 태양 중심설과 행성의 타원 궤도 운동을 다루었다. 든 행성과 위성들이 태양으로 끌 리는 힘은 중력이며, 중력에 의한 가속도는 오직 물체의 질량에만 관련한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밝혔다. 뉴턴은 사람들에게 무엇 이 우주를 움직이게 하는지를 알 게 하였다. 이로써 천문학 혁명이 그림 7-14 화가 블레이크가 그린 「뉴턴」 (1795년) 인간의 감성을 중요 시 한 블레이크가 복잡한 세상을 기하학으로 표현하려 한 뉴턴을 비판하 기 위해 그린 그림이다. 일단락되었다. 정리하기 천문학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두 사람의 우주론을 다음 단어들을 넣어 정리해 보자. 프톨레마이오스 지구 중심설 코페르니쿠스 태양 중심설 생각 넓히기 과학 혁명 이후에 우주의 중심에 대한 생각은 바뀌 었다. 우주의 중심이 달라진 것이 과학의 발전에 어떤 역할을 했는 지 말해 보자. 7. 과학 혁명의 시작, 천문학 혁명 71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71 2018-08-31 오후 4:24:27 8 과학 혁명의 완성, 고전 역학 혁명 학 습 목 표 ㅣ 역학 영역에서 갈릴레이, 데카르트, 뉴턴 등의 연구를 이해하고, 고전 역학 혁명의 배경과 내용을 설명할 수 있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선 뉴턴 “If I have seen further, it is by standing on the shoulders of giants.” -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이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뉴턴이 자신의 경쟁자였던 훅에게 보낸 편 지에 쓴 것이다. 자신이 이룬 모든 물리학적 발견이나 연구 성과는 자신의 천재적인 영감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전 사람 들이 이루어 놓은 업적 덕분이라는 것이다. 뉴턴은 케플러, 갈릴레이, 데카르트 등의 연구 업적 을 바탕으로 자신의 연구를 집대성한 『자연 철학의 수 학적 원리』, 일명 『프린키피아』를 출간하였다. 케플러, 갈릴레이, 데카르트는 뉴턴에게 있어 거인과 같은 존 재였던 것이다. 거인의 어깨 위에 선 난쟁이 그리스 신화에서 눈먼 거인 오리온 이 시력을 되찾기 위해 어깨 위에 난쟁이 케달리온을 메고 태양신 에게 나아간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이때 난쟁이가 더 멀리 더 잘 볼 수 있는 것은 난쟁이의 키가 크거나 시력이 더 좋아서가 아 니라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케플러가 행성의 운동 법칙을 밝혔으나 누구도 행성이 왜 그런 운동을 하는지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하였다. 뉴턴 은 행성이 어떤 힘에 의해 타원으로 회전하는지를 규명하 는 과정에서 만유인력의 법칙과 운동 법칙을 발견하였다. 『프린키피아』는 이러한 뉴턴의 연구 과정과 결과를 체계 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코페르니쿠스가 시작했고, 케플러 와 갈릴레이가 발전시킨 천문학 혁명은 뉴턴의 고전 역학 혁명으로 이어졌고, 『프린키피아』에 의해서 완성되었다. 천문학 혁명으로 시작된 과학 혁명이 뉴턴에 의한 고전 역학 혁명으로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 는 까닭은 무엇일까? 72 Ⅲ. 과학 혁명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72 2018-08-31 오후 4:24:28 1 갈릴레이, 고전 역학의 기초를 마련하다 과연 그럴까? 어떤 것이 먼저 떨어질까? 당연히 크고 무거운 것이 먼저 떨어지지. 갈릴레이의 역학 연구는 태양 중심설이라는 새로운 우주 체계를 받아들일 때 생기는 여러 가지 운동학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우선 갈릴레이는 아리스토텔레 스 역학 이론의 모순을 밝히기 위해 낙하 이론을 연구하였다. 운동학 힘과 운동의 관계는 생각하지 않고 물 체의 운동만을 수학적으로 기술하는 학문으로 역학의 한 분야이다. 물체는 무게에 상관없이 같은 속도로 낙하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달 아래 세계(지상계)의 물질은 물, 불, 공기, 흙의 4가지 원소로 구성되어 있는데, 공기와 불은 가벼운 것이므로 지구 중심에서 위로 올라가려고 하고, 흙과 물은 무거운 것이므로 지구 중심을 향하려고 하는 본성이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흙이나 물을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면 지구의 중심을 향해 직선으로 낙하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운동 아리스토텔레스는 세상을 영원불멸하 여 완전한 천상계와 생성・소멸을 반복 하여 불완전한 지상계로 나누고 천상 계는 원운동이, 지상계는 수직 방향 직 선 운동이 자연 운동이라고 하였다. 운동을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낙하 속도는 물체의 무게에 비례하므로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빨리 떨어진다고 하였다. 그러나 갈릴레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론을 비판하고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 체는 동시에 떨어진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낙하 이론을 정립하였다. 하지만 당시의 사 람들은 갈릴레이의 생각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실제 생활에서는 공기의 저항 때문 에 물체의 낙하 속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진공 상태에서의 낙하 실험이 필요하다고 한 갈릴레이의 주장은 나중에 보일에 의해 실험으로 증명되었다. A는 V1의 속도로 떨어지고, B는 V2의 속도로 떨어진다면 A와 B를 끈으로 연결한 (A+B)의 속도 V3은 얼마나 될까? A는 B를 더 빨리 떨어 지게 하고 B는 A를 더 늦게 떨어지게 하므로 (A+B)는 A보다 낙하 속도가 느릴 것이다. V1 갈릴레이 V2 (A+B)는 A와 B의 무게가 합쳐졌기 때문에 A보다 더 빨리 떨어질 것이다. 동일한 현상에서 서로 다른 결과가 나오므로 무거운 것일수록 빨리 떨어진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은 모순이지. 모든 물체는 무게에 상관없이 같은 속도로 떨어져야 해. V3 갈릴레이 그림 8-1 갈릴레이의 낙하 이론에 대한 사고 실험 8. 과학 혁명의 완성, 고전 역학 혁명 73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73 2018-08-31 오후 4:24:30 지구의 물체는 지구를 따라 원운동을 한다 - 관성 당시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체계를 따르던 과학자들은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한다면 ‘왜 지표의 높은 곳에서 아래로 떨어뜨린 물체가 똑바로 낙하하는가?’하는 의문을 갖고 있었다. 갈릴레이는 이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관성이라는 개념을 생각해 내었다. 그는 물체가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수평 방향으로 지구의 원운동과 같은 속도를 유 갈릴레이 역학의 한계 갈릴레이의 관성 개념은 오늘날의 관 성 개념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가 말 한 천상계의 자연 운동인 등속 원운동 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갈릴 레이의 역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역학 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다. 지하면서 아래로 떨어지므로 똑바로 낙하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였다. 또 갈릴레이는 마찰이 없는 수평면에서 공을 굴리면 공은 같은 속력으로 계속해서 굴러 갈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는 경사면을 굴러 내려온 청동 구슬이 외부의 힘을 전혀 받지 않는다면 지구 를 중심으로 하는 등속 원운동을 영원히 할 것이며, 그것은 자연 법칙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갈릴레이가 관성 운동이라고 한 원 궤도 운동은 속력은 일정하지만 방 향이 계속 변하는 가속도 운동이기 때문에 역학적인 오류가 있었다. 하지만 갈릴레이는 역학에 관성의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고전 역학을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항상 같은 높이로 올라온다. 수평면의 경우, 언제까지나 일정한 속도로 이동한다. 그림 8-2 갈릴레이의 사고 실험 경사면과 수평면에서 청동 구슬의 움직임을 설명하기 위해 관성의 개념을 도입하였다. 그림 8-3 청동 구슬로 경사면 실험을 하는 갈릴레이(왼쪽에서 두 번째. 검은 색 옷을 입고 책을 가리키고 있는 사람) 달에서 증명된 갈릴레이의 낙하 이론과 과학적 방법론 1971년 8월 2일, 아폴로 15호의 사령관인 스콧은 달 표면 위에서 망치와 깃털을 떨어뜨리는 실험을 하였다. 갈릴레이가 옳았습니다. 전 세계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어깨 높이에서 깃털(30g)과 무거운 알 루미늄 망치(1.32kg)를 동시에 떨어뜨렸다. 실험 결과, 무게가 44배 정도 차이 나는 두 물체는 달 표면에 동시에 떨어졌다. 갈릴레이의 사고 실험은 당시에는 증명할 수 없었지만 현대에 와서 우주에서의 실 험을 통해 결국 사실임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사고를 통해 가설을 세운 갈릴레이의 낙하 이론이나 관성의 개념은 방법론적으로 과학의 속성을 잘 보여 주는 사례이다. 갈릴레이의 가설이 모두 타당했을지 생각해 보자. 그림 8-4 달에서의 낙하 실험 74 Ⅲ. 과학 혁명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74 2018-08-31 오후 4:24:32 운동은 운동을 하지 않는 물체에 상대적으로 나타난다 - 상대성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체계가 남긴 또 다른 역학적 문제는 ‘지 내가 볼 때, 이 사과는 정지 해 있어. 구가 하루에 한 바퀴라는 엄청난 속도로 도는데, 어떻게 지구에 있는 사람은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가?’하는 것이었다. 갈릴레이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상대성’이라는 개념을 도입 내가 볼 때, 저 사과는 움직 이고 있어. 민국 하였다. 운동은 운동을 하지 않는 물체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나 타나는 것이며, 운동을 같이 하고 있는 물체에 대해서는 나타나 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한 갈릴레이는 정지하고 있는 배와 등속으로 움직이고 있는 배 를 예로 들어 설명하였다. 그림 8-5 상대성에 대한 예시 움직이고 있는 기차 안에 있는 사과를 기차 밖의 대한이가 보면 움직이고 있고, 기차 안의 민국이가 보면 정 지하고 있다. 당신이 큰 배의 선실에 있다고 가정하자. 선실에는 파리와 나비가 날아다니고, 금붕어가 들어 있는 어항도 있다. 또 병이 하나 매달려 있고 그 밑에 큰 그릇이 있는데, 병에서 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다. 갈릴레이의 상대성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정지하고 있는 배 갈릴레이의 상대성은 정지해 있는 곳 이나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곳 이나 장소에 상관없이 위로 곧바로 던 진 물체는 다시 그 자리로 떨어지므로 장소에 따라 운동은 서로 구별할 수 없 다는 것이다. 반면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은 갈릴레 이의 상대성을 발전시킨 것으로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관측자들은 같은 사건에 대해서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 에서 일어난 것으로 관측하지만 물리 법칙은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것이다. 움직이고 있는 배 정지하고 있는 배 안과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배 안에서 적용되는 물리 법칙은 똑같다. 운동하는 물체와 같은 운동을 하고 있는 물체는 그 물체의 운동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림 8-6 갈릴레이의 상대성 갈릴레이는 고전 역학의 발전에 필요한 개념들을 창안하였다. 이 개념들은 나중에 뉴 턴이 고전 역학을 완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역학 체계를 벗어 나기 위한 탄탄한 기초를 마련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역학 이론을 정립할 때 가설과 논증, 실험이라는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여 근대 과학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하였다. 8. 과학 혁명의 완성, 고전 역학 혁명 75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75 2018-08-31 오후 4:24:36 2 데카르트, 고전 역학을 발전시키다 무엇이 진리인가? 의심하는 것 자체가 곧 존재한다는 것! 그것이 진리다. 데카르트 데카르트(Descartes, R.; 1596 ~1650) 프랑스의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로 해석 기하학의 창시자이다. 1637년에 출간한 『방법서설』에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말로 인간의 이 성을 강조하여 합리론과 계몽사상의 토 대를 마련하였다. 유럽인들에게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철학은 거대한 지식 체계이며, 든든한 정신세계였 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케플러 등이 새로운 발견과 과학 이론을 제시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철학은 무너지게 되었다. 게다가 하나의 종교였던 기독교마저 로 마 가톨릭교회와 개신교로 분화되자 유럽인들의 정신세계는 큰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명확한 명제를 제시하다 유럽인들은 무엇이 진리인가에 대해 강한 의문을 가졌다. 하지만 아무도 정확한 답을 알려 주지 못할 것이라는 깊은 회의주의에 빠졌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데카르트였다. 그는 존재하지 않는다면 의심을 할 수 없고, 의심 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절대 부인할 수 없는 존재의 증명이라고 주장하였다. 진리에 대 한 의심으로 가득 찬 유럽인들에게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명확한 명제를 제시하여 정 제1원인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나는 세 상 모든 것의 원리인 제1원인을 전체 에 걸쳐 찾고자 하였다. 이 목적을 위해 나는 세계를 창조한 신 이외는 아무것 도 고려하지 않았다.’라고 썼다. 신적인 방황을 멈추게 하였다. 데카르트는 갈릴레이처럼 과학에서 실험적 검증을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하지 만 인간의 감각보다는 명확한 이성에 의존해서 자연 현상을 이해하였다. 데카르트는 역학의 출발점을 신에 두었다. 그는 ‘신은 운동의 제1원인이며, 항상 우주 속에 같은 양의 운동을 보존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데카르트는 이것을 대전제로 역학 의 기본 원리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1 제 법칙 ㅣ모든 물질은 가능한 한 항상 같은 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 따라서 한 번 움직이면 언제까 지나 계속 움직인다. 2 제 법칙 ㅣ모든 운동은 그 자신으로부터 직선적이다. 따라서 원운동을 하는 물질은 자신이 그리는 원 의 중심으로부터 항상 멀어지려고 한다. 3 제 법칙 ㅣ물체는 보다 강력한 다른 물체와 충돌할 때는 자신의 운동을 전혀 잃어버리지 않지만, 보 다 약한 물체와 충돌할 때는 그 약한 물체로 이동한 만큼의 운동을 잃어버린다. 그림 8-7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76 Ⅲ. 과학 혁명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76 2018-08-31 오후 4:24:36 데카르트는 제1법칙으로 갈릴레이가 불완전하게 제시하였던 관성의 개념을 올바르 게 확립하였다. 또한, 그는 제3법칙에서 물체가 충돌하면 운동이 교환된다는 ‘운동량 보존 법칙’의 개념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데카르트의 개념에도 한계는 있었다. 그는 중력과 같이 서로 분리되어 작용하는 힘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단지 운동이라는 단일한 원리로 다양한 자연 현상들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데카르트가 제시한 가능성들을 실제 진리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일은 뉴턴의 몫이었다. 기계론적 자연 철학을 제시하다 데카르트는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물질과 운동의 관점에서 설명이 가능하며, 수학적 법칙으로 정리될 수 있다는 기계론적 자연 철학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를 과 데카르트의 와동 가설 학 분야 전반에 적용하였다. 데카르트는 복잡한 생명 현상도 기계적 모형을 이용한 기계론적 관점에서 설명이 가 능하다고 하였다. 그는 자연을 시계와 같이 생명이 없는 물질적 재료로만 여겼다. 자연 을 생물과 무생물로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자연의 변화는 기계적인 인과 관계로 파악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한편, 그는 모든 물체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입자들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하고, 우주를 설명할 때도 이를 적용한 와동 가설을 내세웠다. 또한, 물체의 성질은 구성 입자 들의 형태, 크기, 배열 및 운동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하며, 힘의 원거리 작용은 불가능하 다는 등 당시로 볼 때는 매우 진보된 과학 이론을 제시하였다. 데카르트의 과학은 자연에서 중세적 신비로움을 제거하였다. 자연과 우주는 기계적 법칙에 따라 움직이며, 만물은 물체의 위치와 운동으로 설명 가능한 객관적인 실체라고 하였다. 그의 기계론적 자연 철학 위에 뉴턴의 근대 과학이 세워졌고, 오늘날까지 이어 데카르트가 생각한 우주의 소용돌이 우주 공간이 아주 작은 입자들로 가득 차 있고, 이들은 천체 주변에 큰 와동 (소용돌이)을 형성한다는 가설이다. 그의 와동 가설은 행성의 운동을 정량 적으로 나타낼 수 없어 케플러 제3법 칙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 이론이었다. 지고 있다. 그림 8-8 통증의 전달 경로 데카르트는 『인간에 대한 강 연』에서 인간의 육체를 기계적 유기체로 묘사하였다. 그림 8-9 소화하는 오리의 설계도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과 학 철학에 영향을 받아 자크 드 보캉송이 설계한 자동 기계이다. 8. 과학 혁명의 완성, 고전 역학 혁명 77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77 2018-08-31 오후 4:24:37 3 뉴턴, 고전 역학 혁명을 마무리 짓다 물체를 땅에 떨어지게 하는 힘을 알아냈어! 그런데 아주 멀리 떨어진 천체들 사이에도 그 힘이 존재할까? 뉴턴 케플러, 갈릴레이, 데카르트가 제안하거나 사용한 역학적 개념 중 일부는 모호하고 부정확하였다. 이런 부족함을 채우고 고전 역학을 완성시킨 사람이 바로 뉴턴이다. 뉴턴이 눈에 보이지 않는 신비한 힘의 존재를 믿은 까닭 뉴턴이 평생 과학에 몰두한 배경에는 비밀스러운 힘의 작용이나 물질의 신 비한 성질을 알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 다. 그래서 그는 연금술을 연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였다. 이것들로부 터 뉴턴은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의 존재 를 믿는 사고의 유연함을 갖게 되었다. 뉴턴은 17세기 중엽 영국의 런던에 흑사병이 유행했을 때 다니던 학교가 휴교를 하 자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는 그곳에서 흔히 말하는 ‘기적의 해’를 보냈다. 그가 고향에 있는 동안에 주로 한 일은 데카르트가 주장한 이론들이 옳은지를 수학 적으로 검증하는 일이었다. 데카르트주의자들은 지구 주위로 달을 돌게 하는 힘과 지 구 표면에서 물체를 땅에 떨어지게 하는 힘이 같은 것임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뉴턴 은 이것을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하고 수학적으로 입증하고자 하였다. 뉴턴은 연구를 거듭하면서 달이 공전 궤도를 따라 회전하는 데 필요한 힘과 지구 표 면의 중력을 비교하여 두 힘이 아주 흡사하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또한, 행성을 공전 궤 도를 따라 회전시키는 힘은 공전 궤도 중심에서 행성까지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는 것도 추론해 내었다. 중력의 비밀에 대한 이해 뉴턴은 천체들의 질량과 거리에 따라 작용하는 중력의 크기를 계산하였고, 이것으로 행성 운동을 정밀하게 예측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천체 사이에 작용하는 힘의 정체는 무엇인 가?’라는 것이었다.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자연 철학에 따르면 힘은 운동하는 물질과의 충돌이나 접촉이 있어야만 전달될 수 있다. 그런데 지구와 달과 같이 거리가 아주 먼 천체들은 서로 접촉할 수 없으므로 힘의 전달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러나 뉴턴은 데카 르트처럼 기계론적 사고에만 빠져 있지 않고 특유의 유연함을 발휘하였다. 그는 떨어져 있는 물질 입자들 사이에 인력과 척력이라는 미세한 힘이 작동한다고 생 각하였다. 또 이 힘들은 역학의 전 분야뿐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는 천체들 사이에도 작용할 것으로 짐작하였다. 뉴턴은 태양과 행성 사이에 단일한 인력이 작용함을 밝혔고, 그 크기를 수학적으로 증명하였다. 그리고 그 힘으로 케플러의 운동 법칙을 설명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설명들 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 바로 『프린키피아』였다. 78 Ⅲ. 과학 혁명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78 2018-08-31 오후 4:24:38 뉴턴은 『프린키피아』에서 중력에 대한 이야기 외에 근대 물리학의 근간이 되는 세 가 지 운동 법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1 제2법칙 ㅣ물체의 가속도는 물체에 작용하는 힘에 비례하고, 물체 질량에 반비례하며, 방향은 힘의 제 법칙 ㅣ물체에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물체의 속도는 변하지 않는다(관성 법칙). 방향과 같다(가속도 법칙). 3 제 법칙 ㅣ두 물체가 상호 작용하는 경우에 각각의 물체가 서로 작용하는 힘은 항상 크기가 같고, 방 향이 반대이다(작용 반작용 법칙). 뉴턴의 제2법칙 뉴턴의 제2법칙을 식으로 만든 것이 그 유명한 F = ma이다. 이 식은 18세기 유럽의 수학자들이 『프린키피아』에 나 오는 제2법칙을 수식으로 표현한 것 이다. 뉴턴은 운동 법칙을 간단한 수학적인 원리로 정리하여 모든 과학자들이 자연 현상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뉴턴의 운동 법칙은 자연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운동을 설명할 수 있었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설 이후 뉴턴은 천상계와 지상계가 동일한 힘 즉, 중력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밝혔다. 이로써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천상과 지 상의 구별이 과학계에서 사라지게 된 것이다. 뉴턴은 우주의 물체들 사이에 작용하는 계몽주의 16~18세기에 구습을 타파하기 위해 유럽 전역에서 일어난 혁신적인 사상 운동이다. 힘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일을 하였다. 뉴턴의 과학은 과학을 넘어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과학 이후 인류의 문명은 이성을 바탕에 둔 문명으로 대전환을 이루었다. 18세기 유럽의 계몽주의 시대 를 여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데카르트 시대 전후에 팽배하였던 회의주의 가 종식되고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고취시켰다. 뉴턴의 과학은 철학, 정치, 그리고 경제에도 적용되어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 뉴턴의 과학이 인간 사고에 미친 영향 사람들은 지옥불의 협박에 토대를 둔 도덕 체계를 거부하고 인간의 이성과 미덕에 바탕을 둔 도덕 체계에 더 큰 가 치를 두었다. 그 이후에 최대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지켜 주는 시민 의식으 로 발전시켜 나가게 되었다. 다. 현대인들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과학적인 사고방식으로 일을 추진하고, 그 결과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에 익숙한데, 이런 전통의 시작에는 뉴턴의 과학이 있었다. 그림 8-10 볼테르의 책 낭독회 프랑스의 계몽 사상가들은 살롱에 모여 책을 읽거나 토론을 하였다. 정리하기 데카르트와 뉴턴의 과학이 계몽주의 시대를 열게 된 까닭을 다음 단어들을 넣어 정리해 보자.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기계론적 철학 중력 생각 넓히기 뉴턴의 과학은 인간의 도덕, 종교, 정치, 경제 등 여러 분야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렇게 된 결정적인 까닭이 무엇 인지 토의해 보자. 과학적 사고 8. 과학 혁명의 완성, 고전 역학 혁명 79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79 2018-08-31 오후 4:24:38 하비의 혈액 순환에 관한 실험 과학 혁명기에 우주와 자연을 이해하는 방식을 두고 천문학과 역학 르는 것을 관찰한 실험이다. 이 실험은 동맥과 정맥이 이어져 분야에 큰 변화가 있었다. 그렇다면 다른 분야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 있음을 보여 준다. 을까? 하비는 결찰사로 자신의 팔을 세게 매어 동맥과 정맥의 흐 과학 혁명기 동안 고대 이래 통용되어 온 생 름을 모두 차단시켰다. 그러자 팔은 점차 차가워졌고, 동맥은 리학에도 변화가 있었다. 하비(Harvey, W.; 혈액으로 가득 차 부풀어 올랐다. 1578~1657)가 오랫동안 인체 이론의 바 잠시 후 하비는 정맥은 막힌 채로 두고 동맥의 결찰사만 풀 탕이 되어 온 갈레노스 이론 체계의 어 주었다. 그러자 동맥의 혈액이 흘렀고, 혈액이 흐른 근육은 모순을 밝히고 혈액의 순환 원리 따뜻해졌다. 대신 정맥은 부풀어 올랐다. 이것으로 혈액이 동 를 새로 발견한 일이다. 생리학의 변화를 가져온 하 맥을 통해 몸의 끝부분으로 갔다가 정맥을 통해 심장으로 되 돌아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 주었다. 비의 혈액 순환에 관한 실험은 무엇일까? 갈레노스는 흡수된 음식물이 간에서 혈액으로 만들어지고, 이 혈액이 심장을 통해 온몸으로 이 동한 후 소비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하비는 혈액은 소비되지 않고, 심장 에서 나와 온몸을 돈 후 정맥을 거 쳐 다시 심장으로 돌아간다는 ‘혈액 순환론’을 주장하였다. 하비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자신 의 팔을 이용한 실험을 하였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결찰사 실험’이다. 그림 8-11 하비 *결찰사 실험은 그림처럼 팔의 윗부 분을 줄로 묶을 때 세게 묶으면 피부 깊숙한 곳에 있는 동맥 까지 묶여서 팔의 윗부분이 부풀어 오르고, 조금 약하게 묶으 면 피부 가까이에 있는 정맥만 묶여서 아랫부분이 부풀어 오 그림 8-12 결찰사 실험 *결찰사: 지혈 등을 위해 혈관 등을 묶는 실 하비는 동물의 심장 동맥을 잘라 거기서 흘러나오는 혈액의 양을 측정하는 실험을 하였다. 동물은 1분에 72회 심장 수축을 하였고, 한 번 수축할 때마다 56.6g의 혈액이 배출되었는데, 1시간 동안에 나온 혈액 의 양을 72회(분당 수축 횟수) × 60분( 1시간) × 56.6g ≒ 245kg으로 계산하였다. 이 결과로 하비는 어떻게 갈레노스 의 혈액 이론의 오류를 밝혔을까? 80 Ⅲ. 과학 혁명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80 2018-08-31 오후 4:24:40 단원 매듭짓기 정리하기 천문학 혁명과 역학 혁명의 흐름을 다음 용어를 활용하여 정리해 보자. 1. 천문학 혁명: 코페르니쿠스 티코 브라헤 케플러 갈릴레이 뉴턴 2. 역학 혁명: 갈릴레이 데카르트 뉴턴 이해하기 사학자들이 르네상스를 과학 혁명의 불씨로 보는 까 1. 역 턴에 의해 완성된 과학 혁명은 과학 분야를 넘어서 3. 뉴 닭이 무엇인지 설명해 보자. 유럽 사회의 모든 분야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주었다. 과학 혁명으로 유럽 사회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예 2. 사람들은 가장 르네상스적인 인물로 레오나르도 다빈 를 들어 설명해 보자. 치를 손꼽는다. 그 까닭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예를 들 어 설명해 보자. 프로젝트 활동 적용하기 과학자들의 우주론에 대한 역할극 대본 쓰기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우주의 중심과 운동에 대한 역할극의 대본을 써 보자. 1. 우주론을 연구한 과학자들을 선정하자. 예시) 프톨레마이오스, 코페르니쿠스, 티코 브라헤 등 2. 각 과학자의 입장에서 우주의 중심이 무엇인지, 천체들은 어떻게 운동한다고 주장했는지 조사해 보자. 3. 조사한 자료와 아래 자료를 토대로 각 과학자의 역할에 따라 우주의 중심과 운동에 대한 대본을 써 보자. 토성 목성 태양 토성 금성 지구 수성 달 화성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 화성 금성 수성 태양 달 수성 태양 지구 1회의 회전 1일 지구 달 목성 토성 금성 화성 천구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티코 브라헤의 우주 Ⅲ단원 매듭짓기 81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81 2018-08-31 오후 4:24:40 화학의 성립과 발전 생물학의 성립과 발전 근대와 현대 물리학의 성립과 발전 지구과학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82 2018-08-31 오후 4:24:43 실험하랴, 연구하랴, 관측하랴. 과학자는 할 일이 정말 많구나! 선생님! 이 꽃 이름이 뭐예요? 분류학 교수님께 가 봐요. 시대 설명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83 이번 학기 어떤 과목 수강할거니? 글쎄. 과목이 너무 많아서 고르기 힘들어. 과학 혁명의 시대를 지나면서 인간은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 신의 존재를 떠올리는 대신에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과학적 방법으 로 탐구하기 시작하였다. 과학의 여러 분야가 독립적으로 발전하였고 학문으로 성립되었다. 현대에 이르러 과학의 발달이 가속 화되면서 전문화되고 세분화되었다. 2018-08-31 오후 4:24:46 화학의 성립과 발전 화학은 세상의 물질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화학의 토대를 이루는 것은 원자와 분자의 상호 작용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원소나 원자의 개념을 상상했고, 그 후 연금술에서 ‘현자의 돌’을 찾기 위해 물질의 변환을 다루었다. 18세기에 이르러 화학은 연금술의 마술적 신비주의를 걷어 내고 진정한 과학으로 거듭났다. 실험과 관찰이라는 과학적 방법을 도입하고, 원자와 분자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한 것이다. 고대로부터 원자에 대한 개념은 있었지만, 내가 원자의 크기와 질량, 어떻게 결합하는지도 알아냈다구. 내가 화학의 기초를 마련했는데 그런 나를 단두대에서 처형하려 하다니 너무해. 난 분자 개념을 정립했는데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다니. 지금까지 알려진 원소를 배치하다가 주기율표를 만 들었어. 84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84 2018-08-31 오후 4:24:51 9 근대 화학 체계의 성립 학 습 목 표 ㅣ 라부아지에의 연소 이론, 돌턴의 원자설,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 등의 과학사적 의의를 설명할 수 있다. 의심이 많은 화학자 1624년, 프랑스 화학자 클라브는 이단 혐의로 체 포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설을 반대했기 때 문이다. 그는 몇몇 지식인들과 모여서 ‘모든 물질이 물과 흙, 그리고 수은, 황, 염의 혼합물로 이뤄졌다.’고 주 장했다. 이렇게 17세기 초반까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설 이외에 다른 이론에 대해 법적인 통제가 이 뤄지고 있었다. 그런데 17세기 후반이 되면서 4원소설에 대한 문 제 제기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보일(Boyle, R.; 1627~1691)은 1661년 『회의적 화학자(The Sceptical Chymist)』라는 책을 썼다. 보 일은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설을 비롯해 연금술의 원소 체계를 의심하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예를 들어 4원소설에 따르면 물, 불, 공기, 흙의 4원소 모두는 모든 물질 속에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금이 나 은, 어떤 물질에서도 4가지 원소를 실험적으로 추 출해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원소는 무엇일까? 원소 라는 것이 있기는 한 것일까? ‘의심이 많은 화학자’는 바로 보일 자신이었던 것이다. 보일은 진공 펌프를 만들고 J자관 실험으로 ‘보일의 법칙’을 세운 과학자이다. 진공 펌프를 사용해 공기 에 관한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공기의 물리적 성질을 파악했는데, 이러한 그의 연구는 원소의 개념을 바로 잡기 위한 것이었다. 세상을 구성하는 근본 물질은 무엇인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로부터 시작한 질문에서 보일은 4원소설을 폐기하고 근대적인 원소의 정의를 찾아냈다. ‘작은 알갱이’, ‘미립자’ 등의 우리가 보거나 만져 본 적 없는 추상적인 실체를 가정하고, 원소 체계는 실험적 사실과 양립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왕립학회와 같은 공개적인 곳에서 이루어진 실험과 관찰을 원소 이론의 증명 방법으로 채택했다. 이러한 보 일의 선구적 노력은 라부아지에와 돌턴으로 이어져 근대 화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의 문을 열었다. 보일이 연금술에서 화학으로 넘어가는 기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무엇일까? 9. 근대 화학 체계의 성립 85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85 2018-08-31 오후 4:24:53 1 라부아지에, 연소 이론을 확립하다 공기에 대한 관심은 기체의 성질을 다루는 기체 화학으로 발전 하였다. 18세기 이전에 공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 중에 하나이며 단일한 물질로 여겨졌다. 그러나 18세기에 들어서면서 다양한 화 학적 성질을 지닌 여러 종류의 공기를 발견하였다. 1753년 블랙 은 이산화 탄소를 발견하고 ‘고정된 공기’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 는 대기 중에서 ‘고정된 공기’를 분리하고 그 기체만 갖는 화학적 성질을 증명했다. 블랙의 이산화 탄소 발견은 공기가 단일한 물질 그림 9-1 1768년 조지프 라이트의 「진공 펌프 속의 새에 관한 실험」 마술사와 같이 보이는 화학자는 진공 펌프 속에 공기가 제거되면 새가 살아남을 수 있는지 실험을 하고 있다. 이 그림은 18세기 기체 화학이 얼마나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었는지 잘 보여 준다. 이라는 전통적인 생각을 깨뜨렸다. 블랙의 이산화 탄소 발견 이후, 화학자들은 많은 기체들을 공기 중에서 분리하였다. ‘가연성 공기’로 불렸던 수소, ‘나빠진 공기’로 불린 질소, ‘초석의 공기’로 불린 일산화 질소, ‘플로지스톤이 빠져 나간 초석의 공기’로 불린 이산화 질소 등이었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기체는 셸레와 프리스틀리가 발견한 산소였다. 프리스틀리(Priestley, J.; 1733~1804) 영국의 화학자, 1774년 볼록렌즈를 이 용하여 산화 수은에 태양 광선을 쬐어 산소와 수은을 분리했다. 셸레(Scheele, Carl Wilhelm; 1742~1786) 스웨덴의 과학자. 1770년대 초 ‘불의 공기’란 이름의 산소를 분리하는 데 성 공했지만 공표하지 않았다. 슈탈(Stahl, G.E.; 1660~1734) 독일의 화학자, 스승인 베허(Becher, J:1635~1682)와 함께 플로지스톤설 을 체계화하고 널리 퍼트리는 데 기여 했다. 연소 현상은 물질에서 플로지스톤이 빠져나가는 것이다 그리스어의 ‘불꽃’에 어원을 둔 플로지스톤은 물체가 불에 탈 때 빠져나가는 원소라 고 생각되었다. 물체가 타는 과정을 보면,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재만 남고 무엇인가 빠 져나간다는 느낌을 주는데, 이것을 플로지스톤으로 본 것이다. 1723년 독일 화학자 슈탈은 무게가 없는 가연성 물질 입자가 있다고 가정하고, 플로지 스톤 이론을 체계화하였다. 물질 속에는 플로지스톤이 포함되어 있고, 그 물질에서 플로 지스톤이 빠져나가는 현상이 연소이며, 플로지스톤을 많이 가지고 있는 물질일수록 잘 탄 다는 것이다. 오늘날 연소가 물질이 공기 중의 산소와 결합하는 과정이라면, 플로지스톤 이론에서 연소는 물질 속에 포함된 플로지스톤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과정이었다. 나는 플로지스톤 이야. 그림 9-2 플로지스톤 이론 나무가 타는 것을 관찰하면 나무 위에서 춤 추는 화염과 연기를 통해 나무가 어떤 성분 을 공기 중으로 내보내고 있다고 가정할 수 있었다. 여기서 그리스어로 ‘불꽃(phlóx)’이 ‘플로지스톤(phlogiston)’의 어원이 되었다. 86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86 나무 밖으로 나갈래. 앗, 뜨거워 ! 2018-08-31 오후 4:24:55 그런데 플로지스톤 이론에는 문제가 있다. 불에 탈 때 나무는 무게가 줄지만 금속 재의 경우에는 무게가 늘어난다. 어떻게 금속들은 플로지스톤을 내주면서도 무게가 늘어나는 것일까? 대부분의 화학자들은 이 문제를 회피했고, 일부는 플로지스톤이 무 게가 없다거나, 심지어 음의 질량이나 부력을 운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영국의 화학자 프리스틀리는 강력한 플로지스톤 이론 추종자였다. 1774년 그는 붉은 색 수은 금속 재를 가열하여 새로운 기체를 얻었는데, 이 기체는 촛불을 더 잘 타게 하는 금속 재 금속은 일반적으로 밝은 불꽃을 내며 타지는 않지만, 공기 중에서 태우면 금 속 재가 남는다. 이 과정을 18세기에는 하소(煆燒)라고 불렀다. 이 금속 재를 목탄(숯)으로 가열하면, 원래 금속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금속의 하소 과 정도 ‘플로지스톤이 빠져나가는 것’이 라고 생각했고, 목탄에는 플로지스톤 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서, 다시 금속을 재생성한다고 설명하였다. 성질이 있었다. 프리스틀리는 이 기체에 플로지스톤이 적다고 생각하여 ‘플로지스톤이 없 는 공기(산소)’라 불렀다. 연소는 산소를 흡수하는 것이라는 역발상을 시도하다 라부아지에는 1776년 프리스틀리와 똑같은 실험을 하고, 수은 금속 재에서 얻은 공 기를 ‘산소’라고 했다. 산소는 비금속과 결합하여 산을 생성하므로, ‘산을 만드는 물질’ 이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라부아지에는 연소할 때 플로지스톤을 방출하는 것이 아니라 산소를 흡수한다는 역 발상을 시도했다.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자신의 화학 체계를 세웠다. 그러나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라부아지에의 새로운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고 1780년대까지 플로지스톤 라부아지에(Lavoisier, A.L.; 1743~ 1794) 프랑스의 화학자, 새로운 연소 이론을 세워 플로지스톤설이 틀렸음을 입증했 다. 또 화학 반응에서 질량 보존의 법칙 을 확립했고, 원소와 화합물을 구분하 고 화학 명명법의 기초를 마련했다. 이론을 고수하였다. 프리스틀리도 새로운 화학 이론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고 1804년 최후의 플로지스톤 화학자로 삶을 마감했다. 산소의 발견은 화학 혁명의 기폭제였다. 한쪽에서는 ‘플로지스톤이 없는 공기’를 발견 했다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산소’를 발견했다고 하였다. 둘 다 똑같은 실험을 했고 플로지스톤을 잃는 것이 산소를 얻는 것이라고 재해석이 얼마든지 가능하기에, 똑같은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프리스틀리의 화학 체계를 수용할 것인 가, 아니면 라부아지에의 화학 체계를 수용할 것인가의 갈림길에서 결정적인 열쇠를 쥐 연소는 플로지스톤을 방출하는 것이 아니라 산소와 결합하는 것이 아닐까? 고 있는 것은 사고의 전환이었다. 그림 9-3 라부아지에의 실험실 그림 9-4 연소에 대한 실험을 재해석한 라부아지에 9. 근대 화학 체계의 성립 87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87 2018-08-31 오후 4:24:55 새로운 물질관을 확립하다 라부아지에는 왜 플로지스톤을 버리고 산소를 선택했을까? 라부아지에는 화학 체계를 세우려는 원대한 꿈을 가졌다. 그의 화학 체계에는 몇 가 지 원칙이 있었다. ‘물질적 실체’, ‘물질의 양’, 그리고 ‘보존’에 대한 통찰이었다. 이것을 바탕으로 정량적이고 일관적인 설명을 시도하였다. 그런데 플로지스톤은 ‘무게가 없는 물질 입자’로서 물질적 실체로 취급할 수 없었다. 단지 연소 현상을 그럴듯하게 설명하 기 위해 제시된 불분명한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라부아지에의 원소 라부아지에는 고대 그리스의 데모크리 토스가 말한 ‘물질을 구성하는 단순하 고 더 나눌 수 없는 원자’에 대해서 모 르는 바가 아니었지만, 원자 가설보다 는 실험실에서 더 세분할 수 없는 ‘단순 물질’을 택했다. 원소는 눈에 보이고 만 질 수 있는 실체였지만 원자는 가설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는 다양한 물질들을 어떻게 정의하고 분류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먼저 물질에 대한 관념적 가설들을 버렸다. 물리적으로 관찰되고 측정이 가능한 것들을 ‘물질’로 받아들 였다. 오늘날 ‘원소’로 불리는, ‘화학적으로 더 이상 분해할 수 없는 단순물질’을 자신의 화학 체계에 토대로 삼았다. 그 다음에 원소들이 어떻게 서로 결합하고 분리되는지를 연구하면서 화합물과 혼합 물의 개념을 세웠다. 라부아지에는 원소, 화합물, 혼합물을 근본적으로 구별하면서 과 학 혁명기 이래로 화학 변화를 둘러싸고 있었던 불확실성을 제거하였다. 질량 보존의 법칙을 발견하다 지구상의 ‘질량’을 가진 모든 물질들은 단순물질이거나 화합물, 혼합물의 형태로 존 재한다. 이렇게 물질들을 개념화하는 과정에서 라부아지에는 물질들이 하나로 연결되 어 있는 전체의 일부분이라는 통찰을 했다. 우주 안에서 운동량 전체가 항상 일정하듯 이, 자연에서 물질의 질량은 보존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질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다 라부아지에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른 물질과 결합해서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수은을 연소시켜 질량이 늘어났을 때, 공기 중에 산소가 그만큼 줄어들었다. 줄어든 산소의 질량은 간과할 수 없는 양이었고, 수은과 결합한 것이 분명하였다. 그는 질량이 보존될 것이라는 원칙과 자신의 정량적 측정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물질의 연소는 플 로지스톤의 방출이라고 할 수 없고, 공기 중에서 줄어든 산소가 흡수된 것이라고 결론 을 내렸다. 탐구 활동 라부아지에처럼 생각하기 라부아지에는 주석 230.400g을 유리 용기에 넣고 밀봉한 다음 질량을 측정하였더니 381.725g이었다. 이 용기를 며칠간 가열하였더니 주석이 검은색으로 변하였고, 질량을 측 자료해석 주석 230.400 g 정하였더니 381.725g이었다. 이후 반응 용기를 열었더니 공기가 빨려들어갔고 다시 질량을 측정하였더니 381.882g이었다. 주석이 변화한 검은색 물질의 질량을 측정하였더니 230.557g으로 처음에 사용한 주석보다 0.157g만큼 무거워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화로 과정 1. 밀폐된 상태에서 화학 변화가 일어날 때 질량은 어떤 변화가 있는가? 2. 검은 생성물이 처음에 사용한 주석보다 무거워진 이유는 무엇인가? 3. 물질의 연소는 어떤 변화라고 설명할 수 있는가? 88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88 2018-08-31 오후 4:24:56 그는 실험을 통해 ‘질량 보존’에 대한 통찰을 확인하였다. 석탄을 태우면 가벼운 재만 남아서, 질량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석탄은 타면서 산소를 흡수하고, 이산화 탄소를 배출했다. 결국 석탄에 연소된 산소를 합한 질량과 남은 재에 새로 생겨 난 이산화 탄소를 합한 질량은 서로 같다. 즉, 화학 반응에서, 반응 전 물질의 총 질량 과 생성물의 총 질량은 변함이 없었다. 라부아지에의 ‘질량 보존의 법칙’은 산소의 발견 만큼이나 과학사에서 의미가 큰 업적이었다. 라부아지에가 생각한 자연의 변화 라부아지에에 의하면 자연의 변화는 세 종류가 있을 뿐이다. 첫째는 고체의 모양, 크기의 변화나 운동과 같은 물리 적 변화였다. 둘째는 물질들이 결합, 분리되어서 다른 성질을 지닌 새로운 물질로 변하는 화학적 변화였고 셋째 는 물질이 고체, 액체, 기체로 변하는 상태의 변화였다. 연금술사의 비법으로 여겨졌던 화학이 라부아지에에 이르러 근대적 화학으로 개혁되 었다. 화학 변화와 물질에 관한 논의를 명확히 하였고 물질의 최소 단위로써 원소를 단 순물질로 정의하였다. 이러한 단순물질은 물리적이거나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는 동안 보존되며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것이다. 화합물은 단순 물질들이 결합해서 형성된 것이 며 원래의 성분들로 다시 분해될 수 있다. 이러한 화합물의 생성과 분해 과정에서 물질 의 질량은 변하지 않는다. 화학 명명법을 체계화하다 그동안 화학 용어는 산소를 ‘플로지스톤이 없는 공기’, ‘생명의 공기’, ‘뛰어나게 호흡 이 잘 되는 공기’ 등으로 부르는 등 체계화되어 있지 않고 혼란스러웠다. 라부아지에는 33종의 원소를 찾아 원소표를 작성하고,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이름 대 신 원소의 이름이 반영된 체계적인 이름으로 대체하였다. 즉, 물질을 구성하는 원소를 알기 쉽게 하기 위해 명명법을 만든 것이다. 이와 같이 라부아지에는 새로운 화학 용어 체계를 확립하였다. 1782년 프랑스의 동료 화학자들과 더불어 『화학물질 명명법』을 출 명명법의 체계화 화학 물질의 이름은 붕산을 ‘홈베르그 의 진정시키는 염’, 철의 산화물을 ‘호 전적인 에디오피아인들’이라고 하는 등 이상한 이름이 난립했었다. 라부아 지에는 산소가 결합된 산화물은 산화 탄소, 산화 철, 산화 아연 등으로 불렀 고, 산소의 양을 기준으로 황산과 아황 산을 구별하는 등 원소 이름이 반영된 체계적인 명명법을 제시하였다. 간하고 1789년에는 화학 교과서 『화학 원론』을 썼다. 새로운 화학 용어와 교과서는 그 의 화학 체계를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라부아지에와 프랑스 혁명 프랑스 혁명은 화학 혁명의 아버지, 라부아지에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라 부아지에가 가난하고 핍박받는 민중에게 깐깐하게 세금을 징수한 일, 과학 아카데미에서 장인들의 요구를 거절하며 오만하게 굴었던 일 등이 화근이었 다. 성난 군중의 눈에 라부아지에는 세금을 걷는데 앞장서고, 집단 우월의식 에 사로잡힌 못된 과학자일 뿐이었다. 1794년 5월 8일 혁명의 적으로 몰린 라부아지에는 국가에 봉사한 자신의 업적을 변론하였다. ‘나는 젊었을 때부 터 화약 감독관으로 국가에 공헌했으며, 도량형을 개정하는 데도 최선을 다 해 좋은 성과를 올렸다. 또한, 시대는 본인과 같은 뛰어난 과학자가 필요할 것이다. 호평을 받는 『화학 원론』도 내가 저술했다.’ 그러나 민심은 라부아지 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공화국에는 과학자가 필요 없다.’는 재판 장의 냉혹한 사형언도에 따라 콩코르드 광장에서 단두대에 처형당했다. 사 형 집행을 목격했던 라그랑주는 ‘그의 목을 자르는 데는 1초밖에 걸리지 않 았지만 그의 목을 만들려면 100년이 걸릴 것이다.’라고 한탄했다. 혁명의 소 그림 9-5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라부아지에 용돌이에서 라부아지에는 희생되고 과학 아카데미는 해체되었다. 9. 근대 화학 체계의 성립 89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89 2018-08-31 오후 4:24:56 2 돌턴, 원자론으로 화학의 새로운 체계를 제시하다 입자론적 물질관을 세우다 돌턴은 원자의 실재성에 한발 더 다가선 과학자였다. 고대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 이 래로 과학자들은 원자론을 잘 알고 있었다. 보일도 기체 입자를 가정하고 기체의 부피 와 압력 관계를 설명하였다. 그렇지만 원자가 물리적으로 실재한다고는 믿지 않았다. 아무도 진지하게 원자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때 돌턴은 원자가 포착 가 능한 실체라는 생각을 했다. 라부아지에는 물질의 최소 단위를 원소로 정의했다. 그의 화학 원소는 실험적으로 더 분해할 수 없는 물질을 의미했다. 그러나 라부아지에는 원소의 궁극적 성질에 대해서는 더 이상 파고들지 않았다. 이때 돌턴은 각각의 원소들이 가진 성질에 의문을 가졌다. ‘왜 수소는 수소이고 산소가 아니란 말인가?’, ‘수소와 산소처럼 각각의 원소가 다른 성 질을 나타내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것을 풀기 위해 돌턴은 독특한 원자 가설을 세웠다. 각각의 원소는 그에 해 당하는 고유한 원자로 구성되며, 각각의 원자는 고유한 질량을 가진다고 가 정하였다. 그리고 원소들의 성질이 다른 이유는 원자들의 질량이 다르기 철 황 황화 철 일정 성분비의 법칙은 원자라는 기본 단위가 결합하기 때문에 성립하는 것입니다. 때문이라고 추론했다. 돌턴이 주목했던 원자의 핵심 성질은 질량이었다. 같은 원소의 원자들 은 동일한 질량을 갖지만 다른 원소인 경우에는 다른 질량의 원자를 갖는 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서로 다른 원소들은 붉은 당구공과 검정 당구공처 돌턴(Dalton, J.; 1766~1844) 영국의 화학자 럼 명확히 다른 물질인데 그 원소들을 구분시키는 것은 색이 아니라 질량이 라는 것이다. 어떻게 이러한 생각을 했을까? 당시 실험실에서 화합물의 조성 을 분석해 보니, 모든 화합물은 구성하는 원소의 질량 비율이 일정 했다. 수소와 산소가 결합하여 물이 생성될 때는 항상 1: 8의 질량 비로 결합하는 것처럼 화학 결합할 때에는 성분 원소들 사이에 일 정한 질량비가 나타났던 것이다. 즉, 화학 반응에서 성분 원소들 사이에는 항상 일정하고 단순한 질량비가 성립한다는 사실을 발 견했고, 돌턴은 이러한 실험 결과가 나온 이유를 찾았다. 돌턴은 화합물의 결합에서 일정한 질량비가 성립되는 것은 원소 들이 원자라는 고유한 질량을 지닌 기본 단위로 결합했기 때문이 라고 결론지었다. 수소 원소가 1원짜리 동전이라면 다른 원소들은 5원짜리, 10원짜리 동전처럼 질량이 다른 입자로 존재해서 화합 물을 만들 때 결합한다고 추론한 것이다. 그림 9-6 돌턴의 원소 기호와 원자량 90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90 2018-08-31 오후 4:24:57 원자의 개념을 질량으로 구현하다 돌턴의 원자설은 보일과 같은 과학자들이 채택한 입자론과는 차이가 있다. 보일을 비 롯한 18세기 원자설 지지자들은 모든 원자가 동일하다고 보았는데, 돌턴은 각각의 원 소들마다 원자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또한, 돌턴의 원자들은 질량이 서로 다르다는 것 으로 구분된다. 이런 원소들의 질량은 가장 가벼운 원소인 수소 원자량의 정수배로 표 시될 수 있다고 보았다. 돌턴은 수소를 기준으로 다른 원소의 상대적 질량을 계산해서, 1808년 『화학철학의 새로운 체계』에 원자량 표를 실었다. 턴의 원소 기호와 원자량이 갖는 돌 의미 화학사학자 브록은 돌턴의 상징들이 ‘화학 원자의 실재에 대한 믿음을 강화 시켰으며, 화학자들로 하여금 비교적 복잡한 화학 반응들을 시각화할 수 있 도록 해 주었다. 그 사이에 라부아지에 와 돌턴은 화학 언어의 혁명을 완수했 다.’고 말했다. 책 제목에서 보듯이 돌턴은 화학이라는 학문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할 새로운 체계를 제시하자고 한 것이다. 라부아지에나 프리스틀리 등의 화학자들에게 화학 반응에서 원소를 측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그러나 그 근본이 되는 원소 이론이 없었기 때문에 이 측정 수 치들은 단순한 나열에 불과했다. 이러한 측정만으로는 원소 체계의 근본적인 원리가 무 엇인지 보여 주지 못한다. 그런데 돌턴은 원자의 개념을 질량으로 표현하는 구체적인 수단을 제시했다. 이것은 물질의 조성을 연구하는 화학자들을 충분히 설득할 수 있었다. 돌턴의 원자는 화학자 들에게 복잡한 화학 반응을 간단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는 도구를 준 것이다. 이로써 돌 턴은 새로운 화학의 언어를 창조하고 화학을 정밀과학으로 승격시켰다. 그림 9-7 돌턴이 생각한 원소와 원자 개념 과일 가게에 쌓여 있는 사과, 레몬, 귤의 과일 더미를 원소라고 할 때 과일 더미 속 낱개의 사과, 레몬, 귤을 각각의 원자라고 할 수 있다. 사과와 레몬, 귤이 다른 것처럼 원소가 다른 것은 각각의 원자가 다르기 때문이다. 화학의 언어 체계 - 원소 기호 베르셀리우스(Berzelius, J. J.; 1779~1848)는 돌턴이 제안한 원소 기호를 원소의 알파벳에 기초한 표기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그는 각 원소를 그 이름의 첫 번째 알파 벳으로 표현하는 뛰어난 감각을 보였다. 첫 번째 알파벳으로 구분이 되지 않는 원소 는 두 번째 알파벳을 포함하여 2개의 문자로 썼다. 이렇게 해서 수소는 H, 산소는 O, 베르셀리우스가 제안한 원소 기호는 화학이라는 학문의 공통 언어 체계를 만든 것이라 할 수 있어요. 탄소는 C, 코발트는 Co라고 했다. 구리(copper)도 Co라고 표기되는 문제에 대해 베르셀리우스는 라틴어 이름을 가진 원소들은 라틴어 이름을 사용하도록 했다. 그래 서 구리는 Cu(cuprum), 금은 Au(aurum), 철은 Fe(ferrum)가 되었다. 원소와 원소 의 결합을 묘사하는 화학의 언어로 베르셀리우스의 표기가 돌턴의 체계보다 훨씬 명 료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돌턴은 ‘베르셀리우스의 상징들은 끔찍하다.’고 말하고 그 기호들을 반대했다. 베르셀리우스가 이 편리한 방법을 발표한 것은 1813년이었 지만, 화학자들이 그것들을 받아들여 일상적으로 쓰기까지는 약 50년이 걸렸다. 그림 9-8 베르셀리우스의 원소 기호 9. 근대 화학 체계의 성립 91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91 2018-08-31 오후 4:24:59 3 아보가드로, 분자 개념을 제시하다 게이뤼삭이 기체 반응의 법칙을 발견하다 돌턴의 원자설에는 숨겨진 결함이 있었다. 돌턴의 『화학 철학의 새로운 체계』가 출간 된 1808년에 프랑스의 화학자 게이뤼삭은 기체 반응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가 발 견한 것은 기체를 질량 단위 대신에 부피 단위로 보았을 때 더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것이다. 게이뤼삭(Gay-lussac, J.L.; 1778~1850) 예를 들어 일산화 탄소 2부피를 산소 1부피와 반응시켜 보았더니 이산화 탄소 2부피가 생겼다. 또 수소 2부피와 산소 1부피를 반응시켰더니 물 2부피가 생겼다. 게이뤼삭은 기 체들이 반응할 때 일정한 부피의 비로 결합한다는 ‘기체 반응의 법칙’을 발견한 것이다. 게이뤼삭은 기체의 종류와 상관없이 같은 부피의 기체(단, 온도와 압력이 일정) 속에 는 똑같은 수의 입자가 들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였다. 수소 1부피와 염소 1 부피를 반응시켜 염화 수소 2부피가 생긴다면, 같은 부피 속에 수소 원자와 염소 원자 가 똑같이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실험 결과가 이렇게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일산화 탄소 2부피 프랑스의 화학자, 기체 팽창의 법칙과 기체 반응의 법칙을 발견했다. 화학 연 구를 산업에 활용하는 데 관심이 많아 황산 제조법을 개량하고, 프랑스의 화 학 공업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와 산소 1부피가 반응하면 이산화 탄소 3부피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2부피가 나왔다. 게이뤼삭의 가설대로라면 돌턴의 원자가 쪼개져야 하므로 원자설에 어긋난다. ? 일산화 탄소 2부피 산소 1부피 ? 이산화 탄소 2부피 그림 9-9 돌턴의 원자설을 이용하여 기체 반응의 법칙 설명하기 돌턴이 생각한 고유한 원자의 부피 기체 종류에 상관없이 같은 부피의 기체 속에는 같은 수의 원자가 들어 있을까? 원자의 질량이 기체마다 다르다고 생각한 돌턴은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같 은 부피 속에 들어 있는 원자의 개수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보고, 게이뤼삭의 가설을 반 대했다. 일산화탄소 2부피 산소 2부피 이산화탄소 2부피 분자의 개념으로 화합물을 설명하다 돌턴의 책과 게이뤼삭의 논문이 나오고 나서 3년 뒤인 1811년에, 이 논쟁을 해결한 과 학자가 나타났다. 이탈리아의 화학자 아보가드로는 게이뤼삭의 실험 결과를 제대로 해석 (윗쪽이 질소 기체이고, 아래쪽이 수소 기체이다.) 할 수 있는 이론을 찾아냈다. 바로 원자들이 쌍을 이루고 있다는 ‘분자’의 개념이다. 아보가드로는 대부분의 기체가 둘 이상의 원자로 결합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수소 (H)와 산소(O)는 자연에서 같은 원자 2개가 결합된 수소(H2), 산소(O2)의 분자로 존 재한다는 것이다. 92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92 2018-08-31 오후 4:25:00 아보가드로 법칙 아보가드로는 분자의 개념만 제시한 것이 아니다. ‘같은 온도와 압력에서 같 은 부피의 기체 속에는 같은 수의 원자 나 분자가 들어 있다.’는 오늘날 아보가 드로 법칙으로 알려진 이론을 발표하 였다. 이 법칙은 물질 속에 들어 있는 원자나 분자의 수와 질량을 계산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이렇게 분자의 개념으로 앞의 예를 다시 살펴보자. 일산화 탄소 2부피 + 산소 1부피 → 이산화 탄소 2부피 오늘날 화학 기호로 써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2CO + O2 → 2CO2 일산화탄소 2부피 일산화 탄소 2부피 산소 2부피 산소 1부피 자, 이제 원자설에 위배되지 않으면서도 기체 반응의 법칙을 깔끔하게 설명할 수 있죠? 이산화탄소 2부피 이산화 탄소 2부피 그림 9-10 아보가드로의 분자설을 이용하여 기체 반응의 법칙 설명하기 아보가드로(Avogadro, A.; 1776~1856) 일산화 탄소(CO) 1부피 속에 일산화 탄소 분자가 100개 들어 있다면, 2부피 속에는 일산화 탄소 분자가 200개 들어 있다. 산소 1부피 속에 산소(O2) 분자가 100개 들어 있다면 산소 원자는 200개 들어 있는 셈 이다. 그래서 일산화 탄소 2부피와 산소 1부피가 반응하여 이산화 탄소(CO2) 2부피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아보가드로가 처음 제시한 분자 개념은 화학의 발전에서 큰 걸음이었다. 돌턴이 하 지 못한 일을 아보가드로가 해낸 것이다. 돌턴은 원소의 가장 작은 형태를 원자라고 했 고, 아보가드로는 화합물의 가장 작은 형태를 분자라고 정의했다. 물 분자(H2O)를 구 성 원자(수소 2개와 산소 1개)로 분해하면 그 화학적 성질이 변한다. 수소와 산소는 물 과 전혀 다른 물질이다. 이렇듯 돌턴과 아보가드로가 내놓은 원자와 분자에 대한 기본 적인 개념은 현대 화학 전체의 버팀목이 되었다. 그런데 당시에는 아보가드로의 위대한 발견을 알아채지 못했다. 과학계가 아보가드로 의 분자에 관심을 보인 것은 그의 이론이 발표된 지 49년이나 지나서였다. 이때까지 많 은 화학자들은 돌턴이 생각한 것처럼 물을 H2O가 아니라 HO로 생각했다. 그 이유는 같 은 전하끼리 서로 밀어내듯이 같은 원자끼리도 서로 밀어낸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 서 수소 원자들이 결합한 분자 H2가 존재할 수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화학자들은 원소 칸니차로(Stanislao Cannizzaro; 1826~1910) 의 원자량이나 간단한 화합물에 대해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고 표기하고 있었다. 1860년, 마침내 이러한 혼란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독일의 카를스루에에서 제1차 국 제화학학회가 열렸다. 카를스루에 학회의 핵심 주제는 ‘원자는 무엇이고 분자는 무엇인 가?’였다. 이 학회에서 이탈리아의 화학자 칸니차로는 원자와 분자의 중요한 차이를 밝히고 아 보가드로의 법칙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설명했다. 물 분자의 경우 전체 질량 중에 산소가 88.8%, 수소가 11.2%를 차지한다는 것을 계산할 수 있다. 화학자들은 수소와 산소의 질량비를 1: 8로 보고 산소 원자량을 8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잘못되었음을 확 인한 것이다. 물 분자 H2O는 수소 원자 2개와 산소 1개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수소와 산소의 질량비는 1:16이고 산소 원자량은 16으로 해야 옳다. 그 회의 이후, 화학자들 은 분자식과 원자량에 대해 의견 일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의 화학자, 1855년 제노바의 화학 교수로 있던 시절, 아보가드로의 연구를 재발견하였다. 아보가드로가 죽 은 지 2년이 지난 1858년에 원자와 분 자의 개념을 정확히 설명하는 소책자 를 작성했다. 이것은 1860년 카를스루 에의 국제화학학회에서 널리 배포되었 고, 원소의 주기율표가 탄생하는 데 결 정적 역할을 했다. 9. 근대 화학 체계의 성립 93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93 2018-08-31 오후 4:25:00 4 멘델레예프, 주기율표를 만들다 원자들을 들러붙게 해 분자로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 원소들의 원자량이 결합 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원소의 성질을 나타내는 것은 아닐까? 화학자들은 원소들을 발견하고 각 원소의 원자량을 알아내면서 원자량 사이에 어떤 규칙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bereiner, J. W.; 되베라이너(Do 1780~1849) 독일의 화학자, ‘칼슘(Ca), 스트론튬(Sr), 바륨(Ba)’, ‘황(S), 셀레늄(Se), 텔루륨 (Te)’ 등의 세 쌍 원소를 발견하여 주기 율 발견에 이르는 중요한 징검돌을 놓 았다. 1829년 독일의 화학자 되베라이너는 비슷한 화학적 성질을 가진 원소들끼리 세 개 씩 묶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예를 들어 리튬(Li), 나트튬(Na), 칼륨(K)은 무 르고 반응성이 매우 뛰어난 금속 원소 세 쌍이다. 그리고 염소(Cl)와 브로민(Br), 아이 오딘(I)은 자극적이고 독성을 지닌 원소 세 쌍이다. 이런 ‘세 쌍 원소’는 두 번째 원소의 원자량이 대략 첫 번째와 세 번째 원소의 절반이 되는 규칙을 보인다. 화학자들은 원자 량과 원소의 성질 사이에 일정한 법칙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1860년 카를스루에의 국제화학학회는 이러한 주기성을 밝히는 데 큰 도움을 주었 마이어(Meyer, J. L.; 1830~1895) 독일의 물리화학자, 1860년대 원소들 의 주기성에 관해 꾸준히 연구하다가 1869년에 멘델레예프와는 별도로 원 자 부피와 원자량에 관한 주기율표를 발표하였다. 다. 칸니차로는 이 학회에서 아보가드로의 주장을 받아들여 원소들의 원자량에 대한 정확한 목록을 작성했다. 이 목록은 가장 가벼운 원소에서 가장 무거운 원소까지 원자 량을 기준으로 원소들의 순위를 매길 수 있게 해 주었다. 수많은 화학자들이 칸니차로 의 발표에서 영감을 얻었는데 그중에는 러시아의 화학자 멘델레예프도 있었다. 러시아 출신의 멘델레예프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 졸업 후 독일에서 분광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출현시킨 분젠에게 지도를 받았다. 분젠은 원소들을 가열하여 각 원소 뉴랜즈(Newlands, J.; 1837~1898) 영국의 화학자, 멘델레예프의 주기율 이 발견된 뒤 뉴랜즈도 주기율의 발견 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고 1887년 왕 립학회에서 데이비 메달을 받았다. 들마다 나타나는 독특한 색 스펙트럼을 발견했고, 멘델레예프에게 엄청난 지적 자극을 주었다. 1861년 러시아로 돌아온 멘델레예프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교편을 잡 고, 화학 원소들의 비밀을 탐구하는 데 매진했다. 한편, 1860년대 말에 이르면서, 많 은 화학자들이 원소들의 주기 체계에 점차 접근해 갔다. 1864년에 독일 화 학자 마이어는 원소들이 서로 결합되 었을 때의 비율에 따라 원소들을 집단 으로 묶는 표를 출판했다. 같은 해 영국의 화학자 뉴랜즈는 원 소의 성질이 주기적으로 8개마다 반 복된다는 논문을 발표했는데, 음악의 옥타브에서 힌트를 얻어 ‘옥타브의 법 칙’이라고 불렀다. 여덟 번째 원소마다 비슷한 성질이 반복된다는 패턴을 발 견한 것이 중요한 단서였으나 다른 화 학자들은 이것을 우연의 일치라고 여 그림 9-11 뉴랜즈의 옥타브 법칙 기고 무시하고 말았다. 94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94 2018-08-31 오후 4:25:02 드디어 멘델레예프는 원소의 화학적 성질과 원자량을 이용해서 주기율표를 완성했 멘델레예프(Mendeleev, D. I.; 1834~1907) 다. 그는 원소들의 순서를 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원소들의 순서가 의미하는 구조를 통찰했다. 당시에 알려진 63개 원소의 원자량과 원소의 성질을 카드에 적어서 실험실 벽에 붙여 놓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고 한다. 세로 방향으로 원소들을 가벼운 것에 서 무거운 것의 순서로 맞추어 보고, 가로 방향으로는 화학적 성질이 비슷한 원소들을 놓았다. 마치 조각 그림의 퍼즐 맞추기처럼 전체 윤곽이 드러났다. 원소들의 성질을 어 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주기적 경향성을 찾은 것이다. 그래서 멘델레예프는 과감하게 자신의 표에 빈칸을 남겨 두었다. 당시의 과학이 모든 원소를 전부 발견한 것은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에는 중요한 단서가 있었다. 19세기 과학계에서 원자가는 한 원자가 다른 원자와 얼마나 많이 결합할 수 있는가를 나타내는 용어였다. 원자가가 1 인 수소는 다른 원자 하나하고만 결합하고, 원자가가 2인 베릴륨은 2개의 원자와 결합 할 수 있다. 멘델레예프는 원소들을 세로축으로 원자량의 순서로 배열한 다음, 가로축 으로 원자가 1, 2, 3, 4의 순서로 배열했다. 원자량과 원자가 사이에 나타나는 이 관계 는 결코 우연이라고 볼 수 없었다. 오늘날 원자가는 원자들이 전자를 잃거나 얻거나 혹 갈륨과 저마늄이 여기에 들어맞는구나. 은 공유하면서 결합하는 수로 알려졌다. 주기율표가 작성되자 멘델레예프와 화학자들은 미처 발견되지 않은 원소들의 존재뿐 아니라 행동 방식, 밀도, 녹는점 등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었다. 갈륨과 스칸듐, 저마늄이 각각 1875년, 1879년, 1886 스칸듐이 들어갈 자리를 찾았어! 년에 발견되어 주기율표에 빈칸으로 남겨 둔 원소를 채 웠다. 이들 원소는 멘델레예프의 예측대로 밝혀 져 주기율표의 명성은 확고해졌다. 이러한 주 기율표의 구조와 형태가 어떻게 결정된 것인 지 멘델레예프는 당시에 알지 못하였지만 1920년대 양자 역학이 등장해서 원자 구조와 화학 결합의 본질이 밝혀지면 서 그 비밀이 풀리게 되었다. 그림 9-12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 정리하기 연소 이론의 성립부터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가 만들어지기까지 화학의 발달 과정을 다음 단어들을 넣어 정리해 보자. 생각 넓히기 주기율표는 각 원소가 무엇인지, 그 원소 는 어떻게 행동하는지 등에 대한 정보가 가득한 일종의 암 라부아지에 플로지스톤 프리스틀리 산소 호판이다. 이 정보들이 주기율표에 어떻게 나타나 있는지 돌턴 원자설 아보가드로 분자 조사해 보자. 멘델레예프 원자량 주기율표 9. 근대 화학 체계의 성립 95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95 2018-08-31 오후 4:25:02 10 현대 화학의 발전 학 습 목 표 ㅣ 신약 개발, 신소재 개발 및 나노 화학 등과 같은 현대 화학의 발전과 그 의의를 설명할 수 있다. 원소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2015년 기준으로 IUPAC(국제순수·응용화학연합)에서 인정하는 원소의 종류는 118가지이다. 그렇다면 이 많은 원소들의 이름은 누가 어떻게 붙인 것일까? 다양한 원소들을 일정한 규칙에 따라 배열한 주기율표 에는 저마다의 사연을 담고 있는 다양한 원소들이 나타나 있다. 북유럽 신화 속 천둥의 신 토르, 그리스 신 화의 태양신 헬리오스, 노벨상을 수상한 물리학자 아인슈타인, 그리고 주기율표를 만든 멘델레예프는 어떻 게 주기율표 속에 남게 되었을까? 천둥의 신 토르 태양신 헬리오스 물리학자 아인슈타인 화학자 멘델레예프 새롭게 발견되는 원소들은 발견자에게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원소들의 이름을 살펴보면, 오 래 전부터 알려진 원소들은 라틴어나 그리스어로 된 이름을 사용하고, 최근에 알려진 원소들은 영어나 독일 어로 된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원소의 이름은 신화적 또는 천문학적 소재에서 유래된 것, 그리스어나 라틴 어 등 고대어에서 유래된 것, 발견된 나라에서 유래된 것, 발견한 과학자에게서 유래된 것 등이 있다. 원자 번호 90번 토륨(Th)은 북유럽 신화의 천둥의 신 토르(Thor)의 이름을 따서 명명하였고, 태양의 주성분인 원 자 번호 2번 헬륨(He)의 이름은 태양 마차를 끌던 그리스 신화의 태양신 헬리오스로부터 왔다. 과학자의 이 름을 딴 원소 이름도 있는데 원자 번호 99번 아인슈타이늄(Es)은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을 기리는 의미로 명 명되었고, 원자 번호 101번 멘델레븀(Md)은 멘델레예프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주기율표를 살펴보면서 국가나 도시, 색깔을 나타내는 말을 따서 이름을 붙인 원소를 찾아보자. 96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96 2018-08-31 오후 4:25:04 1 현대 화학이 예측 가능한 과학으로 부상하다 19세기 화학계에서는 새로운 원소들이 잇달아 발견되고 있었다. 원소들의 반복적 규 모즐리(Moseley, H. G. J.; 1887~1915) 칙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해 준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는 수많은 낱낱의 발견들을 통일된 규칙을 통해 묶어 내는데 성공했고, 화학을 예측 가능한 세계를 다루는 과학으 로 끌어올리는 데 일등 공신이 된다. 주기율표라는 원소들의 거대한 규칙성을 알아내고 주기율표를 만든 공이 멘델레예프 에게 있다는 점에 대해 이견이 없지만, 그의 주기율표에는 몇 가지 결점이 있었다. 가장 대표적으로 아르곤(Ar), 칼륨(K), 코발트(Co), 니켈(Ni), 텔루륨(Te), 아이오딘(I) 등이 원자량의 순서에 따라 예견된 것과는 다른 성질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1913년 모즐리는 원소의 화학적 성질을 결정하는 것은 원자량이 아닌 원자의 양성 자 수임을 알아내고, 이를 기준으로 원소를 재정렬함으로써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였다. 이로써 주기율표는 오늘날 사용되는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원소의 주기율을 나타내기 위한 과학자들의 노력은 오랜 세월 계속되어 오늘에 이르 1913년에 모즐리는 각 원소의 고유 X 선을 측정하여 모즐리의 법칙을 발견 하게 된다. 모즐리는 이 발견으로 원소 의 분석에 획기적인 방법을 제공함으 로써 X선 분광학의 개척자가 되었다. 렀다. 현재의 주기율표는 많은 과학자들이 끊임없이 노력하여 이루어진 공동 노력의 산 물이다. 이렇게 원소의 분류 체계화를 통하여 완성된 주기율표는 현대 화학, 특히 무기 화학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베일리의 주기율표(1882년) 소디의 주기율표(1911년) 코틴즈의 주기율표(1925년) 주기율표의 변천 과정 현재의 주기율표 벤파이의 주기율표(1960년) 안트로포프의 주기율표(1926년) 그림 10-1 주기율표의 변천 과정 10. 현대 화학의 발전 97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97 2018-08-31 오후 4:25:06 입자론을 통해 물질의 성질을 바라보기 시작하다 톰슨에 의해 전자가, 러더퍼드에 의해 원자핵이 발견되면서 멘델레예프가 발견한 원 자량의 규칙성에 대한 비밀이 벗겨지게 되었다. 이후 짧은 기간 동안 30여 개의 새로운 원소들이 발견되었는데, 이들 중에는 화학적 성질은 동일하고 원자량만 다른 원소들도 있었다. 이 원소들을 주기율표에 첨가하는 것에 대해 과학자들이 고민하고 있을 때, 1913년 소디에 의해 동위 원소의 개념이 도입되었다. 즉, 화학적 성질이 같고 원자량만 다른 원 소들을 동위 원소로 묶은 것이다. 그리고 1932년 채드윅에 의해 중성자가 발견됨으로 써 동위 원소의 원자량이 차이가 나는 이유는 양성자 수는 같지만 중성자의 수가 다르 기 때문임이 밝혀졌다. 유리(Urey, H.; 1893~1981) 1934년 미국의 화학자 유리에 의해 중성자 한 개와 양성자 한 개가 결합한 원소가 발견되었고, 뒤이어 중성자 두 개와 양성자 한 개가 결합한 원소가 발견되었다. 유리는 이를 중수소와 삼중수소라고 명명하였다. 미국의 과학자, 중수소를 발견한 공로 로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양성자 중성자 수소 Hydrogen 중수소 Deuterium 그림 10-2 수소의 동위 원소 수소 원자, 중수소 원자, 삼중수소 원자는 모두 다른 입자이지만 같은 원소이다. 삼중수소 Tritium 동위 원소의 발견에 따라 돌턴이나 아보가드로 시대의 원소 개념은 폐기되었고, 원소 는 ‘양성자 수가 같은 입자나 입자들로 이루어진 물질’을 의미하게 되었다. 원자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단단한 강체 구와 같다는 돌턴의 모형(1810)은 원자 내부에 전자들이 건포도처럼 박혀 있다는 톰슨의 모형(1904), 양성자로 된 핵이 중앙 에 있고 여기에 대부분의 질량이 분포하며 이 주위를 전자들이 돌고 있다는 러더퍼드의 모형(1911), 전자는 양자 조건을 만족시키는 특정 궤도에 존재하며 이 상태에서는 에 현자의 돌(lapis philosophorum) 너지 방출 없이 안정하다는 보어의 모형(1913)을 거쳐 전자 궤도가 없고 전자가 발견 될 확률만을 알 뿐이라는 현대의 모형(1932)에 이르게 된다. 1898년에 퀴리 부부에 의해 폴로늄 원소가 자연적으로 방사선을 내고 납으로 바뀌 는 현상이 발견되고, 1903년에 러더퍼드와 소디에 의해 인공적으로 질소를 산소로 바 꾸는 일이 성공함으로써 오랫동안 자연의 물질을 바꾸기 위한 전설 속의 현자의 돌을 찾던 연금술사들의 꿈이 원소의 변환이라는 형태로 가능하게 되었다. 철학자의 돌(philosopher’s stone) 또 는 마법사의 돌(sorcerer’s stone)로 불렀다. 전설 속에 존재하는 물질로, 값싼 금속을 금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 을 가졌다고 전해진다. 또 때로는 사람 을 젊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 다. 오랫동안 서양 연금술의 최고의 가 치였다. 돌턴 톰슨 러더퍼드 보어 현대 모형 + + + 그림 10-3 원자 모형의 변천 98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98 2018-08-31 오후 4:25:06 2 새로운 화학이 등장하다 천연 비타민은 합성 비타민보다 가격이 비싼 편이다. 사람들은 자연으로부 터 얻은 물질이 인공적으로 합성한 물질보다 인체에 더 좋은 영향을 미칠 것 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연 천연 소재는 인공적으로 합성된 물질과 화학 적으로 다른 신비스러운 힘이 들어 있을까? 뵐러의 연구를 통해 오늘날 우리 합성 비타민 VS 천연 비타민 의 이야기가 19세기 사람들과 비교해서 그리 많이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생기론의 신비주의 장막을 걷어 내다 과학이 제법 전문 분야를 이루며 발전을 거듭하던 19세기에도 사람들은 ‘살아 있음’ 을 만드는 신비스러운 힘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러한 생각은 물질 과학과 생 명 과학을 나누는 근본적인 토대가 되어 오늘날까지도 영향을 주고 있다. 즉, 생명체에는 무엇인가 특별한 힘이 깃들어 있고, 이것을 매개해야만 만들 수 있는 물질이 따로 존재한 다는 것이다. 19세기까지도 존재했던 이러한 생각을 ‘생기론’이라고 한다. 독일의 화학자 뵐러는 스웨덴의 화학자 베르셀리우스의 실험실에서 일하면서 여러 ‥hler, F.; 1800~1882) 뵐러(Wo 가지 연구를 수행했는데, 1828년 우연히 사이안산 암모늄을 합성하려다가 요소를 합 성해 내는 데 성공하였다. 요소는 농사에 아주 요긴하게 사용되는 물질로 소변을 분리해야만 얻을 수 있었다. 단백질이 체내에서 분해되면 독성을 가진 암모니아가 생성되는데, 이를 간에서 요소로 전환시킨다. 생성된 요소는 배설 기관인 콩팥에서 소변으로 배출되기 때문이다. 실험실에서 자연을 모방해 낸 업적은 엄청 흥분되는 경험이어서 뵐러는 베르셀리우 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낸다. “사람이나 개의 콩팥 없이도 요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사이안산의 암모늄 염이 바로 요소입니다.” 뵐러는 사이안산 납(Pb(OCN)2)과 수 산화 암모늄(NH4OH)을 반응시켜 얻은 사이안산 암모늄(NH4OCN)을 가열하 여 흰색 분말을 얻었는데, 이 흰색 분말 은 소변에서 추출한 요소(H2NCONH2) 와 같은 성질을 갖고 있었다. 물질과 생명 사이에 존재하던 관념인 생기론에 의한 신비주의 장막이 걷히는 순간 이었다. 뵐러가 무기물을 화학적인 방법으로 합성하여 유기물인 요소를 만드는 데 최초로 성 공하면서 생명체를 통해서만 생성되던 물질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뵐러의 요소 인공 합성 실험은 근대 유기 화학의 출발점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실제로 뵐러는 생기론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으며, 뵐러의 제자인 콜베의 아 뵐러가 요소 합성 후 흥분한 이유 당시에는 무기 화합물은 화학의 법칙 을 따르며 쉽게 분석하고 합성할 수 있는 반면 유기 화합물은 실험실에서 는 재현할 수 없는 신비로운 생기에 의해서 즉, 식물이나 동물 속에서 만 들어진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세트산 합성으로부터 유기 화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콜베는 생명과 물질의 본질적 구분이 없을지 모른다는 의문에서부터 시작하여 결국은 유기물과 무기물에 아무런 차 이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고, 생기론을 배격하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합성 화학은 생명 체의 고분자 화합물을 모방하고 확장하였으며, 최근에는 DNA를 합성하여 인공 생명 체까지 만들어 내는 합성 생물학으로 발전하고 있다. 10. 현대 화학의 발전 99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99 2018-08-31 오후 4:25:09 3 신약 개발과 화학 의약품은 어떻게 발달해 왔는가 생기론적 사고로 인하여 별개의 영역으로 남겨 두었던 생체의 영역이 뵐러의 실험으 로 무너짐으로써 물질 영역만을 설명하는 데 그쳤던 화학은 이제 생명 영역에도 도전 장을 내밀었다. 살아 있는 생명체의 부산물뿐만 아니라 그 생명 자체도 화학으로 설명 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러한 사고의 전환과 화학자들의 노력으로 인류는 큰 혜택을 보게 되는데 그 중 한 가지가 바로 신약 개발이었다. 근현대의 제약 산업의 발전은 화학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약의 탐색과 제조는 화학 연구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인류 문명이 시작된 이래 경험적으로 인류는 생약에 대한 효능을 알고 있었다. 생명 체의 부산물인 생약의 화학적 구조를 연구하여 인공 합성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 것이 바로 신약 연구의 동력이 되었다. 초기의 신약 개발은 생체에서 추출된 물질을 정제하고 활성 물질을 포함한 추출물을 아스피린 개발의 계기 호프만(Hoffmann, F.; 1868~1946) 은 살리실산이 특유의 쓴맛과 섭취 시 위장 점막을 손상시키는 것을 막고자 오늘날의 아스피린을 개발했다. 호프 만의 아스피린 개발에는 아버지를 향 한 효심이 숨어 있었다. 호프만의 아버 지는 류머티스 관절염으로 고생을 하 고 계셨는데, 진통제로 살리실산을 먹 던 아버지는 늘 소화 불량으로 고생을 했고,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연구하던 중 아스피린의 합성에 성공하게 된 것 이다. 통해 약품을 개발하는 방식이었다. 대표적인 약품으로는 아드레날린이라는 상품명으로 시판되는 부신 호르몬 에피네프린으로, 생체 추출물 형태로 이용되다가 1904년 독일 의 화학자 스톨츠가 인공적으로 합성함으로써 비로소 대량 생산되었다. 최초의 합성 의약품은 아스피린이다. 기원전 500년경 히포크라테스의 기록에도 있듯 이 전통적으로 버드나무 껍질 차가 해열, 진통 효과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1828년 부 흐너는 버드나무에서 쓴맛 나는 노란 결정을 추출하였는데, 이 물질이 해열 작용을 하 는 것을 알게 되어 살리신(salici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897년 살리실산의 부작용 을 경감시키고자 독일의 바이엘 제약 회사에 근무하던 화학자 호프만이 개발한 것이 오늘날까지도 널리 이용되는 아스피린이다. 그림 10-4 여러 가지 생약 인류는 경험적으로 효능이 알려진 생약으로부터 성분을 추출하여 약으로 이용하였다. 그림 10-5 최초의 아스피린 아스피린의 원료가 된 조팝나무꽃과 최초로 시판된 분말 형태의 아스피린 100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00 2018-08-31 오후 4:25:11 1928년 플레밍이 항생제의 원료 가 된 페니실린의 항박테리아 작용 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페니실린계 항생제가 실제로 질병 치료에 널리 사용되기 위해서는 페니실린의 대 량 생산과 정제 방법이 개발돼야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미국 과 영국 정부가 주도한 의약품 회 사의 협력단에 의해 이러한 시도가 이루어졌고, 마침내 플로리와 체인 에 의해 화학적 합성 방법과 정제 방법이 개발되었다. 페니실린 덕분 에 전쟁에서 부상을 입은 수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림 10-6 플레밍과 푸른곰팡이 그림 10-7 제2차 세계 대전 중 미국의 셴리 연구소에서 페니실린의 약효를 광고하기 위해 만든 포스터 이와 같이 화학자들의 끝없는 연구를 통해 인류를 질병에서 구할 약물들을 대량 생산 할 수 있게 되었고, 오늘날까지도 신약 개발은 화학 연구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최 근에는 항암제인 글리벡이나 택솔을 비롯한 수많은 신약을 내놓으며 화학 산업은 인류 복지에 이바지하고 있다. 새로운 의약품은 어떻게 개발하는가 신약이 나오기까지는 복잡한 단계들을 거쳐야 한다. 신약 개발 과정은 크게 연구 단 계와 개발 단계로 구분된다. 연구 단계(탐색)는 의약학적 개발 목표(목적 효능 및 작용 기전 등)를 설정하고, 신물질의 설계, 합성 및 효능 검색 연구를 반복하여 개발 대상 물 질을 선정하는 단계이다. 개발 단계는 대상 물질에 대한 대량 제조 공정 개발, 제제화 합리적 신약 설계(rational drug design) X-선 결정학을 이용해서 약물 표적의 기하학적 구조를 정확하게 알아낸 후 컴퓨터를 이용해서 여기에 적합한 신약 의 분자 구조를 설계하는 것을 말한다. 연구, 안전성 평가, 생체 내 동태 규명 및 임상 시험을 거쳐 신약을 개발해 가는 과정을 포함한다. 최근의 신약 개발 최근에는 컴퓨터의 데이터 베이스를 이 용한 가상 실험으로 신약 개발을 하기 도 한다. 기초 탐색 및 원천 기술 연구 개발 후보 물질 선정 전임상 (비임상) 시험 임상 시험 (Clinical Trial) 신약 허가 및 시판 그림 10-8 신약 개발 과정 신약의 개발은 과거에는 페니실린과 같은 우연한 발견, 전염병에 의한 무작위 검사, 천 연물로부터의 추출, 기존 약물의 변형 등에 의존했지만, 현대에는 합리적 신약 설계를 이 과정에서 AI(인공지능)을 적용하면 기존 과정에 투입되던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 다. 기존에 2~3년이 걸리던 신약 후보 탐색 기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고, 부작 용 우려가 있는 후보 물질을 걸러 신약 개발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 또 고액의 약품과 효과가 같은 저렴한 물질을 찾 거나 기존에 신약으로 개발에 실패한 물질에서 새로운 효능을 찾아내는 일 도 가능하다. 기반으로 하고 있다. 신약 개발에는 최소 10~15년의 시간과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 10. 현대 화학의 발전 101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01 2018-08-31 오후 4:25:11 4 신소재의 개발 방법 신소재의 개발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먼저 기존에 존재하고 있었지 만 미처 발견하지 못한 소재를 찾아내 는 방법과 기존에 있던 두 가지 이상의 소재들을 합하여 새로운 소재를 만들 어 내는 방법, 마지막으로 기존 소재 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나노 기술 과 같은 첨단 기술을 이용하는 방법들 이다.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다 현대로 들어오면서 화학은 전통적인 소재가 아닌 새로운 소재를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연금술에서 추구하던 바와 일맥상통하는 화학자들의 오랜 꿈이며, 화학이 시작된 이래 계속된 탐색이었다. 화학은 물질의 성질에 대하여 탐구하 는 학문임과 동시에 어떤 물질이 다른 물질로 바뀌는 것에 대하여 알아보는 학문인 것 이다. 현대의 화학자들은 인류가 자연으로부터 쉽게 얻던 소재들보다 더욱 강하고, 안 전하고, 편리한 것들을 개발하려 노력하기 시작했다. 역사의 발전은 소재의 발전과 함께 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석기 시대, 청동 기 시대, 철기 시대, 실리콘 시대, 플라스틱 시대라는 표현이 말해 주듯이 돌을 가공하 여 무기나 농기구를 만든 석기 시대에는 돌이 주요 소재였으며, 구리, 주석, 아연, 철 등 의 금속을 사용하게 된 시대에는 더욱 강한 금속을 찾아내기 위해 서로 혼합하며 합금 이라는 자연계에는 없는 신소재를 탄생시켜 나갔다. 따라서 앞으로의 인류 문명의 발 달과 진보 역시 신소재의 발견과 개발에 달려 있다. 대부분의 신소재의 이용은 미처 몰랐던 소재의 발굴로부터 이루어지지만, 두 물질 이 상을 섞어 얻어 낸 신소재의 발견도 산업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 이 시멘트의 발견이다. 기원전 2500년경에 건설된 이집트 쿠푸왕의 피라미드에 초기 시멘트와 모래를 섞어 만든 모르타르(Mortar)가 발라져 있었던 것이 그 증거이다. 당 시로서는 건축물을 견고하게 만들어 주는 획기적인 신소재였다. 중세의 연금술이 점점 변화되면서 기본 목적인 금의 획득보다는 현존하지 그림 10-9 피라미드의 돌 사이를 접합하는 데 사용한 모르타르 않는 새로운 금속을 얻어 내는 과정으로 변형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황동 과 같은 새로운 합금들을 부산물로 얻게 되고 다양한 신소재를 발견하게 되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신소재가 우리의 의식주에 매우 밀접하게 다가왔다. 1938년 미국의 화학회사 듀폰이 ‘석탄, 물, 공기로 만든 기적과 같은 신소재, 거미 줄보다 가는데 강철보다 강하고, 비단보다 우수하다.’라고 광고한 신소재는 바로 나일 론(nylon)이다. 최초 개발된 것은 1935년이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중 군용 소재로 본격적으로 보급되었다. 낙하산이나 방탄복에 쓰이던 비단을 대체하는 용도로 사용 되었는데, 이후 타이어나 로프, 기타 군용 장비에 도 사용되었다. 이 합성수지는 여성들의 스타 킹에 지금도 많이 사용 되고 있다. 그림 10-10 듀폰의 나일론 광고 102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02 2018-08-31 오후 4:25:12 세상에서 가장 얇은 물질을 찾는 나노 화학 ‘고양이 한 마리가 가로 세로 1m의 그물 침대에 누워 있다. 그물의 무게 는 0.77mg, 고양이의 수염 한 올보다 가볍다. 이 그물이 바로 차세대 나노 소 재, 그래핀이다.’ 2010년 노벨상 위원회가 그래핀을 소개하면서 예로 든 가상의 일 화이다. 그래핀은 탄소 나노 소재로, 탄소 원자가 벌집 모양의 육각 구조를 이루면서 한 층으 로 펼쳐져 있다. 탄소 나노 소재는 1985년 개발된 공 모양의 풀러렌과 1991년 개발된 둥근 기둥 모양의 탄소 나노 튜브가 더 있다. 그래핀의 존재는 오래 전부터 과학자들 사이에 알려져 있었다. 그래핀은 물리적, 화 학적 안정성이 매우 높아 활용도가 높지만 0.2 nm 두께의 물질을 추출하는 것에 어려 움을 겪었다. 그 후 2004년 맨체스터 대학의 가임과 노보셀로프 교수는 흑연 덩어리에 나노 기술 1나노미터(nm)는 10억 분의 1m의 길 이, 원자 3~4개가 들어갈 정도의 크기 이다. 물질이 나노 크기로 되면 기존의 물질과는 전혀 다른 성질이 나타나기 때 문에 획기적인 기술 개발이 가능하다. 80년대에 주사형 터널 현미경(STM)이 개발되면서 나노 기술은 현실화되기 시 작했다. 셀로판테이프를 붙였다가 떼는, 실험이라고 할 수도 없을 정도로 간단한 방법으로 기 그래핀의 어원 적의 신소재인 그래핀을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그래핀(graphene)은 흑연을 뜻하는 ‘graphite’와 탄소 이중 결합을 가진 분 자를 뜻하는 접미사 ‘-ene’를 결합하 여 만든 용어이다. 그래핀이 발견된 이후, 전 세계에서 그래핀 연구에 앞다투어 뛰어들고 있다. 그래핀은 ‘꿈의 물질’로 불리며 앞으로 휘어지는 디스플레이, 고효율 태양 전지, 전도성 잉크, 스 마트 윈도 등 다양한 분야에 응용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탄소 나노 튜브 풀러렌 그래핀 그림 10-11 탄소 나노 소재 그림 10-12 그래핀 분리에 사용한 셀로판테이프 그림 10-13 그래핀으로 만든 휘어지는 디스플레이 정리하기 현대 화학이 새로운 소재의 개발에 나설 수 있게 된 것 은 어떤 생각과 연구 결과물들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인지 한두 줄로 생각 넓히기 오래전에 미국화학회(ACS) 회장인 브레슬로 교수 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분자 중에 화학 물질이 아닌 것을 찾아서 정리해 보자. 가져오면 상금을 주겠다는 광고를 냈고, 이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 적으로 응모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보자. 그리고 화학 물질을 쓰지 않고 하루를 살기가 가능한지 시험해 보자. 10. 현대 화학의 발전 103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03 2018-08-31 오후 4:25:12 생물학의 성립과 발전 자신을 둘러싼 자연 세계의 다양하고 신비로운 현상에 대해 알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며, 그러한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생물학은 출발했다. 생물학의 발전 과정은 인류가 생물학을 관통하는 아래 세 가지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저것은 무엇일까?’ ‘왜 이렇게 다양한 생물이 있는 것일까?’ ‘다양한 생물은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 생물학은 20세기 후반 들어서는 생화학, 분자 생물학, 유전 공학과 같이 분자 수준의 작은 단위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 분야들과 진화 생물학, 생태학처럼 전 지구적 규모에서 이루어지는 연구 분야들이 공존하면서 발전해 오고 있다. 생물의 종류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선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이름을 붙여야 해. 생물이 ‘왜’ 다양해졌는지는 내가 자연 선택설로 설명을 했어. 부모 형질이 자손에게 ‘어떻게’ 전해지는가는 나의 유전 법칙으로 설명이 가능해졌지. 우리가 DNA 구조를 밝힘으로써 유전 정보가 ‘어떻게’ 복제되고 전달되는지도 설명할 수 있게 되었어. 프랭클린은……. 프랭클린이란 여성 과학자의 X선 회절 사진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대요. 드디어 생명의 비밀을 밝혀냈군요! 104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04 2018-08-31 오후 4:25:18 11 ‘무엇’을 찾아 나선 생물학 학 습 목 표 ㅣ •생명의 다양성 개념이 발달해 온 역사를 이해하고, 자연사 연구 의 의의를 설명할 수 있다. •생명의 다양성과 종의 개념에 대한 변화를 16~17세기의 세계 사적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다리 없는 새의 이름은 무엇일까 1521년 유럽은 이른바 대항해 시대를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스페인의 마젤란이 이끄는 빅토리아호는 지금의 인도네시아 유역인 말레이 반도 부근을 항해하던 중 몰루카 제도라는 곳에서 그곳 원주민으로부터 ‘다리 없는 새’라는 박제를 선물 받게 된다. 빅토리아호는 선물로 받은 이 박제된 새를 유럽에 가지고 오 게 되었다. 이 새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몰고 다녔는데 ‘이 새는 다리가 없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땅에 내려오지 않 고 평생 이슬만 먹고 사는 슬픈 새이며, 항상 하늘을 날아다닌다.’ 라는 환상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이 새 는 하늘에만 사는 새 즉, 천국의 새로 불리게 되어 지금도 일명 ‘극락조’라고 불리고 있다. 그러던 중 18세기 스웨덴의 자연학자 린네는 당시의 사회적 환상을 반영하여 이 새의 학명을 Paradisaea apoda Linne라고 지었다. 여기서 ‘apoda’는 ‘다리가 없는(footless)’이라는 의미이다. 죽을 때까지 땅에 내려오지 않는대요. 평생 이슬만 먹고 산답니다. 이 새를 Paradisaea apoda라고 부르기로 합시다. 린네 서양 과학사에서 이 시기는 자신들이 살고 있던 세계가 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깨달음과 함께 난생 처음 보는 생소한 동물이나 식물, 낯선 이방인들의 존재에 대해 두려움과 함께 경이로움을 느끼는 시기였 다. 그리고 자신들이 접한 생물들의 정체를 알고 싶어했다. 뿐만 아니라 박물관(호기심의 캐비넷)에 모아 둔 외국의 다양한 생물 표본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까지 지구상 의 생물체에 대한 기원과 발생의 기본 개념은 성경의 내용대로 신이 창조한 것이라는 창조론적 관점이 지 배적이었다. 중세의 종교 중심 시기를 지나면서 일반인뿐 아니라 학자들의 생각조차도 이러한 상태였다. 자연학자 린네는 극락조를 제대로 연구한 것일까? 린네는 극락조가 무엇인지 알았다고 할 수 있을까? 11. ‘무엇’을 찾아 나선 생물학 105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05 2018-08-31 오후 4:25:22 1 드디어 식물 3가지로 부터 기적의 항생 물질을 분리했다! 다양성 속에서 체계를 찾아내다 그 식물들 이름은 뭡니까? 원하는 물질만 얻으면 됐지. 이름은 무슨 필요가……. 아니, 그게 말이 됩니까? 박사님. 생물학에서 ‘종이란 무엇인가?’, ‘종은 변하는 것인가, 혹은 영원히 변하지 않고 고정 된 모습인가?’, ‘우리를 둘러싼 생물들의 다양성이 변화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는 오랜 역사를 지니는 질문이다. 종은 변하는 것일까, 변하지 않는 것일까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의 대사슬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낙시만드로스는 모든 것의 근원이 물이라는 탈레스와는 달리, 태초에 만물의 근원인 제1실체인 무한자(무엇인가 결정되지 않은 실체)에서 생겨났다 고 보았다. 그는 모든 생명체들은 본래 바다에서 살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 생명 체가 바다에서 나와 육지에 살기 시작했기 때문에, 인간도 다른 바다 생물체에서 진화 하여 육지에 살았다고 생각했다. 이에 반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동물 해부 연구를 토대로 각 종은 원래의 형태 로 고정되어 있으며 결코 새로운 종으로 변화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은 그가 제시한 존재의 대사슬(혹은 자연의 사다리)이라는 개 념에 잘 나타나 있다. 세상 만물은 무생물로부터 식물, 동물, 인간에 이르기까지 계층을 존재의 대사슬은 전지전능한 신이 가장 꼭대기에 위치하며, 그 아래에는 천사 들, 별, 달, 사람, 동물 등이 차례로 신 분제와 같은 계층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룬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러한 계층적 사고는 18세기 이전까지 서구인들의 사 고에 영향을 미쳤다. 18세기 이전까지 사람들은 생물의 종은 신이 창조한 이래 전혀 변 화하지 않고 고정되어 있다고 인식했다. 린네, 종의 개념과 분류 체계를 세우다 중세 시기에 서양 과학의 대부분이 쇠락한 듯 보이지만 자연사나 박물학에서는 활발 한 모습을 보였다. 이것은 생명은 오직 신만이 주는 것이고 그러한 생명의 다양성을 찾 아내 기록하고 밝히는 것은 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종교적으로 훌륭한 행위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16세기 대항해 시대 이후, 17세기에 이르면서 박물학자들은 동식물들의 다양성에 관해 상당한 지식을 갖게 되었으며, 이미 1600년 무렵에 6,000종의 식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06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06 2018-08-31 오후 4:25:24 그 이후 1700년 무렵에는 식물학자들이 12,000개의 새로운 종을 발견했다. 여기서 린네(Linne, C. von; 1707~1778) 주목할 점은 그 시절의 유럽 사람들이 생각한 ‘종이란 무엇일까?’ 하는 부분이다. 18세기에 이르러 생물 종에 대해서 과학적인 분류를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 다양한 생물들에 대한 분류 체계의 토대를 만든 것은 스웨덴 의 자연학자(박물학자) 린네였다. 린네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에 대한 체계적 분류를 시도하였고, 우리는 지금도 그의 체계를 사용하여 생물학을 연구하고 있다. 린네는 ‘어린 식물학자’라는 별명처럼 어릴 때부터 주변의 식물들에 많은 관심을 보 였고, 대부분의 시간을 야외에서 보내며 식물 표본을 정리하고 공부하는 데 보냈다. 30대 후반에 웁살라 대학의 식물학 교수가 된 린네는 이후 『자연의 체계』를 통해 생 물을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방법을 정립했다. 생물들을 범주화하여 ‘종·속·과·목· 강·문·계’라는 위계 속에서 파악하는 방식을 통해 분류하기 시작했다. 린네는 또한, 당시의 어수선한 학명 명명 방식을 간소화하면서 새로운 명명법인 이명법을 확립했다. 린네는 종 개념과 생물 분류의 체계를 세웠지만 생물체가 본래 가지고 있는 ‘자연스 러운’ 방식이 아닌 ‘수술의 수’처럼 사람의 편의에 따른 분류 방식인 인위 분류 체계를 활용했다. 이것은 생물 그 자신이 지닌 자연성(유사성)에 주목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방 스웨덴의 식물학자, 생물 분류 단계를 제안하고 현재 생물 학명에 쓰이는 이 명법을 제창하여 생물 분류학의 체계 를 확립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명법 생물의 이름을 나타낼 때, 속명 다음에 종명을 써서 생물의 한 종을 나타내는 방법을 말한다. 라틴어로 기재하며, 속명은 고유 명사, 종명은 보통 명사 또는 형용사 등을 쓴다. 그리고 그 뒤에 명명자의 이름을 쓴다. 이명법에 따른 벼의 학명 Oryza sativa Linne 속명 종명 명명자 식보다도 더욱 인위적인 것이었다. 처음에 린네는 대부분의 종들이 현재 우리가 보는 그대로 창조되었다고 생각했다. 하 지만 그는 점차로 생물들 사이에서 관찰되는 여러 변종들을 창조만으로는 설명하기 어 렵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결국 린네는 신에 의해 기본적인 생물 종이 창조되었지만, 그 들의 상호 교배를 통해 잡종과 변종이 생기고 결국에는 새로운 종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도 인정했다. 이러한 사고의 변화는 말년에서야 일어났기 때문에 그의 분류 체계에는 반영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린네의 이러한 생각들은 그 이전까지 자연 질서의 개념으로 자리했던 그림 11-1 인위 분류 체계에 따른 수 술의 수 분류 존재의 대사슬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정리하기 고대에서 18세기까지의 생명의 다양성과 종에 대한 생각을 다음 단어들을 넣어 정리해 보자. 아낙시만드로스 아리스토텔레스 종 변화 존재의 대사슬 창조 신 생물 고정 린네 생각 넓히기 아래 사진은 하늘다람쥐와 슈가글라이더이다. 이 두 동물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찾고, 같은 종일지에 대해 토의해 보자. 만 일 자신이 린네라면 어떤 기준을 세우겠는가? 하늘다람쥐 슈가글라이더 11. ‘무엇’을 찾아 나선 생물학 107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07 2018-08-31 오후 4:25:24 12 ‘왜’를 찾아 나선 생물학 학 습 목 표 ㅣ •진화론의 사회·문화적 영향과 관련된 역사에 대해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다. •다윈의 진화론 배경과 근대 생물학 연구의 의의를 설명할 수 있다. 공룡은 ‘왜’ 멸종한 것일까 멸종된 생물의 화석이 발견됨에 따라 사람들을 가장 흥미롭게 만든 존재는 바로 공룡이었다. 지금은 사 라진 거대한 생물인 공룡의 존재는 엄청난 공룡 열풍을 불러오며, ‘멸종’의 문제가 생물학과 지질학 연구 의 중심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더불어 생물학의 중요한 질문인 ‘왜’가 다시 등장한다. ‘이 엄청난 생물은 왜 갑자기 사라진 것일까?’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구약 성경에 언급되어 있는 ‘대홍수’ 시기에 공룡은 너무 커서 혹은 너무 포악해 서 노아의 방주에 타지 못했고, 그래서 모두 멸종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종교의 권위에 굴복하지 않 았던 생물학자나 지질학자들은 계속해서 의심을 품었고 여러 가지 가설을 세워 설명하고자 했다. 첫 번째는 갑자기 닥친 큰 환경 재난으로 특정 종이 사라졌으며, 때때마다 새로운 종의 생물들이 창조 되었다는 것이 퀴비에의 격변설이다. 두 번째는 종은 멸종하는 것이 아니라 급격한 변형이 일어난 것으로 예전의 형태들을 인식하지 못할 뿐 이라고 설명한 라마르크의 가설이다. 생물 종의 멸종과 창조 모두 창조주인 신이 관여한다. 퀴비에 생물은 결코 멸종하지 않는다. 다만 급격한 변형이 일어날 뿐이다. 공룡은 성질이 너무 포악해서 못 탔대요. 라마르크 19세기 프랑스 학계는 공룡의 멸종과 종의 변화, 진화의 문제를 놓고 대격돌을 벌였다. 종교적 입장에 서 격변설을 주장한 퀴비에는 진화론적 입장이었던 라마르크와 생틸레르에게 비판을 받는다. 1830년 프 랑스 과학 아카데미에서는 무려 6주간이나 이 문제에 대한 긴 토론이 이어졌고, 이 논쟁은 종교계의 압도 적 지지와 생틸레르의 이론 미비 때문에 퀴비에의 승리로 끝이 났다. 퀴비에는 이 일로 인해 ‘생물학의 독 재자’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한번 지구상에서 멸종된 종은 다시 생겨나지 못하는 것일까? 108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08 2018-08-31 오후 4:25:27 1 지구도 오랜 세월을 거쳐 변해 왔음을 지질학이 밝히다 17세기 이전부터 사람들을 괴롭히는 존재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무늬 암석이었다. 이런 무늬 암석들 중에 생물체와 너무 닮 암석의 무늬는 단순히 암석이 변해서 된 것이야. 모르는 말씀! 암석의 무늬는 오래전에 살았던 생물체의 흔적이야. 은 것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때 박물학자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은 바로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왜 이런 무늬 암석이 생겨난 것일까?’ 화석이 지구의 변화와 생물 진화의 증거가 되다 똑같은 무늬 암석을 관찰하고도 17세기 사람들이 내세운 가설은 달랐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이러한 무늬의 원인에 대해서 단순한 암석의 변이로 보고, 생물체와의 연 관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무늬 암석이 오래전에 살았던 생물체의 흔적인 화석일 것이라는 가설을 내세운 과학자들도 있었다. 그들 중에는 바로 현미경 관찰을 통해 역 사상 가장 먼저 ‘세포’라는 용어를 사용한 훅이 있었다. 훅은 현미경을 통한 과학적 탐 구를 통해서 당시의 무늬 암석을 무생물적 원인이 아닌 생물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화석 가설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하면서 지층 속의 수많은 오래된 생물들의 잔해에 대 한 연구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한편, 멸종된 생물의 화석이 나타나는 지층의 문제로 지질학계는 동일 과정설(균일 설)과 격변설로 대립하게 되었다. 격변설은 지표면이 짧은 시간에 급격히 변했다고 보았으므로 그 위에 생물 종이 환 경에 적응하며 천천히 진화한다는 생각은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그러나 동일 과정설은 지표면이 천천히 오랜 시간에 걸쳐 변한다고 보았으므로 그 위의 생물 종도 몇 만 년, 동일 과정설(균일설) 동일 과정설은 과거의 자연 환경에 작 용했던 과정이 현재의 자연 현상과 같 을 것이라고 하는 가설이다. 근대 지질학의 기초가 된 이론으로서 격변설에 반대되는 가설이다. 몇 십만 년 동안 천천히 변화하며 진화할 수 있다는 생각을 쉽게 받아들이게 하여 진화 론의 등장에 영향을 주게 되었다. 『자연 신학』도 다양한 생물 종과 진화 문제에 대한 관심이 퍼지게 된 배경이 되었다 영국의 신부 페일리(Paley, W.; 1743~1805)는 1802년 『자연 신학』이라는 저서를 통해서 기독교 신 앙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신의 존재 증명을 시도했다. 시계보다 훨씬 더 복잡한 생명체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신 밖에 없어! 페일리는 누군가가 산책을 하다가 땅에 떨어진 시계를 발견했다면 자연스럽게 그 시계를 만든 시계공 의 존재를 떠올리게 되는데, 시계에게 시계공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시계보다 훨씬 복잡하고 정 교한 생명체(인간, 동물, 식물 등)에게도 당연히 설계자가 있다고 결론지었다. 또한, 눈과 같은 복잡한 기관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지적인 ‘창조자’가 필요하며, 생명체는 신의 설계 의도를 담고 있어서 그 구조나 기능에 있어 완전성과 완벽성이 드러난다고 강조했다. 페일리의 책은 오늘날에도 문제가 되고 있는 ‘지적 설계론’의 기원이 되었으며, 나중에 진화학자 도킨 스의 책 『눈먼 시계공』에 의해 반박되었다. 12. ‘왜’를 찾아 나선 생물학 109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09 2018-08-31 오후 4:25:29 2 생물이 다양한 이유를 진화로 설명하기 시작하다 참나무는 왜 이렇게 다양할까? 대항해 시대 이후 다양한 생물체를 관찰하게 되면서 서구 과학계는 ‘도대체 왜 이렇 게 다양한 생물이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아주 조심스럽게 품기 시작했다. 당시 기독교적 세계관이 지배하던 상황에서 이런 의문은 절대 입 밖으로 내면 안 되 는 것이었다. 그러나 많은 생물학자들은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무엇’ 다음에 오는 자연 스러운 의문인 ‘왜’에 대한 대답을 얻기 위해 애써왔다. 뷔퐁, 생명의 다양성을 진화적 설명으로 처음 제시하다 스웨덴에서 린네가 창조론에 바탕을 두고 열심히 자연의 체계를 세우며, 표본들을 살 피는 사이에 같은 시대의 프랑스 생물학자 뷔퐁은 생물의 다양성에 대해서 다른 생각 을 품고 있었다. 뷔퐁은 1749년에 발간한 『박물지』를 통해 아리스토텔레스 때부터 이어진 생물학의 오랜 분야인 자연사의 전통을 완전히 다른 영역으로 변화시켰다. 이전까지의 자연사 분 ‘교접을 통해 스스로를 영속시키고, 동일 종의 유사성을 보존할 수 있을 경우, 우리는 두 동물을 동일한 종으로 파악해야 할 것이다. 반면에 교접을 통해 자손을 낳는 것이 불가능할 경우, 그들은 서로 다른 종에 속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 『박물지』 야의 연구 방식은 다양성에 대한 충실한 보고와 서술, 분류가 전부였다면 뷔퐁은 처음 으로 생명이 왜 그렇게나 다양한지에 대한 당대의 의문에 대해서 자신의 과학적 설명을 추가하였다. 뷔퐁은 『박물지』를 통해 종은 창조된 것이 아니어서 변화될 수 있으며, 종 내에서 변이 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생명체가 관찰될 수 있다는 설명을 제시함으로써 다윈 의 『종의 기원』보다 100년 이상 앞서서 생물학적 종 개념을 제시하고, 변이 개념을 포함 한 진화론적 개념을 제시한 생물학자였다. 그러나 뷔퐁은 퇴화를 중심으로 진화를 설명했 다는 점에서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진화 전반을 언급한 것은 아니었다. 뷔퐁이 『박물지』에서 제시한 종의 차이에 대한 개념은 ‘주변 환경과 먹이’에 의한 오 랜 세월에 걸친 변화였다. 이것은 하나의 공통 조상에서 서로 다른 종이 분화될 수 있 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뷔퐁은 이 문제를 회피하여 자연계의 다양성에 대해 명확한 설 뷔퐁(Buffon, G. L.; 1707~1788) 명이 없는 채로 남겨 놓았다. 110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10 2018-08-31 오후 4:25:32 라마르크, 획득 형질의 유전으로 진화를 설명하다 라마르크는 ‘왜 이렇게 다양한 생물이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에 대해 생물체들의 진 화를 중심에 둔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이론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이 이론에서 그는 생 물체들이 진화하는 원리를 설명하려 노력했다. 1809년 라마르크는 저서 『동물 철학』에 서 세 가지의 설명을 시도했다. 적충류 1) 가변 이론 가변 이론은 자연 발생설과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며, 생물들이 무생물에서 저절로 생 겨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최초에 자연 발생될 때에는 적충류와 같은 단순한 생물로 만 생겨나고 그 이후에 변화되는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즉, 생물체가 변화될 수 있다 원생동물 섬모충강의 별칭으로 현재 에는 거의 쓰지 않는다. 1675년 레이우엔훅이 최초로 이것을 기재하였고, 라마르크에 의해 무척추 동물을 구성하는 14강 중의 하나로 분 류되었다가 오늘날에 원생동물 섬모 충강이 되었다. 는 관점이다. 2) 진화 등급설 진화 등급설은 생물체에 등급이 있다는 생각이며, 진화 과정에서 하등한 것에서 고등 한 것으로 점차 변화되어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진화는 원시적인 무척추동물인 적 충류에서 포유동물과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3) 진화의 힘과 구조 원리 진화의 힘은 생물들이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면서 스스로 구 ‘오늘날 기린이 긴 목을 얻게 된 것은 높은 곳에 있는 나뭇잎을 먹기 위한 기린의 필요에 의해 목을 늘이려는 노력을 세대를 거듭하며 반복한 결과, 점차 변이가 축적되어 얻게 된 결과이다.’ - 『동물 철학』 조를 완벽하게 하려는 선천적 경향과 환경 변화에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고 생각했다. 이 능력을 생물 자신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 내는 ‘변이’라고 판단했다. 라마르크는 생물들이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키면서 그것이 축적되어 가는 용불용설과 획득성 유전이라는 두 관점을 합쳐서 생물 진화의 구조 원리에 대해서 설명했다. 라마 르크는 진화의 원동력을 기린의 목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획득 형질의 유전 문제는 라마르크주의와 다윈주의를 가르는 중요한 분기점이 됨과 라마르크(Lamarck, J. B. P. A.; 1744~1829) 동시에, 생물학사에서 변이가 생겨나고 전달되고 그로 인해 종이 생겨나는 과정을 설명 하는 방식의 대립을 보여 주는 단면이다. 이것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진화학은 이제 유 전학을, 유전학은 다시 발생학, 세포학, 분자 생물학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림 12-1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에 의한 기린 목의 진화 과정 (원래 기린의 목은 짧았다. → 나무의 높은 곳에 있는 잎을 따먹기 위해 계속 목을 늘렸다. → 목이 긴 기린으로 진화하였다.) 아휴! 목이야. 12. ‘왜’를 찾아 나선 생물학 111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11 2018-08-31 오후 4:25:35 3 진화의 원동력을 자연 선택으로 설명하다 18세기까지 사람들은 다양한 생물들이 있다는 것은 발견했지만, 생물의 종은 변하 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9세기 들어서면서 이러한 생각은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다윈은 생물의 종은 고정된 것이 아니며, 자연 선택에 의해 시간에 따라 변화되어 왔다 고 주장하였다. 다윈, 종의 기원에서 자연 선택으로 진화를 설명하다 다윈은 라마르크의 『동물 철학』이 출판되던 1809년 영국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 훔볼트가 없었다면 비글호를 타지도 않았을 것이고, 『종의 기원』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전에는 훔볼트를 존경했지만, 이제는 그를 숭배한다. 다. 부모의 기대와는 달리 다윈은 어려서부터 자연에 대한 흥미가 많았고, 주변의 생물 을 채집·관찰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의사인 아버지의 강요로 의대에 진학했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학업을 포기하고, 케임브리지 대학 신학 과정으로 다시 입학하게 되지만, 오히려 대학에서 식물학과 지질 학 강의를 접하고 감명을 받아 자신이 늘 재미있어 하던 자연사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 어들게 되었다. 그러던 중 다윈은 훔볼트의 다양한 야생 식물에 대한 묘사로 가득 찬 책을 읽고 열대 지방에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1831년 해양 관측선인 비글호에 탑승하는 기회를 잡게 된다. 1831년 비글호는 남미 연안의 해도를 작성하기 위해 항해를 시작했는데, 다윈은 처 다윈(Darwin, C. R.; 1809~1882) 음 가 보는 낯선 나라의 다양한 환경을 접하고 그곳에서 보는 다양한 생물들에 대해서 꼼꼼하게 관찰하고 기록했다. 이러한 방대한 관찰 기록들은 훗날 진화론 연구의 토대 가 되었다. 비글호 여행에서 다윈을 가장 사로잡은 것은 갈라파고스 제도에서의 관찰이었다. 19 개의 섬마다 그곳에 사는 거북과 핀치 새의 모습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관찰하였다. 이 것은 훗날 영국에 돌아와 『종의 기원』을 집필하는 데 큰 영향을 주게 되었다. 플리머스 카나리아 제도 갈라파고스 군도 모리셔스 코코스 제도 리마 시드니 킹조지 해협 타히티 세인트 헬레나 뉴질랜드 케이프타운 그림 12-2 비글호 항해 경로와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관찰한 핀치 새 112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12 2018-08-31 오후 4:25:37 5년간의 긴 비글호 여행을 끝내고 1836년 고향으로 돌아온 다윈은 여행하며 수집한 자료와 방대한 문헌들을 정리하며 학계에서 지질학자이며 생물학자로 서서히 명성을 쌓아 가고 있었다. 그는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해인 1837년에는 라이엘이 ‘지질 현상은 지질사의 과정에 따라 극히 긴 시간 동안 천천히 점진적으로 진화한 것이다.’라고 주장 한 것처럼 동식물의 종도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긴 시간 동안 점진적으로 변한다고 생 각하고 진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가난은 어떤 집단의 생식 능력이 식량 공급을 초과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그 결과 모든 세대에서 다수는 굶어야만 한다. 따라서 집단 내에서는 누가 살고 누가 죽을지를 결정하는 생존 경쟁이 일어난다.’ - 『인구론』 다윈은 이에 대한 설명을 찾는 과정에서 이미 알려져 있던 동식물의 육종 방식에서 인위 선택이라는 현상을 통해 새로운 종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자연 현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생명의 종 다양성 역시 선택 과정을 거쳐 새로운 종이 생겨나기 때문이라고 생 각하게 되었다. 1838년 다윈은 인생에서 결정적인 책인 맬서스의 『인구론』을 접하고 맬서스(Malthus, T. R.; 1766~ 1834) 큰 영감을 얻게 되었다. 가축이나 작물의 주인인 사람 대신 항상 신을 대입하여 생각했던 당시의 사람들과는 달리 다윈은 자연 그 자체를 주인공으로 생각하여 ‘자연 선택’이라는 논리를 완성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이론을 확립하고도 오랫동안 출판을 미루었다. 다윈은 1859년 『종의 기원』을 출간하기 전까지 20년 동안 진화에 대한 연구를 계속 했다. 그동안 그는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필요한 자료를 얻었으며, 다른 자연학자들 과 자신의 이론에 대한 의견도 주고받았다. 1850년대 무렵 영국 사회는 진화에 대한 광범위한 토론이 확산되고 있었다. 마침내 다윈은 진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은 논문을 작성했지만 1858년 논문 발표 직전에 난 끝이야! 말레이시아에서 진화를 연구하고 있던 월리스로부터 진화에 대한 한 편의 논문과 편지 를 받게 되었다. 월리스는 다윈과 똑같이 흩어진 여러 섬들에서 서로 다른 종들이 분화되고 달라지는 상황에 대한 오랜 연구로 깊은 통찰을 얻어 가던 차에 1858년 초에 『인구론』을 읽고, 원주민의 인구가 증가하지 않는 이유를 고민하면서 다윈과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된 것 이었다. 다윈은 월리스의 편지를 읽고 20년간 고민해 온 자신의 생각이 물거품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고 포기하려 하였으나, 동료들이 다윈과 월리스 두 사람 의 논문이 동시에 발표될 수 있도록 주선하였고, 이 논문은 1858 년 린네 학회에서 다윈과 월리스 두 사람의 이름으로 공동 발표되 었다. 이후 다윈은 진화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다시 가다듬어 다 음 해인 1859년 『종의 기원』으로 출간하였다. 여기서 문제는 ‘누가 먼저 자연 선택이라는 생각을 떠올렸는 가?’이다. 오늘날로 치면 큰 분쟁이 벌어질 일이지만, 월리스는 평소 다윈을 깊이 존경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동 발표가 이루어 졌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하고 1889년 『다윈주의』라는 책도 저 술했다. 그림 12-3 1859년 출간된 다윈의 『종의 기원』 12. ‘왜’를 찾아 나선 생물학 113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13 2018-08-31 오후 4:25:42 다윈의 진화론은 많은 논쟁과 사회 변화를 일으켰다 성 선택의 예 다윈의 이론은 발표 당시의 기준으로는 다윈의 할아버지인 에라스무스 다윈에서 라 마르크로 이어지는 기존 진화론자들의 생각과 아주 큰 차이는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발표된 직후에는 큰 반응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제대로 다루지 못했던 인간의 진화 문제와 때로는 생존에 그 다지 유리하지 않는데도 가지고 있는 종의 형질 문제에 대해서는 『인간 유래와 성 선 수컷 공작새의 화려한 꼬리는 생존에 불리한 형질이지만 상대 배우자의 마 음에 들게 하는 과정에서 성적으로 선 택되어 종이 분화되고 형질이 남을 수 있다는 성 선택으로 설명되었다. 택』을 통해 성 선택이라는 또 하나의 선택이 존재함을 들어 설명했다. 설령 생존에 불 리할지라도 상대 배우자의 마음에 들게 하는 과정에서 성적으로 선택되어 종이 분화되 고 형질이 남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이라는 저 서에서 인간과 다른 동물이 큰 차이가 없을 뿐 아니라 인간만 가진 고유의 영역이라 여 겼던 감정 표현까지도 진화적으로 보존된 공통의 것임을 밝혔다.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이 제시한 관점은 1973년 노벨 생리 의학상을 받은 틴버겐, 로렌츠, 프리슈 등이 형성한 학문인 동물 행동학 혹은 동물 행태학의 모태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어떠한 과정을 통해 (생명이) 생겨났다고 말하고자 했음에도 불구 하고 여론에 굴복하여 창세기적 관점 의 창조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을 오랫동안 후회해 왔네. 생명의 기원에 대한 그러한 생각은 헛소리일 뿐이고, 물질의 기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네.’ - 다윈이 후커에게 보낸 편지 중 (1893년 3월 29일) 이로써 다윈은 진화론 3부작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이런 다윈도 후회하는 몇 가지 주 장을 하였다. 첫째는 변이가 유전되는 방식을 통해 종이 생겨나는 것을 2,000년 전의 이론인 범생 설을 가져와서 ‘제뮬(gemmule)’이라는 미지의 입자를 바탕으로 설명한 것이고, 둘째 는 『종의 기원』 2판에 ‘창조주에 의해’라는 말을 넣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윈의 진화론은 단순히 생물학 연구의 지식을 확장시킨 연구가 아닌 인간 세상의 모든 세계관을 바꾼 엄청난 파급력이 있었으며, 그 이후의 사회를 변 화시키게 되었다. 다윈의 진화 사상은 『종의 기원』에 뒤따른 책에서 ‘인간’의 문제를 직접 다루게 되 면서 학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큰 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자연 선택’ 개념 때문이었다. 다윈은 자신의 생각의 차별성인 자연 선택을 끝까지 강 조했다. 다윈 이론에 대한 과학자들의 비판은 주로 유전 분야에 집중되었다. 자연 선 택에 의한 진화는 생물들 사이에 다양한 변이가 이미 존재하고 있어야만 가 능하다. 그러나 유전에 대한 지식이 없던 당시에는 다윈을 포함한 어떤 과 학자도 그러한 변이가 처음에 어떻게 생겨나게 되는지, 생겨난 변이는 어떻게 자식에게 전해지는지를 설명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20세기 들어 멘델의 유전 법칙이 재발견되고, 1920년대 들어 모건에 의해 고전 유전학이 정착되면서 다윈 이론의 난제였던 변이와 유전 문제가 비로소 해결되었다. 1930년대 이후 다윈의 자 연 선택 이론은 이처럼 유전학과 결합하면서 확고한 진화 이론으 로 자리 잡게 되었다. 114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14 2018-08-31 오후 4:25:43 다윈의 진화론은 단순한 생물학 지식을 넘어 하나의 세계관과 철학이 되었으며, 사회 전반의 사상과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러나 다윈주의를 잘못된 목적에 활 용한 사람들로 인해 수많은 논쟁을 일으키게 된다. 그러한 사례로 유럽의 제국주의를 정당화한 스펜서의 사회 진화론이나 다윈의 사촌인 골턴의 우생학과 갈의 골상학 등은 인종 차별 및 성차별의 과학적 근거로 전락하여 많은 사회적 혼란을 초래하였으며, 나 치에 의한 홀로코스트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탐구 활동 미래에 우리 주변의 생물들은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 조사 토론 다양한 생물들이 그동안 변화를 거쳐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면, 앞으로도 계속 변화될 것이다. 다음은 영국 BBC 방송에서 제작한 『미래 동물 대탐험』이라는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미래 생물들 이다. 이들은 지질학자, 동물학자, 식물학자, 진화 생물학자, 인류학자 등 다양한 분야 과학자들의 자문을 기초로 500만 년~2억 년 후 미래 지구의 변화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생물로 상상하여 표현한 것이다. •시기: 500만 년 후 •이름: 눈족제비(snowstocker) •크기: 키 60cm, 길이 1.2m •서식지: 북유럽 툰드라 지대 •진화: 현재의 족제비류가 진화한 설치류 동물 •시기: 1억 년 후 •이름: 토라톤(toraton) •크기: 높이 7m, 몸무게 120톤 •서식지: 인도 벵갈 지방 늪 지대 •진화: 현재의 육지거북이류가 진화한 육상 초식동물 •시기: 2억 년 후 •이름: 정원벌레(gardenworm) •크기: 45cm •서식지: 중앙 사막 오아시스·호수 •진화: 현재의 갯지렁이류가 진화한 동물로 녹조류와 공생 결과 및 정리 현재와 같은 지구 온난화가 지속된다면 1억 년 후에는 주변 생물들이 어떤 방식으로 변화될 것인지 다윈의 이론을 토대로 그들의 모습을 위에 제시한 미래 생물처럼 상상해 본 뒤 토론해 보자. 정리하기 다윈의 진화론이 형성되기까지의 과정을 다음 단어들 을 넣어 정리해 보자. 퀴비에 뷔퐁 라마르크 맬서스의 인구론 월리스 종의 기원 비글호 생각 넓히기 진화는 오늘날에도 일어 나고 있는 과학적 사실이다. 다양한 항 생제에 내성을 가지는 메티실린 내성 황 색 포도상 구균(MRSA)과 같은 다제 내 성균에 대해 조사하고, 이러한 새로운 균들이 생겨나는 원리에 대해 다윈의 진화론을 이용하여 설명해 보자. 12. ‘왜’를 찾아 나선 생물학 115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15 2018-08-31 오후 4:25:43 13 ‘어떻게’를 찾아 나선 생물학 학 습 목 표 ㅣ •생명의 연속성 개념이 발달해 온 역사를 이해하고, 다양한 관점 에서 설명할 수 있다. •왓슨과 크릭의 DNA 구조 발견을 비롯한 20세기 유전에 대한 연 구를 포함한 생명 공학 연구의 의의를 설명할 수 있다. 자손은 ‘어떻게’ 부모를 닮게 되는 것일까 아래는 기원전 410년 무렵에 쓴 히포크라테스가 쓴 유전에 대한 재미있는 구절이다. 이 구절에는 당시 사회에서 기다란 머리를 가진 마크로세팔리 종족에 대한 히포크라테스의 생각이 담겨 있다. 히포크라테스는 자녀가 부모를 닮는 이유에 대해서 ‘부모의 몸 각 부위에서 특정 입자(그는 이것을 씨 앗이라고 불렀다.)가 나와서 혈액을 타고 생식기로 이동하여 자손에게 전해진다.’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눈에서는 눈을 만드는 씨앗이, 머리카락에서는 머리카락을 만드는 씨앗이 나와서 그것이 자손에게 전해지 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간 이외의 생물들의 다양성에서도 이 설명은 가능한데, 뿔이 있는 사슴에게는 뿔로부터 씨앗이 나오 지만 돼지에게는 뿔을 만들 씨앗이 없어 뿔이 없는 것이다. 자식이 부모를 닮는 것은 ‘씨앗’이 전해지기 때문이야! 이 아이는 누구를 닮았을까요? ‘씨앗은 몸의 모든 부위에서 나오는데 건강한 부위 에서 건강한 것이, 병든 부위에서 병든 것이 나온 다. 그러므로 보통 대머리인 부모에서 대머리인 아 이가, 회색 눈을 가진 부모에서 회색 눈을 가진 아 이가 나오고 사팔 눈을 가진 부모에서 사팔 눈을 가진 아이가 나온다면 기다란 머리를 가진 부모가 왜 기다란 머리를 가진 아이를 갖지 않겠는가?’ 히포크라테스 히포크라테스의 이런 방식의 설명을 범생설이라고 하며, 이는 19세기가 될 때까지 서양 세계에서 유전에 대한 생각을 지배한 가설이었다. 범생설은 자연스럽게 획득 형질의 유전에 대한 생각을 정당화해 주었다. 몸의 곳곳에서 유전 물질이 만들 어지기 때문에, 생물이 살아가면서 얻게 된 형질이 후대에 전해지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설명이 되었다. 예를 들어, 오랜 전투로 남보다 강한 근육을 지닌 장군의 아들은 강화된 근육이 만들어 낸 강한 근육의 씨앗 으로 인해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의 강한 근육을 이어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옛날 사람들이 범생설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116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16 2018-08-31 오후 4:25:45 1 생명의 다양성과 유전 문제를 세포 수준에서 바라보게 되다 이제야 우리를 알아봤군! 생물 다양성과 변이에 대한 문제를 풀려면 먼저 우리에 대해 잘 알아야 해. 우리는 생명의 다양성과 그 다양성의 배경에는 다양한 종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 을 밝혀 온 과정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종이 생겨나고 유지되는 배경에는 ‘변이’ 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수많은 변이는 어디서 오는 것이며, 어떻 게 전달되는 것일까? 옛날에는 유전과 생식 현상을 상상을 통해 설명하였다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고 태어난 생명이 부모와 닮은 것은 모든 생명체에서 나타나는 그리스 신화 속의 단성 생식 현상이다. 인류는 역사가 시작된 이래 자손이 부모를 닮게 되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 하 였다. 고대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것과 같이 자손은 양쪽 부모 모두가 아닌 아버지나 어머니 한쪽에 의해서도 태어날 수 있다는 단성 생식을 믿었다.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주제 열기에서 살펴본 것처럼 자손이 부모 를 닮는 이유에 대해서 부모 몸의 각 부위에서 씨앗과 같은 특정 입자가 나와서 그것이 혈액을 타고 생식기로 이동하여 자손에게 전해진다는 ‘범생설’로 설명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히포크라테스의 범생설에서 사람의 몸 각 부위에서 특정 입자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남녀에게서 합쳐져 자손에게 전해진다면 세대를 거듭할수록 자손의 형질은 2배씩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는 논리적 오류가 있음을 지적하고 헤시오도스에 따르면 대장장이의 신인 헤파이스토스는 헤라가 남성(제우스) 의 도움 없이 혼자 낳은 아들이다. 범생설을 반대했다. 그림 13-1 범생설을 믿게 한 샴 쌍둥이에 대한 기록 프랑스 외과 수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앙브루아즈 파레가 1573년 그린 것이다. 13. ‘어떻게’를 찾아 나선 생물학 117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17 2018-08-31 오후 4:25:45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의 발생』에서 영적인 기운이나 감정이 아닌 부모에게서 유래 전성설과 후성설 •전성설: 수정란이 발생하여 성체가 되는 과정에서 개개의 형태와 구조 는 알 속에 이미 그 장래가 결정되어 있어 발생하면서 전개된다는 학설로 그리스 시대부터 이어져 와서 17, 18세기에는 상당히 구체화되었으나 후성설의 등장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후성설: 수정란이 발생하고 있는 동 안에 점차 몸의 각 부분이 특정한 조 직이나 기관이 되도록 결정된다는 학설로 전성설에 대응하는 용어이 다. 1759년 독일의 생물학자 볼프가 처음으로 증거를 제시했다. 되는 어떤 물질이 담긴 정액에 의해서 유전이 이루어짐을 설명했다. 그는 범생설에서와 같은 논리의 오류를 막기 위해 정액의 특성을 성별의 차이로 설명 했다. 즉, 남성의 정액에는 생명의 본질을 이루는 유전 정보 물질이 들어 있고, 여성의 정액은 단지 혈액만 제공하는 것이라고 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유전과 발생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현대의 후성설의 토대가 되지 만, 남자에게만 유전 물질이 있다는 생각으로 인해 그 후 1,000년 동안 논란의 씨앗이 되었다. 전성설(前成說), 모든 것은 미리 만들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17세기 무렵 현미경의 발달로 정자를 관찰하는 사례가 생기기 시작했다. 1677년 네 덜란드의 미생물학자 레이우엔훅이 30여종의 생물의 정자를 관찰했고, 1694년 하르트 수커는 그의 『광학론』에 정자 안에 웅크리고 있는 조그만 인간의 형태를 그린 이미지를 사용하여 호문쿨루스라고 불렀다. 다윈의 제뮬에 의한 유전 형질 전달 (범생설 수용) 모든 것이 미리 만들어져 있다는 전성설은 17~18세기 사이에 등장하여 현미경과 함께 인기를 누렸고, 유전 형질이 양친을 통해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부친 쪽에서만 일방적으 로 전해진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을 수용하여 혼합된 생각으로 변화하였다. 제뮬 2,000년 가까이 지속되던 생명의 발생에 대한 전성설적 생각들은 19세기가 되면서 제뮬 쇠퇴하기 시작했다. 다윈은 1868년에 발표한 범생설에서 양쪽 부모 몸의 다양한 기관 정자 접합자 제뮬 난자 제뮬 들에서 떨어져 나온 제뮬이라는 작은 입자가 체내를 돌고 난 후에 생식 기관에 모여서 난자나 정자로 통합되고 이것이 자손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유전이 일어난다고 가정 했다. 그는 제뮬이 모여서 배아를 형성할 때 양쪽 부모의 형질이 섞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몸의 각 부위에서 만들어진 제뮬이 생 식 세포에서 통합되어 자손에게 전달 된다. 부모가 획득한 형질이 제뮬 속에 반영된다는 다윈의 생각은 획득 형질의 유전을 인정 한 라마르크의 생각과 유사한 면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림 13-2 레이우엔훅(Leeuwenhoek, A. van; 1632~1723)의 현미경과 그가 관찰하여 그린 정자 그림 13-3 하르트수커의 호문쿨루스(A)와 맨킨스(B, C) 118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18 2018-08-31 오후 4:25:46 유전의 문제를 세포 수준에서 바라보기 시작하다 히포크라테스와 다윈이 제시한 범생설이 현대 유전학의 기본 설명 모델인 바이스만 생식질설에 의한 유전 형질 의 생식질 연속설(또는 생식질설)로 교체되기까지는 무엇보다도 세포의 발견이 토대가 되었다. 현미경의 발달에 힘입어 여러 가지 관찰이 이루어지면서 생물학계는 19세기 초 에 모든 생물의 기본 단위가 세포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독일의 식물학자 정자 슐라이덴과 동물학자 슈반의 세포설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접합자 한편, 그 당시에는 비교적 관찰이 쉽고 단독으로 떨어져 나온 정자를 오염된 벌레라 난자 고 생각하고, 그것을 담고 있는 액체인 정액이 유전 정보를 담은 신비스러운 물질이라 여긴 적이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지금도 곤충학이나 동물학에 남아 있는 정충 혹은 정 자 동물이라는 이름은 그 시대 사람들의 오해를 잘 말해 주고 있다. 생식질은 완전한 유전 정보를 가지고 있으며 배우자에게 직접 전달한다. 그중 특히 레이우엔훅은 왕립학회에 보낸 보고서에서 정자를 정액 속의 기생충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1841년 일부 정소 세포가 변형되어 정자가 되는 사실을 관찰한 쾰리커에 의하여 정자는 외부의 기생충이 아니고 많이 변형된 생식 세포임이 밝혀졌다. 이로써 유전 정보는 생식 세포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생식질설의 기본 토대 가 마련되었다. 하지만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태되어 접합자가 된다고 하더라도 아주 작은 하나의 세포일 뿐인데 그것이 어떻게 큰 생명체가 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 문제는 독일의 병 접합자 두 배우자의 결합에 의해 생긴 세포 또 는 개체 리학자 피르호의 ‘모든 세포는 세포로부터’라는 견해가 천명되면서 해결된다. 이렇게 해서 동물학, 식물학 등 자신이 연구하는 대상에 따라 전혀 상관없는 학문 분 야처럼 소통이 없던 생물학을 ‘세포’라는 연결 고리로 통일한 ‘세포설’이 확립되었다. 세포학과 유전학이 만나 세포 유전학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세포설의 확립이라는 성 과가 있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도 생식 세포라는 중요한 매개물이 단지 하나의 세포라 는 사실의 관찰과 그것이 유일한 유전 정보의 전달자라는 이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생물학자들은 생명의 다양성과 유전의 문제를 ‘세포 수준’에서 바라볼 수 있게 세포와 유전을 연결하는 생각의 고리 •배우체는 많은 생물체, 아마도 모든 생물체에서 세대 간의 유일한 물리 적 고리이다. 따라서 배우체는 모든 유전적 정보를 담고 있어야만 한다. •난자와 정자가 세포이기 때문에 모 든 유전 정보는 이 생식 세포 속에 들 어 있어야만 한다. 따라서 유전의 물 리적 바탕은 생식 세포이다. 된 것이다. 염색체의 발견과 세포 유전학의 길을 연 플레밍 모든 핵은 다른 핵으로부터 유전학이 작은 세포 수준에서 연구할 수 있게 되었지만 세포 속에서 무엇이 생명의 본질을 담은 정보 저장소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 의문은 독일의 플레밍에 의해 풀리게 되었다. 플레밍은 아닐린 염료를 이용하여 세포를 염색한 결과, 호염기성 염료에 진하게 염색되는 물질이 세포 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 물질을 염색질이라고 명명했다. 그는 그 물질이 세포 핵에 있는 실 모 양의 물질과의 관련성을 규명했고, 이 실 모양의 물질은 나중에 염색체로 밝혀지게 된다. 또 그는 세포 분 열 과정에서 염색체가 각각의 딸세포로 나뉜다는 것 즉, 유사 분열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플레밍은 유전 법칙을 모르는 상태였고, 현미경적 관찰로 유사 분열에 대한 염색체의 움직임을 보고한 정도에 그쳐 유전 과 염색체의 움직임을 연관 짓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그가 유사 분열과 염색질을 발견한 것은 유전학과 세포학을 융합시켜 세포 유전학의 길을 연 것 으로, 세포 생물학의 10대 주요 사건으로도 꼽히고 있다. 플레밍(Flemming, W.; 1843~1905) 13. ‘어떻게’를 찾아 나선 생물학 119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19 2018-08-31 오후 4:25:46 2 자! 준비들 해. 이제 우리들이 과학사에 등장할 차례야. 유전 현상에 일정한 법칙이 있음을 알아내다 19세기 말 유전학은 세포학과 실험 발생학을 중심으로 진화론자들이 풀지 못한 의문들 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진척되어 오다가 현미경과 단순 교배 실험만으로는 염색체의 행동 과 생명의 연속성에 대해 충분히 설명할 수 없음을 알고 새로운 설명을 찾고자 하였다. 그 당시 오스트리아의 한 수도원에서는 멘델이라는 성직자가 유전 현상에 대해 아주 체계적인 실험을 하고 있었다. 그의 연구는 나중에 현대 생물학을 떠받치는 큰 기둥인 멘델 유전학으로 확립된다. 멘델, 체계적인 실험으로 유전 현상에 일정한 법칙이 있음을 알아내다 멘델은 1822년 오스트리아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넉넉한 형편은 아 니었으나 멘델은 어릴 적부터 농사와 원예 일을 도우며 자연스레 자연 과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멘델은 본래 과학자가 되고 싶어 했지만 가세가 기울어 1843년 브륀에 있는 아우구 스티누스 토마스 수도원에 들어가 사제가 되었다. 멘델은 수도원 뒤뜰에서 완두의 7가지 대립 형질을 잡종 교배하였을 때 자식 세대에 서 나타나는 발현 빈도를 조사하는 실험을 시작했다. 멘델은 8여 년간 29,000여 개의 완두콩에 대한 실험을 통해 순종 간의 교배에서 바로 다음 대의 자식은 모두 대립 형질 중 한 가지의 특징만을 보였으며, 이를 다시 자가 수분하 여 얻은 제2대에서는 대립 형질의 발현 빈도가 일정한 비율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멘델은 이 과정에서 검증을 위하여 검정 교배라는 방식을 사용했고, 유전 현상의 설명 을 위해서 우성, 열성 등의 개념을 도입했다. 멘델은 또한 각각의 형질이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으며 완전히 독립적으로 유전된다는 것도 확인했다. 멘델(Mendel, G. J.; 1822~1884) 멘델은 자신의 연구 결과를 정리한 논문 『식물 잡종 교배에 대한 연구』를 1865년 브 륀 ‘자연사 협회 정기 회의’에 발표했고, 이 논문은 그 다음해 학술지에 출판되었다. 그 러나 그의 논문은 작은 학회에서 발표되었고, 독일어로 쓰여진 데다가 이해하기 어려운 왜 잡종 제1대에선 키 큰 애만 나올까? 수학적 논리 때문에 35년 이상 다른 생물학자들에게 조명 받지 못하고 거의 무시되었 다. 당시의 생물학자들은 혼합설에 의한 유전을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에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유전 요소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다. 당대에 인정받지 못한 멘델은 자신의 이론이 주목되고 재평가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이제 곧 나의 시대는 올 것이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61세에 임종하였다. 후, 오늘 저녁도 완두콩 요리겠군. 120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20 2018-08-31 오후 4:25:46 멘델, 유전 현상을 입자로 설명하다 멘델 이전의 많은 과학자들은 부모로부터 자손에게 전달되는 유전 현상은 마치 서로 다른 물감이 섞이는 현상과 같아 그 특성이 자손들에게 서로 섞인다고 생각했다. 즉, 빨 간색 물감과 노란색 물감을 섞으면 주황색이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로 양쪽 부모로부 터 물려받은 유전 요소가 반반씩 섞이게 되므로 자손은 양쪽 부모의 형질이 혼합되어 중간 형태로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유전 방식을 혼합설이라고 한다. 멘델은 당시 혼합설로 유전 현상을 설명하는 과학자들과 달리 물리적 세계가 보이지 않는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입자론적 관점의 영향을 받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전 요소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유전 요소들이 서로 섞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림 13-4 혼합설의 원리 그 때문에 자손에서도 중간 형태의 표현형은 나타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멘델의 유전 요소 개념은 유전 현상을 설명하는 데 중요했을 뿐만 아니라 생 물의 진화에 대한 설명에도 중요한 근거를 제공했다. 멘델이 제시한 입자로서의 유전 요소 개념은 유전적으로 다양한 변이를 가진 생물 집단이 어떻게 출현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유전 요소는 입자와 같아서 서로 섞이지 않는 것이 맞아. (가) 혼합설 (나) 입자설 그림 13-5 혼합설과 입자설 구분 멘델의 실험이 성공한 이유 1. 멘델은 유전 문제에 물리학자들과 유사하게 매우 정량적인 방법으로 접근했다. 현재에는 생물 학에서도 수학을 기본적인 도구로 사용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2. 멘델은 수도사가 된 뒤 대학에 파견되어 물리학을 접하면서 물질의 기본 단위인 입자론을 공 부할 수 있었다. 덕분에 물질 영역뿐 아니라 생명 영역에서도 원자와 같은 기본 단위를 상상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은 멘델이 당시 유전 현상을 설명하는 혼합설에 휩싸이지 않 고 입자론적 관점에서 유전 물질을 설명할 수 있게 해 주었다. 3. 멘델은 실험 결과 얻은 자료를 설명할 수 있는 수학적 관계를 찾아내고 그것이 다른 상황에서 도 적용될 수 있는지 확인하여 자신의 모델을 확정했다. 또한, 멘델은 자신의 유전 연구를 진 행하는 과정에서 귀납법, 귀추법, 가설 연역법을 모두 활용하여 연구를 수행했다. 멘델의 연구는 당시로서는 매우 선구적인 것이었음에도 오랜 세월 주목받지 못했 었다. 멘델의 연구가 다른 학자들에 의해 재발견되기까지 역사적으로 외면 받은 까 그림 13-6 멘델의 실험 노트 닭은 무엇인지 토의해 보자. 13. ‘어떻게’를 찾아 나선 생물학 121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21 2018-08-31 오후 4:25:47 더프리스, 새로운 변이를 돌연변이설로 설명하다 1865년 멘델은 식물 유전에 대한 자신의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했지만 논문이 발표된 지 35년, 그리고 사후 16년 동안 아무도 그 내용을 모른 채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1900년 네덜란드의 식물학자 더프리스와 독일의 코렌스, 오스트리아의 체르 마크에 의하여 연속적으로 재발견되면서 유전에 대한 새로운 이론적인 체제가 세상에 등장하게 되었다. 이것이 현대 생물학을 떠받치는 큰 기둥인 멘델 유전학(고전 유전학) 의 확립이다. 제뮬과 판젠의 차이는 더프리스의 판젠은 다윈이 생각했던 제뮬과 유사한 것이지만 거의 변하지 않는 안정한 입자로 가정했다. 더프리스는 다윈의 이론을 증명하는 데 평생 동안 관심을 가졌다. 그는 『세포 내 범 생설』이라는 논문에서 ‘판젠(pangen)’이라는 입자를 가정하고, 판젠이 갑자기 변할 때 유전 정보가 변화되어 새로운 종이 출현한다고 하였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돌연 변이’에 대한 최초의 발상이며, 다윈이 그토록 고민했던 새로운 변이는 어떻게 생겨나 고 유입되는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이 된다. 더프리스는 1886년부터 암스테르담에서 무려 13년간이나 진행된 달맞이꽃 실험을 통해서 돌연변이의 비밀을 알아내고 자연 선택 없이 새로운 종이 형성되는 과정도 있 다는 사실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멘델주의자 진화의 기본 원인을 자연 선택으로 보 는 다윈주의에 대비하여 유전 단위의 변형이 진화의 원인이 된다고 생각하 였다. 한편, 13년의 실험 끝에 마지막으로 논문을 출판하려던 더프리스는 1900년에 동료 교수로부터 멘델의 『식물 잡종 교배에 대한 연구』를 선물받았다. 이후 자신의 실험이 멘델의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는 것을 각주로 넣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 을 멘델주의자라는 명칭으로 부르며, 다윈의 자연 선택이 진화의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 는 주장을 하며, 유전학에 토대를 둔 새로운 진화론인 돌연변이설을 주장했다. 돌연변이설 더프리스는 유전 단위인 판젠이 변형 되어 나타난 돌연변이가 새로운 종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 나 실제로 돌연변이를 통해서 곧바로 종 분화가 일어나는 일이 관찰되지 않 았기 때문에 돌연변이설은 현재 그대 로는 받아들여지는 않는다. 더프리스의 돌연변이설은 1930년대에 진화론에 통합되었다. 이렇게 탄생한 신다윈 주의는 ‘멘델의 법칙을 기반으로 한 유전학과 다윈 진화론의 통합’이었다. 통합된 진화론은 유전자가 돌연변이에 의해 변화하고 변화된 유전자는 표현형을 변 화시켜 결국 자연 선택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하게 되었다. 더프리스의 돌연변이설은 미국 생물학자 모건의 초파리 연구로 이어진다. 왜 이 꽃만 크기가 클까? 음, 판젠이 갑자기 변해서 그런 거구나. 그림 13-7 달맞이꽃의 돌연변이 그래, 이런 현상을 ‘돌연변이’ 라고 하자! 그림 13-8 더프리스(de Vries, H.; 1848~1935)의 실험 122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22 2018-08-31 오후 4:25:47 형질을 결정하는 유전자가 염색체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아내다 1900년대 초에 현미경을 통해 생식 세포와 염색체를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게 되면 서 일부 과학자들은 멘델이 설명한 유전 요소들과 염색체의 행동 사이에는 밀접한 관 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특히 생식 세포 분열이 일어날 때 염색체가 쌍 을 이루어 접합했다가 분리되는 것이 현미경으로 확인되면서 멘델의 유전 법칙을 입증 유전자 할 새로운 체계가 확립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연구들을 바탕으로 서턴은 유전자가 염색 생물학계에서는 이때부터 그 의미가 모호하게 사용되던 유전 요소나 인자 라는 말 대신에 유전자라는 용어를 사 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유전자의 화학적, 물 리학적 성질을 몰랐기 때문에 유전자 는 관찰 가능한 물리적 실체라기보다 는 아직 가설적 존재에 불과했다. 체에 존재한다는 염색체설을 제기했다. 영국의 식물학자 베이트슨은 멘델의 논문을 영문으로 번역하여 소개하면서 사람들 이 멘델의 법칙과 여러 가지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현재 유전학에서 사용되고 있는 ‘유전자’, ‘대립 형질’과 같은 많은 용어들을 정립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한 학문에 ‘유전학’라는 이름을 최초로 사용했다. 베이트슨은 수학자 퍼넷과 함께 스위트피 실험 결과의 정리를 통해서 미국의 모건 학 파와 염색체의 연관에 대해 경쟁을 했다. 그러나 멘델처럼 수학적인 방식으로 연관을 이해하고자 한 베이트슨은 계속 추상적인 설명을 내 놓았고, 염색체를 직접 현미경으로 관찰하는데 익숙했던 모건에게 연관 유전에 대한 우선권을 내주었다. 1910년대에 미국의 생물학자 모건은 초파리를 이용한 연구를 통해 유전 형질이 자 스위트피 원산지가 지중해 동부의 연안과 도서인 콩과 덩굴식물이다. 완두꽃과 비슷한 나비 모양의 꽃이 5~6월 무렵에 피는 데, 꽃에서 달콤한 향기가 나기 때문에 ‘sweet(달콤한) pea(완두)’라고 한다. 식용보다는 화훼용으로 재배한다. 손에게 전달되는 방식을 알아내고자 했다. 1915년 모건은 수년간의 연구 결과를 정리 하여 『멘델 유전 법칙의 기제』를 발표하여 염색체가 유전 형질을 전달한다는 것을 증명 연관 했다. 여러 개의 유전자가 같은 염색체 상에 있어 같이 유전되는 것을 말한다. 모건은 특히 더프리스로부터 제기된 돌연변이의 유전 문제를 더욱 발전시켰다. 그는 X선 조사 실험을 통해 돌연변이가 유전된다는 것을 입증함으로써 세포학과 유전학을 염 색체와 유전자 수준에서 완전히 통합한 ‘고전 유전학’의 대통합을 이루어 내었다. 1930년대에 이르러 오늘날의 유전학 교과서에서 다루고 있는 유전 원리들의 기본 형태가 거의 갖추어지게 되었다. 1,000....1,237 마리. 후, 총 1,237마리인데 그중에 흰 눈 수컷이 3마리가 생겼네. 모두 붉은 눈인데. 흰 눈은 어떻게 생긴 걸까? 우리를 작다고 무시하지 마! 우리 조상의 희생이 유전학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어! 그림 13-9 모건(Morgan, T. H.; 1866~1945)의 실험 모건의 연구실에서 키우던 초파리들 중 이상한 흰 눈 수컷을 발견하고 이 관 찰을 토대로 성 연관 유전의 비밀을 풀 었다. 모건은 특히 더프리스로부터 제기된 돌연변이 유전 문제를 더욱 발전시켜 X선 조사 실험을 통해 돌연변이가 유 전된다는 것을 입증했다. 13. ‘어떻게’를 찾아 나선 생물학 123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23 2018-08-31 오후 4:25:47 3 유전 현상의 원리를 분자 수준에서 밝혀내다 꼭꼭 잘 숨어. 거의 다 찾아온 것 같아! 설마 우리까지 알아내겠어? 유전자설 유전자가 염색체의 일정한 위치에 존 재하며, 대립 유전자들은 상동 염색체 의 같은 위치에 존재한다는 주장 모건 학파에 의하여 개념적이고 추상적으로 생각되던 유전자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 하며, 그것이 염색체에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생물학은 다시 한 번 ‘무엇’의 문제에 집 중하게 된다. 생명의 연속성을 일으키는 물질인 유전자는 과연 ‘어떤 물질로 되어 있는가?’, ‘유전 물질이 존재한다면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핵산이 유전 물질임을 증명하다 핵산 핵산은 뉴클레오타이드로 구성된 생명 체의 유전 물질로, DNA와 RNA가 있다. 핵산은 스위스의 생물학자 미셔가 1869년에 환자의 고름으로부터 얻은 백혈구에서 처음으로 발견하였다. 1928년 그리피스는 폐렴 쌍구균을 이용한 형질 전환 실험으로 유전자의 존재를 확 인하였고, 1943년에 에이버리는 DNA를 따로 분리한 형질 전환 실험을 통해 당시 유 전 물질의 유력한 후보였던 단백질이 유전의 근본 물질이 아니라 핵산인 DNA가 유전 물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의 학계 분위기는 생명체의 유전 정보는 매우 복잡할 것이고 4개의 염기 만으로 구성되는 핵산과 같은 단순한 물질에 담겼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로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후 DNA가 유전 물질임을 지지하는 여러 재현 실험과 검증 실험들이 이어졌는데, 1952년 허시와 그의 제자 체이스가 박테리오파지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 유전자의 본 체가 DNA라는 사실을 거의 확정짓게 되었다. 그림 13-10 그리피스(Griffith, F.; 1879~1941)의 실험 그리피스의 실험은 많은 사망자를 발 생시키던 폐렴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 던 중 얻어진 결과이다. 그리피스의 실험 방식은 록펠러 연구 소의 에이버리에게 영향을 미쳤다. 1943년 에이버리는 DNA를 따로 분리 한 형질 전환 실험을 통해 DNA가 유전 물질임을 주장했다. 살아 있는 S형 균 살아 있는 R형 균 죽은 S형 균(열처리) 죽은 S형 균(열처리) +살아 있는 R형 균 폐렴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그런데 죽었던 폐렴균을 다시 살아나게 한 것은 뭘까? 살아 있는 S형 균 죽는다 산다 산다 죽는다 124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24 2018-08-31 오후 4:25:47 유전자의 본체인 DNA의 구조를 밝혀내다 내 X선 회절 사진이 없었으면 불가능 했을거야. 이제 DNA가 유전 물질이라는 것까지는 알았지만 그것이 어떤 구조를 하고 있고, DNA에 유전 정보가 어떻게 저장되어 있으며, 어떻게 복제되어 자손에게 전달되는지, 프랭클린 전용 유전 정보는 어떻게 형질로 발현되는지가 문제되기 시작했다. DNA의 구조는 1953년 생물학자인 왓슨, 물리학자인 크릭, 그리고 화학자인 윌킨스 의 공동 노력에 의해 규명되었다. 왓슨과 크릭은 윌킨스와 프랭클린이 촬영한 DNA의 『네이처』지에 실린 왓슨과 크릭의 논문 X선 회절 사진을 보고 DNA가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나선형의 구조를 하고 있다는 것 을 확인했다. X선 회절 사진 이외에도 DNA를 구성하는 염기의 연결과 결합, 염기의 양에 대한 여 러 과학자들의 연구는 DNA 구조 발견에 도움이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연구를 근거로 왓슨과 크릭은 DNA가 이중 나선 구조를 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1953년 4월 『네이처』지 에 『핵산의 분자 구조』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 논문에서 그들은 이중 나선의 구조적인 증거와 함께 아데닌과 티민, 구아닌과 사 이토신이 항상 상보적으로 결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이제 유전 현상을 분 자 수준에서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중 나선 구조는 유전과 염색체 연구에서 수십 년 동안 축적되어 온 모든 지식에 잘 맞아 떨어졌으며, 생명체가 갖는 고유한 특징 중 하나인 생식도 이중 나선 구조의 자기 복제로 설명할 수 있었다. 이로써 우리는 유전자의 본체가 무엇이며, 그것이 어디에 위치하며, 어떻게 전달되고 이 논문은 실험이 아닌 모델의 실제 조 립과 추론에 의해 완성된 것으로, DNA가 이중 나선 구조를 하고 있다 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이 논문은 1페이지 900단어에 불과한 논문이지만, 생물학과 인류의 역사를 바꾼 논문이었다. 어떤 구조로 존재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브라보! 대단한 걸. 우리의 정체를 밝혀내다니. 그림 13-11 DNA 모형과 함께 한 왓슨과 크릭 그림 13-12 프랭클린(Franklin, R. L.; 1920~1958)의 DNA X선 회절 사진 왓슨과 크릭이 DNA가 이중 나선 구조임을 밝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 을 하였다. 13. ‘어떻게’를 찾아 나선 생물학 125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25 2018-08-31 오후 4:25:48 인간 유전체를 해독하다 DNA의 발견 과정에서 현대 생물학의 가장 중요한 접근 방식인 ‘분자 생물학’이 탄생 유전체(genome) 생물체를 구성하고 기능을 발휘하게 하는 유전자의 총집합 하였으며, 오늘날의 생물학은 분자 생물학이 아닌 것이 없다고 할 만큼 중요한 위치에 이르게 되었다. 분자 생물학이라는 말은 1938년 록펠러 재단의 자연 과학 분과 국장으로 있던 위버 가 처음 사용했다. 이때 록펠러 재단의 물리학 중점 지원 사업에서 물리학에 의해 발전 된 분석 방법, 기술 및 연구 방법들을 생물학적 문제에 응용하려는 새로운 방향의 흐름 이 시작되며 많은 젊은 생물학자들이 이 분야에 뛰어들게 되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 분자 생물학은 유기체주의에서 추구하던 생명체만의 신비주의나 자연사 전통의 모습 을 탈피하여 ‘세상은 관찰 가능한 사물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환원론과 기계 론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 분자 생물학은 이후 더욱 발전해 1980년대 말부터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인간의 모 든 유전 정보를 밝혀낼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결국 1990년대 초에 인간이 가지고 있는 DNA의 염기 서열을 모두 밝히는 계획인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시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중국, 일본 6 개국의 공동 노력과 셀레라 지노믹스라 는 민간 법인의 후원을 받아 이루어지 게 되었다. 작되었고 2001년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중국, 일본 6개국 합동으로 『네이처』지에 논문 『인간 게놈 지도의 기본 측정과 분석』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완전한 염기 서열 해독 결과는 2003년에 발표되었다. 마침내 인간의 모든 유전 정보를 해독하기까지 이 른 것이다. 한편, 인간의 유전자를 전면으로 다룬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서 가장 민감했던 영역은 인종이 실재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15세기 이후로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인종 개념 이 유전학적 개념인지의 문제는 우생학의 망령을 기억하는 유전학자들에게는 걱정스러 소중한 내 정보인데……. 운 것이었다. 때문에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완료된 2003년 과학자들은 공식 성명을 통 하여 ‘인종은 없다.’라는 선언을 하게 되었다. 그래 인종은 없는 거야! 새로운 시장이 열리겠군! 그림 13-13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결과의 영향 126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26 2018-08-31 오후 4:25:48 유전자를 조작하여 인공 생명체까지 만들 수 있게 되다 1953년 DNA 구조가 밝혀진 이래 분자 생물학은 발전을 거듭하면서 유전 공학이라 는 새로운 학문 분야를 탄생시켰다. 특정 유전자만을 절단하여 분리해 낸 후 박테리아 아의 플라스미드 등에 이를 재조합시켜 특정 유전자만을 다량으로 얻어 낼 수 있는 유 멀리스(Mullis, K. B.; 1944 ~ ) 미국의 생화학자, 1983년 중합 효소 연쇄 반응을 이용한 DNA 증폭 기술 을 개발한 공로로 1993년 노벨 화학 상을 받았다. 전자 재조합 기술이 1970년대 초에 발명되었다. 인터페론, 성장 호르몬 등 다양한 질 병 치료 물질들이 재조합 미생물로부터 생산되었다. 그 후 1983년 멀리스에 의해서 중합 효소 연쇄 반응법(PCR)이 개발되면서 분자 유 전학 연구의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PCR 기술은 아주 작은 유전자 조각도 연쇄 증폭을 중합 효소 연쇄 반응법(Polymerase Chain Reaction, PCR) 통해 실험에 충분한 많은 양으로 늘려 준다. PCR 기술은 현재 범죄 현장에서 범인의 작은 혈흔이나 타액 등에서 유전자를 채취하여 과학 수사를 하거나, 고생물학·고고 인 류학 등에서 계통 추적을 하는 데에도 이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전기 회로의 원리를 생물학에 융합하여 마치 전자 부품들로 키트를 만들 듯이 생명체를 조립 및 합성할 수 있는 합성 생물학이 등장하여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 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시절만 해도 우리는 생명체의 유전자를 읽어 내는 것만도 대 1984년에 멀리스(Mullis, K. B.; 1944~) 가 특정 DNA 서열을 증폭하기 위한 방 법을 고안하여 중합 효소 연쇄 반응이 라고 불렀다. 단하게 여겼으나, 이제는 원하는 기능을 하는 유전자를 인공적으로 합성해 낼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바야흐로 ‘읽는’ 유전학 시대에서 ‘쓰는’ 유전학 시대로의 도약이다. 본문 223쪽 참조 연구자들은 합성 생물학을 ‘두 얼굴의 과학’이라고 말한다. 인류에 필요한 물질과 에 너지를 생산하는 ‘생물 기계’를 만들어 크나큰 이득을 가져다 줄 수도 있지만, 위험한 유전자가 자칫 자연계에 본래부터 존재하는 유전자들과 섞이면서 생태계의 교란을 초 래하거나 생물 테러의 도구로 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미국 정부는 독성이나 병원균 유전자를 지 닌 인공 생명체가 탄생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며 200개 염기쌍 이상의 유전자를 합성할 때에는 생명 공 친환경 대체 연료를 생산하는 미생물을 만들어 보자. 내년 국제 합성 생물학 대회에는 무엇을 만들어 출전할까? 학 기업들이 스스로 감시망을 가동하도록 하는 지침을 마련해 공시했다. 유전자 합성을 주문하는 고객의 신원을 확인하고, ‘위험한 유전자’ 정보를 모은 데이터베이스와 연동해 주문 내용의 안 전성을 확인하게 한 것이다. 세계 생명 공학 기업들도 현재 업계 자율 의 지침을 마련 중이다. 정리하기 생명의 연속성 개념이 발달해 온 역사를 다음 단어들 을 넣어 정리해 보자. 생각 넓히기 미래의 생물학의 모습은 어떻게 변화될지 ‘무엇’, ‘왜’, ‘어떻게’의 관점에서 예측해 보고, 생물학과 다른 학문들과의 범생설 전성설 후성설 세포설 융합에 대해서도 토의해 보자. 염색체 입자설 혼합설 멘델 법칙 돌연변이 유전자 DNA 구조 13. ‘어떻게’를 찾아 나선 생물학 127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27 2018-08-31 오후 4:25:49 생물학은 융합하면서 발전하였다 생물학이라는 명칭은 언제부터 생긴 것일까? 생물학이 전문적으로 통일된 모습을 갖추고 독립된 이름을 가진 것은 19세기 중반 정도로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생명에 대한 인간의 탐구의 역사가 짧다는 뜻은 아니 다. 다만, ‘생물학’이라는 이름 아래 함께 모인 것이 오래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세포와 유전 원리를 이해하고 모든 생명의 공통 속성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동 물학자와 식물학자, 그리고 표본을 수집하며 자연사를 연구하는 학자와 생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들 간의 관계는 마치 물리학자와 생물학자만큼이나 멀었다. 생물학에는 크게 자연사와 의학이라는 전통적인 분류 방식이 있으며, 이들의 서로 다른 접근 방식이 형성된 역사는 2,000년이 훨씬 넘는다. 히포크라테스와 그 제자들에 의하여 번성하고 이 후 갈레노스와 하비로 이어지는 해부학과 생리학 전통은 환원적이고 분석적이며 기계론적인 접 근 방식을 띠고 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아리스토텔레스와 테오프라스토스로 대표되는 자연 생물학이란 용어의 유래 ‘우리의 탐구 주제는 생명의 다양한 형 태와 발현이고, 생명의 존재를 조절하 는 조건과 법칙이며, 이에 영향을 주는 원인들이다. 이런 주제에 관여하는 과 학을 우리는 생물학이나 생명의 과학 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것이다.’ -트레비아누스(1802)의 생물학에 대 한 설명 - 사에 대한 연구들은 생명의 다양성을 연구하는 분야이며, 오늘날에는 계통 분류학, 비교 생물 학, 생태학, 진화 생물학 등의 영역으로 분화·발전되었다. 생물학이라는 용어는 브루다흐와 트레비아누스, 그리고 라마르크에 의해 1800년대 문헌부 터 처음 사용되었다. 생물학이라는 명칭은 발견하고 수집하고 서술하며, 그것을 분류하는 것 이상으로 살아 있는 유기체 자체의 총체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목표로 하는 활동 전 체를 나타내는 말로 등장하였다. 1665년/훅/세포의 발견 1600년대 1753년/린네/『식물의 종』 출간 (생물 명명법과 근대 분류학의 확립) 1809년/라마르크/『동물 철학』 출판 (용불용설 주장) 1865년/멘델/『식물 잡종에 관한 연구』 출판(유전 법칙의 발견) 1700년대 1859년/다윈/『종의 기원』 출판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론 발표) 1901년/더프리스/ 돌연변이설 발표 1800년대 1890년/월리스/ ‘월리스선’ 발표 월리스선 보르네오섬 셀레베스섬 발리섬 롬복섬 그림 13-14 세포의 발견에서부터 인간 유전자를 조작할 수 있게 되기까지의 여정 128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28 2018-08-31 오후 4:25:50 생물학은 과학 철학자 쿤이 제시하는 과학 혁명 이론과는 달리, 혁명적으로 이전의 생각을 버 리고 새로운 생각을 택하여 나아가기보다는 점점 새로운 생각들과 융합하면서 다양한 영역으 로 설명의 범위를 넓히는 설명 복합체의 형태를 띠어 가는 방식으로 발달해 왔다. 대표적으로 유전학은 초창기 생명의 연속성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되어 발생학과 융합하여 발생 유전학이 형성되었고, 수학 및 입자론과 융합하면서 멘델의 고전 유전학이 창시되었다. 그 후 세포학과 융합하여 세포 유전학이 창시되었으며, 얼마 후에 염색체설이 확립되고 유전 물질로서 DNA의 존재가 밝혀지면서 분자 생물학과 융합한 분자 유전학과 유전체학이 확립 되었다. 그러나 유전학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가서 빅 데이터 분석과 같은 컴퓨터 과학과 반도체 공학과의 융합을 통해 유전 정보학(혹은 생물 정보학)을 낳았고, 마지막에는 다윈주 의 진화론 및 수학, 생태학과 융합하면서 오늘날 현대 생물학의 사고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신다윈주의 모델인 신종합설과 ‘생물학적 종’ 개념을 탄생시켰다. 신종합설은 유전학적 증거들을 바탕으로 자연 선택설을 재조명하면서 유전학과 자연 선택 설이 대립되는 관계가 아님을 밝혀내는 데 기여하였다. 돌연변이는 점진적인 자연 선택에 걸 림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선택이 일어나기 위한 변이를 제공하는 재료라는 개념으로 인 정되었다. 1933년/모건/고전 유전학의 완성 및 염색체 지도 작성 1952년/허시와 체이스/박테리오파지를 이용해 DNA가 유전 물질임을 증명 1900년대 1943년/에이버리/ DNA가 유전 물질임을 주장 1953년/왓슨과 크릭/DNA 분자 구조 규명 1983년/멀리스/ PCR 기술 개발 2000년대 1997년/월멋과 캠벨/ 복제 양 돌리 탄생 생물학적 종 현대 생물학에서는 마이어가 제창한 생물학적 종의 개념을 정설로 여기고 있다. 이에 따르면 어떠한 두 개체가 교 미 전후에 ‘생식적 격리’라 일컫는 현상 없이 자연적으로 번식해 자손을 낳아 세대를 이어 나갈 수 있을 때 최초의 두 개체를 서로 같은 종이라고 여긴다. 2013년/김진수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를 통한 세계 최초 인간 유전자 교정 2010년대 2003년/인간 게놈 프로젝트/ 인간 유전자 지도 발표 과학 이야기 129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29 2018-08-31 오후 4:25:52 근대와 현대 물리학의 성립과 발전 인간은 우주 만물의 운행과 그 이치를 밝히고자 노력해 왔다. 물리학은 이를 집대성한 학문이다. 물리학에서는 원자보다 작은 소립자부터 거대 초은하단에 이르기까지 우주를 이루고 있는 모든 물체의 운동을 연구하여 우주의 기본적인 힘이 작용하는 원리를 규명하고, 에너지의 전환과 보존 법칙을 밝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이해를 확장시켰다. 우주 만물에 작용하는 힘을 연구해 만유인력을 밝혀 냈어요. 우주도 기계처럼 정교하게 움직인다는 사실에 다들 엄청 놀랐죠. 뉴턴 선생님! 빛을 입자로 설명한 것은 절반만 맞은 겁니다. 빛이 파동이라는 사실을 제가 실험을 통해 확실히 증명했기 때문이죠. 에너지 보존 법칙을 제가 실험으로 증명했죠. 열은 물체의 운동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에요. 뉴턴 선생님도 몰랐던 힘의 작용 원리를 드디어 우리가 장 이론 아이디어는 으로 밝혔답니다. 전자기 패러데이가, 수학적 연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죠. 정리는 나 맥스웰이 했답니다. 모든 경우에 적용되는 절대적인 물리 법칙은 없습니다. 관찰자의 운동에 따라 물리 법칙도 다르게 적용되죠. 130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30 2018-08-31 오후 4:25:56 14 열과 에너지의 비밀을 밝힌 열역학 학 습 목 표 ㅣ 열역학이 성립된 과정과 과학사적 의의를 설명할 수 있다. 산업 혁명과 열역학의 태동 17세기 말부터 증기 기관을 만들기 시작했고, 18세기 들어서 개량하여 사용하였다. 증기 기관은 열을 가 해 물을 끓일 때 생기는 증기의 힘으로 기계를 움직여 일을 하게 만드는 장치이다. 단 한 대의 증기 기관으 로 여러 마리의 말이 해야 하는 일을 할 수 있었다. 증기 기관은 제품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여 주어 산 업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더구나 말처럼 먹이를 주거나 마구간을 정리할 필요도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증 기 기관의 편리함에 매료되었다. 헨리(미국), 「최초의 증기 기관차」 사람들은 증기 기관을 통해 열을 가하면 기계를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구체적인 과학적 원리 는 잘 몰랐다. 과학자와 기술자들은 편리하고 생산성도 높은 증기 기관을 지속적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어떻 게 하면 효율성을 더 높일 수 있을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열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 고 열과 에너지의 관계를 알게 되었다. 19세기 초 프랑스의 카르노는 열이 기계의 동력으로 전환되는 과정 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며 엔진 효율성에 대하여 다루었다. 이것이 근대 열역학의 시작이 되었다. 열은 어떻게 증기 기관을 움직이게 하였을까? 14. 열과 에너지의 비밀을 밝힌 열역학 131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31 2018-08-31 오후 4:26:00 1 열은 어떻게 전달되는가 흠, 제가 연구해 보니 빛은 입자가 분명해요. 뉴턴 선생님이 저렇게 말씀하셨으니 열도 당연히 입자가 맞겠죠. 조금 의심은 가지만 뉴턴과 같은 대학자의 말씀이라면 따라야겠지요. 에효, 아니라니까요. 뉴턴 18세기 과학자들은 대부분 고전 역학을 완성한 뉴턴을 따르고 있었는데, 이들은 열 의 이동 현상에 대해서도 뉴턴의 이론을 적용하고자 했다. 뉴턴은 빛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를 했고, 빛을 입자라고 주장하였다. 이를 근거로 당시 과학자들은 빛이 입자라면 마찬가지로 열도 입자라고 생각하였다. 열소 이론의 등장 18세기 과학자들은 열이 열소(caloric)라는 작은 입자로 되어 있고, 열소가 고온 물체에서 저온 물체로 이동함으로써 온도가 높아진다고 설명하였다. 이를 열소 이론 (caloric theory)이라고 한다. 따뜻한 물체와 차가운 물체를 접촉해 두면 열이 따뜻한 물체에서 차가운 물체로 이동하여 나중에는 온도가 같아진다는 것은 경험으로 알려져 있었다. 당시 과학자들은 이러한 열의 이동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열소가 이동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인류와 불 인류는 오래전부터 불을 생활에 이용해 왔다. 동물 중 불을 사용하는 것은 오직 인간뿐 이다. 인간은 두꺼운 털가죽이나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이 없지만 불을 이용해 맹수로부터 몸을 지키고 추위에서 체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러한 불의 유용함 때문에 인간은 원시 시대부터 불에 호감을 느끼고, 불의 힘을 신의 긍정적인 속성 중 하나로 받아들였다. 뜨 거운 불의 기운을 이용해 나쁜 기운을 몰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도 지극히 당연했다. 고대인들 중에는 자연스럽게 불을 숭배하거나 불의 성질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생겼 다. 고대 철학자들은 불을 만물을 구성하는 원소(물, 불, 공기, 흙)으로 생각하고, 특히 만물을 변화시키는 원천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고대 철학자들이 불을 왜 만물을 구성하는 기본 원소로 인식하게 되었는지 토의해 보자. 그림 14-1 원시 시대 인류의 불의 이용 132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32 2018-08-31 오후 4:26:00 열소 이론의 한계 1761년 얼음과 물의 상태 변화를 관찰하던 영국의 블랙은 얼음이 녹는 동안에는 열을 가해도 온도는 변하지 않고 물의 양만 증가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는 이 현상을 열소가 얼음 알갱이와 결합하는 것으로 보 차가운 물체 고, 이로써 물이 가진 ‘숨은열’이 증가한다고 설명하였다. 이처럼 열소 이 론은 온도가 서로 다른 물체 사이에서 열의 이동과 전환을 잘 설명해 주 었으며, 특히 온도가 높아지면 물질의 부피가 증가하는 현상도 쉽게 설명 더운 물체 열소 열소 해 주었다. 열소 이론에 대해서는 당시 물질의 연소에서 플로지스톤 이론 을 배격하며 화학 분야의 혁명을 불러일으킨 라부아지에 같은 과학자들 도 지지하였다. 또한, 와트가 증기 기관을 개량하는 이론적인 배경이 되기 도 하였다. 그림 14-2 열소 이론 하지만 열소 이론에는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만약 열소가 물질이라면 질량을 가 져야 한다. 어떤 물질이든 온도가 변하면 질량을 가진 열소가 출입한 것이므로 이에 따 칼로리의 어원 라 질량이 달라져야 하지만 어떤 실험도 이를 확인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해 열소 이론 열소 이론은 사라졌지만, caloric이라 는 단어는 열량을 나타내는 calorie(칼 로리)로 이어졌다. 을 지지하는 측은 열소는 질량이 없는 특별한 물질이라며 열소는 열을 수반하는 모든 과정에서 그 양이 보존된다고 주장하였다. 벤자민 톰프슨, 마찰열을 실험하다 당시 북아메리카 출신의 과학자 톰프슨은 열소 이론에 의문을 가졌다. 그는 포병 장교 로 근무하면서 대포 제작을 위해 쇠를 깎아 포신을 만들었다. 이때 포신에서 엄청난 열이 발생했는데, 아무리 보아도 주변에서 포신으로 열소를 이동시킬 만한 물체가 없었다. 톰 프슨은 다양한 실험 끝에 1798년 포신을 깎는 동안 열이 발생하는 이유는 열소의 이동이 아니라 기구로 쇠를 깎는 마찰 운동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주장하였다. 과학자들 사이에 열의 본질과 열소 이론에 대한 지루한 논쟁이 이어지다가 마침내 해 간섭과 회절 현상 •간섭: 두 개 이상의 파가 한 점에서 만날 때 합쳐진 파의 진폭이 변하는 현상 •회절 현상: 파동의 전파가 장애물 때 문에 일부가 차단되었을 때 장애물 의 그림자 부분에까지도 파동이 전 파하는 현상. 장애물의 크기와 파장 이 같은 정도일 때 뚜렷이 나타난다. 답은 다소 엉뚱한 곳에서 나왔다. 1825년 영국 과학자 영은 이중 슬릿을 이용하여 빛 의 성질을 실험하였는데 빛이 파동의 특성인 간섭과 회절 현상을 일으킴을 확인하였고, 1831년 전자기 분야 에서 에너지가 파동 형태로 전달되는 원리가 밝 앗! 뜨거워. 도대체 포신을 깎는데 이 많은 열이 어디서 나오는 거야? 혀진 것이다. 빛을 입자가 아닌 파동으로 이 해하면서 열도 물질이 아니라 물체의 구성 입자들의 운동 에너지의 이동으로 설명 할 수 있었다. 이후 에너지에 대한 다양 한 연구가 진전되고 에너지 보존 법칙이 확립되며 열소 이론은 사라지게 된다. 그림 14-3 톰프슨(Thompson, B.; 1753~1814)의 열소에 대한 의문 14. 열과 에너지의 비밀을 밝힌 열역학 133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33 2018-08-31 오후 4:26:02 2 열역학 법칙이 밝혀지다 물체의 퍼텐셜 에너지를 운동 에너지로 바꾸고, 다시 열에너지로 바꾸었습니다. 열이 기체를 팽창시켜 기계의 역학적 에너지로 전환되는 과정을 단계별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카르노 줄 증기 기관이 널리 사용되면서 열이 기계의 동력으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 다. 그 반대의 경우로 톰프슨 같은 과학자들은 실험을 통해 물체의 운동에서 열이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물체의 역학적 운동과 열의 상호 전환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다. 카르노, 열을 역학적 에너지로 설명하다 당시 유럽은 해외 식민지를 개척하고 식민지에 내다 팔 제품들을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계 장치 개발에 몰두하였으므로 과학자들도 자연스럽게 이러한 흐름에 참여 하게 된다. 1824년 열기관의 효율성을 연구하던 프랑스의 카르노는 『열의 동력』이라는 논문을 통해 열이 기계의 운동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단계별로 설명하며, 열기관의 원리 를 이론적으로 체계화하였다. 한편, 독일의 마이어는 1842년 동물이 먹이에서 얻은 화학적 에너지를 활동에 필요 한 운동 에너지로 전환시켜 활용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열도 기계의 역학적 에너지로 줄의 실험 전환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열을 운동(일)을 할 수 있는 능력 즉, 에너지로 정의하 고, 열이 역학적 에너지로 전환된다고 설명한 것이다. 줄, 역학적 에너지를 열로 전환하다 1843년 영국의 줄은 열이 역학적 에너지로 전환된다면 반대로 물체의 역학적 운동에 서 열이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물체의 운동을 통해 역학적 에너지가 열에너지 로 전환되는 정도를 측정하는 실험을 고안하고 물체의 운동에 의해 전환되는 열에너지 를 측정하였다. 실험을 통해 물체의 운동으로 퍼텐셜 에너지 변화가 일어난 만큼 열에 줄(Joule, J. P.; 1818~1889)은 그림 과 같은 실험 장치를 이용하여 열의 일 당량을 측정하였다. 측정 원리는 핸들을 돌려 추를 끌어올 려 추의 퍼텐셜 에너지를 증가시킨 후, 핸들을 놓으면 추가 낙하하면서 물속 의 회전 장치를 돌린다. 회전 장치의 회 전으로 주변의 물의 온도가 높아지게 된다. 즉, 추의 퍼텐셜 에너지가 회전 장치의 운동 에너지로 전환되고, 다시 물의 열에너지로 전환되는 것이다. 너지가 증가한 것을 확인함으로써 열과 일은 동일한 개념임을 증명하였다. 줄의 실험으로 열은 물질이 아닌 에너지의 한 형태임이 확인되었고, 클라우지우스와 헬름홀츠 등에 의해 열역학 제1법칙(에너지 보존 법칙)으로 정립된다. 열역학 제1법칙(에너지 보존 법칙) 모든 에너지는 서로 전환될 수 있다. 닫힌 계에서 에너지는 새롭게 생기거나 소멸되지 않고 일정하게 보존된다. 134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34 2018-08-31 오후 4:26:02 열역학 제2법칙, 열의 일방적인 흐름을 밝히다 카르노의 이론과 줄의 실험은 역학적 에너지와 열에너지의 상호 전환과 에너지 보존 법 칙을 설명하는 데 나름대로 기여했지만 한계점도 가지고 있었다. 카르노의 이론은 열소 이론을 전제로 하고 있었고, 줄의 실험에서 기계의 역학적 에너지는 모두 열에너지로 전 환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열의 일부만 기계의 역학적 에너지로 전환된다는 점이었다. 1850년 무렵, 이러한 문제를 연구하던 독일의 클라우지우스는 열기관의 에너지의 전 카르노(Carnot, N. L. S.; 1796~1832) 프랑스의 물리학자, 열은 높은 온도로 부터 낮은 온도로 옮겨질 때에만 힘을 얻을 수 있고, 그와 반대의 경우에는 밖 으로부터 힘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이것은 오늘날의 ‘ 열역학 제2법칙’과 같은 것이다. 환 과정에서 열의 일부만 일로 바뀌고 나머지는 온도가 낮은 곳으로 흘러가거나 마찰 과 소리 등으로 바뀌어 버려지며, 이러한 현상이 비가역적임을 알게 되었다. 즉, 열의 흐 름에 일정한 방향성이 있고, 이를 ‘엔트로피’라고 하였다. 오늘날 엔트로피에 대한 법칙을 가리켜 열역학 제2법칙이라고 부른다. 열역학 제2법 칙은 외부와 에너지 출입이 없는 한 시간이 지나면 보온병 속의 따뜻한 물과 차가운 얼 음은 차츰 온도가 변하며 미지근한 물로 변하게 되지만, 그 반대로 미지근한 물이 차가 운 얼음과 따뜻한 물로 변하지 않는 것을 잘 설명해 준다. 시간이 지나면 얼음이 녹아 물로 변하며 둘의 온도는 같아진다. 얼음 미지근한 물 물 시간이 지나도 미지근한 물이 따뜻한 물과 차가운 얼음으로 변하는 현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림 14-4 열역학 제2법칙 에너지의 전환은 질서가 높은 쪽에서 질서가 낮은 쪽으로 한쪽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것 이다. 예를 들어, 차가운 얼음과 따뜻한 물을 섞은 상태로 시간이 지나면 항상 얼음이 녹으며 전체의 온도가 같아지 게 된다. 그 반대의 경우는 일어나지 않는다. 외부의 에너지 출입이 차단된 상태에서 찬물을 놓아둔다고 해서 찬물 이 차가운 얼음과 따뜻한 물로 분리되는 경우는 없다. 이러한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우리가 공학적으로 100% 효율을 가진 열기관을 만 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우주라는 시공간에서 시간이 한 방향으로만 흐를 뿐 거꾸 로 흐를 수 없음을 이해하는 데에도 적용되고 있다. 정리하기 17~18세기 열역학의 성립이 가지는 과학사적 의의를 다음 단 어들을 넣어 정리해 보자. 생각 넓히기 열역학의 발달 과정에서 밝혀진 에너지 보존 법 칙과 열역학 법칙들을 통해 알게 된 과학적 개념들은 어떤 의미 열소 이론 열역학 제1법칙 열역학 제2법칙 열에너지 가 있는지 토의해 보자. 역학적 에너지 마찰열 분자 운동 에너지 보존 법칙 14. 열과 에너지의 비밀을 밝힌 열역학 135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35 2018-08-31 오후 4:26:04 15 빛이 가진 물리적 성질의 이중성 학 습 목 표 ㅣ 광학의 발전 과정을 이해하고, 빛의 성질 규명을 통해 이루어진 물 리학 발달의 과학사적 의의를 설명할 수 있다. 보이는 것 이상의 진실 인간은 태양 에너지를 이용해 살아가는 생물이라는 과학적 이유를 대지 않더라도 본능적으로 빛에 끌리 는 존재이다. 세계의 설화들은 세상이 만들어질 때 가장 먼저 생겨난 것으로 빛을 들고 있다. 또한, 수많은 문학 작품에서 빛은 선과 지혜의 상징으로, 어둠은 악과 무지의 상징으로 묘사된다. 빛에 대한 인간의 이러 한 정서적, 철학적 관점의 영향 때문이겠으나 고대 철학자들에게도 빛의 성질을 규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주제였다. 고대 철학자들은 빛이 물체에서 나와 사람의 눈으로 들어오는 것인지, 아니면 빛이 눈에서 나와 물체를 비추는 것인지 궁금했다. 또한, 우리가 인지하는 색상은 물체의 고유한 속성인지 아니면 빛이 눈으로 들어오 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인지 알고 싶어 했다. 이에 대한 논쟁은 1,000년이 넘게 이어졌고, 17세기에 이 르러 과학적 진실을 탐구하는 과학자들 사이의 본격적인 논쟁으로 발전하였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거든. 참된 지식을 찾으려면 빛과 색 이면의 진실을 알아야 해. 뜨거운 여름날 도로에서 신기루가 나타나기도 해요. 눈은 인간이 세상으로부터 지식을 얻는 중요한 수단으로 여겨진다. 우리가 얻는 대부분의 지식은 세상에 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눈으로 관찰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눈으로 들어오는 빛을 통해 수많은 지식을 얻게 되는 것이다. 고대 철학자들이 참된 지식을 얻으려면 먼저 빛에 대하여 정확한 이해가 선행되어 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광학의 발전은 과학적 지식의 확장 및 기술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136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36 2018-08-31 오후 4:26:05 1 광학 연구의 시작 모든 색은 흰색(명)과 검 은색(암)의 혼합으로 만들어지지. 아리스토텔레스 시각과 물체의 상, 빛의 굴절과 반사 등을 연구해서 사진기의 원리를 개발했어요. 이븐알하이삼 물체가 보이는 것은 빛이 물체에서 나와 우리 눈으 로 들어오기 때문이랍니다. 데카르트 빛에 대한 연구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시각 이론에서 시작되었다. 유클리드와 프톨레마이오스의 『광학』과 아랍의 이븐알하이삼의 『광학의 서』를 거치며 굴절, 반사, 회절, 간섭, 복굴절 현상의 연구가 이루어져 기학 광학으로 발 전하였다. 색채 이론은 17세기까지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 기하 광학 빛을 단순하게 직선으로만 움직이는 광선으로 취급하는 실용적인 광학 이 론으로 광학 기기의 설계에 중요한 위 치를 차지한다. 었다. 과학 혁명 이전의 광학 연구 아리스트텔레스의 색 이론에 대한 의문은 17세기에 프랑스의 데카르트로부터 제기 된다. 올바른 지식의 탐구 방법으로 연역 추론을 강조한 데카르트는 빛과 관련해서도 본문 13쪽 참조 많은 연구를 하였다. 데카르트는 빛이 물체에서 나와 공간을 채우고 있는 보이지 않는 매질(에테르)을 지나 눈으로 전달되는 기계적인 현상이라고 보았다. 마치 지팡이를 통 해 장님의 손에 전해지는 물체의 압력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또한, 빛이 가진 여러 가지 색은 공간을 채운 매질의 회전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나타 나는 현상으로, 빨강과 파랑은 각각 가장 빠른 회전 운동과 가장 느린 회전 운동에 의 한 것으로 해석하였다. 데카르트는 1637년 빛에 대한 굴절 법칙을 밝히기도 했다. 빛의 굴절 법칙은 그보다 앞서 1621 년 네덜란드의 스넬이 발견한 것으로 확 인되어 스넬의 법칙으로 불린다. 그림 15-1 이븐알하이삼의 광학 연구 이슬람의 과학자 이븐알하이삼은 빛의 굴절과 반사 등을 연구하여 기하 광학 의 기초를 닦았다. 이븐알하이삼이 그 림과 같이 개발한 암흑 상자는 오늘날 사진기의 원리로 발전하였다. 15. 빛이 가진 물리적 성질의 이중성 137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37 2018-08-31 오후 4:26:09 2 빛, 입자인가 파동인가 햇빛을 이렇게 프리즘에 통과시켜 보면 백색광이 여러 가지 색으로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어요. 17세기 초에 갈릴레이가 천체 관측에 망원경을 사용한 이후 많은 과학자와 기술자들은 좀 더 정교한 망원경을 만들기 위하여 경쟁을 하였으며, 이러한 노력은 현미경 등 다양한 광학 기기의 개발로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광학 이론은 더욱 정교하게 발전하였고, 빛의 본질을 이해하려 는 철학적인 노력도 함께 진전되었다. 뉴턴, 빛의 입자성을 주장하다 만유인력과 물체의 운동 법칙으로 역학 혁명을 완성한 뉴턴은 광학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연구를 진행하였다. 뉴 턴은 빛이 에테르라는 매질을 통해 전달되는 작은 입자라 고 생각하였고, 면밀한 과학적 실험과 정교한 수식을 활용 해 이를 증명하고자 하였다. 빛의 성질에 대해 기본적으로 데카르트의 연구를 이은 뉴턴은 프리즘을 이용한 빛의 분광 현상을 관찰하는 실험 을 준비하였다. 작은 구멍이 뚫린 커튼으로 방을 어둡게 가린 후 구멍으로 햇빛(백색광)이 들어오게 하고 프리즘을 통과시켜 반대편 벽에 굴절하도록 만들어 무지개색이 나타나게 하였다. 이 현상에 대해 데카르트를 비롯한 당시 자연 철학자들은 프리즘이 한 가지 색으로 된 백색광을 여러 그림 15-2 얇은 막에 생기는 무지개색 무지개색은 얇은 막의 표면과 안쪽에 서 반사되는 빛의 간섭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빛깔의 색으로 바꾼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뉴턴은 프리즘을 거쳐 분광된 무지 개빛을 다시 두 번째 프리즘에 통과시켜 백색광을 만들어 보임으로써 햇빛은 원래 다 양한 색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뉴턴은 빛이 크기가 서로 다른 작은 입자들 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입자들의 크기에 따라 여러 가지 색이 나타난다고 하는 빛의 입자성 을 주장하였다. 1704년 뉴턴은 빛에 대한 자 신의 연구 결과를 정리하여 『광학』이라는 저서 로 발표하였다. 하지만 빛의 입자성만으로는 얇은 막 위에 나타나는 무지개색과 같은 현상을 설명하는 데 다소 무리가 있었으므로 로버트 훅과 하위 헌스 등 일부 과학자들이 반증을 시도하였으 나 당시 뉴턴의 명성에 눌려 크게 주목 받지 못했다. 138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38 2018-08-31 오후 4:26:09 뉴턴에게 도전한 하위헌스 빛이 파동일 것이라는 주장은 1667년 영국의 훅이 『마이크로그라피아』에서 먼저 제 하위헌스(Huygens, C.;1629~1695) 시하였다. 훅은 ‘빛을 향해 빛을 쏘아도 서로 충돌하지 않고 통과한다.’는 실험 결과를 이용해 빛은 파동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였다. 네덜란드의 하위헌스는 자신이 직접 렌즈를 개량하여 제작한 망원경으로 최초로 토 성의 위성과 고리를 확인하였다. 데카르트의 탐구 방법을 존중한 하위헌스는 토성을 관찰하며 빛의 속도가 유한함을 깨닫고 있었다. 평소 빛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 며 뉴턴을 존경하였으나 빛의 성질에 대해서는 뉴턴의 견해를 비판하였다. 하위헌스는 뉴턴과 달리 빛을 입자가 아닌 파동으로 이해하더라도 빛의 직진이나 반 사, 굴절 현상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으며, 오히려 소리나 물결 같은 파동 현상에서 보 이는 것과 유사한 빛의 회절 현상까지 쉽게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1678년 하위헌스는 ‘빛은 에테르라는 매질 속에서 물결처럼 전달되는 파동’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하위헌스의 주장은 대학자 뉴턴의 명성에 가려져 버렸고, 소수의 과 네덜란드의 수학자, 물리학자, 천문학 자, 망원경을 개량하여 토성의 고리를 발견하였으며, 광학 분야에서는 하위 헌스의 원리로 빛에 대한 여러 가지 현 상을 설명하고 빛의 파동설을 수립하 였다. 학자들만 그의 주장을 옹호하며 빛의 입자성과 파동성 논쟁이 지속되었다. 탐구 활동 광학 기기의 발달사 조사하기 조사 토의 자료 근대 광학 연구는 렌즈를 이용한 다양한 관찰 도구의 발명을 이끌어 냄으로써 더 이상 생각만으로 하는 탐구가 아닌 실험과 관찰 중심의 실증적인 과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로마 시대부터 이미 수정 구슬이나 물을 채운 유리 공을 렌즈로 활용해 물체를 확대하여 보았다고 한 다. 이후 13세기에 이르러 이탈리아의 피사에서 안경이 발명되어 사용되었으며, 17세기 초에는 여러 개 의 렌즈를 조립하여 만든 망원경이 발명되었다. 또한, 17세기 말에는 물체를 확대하여 볼 수 있는 현미 경이 개발되었으며, 이후 카메라, 전파 망원경, 전자 현미경으로 발전하였다. ➊ 안경 ➋ 망원경 ➌ 현미경 결과 및 정리 1. 안경이 물체의 상을 축소하거나 확대할 수 있는 원리를 설명해 보자. 2. 광학 기기의 발명과 성능 개선 노력이 과학 지식의 발달에 기여한 영향을 조사하여 발표해 보자. 3. 망원경과 현미경의 발달 과정을 사진으로 정리한 후 발표해 보자. 15. 빛이 가진 물리적 성질의 이중성 139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39 2018-08-31 오후 4:26:10 3 영(Young, T.; 1773~1829) 영, 빛의 파동성을 증명하다 19세기 초까지 과학계에서는 뉴턴이 주장한 빛의 입자설을 대체로 비판없이 받아들 이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빛의 파동성에 대한 연구도 점차 진행되어 빛의 운동을 입자 설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현상들이 점점 많아졌다. 1800년대 초 영국의 과학자 영은 왕립학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특히 눈이 색상을 인 식하는 원리를 연구하였다. 영은 사람의 망막에는 삼원색(적, 청, 녹)에 대응하는 신경 세포가 존재하며, 이러한 신경 세포들의 작용으로 눈에 들어온 빛으로부터 색상을 인 식하게 됨을 밝혔다. 특히 작은 물체 그림자에서 경계 부위가 흐려지는 현상을 뉴턴 이 잘못 설명하였음을 깨닫고, 빛의 입자성과 파동성을 확인하는 실험을 직접 고안하여 착수하였다. 영은 왼쪽 그림과 같이 두 개의 차단막을 세우고, 앞쪽 차단 막에는 한 개의 슬릿을, 뒤쪽 차단막에는 두 개의 슬릿 을 만들었다. 이어서 앞쪽 차단막을 향해 비춘 빛이 뒤 쪽 차단막의 이중 슬릿을 통과하여 스크린에 만드는 무늬 를 확인해 보았다. 스크린에는 밝고 어두운 띠가 반복해서 나타났다. 물결파에서 보이는 간섭 무늬와 비슷한 현상이었 다. 영은 뉴턴의 주장처럼 빛이 입자로 되어 있다면 이러한 간섭 현상은 나타날 수 없으므로, 빛이 일종의 파동임을 증명하였다. 이를 계기로 빛의 입자성과 파동성에 대한 오랜 논쟁은 일단 파동설의 승리 로 정리되는 듯하였다. 그림 15-3 영의 이중 슬릿 실험 탐구 활동 빛이 가진 파동의 성질 확인해 보기 실험 결론 도출 다음 실험을 통해 빛이 가진 파동의 성질을 확인해 보자. 과정 ➊손가락들을 나란히 붙이고 손바닥을 편 상태로 불빛이나 햇빛을 향해 든다. ➋ 손가락 사이에 작은 틈을 만들고 그 틈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손등을 밝은 곳으로 향하게 한다. 손가락 사이의 틈을 자세히 살펴본다. ➌틈 사이에서 가는 선들이 보이는 것을 확인해 본다. (잘 보이지 않으면 손바닥을 얼굴 가까이 또는 멀리 움직이며 확인한다.) 결과 및 정리 가는 선들이 나타나는 것을 확인한다. 손가락 틈 사이에 검은 선들이 생기는 원리를 설명해 보자. 140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40 2018-08-31 오후 4:26:11 4 드러난 빛의 두 얼굴 빛의 성질에 대한 논쟁은 일단 19세기 초 영의 이중 슬릿 실험으로 일단락되지만, 이 후 전자기학 분야가 급격히 발달하면서 빛도 전자기파의 일부임이 확인된다. 전자기파 의 유형으로 적외선과 자외선, 전파, X선 등이 차례로 발견되며, 빛은 가시광선이라 부 르는 영역에 속한 전자기파로 밝혀진다. 또한, 빛에너지의 전달은 전기장과 자기장이 교대로 전파되는 현상임이 밝혀졌다. 하지만 1887년 헤르츠는 빛을 파동으로 보아서는 설명할 수 없는 광전 효과 실험을 최초로 수행하게 된다. 광전 효과란 금속에 특정 진동수 이상의 빛을 쬐면 금속으로부 그림 15-4 광전 효과 터 전자가 튀어나오는 현상을 말한다. 1905년 아인슈타인은 빛을 입자(광양자)로 설명 하면서 광전 효과 실험 결과를 해석하였다. 광전 효과는 오늘날 빛을 전류로 바꾸는 태 양 전지의 원리에 적용되고 있다. 과학자들은 빛이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특이한 점은 빛의 입자적 성질과 파동적 성질은 다른 조건에서 나타나고 동시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빛의 이중성에 대해 브래그는 ‘빛은 월·수·금요일에는 파동으로, 화·목·토요일 에는 입자로 행동하며, 일요일에는 둘 다 아닌 것처럼 작용한다.’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광양자 1887년에 처음 발견된 광전 효과 현상 은 영의 실험 이후 빛이 파동이라는 확 고한 입장을 가졌던 당시로서는 해석 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1905년 아인슈 타인은 빛을 광양자(광자)라는 입자로 설명하면서 광전 효과를 해석하였고, 이때부터 빛의 입자성이 다시 부각되 었다. 그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 하였다. 물질의 이중성 빛의 이중성이 확인된 후 프랑스의 드브로이는 자연의 대칭성에 주목하였다. 빛이 입자의 14.3nm 성질을 가지고 있다면 모든 입자도 파동의 성질을 가질 수 있다고 추론하였고 이를 물질파라 고 하였다. 드브로이는 입자가 가지는 물질파의 파장을 계산하였다. 다만 일반적인 물체의 경우 운동 량이 상대적으로 너무 크기 때문에 파장을 인지할 수 없을 뿐이며, 전자 수준의 소립자의 세계 에서나 파동성을 확인할 수 있음을 설명하였다. 물질의 이중성에 대한 드브로이의 발견은 전자 현미경 개발의 이론적 바탕이 되었다. 전자 현미경은 전자의 파동을 이용해 대상을 50만 배 이상으로 확대하여 관찰할 수 있어 물질을 전 자 수준에서 정밀하게 다룰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고, 오늘날 전자 공학 및 분자 생물학 발달 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림 15-5 철 원자로 둘러싸인 구리 원자 전자 현미 경(주사형 터널 현미경)으로 관찰한 모습이다. (1nm = 10-9m이다.) 투수가 던지는 야구공의 물질파가 관찰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정리하기 빛에 대한 철학적 탐구에서 시작된 빛의 성질 규명 과정 의 과학사적 의의를 다음 단어들을 넣어 정리해 보자. 색깔 빛의 직진 반사 굴절 회절 간섭 입자 파동 프리즘 빛의 이중성 생각 넓히기 17~20세기 빛의 성질에 대한 연구는 과학의 발달 과 정을 잘 보여 준다. 빛의 탐구를 통해 알게 된 과학 발달 과정을 설명 해 보자. 15. 빛이 가진 물리적 성질의 이중성 141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41 2018-08-31 오후 4:26:12 16 전기와 자기 현상의 관련성을 밝힌 전자기학 학 습 목 표 ㅣ 전자기학 이론의 형성 과정을 이해하고, 과학사적 의의를 설명할 수 있다. 지구는 거대한 자석 전기 현상이나 자기 현상은 대체로 매우 오래전부터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었다. 기원전 6세기 무렵 탈레 스는 가죽으로 호박을 문지르면 머리카락과 같은 주변의 물체를 끌어당기는 힘이 생긴다는 사실을 발견하 였다. 또 기원전 4세기 무렵 중국에서는 사남(司南)이라는 도구로 남쪽 방향을 정확히 찾을 수 있었다. 사남 은 자석을 이용해 만든 도구로 후에 나침반으로 개량되었으며 12~13세기 이슬람을 거쳐 유럽으로 전파되 어 콜럼버스와 마젤란의 항해에 큰 도움을 주었다. 이로 미루어 당시 사람들은 자석이 지구의 북극이나 남 극을 향해 끌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기 현상의 원리를 정확히 알았던 것은 아니며, 구체적인 연구가 시작된 것은 과학 혁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던 16세기에 이르러서이다. 17세기 초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주치의이던 길버트는 많은 시간을 전기와 자기 연구에 할애하여 『자 석 및 자성체, 거대한 자석 지구에 대하여』라는 저서를 집필하였다. 이 책에서 길버트는 정전기의 힘과 자석 의 힘은 서로 다른 현상임을 밝히고, 지구 자체가 거대한 자석임을 주장하였다. 그는 자신의 과학적 탐구 결 과를 여왕과 귀족들에게 상세히 설명하며 과학에 대한 대중의 올바른 인식을 심는 데 노력하였다. 여왕 폐하, 자연과 우주의 이치를 바르게 아셔야 하옵니다. 지구는 그 자체가 커다 란 자석이랍니다. 길버트의 테렐라 모형 길버트는 구형 자석으로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테렐라’라는 지구 모형을 만들어 실험했다. 길버트는 자석과 자기력에 대해 연구하며 지구가 물체를 끌어당기는 힘(중력)도 자석이 금속을 끌어당기 는 힘(자기력)과 유사하다고 보았다. 그는 자기력의 크기가 자석의 질량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하였다. 자기력이 원거리에서 작용하는 힘이라는 점에서 착안한 길버트의 생각은 후에 케플러나 갈릴레이의 연구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자기력은 중력과 어떤 점이 유사하며 어떤 점이 다를까? 142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42 2018-08-31 오후 4:26:13 1 전기를 이해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들이 이루어지다 정전기 발생기로 재미난 마술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어, 종이가 내 몸에 붙네. 번개가 전기 현상임을 입증했어요. 번쩍! 찌릿! 놀레 라이덴병 프랭클린 17세기 초 길버트의 자석 연구 이후 전기와 자기는 사람들에게 별도의 현상으로 인 식되고 있었다. 전기와 자기 현상은 갈릴레이와 뉴턴에 의해 천문학과 역학의 혁명적 발전이 이루어지던 시기에도 그저 신비한 자연 현상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극히 일부 자 연 철학자와 지식인들 사이에 놀이의 도구로써 전기와 자기 현상이 활용될 뿐이었다. 볼타, 전기를 발생시키는 전지를 만들다 1650년 무렵 독일의 게리케는 정전기 발생 장치를 만들어 대중들을 감짝 놀라게 하는 데 사용했다. 1730년 무렵 영국의 그레이는 마찰 전기가 물체를 따라 흐르는 유체라고 설명하였으며, 물질에 따라서는 전기를 흐르게 하는 물질(전도체)과 그렇지 않은 물질(부 도체)이 있음을 밝혔다. 1745년 네덜란드에서 정전기를 모으는 장치인 라이덴병이 발 명되었는데, 프랑스 신부이며 과학자인 놀레는 라이덴병을 이용해 귀족이나 대중들 앞에서 전기의 신비한 현상을 보이는 실험을 선보이며 유명해졌다. 이러한 실험들을 통해 전기는 도체를 따라 흐르며, 다른 물체로 전달되는 순간 번개 같은 불꽃이 발생하고, 자석처럼 두 가지 성질이 있어서 성질이 같은 전기 사 이에는 척력이, 성질이 다른 전기 사이에는 인력이 작용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1752년 미국의 프랭클린은 라이덴병과 연을 이용하여 번개가 전기 현상임 을 확인하는 실험을 하며, 피뢰침으로 낙뢰를 예방할 수 있음을 증명하였다. 한편, 1785년 프랑스의 쿨롱은 정교한 실험 장치를 만들어 시험한 결 과, 전기를 띤 물체들 사이에 작용하는 힘이 거리 제곱에 반비례함 을 확인하여 전기력도 뉴턴의 중력과 유사한 방식으로 작용함을 증명하였다. 1799년 이탈리아의 볼타는 화학 전지를 개발하여 전기가 물질 내부의 특성 때문에 발생하는 자연 현상임을 증명하고, 전지에 모 인 전기를 활용하여 여러 가지 실험을 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림 16-1 볼타 전지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볼타(Volta, A.;1745~ 1827)에 의해 발명된 세계 최초의 전지이다. 볼타 전지는 전기가 물질 이 가진 속성임을 밝히고, 전류를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다양한 전기 기기의 발명에 기여했다. 16. 전기와 자기 현상의 관련성을 밝힌 전자기학 143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43 2018-08-31 오후 4:26:15 2 외르스테드, 전기와 자기의 관계를 밝히다 전기가 흐르는 도선 주위에서 나침반 바늘이 움직이는 것을 확인했어요. 외르스테드 외르스테드의 실험 장치 쿨롱 법칙과 볼타 전지의 발명 이후 전기에 대한 물리적 성질이 밝혀지며 과학자들은 전기가 가진 힘의 활용 가능성을 이해하게 되었다. 영국의 데이비는 볼타 전지를 활용하여 전기 분해와 알칼리 금속을 추출하였다. 당시에는 전기와 자기에 특별한 유사성이 없었기 에 서로를 다른 현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다만, 뉴턴의 영향을 받은 학자 중 일부는 전 기와 자기 현상을 하나로 설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외르스테드(Ørsted, H. C.; 1777~1851) 덴마크의 물리학자이자 화학자, 전기 와 자기의 관계를 밝혀 전자기 이론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820년 덴마크의 외르스테드는 도선에 흐르는 전류에 대한 실험을 진행하던 중 우 연히 도선 주변에 놓여 있던 나침반의 바늘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처음에는 우연이 라고 생각했지만 실험을 계속하면서 나침반의 위치를 바꾸어 보았더니 그때마다 자석 의 바늘이 전류 방향과 직각으로 움직이는 현상이 나타남을 확인하였다. 외르스테드의 발견 소식은 곧바로 다른 과학자들에게 알려졌고, 데이비는 전류가 흐르는 도선 주위 로 철가루를 뿌려 자기장이 형성됨을 확인하였다. 이로써 그때까지는 서로 무관한 현상 으로 알려진 전기와 자기 현상의 밀접한 관계가 밝혀졌다. 탐구 활동 전기와 자기의 활용 조사 전자기학 연구는 공학 기술을 발달시켜 현대 과학기술 문명 을 구축하는 데 바탕이 되었다. 특히 볼타의 전지 발명은 평소 에 전기를 저장하여 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어 쓸 수 있게 함 으로써 다양하고 편리한 전기 기기들이 대량으로 개발되는 계 기가 되었다. 또한, 패러데이의 전자기 유도 현상 발견은 대용 량 발전기의 발명으로 이어져, 효율적인 에너지 공급 시스템 구축과 자동 제어 기술의 발달을 가져와 오늘날 우리가 편리하 게 사용하는 전기 및 전자 기술의 발달에 기여했다. 전구 발전기 결과 및 정리 전자기학 발달을 통해 개발된 대표적인 기술의 예를 3가지 조사 하고 각각의 특징을 설명해 보자. 노트북 로봇 144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44 2018-08-31 오후 4:26:16 3 패러데이, 전력 생산의 원리를 설명하다 전기를 이용해 자기장을 만들 수 있다면 자기장으로 전류를 유도할 수 있지 않을까? 코일 B의 왕복 운동 검류계 코일 A 패러데이 전지 패러데이가 두 개의 코일을 이용하여 전류를 유도해 낸 실험 장치 데이비의 조수였던 패러데이는 외르스테드의 실험을 반복하면서 전류의 흐름이 자기 장의 변화를 초래한다면, 반대로 자기장 변화를 활용해 전류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 고 생각했다. 1830년 그는 도선으로 원통 코일을 만들고 그 속으로 자석을 넣었다 빼 패러데이(Faraday, M.;1791~1867)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화학자, 눈에 보 이지 않는 전기장을 쉽게 설명하기 위 하여 전기력선을 고안하였고, 반자성 을 최초로 발견하였다. 는 실험을 고안하고, 실제로 자석의 움직임에 따라 도선에 전류가 유도됨을 확인하였 다. 이는 발전기 원리를 고안한 것으로, 후에 대용량 발전기 개발의 이론적 바탕이 된다. 전자기 유도 현상에 대한 발표를 계기로 1840년 무렵부터 패러데이는 전자기력의 작용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패러데이는 물리 현상을 수학적으로 설명하기 보다는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선호하였는데, 자기장과 전기장에 의해 생성되는 전 자기력의 분포를 알기 위해 가상의 역선을 도입하고, 역선들에 의해 연결된 힘의 분포 를 역장이라고 불렀다. 패러데이는 이러한 역장의 진동에 의해 역선을 따라 전자기력이 뉴턴 역학의 문제점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은 물체들 사이 의 힘이 어떤 원리에 의해 작용되는지 는 설명하지 못했다. 뉴턴은 물체들 사 이에 힘이 전달되기 위해서는 매질이 필요하며, 매질 속에서 힘이 순간적으 로 작용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과학자 들이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지만, 이 문제가 해결되기까지는 수 세기가 걸 렸다. 사방으로 전달된다고 생각했다. 역장의 개념은 전자기력의 작용을 쉽게 이해하도록 해 주었으며, 나아가 뉴턴 역학에 서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던 힘의 원격 작용도 설명할 수 있었다. 즉, 원거리 물체 간에 작용하는 중력은 당시까지 알려진 대로 두 물체 사이에서 즉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역장의 진동에 의해 일정한 속도로 전파되며 얼마 후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게 됨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학적 증명이 없는 설명에 당시 과학자들은 패러데이의 역장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워 했 다. 다만 당시에 대학생 신분이던 맥스웰은 패러데 이의 아이디어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림 16-2 패러데이의 대중 강연 패러데이는 정규 과학 교육을 받기 어려 운 처지의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과학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키워 주기 위해,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자신이 재직하고 있었던 왕립 연구소에서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공개 강연을 실시하였다. 패러데이가 매년 크리스마스 마다 했던 강연은 왕립 연구소의 전통으로 자리 잡아, 오늘날에도 크리스마스 마다 시행되고 있다. 16. 전기와 자기 현상의 관련성을 밝힌 전자기학 145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45 2018-08-31 오후 4:26:16 4 맥스웰, 전자기장을 수학적으로 증명하다 네 개의 멋진 방정식으로 전자기학을 총정리했어요. 더 이상 할 게 없어요. 맥스웰 방정식 자기장과 전기장은 전자기력선을 따 라 교대로 직각 방향으로 발생하며 전 파된다. 맥스웰 맥스웰은 대학 시절부터 패러데이의 전자기학 연구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특히 그의 맥스웰(Maxwell, J. C.; 1831~1879) 영국의 이론 물리학자이자 수학자, 빛 이 전기와 자기에 의한 파동 즉, 전자파 라는 것을 증명하여 전자기학 성립에 큰 영향을 주었다. 역선과 장 이론을 수학적으로 증명해 보이려고 생각했다. 맥스웰은 전자기 작용은 전기력선과 자기력선 사이의 상호 작용에 의해 서로 수직 방향으로 전파된다고 보았다. 즉, 전기와 자기의 작용은 역선을 따라 전달되는 것이 아 니라 역선에 수직으로 전달된다고 보았다. 본문 149쪽 참조 또 맥스웰은 패러데이와 달리 공간이 에테르라는 매질로 차 있다고 생각했다. 뉴턴 역학의 법칙을 따르기 위해서는 우주 공간이 에테르라는 매질로 차 있어야 하며, 이러 한 매질 속에서 힘이 전자기장의 역선을 따라 전달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시간이 걸린다 고 보았다. 1864년 맥스웰은 몇 개의 방정식을 이용해 전자기력의 작용을 수학적으로 증명하였 헤르츠(Hertz, H. R.; 1857~1894) 독일의 물리학자, 라디오파를 만들어 내는 장치를 만들어 전자기파의 존재 를 처음 실증해 보였다. 주파수의 단위 헤르츠는 이 인물의 이름에서 따온 것 이다. 다. 이어서 1887년 독일의 헤르츠가 전자기파를 발생시키고 검출하는 실험을 통해 전 자기파의 속도를 구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패러데이의 역선과 장 이론, 맥스웰의 방정식 을 검증하게 되었다. 이로써 맥스웰은 전자기학의 완성자로 불리게 된다. 맥스웰이 전자기학의 기틀을 완성하는 동안 여러 과학자들은 다양한 연구와 실험으 로 빛이 전자기파의 일종임을 밝혔고, 가시광선 외에도 적외선, 자외선, 전파 등 여러 종류의 전자기파를 발견하였다. 파장(m) 3×10-2 10-3 7×10-7 4×10-7 10-8 10-11 파장 전파 마이크로파 적외선 가시광선 자외선 X선 감마선 그림 16-3 전자기파의 종류 146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46 2018-08-31 오후 4:26:16 이러한 전자기학의 발달은 기술의 발달에 영향을 미쳐 오늘날 우리가 편리하게 사용 하는 각종 전자 기기와 의료 기기의 발명을 유도하였다. 또한, 뉴턴 역학이 해결하지 못 한 원거리 물체 간의 힘의 원격 작용을 밝히게 되었으며, 이후 상대성 이론과 양자론이 탄생하는 토대가 되어 물리학적 지식의 지평을 넓혀 주었다. 자연계의 기본적인 4가지 힘 물리학이 지금까지 밝혀낸 바로는 우주 에는 중력과 전자기력 외에도 강력과 약 력이라는 두 가지 기본적인 힘이 작용하 양성자 고 있다. 이를 4가지 기본 상호 작용(기본 쿼크 사이에 작용하는 힘 *쿼크: 현재까지 발견된 물질을 구성 하는 가장 작은 입자. 양성자와 중성자 는 쿼크 세 개가 모여서 만들어진 합성 입자이다. 적인 힘)이라고 한다. 이 중 중력은 가장 먼저 밝혀졌고, 전자 은하 기력(전자기 상호 작용)은 그 다음으로 밝혀졌다. 중력과 전자기력은 일상생활 태양계 중성자 에서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력(강한 상호 작용)과 약력(약한 상호 작용)은 미시의 원자 세계에서 작용하므 중력 강력 로 일상생활에서는 직접 관찰하기 힘들기 전자기력 약력 때문에 뒤에서 다루게 되는 원자 모형과 수소 원자 양자 역학이 발전하면서 밝혀진다. 원자핵 과학자들은 이러한 4가지 힘을 하나로 베타 붕괴에 작용하는 힘 *베타 붕괴: 원자핵 안에서 양성자가 중성자로 변환되거나 그 역으로 변환 되는 핵붕괴 과정 전자 통일하여 설명할 수 있는 과학적 원리를 찾 물 분자 원자 산소 원자 고 있다. 광자 화학 반응 반중성 미자 전자 양성자 중성자 보손 그림 16-4 4가지 기본 상호 작용 전기와 자기의 작용 및 성질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알 정리하기 게 된 과학사적 의의를 다음 단어들을 넣어 정리해 보자. 외르스테드 패러데이 맥스웰 전기장 전자기 유도 전자기파 역선 역장 생각 넓히기 17~19세기 전자기학의 발달이 인류 문명의 발달에 미친 영향을 토의해 보자. 자기장 16. 전기와 자기 현상의 관련성을 밝힌 전자기학 147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47 2018-08-31 오후 4:26:17 17 상대성 이론과 양자론의 탄생 학 습 목 표 ㅣ 상대성 이론과 양자론의 형성 과정을 탐색하고, 과학사적 의의를 설명할 수 있다. 현대 물리학의 탄생 20세기 초 물리학에서는 두 가지 기념비적 사건이 일어났다. 상대성 이론과 양자론의 등장이었다. 두 이 론의 등장을 기점으로 이전의 물리학은 고전 물리학으로, 이후의 물리학은 현대 물리학으로 나뉘게 된다.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물체의 운동을 설명할 때 기준이 되는 절대 좌표계가 부정되어 시공간은 관측자의 운동 상태에 따라 다르게 인식된다. 즉, 공간과 시간을 더 이상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한편, 양자론은 과학자들이 오랫동안 믿어 왔던 자연의 연속성에 대한 믿음을 여지 없이 깨뜨렸다. 우선, 물체와 관찰자는 서로 분리된 존재라는 고전 물리학의 전제가 무너졌다. 모든 물질은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 을 가지고 있음이 밝혀졌다. 이러한 대상을 우리가 정확히 관찰하는 데에는 한계가 따르며 다만 수학적 확 률로 이해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불확정성 원리’가 밝혀졌다. 나중에 다시 만나! 어휴, 시간이 화살 같아! 왜 이렇게 시간이 더디게 갈까? 쌍둥이 중 한 명이 빠른 우주선을 타고 우주 여행을 다녀오면 나이가 다르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인류는 과학 연구를 통해 우주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법칙을 찾으려고 노력 해 왔다. 고전 물리학의 영향으로 인간은 시간과 공간에 대해 고정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시간은 인간의 삶 이나 자연 현상과는 무관하게 흘러가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되어 왔다. 예를 들어, 1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1시간이며, 1m라는 길이도 누구에게나 똑같은 1m이다. 그러나 심층적 과학 탐구를 통해 시간과 공 간은 절대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관측자에 따라 다르게 측정되는 상대적인 양이라는 것으로 그 관념이 변 하게 되었다. 절대적인 과학 법칙은 존재할까? 148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48 2018-08-31 오후 4:26:17 1 에테르의 존재, 과학의 오랜 고정 관념을 타파하다 자연은 진공을 싫어해. 아리스토텔레스 모든 운동은 매질을 통해 전달되지요? 그렇다면 빛의 움직임도 매질이 있어야 하지 않나요? 그 매질을 에테르라고 부릅시다. 하위헌스 맥스웰 패러데이 하지만 아무도 확인하지 못했는데……. 아인슈타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계에는 진공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이래로 데카르트를 비 롯한 과학자들은 지구를 둘러싼 우주 공간에는 에테르라는 물질로 채워져 있다고 믿었 다. 빛의 파동설을 주장한 하위헌스는 빛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주 공간을 가득 채운 에테르라는 매질을 통해 전달된다고 주장했으며, 패러데이와 맥스웰 역시 전자기파는 에 테르라는 매질을 통해 전파된다고 보았다. 이처럼 에테르는 물리 현상을 설명하는 데 많 은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그 존재를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마이컬슨과 몰리, 에테르를 확인하기 위한 실험을 하다 1877년 미국의 마이컬슨과 몰리는 자신들이 고안한 실험 장치를 이용하여 에테르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했다. 에테르가 지구를 둘러싸고 있다고 가정하면 지구의 공전 방 향에서 오는 빛과 그 반대편에서 오는 빛은 속도에 차이가 날 것이므로 이를 측정하면 에테르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실험 결과 빛은 모든 방향에서 항상 그 속도 가 일정했다. 에테르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실험은 실패했고, 오히려 에테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증명하게 되었다. 그림 17-1 마이컬슨-몰리 실험 장치 에테르의 수수께끼 - 고정 관념 깨기 파동인 소리는 공기를 매질로 하여 전달되고, 물결파는 물을 매질로 하여 전달된다. 즉, 파동은 매질이 있어야 하는데, 빛이 파동이라면 빛의 매질은 무엇일까? 유리병 속에 방울을 넣고 밀봉한 후 흔들면 방울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유리병 속의 공기를 빼내 진공을 만든 후 흔들면 방울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처럼 소리는 공기가 있어야 전달된다. 그러나 유리병 속의 광 원은 공기를 빼내도 그 빛이 우리 눈에 들어온다. 즉, 빛은 공기가 없어도 전파되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과학 철학자들은 진공을 인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공기를 빼내도 눈에 보이지 않는 ‘에테르’라는 물질이 남 아 있어 이를 매질로 하여 빛이 전파된다고 주장하였다.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에테르라는 물질이 빛의 매질 이며, 이 물질은 우주 공간에 가득 차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림 17-2 빛의 전파 빛은 매질이 없 어도 전파된다. 한번 형성된 고정 관념은 쉽게 깨어지지 않는다. 고정 관념에 어긋나는 현상이 발견되어 도 기존의 믿음에 맞추어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과학적 예를 찾아보자. 17. 상대성 이론과 양자론의 탄생 149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49 2018-08-31 오후 4:26:18 2 상대성 이론, 시간과 공간에 대한 고정 관념을 깨다 우주라는 절대 공간 에서 시간은 독립적으로 흐르죠. 우주의 시간과 공간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요. 뉴턴 관성 좌표계 고전 역학에서 뉴턴의 운동 제1법칙이 성립하는 좌표계이다. 즉, 정지해 있거 나 등속 직선 운동을 하는 좌표계이다.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은 결과적으로 에테르의 존재를 부정하게 만든 마이컬슨과 몰리의 실험을 통해 진공에서 빛의 속도(광속)가 관찰자의 운동 속도와 무관하게 일정함을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즉, 동일한 속도로 움직이는 관성 좌표계에서 빛은 언제나 같은 속 도를 갖는다고 판단하였다. 전자기학의 틀을 완성한 맥스웰의 방정식에 따르면, 진공 중 빛의 속도는 2.99792458×108 m/s로 계산된 바 있다. 특수 상대성 이론, 뉴턴 역학의 한계를 극복하다 아인슈타인은 광속이 일정한 것은 우주의 기본 원리라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이 원 리로부터 몇 가지 결론을 이끌어 내고, 이를 『운동하는 물체의 전기역학에 대하여』라는 특수 상대성 이론의 두 가지 가정 1. 등속도로 움직이는 어느 좌표계에서 도 물리 법칙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2. 빛의 속력은 광원이나 관측자의 운 동에 관계없이 항상 같은 값으로 측 정된다. 논문으로 1905년 발표하였다. 오늘날 특수 상대성 이론이라고 부르는 이론이다. • 사건의 동시성은 관찰자의 운동 상태에 의존한다. • 일정한 속력으로 운동하는 물체에서 시간 진행은 정지 상태의 물체에서보다 느리다.(시간 지연) • 일정한 속력으로 운동하는 물체의 길이는 정지 상태의 물체보다 짧아진다.(길이 수축) 특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에서 운동하는 물체의 시간과 물 체의 길이는 그 물체의 운동 속력에 따라 달라지며, 진공 속에서 광속은 그것을 관찰 하는 사람의 속력에 관계없이 일정하다. 즉, 빛의 속력은 절대적이다. 어떤 속력으로 운동을 하며 관측하든 광속은 일정한 값을 가진다는 것이다. 또한, 물체의 질량은 운동하는 속력에 따라 변하며, 그 크기는 물체 의 운동 속력이 클수록 커진다. 운동 상태에 따라 물체의 질량이 변한다는 사실은 에너지의 변화 가 수반됨을 뜻하므로, 곧 질량과 에너지가 서로 전환될 수 있음을 의미하며, 이를 질량-에너지 등가 원리라 한다. 즉, 물체의 질량이 감 그림 17-3 원자 폭탄과 질량-에너지 등가 원리 질량-에너지 등 가 원리는 원자 폭탄 개발의 단초가 되었으며, 운동 상태에 따라 질 량이 변한다는 주장은 사이클로트론의 소립자 실험을 통해 검증되 었다. 운동하는 물체의 시간 지연 현상도 뮤온이라는 소립자의 반 감기에 대한 관측을 통해 실제로 정지해 있을 때보다 고속으로 운 동을 할 때 시간이 느려진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소하면 그에 해당하는 에너지가 발생하며, 반대로 물체가 가진 에너 지가 감소하면 그에 해당하는 물체의 질량이 생성된다는 것이다. 이 로써 이전의 물리학에서 다루던 질량 보존의 법칙과 에너지 보존의 법칙은 ‘질량-에너지 보존 법칙으로 확장되었다. 150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50 2018-08-31 오후 4:26:19 전 세계의 과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발 표에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치열한 검증을 거치 며 상대성 이론은 과학적 사실로 수용되었다. 일반 상대성 이론, 휘어진 시공간을 밝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이론을 중력에 적용하여 1915 년에 다시 발표하였는데, 이를 일반 상대성 이론이라 한다. 아인슈타인은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우리가 살 고 있는 시공간은 4차원 세계 즉, 시간과 공간이 서로 상호 작용을 하는 연속체라고 주장하였다. 그림 17-4 질량을 가진 물체에 의해 휘어진 시공간 또한, 공간에 위치한 질량을 가진 물체에 의해 우주 공간이 휘어진다고 주장하였다. 중력 가속도의 크기로 가속 운동을 하는 물체와 중력을 받고 있는 물체는 서로 구별할 수 없으며, 가속계도 관성계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아인슈타인은 시공간이 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중력 렌즈 효과와 블랙홀 의 존재를 제시하였다. 공간의 휨은 중력의 작용으로 빛이 휘어지는 현상을 관측함으로 써 알 수 있다는 것이었다. 중력 렌즈 현상은 아주 먼 천체에서 나온 빛이 중간에 있는 거대한 천체에 의해 휘어져 보이는 현상이다. 이 현상은 1919년 영국의 천문 물리학자 에딩턴이 아프리카에서 일식을 관찰하는 동안 태양 뒤에 가려져 있어 보이지 않아야 하 는 별빛이 태양 가까이 지나가면서 태양의 중력에 의한 영향으로 휘어져 관측됨으로써 아인슈타인(Einstein, A.; 1879~1955) 독일 태생의 이론 물리학자, 1905년 특수 상대성 이론, 광양자설, 브라운 운동 이론을 발표, 1915년에 일반 상 대성 이론을 완성하고, 1921년에는 광 전 효과에 대한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1929년에는 통일 장 이론을 제창하였다. 확인되었다. 블랙홀은 부피에 비해 질량이 엄청나게 큰 초고밀도의 천체로, 그 중력이 너무 커서 빛마저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에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그 천체를 볼 수 없다. 블랙홀은 오로지 주변 물질들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아 인슈타인은 블랙홀이 중력파를 만들어 낸다고 주장하였고, 2016년 ‘라이고(LIGO)’의 연구진은 레이저 간섭계를 이용해 중력파를 검출함으로써 물리적 실체를 검증하였다. 상대성 이론은 단순히 새로운 이론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생각을 근본적으로 중력파 천체의 중력 붕괴, 초신성 폭발과 같은 우주 현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 는 시공간의 뒤틀림으로 발생한 요동이 파동으로써 전달되는 것을 말한다. 바꾸었다. 절대적인 시간과 공간은 존재하지 않으며 관측자에 따라 다르게 측정되는 상대적인 양이라는 것이다. 그림 17-5 중력 렌즈 현상 1919년 개기 일식 때 영국의 천문 물리학자 에딩턴이 태양 옆을 지나는 별빛이 태양 중력의 영향 으로 휘어진 중력 렌즈 현상을 측정하였다(왼쪽). 에딩턴이 측정한 현상을 설명하는 소책자(오른쪽) 17. 상대성 이론과 양자론의 탄생 151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51 2018-08-31 오후 4:26:19 3 양자 역학, 물리학의 새로운 세상을 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의 원자 세계에 적용되는 물리 법칙을 연구했습니다. 보어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알 수 없답니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죠. 하이젠베르크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여 과학계를 놀라게 하는 동안 물리학계의 한편 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 구조를 밝히고 원자보다 작은 입자를 찾아 특성을 규명 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물질의 기본 구성 입자인 원자 연구가 발전하 면서 뉴턴의 역학만으로는 이들 원자 세계의 구조와 힘의 작용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 게 되었다. 보어의 원자 모형, 전자의 운동을 밝히다 1913년 덴마크의 보어는 원자핵을 중심으로 전자들이 돌고 있다는 러더퍼드의 원자 보어의 원자 모형 에너지 흡수 에너지 방출 모형을 개선하여 새로운 원자 모형을 발표하였다. 당시의 전자기학 이론에 따르면 러더 퍼드 모형은 원자핵 주위를 돌고 있는 전자가 빛을 방출하며 점차 에너지를 잃고 원자 핵으로 끌려 들어가므로, 원자의 안정성과 고유의 스펙트럼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보어는 아인슈타인의 광양자설을 연결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였 보어(Bohr. N. H.; 1885~1962)는 원 자핵을 중심으로 전자가 일정한 에너 지 준위의 궤도를 돌고 있다는 원자 모 형을 발표하였으며, 전자가 다른 궤도 로 옮겨갈 때 에너지를 흡수하거나 방 출한다고 설명하였다. 다. 전자가 원자핵 주위의 궤도를 돌지만 그중 양자 조건을 따르는 것만 불연속적으로 안정 상태를 유지하며 다른 궤도로 옮겨갈 때에는 빛을 흡수 또는 방출하게 된다는 모 형이었다. 이러한 보어의 원자 모형은 원자의 안정성뿐만 아니라 원자의 스펙트럼을 잘 설명할 수 있었다. 보어의 모형은 이후 원자의 세계에서 소립자들의 운동을 설명하는 양자 역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본문 141쪽 참조 양자 역학, 물리량을 확률로 표현하다 원자 구조가 상세히 밝혀지며, 전자, 양성자, 중성자 등 소립자와 관련된 실험들은 뉴 턴의 역학만으로 설명할 경우 여러 가지 모순이 발생하여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역학 체계가 요구되었다. 역사적으로 빛의 파동성과 입자성에 대한 논쟁이 있었지만, 독일의 플랑크가 빛의 특 성을 연구하며 빛은 파동이지만 입자로 설명할 수 있다는 양자 가설을 내놓았고, 프랑 스의 드 브로이에 의해 물질파가 제안되어 물질은 입자성과 파동성을 동시에 지닌다는 152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52 2018-08-31 오후 4:26:20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입자-파동의 이중성은 특히 아원자 세계의 소립자와 빛 같 아원자 원자보다 작은 입자를 말한다. 은 미시의 물리 세계에서는 보편적 성질이었던 것이다. 독일의 슈뢰딩거와 하이젠베르크, 영국의 디랙 등이 소립자의 성질을 구체적으로 규명 하여 양자 역학이라는 새로운 물리학이 탄생하였다. 양자 역학은 특정 상수(플랑크 상수) 를 0으로 하여 극한을 취하면 고전 역학으로 수렴하였기에 기존의 뉴턴 역학과 전자기학 이론이나 현상도 모두 수용할 수 있었다. 게다가 당시로서는 설명이 곤란했던 물리 현상 들도 정확히 설명이 가능했다. 양자 역학은 1927년 독일의 하이젠베르크에 의해 불확정 성 원리가 도입되고, 보른에 의해 파동 함수가 해석되며 틀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의 세계를 수학적 확률과 파동 함수로 설명하는 양자 역학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는 너무 복잡하고 어려웠다. 예를 들어, 원자 내의 전자의 위치를 확률로 표현해야 하는 것에 대하여 과학자들은 양자 역학을 마치 주사위 놀이 불확정성 원리 양자 역학에서 두 개의 관측 가능량을 동 시에 측정할 때, 둘 사이의 정확도에는 물리적 한계가 있다는 원리다. 이 원리 는 위치-운동량에 대한 불확정성 원리 이며,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양자 역학의 응용과 영향 같다고 비유하기도 하였다. 양자 역학은 반도체 개발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하였고, 물질에 대한 인간의 인식에 변 화를 주었다. 특히 불확정성 원리는 자연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인간의 인식 방법의 한계 성을 인정하도록 함으로써 논리 실증주의를 비롯한 현대 철학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현대 물리학의 기초인 양자 역학은 컴 퓨터의 주요 부품인 반도체의 원리를 설명해 주는 등 과학기술, 철학, 문학, 예술 등 다방면에 중요한 영향을 미쳐 20세기 과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 요한 이론으로 평가된다. 양자 역학의 토대를 명확하게 한 솔베이 회의 1911년 브뤼셀에서 ‘방사능과 양자’를 주제로 국제 물 리학회, 일명 솔베이 회의가 최초로 개최됐다. 솔베이 회 의는 탄산 나트륨의 공업적 제법인 솔베이법을 개발한 솔베이가 기부한 기금으로 시작되었으며 세계 정상급 과 학자들을 초청하여 물리학과 화학의 중요 주제를 발표하 고 토론하였다. ‘전자와 광자’를 주제로 1927년 10월 브뤼셀에서 열 린 다섯 번째 솔베이 회의는 가장 유명하다. 회의 참석자 들 29명 중 17명이 노벨상을 수상할 정도로 과학사에 굵 직한 업적들을 남긴 과학자들이 모여 양자 역학에 대한 토대를 명확히 하였다. 이 회의에서 보어의 양자 역학 해 그림 17-6 1927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솔베이 회의에 참석한 과학자들 석에 대하여 아인슈타인과 보어가 벌인 논쟁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정리하기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이 과학 발달과 철학에 미친 영향을 다음 단어들을 넣어 정리해 보자. 아인슈타인 보어 슈뢰딩거 상대성 이론 시공간 양자 광양자 소립자 생각 넓히기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의 발달이 인류 문명의 발달 에 미친 영향에 대해 토의해 보자. 광속 17. 상대성 이론과 양자론의 탄생 153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53 2018-08-31 오후 4:26:20 지구과학의 성립과 발전 지질학은 지구를 구성하는 물질과 지질 구조의 변화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다른 과학 분야보다 체계를 갖춘 학문으로서의 출발이 늦었지만 지구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가 계속되면서 전 지구적 원리와 과학적 사실에 기초하는 자연 과학으로서의 지질학으로 정립되었다. 19세기에 들어와서 대륙 이동설이 등장하고 지구에 대한 지식들이 더욱 축적되면서 판 구조론이 정립되었다. 현대 지구과학은 지질학이라는 고체 지구뿐 아니라 대기와 해양, 우주의 영역까지 포함하는 종합 학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번 주 내내 덥겠습니다. 지금 지구에서 일어나는 지질 현상은 매우 오랜 시간에 걸쳐 동일하게 적용되어 왔소. 그리고 그 원동력은 ‘지구 내부의 열’ 입니다. 지구 표면에 크고 작은 판들이 이동하면서 지각 변동을 일으키는 거야. 아니오. 암석은 원시 바다에서 짧은 기간 동안 형성 되었소! 대륙이 움직이고 있어. 지층의 단면을 보면 신이 6일 만에 지구를 창조했다는 말은 사실일 수가 없어. 154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54 2018-08-31 오후 4:26:24 18 근대 지질학의 성립 학 습 목 표 ㅣ 지질학의 발달에서 스테노, 허턴, 베르너, 라이엘 등의 연구를 이해 하고, 근대 지질학의 형성 과정과 그 내용을 설명할 수 있다. 에베레스트산 위에서 발견된 암모나이트 화석 암모나이트는 중생대 때 바다에서 번성했던 해양 생물이다. 그런데 이들 화석이 8,000m가 넘는 히말라 야 산맥의 석회암층에서 발견되었다. 바다 밑에서 살던 생물의 화석이 어떻게 지구의 가장 높은 곳에서 발견 되는 것일까? 이를 두고 200년 전에 과학자들 사이에 큰 논쟁이 있었다. 이것은 화석을 포함 한 지층이 지각 변동으로 상승했기 때문이에요. 허허~ 말도 안 되는 소리! 대홍수로 해수면이 높아져서 해양 생물들이 산 위에서 산 거지요. 암모나이트 화석 허턴 베르너 18세기에 과학자들은 암석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두고 화성론과 수성론으로 나뉘어 팽팽하게 대립하 였다. 허턴을 대표로 하는 화성론자들은 지구 내부에 용융 상태에 있던 물질이 지표로 흘러나와 냉각되어 암석이 형성되었다고 하였다. 반면에 베르너를 대표로 하는 수성론자들은 암석이 지구를 덮고 있던 원시 바다 속에서 퇴적되어 만들어 졌다고 하였다. 당시에는 수성론자들의 주장이 대세였다. 성서에 노아의 대홍수 때 지구가 온통 물에 잠겼 다는 기록이 있었고, 수성론이 이 기록에 잘 맞았기 때문이다. 화성론과 수성론의 대결은 나중에 지질학자들에 의해 화성론으로 기울게 되었다. 이들의 대결은 논쟁의 옳 고 그름과는 상관없이 지질학에 흥미 있는 사람들에게 탐사의 방향을 제시했으며, 야외 증거의 중요성을 인식 하게 하였다. 시간이 갈수록 수성론보다 화성론이 과학자들의 지지를 많이 얻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18. 근대 지질학의 성립 155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55 2018-08-31 오후 4:26:26 1 근대 지질학이 성립하다 지질학은 지구를 구성하는 물질과 지질 구조의 변화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고대 그리 스 자연 철학자들은 지구 구성 물질과 지표면의 변화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였다. 하지 만 당시의 지질학 연구는 지금과 같은 의미의 지질학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신화나 신비 한 힘에 의존하였고, 오류가 많았으며, 지금의 연구 방식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지질학, 다른 과학 분야보다 늦게 시작하다 아그리콜라(Agricola, G.; 1494~ 1555) 엄밀한 의미에서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지질학은 코페르니쿠스가 천문학 혁명을 도모하던 16세기 초에 나타났다. 이 무렵 지질학을 이끈 인물은 독일 출신의 과학자 아그리콜라였다. 그는 광 물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여 광물을 분류했 으며, 지진과 화산 활동, 침식 작용으로 산맥 이 형성된다고 주장하였다. 그가 쓴 『지하 사물의 기원과 원인에 대하여』는 서양 최초의 지질학 전문 서 적이다. 광물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17세기는 인류가 과학 혁명을 완성하고 근대 과학으로 도약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지질학은 이런 흐름에 동참하지 못하였다. 성 스테노(Steno, N.; 1638~1686) 서학자인 어셔가 성서에 나오는 연대를 모두 계산하여 지구의 나이는 6,000년에 불과 하다고 주장하였는데, 성서의 내용을 사실로 믿는 사람들에게 이 주장이 큰 영향을 주 었기 때문이다. 지구의 생성 연대가 6,000년 정도로 짧은 기간이라면 생물의 진화나 지질 변화는 모 두 급격하게 일어나야 했다. 많은 지질학자들은 산맥이나 계곡 같은 지질 구조가 대규 모 격변이나 대홍수 등에 의해 갑작스럽게 만들어진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신이 직접 관찰한 것을 바탕으로 새 로운 지질학 이론을 수립하여 층서학 의 아버지로 불린다. 사람들은 아무리 뛰어난 지질학 이론이 나와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지층은 매우 오랜 시간 천천히 쌓인 것이오. 이 시기에 지질학자 스테노는 ‘지층 누중의 법칙’을 주 아니! 이 지층은 신이 6일 만에 만든 것이오. 장하였다. 이것은 지층에 지각의 큰 변화가 없었다면 아래 지층이 위 지층보다 오래된 것이라는 법칙 이다. 지금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논리지 만 당시에는 매우 혁신적인 주장이었다. 이 법칙에 따르면 퇴적 지층은 매우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쌓여서 층을 이룬 것이고, 이것은 신이 6일 만에 세상 을 창조하였다는 성서의 논리에 배치되는 것이었다. 결국 스테노의 주장은 사람들에 스테노 그림 18-1 지층 생성에 대한 논쟁 게 주목 받지 못하고 잊혀졌다. 156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56 2018-08-31 오후 4:26:28 근대 지질학이 시작되다 쇠구슬 식는 시간이……. 음~, 지구의 크기로 계산해 보면 지구의 나이가 75,000년이겠군. 거봐! 어셔가 말한 6,000년보다 훨씬 길잖아! 뷔퐁 스테노 스테노의 이론이 다시 조명을 받게 된 것은 100년이 훨씬 지난 후였다. 지구의 나이 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나오면서 그의 이론이 다시 부활한 것이다. 프랑스의 과학자 뷔퐁은 『자연의 시대』라는 책에서 지구는 75,000년 동안 여섯 단계 를 거쳐 형성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지구가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천체와 충돌한 태양에서 불덩어리들이 떨어져 나왔고, 그것들이 식으면서 태양계의 행성이 되 었다고 하였다. 비록 뷔퐁의 지구 나이 측정 방법과 결과는 틀렸으나 최초로 과학적 방 법에 의한 지질학적 시간 개념을 제시하였다는 데 의미가 있다. 뷔퐁 이후에 많은 지질학자들이 지구의 나이를 과학적으로 산출하기 시작하였다. 그 허턴(Hutton, J.; 1726~1797) 결과 지구의 나이는 대폭 늘었고, 지질학자들은 훨씬 길어진 지구의 나이로 사고의 폭 을 넓히면서 지질학의 근대화로 한발 나아갔다. 지질학의 근대화는 다른 과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은 18세기 말에 시작되었다. 학 자들은 그 시점을 스코틀랜드의 과학자 허턴이 ‘동일 과정설’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때 로 삼는다. 동일 과정설은 지금 지구에서 일어나는 지질 현상은 과거에도 매우 오랜 시간에 걸쳐 동일하게 적용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뉴턴의 역학이 천상계와 지상계에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밝혔을 때와 같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허턴은 종교가 아닌 지질학적인 시간 그는 1795년에 『지구의 이론』이라는 책에서 ‘현재는 과거를 아는 열쇠’라고 하였다. 지구의 과거를 이해하려면 지 금의 지구를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개념을 정립하였다. 허턴은 동일 과정설에서 지질 현상이 일어나는 원동력으로 지구 내부에 있는 열을 지 목하였다. 그는 지구 내부의 열이 지각 내부의 암석을 녹이고, 녹은 암석의 일부가 지표 로 이동하여 관입과 화산 활동을 일으킨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화산 활동의 결과로 습 곡이나 단층 작용이 일어나 산맥을 만들거나 지각 구조를 변형시키고, 이때 지표로 나 허턴이 지각 변동의 원동력을 지 구 내부의 열에서 찾은 의미 지구 내부의 열이 지질 현상과 지각 변 동의 에너지원이라면 지구의 나이가 매 우 오래되었다는 것과 수직 및 수평 방 향의 지각 변동을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오지 못한 암석은 식어 화성암이 된다고 하였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허턴의 이론을 화성론(火成論)이라고 한다. 그러나 허턴의 동 일 과정설도 스테노의 지층 누중의 법칙처럼 사람들에게 크게 인정받지 못하였다. 18. 근대 지질학의 성립 157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57 2018-08-31 오후 4:26:28 2 베르너(Werner, A. G.; 1750~1817) 화성론과 수성론 논쟁, 근대 지질학을 발전시키다 18세기 전후로 당시 유럽의 지질학계는 베르너를 중심으로 수성론(水成論)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베르너는 암석이 원시 바다에서 짧은 기간 동안에 형성되었다는 수성론 을 주장하였다. 그는 지구가 처음에 원시 바다로 덮여 있었고, 가장 아래에 쌓인 침전물 은 화강암이 되었다고 하였다. 화강암의 표면은 분쇄된 후 쌓여서 퇴적암이 되었고, 그 위로 화산 활동으로 생긴 암석이 쌓이거나 관입되었다고 하였다. 허턴의 화성론이 좀 더 과학적이었으나 사람들은 베르너의 생각에 손을 들어 주었다. 수성론은 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대홍수 사건을 지질학적으로 잘 활용했기 때문이다. 독일의 지질학자로 프라이부르크 광산 아카데미의 강의를 통해 유럽 지질학 에 큰 영향을 주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화성론이 지지를 받다 그 무렵 영국의 지질학자들은 유럽과 북아메리카 곳곳을 다니며 야외 지질 탐사를 하 였고, 지질학회를 만들어 그 결과를 공유하였다. 실제로 지질학자들이 야외에 나가 조사 처음에 화성론이 수성론보다 널 리 인정받지 못한 까닭 화산을 자주 보지 못한 유럽인들에게 화성 활동은 익숙한 자연 현상이 아니 었다. 또한, 오랜 세월 동안 성서의 내 용을 지지하는 수성론의 관점에서 살 았으므로 화성론보다 수성론이 더 친 숙하였다. 를 했을 때 베르너의 주장과는 반대로 화산 활동 흔적이 많았다. 그리고 지구 내부에 엄청 난 열이 밖으로 분출되어 지속적인 화산 활동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였다. 따라서 시간이 갈수록 수성론보다 화성론이 더 지지를 받았는데, 베르너의 제자들조차도 수성론을 버리고 화성론으로 돌아섰다. 이 과정에서 라이엘이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라이엘은 자신의 저서 『지질학 원리』를 통해 허턴의 지질학 이론을 적극 소개하 여 큰 호응을 얻었다. 그는 책에서 자연 현상이 아무리 느린 속도로 일어난다고 해도 오랜 세월이 지나면 큰 변화가 된다 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라이엘의 생 각은 나중에 다윈의 진화론에도 큰 영향 을 주었다. 그림 18-2 『지질학 원리』에 나온 에트나 화산 라이엘은 에트 나 화산을 예로 들어 동일 과정설을 설명하였다. 탐구 활동 화성론과 수성론의 서로 다른 해석 자료해석 토의 그림은 허턴이 1785년 직접 스케치한 글렌틸트 관입암상의 모습이 다. 결이 수평 방향으로 난 것은 오래전에 형성된 기반암(편암)이고, 이 를 수직 방향으로 뚫고 들어간 흰색으로 보이는 것은 화강암이다. 화성론자인 허턴과 수성론자인 베르너는 이 글렌틸트의 지층에 대 해서도 상반되는 주장을 하였다. 과정 1.위 두 사람이 이 지층을 각각 어떻게 해석했을지 말해 보자. 2.누구의 주장이 옳은지를 판단하기 위해 필요한 자료에는 어떤 것이 있을지 토의해 보자. 158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58 2018-08-31 오후 4:26:28 강 하류에는 바다, 민물, 육지 생물 유해 들이 함께 쌓여요. 이것들이 같이 발견되는 건 노아의 홍수 때문이지. 18세기 초까지 지질학계를 주도했던 라이엘(Lyell, C.; 1797~1875) 격변론자들은 노아의 대홍수 사건의 증거 로 퇴적암에 해양과 육상 생물의 화석 이 함께 나타난다는 점을 들었다. 이에 라이엘은 동일 과정설에 입 각하여 미시시피강 어귀의 삼각주에 는 상류 지역에 사는 나무와 민물과 바 화폐석 다에 사는 생물의 유해가 한꺼번에 쌓이 매머드 화석 화폐석 고 있다는 점을 들어 반박하였다. 매머드 화석 이를 통해 자연 현상에는 초자연적인 것은 없고, 모든 변화는 과거나 현재나 항 라이엘 상 똑같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라이엘의 노력 덕분에 1830년대 이후에는 화성론이 유럽의 과학계에 널리 알려졌고, 지질학은 자연 과학의 한 분야로 인정받게 되었다. 지질학의 근대화를 이루어 지질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다윈은 라이엘의 『지 질학의 원리』를 읽고 진화론을 정립하 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격변설 프랑스의 생물학자 퀴비에(Cuvier, G.; 1769~1832)가 주장한 이론이다. 지 구는 처음에 매우 격렬한 상태에서 출 발하였고, 지구 역사 동안에 여러 차례 의 큰 변동이 일어났는데, 그때마다 대 부분의 생물은 멸종했고, 신이 다시 새 로운 생물을 만들어 냈다는 주장이다. 화성론에서 말하는 지각 변동의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열역학자인 톰슨은 만약 지구가 엄청나게 오래되었고, 끊임없이 지각 변동을 한다면 그 원동력이 되는 에너지는 어디에서 변함없이 나오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였다. 지구는 물리학적으로 점점 식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등장한 것이 지구 수축설이다. 지구 수축설에 따르면 초기 지구는 뜨거운 열에 암석이 녹아 있었는데 점차 시간이 지나 식으면서 부피가 수축되어 마치 사과가 마르 면 표면이 쭈글쭈글하게 주름이 잡히는 것처럼 지구 표면이 주름이 잡혀 높은 부분은 산맥이 되고, 낮은 부분은 협곡이나 바다가 되었다는 것이다. 지구 수축설 이 이론에 따르면 지각 변동은 연속적 으로 계속해서 발생하고, 표면이 전반 적으로 다 주름이 잡혀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므로 이 가설은 그 설득력을 잃고 오래가지 못하였다. 그러나 19세기 말 방사성 동위 원소의 핵붕괴로 발생한 내부 열이 지구를 가열하고 있 고, 지구는 아주 긴 기간 동안에 매우 천천히 식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로 허턴의 동일 과정설이 다시 지질학의 기본 이론으로 제자리를 찾았다. 이 이론 을 토대로 지질학은 광물학, 암석학, 층서학, 지진학, 빙하학 등 다양한 분야로 세분화되 어 발전하였다. 정리하기 스테노, 허턴, 라이엘 등이 지질학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타당 한 이론을 제시하였으나 그때마다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 다음 단어들을 생각 넓히기 동일 과정설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화산이 나 지진으로 인한 급격한 지질 구조의 변화를 어떻게 해 넣어 그 과정을 정리해 보자. 석할지 생각해 보자. 지구의 나이 노아의 대홍수 동일 과정설 격변설 지구 수축설 지구 내부의 열 18. 근대 지질학의 성립 159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59 2018-08-31 오후 4:26:29 19 현대 지구과학의 발전 학 습 목 표 ㅣ •대륙 이동설, 맨틀 대류설 등 지구 내부를 이해하기 위한 여러 이 론의 과학사적 의의를 설명할 수 있다. •대기 과학과 우주 과학 등 현대 과학의 발전과 그 의의를 설명할 수 있다. 생물이 이동했을까, 땅이 이동했을까 19세기 유럽인들은 아메리카 신대륙이 발견된 후에 그곳에서도 유럽이나 아시아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동식물의 화석이 발견되는 것에 의문을 품었다. 그들은 이에 대한 답으로 오래전에 유라시아 대륙과 아메리 카 대륙 사이에 좁은 길이 육교처럼 나 있어서 동물들이 다른 대륙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였는데, 이를 육교설이라고 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태평양뿐만 아니라 대서양에도 육교와 같은 좁은 길이 존재한다 고 믿었다. 그러나 베게너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대륙에서 같은 종류의 화석이 발견 되는 것은 이동한 것이 생물이 아니라 땅이라고 생각하였다. 베게너는 이 생각을 증명하기 위해 다양한 자 료들을 모아 대륙 이동설을 주장하였다. 내가 어떻게 왔게? 저쪽 동네 가 보자. 난 너무 느려서 갈 수 없는데……. 난, 대기 중! 우리도 가 보자. 베링 육교 빨리 와! 생물이 육교를 통해 이동한 것이 아니라 땅이 움직이지 않았을까? 육교설 베게너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갈 무렵에 유럽인들은 지구에 대한 새로운 과학적 발견이 있을 때마다 혼란스 러워하였다. 새로운 발견을 성서와 연관시켜 설명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자핵 붕괴로 지구 내부에 많 은 양의 에너지가 있고, 지진파 연구로 지구 내부는 여러 층으로 되어 있으며, 알프스 산맥이 식탁보처럼 접 혀 있다는 등의 발견은 성서에서 찾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성서의 내용과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지구 수축설과 육교설 등에는 전폭적인 지지 를 보내고, 새로운 발견에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베게너의 대륙 이동설은 유럽인들의 이런 생각에 종지부 를 찍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지질학계는 실증적 사고를 중요하게 여기는 방향으로 발전하였다. 베게너가 이동한 것은 생물이 아니라 땅이라는 대륙 이동설을 발표했을 때 당시의 많은 사람 들은 베게너의 주장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160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60 2018-08-31 오후 4:26:31 1 판 구조론, 현대 지구과학을 혁명하다 19세기에 들어오면서 지질학계의 가장 큰 숙제는 현재 지표의 모습이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밝히는 일이었다. 지질학계는 지구 수축설을 대신할 새로운 지질학 이론 이 필요하였다. 이때 등장한 것이 대륙 이동설이다. 20세기 초 대륙이 이동한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제시한 사람은 미국 지질 조사소의 테일러였다. 그러나 그는 대륙의 이동을 단순히 지구 표면의 이동으로만 설명하여 학계 에서 큰 관심을 받지 못하였다. 대륙 이동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독일의 과학자 베게너로부터 시작되었다. 베게너 는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대륙 사이에 고생대 빙하 퇴적층의 분포가 이어지고, 같은 베게너(Wegener, A. L.; 1880~ 1930) 종류의 화석이 산출되는 것을 알았다. 이것으로 보아 두 대륙이 과거에 판게아라는 하 나의 대륙으로 되어 있었으며, 이 대륙이 서서히 분리 이동하여 오늘날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는 대륙 이동설을 제안하였다. 한 덩어리였던 대륙이 분리되어 이동했구나! 고생대 페름기 말 중생대 쥐라기 신생대 제3기 초 그는 기상학자로서 왕성한 활약을 했 는데, 열기구를 타고 낮에는 5,000m 상공까지 올라가 기상을 관측하고, 밤 에는 3,700m 지점으로 내려와 천체를 관측하면서 52시간 30분 동안 비행을 하는 기록을 세웠다. 현재 그림 19-1 베게너의 대륙 이동설 베게너는 대륙 이동설을 입증하기 위해 다양한 증거 자료들을 모았다. 그는 북아메리 카의 애팔래치아 산맥과 유럽의 칼레도니아 산맥이 서로 잘 연결되는 것을 밝혔다. 또 당시에 팽배했던 육교설을 부인하기 위해 육교를 따라 이동하기 어려워 보이는 달팽 이나 지렁이, 민물고기 등의 화석을 수집하였다. 그리고 그 외에 방대한 자료를 모아서 『대륙과 해양의 기원』이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대륙 이동설이 크게 인정받지 못 한 까닭 베게너가 대륙 이동의 원동력을 제시 하지 못한 점도 있으나 그가 지질학을 전공으로 하지 않았고, 전쟁을 일으 킨 독일의 학자라는 점도 크게 작용 하였다. 베게너의 대륙 이동설은 증거를 바탕으로 전 지구적인 설명을 시도하였다. 이것은 지 구 수축설이라는 주류 지질학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러나 베게너는 대륙 이동의 원동력 을 정확하게 제시하지 못하였다. 영국의 과학자 홈스는 베게너의 대륙 이동설을 지지하며 대륙 이동의 원동력이 맨틀 의 대류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지구 내부에 있는 방사성 원소의 붕괴열이 맨틀 대류를 일으키고, 맨틀 위에 있는 지각은 갈라져서 두 개의 대륙이 된다는 맨틀 대류설을 주장 하였다. 하지만 맨틀의 움직임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여 이 역시 크게 호응을 얻지 못하 였다. 19. 현대 지구과학의 발전 161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61 2018-08-31 오후 4:26:33 열곡 베게너의 대륙 이동설이 부활한 것은 1960년대였다. 음향 측심기, 고지자기 측정기 등 과학 관측 장비의 발달이 큰 역할을 하였다. 대륙 지각 미국의 지질학자 헤스는 태평양을 항해하면서 음향 측심기로 해저 지형을 탐사하였다. 그 결과 그는 해령의 중앙부에서 올라 새로운 해양 온 맨틀 물질이 좌우로 퍼져 나가 새로운 해양 지각을 만들어 해 저를 확장시키고, 이 움직임에 따라 대륙이 이동한다는 해저 확장 설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영국의 바인과 매튜가 중앙 해령 양쪽에서 지자기 해령 역전이 대칭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것으로 해양저 확장이 입증되었다. 대륙 지각 해양 지각 그림 19-2 해양저 확장 바다 밑 연구가 한창일 때 육지에서도 중요한 발견이 있 었다. 물리학자 블래킷이 자기 측정 기계를 만들어 암석에 남아 있는 자기장의 방향을 측정하였다. 해저 지형과 고지자기 연구 등은 대륙의 대규모 인도 대륙 자기 측정 블래킷(Blackett, P. M. S.; 1897~1974) 의 자기 측정으로 인도 대륙이 약 7,000만 년에 걸쳐 7,000km를 북상하여 지금의 위치에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수평 이동에 대한 새로운 지구 이론을 요구하게 되었다. 1970년대 들어와 그동안 여러 과학자들이 제시하였던 이론들이 판 구조론이라는 하 나의 큰 이론으로 종합되었다. 판 구조론은 지구 표면에 있는 크고 작은 판들이 이동하 면서 화산과 지진, 습곡과 단층 등의 지각 변동을 일으킨다는 이론이다. 판 구조론은 현대 지질학의 모든 연구들이 이 이론을 전제로 파생된 문제들을 연구 판(plate) 캐나다의 지구 물리학자 윌슨이 이동 하는 한 덩어리의 블록을 가리키는 의 미로 ‘판’라는 용어를 썼다. 할 정도로 현대 지질학의 가장 기본 이론이 되었다. 대륙 이동설에서 시작하여 판 구조론의 정립으로 이어지는 지질학 이론의 변화 과정 은 지질학의 혁명이라고 불릴 만큼 지질학 학문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판 구조론 정립 이후에 암석과 광물, 그리고 지표의 지질 구조를 탐구하던 지질학은 지구 내부까지 아우르며 지구 전체를 입체적으로 연구하는 지구과학으로 발전하였다. 탐구 활동 3차원 대서양 해저 지형도 자료해석 토의 그림은 헤젠(Heezen, B. C.; 1924~1977)이 1977년에 만든 해저 지형도이다. 그는 대서양에서 물을 모두 퍼낸 모습의 3차원 그림을 만들었는데, 드러난 대서양 바다 밑에는 폭이 2,000km 가 넘고 길이는 60,000km가 넘는 거대한 골짜기가 있었다. 그는 이 지도를 만들 때 대서양에서 일어나는 지진의 대부분 이 중앙 해령에 몰려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결과 및 정리 1.중앙 해령에서 지진이 잘 일어나는 까닭을 말해 보자. 2.중앙 해령의 모양에서 해저 확장설의 증거를 찾을 수 있는지 토의해 보자. 162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62 2018-08-31 오후 4:26:34 2 대기 과학과 우주 과학, 지구과학의 영역이 되다 20세기부터 한 과학 분야의 연구 결과를 다른 분야에 적용하고, 관련이 있는 과학 분 야들끼리 모여 하나의 큰 과학으로 확대되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대표적인 학문이 지구과학이다. 지구과학은 지구를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과학으로 지질학뿐만 아니라 대기 과학과 우주 과학 등을 총칭하는 복합적인 학문으로 그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대기 과학, 날씨의 비밀을 밝히다 대기 과학은 바람이나 구름 등의 기상 상태를 관찰하는 일로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생활 속에서 반복된 관찰로 얻은 경험을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올 징조다.’, ‘아침에 무 지개가 뜨면 비가 올 징조다.’ 등과 같은 속담을 만들어 날씨 정보를 공유하고 후손들 에게 전하였다. 대기 과학(Atmospheric science) 대기의 조성과 성립, 기상 현상을 연구 하는 학문이다. 최근에는 달이나 화 성과 같은 천체의 기상에 대한 연구 가 활발해지면서 연구 범위가 우주로 확대되었다. 날씨에 관한 연구를 체계적으로 한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였다. 그는 구름의 분류나 기후대의 구분을 정리해서 『기상학』이라는 책을 펴냈다. 대기 과학이 제대로 된 과학의 형태를 띤 것은 1597년 갈릴레이가 대기 과학에서 중 요한 요소인 공기에 무게가 있다는 것을 밝힌 후부터였다. 1643년에 토리첼리는 수은을 이용한 진공 실험에서 대기압을 최초로 측정하였다. 그 는 이 원리로 수은 기압계를 발명하여 과학적인 측정 장치로 대기의 상태를 분석하는 시대를 열었다. 1654년에 과학자 게리케는 대기압의 크기를 보여 주기 위해 말 16마리가 끄는 마그 데부르크 반구 실험을 하였다. 이 실험으로 일반인들도 대기압이 얼마나 큰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기압계로 날마다 기압을 관측하였는데, 폭풍우 등의 갑 작스런 날씨 변화를 예측하여 사람들로부터 날씨를 알아맞히는 마법사로 불렸다. 대기압의 크기와 단위 대기 과학자들은 기압을 나타낼 때 압 력을 연구한 파스칼을 기념하여 헥토 파스칼(hPa)을 단위로 사용한다. 흔히 말하는 1기압은 1,013hPa로 수은 기 둥 76cm 높이에 해당하는 압력이다. 진공 76cm 수은 대기압 그림 19-3 토리첼리의 실험 그림 19-4 마그데부르크 반구 실험 속의 공기를 뺀 두 반구를 다시 떼어 내기 위해서는 양쪽에서 8마 리씩 모두 16마리의 말이 필요했다. 19. 현대 지구과학의 발전 163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63 2018-08-31 오후 4:26:34 계절풍과 무역풍을 연구한 핼리 영국의 천문학자 핼리(Halley, E.; 1656~ 1742)는 북위 30°와 남위 30° 사이의 계절풍과 무역풍의 평균 상태를 알아 내고 장기 일기 예보의 토대를 닦았다. 18세기 후반에는 유럽에서 기상학회 주도로 체계적인 기상 관측이 시작되었다. 훔볼 트를 비롯한 유럽의 과학자들이 해류, 계절별 등온선, 바람의 특성 등을 연구하여 일기 도에 기입할 많은 관측 자료를 생산하였다. 기상 관측 자료로 일기 예보를 한 것은 19세기 중반 이후였다. 유럽의 대기 과학자들 이 여러 지역에서 관측한 온도, 기압, 풍향 등의 기상 요소들을 한 곳으로 모아 종합적 인 일기도를 그려서 초보적인 일기 예보를 하였다. 그 후 대기 과학은 라디오존데와 기상 위성 등의 기상 관측 장비의 도움을 받아 급속 하게 발전하였다. 수학적인 방법으로 예상 일기도를 작성하는 수치 예보도 점점 발달했 는데 20세기 말에는 슈퍼컴퓨터를 사용하여 수치 예보를 본격적으로 하였다. 이 수치 예보로 훨씬 좁은 지역 단위로 정밀한 일기 예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림 19-5 라디오존데 대기 과학의 발전은 정확한 기후 변화와 일기 예보를 가능하게 하여 여러 분야에 긍 정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기후 변화를 예측하여 곡물 생산량을 조절해 곡물 가격의 안 정을 가져왔다. 또 바깥 날씨를 미리 알 수 있어서 여행이나 야외 스포츠 활동이 크게 늘어나 삶의 질이 높아졌다. 그림 19-6 천리안 기상 위성 우주 과학, 우주 개발의 시대를 열다 20세기에 들어와 천문 관측 장비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태양계와 우리 은하 중 심으로 천체를 연구하던 천문학은 우주의 기원과 크기, 외부 은하와 성간 물질 등 우주 전체를 포괄적으로 연구하는 종합 학문으로 발전하였다. 1920년대 이후 우주 과학의 관심은 우주의 기원과 크기였다. 이 연구에 불씨를 던진 허블(Hubble, E. P.; 1889~1953) 미국의 과학자, 외부 은하를 모양에 따 라 분류하였으며, 외부 은하의 스펙트 럼의 분석을 통해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멀어지는 속도가 크다는 사실을 알아내 었다. 우주의 크기 확대 1920년대 전까지 사람들이 생각하던 우주는 태양계가 포함된 우리 은하였 다. 그러나 허블의 관측으로 우주의 크 기가 대폭 확대되었다. 사람이 허블이다. 그는 지구에서 멀리 있는 천체일수록 더 빨리 멀어지고 있다는 사 실을 발견하고 ‘우주는 팽창하고 있다.’는 팽창 우주론을 주장하였다. 이어서 가모프 등이 질량과 에너지가 한 점에 모여 있다가 폭발하면서 우주가 탄생 한 후 급격히 팽창하다가 식어 간다는 ‘빅뱅 이론’을 주장하였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우주는 팽창하면서 상태와 모습이 계속 달라지므로 어제의 우 주와 오늘의 우주가 다르다. 그림 19-7 우주의 팽창 모습 풍선에 별을 그려 넣고 풍선을 불면 풍선 위의 별들이 서로 멀어지는 것처럼 오늘날 은하들은 서로 멀어지는 것으로 관측된다. 164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64 2018-08-31 오후 4:26:35 한편, 1950년대에 들어와 호일 등이 ‘정상 상태 우주론’을 주장하였다. 이들의 우주 는 팽창으로 넓어진 공간을 채우는 물질이 계속해서 탄생하므로 항상 똑같은 상태를 유지한다고 하였다. 정상 상태 우주론은 당시 최고의 과학자 아인슈타인 등의 지원에 힘입어 대표적인 우주론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1960년대에 빅뱅 이론을 입증하는 우주 배경 복사가 발견되어 팽창 우주론 이 우주론의 표준 모델이 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와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 등이 발견된 후 팽창 우주론으로 설명 할 수 없는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 새로운 우주론이 요구되고 있다. 우주는 아직도 우리 인류가 풀기 어려운 신비한 존재로 남아 있는 셈이다. 반대파가 지어 준 이름 ‘빅뱅’ 팽창 우주론을 싫어한 호일은 그 이론 적 근거가 되는 빅뱅 이론의 이미지를 비꼬기 위해 ‘Big Bang’이란 단어를 처 음 사용하였다. 반대파가 빅뱅 이론의 이름을 지어준 셈이다. 우주 배경 복사의 발견 미국의 전파 천문학자 펜지어스와 윌 슨은 마이크로파 탐지 시험을 하던 중 우주의 모든 방향에서 오는 복사선을 발견하였다. 이 복사선은 초기의 우주 팽창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빅뱅 이론 의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다. 한편, 20세기 중반 이후 로켓에 관측 장비를 실어 우주 밖으로 내보내면서 정확하고 다양한 관측 자료를 얻었다. 이 덕분에 우주 탐사 과학이 크게 발전하였다. 1957년 옛 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한 이후, 1969년 7월에 미국 의 유인 우주선 아폴로 11호가 달 착륙에 성공하면서 우주 개발은 정점에 이르렀다. 그 후에도 미국과 유럽 등은 다양한 우주 탐사선을 우주로 보내 이전에 알지 못했던 지구 밖 세계의 정보를 얻고 있다. 이로써 오랜 세월 동안 철학의 주제로만 여겼던 우 그림 19-8 우주 배경 복사 2013년 우주 배경 복사 탐지 위성인 플랑크가 찍은 영상을 바탕으로 만든 지도이다. 색깔은 온도차를 나타낸다. 주의 시작과 끝이 과학의 주제가 되었다. 언젠가는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물질과 힘의 기원은 무엇인지 밝혀지게 될 것이다. 또한, 먼 미래에 인류는 지구를 벗어나 다른 행성에 생명의 씨앗을 뿌리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류의 무대는 지구라는 행성이 아니라 우주가 될지도 모른다. 그림 19-10 태양광 패널을 장착한 국제 우주 정거장 그림 19-9 소행성에서 추진체를 제조하는 우주선의 상상도 정리하기 우주의 기원과 크기에 대한 논쟁 과정을 다음 단어들을 넣어 정리해 보자. 허블 우주는 팽창한다. 빅뱅 이론 정상 상태 우주론 암흑 물질 암흑 에너지 생각 넓히기 만약 지구와 같이 진화된 생물이 사는 외 계 행성의 존재가 과학적으로 증명된다면 인류 문명에 어 떤 변화가 생길지 토의해 보자. 19. 현대 지구과학의 발전 165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65 2018-08-31 오후 4:26:37 과학 발전이 사회에 미친 영향 그림 19-11 과학이 대중화되어 만국 박람회가 개최되었다. 그림은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 모습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버터필드는 서양의 근대화를 가져온 것은 르네 상스나 종교 개혁이 아니라 과학 혁명이라고 주장하였다. 쿤은 과학 혁명을 두고 “코페르니쿠스가 제시한 우주 체계는 서양 중세의 우주 관, 인간관, 세계관의 뿌리를 뒤흔들어 놓을 만큼 충격적인 것이었 다.”라고 말하였다. 실제로 과학 혁명 이후 유럽은 크게 달라졌고, 그 변화는 아시아와 아메리카 등 전 지구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과학 혁명으로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둘째, 지식을 얻는 방법이 달라졌다. 자연에 대한 참다운 지식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귀납 법과 실험을 강조하였다. 대표적으로 뉴턴은 자신의 과학을 귀납적으로, 또한 실험 적으로 진행하여 성공을 거두었는데, 이는 화학이나 생물학 등의 과학 분야 외에도 철학이나 문학 등의 학문에 좋은 모 델이 되었다. 이후 유럽의 철학가와 문학가들은 형이상학적 이고 주관적인 방법을 멀리하고, 귀납적이며 실험적인 면을 첫째, 자연과 물질을 바라보는 인식의 체계가 달라졌다. 강조하는 학문의 흐름을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18세기의 계 과학 혁명 이전에는 우주의 질서와 신의 완전무결함에 절 몽주의이다. 대표적인 계몽주의자 볼테르는 부패한 프랑스 대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과학 혁명 이후 과학자 사회에 대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방법을 통한 개혁을 외쳤 들은 자연과 물질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이성의 눈으로 있는 는데, 이는 프랑스 혁명으로 이어졌다. 그대로 보고 지식을 얻었고 이를 축적하였다. 그 결과 지식의 양은 무한대로 증가하였고,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이 강화 셋째, 열린 공간에서 정보를 나누며 전문가 조직을 구성하였다. 되었다. 과학은 종교의 자리를 대신할 정도로 신뢰를 얻게 되 과학 혁명 전까지는 몇몇 뛰어난 과학자들이 고립된 공간 었다. 이를 두고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다.’ 에서 홀로 사유하고 관찰하고 실험을 했으나, 과학 혁명 이후 라고 표현하였다. 에는 비슷한 주제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서신을 교류하거 166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66 2018-08-31 오후 4:26:40 그림 19-12 과학의 발전은 공업 기술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나 모임을 가졌다. 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 결과를 과학 전 다섯째, 산업화와 자본주의가 촉진되었다. 문 학술지를 통해 논문의 형식으로 발표하거나 출판하였다. 과학 혁명 이후 산업의 중심이 점점 농업에서 공업과 상업 이를 통해 서로의 연구를 공유하고 논쟁하면서 객관성을 확 으로 이동했는데, 과학의 발전이 공업 기술의 발전으로 이어 보했으며 이는 과학의 일반화와 전문화로 이어졌다. 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개인의 정체성이 강조되었다. 개인 한편, 유럽 각국에서 과학자들을 위한 전문가 조직이 결성 은 국가와 직접적인 관계 설정을 바랐고, 자유와 평등에 대한 되었는데 1660년에 결성된 영국의 왕립학회와 1666년에 파 개념이 강화되었다. 또한, 사유 재산에 대한 개념이 뚜렷해졌 리에서 결성된 과학 아카데미를 들 수 있다. 고, 이것은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이어졌으며, 과학의 발전이 가속화되었다. 넷째, 자연과 물질의 변화에 인위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하였다. 과학의 발전이 인류에게 긍정적으로만 작용한 것은 아니 과학 혁명 후의 과학자들은 자연과 물질의 변화에 적극적 다. 유럽의 과학 발전은 제국주의의 확장에 이용되기도 하였 으로 개입하여 인위적인 변화를 주고, 그 대신에 새로운 지식 다. 증기선, 총과 대포, 전신 기술, 말라리아 예방약 등과 같 을 얻었다. 보일이 진공 펌프로 진공이라는 자연에 존재하지 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없었다면 유럽 제국주의의 확장은 않는 상태를 인위적으로 만들고 다양한 실험을 하여 기체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제국주의로 거두어들인 이익은 다시 지 부피와 압력의 관계를 알아냈다. 그 후 자연과 인공의 구분은 질학, 동물학, 식물학과 같은 자연사 분야나 의학 등에 투자 점차 희미해졌고, 인간은 필요에 따라 물질을 인위적으로 변 되어 제국주의의 발전을 더욱 견인하고, 약소국의 피해로 이 화시켜 다양한 물질을 생산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여기게 되 어졌다. 었다. 과학 이야기 167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67 2018-08-31 오후 4:26:42 단원 매듭짓기 정리하기 서양 과학사의 흐름을 다음 용어를 활용하여 정리해 보자. 1. 라부아지에의 화학 체계 돌턴의 원자론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 모즐리의 주기율표 2. 생명의 다양성, 린네의 분류학 생물의 진화, 다윈의 진화론 유전, 멘델 법칙 유전자, DNA 3. 뉴턴 역학의 완성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원자 세계의 입자 양자 역학 물리학의 세계 4.지질학 아그리콜라 스테노의 지층 누중 법칙 허턴의 동일 과정설 수성론 화성론 판 구조론 지구과학 이해하기 1. 1 9세기 들어 세 가지 방향에서 원자에 대한 새로운 연구 리학 개념과 이론들의 발달을 살펴보면 매우 복잡해 3. 물 가 생겨났다. 첫 번째는 화학, 두 번째는 열역학, 세 번째 보이는 물리 현상들이 단순화되고 통일되는 것을 발견할 는 분광학인데 이에 대해 설명해 보자. 수 있다. 그러한 예들을 찾아서 설명해 보자. 물학의 역사에서 다음 세 가지 관점에 대해 알아보자. 2. 생 (1)린네가 『자연의 체계』에서 사용한 분류의 방식과 생 물의 종에 대한 관점을 설명해 보자. 게너의 대륙 이동설이 판 구조론으로 발전하기까지 여 4. 베 러 학자들의 노력이 있었다. 대표적인 예를 세 가지로 정 리하여 설명해 보자. (2)다윈의 진화론이 이전의 다른 진화론과 다른 점을 설 명해 보자. (3)더프리스와 다윈의 생명의 연속성(유전)에 대한 생각 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을 설명해 보자. 168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68 2018-08-31 오후 4:26:42 적용하기 프로젝트 활동 빅 데이터를 이용한 과학의 발전 과정 추론하기 웹페이지를 통한 빅 데이터로부터 근대에서 현대까지 과학이 걸어온 길을 추론해 보자. [Google N-gram Viewer(https://books.google.com/ngrams)를 활용한다.] l예시l 1. Google N-gram Viewer에 ‘Biology’를 입력하여 검색한다. 2.검색 결과 Biology가 사용된 빈도 변화를 나타낸 그래프에서 특징적인 곳을 확인하여 그 시점을 학습 주제로 선정한다. 학습 주제1: 1850년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학습 주제2: 1920년대부터 갑자기 많이 사용되었다. 학습 주제3: 1950년대부터 점차 많이 사용되면서 2000년까지 유지되고 있다. 학습 주제 1 학습 주제 2 학습 주제 3 3. 학습 주제 중 한 가지를 선택하고 모둠을 구성하여 해당 시점에 어떤 사건들이 발생하였는지 조사한다. 4. 해당 사건들은 과학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토론하여 정리한다. 과정 래 용어별로 모둠을 구성하고 Google N-gram Viewer에 접속하여 각 모둠의 용어(영문)를 검색어로 각각 입력하여 1. 아 200년 동안 각 검색어가 사용된 빈도를 조사해 보자. Physics, Chemistry, Biology, Astronomy, Geology 의 예시를 참고하여 각 모둠별로 검색어 사용 빈도를 나타내는 그래프에서 중요한 특징이 나타나는 시기가 있는지 찾아 2. 위 학습 주제를 선정해 보자. 모둠은 선정한 학습 주제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하여 해당 학습 주제 시기에 과학 분야에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조사 3. 각 해 보자. 결과 및 정리 당 사건이 과학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토의해 보자. 1. 해 사한 자료를 토대로 미래에는 어떤 새로운 학문, 기술, 도구가 등장하게 될지 예상해 보자. 또 그것은 인류에게 어떤 영 2. 조 향을 미치게 될지 토의해 보자. Ⅳ단원 매듭짓기 169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69 2018-08-31 오후 4:26:43 20 중국의 전통 과학 21 이슬람과 인도의 전통 과학 22 한국의 전통 과학 23 서양 근대 과학의 수용 24 현대 한국 과학기술의 형성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70 2018-08-31 오후 4:26:48 우리는 동양 전통 과학 과는 뿌리가 달라. 자연과 나는 하나! 동양에는 이미 우수한 과학기술이 있어. 이것만 터지면……. 신기한 서양 물건을 많이 가져 왔어요. 시대 설명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71 난 필요 없는데……. 과학에는 국경이 없다고 한다. 과학사는 기본적으로 교류의 역사이다. 우리가 배우는 서양의 근대 과학은 중국과 이슬람, 인도의 전통 과학으로부터 자양분을 흡수해서 탄생한 것이다. 한국의 전통 과학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문화권에 속해 있었다. 한국과 일본 등의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은 중국에서 비롯된 유교, 한자, 율령, 역법을 공유했고, 이것을 바탕으로 과학기술 문명 을 발전시켰다. 2018-08-31 오후 4:26:53 20 중국의 전통 과학 학 습 목 표 ㅣ •중국을 중심으로 동양 전통 과학의 발전 과정을 설명할 수 있다. •하늘에 관한 탐구를 통해 자연 세계를 체계적으로 이해했던 방식을 설명할 수 있다. 중국의 전통 과학기술로 탄생한 발명품들 15세기 유럽의 르네상스는 근대 사회로 가는 길목에 있었다. 인문주의와 종교 개혁은 구텐베르크의 인쇄 술 혁명에서 시작되었다. 유럽인들이 대서양과 인도양을 건너 대항해의 시대를 여는 데 나침반과 항해술이 큰 몫을 하였다. 또한, 화약과 대포는 중세의 성벽을 무너뜨리고 절대 왕정이라는 유럽의 근대 국가 체제를 성립시켰다. 유럽인들은 이러한 인쇄술과 나침반, 화약을 ‘르네상스의 3대 발명품’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우리가 잘 쓰고 있는데 중국에서 먼저 발명되었다고? 이것들은 중국에서 처음 발명되었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혁명 인쇄술 항해술의 발달(나침반) 화약 화약 무기의 발달 나침반 유럽인들이 자랑스러워하던 ‘르네상스의 3대 발명품’인 인쇄술, 나침반, 화약은 수백 년 전 중국에서 발명 된 것들이다. 이 발명품들은 중국에서 중앙아시아, 아라비아 등을 거쳐 유럽으로 전래되었다. 4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였던 중국에서는 기원전 4800년 무렵부터 황하 유역을 중심으로 농경 생활을 시작하였다. 유럽에 비해 좋은 토양과 기후를 가졌던 중국은 농업 생산력에서 크게 앞섰다. 또한, 중앙 집권 적 국가 체제와 유교 문화를 발전시키고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과 발명품들을 만들었다. 중국이 위의 3대 발명품을 유럽보다 먼저 발명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또 16세기 이전 중국의 전통 과학기술이 유럽보다 앞선 까닭은 무엇일까? 172 Ⅴ. 동양 및 한국 과학사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72 2018-08-31 오후 4:26:56 1 중국의 전통 과학기술, 서양과 토양이 달랐다 중국은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유기체적 자연관이 기본! 정치를 잘 하려면 하늘의 질서를 알아야 해! 고대부터 중국은 서양과는 다른 방식으로 과학기술 활동을 하였다. 유럽과 다른 문 화적 토양을 지닌 중국의 과학기술 활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전통적인 자연관 과 당시의 시대적 환경을 알아야 한다. 중국의 자연관과 유교적 관료제가 과학기술에 영향을 미치다 중국인들은 자연을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은 유기체로 생각하였다. 인간을 포함한 자 연 세계의 모든 물질은 생명 리듬과 규칙을 가지고 서로 연결된다고 보았다. 먼저 밝음 과 어두움, 따뜻함과 차가움, 습함과 건조함, 활동과 정지와 같이 양극단을 오가는 작 은 순환에 주목하였다. 자연의 질서가 이렇게 서로 의존하면서 대립하는 성질이 주기적 으로 반복되는 현상을 ‘음양’의 원리로 보았다. 또 이 음양의 원리에 오행을 덧붙여 ‘음양오행’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였다. 오행은 보 통 나무, 불, 흙, 쇠, 물을 말하는데, 이것은 다섯 가지의 사물이 아니라 자연 현상 속에 서 서로 살려 주고 제어하는 관계를 나타내는 다섯 가지의 상징적 체계이다. 중국인들은 음양오행과 같이 모든 사물에는 상반된 요소가 내재하고 서로 작용하면 서 변화를 일으킨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관계론적이고 유기체적인 자연관이 한나라 이후 2,000년 동안 동양의 과학 사상을 지배하였다. 한편, 기원전 221년 진나라는 중국 대륙을 통일하고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를 세웠 다. 진나라를 멸망시킨 한나라는 유교 사상을 바탕으로 국가의 기틀을 잡았다. 중앙 집 권적 관료 체제와 유교 문화는 중국의 정치, 사회, 사상을 주도하며 과학기술 활동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한나라 때 동중서와 같은 유학자들은 황제를 모시는 신하로서 하늘의 뜻을 파악해 황제에게 알려 주는 것이 자신들의 임무라고 여겼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공존을 꾀하는 유교 문화에서 자연 현상과 황제의 정치적 행위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동중서의 천인감응(天人感應)론과 재이(災異)론 동중서(董仲舒; B.C.176?~B.C.104?) 는 하늘과 인간이 연결되어 상호 교감 한다는 천인감응론을 주장하였다. 그 리고 지진과 홍수, 일식 등의 자연 현상 을 하늘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재앙이 라는 뜻에서 ‘재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그는 하늘의 현상과 인간 사회 가 연결되어 있으며, 자연 재해는 인간 사회의 잘못된 일을 벌주기 위해 하늘 이 반응을 보인 것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하늘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국가와 황제가 관여하였다. 체계적이고 조직적 인 과학 연구는 몇몇 유학자들에 의해 국가 기구 안에서 이루어졌다. 유교 문화를 바탕 으로 한 관료제는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과학 활동에 독특한 성격을 만들었다. 20. 중국의 전통 과학 173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73 2018-08-31 오후 4:26:59 중국의 역대 왕조는 천체 관측을 중시하다 중국에서 천문학은 제왕의 학문으로서 과학의 여러 분야 중에 최고의 대접을 받았다. 중국의 천문학은 천문과 역법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중국에서 일식이나 혜성과 같은 천문 현상은 황제나 왕조의 운명을 미리 알려 주는 조짐으로 해석되었다. 이 때문에 천체를 정확하게 관측하는 것이 중요하였다. 정확한 관측을 위해 혼천의, 물시계와 같은 관측기구가 제작되었다. 중국의 역대 왕조는 천체 관측을 전담하는 전문가를 양성하고 관측기구를 제작하는 데 힘썼다. 장형(張衡; 78~139) 한나라 때 장형은 물의 힘으로 움직이는 혼천의를 발명하였다. 장형의 혼천의는 물시 계의 원리를 이용하여 일정한 간격으로 일정량의 물방울을 떨어뜨리면 그 힘으로 천체 의 위치가 자동적으로 표시되는 정밀 기계였다. 송나라 때 소송은 기존의 혼천의를 발전시켜 천문 시계를 만들었다. 소송의 천문 시 계는 물의 힘으로 혼천의를 움직였을 뿐만 아 니라 일정한 간격으로 시간을 알 려 주었다. 소송의 천문 시계는 수 한나라 때 천문 역법과 기상 관측, 수학 계산 등을 관장하는 부서의 최고 책임 자를 맡아 독창적인 과학 연구를 주도 하였다. 그는 혼천의를 비롯하여 지진 관측을 위한 지동의(地動儀)를 발명하 였다. 백 년 뒤 조선의 자격루에 영향을 주었다. 그림 20-1 서경에 나온 혼천의 혼천의 는 적도나 자오선 등을 표시하는 여러 개의 둥근 테로 이루어진 천체 관측기구이다. 그림 20-2 송나라 소송의 천문 시계(수운의상대) 12m에 이르는 이 시계 는 아래에 지구가 움직이는 속도와 똑같은 속도로 회전하는 톱니바퀴 장치 를 장착하고, 위에는 그 힘으로 돌아가는 혼천의를 설치하였다. 천문 관측기구, 곽수경의 간의 원나라 때 곽수경은 이슬람으로부터 건너온 천문 기구를 개량해서 간의 를 만들었다. 당시 중국의 혼천의는 적도나 황도를 나타내는 둥근 테가 겹 쳐 있어서 실제 관측에 사용하기 불편하였다. 간의는 이 점을 보완하기 위 해 만든 천문 관측기구로 기존의 관측기구에 비해 크기가 더 크고 정밀하 였다. 그림 20-3 간의 가운데 둥근 고리의 모양이 약 1.8m에 이른다. 174 Ⅴ. 동양 및 한국 과학사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74 2018-08-31 오후 4:27:00 중국의 역대 왕조는 역법 제작을 중시하다 중국에서는 황제가 천명(하늘의 명령)을 받아 천하(지상 세계)를 다스린다는 정치사 상의 영향으로 정확한 역법을 만드는 것을 황제의 임무로서 중시하였다. 중국의 역법은 달의 공전과 태양의 시운동을 함께 반영하는 태음 태양력이고, 오행 성의 공전 주기도 반영하는 천체력이었다. 따라서 서양의 태양력보다 훨씬 복잡하였다. 중국의 역대 왕조는 일식이나 월식을 정확하게 예측함으로써 전쟁이나 반란과 같은 국 가적 재난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확한 역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천체력 태양과 달, 오행성의 운행을 정확히 관 찰해서 일식이나 월식 등을 예측할 수 있는 천문표이다. 특히 왕조가 바뀌면 천명을 새롭게 받았다는 것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 기존의 역법을 폐지하고 새로운 역법을 만들었다. 물론 1태양년의 주기와 같이 천문 상수가 정확하지 않거나 세차 운동 등이 원인이 되 어, 시간이 지나면 기존의 역법은 정확하지 않게 되었다. 역법 상의 예측과 실제 천체 세차 운동 지구의 자전축이 미세하게 회전을 하 는 운동을 말한다. 현상 사이에 오차가 누적되면, 국가 기구 안에서 기존의 역법(이론)을 폐기하고 새로운 역법(이론)을 만들자는 논의가 일어났고, 최종적으로 황제의 결정에 따라 새로운 역법 이 만들어졌다. 우리 정도는 되야지. 중국 역법과 차이가 많네 ! 그 결과 2,000년 동안 단 1회의 역법 개정이 이루어졌던 서양과는 달리, 중국에서는 40여 회에 달하는 역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중국에서 우주론은 크게 주목 받지 못하다 중국에서 우주론은 주로 유학자들을 중심으로 우주의 모양에 대해 다루어졌다. 우주 에 대해 궁금했던 중국인들은 우주를 하늘은 둥글고 땅이 네모지다는 천원지방의 단순 한 모양으로 생각하였다. 중국의 대표적인 우주론으로는 혼천설이 있었다. 혼천설은 평평하고 네모진 땅이 우 주의 중심에 있고 둥글게 생긴 하늘이 그 둘레를 감싸고 있다는 학설이다. 얼핏 보기에 는 지구설을 떠올리게 하지만, 땅이 둥글다는 관념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우주의 구조와 생성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고대 그리스의 과학자들과는 달리, 중국의 천문학자들은 대체로 우주론에 대해 관심이 없었는데, 국가의 운명을 점치고 달력을 만 든다는 실용적인 목적과 무관했기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땅은 네모지지 ! 하늘 북극 적도 기 땅 물 아닌데 ! 남극 물 그림 20-4 혼천설의 우주 구조 20. 중국의 전통 과학 175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75 2018-08-31 오후 4:27:02 2 중국의 전통 과학기술, 서양보다 앞서다 고대 중국의 전통 과학은 세계 어떤 문명권에서도 볼 수 없는 천문 관측 기록을 가지 고 있었다. 천체의 운행을 체계적으로 기록한 책과 천문도는 과학 문화 유산으로 오늘 날까지 보존되고 있다. 중국은 서양보다 풍부한 천문 관측 기록을 남기다 유럽에 초신성의 기록이 없는 까닭 중세 유럽인들은 하늘은 완전하고 불 변한 곳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 론을 믿고 있었다. 따라서 초신성과 같 은 새로운 별의 출현을 인정할 수 없었 고, 당연히 기록하지도 않았다. 중국의 역사서에는 태양의 흑점, 일식과 월식, 혜성, 신성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기원전 720년 이후에 일어난 일식과 월식을 1,600회 기록하였고, 기원전 352년에서 1604년 사이에 관찰된 신성과 초신성은 75개가 기록되었다. 신성과 초신성은 별이 폭 발하면서 밝게 보이는 것을 말하는데, 1054년에 폭발한 초신성의 기록은 중국과 고려, 일본에만 남아 있다. 중국인들은 하늘의 각종 천문 현상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철저히 기록하는 관행을 지키고 있었다. 혜성에 관한 관측도 중세 유럽보다 중국의 기록이 더 믿을 만하 다. 중국의 1500년 이전 기록은 현대 천문학에서 주기적으로 찾 아오는 혜성의 궤도를 추적하는 데 매우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또 중국은 체계적인 별자리 그림을 후세에 남겼다. 12세기에 세 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순우천문도」라는 천문도를 제작 한 것이다. 이 천문도는 1193년에 그려진 것인데, 영구 보존을 위 해 1247년에 다시 돌에 새겨져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그림 20-5 순우천문도(淳祐天文圖) 전체 높이 2.5m, 지름 91.5cm의 천문도 안에는 1078~1085년에 실제 관측한 1,440여 개의 별들이 그려져 있다. 중국의 별자리 체계 중국 별자리 체계의 핵심은 북극성과 28수(宿)라고 하는 28개의 별자리였다. 28수는 달의 위치 변화를 기준으로 별자리 28개를 나눠 놓은 것이다. 달이 날마다 위치가 변해 서 28일 동안 한 바퀴 도는 것에 착안하여 천구를 오렌지 조각 나누듯이 28개로 분할하 고, 각각 해당하는 별을 지정한 것이다. 28수를 비롯한 중국의 별자리는 관료 조직을 본떠서 만들었기 때문에 관청 이름이 많 자미원 다. 예를 들어, 북극 근처의 별자리들을 통틀어 ‘자미원’이라고 부르는데, 자미원은 천자 가 거처하는 궁궐의 뜰이라는 뜻이다. 28수는 움직이지 않는 별인 항성이기 때문에 태양 과 달, 오행성의 운행을 관찰하는 데 기준 좌표로 활용되었다. 중국의 별자리는 서양의 별자리 그림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보자. 그림 20-6 28수 176 Ⅴ. 동양 및 한국 과학사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76 2018-08-31 오후 4:27:04 중국의 전통 과학기술은 세계를 주도하다 고대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과학기술은 서양을 훨씬 능가한 것이 많았다. 중국의 4대 발명품인 종이, 나침반, 화약, 인 쇄술뿐만 아니라 외바퀴 수레, 옻칠, 화약, 자기(磁器), 우산, 릴낚 이번 과학 회의 주제는……. 과학기술 선진국만 참석하는 회의예요. 끼워 줘. 시, 현수교 등 셀 수 없이 많은 세계 최초의 발명품들이 나왔다. 중국의 전통 과학기술은 천문학을 비롯하여 수학, 기상학, 지 도 제작술, 지진학, 연금술, 의학, 농학, 음악 분야에서 독자적인 발전을 하였다. 서양보다 앞선 중국의 과학기술들 한나라의 장형은 지진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132년에 지진계인 지동의 를 제작하였다. 지진이 일어나 땅이 흔들리고 단지 속의 막대기가 쓰러지 지동의 면, 쓰러진 방향에 있는 용의 입으로 여의주가 나와 밖에 있는 두꺼비의 입으로 떨어졌다. 떨어진 구슬을 보고 지진이 일어난 방향을 알 수 있도 록 한 것이다. 종이는 105년 무렵 한나라의 환관이었던 채륜이 발명하였다는 내용 종이 이 『후한서』에 전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그 이전에 제작된 종이 조각이 간쑤성에서 발굴되어 늦어도 기원전 2세기 무렵에는 중국에서 종이가 발 명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나침반은 기원전 2세기~기원후 1세기 무렵 한나라에서 발명되었으며, 나침반 당시에는 사남(司南)이라고 불렀다. 최초의 나침반은 천연 자석을 이용 해서 방위를 나타내는 단순한 형태였다. 나침반 바늘은 국자나 물고기 모 양이었는데, 나중에 화살표 모양으로 개량되었다. 화약의 원료가 되는 초석에 대한 기록은 기원전 2, 3세기 무렵에, 황에 대 화약 한 기록은 2세기 무렵에 나타났다. 실제로 화약을 발명한 것은 9세기 무 렵이고, 화약으로 무기를 만들어 사용한 것은 10세기 이후의 일이다. ◀ 화약을 무기로 사용하는 중국인 20. 중국의 전통 과학 177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77 2018-08-31 오후 4:27:07 3 중국에서 과학 혁명은 왜 일어나지 않았을까 우리가 지금 교육이나 생활을 통해서 배우고 있는 과학은 17세기 유럽에서 출현한 근대 과학이다. 중국의 과학기술은 유럽을 앞서던 상황이었는데 왜 근대 과학으로 발 전하지 않았을까? 탐구 활동 중국에서 과학 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까닭 영국의 과학사학자 니덤은 1954년 『중국의 과학과 문명』을 출간하였다. 그는 이 책에서 14세기 이전 의 중국 과학기술이 서양보다 크게 앞섰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증명하고, 유럽이 아닌 다른 지역 과학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나아가 중국의 과학기술이 왜 서양의 근대 과학과 같은 경로로 발전하지 않았는지 에 대하여 질문을 던졌다. 니덤의 질문 이후에 과학사학계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중국에서 과학 혁명이 왜 일어나지 않았는가에 대한 열띤 논쟁이 있었다. 당시 과학자들의 주장 니덤의 주장 첫째, 중국에는 수학이나 기하학이 ● ● 반박 첫째, 자연 세계에 대한 관심보다 인 발전하지 않았고, 이것이 근대 과학 간과 사회에만 관심을 가지는 유교 문 의 성립을 방해했다. 화의 관료주의가 과학의 발전을 저해 했다. 둘째, 중국에는 실증적 실험과 논 ● 리적인 추론의 전통이 없어 과학 ● 둘째, 중국에는 상인 계급이 이 발전하기 어려웠다. 형성되지 못했고, 자본주의 셋째, 중국인들이 이성적인 사 가 발달하지 않아서 본격적인 고보다는 직관적인 통찰을 중 과학 발전을 하지 못했다. ● 요시했고, 이것이 과학 발전을 셋째, 중국에는 전지전능한 창조주로 ● 저해했다. 서의 신의 개념이 없어 신이 만든 자연 법칙의 탐구에 가치를 두지 않았다. 반박 니덤의 『중국의 과학과 문명』 영국의 생화학자이자 과학사가였던 니덤(Needham, J.; 1900~1995)은 1942년에 영국 왕립학회의 사절로 중국을 방문하고 중국 과학 문명의 우수성을 재발견하였다. 1948년 케임브리지로 돌아온 그는 죽 기 전까지 『중국의 과학과 문명』이라는 대작을 집필하는 일에 매달렸다. 이 책은 고대부터 17세기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과학과 기술 각 분야를 상세하게 보여 주고, 서양인의 중 국 전통 과학에 대한 시각을 바꿔 놓았다. 이러한 니덤의 연구는 ‘순수 과학 밖에서 이루어진 가장 중요한 성 취’라는 찬사를 받았다. 178 Ⅴ. 동양 및 한국 과학사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78 2018-08-31 오후 4:27:08 니덤의 질문에 대한 과학사학계의 논쟁에서 중국이 유럽과 같은 길을 걸어야 했다고 보는 것은 또 다른 얼굴의 유럽 중심주의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중국의 자연관과 전통 과학의 내용을 이해하고, 거기서 서양과의 공통점 및 차이점을 찾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토론 유럽에서 과학 혁명이 왜 유럽에서 일어났던 일어났냐고 묻는 질문은 타 일들을 중국과 비교 당한데, 중국에서 왜 일어나 하는 것은 잘 지 않았느냐고 묻는 것은 질문 못이다. 이런 자체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질문은 어떤 예컨대 어느 집에 불이 났다면 일이 있어야 한다 왜 불이 났느냐고 질문할 수 있 고 미리 전제하는 오류 다. 그렇지만 불이 나지 않은 를 범한 것이다. 의사소통 집에 불이 나지 않은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전 주장에 대한 다른 생각들 결과 및 정리 주장들을 서로 비교해 보고, 가장 타당한 주장이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자. 1. 각 글을 참고로 중국에서 왜 과학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고, 자신의 의견을 말해 보자. 2. 위 에서 니덤이 던진 질문이 타당하지 않다면 어떤 질문을 던지는 것이 더 타당할지 질문을 만들어 보자. 3. 위 과학은 논쟁이군! 정리하기 중국의 유교적 세계관은 천문학에 어떤 영향을 미쳤 는지 다음 단어들을 넣어 정리해 보자. 유기체적인 자연관 천문과 역법 생각 넓히기 중국의 전통 과학기술이 서양 근대 사회 형성에 영향을 미친 사례를 찾아보자. 천인감응론 20. 중국의 전통 과학 179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79 2018-08-31 오후 4:27:09 21 이슬람과 인도의 전통 과학 학 습 목 표 ㅣ •이슬람 세계에서 발전한 과학의 내용과 이슬람 과학이 서구로 유 입되는 과정을 설명할 수 있다. •인도에서 수학과 과학이 발전할 수 있었던 역사적 배경과 그 과 정을 설명할 수 있다. 아스트롤라베를 들고 있는 서양의 탐험가 아래 그림은 16세기 후반 서양화가가 그린 판화이다. 1497년 무렵에 이탈리아 탐험가 베스푸치가 멋진 신세계에 도착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이 판화 속에 베스푸치는 멋진 옷차림에 무기와 아스트롤라베를 손에 든 유럽인으로 묘사되어 있다. 상상력으로 그려진 이 판화에서 베스푸치는 아스트롤라베로 상징되는 근대 과학기술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아스트롤라베는 이슬람 문명에서 나온 것이었다. 16세기의 유럽인 들이 자랑하는 근대적 과학기술은 이슬람인들이 만들고 전해 준 것이다. ▲ 이슬람의 천문 관측기구 아스트롤라베 서양 과학사는 이슬람 과학의 역할을 평가하는 데 인색하다. 유럽인들은 이슬람 과학이 왕성하게 활동하 던 8세기에서 14세기까지를 중세의 암흑기였다고 말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과학이 탄생하였고, 이슬람 문 명이 그리스 과학을 받아들여 유럽에 전해 줬는데도 그저 전달자의 역할만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15세 기 유럽의 학문을 자극시킨 것은 그리스 과학의 원형 그대로가 아니고 이슬람화 된 그리스 과학이었다. 또 유럽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은 기술도 중국, 인도, 이슬람의 지역 환경에 맞게 개선된 발명품들이었다. 이렇게 각자의 환경에서 뿌리내렸던 지식과 기술이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비단길과 뱃길을 통해 자연스 럽게 유럽에 유입되었고, 마침내 근대 과학과 산업의 발전에 밑거름으로 녹아들었다. 오늘날 유럽이 세계 강 대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비유럽권의 다양한 지적 소산을 수용하고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이슬람에서 전통 과학기술이 발달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180 Ⅴ. 동양 및 한국 과학사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80 2018-08-31 오후 4:27:10 1 이슬람의 전통 과학, 번역을 통해 발전하다 7세기 아라비아에서 예언자 무함마드가 창시한 이슬람교는 정복과 개종을 통해 아시 아・아프리카・유럽으로 확산되었다. 무함마드가 조직한 이슬람 공동체(무슬림)는 이 베리아 반도와 북아프리카 및 중앙아시아에 걸쳐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이슬람은 외래의 사상과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이슬람이 확대되는 과정에 서 중국과 인도 및 유럽의 전통 과학이 융합되었고, 그 결과 이슬람의 전통 과학이 탄 생하였다. 지식 번역 사업은 이슬람 문화와 과학을 발전시키다 중국에서 한나라 때에 발명된 종이는 8세기 무렵 이슬람 제국에 전해졌다. 이슬람의 칼리프들은 종이의 가치를 알아보고 사용을 권장하였다. 이들은 유용한 지식들을 모아 서 번역하고 책으로 출판하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9세기 초 아바스 왕조의 제7대 칼리프인 알마문은 그리스 철학과 과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바그다드에 ‘지혜의 집’이라는 학문 연구 기관을 세웠다. 이곳에서 그리스를 비롯한 외래 학문의 연구와 방대한 양의 번역 사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아바스 왕조의 정치적 후원을 받은 번역 사업에는 이슬람의 수많은 학자와 외국인 번역자들이 동원되었다. 이들은 의학, 응용 수학, 천문학, 점성술, 연금술, 논리학 등 폭 넓은 분야를 다루었고, 사실상 그리스 과학을 거의 아랍어로 번역하였다. 이 번역 과정에서 이슬람인들은 그리스에 국한되었던 과학을 아랍, 인도, 페르시아의 문화와 융합해서 보편적 학문으로 위상을 높였다. 그리스 학문을 아랍 사상의 중심에 올려놓은 이슬람인들은 진정한 그리스 과학의 발견자였다. 그만큼 그리스 과학의 아랍 어 번역 운동은 과학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이슬람의 번역 사업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200년 동안이나 지속된 사 회적·역사적 현상이었다. 정치 지도자들에서부터 학자와 전문가, 군인, 상인 등이 참 여한 범사회적인 문화 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갈레노스 저서를 129권 이나 번역하다니…. 대단한 이슬람인들이야. 이슬람 번역서 이슬람의 방대한 번역 사업의 의미 번역 사업으로 축적된 지식은 그리스 와 로마를 뛰어넘는 독창적인 이슬람 과학을 이루는 바탕이 되었다. 또 유럽 이 암흑기로부터 르네상스 시대를 거 쳐 과학 혁명으로 갈 수 있도록 중요한 징검다리 역할을 하였다. 유럽 번역서 3권 갈레노스 저술 그림 21-1 지혜의 집에서 번역하는 이슬람 학자들 그림 21-2 방대한 이슬람의 번역 사업 21. 이슬람과 인도의 전통 과학 181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81 2018-08-31 오후 4:27:11 이슬람에서 천문학의 발전은 이슬람 신앙과 관련이 있다 칼리프 알마문이 9세기 무렵 최초의 천문 관측소를 세운 것을 필두로 곳곳에 관측소 이슬람의 천문대 1259년에 세워진 카스피해 인근의 마 라게(Maragheh) 천문대에는 천문학, 수학, 지리학에 관련된 장서가 보관되 어 있었고, 천문 관측 장비를 만드는 주 조소까지 있었다. 가 설립되었다. 칼리프와 이슬람 사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천문대는 관측소와 학 교, 도서관이 통합된 과학 연구 기관이자 교육 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이슬람 문명에서 천문학은 종교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슬람의 종교 의식에 는 독특한 기도법과 라마단 행사가 있다. 이 종교 의식을 행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시간 이슬람의 종교 의식 과 방향을 알아야 기도를 하고, 정확한 달력을 가지고 있어야 라마단 기간을 정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슬람 사원에는 기도 시간을 알리는 계시원을 두었다. 이들에게 전문 메카를 향해 하루 5번 기도 적인 천문학과 지리학 지식은 필수적인 자격 요건이었다. 그들의 손에는 항상 복잡한 천문표가 들려 있었는데, 이 천문표는 이슬람 사원이 운영하는 천문 관측소에서 만들었다. 이슬람의 천문표 중에는 아바스 왕조 시 대에 알마문의 궁정에서 점성술사로 일한 라마단: 이슬람력으로 아홉 번째 달에 한 달 동안 일출과 일몰 사이 금식 콰리즈미가 만든 것이 가장 유명하다. 콰리 즈미의 천문표는 이슬람 지역에서 수백 년 동안 사용되었고, 나중에 라틴어로 번역되 콰리즈미의 천문표 월식과 일식, 달의 위상 변화, 행성의 운동, 별의 좌표 등 천문 현상에 대한 모든 기록과 그와 관련된 수학적 방정 식까지 수록되어 있다. 어 유럽에서도 쓰였다. 또한, 천문 관측기구 인 아스트롤라베에 대한 콰리즈미의 저작도 수세기에 걸쳐 명성을 유지하였다. 이후에 아스트롤라베는 아시아와 유럽 세 계로 전해져 천문학 도구에 많은 영향을 미 쳤다. 유럽인들도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을 때에 아스트롤라베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림 21-3 아스트롤라베로 관측하는 이슬람인 유목 생활을 하는 이슬람인들은 언제, 어디서나 천체 관측을 하 고, 시간과 방향을 알기 위해 아스트롤라베를 사용하였다. 콰리즈미의 수학 분야 업적 콰리즈미의 정확한 이름은 무함마드 이븐 무사 알콰리즈미(Muhammad ibn Musa al-Khwarizmi; 780?~850?)로 수학에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대수학: 콰리즈미는 수학책 『알자브르(al-Jabr)』를 썼는데, 이 책은 서양에 『앨지 브라(Algebra)』로 전해졌다. 동양에서는 ‘대수학’으로 불렸는데, 대수학은 개개의 숫자 대신에 문자를 써서 수의 성질이나 관계, 법칙을 연구하는 학문을 말한다. 우 리가 컴퓨터 용어로 알고 있는 알고리즘(algorithm)도 그의 이름 ‘알콰리즈미’에 서 유래하였다. 아라비아 숫자 0: 콰리즈미는 인도로부터 아라비아 숫자를 최초로 도입하였다. ‘0’의 존재는 인도에서 5세기 무렵에 출현했는데, 이는 인류 지성사에서 획기적 성 과로 꼽힌다. 0부터 9까지의 숫자를 쓰는 ‘자릿수 기수법’은 0이 있어서 모든 숫자 그림 21-4 콰리즈미(왼쪽)와 아랍어로 쓰인 대수학 교재(오른쪽) 의 표시와 사칙 연산이 훨씬 용이해질 수 있었다. 만약에 0이 없었다면 숫자의 표시나 사칙 연산에 어떤 어려움이 있었을지 생각해 보자. 182 Ⅴ. 동양 및 한국 과학사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82 2018-08-31 오후 4:27:12 이슬람 의학과 광학, 연금술은 유럽의 과학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다 그림 21-5 이슬람의 병원 이슬람 의사 옆에 조수가 약을 들고 있다. 이슬람 과학은 번역 사업을 바탕으로 수학과 천문학 이외에 다양한 과학 분야에서 독창적인 발전을 이룩하였다. 특히 의학에서는 독자적인 사상과 사회적인 지원 체재가 잘 맞물려 훌륭한 제도를 확립했다. 정부가 지원하는 병원은 이슬람 세계 전역에 있었는데, 그중에 1284년 이집트 카이 로에 설립된 만수르 병원은 8천여 명의 환자를 수용했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였다. 이슬 람 병원은 천문 관측소가 그러했듯이 도서관, 약국, 강의실을 갖추고 연구와 교육을 병 행하였다. 전문 의료진과 간병인, 학생이 어우러져 다른 문명권에서 찾아볼 수 없는 체 이븐알하이삼(Ibn al-Haytham; 965?~1040?) 계적인 의료가 실시되었다. 이슬람 의학은 약학과 안과 분야가 발전하였다. 모래바람이 부는 덥고 건조한 사막 기후는 안과 질환을 많이 유발시켰다. 그래서 눈병에 관한 연구와 치료가 많이 나왔고, 병원마다 안과 부서가 특화되어 있을 정도였다. 초기의 이슬람 의학은 번역된 그리스의 문헌들 중에서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의 저작에 많이 의존했는데, 점점 중국과 인도의 전통과 지식을 흡수하면서 실용적이고 종 합적인 의학 체계로 재탄생하였다. 이와 더불어 눈과 시각 현상에 대한 많은 지식이 축적되면서 광학이 발전하였다. 이븐 알하이삼은 그의 저서 『광학의 서』에서 우리가 사물을 볼 수 있는 것은 눈에서 나온 빛이 유럽에서는 알하젠이라는 이름으로 알 려져 있다. 그는 광학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으며, 과학적 접근 방법의 선구자 로 불린다. 사물을 밝히기 때문이 아니라 빛이 우리 눈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라는 것을 실험으로 증 명하였다. 이는 근대적인 시각 이론의 형성을 위한 중요한 발견이었다. 그 외에도 무지개, 렌즈, 거울 등 광학에 대한 그의 연구들이 유럽 과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한편,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이어져 온 연금술은 이슬람권에 계승되어 더욱 독자적으 로 발전하였다. 지금까지도 화학 실험에 쓰이는 여과기, 증류기 등의 기구와 증류법, 결정법과 같은 실험 기술은 모두 중세의 연금술에 이용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다. 그 외에 알코올, 나트 륨 등 연금술을 통해 발견된 수많은 화학 물질의 명칭도 아랍어에서 기원하였다. 연금 술사들이 남긴 경험은 근대 화학의 기초를 다지는 데에 이바지하였다. 그림 21-6 화학자이자 연금술사, 의사 인 알라지가 환자를 치료하는 모습 21. 이슬람과 인도의 전통 과학 183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83 2018-08-31 오후 4:27:13 이슬람 문명은 지식의 횃불을 유럽에 전하다 이븐시나(Ibn Sina; 980~1037) 이슬람 문명과 중세 유럽의 접촉은 11세기 무렵부터 주로 에스파냐의 코르도바와 톨레도 등지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이슬 람의 지배를 받던 톨레도는 과 학 문헌을 아랍어에서 라틴어로 번역하는 중심지였다. 이슬람 문 유럽에서는 아비센나로 불린다. 그는 고대 의학을 집대성했으며, 『의학전 범』, 『치유의 서』 등을 저술했다. 명의 철학, 종교, 과학 등 거의 모든 분야의 문헌들이 번역되었 그림 21-7 코르도바 도서관에서 번역하는 학자들 다. 서구 유럽은 이슬람 문명이 쌓아 놓은 과학 서적들을 라틴어로 번역해 그 안에 보전된 지식을 쉽게 얻을 수 있었다. 이븐루시드(Ibn Rushd; 1126~1198) 11세기 이후, 십자군 전쟁과 예루살렘을 둘러싼 동서양의 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소수의 용감한 유럽의 학자들은 이슬람 세계로 건너가 새로운 천문학과 수학 개념들을 배워 유럽에 전달하기도 하였다. 이슬람 과학의 성과 중에서, 이븐시나의 『치유의 서』는 르네상스 시대 유럽 대학에서 읽혔을 정도로 수백 년 동안 학문적 권위를 누렸다. 또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식론을 이 슬람 철학으로 재해석한 이븐루시드의 사상은 13세기 중세 유럽에 유입되면서 폭발적 인 반응을 얻었다. 한편, 십자군 전쟁과 오스만 제국의 콘스탄티노플 점령 이후 비잔티움 제국의 많은 유럽에서는 아베로에스로 불린다. 그 는 ‘신학과 철학이 양립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신앙에 대한 이성의 우위를 옹호하였다. 학자들이 서유럽으로 피난지를 찾았다. 이때 이슬람에 의해 연구된 그리스-로마의 고 전들이 서유럽으로 대거 유입되었다. 그들이 가져온 지식과 문서들은 이탈리아를 중심 으로 르네상스를 꽃피우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슬람의 전통 과학, 동아시아에 전파되다 12세기 세계 최고 수준이었던 이슬람의 천문학은 동아시아로 전해 졌다. 원나라 때 곽수경이 만든 간의는 이슬람의 적도의(赤道儀)식 천 문 관측기구인 토르퀘툼의 원리를 이용해 제작된 기구였다. 곽수경은 당시 천체를 관측할 때 나타난 혼천의의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혼천의 구조에 이슬람의 좌표계를 사용하는 모델을 창안하였다. 이슬람의 우수한 천문학과 천문 관측 기구는 중국을 거쳐 조선으로 들어왔다. 세종 때의 학자들은 곽수경의 간의를 본뜬 조선의 간의를 만 들었다. 조선의 자주적인 역법서 『칠정산외편』도 이슬람의 회회력을 한 역본으로 정리한 것이다. 이렇듯 이슬람 과학은 세계의 여러 문명권에 전래되어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림 21-8 이슬람의 천문대 184 Ⅴ. 동양 및 한국 과학사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84 2018-08-31 오후 4:27:13 2 인도의 전통 과학과 수학이 인류 문화 발전에 기여하다 고대 인도 문명은 인더스강 유역을 중심으 로 발생한 세계 4대 문명의 하나였다. 인도인 들은 기원전 15세기 무렵부터 자연 현상을 베 다(Veda, 지혜) 즉, 신의 가르침으로 해석하는 베다 문명을 이룩하였다. 따라서 신에게 제사 를 지내는 종교 의식이 인도인의 삶과 사상을 지배하였다. 자연을 탐구하는 과학도 신의 뜻을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정확한 날짜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별의 움 직임을 관찰하면서 천문학이 생겨났고, 제단 그림 21-9 인도에서 수의 개념으로 처음 쓰인 아라비아 숫자 0 을 바르게 설계하기 위해 기하학과 수학이 발달했으며, 무병장수를 빌고 질병을 쫓아내 기 위해 의학이 발달하였다. 고대 인도의 천문학은 기원전 5세기 무렵 메소포타미아의 천문학 문헌이 들어오고, 아리아바타(Aryabhata; 476~550) 기원전 4세기 무렵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원정으로 그리스, 헬레니즘 문화가 유입되면서 인도 수학과 천문학의 발전에 큰 공헌 을 하였다. 이차방정식과 부정 방정식 의 해법을 찾았고, 소수점 넷째 자리까 지 π를 계산했으며, 월식과 일식을 예 측하였다. 큰 발전을 이루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천문학자 아리아바타가 있다. 그는 그리스 천문 학을 계승하여 천체들의 크기와 거리를 측정했으며, 지구의 둘레와 지름값을 구하였다. 고대 인도의 수학은 천문학의 발전과 함께 십진법, 삼각법, 기하학, 대수학, 방정식 등 을 독자적으로 연구하였다. 특히 우리에게 잘 알려진 ‘0’과 아라비아 숫자 체계의 계산 인도에서 수를 적는 방법의 진화 법을 창안하였다. 아라비아 숫자와 0의 도입은 유럽으로 건너가 세계 수학뿐만 아니라 •전래: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원정을 통해 바빌로니아로부터 자릿수로서 의 0의 개념이 전래되었다. •초기: 수를 표시할 때 자릿수가 없으 면 그 자리를 비워 두었다. •5~6세기 무렵: 숫자로서의 0의 개 념이 등장하였다. •7세기 이후: 자릿수로서의 0과 숫자 로서 0의 두 가지 용법이 확립되었다. 인류의 문화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 인도의 전통 의학은 기원전 5~6세기 무렵 ‘생명의 지식’이라는 뜻의 ‘아유르베다’로 체계화되었다. 이 전통 의학은 질병을 신체의 불균형으로 보고 치료를 위해서는 불균형 을 일으키는 성분을 제거하고, 조화로운 것으로 대체해야 하는 것을 근본 이론으로 한다. 인도 전통 과학은 중국으로 불교가 전래될 때 불교 경전에 포함되어 동아시아의 여 러 나라에 수용되었다. 고대의 인도 과학은 중국과 이슬람, 유럽 등으로 전파되면서 인류의 문화 발전에 크 게 공헌하였다. 정리하기 과학사에서 이슬람 과학기술은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 다음 단어들을 넣어 정리해 보자. 생각 넓히기 11세기에 살았던 사람들은 과학기술을 공부하기 위해 아랍어를 배워야 했다. 오늘날에는 과학기술을 연구하기 위 번역 운동 지혜의 집 해 어떤 언어를 배우는 것이 필요한지 생각해 보고, 그 까닭을 토 콰리즈미 0과 아라비아 숫자 의해 보자. 21. 이슬람과 인도의 전통 과학 185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85 2018-08-31 오후 4:27:14 22 한국의 전통 과학 학 습 목 표 ㅣ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의 과학과 기술 이 발전하는 과정을 설명할 수 있다. •우리 과학의 독창성과 우수성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 우연히 발견된 세계 최초 목판 인쇄물-다라니경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1966년 가을, 우연한 사고에 의해 발견되었다. 경주 불국사 석가탑의 보수 공사 를 하던 중에 옥개석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져 한쪽이 깨지는 불행한 사고가 있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석가 탑 안의 사리함에서 다라니경과 몇 가지 문화재를 찾을 수 있었다. 세계 인쇄 기술사를 바꾼 두루마리 불경 이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것이다. 정식 이름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으로 흔히 ‘다라니경’으로 불린다. 이것은 세로 6.5cm, 가로 52cm 가량 되는 목판 12장이 인쇄된 두루마리로, 총 길이 가 7m쯤 된다. 목판 인쇄술 자체는 중국에서 발명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존하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 물은 868년에 인쇄된 『금강경』이다. 1966년 이전까지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은 770 년 무렵에 제작된 일본의 『백만탑다라니경』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신라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조사해 보니, 705년에 인쇄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결과 신라의 다라니경이 현존하는 최고의 목판 인쇄물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일찍이 우리 선조들은 건축이나 천문, 인쇄 등의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과학기술 유산을 남겨 놓았다. 이 것은 우리의 전통 과학기술이 동양의 문화권 속에서 형성되어 왔으면서도 나름대로 주체적인 과학기술 문 화로 계승 발전되었음을 의미한다. 중국의 전통 과학기술을 토대로 발전시킨 한국의 전통 과학기술 유산에는 『무구정광대다라니 경』 이외에 또 무엇이 있을까? 186 Ⅴ. 동양 및 한국 과학사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86 2018-08-31 오후 4:27:14 1 삼국 시대의 천문학, 일찍부터 발달하다 앗! 고인돌에 별자리가 새겨져 있다니. 선조들이 그랬듯이 하늘의 현상을 잘 알아야 해. 삼국 시대의 과학과 기술은 일찍부터 농업과 수공업에 기초하여 발전하였다. 특히 농 업은 사회를 이끌어가는 주요 산업이었으므로 농업과 관계있는 천문, 역법 등에 국가적 인 관심이 컸다. 천문 지식은 농사짓는 데도 긴요했지만 정치적인 성격 또한 띠고 있었 다. 하늘의 현상을 인간 사회의 정치와 연결해서 탐구하는 유교 문화 때문이었다. 현재 전해지는 우리나라 최고의 정사(正史)인 『삼국사기』에는 자연 현상에 대한 기록 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늘에 대한 관심이 천문 관측 기록으로 나타나다 삼국 시대의 천문학은 중국의 과학기술의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선진 문물의 모방 차원에서 중국의 천문학을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은 아니다. 고구려의 천문도는 고분 벽화의 별자리 그림에서부터 석각 천문도에 대한 기록까지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고분 벽화의 별자리 그림은 죽어도 영혼은 남는다는 고구려 사람들의 내세관과 당시 사회의 신앙을 잘 보여 준다. 고구려 무용총의 별자리는 별을 원으로 표현하고, 그 원을 3개의 선으로 이어 나타내 고 있었으며, 28수 별자리의 일부가 그려져 있었다. 이 별자리는 움직이지 않는 별자리 이므로 태양과 달,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처럼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천체를 관 측하는 기준이 되었다. 고구려인들의 천문 관측 고구려인들은 ‘망통’이라는 천문 관측 기구를 썼다. 이 기구는 망원경처럼 렌 즈는 없지만 다른 불빛을 차단하여 희 미한 별들을 정확하게 식별하도록 도 와주었다. 그림 22-1 고구려 무용총의 천정 벽화(왼쪽)와 무용총에 그려진 28수의 일부(오른쪽) 22. 한국의 전통 과학 187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87 2018-08-31 오후 4:27:15 천정 주변에 있는 28수의 일부 고구려 덕화리 2호분의 천정 벽화 고구려 덕화리 2호분의 북두칠성과 28수 그림 22-2 고구려 덕화리 2호분의 별자리 그림 고구려의 천문학자들은 고분 벽화의 별자리뿐만 아니라 하늘의 별을 모두 그려낸 석 각 천문도를 제작하였다. 조선 초기의 「천상열차분야지도」가 바로 이 고구려의 석각 천 문도를 모델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권근의 문집 『양촌집』에는 고구려에 석각 천문도가 있었으나 7세기 무렵 전쟁 때 대 동강에 빠뜨려 잃어버렸다고 전하고 있다. 그런데 다행히 종이에 찍어 낸 복사본이 남 아 있어서 그후에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4세기 무렵 고구려인들은 이미 별자리 290개, 별 1,467개를 육안으로 관찰하여 정밀 한 천문도를 보유하였던 것이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도인 돈황성도 갑본은 당 대 초기의 것으로 수(宿)별로 길게 배열한 것이 고구려의 천문도에는 미치지 못한다. 한편 『삼국사기』에는 고구려를 비롯해서 백제, 신라의 천문 관측에 대한 정밀한 기록 들이 나와 있다. 여기에는 중국의 사료에서 볼 수 없는 관측 기록도 있다. 이것은 서유 럽이나 다른 문명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귀중한 문화적 자산이다. 『삼국사기』의 천문 관측 기록 고구려: 고구려 양원왕 11년(555) 11월 30일 “태백성이 낮에 보였 놀라지마! 이 책에 나와 있어. 다.”, 영류왕 23년(640) 9월 “해가 빛발이 없다가 3일이 지나서야 다 시 밝았다.” 등의 기록이 있다. 이것들은 중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천 난 몰라. 처음 보는데? 문 기록이다. 백제: 기원전 14년 7월~592년 7월까지 606년 동안 26회의 일식 기록을 남겼다. 또 16회의 혜성 관측과 16회의 천상(天象) 이변을 기 록하고 있다. 저게 뭐에요? 무서워요! 신라: 기원전 54년 4월~256년 10월까지 일식이 19회 정도 나타난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에서 천문 관측 기록이 많은 까닭이 무엇일까? 또 삼국 시대의 자연관(하늘과 땅의 개념)이 천문도나 별 자리 그림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생각해 보자. 188 Ⅴ. 동양 및 한국 과학사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88 2018-08-31 오후 4:27:16 신라의 첨성대는 어떤 역할을 했을까 천문 관측에 관한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신라의 첨성대가 있다. 경주에 가면 볼 수 있 는 첨성대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하는 천문대로 알려져 있다. 첨성대는 신라 제 27대 선덕 여왕 때(632~647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 신라 시대에 천문관 들이 내부를 통해 오르내리면서 꼭대기에 천문 관측 기기를 설치하고 하늘을 관찰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첨성대는 하루에 몇 번씩 오르내리며 관측 활동을 하기에 불편한 구조를 가 지고 있었다. 그 이유로 학자들 간에 첨성대의 역할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1960년대 과학사학자 전상운은 첨성대의 천문대 역할에 문제를 지적하 였다. 첨성대 자체가 해시계의 역할을 하는 규표(圭表)라는 주장을 하였 다. 첨성대는 필요에 따라 관측 활동을 하고, 동시에 규표의 역할을 한 다 목적 관측대였다고 본 것이다. ◀ 해시계 규표 1970년대 이후 역사학자 이용범은 첨성대를 천문 관측과는 상관없는 불교 의 제단이라고 보았다. 첨성대의 형태가 불교에서 부처님이 있는 가장 높은 산을 의미하는 수미산을 닮았기 때문이다. ◀ 불교 수미산 물리학자 남천우, 천문학자 나일성과 유경로 등은 첨성대가 충분히 관측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 었다고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1미터 사방의 창문은 출입이 불편할 정도로 작지 않고, 첨성대 내부의 가로질러 있는 장대석들 은 관측자가 쉽게 오르내릴 수 있으며, 정상의 넓이는 관측 활동을 하기에 충분하다.’ 과학사학자 박성래는 천문대설과 제단설을 절충하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삼국사기』에서 신 라인들이 제사를 지냈던 자리에 첨성대를 세웠다는 사실을 찾아내고, 좀 더 넓은 뜻의 천문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첨성대는 고대의 제례에서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농업 신을 숭 배하는 영성제가 시행되었던 곳에 세워졌다. 그 후 중국의 천문학과 역산학이 수용되면서 보다 천문학적인 기능을 갖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림 22-3 경주 첨성대 위·아래 기단은 정사각형이고, 몸체는 원통형으로 천원지방을 반영한 형태이 다. 몸체는 362개의 벽돌을 사용하여 27단까지 쌓았는데, 362개의 돌은 기단석과 합쳐 1년을 의미하고, 27 단의 석축은 선덕 여왕이 제27대임을 상징하거나 아래 기단석과 함께 28수 별자리를 나타낸다는 설이 있다. 22. 한국의 전통 과학 189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89 2018-08-31 오후 4:27:19 2 고려 시대, 인쇄술의 발전을 이어 가다 고려의 과학기술은 신라의 과학기술 전통을 계승 가르쳐 줘! 하고, 중국 송나라의 영향을 받아 발전하였다. 고려 생각해 보고! 의 대표적인 과학기술은 목판 인쇄술과 금속 활자 인쇄술이다. 중국이 인쇄술을 4대 발명품으로 내세우지만 활 판 인쇄술만은 우리가 중국보다 앞서 있었다. 고려 목판 인쇄-팔만대장경을 제작하다 팔만대장경의 크기와 가치 경판의 크기는 가로 70cm 안팎, 세로 24cm 안팎, 두께 2.6~4cm, 무게 3~4kg이며, 판 수는 81,258장이다. 수천만 개의 글자가 오자ㆍ탈자 없이 모두 고르고 정밀하며, 현존 대장경 중 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와 내용의 완벽 함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유 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통일 신라 시대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제작했던 인쇄 기술이 고려 시대로 이어졌 다. 고려의 목판 인쇄는 상류 귀족층의 취향을 충족시키기 위한 동기에서 비롯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불교의 힘으로 국난을 극복하기 위한 종교적 기원에서 이루어졌다. 고려는 외적의 침입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불경을 목판에 새기는 대장경 사업을 대 대적으로 벌였다. 현재 해인사에 보관된 ‘고려대장경’은 현종 때 1차로 새긴 대장경이 1232년 몽고군의 침입으로 소실되자 고종 때(1237~1248년) 다시 만든 것이다. 판 수 가 8만여 장이라고 하여 ‘팔만대장경’이라고도 하는 이 고려대장경의 목판 제작 기술은 세계적 수준으로 동아시아의 20여 종 대장경 중 으뜸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장경 경판의 제작이나 보관 과정도 과학적이었다. 우선 대장경 양쪽에 편목(片木) 을 끼어 붙이고, 네 귀퉁이에 동판으로 띠를 둘렀다. 이것은 판목이 뒤틀리지 않게 하 대장경 목판(일부분) 해인사 장경판전 대장경 자체도 인류의 중요한 기록 유 산이지만, 이를 보관하기 위해 지어진 판전 또한 매우 아름답고 건축적, 과학 적 가치가 높아 1995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고, 온전하게 오랫동안 보존하기 위한 조치였다. 해인사의 장경판전은 판목의 보존고로는 아주 이상적인 건물로 만들어졌다. 모두 2 동의 장경판전은 그 구조나 건물의 위치가 통풍이 잘되고 습기가 차지 않도록 설계되 었다. 판목은 옆으로 세워서 차곡차곡 끼워 넣게 만든 판가에 보존하였다. 경판고의 구 조와 창문의 위치, 판가의 배치, 그리고 경판목을 끼워 넣은 방식까지 독창적이고 세심 한 배려가 있었다. 또한, 순도 99%의 구리를 정련하는 기술이 있어 지금까지 녹슨 못이 거의 없을 정도 그림 22-4 해인사 장경판전 로 질 좋은 못을 생산하였다. 장경판전 수다라장의 통풍창 장경판전 내부 190 Ⅴ. 동양 및 한국 과학사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90 2018-08-31 오후 4:27:22 최초의 금속 활자가 탄생하다 고려 목판 인쇄 기술의 발전에 이어 최초의 금속 활자가 탄생하였다. 그런데 청동 활자, 금속 활자의 제작은 기술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금속 활자 는 글자의 크기가 작은데다가 그 작은 크기의 활자를 똑같은 규격으로 수십 개씩 만들 어야 했다. 또한, 금속에는 먹이 잘 묻지 않고, 금속 표면에 먹을 묻혀 얇은 종이를 밀어 내면 찢어지기 일쑤였다. 고려의 장인들은 이러한 기술상의 난제를 극복하였다. 금속 활자를 제조하기 위해 고려인들이 새로 찾아낸 방법은 해감 모래 거푸집으로 청동을 부어 만드는 기술이다. 고려의 기술자들은 해감 모래 거푸집을 발명하였고, 금 속 활자를 써서 인쇄를 하는 데 알맞은 유성 잉크 즉, 인쇄용 기름먹을 만들어 냈다. 드디어 1234년 고종 21년에 처음으로 금속 활자로 된 책 『상정고금예문』이 제작되 해감 모래 거푸집 방법 해감한 갯벌 모래를 체로 걸러 고운 입 자로 거푸집을 채우는 방법이다. 금속 거푸집이 나오기 전까지 모래 거푸집 이 가장 유용한 금속 활자 거푸집으로 인정되었다. 었다. 『상정고금예문』 50권은 만들어졌다는 기록은 있으나 현재 전해지는 것은 없다. 이보다 150여 년 후 1377년에 간행된 『직지심체요절』이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직지심체요절』 금속 활자 인쇄본으로 남아 있다. 『직지심체요절』은 구한말에 프랑스 대사관에 와 있던 모리스 쿠랑이 지은 책 『한국서 지』에 수록되어 그 존재가 알려졌다. 그 후 1972년 세계 도서의 해를 맞이하여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연 전시회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직지심체요절』은 1450년쯤에 나온 독 일의 구텐베르크의 금속 활자 인쇄보다 수십 년은 앞선 것이다. 한국은 『무구정광대다 라니경』과 『직지심체요절』로 목판 인쇄술과 금속 활자에서 세계 최초를 기록하고 있다. 우왕 3년(1377) 청주의 흥덕사에서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조상들의 우수한 인쇄술과 기록 문화 우리나라의 다양한 인쇄물들은 단순히 불교와 같은 종교나 인쇄술이라는 기술에만 힘입었던 것이 아니라, 사소한 것들까지 꼼꼼하게 기록하여 남기는 우리 조상들의 기록 문화가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소중한 기록 문화들을 디지털 문화로 이어 가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조선왕조 실록』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왕조의 시조인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 472년간(1392~1863) 의 역사를 연월일 순서에 따라 편년체로 기록한 책이다. 총 1,893권 888책으로 되어 있는 오래되고 방대한 양의 역사서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현재 모든 기록이 국사편찬위원회에 의해 전산화되어 인터넷을 통해 편하게 검색해 볼 수 있다. 그 옛날 목판 인쇄와 금속 활자로 면면히 이어온 우리 조상들의 기록 문화를 21세기의 우리는 디 그림 22-5 조선 시대 때 활자를 만들어 책을 찍던 주자소 지털 가상 세계 속에서 이어 가고 있다.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조선 시대의 신기한 자연 현상 관찰 기록에 대해 알아보자. 우 리 조상들이 남긴 자연에 대한 생각은 어떠했을 까? 예시) 혜성: 태종실록 3권, 태종 2년 2월 5일 무오 2번째 기사 -‘혜성의 꼬리가 매우 길다. 젊고 유능한 사람에게 천문과 지리를 가르치게 하다.’ *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 http://sillok.history.go.kr/main/main.do 22. 한국의 전통 과학 191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91 2018-08-31 오후 4:27:23 고려의 금속 활자는 왜 서양과 같은 인쇄술 혁명을 일으키지 못했을까 인쇄술이란 책을 인쇄하는 기술을 말한다. 인쇄술에는 문자와 책, 지식 등의 다양한 문화적 요소가 관련되어 있다. 고려의 활자와 서양 활자는 문자 면에서 차이가 있었다. 라틴어를 쓰는 서양은 알파벳 한자는 10만자나 되니 돈이 너무 많이 들어! 26자가 기본 문자인데, 고려 시대에 쓰던 한자의 수는 10만자가 넘는다. 알파벳은 글자 의 모양이 단순하지만 한자는 크고 복잡해서 활자를 만드는 데 구리가 더 많이 필요하 다. 따라서 하나의 책을 찍는 데 감당해야 할 경제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알파벳은 26자라서 비용이 적게 드니 얼마든지……. 그림 22-6 고려 활자와 서양 활자의 차이 고려 시대에 금속 활자를 만들어 인쇄한 곳은 대부분 사찰이었다. 넓은 땅과 수많은 신자를 거느린 부유한 사찰에서 금속 활자를 만들 수 있었다. 고려 시대의 『상정고금예 문』과 같이 금속 활자로 찍은 책은 수십 권에 불과하였다. 또 고려 시대의 인쇄술은 사찰과 정부가 보유한 고급 기술이어서 민간에 전해지지 않 았다. 금속 활자는 희귀한 물건이었고, 몇몇 인쇄된 책이 남겨졌을 뿐이다. 즉, 민간인에 게 지식을 보급하는 일로 연결되지 못했던 것이다. 반면에 서양의 인쇄술은 비용이 저렴하고, 민간인도 인쇄 기술을 쉽게 배우고 소유할 수 있었으므로 유럽의 각 지역에 널리 보급되었다. 서양의 인쇄술은 수많은 책을 찍어내면서 지식의 확산에 기여하였다. 또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와 종교 개혁과 같은 시대적 조류에 합류하였다. 따라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지식 독점을 해체하고 유럽 중세 사회를 변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지만 고려의 인쇄술은 그러한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그림 22-7 인쇄술의 발달과 지식의 확산 우리만 볼거니까 많이 찍을 필요도 없어. 책을 많이 찍으니 지식이 금방 퍼지네. 돈이 많은 우리나 책을 인쇄하지……. 고려 서양 192 Ⅴ. 동양 및 한국 과학사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92 2018-08-31 오후 4:27:25 3 조선의 세종 시대, 독자적인 과학기술 발전을 이루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개국 직후 「천상열 태조 때의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 次分野地圖)」 차분야지도」라는 천문도를 만들었다. 이 는 조선 건국이 천명에 따른 행위임을 널 리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조선은 불교를 숭상했던 고려와는 달리 유교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았다. 유 교에서는 군주가 백성을 잘 다스리려면 천문 역법을 비롯한 과학기술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유교적 이상 정치를 추구하였던 세종은 문물제도를 정 태조 4년(1395)에 제작된 가로 122.8cm, 세로 200.9cm, 두께 11.8cm의 석각 천문도이다. 국보 제228호로 지정되어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비하여 조선 왕조의 기틀을 탄탄히 다지 고자 하였고, 이 때문에 천문학, 의학, 농 학 등 과학기술이 발전할 수 있었다. 조선의 전통 과학은 이렇게 시대적인 필요에 의해 그 발전의 기틀이 만들어 졌다. 그림 22-8 「천상열차분야지도」의 탁본 조선 시대에는 많 은 「천상열차분야지도」가 만들어졌다. 숙종 때 태조의 것을 복 각한 「천상열차분야지도」는 보물 제387호로 지정되어 현재 세종대왕기념관에 보관되어 있다. 자주적인 천문 역법을 확립하다 1418년 조선의 제4대 왕이 된 세종은 유교적 이상 정치를 실현하는 과제 중 하나로 서 조선 독자적인 역법을 추구하였다. 그는 정인지를 불러 중국의 베이징이 아닌 조선의 한양에 맞는 북극 고도를 찾게 하 였다. 한양을 표준으로 조선의 시각법을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고려 때 중국에서 들어온 수시력은 매우 정교한 역법이었지만 중국의 역법을 쓰던 조 선은 종종 날짜가 어긋나는 것을 발견하였다. 중국과 한반도는 경위도의 차이가 있기 조선의 간의 제작 때문에 중국의 역법에서 일식을 예측했던 날짜가 조선에서는 맞지 않았다. 또 조선 초에 명나라의 새로운 역법인 대통력이 들어왔지만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한 조선의 천문관에게는 수학적 방법론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다. 이러한 문제점 을 간파했던 세종은 수시력과 대통력을 보완하여 조선의 경위도에 맞는 새로운 역법을 만들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에 이순지와 김담은 역법의 원리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고, 정인지와 정초는 천문 고전 자료를 바탕으로 천문 관측기구인 간의 제작을 추진하였다. 이 시기에 대간의를 비롯해서 소간의, 규표, 혼천의, 혼상, 앙부일구, 정남일구, 일성정 시의, 자격루, 옥루 등 다양한 관측기구가 만들어졌다. 이천과 장영실 등의 간의 제작 팀은 먼 저 목간의를 만들어 한양의 북극 고도 를 확인하고 본격적인 천문 관측기구 의 제작에 돌입하였다. 구리로 주조된 대간의를 만드는 데에만 7년이 걸리는 대규모적인 국가 사업이었다. 22. 한국의 전통 과학 193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93 2018-08-31 오후 4:27:25 앙부일구 세종 때 제작 된 해시계이다. 정남일구 세종 때 만든 해시계 중 가장 정 교하며, 지남침을 쓰지 않고도 남북 방향 을 정할 수 있는 구조이다. 일성정시의 낮과 밤의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천문 시계이다. 자격루 자동으로 시보를 알려 주는 물시계이다. 국보 제229호로 지정 되어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있다. 그림 22-9 세종 시대의 다양한 시계 칠정산(七政算) 태양, 달,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의 일곱 개 천체인 칠정(七政)의 운행 을 계산하는 방법을 일컫는다. 이들의 연구 결과로 드디어 1442년에 조선의 독자적 역법서인 『칠정산내・외편』이 만 들어졌다. 『칠정산내・외편』을 통해 이루어진 역법의 개정은 두 가지 작업을 동시에 진행 시킨 결과였다. 먼저 각종 천문 관측기구를 제작하고, 수많은 관측 데이터를 모았다. 그리 고 계산법에 능통한 전문 관리를 키워서 20여 년 동안을 작업한 대규모 학술 연구였다.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 『칠정산내편』은 중국의 가장 정확한 역법이었던 수시력을 바탕으로 조선의 한양에서 관측된 자료를 맞추어 새로 작성된 것이다.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수시력을 완전히 통달하여 조선의 역법으로 응용한 업적을 담고 있다. 『칠정산외편』은 이슬람 역법인 회회력을 이순지와 김담이 직접 한역본으로 정리한 것 이다. 조선의 천문관들은 명나라에서 보내 온 회회력에 착오가 많은 것을 바로잡고 이 슬람 역법까지 섭렵하였다. 회회력(回回曆) 고대 그리스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 게스트』를 토대로 만든 역법이다. 세종 이래 200여 년 동안 조선에서 달력을 만들고 일·월식을 계산하는 작업은 『칠 정산내·외편』을 표준으로 삼았다. 『칠정산내·외편』은 조선이 중국과 이슬람 세계의 천문학 성과를 수용하면서도 철저하게 자기 것으로 소화해 낸 과학적 성취였다. 당시 중국은 세계의 중심이었고, 대부분의 선진 문물은 중국으로부터 생산되어 주변 국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세종은 중국의 최신 지식을 검토하고 조선에 맞는 독자 적인 과학기술을 추구하였다. 세종의 이러한 생각은 천문학 분야뿐만 아니라 농업, 의 학, 음악 등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194 Ⅴ. 동양 및 한국 과학사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94 2018-08-31 오후 4:27:26 아악을 정비하고, 음높이 단위계를 표준화하다 소리가 한 음 높구나. 이제야 제대로 소리를 내는구나. 먹줄이 덜 갈렸네. 임금님은 절대 음감이셔! 아악은 조선 시대에 제사와 조회 등 국가 의례에 사용하던 음악이다. 아악 정비 사업 은 천지, 조상, 성현에 예를 갖춰 공경하는 마음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먼저 아 악 정비를 위한 노력은 박연을 중심으로 율관을 제작하는 일이었다. 일정한 기준 음이 되는 황종 율관이 만들어지면 그것을 바탕으로 나머지 율관의 음 높이를 찾을 수 있었다. 율관을 제작한 다음에는 그것에 맞추어 편경과 같은 아악기의 음높이를 정할 수 있었다. 편경은 제작 과정에서 단 하나의 경돌만 깨져도 문제가 발생하고 연주가 어려운 악 황종 율관 기준 음인 황종 음을 내는 관을 말한다. 박연은 해주 지역에서 생산된 기장의 낱알이 1,200개 정도 들어가는 관을 황종 율관으로 삼았다. 황종 율관을 기 준으로 12율관이 제작되었다. 기이다. 이러한 편경을 국내에서 만들 수 없었던 것은 좋은 소리의 경돌을 발견하지 못 황종 율관 했기 때문이다. 박연은 각고의 노력 끝에 경기도 남양주에서 좋은 경돌을 찾아냈다. 이 렇게 만든 편경 소리는 중국에서 수입된 것보다 월등히 좋았다고 한다. 세종의 아악 정비는 이렇게 중국 것을 조선식으로 재해석해 받아들이는 방식이었다. 또 세종은 국가 의례 음악 중에 「여민락」을 직접 만들었다. 「여민락」의 노랫말은 조선 의 개국을 찬미한 악장 「용비어천가」에서 가져왔다. 세종이 만든 음악의 제목을 「여민락」 이라고 한 것은 백성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을 음악에 담았기 때문이다. 12율관 조선의 기후와 토양에 맞는 농업서를 정비하다 고려 시대에는 원나라의 농법서인 『농상집요』를 쓰고 있었는데 이것은 조선의 풍토에 맞지 않고 백 성들이 직접 사용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세종은 정 초에게 새로운 농사 참고서를 만들도록 지시하였다. 정초는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농부의 경험과 기술 을 수집하고 선별하여 누구나 알기 쉽게 정리한 농 『농사직설(農事直說)』 법대전을 써냈다. 이렇게 신토불이 정신과 조선에 맞 는 농사법을 개발하려는 노력에서 세종 11년 『농사 직설』이 탄생하였다. 그림 22-10 김홍도의 「논갈이」 조선 시대 의 여러 농기구들을 보여 준다.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농서로 조선의 실정에 맞는 영농 지침서 역할을 한 책 이다. 거름 만들기, 종자 구별, 농기구, 다양한 농법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22. 한국의 전통 과학 195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95 2018-08-31 오후 4:27:29 의학 분야에서 향약(鄕藥)의 가치를 확인하다 세종 때 편찬된 의학 관련 서적 『향약 채취월령(鄕藥採取月令)』 백성들에게 쉽게 향약을 보급하기 위해 여러 가지 약용 식물들을 언제 어떻게 기르고 수확하는지 설명한 책이다. 우리나라는 삼국 시대부터 중국의 의학서를 받아들여 고려 후기에 이르기까지 중국 의 의학이 대세를 이루었다. 그래서 보통 약재하면 중국의 것인 당약(唐藥)을 선호하였 는데, 세종은 이러한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향약 장려 정책을 펼쳤다. 세종은 고려 중엽부터 나온 향약 관련 책들을 증보하여 『향약집성방』과 『향약제생집 성방』을 편찬하였다. 조선의 향약이 단지 값싼 중국 약재의 대용품이 아니라 약리적으 로도 조선인에게 적합하고 우수하다는 것을 널리 알리기 위한 작업이었다. 『동의보감(東醫寶鑑)』 허준이 완성한 조선 시대의 백과사전 식 의학서로 총 25권으로 이루어져 있 다. 이 책은 현재까지 우리나라 최고의 한방 의서로 인정받고 있다. 2009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기록유산으로 지 정되었다. 또 세종은 중국 고대부터 원나라 때까지의 의학 서적을 총망라한 『의방유취』를 펴냈 다. 이 책은 규모면에서 당시 세계 최대의 의학책이라고 할 만큼 방대했으며, 내용 면에 서도 동아시아 의학자들 사이에서 손꼽히는 저작이었다. 『의방유취』가 있어서 『동의보 감』이 나왔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동양 의학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과학적 문자 체계를 가진 한글을 창제하다 세종 때에는 세계가 인정하는 과학적 언어, 한글이 탄생하였다. 세종은 1443년 중국 과 다른 우리나라의 독자적인 글자, 『훈민정음』을 만들어 반포하였다. 『훈민정음』의 첫 문구는 “나라의 말소리가 중국과 달라 문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 므로”로 시작된다. 여기에서 중국과 다른 것은 문법이나 용어가 아니고 ‘읽는 소리’였 다. 같은 한자를 읽는 데 중국과 다르고 한자를 읽는 표준적 방식이 없어 어려움을 겪 었기 때문이다.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은 한자의 음을 정확히 표기할 수 있으면서 쉽게 『훈민정음』(해례본) 우리말을 표현할 수 있는 문자 체계를 염두에 두고 연구를 거듭하였다. 마침내 모음 10개와 자음 14개를 조합해서 11,000가지 이상의 음을 낼 수 있는 한 글을 만들어 냈다. 일본어는 300가지, 중국어는 400가지 음을 내는 것과 비교하면 한 글의 음성적 표현 능력은 단연 세계 최고였다. 세종은 현대 언어학에서 말하는 문자의 장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천, 지, 인을 상징하는 · ‘ , ㅡ, ㅣ’로 복잡한 모음을 모두 표현하였다. 한글은 가장 간단한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인류사에서 유일하게 언 어의 창제 과정을 밝힌 『훈민정음』(해 례본)의 가치를 세계가 인정한 것이다. 것으로 가장 많은 것을 표현하는 과학적인 문자 체계로서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훈민정음』에는 한글의 원리와 사용법까지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한글이 얼마나 과학 적인 문자인가를 유감없이 보여 주는 것이다. 196 Ⅴ. 동양 및 한국 과학사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96 2018-08-31 오후 4:27:30 측우기는 자랑스러운 한국의 과학 문화재이다 측우기는 강우량의 측정법을 개선하기 위해 세종 때에 만든 원통형 우량계이다. 이 측우기가 발명되면서 관측 제도가 전국적으로 시행되었다. 조선 초에 측우기의 제작 측우기 깊이 2자(약 42.5cm), 지름 8치(약 17cm)의 원통형 우량계이다. 에서부터 측정 방법의 제도화, 관측 결과의 기록과 보고 등 완벽한 제도가 확립되었다. 15세기에 이런 과학적인 제도가 전국적으로 시행된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탐구 활동 한국의 과학 문화재 측우기 조사 토론 1441년 8월 18일 『세종실록』에 측우기의 발명이 공식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이 기록에 처음으로 측 우기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빗물을 받아서 강우량을 측정하는 기기를 측우기라고 부르기로 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중국인들은 이 측우기가 자신들의 발명품일 뿐 아니라 지금 한국에 남아 있는 것 도 자신들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측우기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고 중국인들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는 글을 써 보자. 그에 대한 반박 중국인들의 주장 받침대에 건륭 경인년 5월이라 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건륭 은 청나라 황제의 이름을 사용 한 연호이다. 남송 시대 수학자 지구소가 쓴 수학책 『수서구장(數書九章)』의 ‘천지측우(天池測雨)’라는 문제 편에 측우기와 관련된 서술이 있 다. 결과 및 정리 1. 반박 글을 토대로 결론을 도출해 보자. 2. 한국의 전통 과학기술에서 측우기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토의해 보자. 정리하기 세종 때 과학기술의 독자성은 어떻게 성취되었는지 다음 단어들을 넣어 정리해 보자. 천문 역법 칠정산내·외편 아악 정비 농사직설 향약 훈민정음 생각 넓히기 세종 때의 과학기술을 살펴보면서 한 시대를 이끄 는 지도자의 리더십, 정부 정책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 보자. 22. 한국의 전통 과학 197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97 2018-08-31 오후 4:27:30 23 서양 근대 과학의 수용 학 습 목 표 ㅣ 중국, 일본, 한국에서의 서양 근대 과학의 수용 과정을 설명할 수 있다. 서양 문물을 들고 중국으로 간 마테오 리치 17세기에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는 중국의 명나라 지배층들을 만날 기회를 얻었다. 마테오 리치는 유 럽에서 가져온 서양 문물들을 그들 앞에 내놓았다. 지배층들은 마테오 리치가 내놓은 자명종과 망원경, 프리 즘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윽고 이들은 서양 문명이 중국보다 앞섰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별거 아닙니다. 세계의 중심은 우린데. 자존심 상해! 언제 이렇게 앞섰지? 예수회 선교사였던 마테오 리치는 황제에게 전해진 자명종을 조작하고 수리하기 위해 궁궐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는 베이징에 머무르는 동안 중국 지배층에 대한 선교 사업에 집중하였다. 예수회 선교사들은 현지의 토착 문화를 존중하고 지배층을 먼저 접촉하는 선교 정책을 채택하고 있었다. 또한, 서양의 진보된 과학 문물을 소개하면서 기독교의 교리와 서양의 발달된 문명이 서로 뗄 수 없는 관계 임을 보여 주는 간접 선교 방법도 사용하였다. 이를 위해 예수회 선교사들은 유럽 최고의 인문 과학 분야의 훈련을 받고 선교사로 파견되었다. 마테오 리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마테오 리치를 비롯한 선교사의 등장으로 중국은 물론 동아시아의 지식인층까지 동요하기 시작하였다. 예수 회 선교사들의 손에 들려 있었던 것들은 그저 신기한 서양 물건이 아니었다. 자명종이나 망원경과 같은 도구, 책, 세계 지도에는 중화적 세계관에 도전하는 새로운 사상이 들어 있었다. 바로 서양 과학기술 문명이었다. 서양 과학기술을 처음 접한 동아시아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서양의 과학기술이 동 양에 수용되는 과정이 어떠했으면 좋았을지 생각해 보자. 198 Ⅴ. 동양 및 한국 과학사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98 2018-08-31 오후 4:27:31 1 예수회 선교사가 중국에 서양 과학기술을 전하다 16, 17세기 예수회는 유럽에서 약화된 가톨릭 의 교세를 만회하기 위해 해외 선교 활동에 눈길 을 돌렸다. 1601년 자명종을 들고 명나라 지배층 들을 만난 마테오 리치도 예수회의 일원이었다. 마테오 리치는 1582년 동아시아 세계를 포교하 세계의 중심은 중국이지…. 글쎄요. 지구는 둥글지요. 려는 야심을 품고 마카오에 도착했는데 최초의 서 양 선교사로 베이징에 입성하기까지 19년의 시간 이 걸렸다. 마테오 리치, 중국인의 중화적 자부심을 무너뜨리다 당시 세계 최강국 중국은 자신들의 유교 문화만이 오직 ‘문명’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마테오 리치는 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중국어를 열심히 배우고 유교 경전을 읽으며, 중국 문화를 철저히 연구하였다. 그는 유학자의 옷을 입고 유교와 천주교의 윤리가 서 로 비슷하다고 강조하며 당시 지배층인 사대부들의 거부감을 최대한 줄이려고 애썼다. 그리고 사대부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서양의 과학기술을 선교의 수단으로 이용 하였다. 유럽에서 가져온 자명종, 망원경, 프리즘 등의 기구는 사대부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 분하였다. 이렇게 자신의 입지를 다진 마테오 리치는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중화사 상을 깨기 위해 세계 지도를 이용하였다. 1602년 그가 제작한 「곤여만국전도」는 땅은 네모지고, 중국이 세상에서 가장 큰 나 라라고 알고 있던 중국 사대부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 지도에는 땅이 둥글고 중국 보다 더 넓은 세계가 그려져 있었다. 마테오 리치의 세계 지도는 그 이전의 동아시아 세 계에서 볼 수 없었던 16세기 말 유럽의 최신 지도였다. 「곤여만국전도」는 중국에서 폭 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조선과 일본에까지 전해졌다. 선교사였던 마테오 리치가 서양 지리학이 총망라된 지도를 제작할 수 있었던 까닭 그는 로마 대학에서 천문학, 지리학, 수학 등을 폭넓게 공부하였으며, 동아 시아 선교를 위해 떠난 이후 십여 종이 나 되는 세계 지도를 직접 제작한 경험 을 가지고 있었다. 그림 23-1 중국판 「곤여만국전도(坤與萬國全圖)」 23. 서양 근대 과학의 수용 199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199 2018-08-31 오후 4:27:33 마테오 리치의 한역 서학서는 한자 문화권에 영향을 주다 마테오 리치는 중국어와 한문을 익힌 실력으로 중국의 지 식인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한문 번역서를 편찬하였다. 한 역 서학서라고 불리는 이 책들은 가톨릭을 소개하는 『천주실 의』를 비롯하여, 기하학과 지리학, 천문학에 관련된 서양 과 학책들이었다. 서양 과학을 번역한 한역 서학서 마테오 리치는 서광계(徐光啓; 1562~ 1633), 이지조(李之藻; 1571~1630) 와 함께 유클리드의 『기하원본(幾何原 本)』을 번역하고, 서양의 수학을 소개 한 『동문산지(同文算指)』를 출간하였다. 그리고 『측량법의(測量法義)』, 『구고 의(句股義)』, 『환용교의(圜容較義)』, 『혼 개통헌도설(渾蓋通憲圖說)』, 『경천설 (經天說)』, 『만국여도(萬國輿圖)』, 『건 곤체의(乾坤體義)』, 『측량이동(測量異 同)』 등도 펴냈다. 동양에 서양 과학이 전파되는 데 있어 마테오 리치 한역 서학서는 세계 지도만큼 파급력이 있었다. 유교적 한자 문화권에서는 어디 든지 내용이 전달될 수 있었기 때문이 다. 특히 예수회 선교사들을 만날 수 없 었던 조선의 지식인들에게는 서양의 과 그림 23-2 마테오 리치의 한역 서학서 학을 배울 수 있는 좋은 자료였다. 서양 천문학의 방법으로 계산된 시헌력을 도입하다 마테오 리치는 그동안 친분을 다져 놓은 지배층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중국 의 황실에 전문 과학자 출신의 선교사들을 파견해 달라고 예수회 본부에 요청하였다. 시헌력의 해설서 『서양신법역서』 파견된 선교사들은 마테오 리치가 죽은 후에도 당시의 서양 과학 문물을 중국인들에 게 전하였다. 이들 중 한 명인 아담 샬은 국립 천문대의 실권을 장악하여 중국 역법 사 상 최초로 서양 천문학을 적용한 ‘시헌력’을 채택하였다. 그런데 서양 선교사가 만든 시헌력을 중국의 역법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중국인들에 게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우주 구조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중국의 천문학 자들은 서양 천문학에서 소개된 프톨레마이오스나 코페르니쿠스의 우주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아담 샬은 시헌력의 해설서로 서양 천 문학 지식을 모두 모아서 『서양신법역 서(西洋新法曆書)』를 편찬하였다. 당시 유럽에서는 우주론을 둘러싸고 종교 적 갈등이 벌어지고, 과학 혁명으로 이어지 는 시기에 있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새로 운 과학 혁명의 결과물을 접할 수 없었다. 코 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설을 가르칠 수 없었 던 예수회 선교사들은 왜곡된 형태의 우주론 을 중국에 전하였다. 중국인들은 일관성이 결여된 서양 천문학을 낮게 평가하였고 공들여서 배울 가치가 없다 고 생각하였다. 애석하게도 서양 언어를 배워 서 직접 과학책을 읽고 소화하려는 중국인은 없었다. 그림 23-3 서양 문물을 중국에 전한 아담 샬 200 Ⅴ. 동양 및 한국 과학사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00 2018-08-31 오후 4:27:33 2 일본은 난학으로 서양의 근대 과학을 배우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의 동아시아 삼국 중에서 예수회 선교사가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일본이었다. 마테오 리치가 중국에 들어간 때보다 34년이나 앞서 사비에르가 일 본에서 포교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 시기 유럽의 종교 전쟁과 식민지 쟁탈전은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 과정에 서 네덜란드는 일본에서 유럽과 아시아의 무역 독점권을 따냈다. 신교도였던 네덜란드 는 일본의 봉건 영주였던 막부를 부추겨 예수회 선교사와 천주교 신자들을 탄압하고, 난학 에도 시대에 네덜란드를 통해 들어온 유럽의 학문 등을 통칭하는 말이다. 난 학이라는 말은 네덜란드를 뜻하는 화 란의 난(蘭)에서 따왔다. 다른 유럽 국가들과의 교역을 막았다. 하지만 유럽 세력에 위협을 느낀 일본 막부는 네 덜란드와의 무역 활동도 엄격히 통제하였다. 네덜란드인들을 나가사키항의 인공 섬인 데지마로 쫓아내고, 그곳에서만 무역을 허락하였다. 일본 사정이 알려지는 것을 막으려고 네덜란드인들이 일본어를 배우는 것조차 금지 했다. 대신에 의사소통을 위해 ‘네덜란드 통역사’라는 번역 전문가 집단을 키웠다. 이들 일본 번역서 『서양의 놀라운 기계』 (1854년) 은 네덜란드어로 쓰인 서양 과학기술에 관한 책들을 일본의 지식인들에게 알렸다. 통역관이었던 모토키 료헤이는 서양의 지리서와 천문학 책을 번역하였는데, 그중에서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설을 소개하는 책들도 있었다. 서양의 과학책을 접한 일본인 들은 의학과 천문학 등 실용적인 분야에 관심을 보였다. 일본인 의사 스기타 겐파쿠는 서양 해부학 책을 일본어로 번역하여 『해체신서』를 펴냈다. 통역관이 아닌 의사나 천문 학자가 직접 나서서 서양 과학책을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네덜란드어로 된 책을 통해서 서양 과학을 배우는 난학, 혹은 양학이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퍼져 나갔다. 천문학을 비롯한 의 학, 생물학, 박물학 등은 네덜란드 번역본으 로 널리 알려졌다. 이러한 난학의 학풍은 서 양 과학기술을 일본의 것으로 소화하고 근대 화를 이루는 데 좋은 토양을 제공하였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설은 일본 중세 봉건사상에 영향을 주었을까? 18세기 동아시아에 처음으로 소개된 태양 중심설을 불온한 사상이라고 보 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일본의 막부 당 국은 태양 중심설을 천주교보다 위협 적인 존재로 여기지 않았다. 그림 23-4 일본 번역서 『해체신서』(1774년) 탐구 활동 일본에서의 서양 근대 과학의 수용 토의 동양에서 서양 과학기술의 수용은 근대화와 산업화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일본 은 중국이나 한국과 달리 주체적으로 근대화에 성공했는데, 서양 과학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중국이나 한국과 차이가 있었다. 과정 본의 막부 시대에 네덜란드 학문인 난학이 발전한 배경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1. 일 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일본에 수용되는 과정은 어떠했을지 유럽의 경우와 비 2. 코 교하여 이야기해 보자. 데지마섬에서 망원경으로 관측하는 네덜란드인 23. 서양 근대 과학의 수용 201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01 2018-08-31 오후 4:27:34 3 조선의 전통 과학과 서양 과학기술이 융화되다 동아시아의 조그만 나라 조선은 서양의 시선을 받기에 지리적으로 후미진 곳에 있었다. 16세기 말부터 중국과 일본에는 끊임없이 서양 선교사들이 드나들며 서양 과학기술을 전했지만 조선에는 19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서양 선교사가 찾아온 적이 없었다. 조선에는 서양 사람보다 서양 책이 먼저 도착하였다. 마테오 리치의 세계 지도 「곤여만국전도」는 제작된 이듬해인 1603년에 조선에 들어왔다. 그리고 한참 지나 서야 정두원이 중국 덩저우에서 선교사 로드리게스를 만났다. 예수회 선교사들이 포교를 위해 준 망원경, 서양식 소총, 한역 서학서를 보고 조선인들은 서양 과학의 수준에 감탄하였다. 동양의 코페르니쿠스 홍대용, 무한 우주론을 주장하다 그림 23-5 조선인이 중국에서 만난 이국인을 그린 「여지도(輿地圖)」 왼쪽 위부터 시계 방 향으로 태국인, 몽고인, 서양인, 러시아인 순이 다.(중앙 박물관 소장)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와 군신 관계를 체결한 후, 조선에서는 청의 역법 ‘시헌력’ 을 반포하였다. 서양 천문학이 반영된 중국의 역법이 조선에 전해진 것이었다. 하 지만 조선의 천문학자들은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중국에서 전해 온 서 양식 역법을 긴 시간에 걸쳐 터득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은 중국보다 서양 과학을 배우기 훨씬 열악한 환경이었다. 하지만 조선의 유학 자들 중에서는 중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인 우주론을 주장한 이들이 있었다. 각자가 자기 세계의 중심이지. 김석문은 동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지전설을 주장하였다. 그는 지구가 둥글다는 서양 천 문학을 받아들이고, 주희가 말한 기의 회전을 지구에 적용해서 지구가 하루에 한 번씩 홍대용 회전한다는 지전설을 내놓았다. 동양의 코페르니쿠스라고 불리는 홍대용은 지전설을 더 확장하였다. 그는 그의 저서 인 『의산문답』에서 지구가 둥근데, 그 표면 위에서 사람들이 떨어지지 않으려면 기의 회전에 의한 힘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지구의 자전이 중력과 같은 힘을 만든다 『의산문답』 우주론의 숨은 의미 넓은 우주에서 지구가 중심이 아닌 것 처럼 세계에서 중국이 중심이 아니며 얼마든지 조선도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고 추측하기도 하였다. 또 홍대용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무한 우주론을 펼쳤다. 무한한 우주에서 지구를 포함한 수많은 별들은 제각기 자기 세계의 중심일 수 있다고 보았다. 홍대용은 근대 과학의 관점에서 자연 세계를 바라보는 엄청난 주장을 했지만 사회적 반향은 미미하였다. 서양과 달리 동 양 사회의 유교 사상에서 우주론과 자연 인식 체계는 그 다지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런 지적 풍토 의 조선 사회에서 김석문과 홍대용의 지전설이 서양처럼 과학 혁명의 씨앗으로 작용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 한 일이었다. 그림 23-6 홍대용이 만든 혼천의 202 Ⅴ. 동양 및 한국 과학사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02 2018-08-31 오후 4:27:34 동아시아 삼국에서 서양 과학의 전래 양상은 달랐다 서양 과학이 동아시아 삼국에 전해졌을 때 각국마다 서양의 과학기술이 전래되는 양 상이 상당히 달랐다. 특히 지리적 위치는 서양 과학 전래의 중요한 변수였다. 중국의 그 늘에 가려져 있었던 우리나라는 서양 선교사의 만남조차 19세기에 가서야 이루어졌다. 중국과 일본에 비하면 300년이나 늦은 결과였다. 하지만 지적 풍토가 다르면 같은 씨앗이라도 다른 열매를 맺는다. 세계의 모든 전통 과학이 서양의 근대 과학과 같은 방식으로 발전한다고 보는 것은 유럽 중심주의적 사 고방식이다. 조선 사회로 흘러들어온 서양 과학도 유교 문화의 성리학적 세계관과 융합하면서 조 선이 처한 현실에서 맞게 변형되었다. 아쉬운 것은 서양 과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러 가지 토양이 마련되지 못했던 점이다. 탐구 활동 동양에서의 근대 과학의 형성 과정 조사 토론 17~18세기 무렵 서양의 과학 지식들이 동양으로 전해지기 시작하였 다. 이러한 서양의 과학 지식들은 동아시아 삼국 지식인들의 학문과 사 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과정 국, 일본, 조선이 서양 근대 과학을 수용하는 과정에서의 공통점과 1. 중 차이점은 무엇인지 자료를 찾아보고, 서로 비교해 보자. 양 근대 과학의 수용 과정에서 중국, 일본, 조선은 다음과 같은 역사 2. 서 적인 사건을 겪었다. 중국 일본 조선 1842년, 난징에서 영국인들 1854년, 가니가와에서 미국 1876년, 강화도에서 일본인 에게 굴욕적인 불평등 조약 인들에게 불평등 조약을 강 들에게 불평등 조약을 강요 을 강요당하였다. 요당하였다. 당하였다. 동아시아 삼국이 제국주의 침략을 받지 않고 자생적으로 근대 과학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해 토론해 보자. 정리하기 동아시아 삼국은 전통적인 자연 인식 체계와 서양 과 학기술을 어떻게 융화시켜 나갔는지 다음 단어들을 넣어 정리해 생각 넓히기 서양의 과학기술은 대표적인 외래문화이다. 우리가 서양의 과학기술을 받아들인 지 100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 앞으 보자. 로 우리가 가진 전통 과학 사상의 좋은 점은 살리면서 서양 과학 마테오 리치 예수회 선교사 김석문 홍대용 일본의 난학 기술을 어떻게 소화해 가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23. 서양 근대 과학의 수용 203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03 2018-08-31 오후 4:27:35 24 현대 한국 과학기술의 형성 학 습 목 표 ㅣ •현대 한국 과학기술의 성장 과정을 설명할 수 있다. •최근 세계 과학계에서의 한국 과학이 갖는 위상을 소개할 수 있다. 과학으로 민족의 힘을 키우고자 했던 과학기술자 김용관 2017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식에서 독립 운동가 5명이 호명되었다. 그중에서 우리가 잘 몰랐던 과학기술자 김용관이 포함되어 있 었다. 김용관은 한국 과학사에서 1930년대 과학 기술 대중화 운동의 기수로 알려진 사람이다. ◦◦◦, 김용관, ◦◦◦… 일제 강점기의 엄혹한 시절에 한국 과학기술 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고 사회적 운동 으로 승화한 김용관은 진정한 독립 투사였다. 김용관은 대한제국 시절에 태어나 일제의 식민지 지배 체제에서 고등 교육을 받았던 과 학기술자 1세대였다. 그는 조선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은 과학기술자로서 일제 체제에 편 입해서 안락하게 살 수 있었지만 과학 운동에 투신해서 온갖 고난을 마다하지 않는 삶을 살 았다. 조선인이 주체적으로 과학기술을 생산하자! 과학적 지식이든 기술적 발명이든 작은 것 부터 우리 힘으로 발전시키자! 김용관은 조선인이 생산하는 과학기술 즉, 발명과 기술 혁신으로 독자적인 산업화를 추 구하려고 애썼다. 그동안 한국의 역사에서 잊혔던 그의 행보가 재조명 받게 된 것은 우리 역사 교육의 방향성을 찾는 좋은 기회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역사를 배워야 하는가?’, ‘우리 역사에서 숨어 있는 진정한 영웅은 누구인가?’, ‘식민지 시대 에 진정한 과학기술의 발전은 무엇인가?’, ‘과학기술을 식민지 지배에 이용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아니면 ‘과학기술로 민족적 차별과 억압에 저항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서양 과학기술의 수용에 대한 김용관의 주체적인 입장은 역사적으로 재조명해 볼 가치가 있다. 서양의 과학기술이 무조건 좋다고 받아들이는 태도(과학주의)는 무엇이 문제일까? 204 Ⅴ. 동양 및 한국 과학사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04 2018-08-31 오후 4:27:35 1 일제 강점기(1930년대)의 과학기술 대중화 운동 개항 이후 조선은 서양 과학기술을 도입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뚜렷한 성과를 거두기 전에 일제 강 점기를 맞이하였다. 조선의 자주적 과학 운동이 필요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일제 강점기의 과학기술은 경제적으로 민족을 수탈하고, 정치적 으로 식민주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도구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30년대 조선의 과학화와 생활화를 외치는 경성의 과 학기술자들이 등장하였다. 이들은 과학기술의 발전 없이는 민족 해방이 불가능하다는 자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식민지 현실에서는 일제에 의한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공 업화가 진행될수록 식민지적 수탈만 가중될 뿐이었다. 과학기술자 들은 이러한 불평등한 식민지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절박한 심 김용관(1897~1967) 1930년대 과학기술 대중화 운동의 기수 정으로 과학 운동에 나섰다. 이 운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김용관이었다. 그는 조선인 아마추어 발명가들에게 과학을 가르치고, 발명과 특허 수속에 대한 기술 적 자문을 도와줄 조직을 구상하였다. 2년여의 노력 끝에 1924년 역사적인 ‘발명학회’ 를 창립하였다. 이후 김용관은 우리의 기술력으로 값싼 생필품을 생산하기 위해 벽돌 제조 공장을 세웠다. 그는 조선인이 생산하는 발명과 기술 혁신으로 독자적인 산업화를 추구하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한동안 침체기를 겪었던 발명학회는 발명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것을 계기로 1932년 다시 재건되었다. 그 이듬해인 1933년에 발명학회 기관지인 『과학조선』을 창 간하였고, 사업 방향을 기존의 발명 진흥 사업에서 과학 대중화 운동으로 확대하였다. 김용관은 과학기술을 조선인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대중 집회를 구상하였다. 다윈 서 거 50주년 기념일인 1934년 4월 19일을 ‘과학데이’로 정하고 이날 기념식과 강연회 등을 열었다. 과학데이의 각종 행 사마다 성황을 이루었고, 언 론의 주목도 받았다. 과학기술 대중화 운동은 거국적인 호응을 얻으면서 민족 운동으로 승화되었다. 1934년에 사회를 계몽하자 는 목표를 내걸고 민족 지도 자들이 참여한 ‘과학지식보 급회’가 발족되었다. 그림 24-1 『과학조선』 창간호(1933년) 그림 24-2 제2회 과학데이 포스터(1935년) 24. 현대 한국 과학기술의 형성 205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05 2018-08-31 오후 4:27:37 또한, 김용관은 민족의 자주적 공업화를 기술적으로 뒷받침할 기관인 ‘이화학연구소’ 의 설립을 제안하였다. 소규모 공업에 필요한 상품을 발명하는 데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가를 양성하자는 취지였다. 일부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과학 기술의 가치중립성 일제의 과학기술과 공업화도 조선 민 족에게 이익을 줄 것이라는 생각으로 독자적인 민간 연구 기관을 세울 필요 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계몽적인 과학 대중화가 우선이라는 사람들과 과학기술의 가치 중립성과 보 편성을 믿는 과학기술자들이 반대하면서 김용관의 이화학연구소 설립이 좌절되었다. 그 뒤 과학지식보급회와 『과학조선』은 일제의 탄압을 받기 시작하였다. 과학데이 행 사는 취소되고 급기야 김용관은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그가 없는 조선의 과학 운동은 쓸쓸히 역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가 서양으로부터 받아들인 20세기의 과학기술은 우리 자신이 아닌 식민지 권력 의 목적을 위해 식민지 개발의 도구로 이용되었다. 김용관은 이것을 인식하고 저항했던 것이다. 식민지 시기에 과학기술의 주체성을 자각한 과학 운동은 한국 과학기술이 나아 가야 할 방향성을 보여 주는 기억해야 할 역사이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한국 과학기술의 발전과 근대화 과정에 큰 걸림돌이었다. 서양 의 과학기술을 도입하는 중요한 시기에 식민 지배를 받은 것은 우리에게 크나큰 손실 이었으며 현재까지도 해결할 수 없는 공백으로 남았다. 식민 지배는 서양의 과학과 기 술을 우리 토양에 맞게 소화하고, 그 경험과 지식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았다. 탐구 활동 일제 강점기의 과학기술 교육의 실상 조사 토론 일부 역사학자들은 ‘식민지 근대화론’을 내세우며 일제의 과학기술 교육과 식 민지 개발이 해방 이후 한국의 경제 성장에 기여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제가 이식한 과학기술이 식민지 조선을 개발하고 한국의 근대화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과연 한국의 과학기술이 발전하였다고 할 수 있는가? 과정 1. 다음은 일제 강점기 과학 교육의 실태 중 일부를 나타낸 것이다. •해 방 전까지 식민지 조선에서 물리학을 전공하여 학사 학위를 취득한 사람은 22명 정도이다. 반면에 일본 제국 대학의 물리학과 졸업생은 1,477명이었다. • 식민지 조선에서 과학과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이공계 학교는 관립 학교 3곳, 사립 학교 2곳이다. • 사립 학교는 관립 학교나 일본인계 학교에 비해 교육 여건과 시설이 매우 열악 하였다. • 관립 학교인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와 경성광업전문학교는 뒤늦게 세워졌다. •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의 물리학과를 졸업한 조선인은 6명에 불과하였다. 위 내용을 참고로 식민지 과학 교육의 실태를 조사해 보고, 식민지 시기 과학 교육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말해 보자. 2. 1번 견해를 바탕으로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 반박해 보자. 3. 만약 일제의 강점기가 없었다면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은 어떻게 발전해 갔을지 토론하고 발표해 보자. 206 Ⅴ. 동양 및 한국 과학사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06 2018-08-31 오후 4:27:37 2 해방 이후 한국 과학기술을 재건하다 1945년 8월 15일, 국가의 주권을 되찾은 우리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되었다. 그러나 일제가 물러가고 난 직후의 상황은 매우 열악하였다. 우리는 과학 기술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제도와 과학기술 관련 기구들을 정비하고, 과학기술 인력 을 양성하며, 과학기술 정책 등을 시행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처음에 과학기술이 제도적으로 확립되는 과정에서는 과학기술에 안목을 지닌 행정가 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리고 과학기술자들의 노력과 일반인들의 우호적인 관심이 과학 기술 발전에 토양이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대 한국 과학기술의 형성 과정을 살펴보자. 1945년 해방부터 1966년까지 과학기술계와 정부는 한국의 과학기술을 진흥시키고 자 제도적 기반을 조성하면서 발전의 토대를 만들어 갔다. ● 1950년대에는 문교부 내에 과학교육국을 설치하였고, 과학기술 교육 기관이 확충되었다. ● 1960년대 초반에는 ‘제1차 기술 진흥 5개년 계획’의 수립과 기술관리국이 설치되었다. ● 1963년 「기술사법」이 제정되면서 과학기술 행정 기반과 제도가 구축되었다. ● 1966년에는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가 설립되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한국 과학기술은 기틀을 잡기 시작하여 연구 개발 이외에도 과 학기술 문화 활동의 저변을 넓혔다. ● 1967년 과학기술처의 설립으로 우리나라는 과학기술에 대한 국가적 지원 체계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 과학기술처를 중심으로 과학기술 정책이 수립되고, 대덕연구단지 건설이 시행되었다. 아울러 이공계 ● 1970년대 말에는 한국과학재단을 설립하여 기초 과학 연구를 지원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었다. 그림 24-3 한국과학기술연구소 기공 식(1966년) 대학을 특성화하여 인력 양성 체제를 구축하였다. 정부 주도의 과학기술 정책, 연구 개발 활동의 지원 등은 산업화로 이어져 경제 성장 의 뒷받침이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가시적인 성과 이면에는 권위주의 체제가 갖는 일 방적인 특혜와 독주도 있었다. 그림 24-4 현재 고리 원전 1호기 모습 국내 최초 상업용 원자로 고리 원전 1호기는 1977년에 완공되었다. 하 지만 2017년 40년 만에 가동이 영구 중 지되었다. 24. 현대 한국 과학기술의 형성 207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07 2018-08-31 오후 4:27:37 1980년대는 선진국의 기술 수준을 급속히 추격한 시기였다. ● 1980년대 정부 주도의 연구 개발 체제를 강화하면서 과학기술 정책이 종합적인 체제를 갖추기 시작 하였다. ● 대학과 기업의 연구 개발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과학기술의 주체가 다원화되기 시작하였다. ● 우리 경제는 노동 집약적인 구조에서 기술 집약적 구조로 전환할 환경을 마련하였다. 그림 24-5 세종과학기지 건립(1988년) 1990년대에는 세계화, 정보화, 다원화라는 시대적 변화를 맞이하였다. ● 1990년대 민간 부문의 연구 개발 역량이 성장하면서 정부는 전략적인 대형 국가 연구 개발 사업을 ● 정부는 선도적 혁신을 위해 기초 연구와 대학의 연구 역량을 진흥하고자 하였다. ● 정보 통신, 생명 공학 부문의 신산업을 위한 기술 개발이 이루어졌으며, 장기적 노력이 필요한 거대 추진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공공 연구도 추진되었다. 2000년대를 앞두고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그동안 선진국 추격 전략을 통한 고속 경 제 성장 신화에 제동이 걸렸다. 그림 24-6 한국 최초 인공위성 우리별 1호(1992년) 과학기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시민 사회의 요구가 급증하기 시작하였다. 과학기술 은 국민의 행복한 삶을 위해 복무해야 하며, 더 이상 과학기술을 경제 개발의 도구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자유로운 과학기술 문화를 바탕으 로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의 과학기술과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첫째, 과학기술 활동에 시민 참여를 활성화하여 과학기술을 보다 인간적이고 생태적 그림 24-7 세계 최초 CDMA 방식 상 용화(1996년) 인 방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둘째, 한국의 과학기술은 공익적 차원에서 삶의 질을 높이는 영역의 연구 개발 투자 를 늘려야 한다. 셋째, 현대 과학기술이 가져올 불확실성과 위험을 직시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 사회 를 위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208 Ⅴ. 동양 및 한국 과학사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08 2018-08-31 오후 4:27:38 3 세계 과학계에서 한국 과학기술의 위상이 높아지다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는 세계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 차세대 성장 동력의 발굴과 육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연구 개발 투자와 과학기술 경쟁력은 빠르게 성장하였다. 연구 투자 비중도 2014년 이후 국내 총생산(GDP)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10년 동안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국제 경쟁력은 세계 10위권 내외를 유지하고 있으며, 혁신 지수 또한 세계 순위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스마트폰, 반도체, 디스플레 이, 자동차, 부품 등 첨단 기술 기반 제품의 세계 시장 점유율도 상위권이다. 우리나라 과학기술 역량의 양적 성장은 여러 지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1960 년대 연구 개발 인력의 총 수가 천 명에도 미치지 못하던 수준에서 2010년 이후에는 30만 명 이상이 연구 개발에 종사하고 있다. 2017년 현재 한국의 논문 생산 및 세계 학술 시장에서의 점유율은 주요 선진국 수준에 달한다. 특허 및 첨단 기술 기반의 제조 생산에서도 한국은 세계 10위권 내외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2010년대에 들어서 주요 과학기술의 성과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2012년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국 내 기술로 개발한 세계 최초의 일체 형 ‘스마트 원자로’를 개발하였다. ▶ 2011년 세계 최초로 4세대 이동 통신 시스템인 ‘LTE-advanced’ 시 스템 시연에 성공하였다. ▼ 2013년 우리 기업에서 기존 평면 구조 낸드플 래시의 집적도와 고속화 기술 한계를 극복한 24단 3차원 V낸드 플래시를 세계 최초로 양산하였다. ▼ 2014년 남극에 세종과학기지 건 설에 이어 26년 만에 두 번째 장보고 과학기지를 준공하여 세계에서 열 번째로 남극에 2개 이상의 상설 기지 를 보유하였다. ◀ 2016년 한국인 개인 유전체를 최고 정밀도로 해독한 ‘아시아인 표준 게놈 지도’를 구축하였다. 그림 24-8 2010년대 한국 과학기술의 주요 성과 정리하기 한국의 과학기술이 식민지 지배와 같은 고난의 역사를 어떻게 극 복했는지 살펴보고, 앞으로 과학기술 발전의 방향성을 다음 단어로 정리해 보자. 생각 넓히기 한국의 과학기술이 인류가 처한 어려운 문제(핵, 환경 파괴, 에너지, 가난 등)를 해결할 수 있는 과학기술 대중화 운동 방안이 무엇일지 생각해 보자. 시민 과학 운동의 필요성 고속 경제 성장과 산업화 24. 현대 한국 과학기술의 형성 209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09 2018-08-31 오후 4:27:39 단원 매듭짓기 정리하기 동양 과학사의 흐름을 다음 용어를 활용하여 정리해 보자. 1.동양의 전통 과학: 중국의 유교 문화 ─ 유기체적인 자연관 ─ 천문과 역법 ─ 조선의 「천상열차분야지도」 ─ 『칠정산내・외편』(조선의 독자적인 천문 역법) ─ 세종의 한글 창제 2.동양의 근대 과학: 중세 이슬람 과학기술 ─ 다양한 문명권의 교류 ─ 동아시아의 서양 과학 수용 과정 ─ 중국의 예수회 선교사 ─ 일본 의 난학 ─ 조선의 실학자, 홍대용 이해하기 국 전통 과학의 특징이 무엇인지 설명해 보자. 1. 중 국의 근현대 과학기술이 근대화와 산업화에 어떤 영향 4. 한 을 미쳤는지 비판적으로 설명해 보자. 국이나 동아시아에서 왜 천문과 역법이 발달하였는지 2. 중 설명해 보자. 음은 동양의 전통 과학이 오늘날 우리의 일상생활에 5. 다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례를 나타낸 것이다. •한글의 ‘· , ㅡ, ㅣ’는 하늘(天), 땅 (地), 사람(人)을 뜻한다. •핸드폰 자판의 천, 지, 인은 자연 아시아 삼국에서 서양 과학을 수용했던 과정에 대해 3. 동 지리적 위치와 문화적 차이를 중심으로 설명해 보자. 세계에서 하늘과 땅, 인간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전통적인 자연 관을 나타낸다. 다른 사례는 어떤 것이 있는지 찾아보자. 210 Ⅴ. 동양 및 한국 과학사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10 2018-08-31 오후 4:27:39 적용하기 프로젝트 활동 내가 살고 싶은 마을 디자인하기 고지도를 감상하면서 하늘과 땅, 인간이 조화롭게 연결되어 있다는 전통 사상을 느껴 보자. 이를 바탕으로 우리의 전통이 살아 숨 쉬는 마을을 탐방해 보고, 미래 에 내가 살고 싶은 마을을 디자인해 보자. 1. 전통 시대의 고지도 감상하기 • 조선의 「천하도」와 「도성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감상해 보자. •자 연의 생태와 인간의 삶을 분리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자연관과 고지도 를 연관 지어 생각해 보자. 「천하도」 조선의 「천하도」는 17세기 유학자들 의 이상향을 그린 지도인데, 중세 서양에도 이와 비슷한 지도가 있었다. 「도성도」 한양을 그린 「도성도」는 산의 특징에 따른 형 세, 물줄기, 배의 이용을 구별하여 그렸다. 이 시대는 산 의 생김새 하나하나를 살폈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지도에 표시하였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우리나라 산천을 하나의 살 아 숨 쉬는 생명체로 표현하였다. 산줄기와 물줄기는 서로 연결된 땅위의 뼈대와 핏줄이었다. 물줄기를 따라 형성된 조선 시대의 생활권을 충실히 반영하였다. 2. 자연 친화적인 한국의 전통 마을을 탐색하여 찾아가기 •지 금까지 잘 보존되어 있는 충남 아산의 외암 마을이나 경북 김천의 원터 마을을 찾아가 보자. •전 통 마을을 돌아보면서 과거로부터 배울 수 있은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이 마을은 충남 아산의 외암 마을이다. 외암 마을은 자연 생태계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자 원 순환과 에너지 절감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외암 마 을의 북서쪽 구릉의 소나무는 겨울철 찬바람을 막아 준다. 곳곳에 길과 집, 숲의 배치를 보면 마을이 지닌 취약점을 극복하고 자연 조건에 적응하기 위한 지혜 를 발견할 수 있다. 3. 내가 살고 싶은 마을 디자인하기 •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마을과 앞으로 살고 싶은 마을을 떠올려 보자. • 우리나라 고지도처럼 정겹게 느껴지는 구불구불한 선으로 마음껏 그려 보자. • 우리 전통 과학 사상(자연관)을 이해하고 마을을 디자인할 때 적용시켜 보자. Ⅴ단원 매듭짓기 211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11 2018-08-31 오후 4:27:41 25 사회 속에서 과학의 역할 26 과학기술과 윤리 27 과학기술과 사회의 상호 작용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12 2018-08-31 오후 4:27:45 당신은 전공이 뭐예요? 난 바이올린 조율사인데요. 바둑 두는 사람 어디 갔나? 인간을 더잘 이해해야만 해. 단원 설명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13 우리는 과학기술을 통해 세계와 인간에 대해 깊은 이해를 하게 되었다. 과학기술은 유전 공학과 인공 지능의 발전 등 새로운 가 능성을 열었으며 동시에 우려의 목소리도 커져 가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과학기술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사용해야 할지 그 방향 성을 제대로 찾아야 할 시점이다. 2018-08-31 오후 4:27:50 25 사회 속에서 과학의 역할 학 습 목 표 ㅣ 과학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는 과학과 종교, 정치, 문화 등과의 연 관성을 통해 사회 속에서 과학이 갖는 역할에 대해 토의할 수 있다. 에디슨과 테슬라의 전류 전쟁 1879년 에디슨은 백열등을 발명했다. 이후 그는 전기에 관련된 부품과 송전, 배전의 전력 시스템까지 개 발했다. 에디슨 전등 제작소, 에디슨 전기 튜브사, 에디슨 기계 제작소 등을 통합해서 ‘에디슨 제너럴 일렉트 릭’을 세웠다. 그런데 1888년 니콜라 테슬라는 에디슨의 직류 발전기에 대항해 교류 발전기를 발명했고, 웨 스팅하우스사와 손을 잡고 교류 발전기의 상업화를 추진했다. 테슬라와 웨스팅하우스, 그리고 에디슨의 전 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에디슨은 이미 직류 시스템에 엄청난 투자를 해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교류 시스 템으로 바꾼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에디슨과 그의 참모였던 브라운은 교류에 대한 부정적인 선전전을 채택했다. 그들은 교류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 주기 위해 끔찍한 방법을 동원하였다. 교류 발전기의 고 압 전류로 개를 죽이는 실험을 하고 마침내는 ‘교류에 의한 전기 사형’을 추진했다. 1890년 8월 6일 도끼 살 인 사건의 범인으로 알려진 케믈러는 에디슨이 제작한 전기의자에서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다. 에디슨이 제작한 전기의자 교류 전기의 안전성을 보여 주기 위해 고전압 변압기 옆에서 책을 읽고 있는 테슬라 에디슨은 전력 시스템을 개발했지만, 전기의자도 제작하였다. 자신의 명성과 힘을 이용해서, 웨스팅하우 스와 테슬라를 파멸시키고자 하였다. 케믈러가 웨스팅하우스의 교류 발전기로 전기 사형을 당할 때, 에디슨 은 전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케믈러는 1,500 볼트의 전류에서도 쉽게 죽지 않았기 때문에 대중들은 교류 발전기가 위험하다는 에디슨의 주장에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직류가 교류보다 더 좋 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없었으며, 오히려 에디슨의 전기 사형에 반감이 들었을 뿐이었다. 에디슨의 온갖 공작 에도 불구하고 교류 발전기의 상승세는 꺾이지 않았다. 웨스팅하우스사는 1893년 시카고 만국 박람회의 전 기 시설 독점권을 따내며, 에디슨의 직류 시스템에 뼈아픈 패배를 안겨 주었다. 과학 기술자의 사회적 기여도를 어떤 기준에서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214 Ⅵ. 과학과 현대 사회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14 2018-08-31 오후 4:27:52 1 역사 속에서 과학과 사회는 어떤 관계를 맺어 왔을까 과학과 기술은 산업 혁명 이후 조금씩 가까워지다가 19세기에 이르러 서로 융합되어 엄청난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했다. 역사적으로 과학과 기술이 연결되는 계기는 무엇이 었을까? 전기 분야를 통해 과학기술의 산업화 과정을 살펴보자. 과학과 기술이 융합되다 모스는 전자석 실험에서 영감을 얻어 전신기 원리를 고안했다. 송신기에는 전류를 흘 려보내거나 끊을 수 있는 스위치를 장치하고, 수신기의 철판에는 연필이 달린 자석을 부착했다. 송신기의 스위치로 전류를 짧게 흐르게 하면 수신기의 연필은 종이테이프에 작은 점을 찍고, 전류를 길게 흐르게 하면 연필은 짧은 실선을 그렸다. 또 전류가 끊어 지면 연필은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와 같이 전류의 흐름으로 만든 점과 실선 두 가지의 부호만으로 알파벳과 숫자를 모두 표시할 수 있는 모스 부호가 탄생했다. 과학과 기술의 관계 역사적으로 과학과 기술은 분리되어 왔었다. 과학은 ‘자연 철학자’라는 학자 들이 자연을 탐구했던 학문 분야였고, 기술은 장인과 기술자 등 사회적으로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실용적인 물건 을 만드는 분야로 인식되었다. 모스(Morse. S.; 1791~1872) 모스는 원래 그림을 그리는 화가였다. 1832년 뉴욕으로 가는 증기선에서 우 연히 전자석 실험을 보고 인생이 바뀌 게 되었다. 전선을 감아서 만든 전자석 은 자석과 달리 스위치로 전류를 통하 고 끊을 수 있었고, 이때마다 자기력이 생겼다가 없어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여기에서 모스는 전자석으로 신호를 보내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모스의 아이디어를 사업화하기 위해서는 여러 조력자가 필요했다. 뉴욕 대학의 화학 과 교수 게일과 프린스턴 대학의 자연철학과 교수 헨리의 도움을 받아 전신기 작동 모 형을 만들었고, 주물 공장을 운영하던 베일 덕분에 모스의 전신기는 시판될 수 있었다. 1843년에 의회를 설득하여 정부 투자를 받아 워싱턴과 볼티모어를 잇는 미국 최초의 전신선을 가설하였다. 역사적인 전신선이 개통되자, 더 많은 선로를 부설하기 위해 수십 개의 회사들이 전 신 사업에 뛰어들었다. 모스는 1845년에 전신 회사를 설립하고, 켄들을 등용했다. 켄들 은 모스의 특허에 대한 사용 허가 문제를 도맡아서 처리하였다. 그 당시에는 아침 눈을 뜨고 나면 전신 회사가 설립이 될 정도로 전신 사업은 나날이 번창했다. 전신 사업은 수많은 사람들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졌지만 이 중에서 발명가의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호해 주는 특허 문제는 민감한 사안이었다. 특허 사용료로 큰돈을 번 모 스는 자신의 특허권을 지키기 위해 1848년부터 1854년까지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였 다. 그중에서 전신기의 개발에 과학적 지식을 제공해 준 헨리와의 소송을 눈여겨 볼 필 요가 있다. 헨리는 장거리 신호 전송을 가능하게 한 배터리-전자석 조합 원리를 모스의 전신기에 사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 고, 이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였다. 법정에 서 모스는 특허를 잃을까 두려워서, 끝까 지 헨리의 공헌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 만 과학사학자들은 헨리의 과학적 원리 가 전신기의 출현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고 보고 있다. 그림 25-1 최초의 모스 전신기 25. 사회 속에서 과학의 역할 215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15 2018-08-31 오후 4:27:53 전신기의 발명을 둘러싼 논란은 같은 시기에 영국에서도 있었다. 영국의 런던 킹스 칼리지의 자연철학과 교수였던 휘트스톤과 쿡도 전신기에 대한 특허를 받았다. 이 둘의 법정 공방에서 법원은 휘트스톤을 ‘과학적 발견자’, 쿡을 ‘기술적 발명가’로 판결을 내렸 다. 실제로 과학적 발견과 기술적 발명은 구분하기 어려운 애매모호한 규정이었다. 이 와 같이 과학과 기술은 그 경계를 분명히 알 수 없을 만큼 서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과학기술이 경제와 산업 발전의 도구가 되다 전신 사업은 전신 기술 시스템으로 확장되어 1850년대와 1860년대 세계는 거미줄 처럼 얽힌 전신망으로 뒤덮이기 시작하였다. 전신선이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는 물리적 통신망을 구축했다. 물론 서유럽과 북미 대륙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주도하는 통신 혁 명이었다. 식민지 지배 수단으로의 전신망 1857년 인도 폭동이 일어났을 때, 영 국군은 인도 내부의 전신망을 통해 조 직적으로 반란군을 몇 달 만에 진압하 였다. 인도의 저항군 주모자는 사형장 에 끌려가면서 ‘우리의 목을 조르는 것 은 바로 저 저주받을 전선이로구나!’하 며 한탄했다고 한다. 특히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 쟁탈전에 전신을 이용하였다. 1855년에 러시아와 영 국, 프랑스, 터키의 연합군이 벌였던 크림 전쟁은 최초로 전신 기술이 이용된 전쟁이었 다. 그 이후에 전신은 전쟁에서 필수적인 통신 수단이며 첨단 무기로 활용되었다. 제국주의의 국가들은 침투하는 곳마다 전신선을 설치하였다. 전신 사업은 정치적으 로 식민지 지배를 위한 연결망이었다. 또한, 경제적 수탈을 통해 다국적 기업들이 성장하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유럽 과 북미 대륙에서 폭발적으로 발전한 전신 시스템은 자본주의의 산업화와 세계화 전략 에 크게 기여하였다. 전기 산업이 탄생시킨 대기업 1876년 자석식 전화를 발명한 벨은 벨 전화사를 세웠으며, 이 회사는 1885년 에 AT&T로 거듭나, 미국 장거리 전화 산업을 독식했다. 에디슨과의 ‘전류 전 쟁’으로 알려진 웨스팅하우스사는 1886 년에 설립되었다. 한편, 19세기 말 미국의 전기 산업은 수많은 대기업을 탄생시켰다. 1866년 모스의 전신 회사는 웨스턴 유니온 전신으로 성장했다. 이 기업은 1980년대까지 전신 서비스 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 에디슨 제너럴 일렉트릭은 1892년에 톰슨-휴스턴사와 합 병하여 제너럴 일렉트릭(GE)이라는 공룡처럼 거대한 대기업을 출현시켰다. 그림 25-2 1851년 최초로 도버 해협을 횡단하며 설치되는 전신선 그림 25-3 크림 전쟁 당시 전신선을 설치하는 병사들 216 Ⅵ. 과학과 현대 사회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16 2018-08-31 오후 4:27:53 산업체 연구소에서 연구 개발은 언제부터 어떻게 이루어졌나 초창기부터 전기 산업에 주도권을 쥐었던 대기업들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더욱 치 열해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회사 내부에 연구소를 만들었다. 선두 주자는 1900년 에 산업체 연구소를 설립한 GE였다. GE는 독점하고 있던 특허가 소멸되고 기술적 합 병이 어려워지자, 회사 자체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웨스팅하 우스사는 실용적인 금속 필라멘트 전등을 생산하며, 에디슨이 쌓아 올린 GE의 아성을 위 협하고 있었다. GE는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의 물리화학자 휘트니를 영입하였다. 연구소 운영의 책임을 맡은 휘트니는 회사가 요구하는 상품성 있는 전등 개발에 온 힘을 쏟았다. 우선 대학보다 높은 연봉을 책정하여 젊고 유능한 과학자들을 회사 연구 소로 유인했다. 그리고 대학 연구실과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학문적 연구와 산업적 연 구가 조화롭게 병행할 수 있도록 신경 썼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1913년 쿨리지는 상업용 텅스텐 필라멘트를 개발했고, 1916년 랭뮤어는 기체 충전 백열등으로 특허를 획득했다. 랭뮤어는 1932년 노벨 화학상을 받아 산업체 연구의 성공 사례로 알려졌다. 에디슨 같은 천재 발명가의 시대는 산업적 연구에 자리를 내 주고 저물어 갔다. 에디 슨의 연구실에서 보조적이었던 과학자들은 대기업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주도적으로 기술 개발을 이끌었다. 과학 지식을 상품 생산에 직접 응용할 목적으로 산업체에서 과 학을 연구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과학에 기반한 기술, 과학에 기초를 둔 산업이 20세기에 새롭게 등장하였다. 18세기 산업 혁명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발전하여, ‘제2차 산업 혁명’이라고 불린다. 제 2차 산업 혁명에서는 전기 산업, 통신 산업, 철강 산업, 화학 산업, 자동차 산업 등이 새 로운 산업 분야로 급부상했다. 기술 혁신의 주도권은 영국에서 독일과 미국으로 이동하였 고, 대기업은 산업과 기술 개발의 중심이 되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과학의 이론적 연구가 기술과 산업에 충분히 응용될 수 있다는 쿨리지(Coolidge, W. D.; 1873~ 1975) 쿨리지는 1901년 라이프치히 대학에 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MIT 물리 화학 실험실에서 연구하고 있었다. 1905년 MIT보다 50%나 높은 연봉을 받고 GE 연구소로 스카웃되었다. 쿨리 지가 GE 연구소에서 5년 동안 개발한 텅스텐 백열등은 에디슨 전구 이래로 전등 산업에서 가장 값진 발명품 중 하 나로 인정받고 있다. 랭뮤어(Langmuir, I.; 1881~1957) 독일의 물리화학자 네른스트 밑에서 괴팅겐 대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럽 에서 강사직을 전전하다가 1909년 GE 연구소에서 파격적 제안을 받고 이 직했다. 1912년 이래 매년 평균 다섯 편 이상의 논문을 학술지에 발표하였 고, 1916년에는 기체 충전 백열등을 개 발하여 GE에 큰 이익을 안겨 주었다. 것을 깨달았다. 결과적으로 과학의 기술적, 산업적 응용은 크게 확대되었다. 역사적으로 분리되었던 과학과 기술이 서로 융합하여 오늘날 과학기술의 시대를 출범시켰던 것이다. 이로써 과학기술은 현대 사회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였다. 그림 25-4 자동차 대량 생산 시스템(포드 자동차) 그림 25-5 제너럴 일렉트릭 연구소의 랭뮤어(가운데)와 에디슨(오른쪽) 25. 사회 속에서 과학의 역할 217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17 2018-08-31 오후 4:27:55 2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물학적으로 남 자는 완전하고 이성적이며 원만한 본 성을 지니며, 여자는 불완전하여 틀린 말을 많이 하고 사람을 더 잘 속이며, 의존적이고 감정적이라는 식의 이분법 적 체계를 만들었다. 그의 남녀에 대한 관념은 근대 초기까지 사람들의 생각 을 지배하였다. 과학기술에서의 젠더 혁신, 왜 필요한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여성을 일종의 ‘불완전한 남성’의 형태로 여겼으며, 이러한 생각은 여성은 ‘완전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인 과학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17세기에서 18세기를 지나는 동안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과학에 관 심을 가지고 많은 기여를 했던 여성들이 많았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과학자인 스승의 들러리나 남편의 조수 정도의 역할로 격하되거나 혹은 아예 지워져 버렸다. 영국의 왕립학회에서는 ‘여성은 악덕과 불경건과 파멸로 몰고 가는 선동자’라고 언 급하며, ‘학회의 시급한 목적은 남성적인 철학을 일으켜 인간의 정신이 견고한 진리에 관한 지식으로 고상해 지도록 하는 것’이므로 여성에게 회원 지위를 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오랜 세월 고수해 왔다. 영국 왕립학회가 여성 회원을 인정한 것은 20세기인 1945년이었으며,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의 경우는 그보다도 30년이나 지난 뒤인 1979 년이 되어서야 여성 회원을 받아들였다. 성의 의미 성은 생물학적인 의미의 섹스(sex)와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성을 의미하는 젠더(gender)라는 개념으로 구분된 다. 따라서 성을 이해할 때는 섹스와 젠 더를 모두 아울러 복합적이고 총체적 으로 이해해야 한다. 남성이 대부분인 과학자들의 젠더 편견은 과학 지식에도 영향을 미쳐 왔다. 다윈의 진 화론에서도 경쟁은 수컷의 전유물이고 암컷은 싸워 이긴 수컷을 받아들여 수컷의 우수한 형질을 보존하는 보조적 역할만 한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이러한 방식의 고정 관념은 영 장류학에서 사냥하는 남자와 채집하는 여자의 대비로 이어졌다. 사냥 도구가 출토된 현 장에서 함께 발견된 골격들이 여성의 것도 있었지만 전통적인 성 역할 고정 관념 때문에 사냥 도구의 사용자가 남성이라고 단정 지어 인류의 진화를 설명하였다. 그림 25-6 과거 영장류학의 인류 진화 설명에 나타난 젠더 편견(사냥하는 남성과 채집하는 여성) 젠더 혁신 젠더 혁신 개념은 쉬빙거(Schiebinger, I) 스탠포드대 교수에 의해 도입됐다. 쉬 빙거 교수는 섹스와 젠더라는 개념이 배제되면서 생기는 잘못된 과학기술의 결과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젠더 혁신 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신약 개발을 위한 동물 실험에서 대부분 수컷을 이 용했기 때문에 나중에 개발된 의약품 이 여성에게 부작용이 나타나 퇴출된 경우, 공학 연구에서 여성을 남성의 축 소판으로 생각하고 연구를 진행하는 경우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현대로 접어들면서 유전학과 뇌과학, 인류학과 같은 인간과학의 영역에서 젠더 편견 은 광범위하게 과학과 결합하여 여성의 과학계 진출을 막는 유리 천장을 더욱 두텁게 하는 결과를 만들어 왔다. 여성은 태생적으로 수학과 과학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과학 계의 남성 독주는 정당하다는 뇌과학 연구들은 그러한 사례에 해당한다. 최근 들어 과학기술 연구에서 섹스와 젠더 개념이 배제되면서 발생한 문제를 바로잡 으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를 ‘과학기술 젠더 혁신’이라 한다. 과거 과학계 양 성평등 운동은 여성 과학자의 숫자를 늘리고 연구 기관의 채용·승진 시스템을 바꾸는 데 주력했다면 이제는 편향된 과학 지식을 고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218 Ⅵ. 과학과 현대 사회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18 2018-08-31 오후 4:27:55 3 과학과 법, 종교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17세기 과학 혁명기에 과학(자연 철학)은 사회 제도, 법률, 종교와 영향을 주고받으 면서 발전했다. 자연과학에서 자연에 법칙이 있다는 생각은 법률과 신학에서 유래하였 다. 중세 봉건 사회에서 절대 군주제나 입헌 군주제로 근대적인 국가 구조로 변화하면 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강력한 ‘법률’이 만들어졌다. 여기에 입법자로서의 신이라 는 개념이 결합해서 ‘자연 법칙’의 개념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과학 혁명 이후에는 과학이 법률과 종교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였다. 뉴턴 과학이 확실한 지식의 모범으로 인식되면서 과학이 법률이나 종교보다 더 객관적이고 믿을 만 한 지식이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1770년경에 ‘한 점의 의심도 없는 믿음’이 법률과 과학의 관계 과학에서 사용되는 자연의 법칙, 사실, 증거는 법률에서 받아들인 개념이다. 그 후에 과학의 사회적 위상이 올라가 자 법률은 과학의 확실성을 차용했다. 라는 법률적 개념이 정식화되었는데, 이것은 과학적 확실성이라는 개념에서 나온 것이 다. 이렇게 과학은 법과 종교와의 상호 관계 속에서 문화적으로 침투하며 사회적 위상 을 높여 왔다. 20세기에는 과학이 법정에 서서 재판을 받는 일이 일어났다. 1925년 미국 테네시주 의 데이턴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진화론과 창조론이 법정에서 맞붙었다. 기독교 근본주 의자들이 다윈의 진화론을 학교 교육에서 금지시킨 버틀러법을 제정했다. 교사 스콥스 는 그 법을 어기고 진화론을 가르쳐 기소되었다. 창조론자들이 ‘원숭이가 인간의 조상 인가’라며 비난해서 ‘원숭이 재판’으로 유명한 사건이다. 진화론자들은 진화론 교육 금지를 반대하며 맞섰는데 이러한 창조론과 진화론의 대 결 구도는 1960년대에 이르러 해소되었다. 현대적 다윈주의의 종합으로 진화론이 과 학적으로 옳다는 것이 널리 인정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1980년에 창조론자들은 진화론과 더불어 창조론을 학교에서 배울 수 있게 해달라고 재판을 진행했다. 재판부는 종교인 창조론이 학교에서 교육되어서는 안 된다 는 판결을 내렸다. 이 재판은 과학과 종교의 경계를 명확히 긋고, 창조론을 과학으로 다룰 수 없음을 법적으로 판가름한 사건이다. 그림 25-7 원숭이 재판을 풍자한 신문 만화 원숭이 재판의 배심원은 모두 성경을 하느님의 유일한 계시로 여기는 농부들로 이루어져 있었는 데, 재판 과정에서 진화론에 충격을 받은 배심원의 모습을 풍자했다. 그림 25-8 재판 중 전국에서 온 격려 편지를 읽고 있는 스콥스의 변호 사 다로 재판 결과 스콥스는 진화론을 가르친 것에 대하여 벌금형을 받 았지만, 오히려 진화론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25. 사회 속에서 과학의 역할 219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19 2018-08-31 오후 4:27:55 탐구 활동 과학 관련법 조항 만들기 토론 우리나라 헌법 제9장 제127조 제1항에는 과학기술을 대하는 국가 의 가치관이 다음과 같이 반영되어 있다. l 헌법 개정안 예시 l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는 과학기술을 오로지 국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 경 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 민 경제 발전의 수단으로만 보는 현행 헌법의 개정을 다음과 같이 제 안합니다. 이와 같은 과학기술 관련 헌법 조항에 대해 많은 한국의 과학자들 은 과학기술 활동이 경제 발전뿐만 아니라 국정 운영 전반으로 확대 첫째, 제127조 제1항에서 ‘과학기술의 혁신’을 경제 발전의 수단으 되고, 유능한 국가 혁신 체제를 구축할 수 있도록 헌법에 명시된 과 로 삼도록 명시한 부분을 삭제해야 한다. 학기술 활동 목적이 ‘국민 경제 발전의 수단’에서 벗어나야 함을 요구 둘째, 신설 조문을 아래와 같이 규정하여 ‘제1장 총강’에 두는 것을 제 하며 헌법 개정안을 제시하고 있다. 안한다.“국가는 학술 활동과 기초 연구를 장려할 의무가 있다.” 제3공화국 헌법에 ‘국민 경제의 발전을 위한 과학 진흥’이 명시 된 이후, 우리나라는 국가가 주도하는 경제 발전 계획에 따라, 과학 기술인과 국민 모두의 노력에 힘입어 과학기술을 활용해 높은 산 업 수준과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룩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 때와 다릅니다. 국제 정세는 급변했으며, 산업 수준은 높아져 소 위 제4차 산업 혁명을 언급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시대에 헌법이 과 학기술을 여전히 경제 발전의 도구로만 바라보는 건 시대착오적 인 관점입니다. 과학기술의 활용성은 다양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헌법은 여전 히 낡은 관점으로 과학기술을 바라보며, 앞으로 과학기술이 나아 갈 길에 경제 발전이라는 족쇄를 채워 경제 발전과 관련이 적은 분 과학기술 관련 헌법 개정을 위한 과학자 포럼 야나 기초 연구에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하여 혁신이 이루어지기 어렵 토론하기 게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1.이와 같은 개헌의 주장에 대하여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자신의 현행 헌법 제127조 제1항은 저개발 국가 시대의 요구에 부합했 의견을 이야기해 보자. 던 헌법의 잔재일 뿐이며, 이제 우리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걸맞 2.과학기술을 국민 경제 발전의 수단으로만 국한하면 어떤 문제가 은 우리 헌법을 가져야 합니다. 이제 국가가 과학기술은 물론, 문화 국가로서 문명의 토대를 일구는 학술 활동 및 기초 연구를 장려해 생기는지 검토하고 이야기해 보자. 3.과학기술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자신의 생 각을 이야기해 보자. 야 합니다.(후략) 사단법인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2017년 12월 18일- 정리하기 사회 속에서 과학의 역할을 다음 단어들을 넣어 정리해 보자. 과학기술 법 문화 상호 작용 종교 생각 넓히기 과학기술과 관련해서 자신만의 헌법 조항 을 만들어 보자. 각자 제정한 헌법 조항들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토의해 보자. 220 Ⅵ. 과학과 현대 사회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20 2018-08-31 오후 4:27:56 26 과학기술과 윤리 학 습 목 표 ㅣ 최근의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윤리적인 쟁점 사례를 이용하여 과 학자로서 갖추어야 할 연구 윤리, 생명 윤리 등에 대하여 토의할 수 있다. 과학기술은 양날의 검이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독가스를 만든 독일 과학자 프리츠 하버(Haber. F.; 1868~1934)가 전범 재 판에 회부되려 하자 수많은 과학자들이 하버를 옹호했다. 독가스를 처벌한다면, 독가스가 발명되기 이전 나 온 고성능 폭약과 탱크, 잠수함은 어찌해야 하는가? 전쟁 무기들 중에 무엇이 더 사악하고 나쁜 것인가? 이 렇게 반문하면서 살상 무기를 만든 과학자가 사악한 것은 아니고, 전쟁이 사악할 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학자들이 잘못한 것은 없는가? 누가 윤리적 책임을 질 것인가? 현대 사회에서 과학기술은 전쟁과 음란물, 패스트푸드의 3가지 산업이 이끈다는 극단적인 주장이 있다. 우리가 집집마다 쓰고 있는 전자레인지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나온 레이더 기술이 가정용으로 개발된 것 이다. 정크 푸드인 햄 통조림은 전쟁 중 병사들을 위한 전투 식량이었고, 햄버거는 군용 식량을 조리하고 저 장하는 기술을 활용한 제품이었다. 놀랍게도 음란물의 선정성을 강화하는 카메라 렌즈가 본래 전쟁 물품이 었다고 한다. 인간 욕망의 어두운 면에 과학기술이 동원되는 것이 부끄럽지만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더욱 마음을 무겁게 한다. 오늘날 인류는 환경 파괴를 비롯해서 전쟁, 인구 증가, 경제 양극화 등 세계적 위기에 처해 있다. 과연 현 대의 과학기술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인류에게 지속 가능한 행복을 선사할 것인가? 우리 대부분은 과 학기술이 인간의 행복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동안 과학기술은 역사를 진보시키며, 선하고 좋은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런데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 삶의 모든 면이 나아진 것만은 아니다. 예컨대 수많 은 전쟁에서 과학기술은 인간을 죽이는 무기를 만들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행복을 증대시킨 만큼 불행도 증대시켰던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바로 과 학기술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과학기술의 올바른 방향을 찾기 위해 공공성과 윤리성을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26. 과학기술과 윤리 221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21 2018-08-31 오후 4:27:58 1 과학기술에서의 생명 윤리, 어떻게 지킬 것인가 1961년 샌드버그가 처음 발견한 XYY형 이 분위기 뭐지? 저사람 유전자가 XYY인가 봐. 왠지 범죄를 저지를 것만 같아. 이상 염색체는 정상적인 남성보다 Y 염색체 가 하나 많은 경우이다. XYY 염색체 보유자 는 신체적으로 신장이 크고 두 팔이 길고 지 능이 낮으며, 성적으로 조숙하고 뼈나 관절 에 이상을 보인다. 범죄자 중에 XYY 염색체 를 보유한 자가 많다는 연구들이 보고되면서 단지 염색체 XYY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 으로 언제라도 폭력 성향을 드러낼 수 있는 잠재적인 범죄자로 단정 짓고 사회에서 격리 시키려 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Y 염색체 위에 는 SRY라는 남성 호르몬 분비와 관련된 유 전자 부위가 있어서 이것이 남보다 2배 이상 많아 공격 성향이 강할 것이라는 가설에 생명 윤리란 생명 윤리는 생명과 관련된 윤리 문제 라고 할 수 있다. 생명과 관련된 구체적 이고 다양한 윤리 문제에서 어떻게 생 명을 존중하고 보호할 것인가를 탐구 하는 것이다. 인간 대상 실험의 기본 원리 1. 인간 존중의 원리: 인간을 자율적 존 재로 대하며, 자율 능력이 부족한 인 간은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 이다. 2. 선행의 원리: 인간에게 가능한 한 이익 을 극대화하고 해악을 극소화하라 는 것이다. 3. 정의의 원리: 연구 대상자를 선정하고 실험 결과를 이용함에 있어 부당한 차 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기인한 것이다. 이러한 생물학적 결정론 혹은 유전적 결정론에 해당하는 낙인 찍기는 이후의 유전학 연구에서 XYY 염색체는 공격 성향과 관련되어 있지 않으며, 단순한 상관관계로 염색 체와 범죄 행동을 속단하기 어렵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XYY 염색체 보유자들의 억울한 삶은 복권될 수 있었다. 하나의 유전자로 인해 한 생명체의 신체적, 정신적 특성이 모두 결정되는 것은 아니 다. 머리카락 색깔 등과 같은 단순한 특성은 결정될 수도 있으나 사람의 성격 같은 복 잡한 특성은 여러 유전자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환경적 영향을 받아 후천적으로 결정 된다. 따라서 유전자 정보에 근거한 차별은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한다고 볼 수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독일의 과학자들이 유태인들에게 매우 큰 고통을 주는 실험을 실시했다는 사실이 전쟁이 끝난 후에 밝혀졌는데, 그중 20명의 의사와 3명의 과학자가 전범 재판을 받았고, 이 중 16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인간을 질병으로부터 구하기 위한 신약 개발 과정에서 약효와 부작용에 대한 검증을 위해 인간에 대한 임상 실험은 피할 수 없다. 그러면 인간 대상 실험에 있어서 지켜야 할 점은 무엇일까? 세계의사회는 1964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세계의사회 총회에서 인체를 대상으 우리나라의 인간 대상 실험 규정 우리나라에서 인간 대상 실험을 할 경우 에는 기관 생명 윤리 위원회(IRB)에서 연구의 윤리적·과학적 타당성과 연구 대상자의 동의 여부에 대한 심의를 거치 도록 규정되어 있다. 로 한 생체 실험 등 의학 연구에 있어서의 윤리 강령을 채택하였는데 이를 헬싱키 선언 이라고 한다. 헬싱키 선언은 인간을 대상으로 한 의학 연구의 남용을 규제하고 피험자의 불이익을 구제하여 권리를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제정되었다. 의학 연구에 있어 과학이나 사회의 이익보다는 피험자의 권익이 우선한다는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222 Ⅵ. 과학과 현대 사회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22 2018-08-31 오후 4:27:59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생명이 존중되고 보호될 것인가, 훼손될 것인가 중국 소설 『서유기』에서는 손오공이 머리카락을 뽑아서 ‘훅’하고 불면 자기와 똑같은 손 오공이 무수히 복제되는 도술을 부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 소설 속 허구의 이야기가 1997 년 영국 로슬린 연구소에서 마침내 현실화되었다. 완전히 자란 포유동물인 양의 체세포를 이용하여 새로운 생명체인 복제 양 돌리가 탄생된 것이다. 생식 세포가 아닌 체세포를 떼어 내 똑같은 유전자 구조를 가진 다른 생명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사건이다. 이제 생물학은 복제를 넘어 인공 생명체(인공 세포)를 만드는 단계에 이르렀다. 인 공 생명체 기술을 활용하면 원하는 기능을 갖추고 불필요한 기능은 크게 줄인 미생물 을 생산하는 것이 가능하다. 최근에는 마치 전자 부품들로 조립품을 만들듯이 생명체 를 조립 및 합성할 수 있는 합성 생물학이 도래하여 누구나 쉽게 생물을 합성할 수 있 는 DIY 생물학의 시대를 열었다. 유전자 연구 역사 1953년 1996년 2000년 2010년 2007~2017년 DNA 이중 나선 구조 발견 첫 체세포 복제 동물 인간 게놈 해독 첫 인공 생명체 개발 첫 인공 진핵생물 개발 프랜시스 크릭, 제임스 왓슨 복제 양 돌리 인간 유전자 지도 초 미국 크레이그벤터 연구 2007년 효모 합성 유전체 프로젝트 안 완성 소(JCVI). 세포핵이 없고 (Sc2.0) 시작. 2017년 3월 효모 게 염색체 하나만 가진 원 놈 16개 중 6개 염색체 합성 성공 공동 연구 핵생물 JCVI-syn1.0 (약 4000배) (약 750배) 탐구 활동 합성 생물학의 혜택과 문제점 토론 MIT 대학의 iGEM(국제유전공학장치, International Genetically Engineered Machine) 국제 대회는 이미 밝혀진 미생물의 유전자를 부품 삼아 새로운 생명체를 설계하여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하거나 실 제로 만드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색을 바꾸는 미생물, 다양한 맛과 색의 요구르트를 만들어 내는 젖산 균 같은 기발한 생명체의 유전자 설계도가 출품됐다. 이 연구는 이미 존재하는 생명체의 유전자 일부 를 변형시키는 차원이 아니라 게놈 전체를 새로 설계하여 새로운 생명체를 만드는 것이다. 합성 생물 학의 발전은 바이오해커라는 집단을 형성하였다. 이 집단은 생명 공학이 인류에게 수많은 혜택을 줄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제도권 내 소수의 전문가들만 독점하고 있는데다 지나치게 대규모 프로젝트에만 매달려 정작 일반인들이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불만을 품고 생 명 공학의 민주주의적 사용을 부르짖는다. 그러나 유전자 조작으로 ‘우월한 인간’을 만들어 내는 것에 대한 윤리적 문제와, 값비싼 유전자 검사 등 생명 공학의 상업화에 대한 사회적 우려도 커지고 있다 고 한다. 그림 26-1 2017년 iGEM 국제 대회 프랑스 팀 로고 토론하기 바이오해커를 보는 두 가지 시각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정한 뒤, 각 모둠별로 토론한다.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때는 반드시 구체적인 예를 들어 의견을 정한 까닭을 설명한다. ) 26. 과학기술과 윤리 223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23 2018-08-31 오후 4:28:01 2 과학 연구의 윤리, 왜 중요한가 과학자의 호기심 충족을 위해서라면 어떤 연구라도 정당한 것일까? 상업적으로 이익 이 되기만 한다면 어떤 것을 만들어도 괜찮은 것일까? 버그 서한(Berg Letter) ‘모라토리엄 서한(Moratorium Letter)’ 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버그 서한이 밝 히는 원칙은 아래와 같다. 1. 재조합 DNA 분자의 잠재적인 위험 이 제대로 평가되거나 전파를 차단할 방법이 개발될 때까지 관련 연구를 유예한다. 2. 미 국국립보건원(NIH)에 재조합 DNA 실험의 평가 방법, 위험을 줄이기 위 한 방법 및 재조합 DNA 실험 지침을 마련할 것을 요구한다. 3. 재 조합 DNA 분자의 잠재적인 위험 성에 대한 논의를 위해 전 세계 관련 학자들의 회합을 촉구한다. 1972년 이종 DNA를 통한 잡종 형성 가능성과 이것의 유전 공학적 도구화 및 위험 성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1973년에는 두 가지 이상의 항생제 내성을 지니는 잡종 플 라스미드를 가진 세균이 공개되면서 유전자 재조합 기술의 위험성에 대한 논의가 공론 화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상당수의 유전 공학자들이 유전자 재조합의 위험성에 대한 우 려를 표하였다. 이에 대해 당시 국립과학아카데미 대표였던 미국의 생화학자 폴 버그는 유전자 재조합 연구를 유예하고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한 전 세계 관련 학자의 회합을 촉 구하는 ‘버그 서한’을 발표하게 된다. 그림 26-2 1975년 아실로마 회의 장면(왼쪽부터 싱어, 진더, 브레너, 버그) ‘버그 서한’의 제안에 따라 1975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작은 휴양지 마을 아실로마에 유전자 재조합을 수행하는 과학자, 일반 시민, 환경 관련 분야 학자들이 모여 논의하게 ‘아실로마 회의’의 공식 명칭은 ‘재 조합 DNA 분자 연구에 관한 국제 회의’ 이다.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아실로마 회의’이다. 유전자 재조합 연구의 진행 상황을 살피고, 연구와 관련된 잠재적인 생물학적 위험을 추정하여 관련 연구를 재개할 수 있는지 가 늠해 보는 것이었다. 사흘 동안 계속된 난상 토론 끝에,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물리적 봉쇄는 물론 생물 학적 봉쇄를 취하는 조건하에서 연구를 계속한다는 원칙의 합의문을 채택하였다. 아실로마 회의는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연구로 파생될 수 있는 잠재적인 위험에 대해 스스로 깨닫고 누구보다 먼저 연구 진행을 일시 중지한 채 해결 방안을 모색한 모범적 인 사례로 과학의 역사에 기억되고 있다. DNA 구조를 발견하여 노벨상을 수상한 왓슨은 아실로마 회의에 대해 연구를 무책 임하게 방해하고 과학을 퇴보시킨 사건으로 평가하였다. 그러나 샤가프는 과학자의 호 기심과 야망 충족을 위해 수백만 년 내려온 진화의 과정에 인간 과학자가 함부로 개입 하는 것이 옳은가 반성해야 하며, 유전자 재조합의 문제는 더욱 강력한 제동 장치가 필 요하다고 역설한 바 있다. 224 Ⅵ. 과학과 현대 사회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24 2018-08-31 오후 4:28:01 탐구 활동 과학 연구의 윤리 조사 토론 1. 다음 사례를 조사하고 각 사례에서 문제점은 무엇인지 토론해 보자. •1910년 오랑우탄뼈를 가공해 인류의 화석으로 날조한 영국 찰스 도슨의 필트다운인 사건 •전 자의 전하량을 측정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예상과 맞는 자료만을 골라내어 편집한 논문 을 출판하여 노벨상까지 받은 로버트 밀리컨 •진 급이 어려워진 박교수를 위해 함께 하지 않은 연구 논문에 이름을 넣어 준 김박사 •자 신에게 연구비를 댄 기업에게 유리한 결과만을 남기고 해로운 결과는 삭제해서 재구성 한 논문을 낸 연구원 D씨(◯ ◯ 가습기 살균제 사례) •자 신이 만든 약물의 효과를 검증할 실험 대상을 손쉽게 구하기 위해서, 별다른 설명 없이 자신의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들에게 주사한 후 이들의 학점을 올려준 약리학자 P씨 필트다운인 사건 당시 상황을 재현한 그림 2.다음 사례에서 과학자가 연구 윤리를 위반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지 조사해 보고 문제점을 토론해 보자. 2014년 일본의 오보카타 연구팀은 쥐의 림프구 세포를 약한 산성 용액에 담그거나 세포막에 물리적인 압력을 가하는 등의 간단한 자극을 통해 근육, 신경, 장 등 어떠한 세포로도 변화시 킬 수 있는 만능 세포인 STAP(자극 촉발 다능성)세포를 발견했다는 내용의 논문을 영국 과학 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그러나 논문대로 실험을 했지만 STAP 세포를 만들 수 없었으며 논 문에 사용된 이미지와 내용의 중복 인용, 자료 조작 등의 의혹이 제기되었다. 조사 결과 연구 부정행위로 판명되었고 논문은 철회되었다. STAP세포 발견을 발표하는 장면 연구 윤리는 연구 수행 및 결과 도출에 있어서 위조, 변조, 표절 등 의도적인 연구 부 정행위 없이 연구 진실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미국의 윤리학자인 레스닉(Resnik, D. B.)은 과학 활동에서 요구되는 윤리적 행위의 원칙으로 정직, 조심성, 개방성, 자유, 공로, 교육, 사회적 책임, 합법성, 기회, 상호 존중, 효율성, 실험 대상 존중의 12가지를 들고 있다. 정리하기 과학 연구에서 연구자가 지켜야 할 연구 윤리를 간단히 설명 해 보자. 조심성의 원칙은 연구를 수행하거 나 결과를 제시할 때 오류를 범하지 않 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의 원칙은 과학자는 예비 과학 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 과학에 대해서 교육할 의무가 있다는 내용이다. 생각 넓히기 오늘날 신약 개발 전에 실행되고 있는 무 분별한 동물 실험은 생명 경외 사상에 의거해 신중하게 실 행되어야 한다. 동물 보호 윤리에 입각해 동물 실험의 원 칙을 생각해 보자. 26. 과학기술과 윤리 225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25 2018-08-31 오후 4:28:02 27 과학기술과 사회의 상호 작용 학 습 목 표 ㅣ 현대 사회에서 과학기술과 사회와의 관련성에 대해서 토의할 수 있다. 호수 물의 부영양화 1955년 미국 시애틀의 워싱턴 호수에서 열린 인기 높은 요트 대회를 관람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은 물 에서 불쾌한 냄새를 맡았다. 이 호수 물을 채수하여 냄새의 원인을 찾던 중 보통의 깊은 호수에는 번식하기 어려운 섬유상 시아노박테리아인 흔들말(Oscillitoria)이 과거보다 훨씬 많이 있는 것을 알았다. 정부는 날씨 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말했지만 이러한 현상은 계속되었다. 호수 물에서 왜 악취가 났을까? 호수 물 을 분석해 보니 인(P), 질소(N) 같은 영양 물질 농도가 과거보다 크게 증가한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 영양 물질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이 영양 물질들은 도시에서 정화 처리를 완전히 거치지 않은 채 호수로 방류된 엄청나게 많은 양의 하수에서 유래된 것이었다. 호수 물에서 왜 냄새가 나죠? 음~. 하수 처리와 관계가 있어! 이와 같이 담수호에 영양이 풍부해지는 과정을 부영양화라고 한다. 하수도 관련 당국자들은 시급함을 인 식하지 못했지만, 1955년 워싱턴 오염 규제 위원회의 지적이 있었고 환경 과학자들은 호수 영양 물질 과다 문제의 신문 기고 및 시애틀 시위원회에 경고 편지도 보냈다. 그중 에드먼슨 교수는 호수에 관한 보고서에 서 시아노박테리아와 호수에 유입되는 영양 물질이 정비례함을 보이는 자료를 제공했다. 또한, 아무 대책도 세우지 않는 방안과 호수로 영양 물질 유입을 중단하는 방안에 따른 예측도 각각 제시하였다. 1957년 주입 법부는 시애틀 지역에서 하수 처리에 관한 법안을 만들어 주민 투표에 부쳤지만 부결되었다. 유권자들은 시 애틀시가 부담할 비용을 주민들의 세금으로 추진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환경 비용을 위한 세금 인상을 주민들은 이해했을까? 위와 같은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226 Ⅵ. 과학과 현대 사회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26 2018-08-31 오후 4:28:04 1 과학기술과 사회는 어떤 관계를 맺을까 (전략) 시퍼런 장정처럼 튼튼한 돼지 떼가 구덩이 속으로 던져진다 / 무덤 속에서 운다 / 네 발도 아니고 두 발로 서서 운다 / 머리에 흙을 쓰고 운다 / 내가 못 견디는 건 아픈 게 아니에요! / 부 끄러운 거예요! / 무덤 속에서 복부에 육수 찬다 가스도 찬다 / 무덤 속에서 배가 터진다 / 무덤 속에서 추한 찌개처럼 끓는다 / 핏물이 무덤 밖으로 흐른다 / 비 오는 밤 비린 돼지 도깨비불이 번쩍번쩍한다 / 터진 창자가 무덤을 뚫고 봉분 위로 솟구친다 / 부활이다! 창자는 살아 있다! 뱀 처럼 살아 있다! / 피어라 돼지!/날아라 돼지! (후략) - 시 「피어라 돼지」 중에서 시인 김혜순은 2011년 구제역 사태를 보고 충격에 빠져 시를 썼다. 330만 마리의 돼 지가 산 채로 살처분되는 광경은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우리나라에서 2010년~ 2011년에 일어난 구제역으로 345만 마리 이상의 가축이 살 처분되어 매몰되었다. 가축 질병의 차원을 넘은 사회적 재난 수준이었다. 그런데 2016 년 11월부터 전국 각 지역에서 조류 인플루엔자와 구제역이 다시 발생하였고 3,376만 마리의 닭과 오리, 1,425마리의 소가 살처분되었다. 조류 인플루엔자나 구제역 사태 때 행해지는 대규모 살처분은 1892년 영국에서 공 식적으로 채택되었는데, 100년이 지난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 서서히 문제점이 드 러났다. 1997년 대만과 2001년 영국, 2011년 한국에서 일어난 대규모 구제역 사태에 서 국가 주도의 살처분 방식은 구제역의 발병을 근절할 수도 없으며 부작용도 크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매몰 비용과 보상비로 천문학적 재정 손실을 가져오고, 역학 조사에 의해 예방적 살처분이란 명분으로 산 채로 죽임을 당한 동물이 400만 마리에 이르는 데, 이것이 과연 예방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1928년 미국의 듀폰사에서는 암모니아를 대신할 냉장고용 냉매로 프레온이라는 상품 그림 27-1 2015년 8월 남극 상공 오 존홀(NASA) 명의 가스를 개발하였다. 프레온 가스는 안정성이 매우 뛰어나다고 알려져 차량· 선박·냉장고·건물용 냉매, 단열재·포장재·의류용의 발포제, 화장품·의료 용의 에어로솔 등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안정한 물질 이라고 알려졌던 프레온 가스의 위험성을 알게 되었다. 프레온 가스가 대기 성층권의 오존층을 파괴하는 주범임이 밝혀진 것이다. 오존층 의 파괴는 지구 생명체의 생존을 광범위하게 위협하므로 2010년 이후부터는 프레온 가스의 생산 및 사용이 금지되었다. 현대 사회에서 과학기술이 고도화되고 전문화될수록 불확실 성이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 예를 들어 유전 공학, 인공 지능 등의 발전 양상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 처럼 불확실하고, 과학기술과 사회가 어떤 관계를 맺을지 예측할 수가 없다. 27. 과학기술과 사회의 상호 작용 227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27 2018-08-31 오후 4:28:04 위험 사회 최근 우리 사회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 문제 등으로 사회적 갈 독일의 사회학자 베크(Beck. U.; 1944~ 2015)는 1986년 『위험사회』란 저서 를 통해 서구를 중심으로 추구해 온 산 업화와 근대화 과정이 실제로는 가공 스러운 ‘위험 사회’를 낳는다고 주장하 였다. 또, 최근 국가와 정치가 경제적 합리성을 주장하는 시장의 논리에 의 해 무력화되고 있다면서 지구촌의 신 자유주의 경향을 질타했다. 등을 겪고 있다. 과학기술의 불확실성과 위험 사회는 이제 일상화된 현실이다. 현대 사회 의 주체로서 우리는 과학기술을 알고 과학기술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또한, 과학기술의 문제는 국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인 시민의 참 여와 공론화를 통해 대안을 찾아야 한다. 오늘날 과학을 생각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민주적 논의와 토론, 건설적인 논쟁의 과정 이다. 과학기술로 인해 초래될 부정적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시민들의 참여가 절실히 필요하다. 탐구 활동 신·재생 에너지 개발에 대한 모의 공론화위원회 토론 토론 주제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온실가스를 발생하지 않고 치명적인 폐기물이 나오지 않는 신·재생 에너지가 대안으로 부상되고 있다. 그러나 신·재생 에너지는 현재로서는 다른 발전 방식에 비해 경제성이 낮다는 평을 듣고 있다. 2011년 3월 일본의 후쿠 발전원별 구입 단가 추이 2013년 (단위: 원/kWh) 2016년 170.92 시마 원전의 사고로 인한 피해와 복구, 위험 관리에 대한 비용을 생각할 때 발전 단 가로만 경제성을 평가하는 것이 정당한가? 향후 우리나라의 지속 가능한 에너지 117.58 88.18 대책으로서 신·재생 에너지 시설의 건립 확대에 관한 모의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68.03 39.12 결론을 도출해 보자. 신재생 원자력 73.84 87.01 58.71 유연탄 수력 방법 1.원자력 발전의 지속 여부는 위험성과 경제성 사이에서 중요한 사회적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2017년 7월 24일 공정률 약 30% 정도의 신고리 원자력 발전소 5·6호기를 계속 건설할 것인지 중단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한 정부 공론화위원회가 출범하였고 시민참여단의 열띤 토론 끝에 2017년 10월 20일 최종 결론을 발표하였다. 원전 공론화위원회의 결정 과정을 도식화하여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➊ 1차 조사 ➋ 시민 참여단 구성 ➌ 시민 참여단 숙의 과정 ➍ 최종 조사 ➎ 결과 공표 ※ 1차 조사는 지역, 성별, 연령을 고려하여 확률 추출을 통해 선발된 2만 여명의 시민이 참여 ※ 시민 참여단은 1차 조사 응답자 중에서 숙의 과정에 참여 의사가 있는 시민 중 확률 추출을 통해 선정된 500명으로 구성 ※ 시민 참여단은 토론 자료집을 숙지하고 전문가와 이해 관계자의 주장을 청취하며 토론회에 참여하는 등 숙의 과정을 충분히 거친 후 최종 조사에 참여 민 참여단과 원자력 발전 관계자, 수력 발전 관계자, 석탄 화력 발전 관계자, 신·재생 에너지 발전 관계자, 발전소 주변 지역 주민, 정 2. 시 부 에너지 관리 담당자 등의 역할을 정하여 모의 공론화위원회를 만들어 결론을 도출해 보자. 228 Ⅵ. 과학과 현대 사회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28 2018-08-31 오후 4:28:04 2 과학기술은 인류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세계적인 바둑 기사 중 한 명인 우리나라의 이세돌 9단과 바둑 인공 지능 (AI) 프로그램인 알파고 간의 바둑 대결이 2016년 3월 9일부터 다섯 번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그 장면은 전 세계로 생중계되었다. 바둑은 그 경우의 수 가 많기 때문에 인공 지능이 인간을 이기기 어려운 영역으로 여겨졌었다. 그러 나 4승 1패로 알파고가 승리하면서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으며 인공 지능 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그림 27-2 바둑 두는 로봇 탐구 활동 인공 지능은 미래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토론 인공 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뛰어 넘어 인간을 지배하는 암울한 미래상을 그려낸 SF 영화를 보면 막연한 두려움이 느껴지곤 한다. 인공 지 능이 가져올 미래 사회를 낙관론과 비관론으로 나누어 토론해 보자. 인공 지능의 발전은 무조건 막아야 합니다. 인공 지능이 우리 일자리를 빼앗고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고도의 감시체제를 만들지도 모르기 때문이죠. 인공 지능은 우리에게 장밋빛 미래를 가져다 줄 거예요. 우주 개발, 산업 재해, 교육, 환경 문제 등 인류가 처한 어려운 문제들을 인공 지능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정 1. 인공 지능으로 인해 변화되는 우리 삶의 모습을 모둠원이 각각 자유롭게 이야기한다. 2. 인공 지능에 대한 낙관론과 비관론 중 자신의 의견을 정한다. 3. 각 모둠별로 낙관론과 비관론을 나누어 토론한 뒤, 서로의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보자.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 이후에 인공 지능이 가져올 미래 사회에 대해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구글 딥마인드 사장인 데미스 하사비스가 어떻게 알파고라는 인공 지능을 만들게 되 었는지를 살펴보자. 하사비스는 대학교에서 컴퓨터 공학도 전공했지만 인간의 인지와 신경의 연결을 연구하는 뇌과학자였다. 알파고라는 인공 지능은 단순히 컴퓨터의 계산 능력이 발전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신경 과정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만들어 진 뇌과학의 성과물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인공 지능에서 지능은 무엇인가? 아직 뇌과학은 인간의 지능이 어떻게 작 동하는지 밝히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인간의 뇌와 지능을 이해하고 규명해 내어야 더 나은 인공 지능을 만들 수 있다. 27. 과학기술과 사회의 상호 작용 229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29 2018-08-31 오후 4:28:07 즉, 인공 지능에 관한 연구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는 작업이다. 인공 지능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는 인공 지능으로 더 나은 미래 사회를 맞이하기 위해 여러 가지 준비를 해 야 한다. 호킹과 러셀, 머스크, 윌첵 등 과학자와 기업가들은 인공 지능의 문제를 짚어 보고 대안을 찾는 ‘이로운 인공 지능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은 2014년 초 ‘생명과 미래 연구소’를 창립하고 전 세계 인공 지능 연구자들이 참 여하는 회의를 개최했다. 이들은 2017년에 ‘아실로마 AI 원 칙’에 합의했는데, 이 원칙은 ‘인공 지능은 방향 없는 지능이 아니라 유용한 지능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인공 지능의 안 전성과 책임성, 사법적 투명성, 개인정보 보호, 이익의 공유 등 윤리와 가치 문제를 포괄하고 있다. 자동차를 만들면서 교통 법규와 자동차 보험과 같은 제도를 마련한 것처럼 인 공 지능도 마찬가지다. 인공 지능의 안전에 관한 논의는 인 공 지능 발전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재난을 막기 위한 보 그림 27-3 인공 지능과 뇌과학 인공 지능에 관한 연구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는 작업이다. 험과 같은 것이다. 질병을 진단하는 인공 지능 2014년 IBM은 인공 지능 ‘왓슨’을 개발하였다. ‘왓슨의 세상 2016’(2016)에 서 지니 로메티 회장은 ‘왓슨은 현재 학교, 제약 회사, 병원, 자동차 회사 등 많은 영역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했다. 2016년 우리나라도 왓슨을 암환자 치료에 도입하였으며, 이언 가천대 인공 지능 기반 정밀 의료 추진단장은 왓슨을 이용하면 의사의 진료 능력이 마치 관우 에게 적토마를 줄 때 전투력이 배가되는 것과 같이 높아진다고 비유하였다. MD 앤더슨 병원에서 암 진단 중인 왓슨은 진단 정확도가 96%에 달한다고 한 다. 그러나 의사를 대신해 암 치료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정확하게 진단하 고 올바른 치료법을 찾아낼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며, 치료할 수 있도록 지원 하고 있다. 그림 27-4 인공 지능 왓슨의 진단 영상 2017년 11월 중국에서 인공 지능 로봇 ‘샤오이’가 의사 자격 시험에 도전해 합격했다고 보도되었다. 중국 기업과 칭화대 연구팀이 개발한 샤오이는 앞선 시험에서 600점 만점에 100점의 저조한 성적을 받았으나 수십 권의 의학 서적과 200만 건의 의료 기록, 40만 건의 기사 등을 통해 의료 지식을 습득한 후 합격했다고 한다. 연구팀은 샤오이가 실제 의사로서 활약하기보다는, 의사가 문제를 인식하고 위험을 피할 수 있 도록 돕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하였다. 정리하기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미래의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할 지 다음 단어들을 넣어 정리해 보자. 생각 넓히기 큰 강을 막아 댐을 만들고 갯벌을 매립하 여 육지를 만드는 대규모 토목 사업이 우리 인간 사회에 과학기술 안전 위험 미래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에 희망 우려 인간 인공 지능 서 토론해 보자. 230 Ⅵ. 과학과 현대 사회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30 2018-08-31 오후 4:28:07 매듭짓기 단원 정리하기 사회 속에서 과학의 역할을 다음 용어를 활용하여 설명해 보자. 사 속에서 과학과 사회의 관계 1. 역 과학 기술 과학기술 경제와 산업 발전 산업체 연구소 2. 인간 대상 실험 기본 원리 인간 존중의 원리 선행의 원리 정의의 원리 이해하기 학기술자에게 요구되는 올바른 태도는 무엇인지 설명해 보자. 1. 과 학기술이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 우리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설명해 보자. 2. 과 적용하기 프로젝트 활동 모둠별로 다음 주제 중 한 개를 선택하여 조사와 토론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발표 자료를 만들어 발표해 보자. 스가 장거리 신호 전송의 과학적 원리를 제공하면서 도와준 헨리와 특허 소송을 벌였다. 이 특허 소송에 대해 조사하 1. 모 고, 우리나라에도 이와 같은 사례가 있는지 알아보자. 더 편견은 여성들의 과학계 진출을 막아 과학기술 발전에 큰 장애물이 되어 왔다. 앞으로 젠더 편견 없이 능력을 최 2. 젠 대한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의견을 제시해 보자. 3. 1 975년 열린 ‘아실로마 회의’는 유전자 재조합 연구에 관한 버그 서한에서 비롯되었다. 과학자, 시민, 환경학자 등이 모 여 사흘 동안의 난상 토론 끝에 합의에 도달하였다. 이 회의의 합의 내용을 알아보고 얼마나 열띤 토론을 했는지 조사 해 보자. 또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해결 방안을 도출해야 하는지 문제 해결 시스템을 제안해 보자. Ⅵ단원 매듭짓기 231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31 2018-08-31 오후 4:28:08 주제 마무리 & 단원 매듭짓기 정답 토텔레스의 자연 철학을 잘 조화시켜 교회에서도 긍정적으로 대접을 받았다. 덕분 에 유럽의 중세 후반기에 유럽의 과학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시작되고 아리스토텔 레스에서 끝났다고 할 정도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Ⅰ. 과학이란 무엇인가 (52쪽) 정리하기 17쪽 (예시) 과학은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 객관적이고 합 리적인 방법으로 현상을 알아내고자 하는 것이다. 25쪽 (예시) 과학은 혹독한 비판과 반증에 자신을 내던지는 것, 일종의 수수께끼 풀이 과정, 진보적인 연구 프로그램이다. 30쪽 (예시) 과학은 꼭 특정한 방법이나 주제일 필요는 없다. (31쪽) 포퍼의 반증주의는 과학의 발전은 반증 가능성이 낮은 이론들로부터 점점 반증 가 능성이 높은 이론들로 변해 가는 과정으로 본다. 쿤은 정상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변칙이나 예외가 많아지면서 과학의 위기가 오면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타나고 경쟁 을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이 정상 과학이 되는 이 과정을 과학 혁명의 구조라고 하고 과학은 불연속적으로 발달되어 왔다고 설명한다. 러커토시는 과학의 발달은 효과적 인 예측을 제공하는 진보적인 연구 프로그램들에 의하여 이루어진다고 설명하였다. 파이어아벤트는 과학에는 반드시 특정한 주제나 방법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방 법론적 무정부주의를 주장하였다. 1. 귀납 추론은 경험과 관찰을 통해 사실을 바탕으로 한 객관적인 과학 지식을 만들 도록 도와준다는 장점이 있다. 단점은 경험적 일반화의 단계에서 오류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연역 추론의 장점은 이미 알고 있는 판단을 근거로 논리적 예측을 할 때 유리하다. 단점은 최초의 지식을 만들기 어려우며, 새로운 지식의 생성이 어렵 고 대전제가 확실하지 않으면 결론 역시 불확실하게 된다는 점이다. 2. 내적 접근법은 어떠한 과학적 개념이나 이론의 변천을 과학 내용의 논리적 전개 과정에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다. 외적 접근법은 과학 이론이 어떠한 사회적 환경 에서 나오게 되었는지 관심을 갖는다. 1970년대에 들어 두 접근 방식을 조화롭게 융합한 방법이 사회적 구성주의였다. 이 방법으로 이제까지 과학사에서는 알 수 없 던 사실을 많이 발견하게 되었으며, 과학자와 정치·사회의 관계 및 실험과 기구 그 리고 이론들 간의 관계 등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Ⅱ. 고대와 중세의 과학 정리하기 44쪽 탈레스: 만물의 근본 원소는 물이며 모든 생명체는 물이 있어야 산다. 아 낙시만드로스: 만물의 근본 원소는 아페이론이다. 아낙시메네스: 만물의 근본 원 소는 공기다. 공기가 엷어지면 불이 되고, 진해지면 구름이 되고 물이 된다. 크세 노파네스: 만물의 근본 원소는 흙이다. 흙은 가장 안정적이며 우리를 지탱하는 땅 을 이룬다. 헤라클레이토스: 만물의 근본 원소는 불이다. 불은 고체를 액체로, 액 체를 기체로 만들어 준다. 엠페도클레스: 물은 액체, 공기는 기체, 흙은 고체를 대 변하고, 불은 이러한 세 가지 상태를 변화시키는 원인이므로 이 네 가지가 모두 물 질의 근본 원소이다. 데모크리토스: 만물의 근본 원소는 원자이다. 아리스토텔 레스: 근본 원소로는 흙, 공기, 불, 물 네 가지가 있는데 특성과 근본 원소가 짝을 이 루어 물질을 이룬다. 51쪽 11세기 이후, 중세 후반기에 유럽과 이슬람의 접촉이 점차 늘었다. 특히 유 럽인들이 에스파냐의 톨레도에 있는 무슬림 근거지를 함락한 일과 십자군 전쟁, 두 가지 사건 이후 이슬람 문명과 유럽 문명의 접촉은 정점에 이르렀다. 이때 아리스토 텔레스의 자연 철학이 이슬람에서 유럽으로 대거 유입되었다. 이슬람권에서는 이븐 루시드와 같은 대학자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에 매료되어 집중적으로 번역하 고 연구했으며,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들을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잘 보존했 기 때문이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철학은 유럽의 대학 교육 과정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고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스콜라 철학의 대가들이 신학과 아리스 1. 근본 원소에 대한 논쟁: 탈레스: 만물의 근본 원소는 물이다. 아낙시만드로스: 만물의 근본 원소는 아페이론(무한자)이다. 아낙시메네스: 만물의 근본 원소는 공기다. 크세노파네스: 만물의 근본 원소는 흙이다. 헤라클레이토스: 만물의 근본 원소는 불이다. 엠페도클레스: 물, 공기, 흙, 불 이 네 가지가 모두 물질의 근본 원소이다. 데모크리토스: 만물의 근본 원소는 원자이다. 아리스토텔레스: 근본 원소로는 흙, 공기, 불, 물 네 가지가 있고 근본 원소가 물질의 특성과 짝을 이 루어 물질을 이룬다. 에피쿠로스: 만물의 근본 원소는 원자이다. 2. 우주론에 대한 논쟁: 아낙시만드로스: 우주는 원통형이고 둘레를 세 개의 불의 바 퀴가 도는데 태양, 달, 별이다. 피타고라스 학파: 만물의 근원은 수이므로 우주는 수학적으로 질서 있고 조화로운 세계이며 수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 플라톤: 우주 는 신이 만들었으며 불변하고 완벽한 질서를 가지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우주 의 중심에는 지구가 있으며 우주는 달을 경계로 위는 완벽한 질서를 유지하는 천상계, 아래는 불완전한 세상인 지상계로 나뉜다. 아리스타르코스: 우주의 중심은 태양이 다. 프톨레마이오스: 우주의 중심은 지구이며 주전원과 이심원으로 행성의 움직임 을 설명할 수 있다. 3. 수학의 발전: 탈레스: 서양 최초의 수학자로 ‘두 직선이 수직으로 만나면 같은 각 을 이룬다.’ ‘이등변삼각형의 두 밑각은 서로 같다.’ 등의 기하학에 관련된 정리를 제시했다. 피타고라스: 만물의 근본은 숫자라고 주장했고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밝혔다. 히포크라테스: 특정한 활꼴과 넓이가 동일한 정사각형을 그리는 방법을 밝혀냈고, 유클리드보다 1세기를 앞서 기하학에 관련된 책을 썼다. 유클리드: 모 두 13권으로 된 『원론』을 썼는데 이 책은 기하학의 기본이 되는 책으로 오랜 세월 동안 기하학의 교과서로 읽혔다. 아르키메데스: 구의 부피는 같은 높이의 원기둥 의 부피에 2/3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등 기하학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아폴로니 우스: 유클리드, 아르키메데스와 함께 그리스의 3대 수학자로 불리며 원뿔 곡선의 성질에 관련된 여러 연구를 남겼다. 1.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의 과학은 실용적인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다. 천문학은 농업과 종교 의식, 점성술의 필요에 의해 발전했고, 의학이나 화학은 질병 의 치료를 위해서 또는 죽은 자를 처리하기 위해서 발전했고, 수학은 신전의 측량이 나 상업의 회계를 위해서 발전했다. 반면에 고대 그리스의 과학은 신이나 마술 같은 초자연적인 권위를 배제하고 물질의 본성과 변화 자체에 관심을 가졌다. 또한, 자유 로운 논쟁과 상호 비판적인 이론을 내세워 논의의 수준을 높여 나갔고 실용성뿐만 아니라 추상성에도 큰 비중을 둔 수준 있는 과학을 했다. 2. 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유럽인들은 먹고 사는 문제에 매몰되어 척박한 삶을 살았 고 늘 야만족의 침범에 시달려 학문의 발전을 도모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 또한, 엄격 한 기독교의 교리를 지키느라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과학을 이어받을 지적 기초를 갖 출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의 발전은 퇴보할 수밖에 없었다. 3. 중세 후반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철학이 유럽의 과학 문화를 지배하게 된 데 는 아퀴나스의 역할이 컸다. 아퀴나스는 새로 얻은 지식과 기존의 기독교 교리를 잘 조화시키는 논리적 근거로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을 활용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 의 자연 철학으로 과학적 지식이 신의 권능을 축소하지 않으며 오히려 신에 대한 인 간의 이해를 심화시킨다고 말하면서 인간의 지식과 기독교 교리의 융합을 꾀했다. Ⅲ. 과학 혁명 정리하기 61쪽 신플라톤주의와 헤르메스주의는 유일신(기독교의 신)과 유일한 학문(아리 스토텔레스 학문)에 경직되었던 유럽인들에게 사고의 유연함과 대상에 대한 실천적 인 분석력을 갖게 했다. 특히 헤르메스주의자들의 마술적 신비주의는 눈에 보이지 않게 작용하는 힘의 가능성을 믿게 하였는데, 케플러와 뉴턴은 이러한 생각에 영향 을 받아 중력의 존재를 확신하였다. 232 부록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32 2018-08-31 오후 4:28:08 주제 마무리 & 단원 매듭짓기 정답 71쪽 프톨레마이오스는 모든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등속 원운동한다는 지구 중심설을 믿었다. 그는 지구 중심설로 설명이 어려운 관측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주 전원과 이심원이라는 개념을 고안했다. 그는 관측되는 행성의 운동에 정확성을 주 기 위해 81개나 되는 원을 그려 넣었다. 반면에 코페르니쿠스는 태양과 지구의 위치 를 바꾸고 지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 행성들의 겉보기 운동을 훨씬 잘 설명할 수 있 다고 생각하여 태양을 중심으로 하는 태양 중심설을 제안했다. 79쪽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로 인간의 이성이 야 말로 부인할 수 없는 존재의 증명이라고 주장했다. 데카르트는 명확한 이성으로 자연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고, 자연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을 물질 과 운동의 관점에서 모두 설명할 수 있다고 여겨 기계론적인 자연 철학을 제시했다. 따라서 그는 복잡한 생명 현상도 기계적 모형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여겼다. 데카르 트의 영향을 받은 뉴턴은 중력의 작용을 수학적으로 규명하였으며, 우주도 기계적으 로 움직이고 있음을 보였다. 데카르트와 뉴턴 이후에 유럽인들은 계몽주의 시대를 열 었으며, 과학적 사고에 높은 가치를 부여했다. (81쪽) 1. 천문학 혁명: 코페르니쿠스는 모든 행성은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하며 따라서 태 양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태양 중심설을 주장했다. 티코 브라헤는 초신성을 발견 하여 천상계가 불완전함을 입증했다. 우주의 중심에는 지구가 있고 그 둘레를 태양 과 달이 회전하며 나머지 행성들은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한다고 하여 코페르니쿠스 의 태양 중심설과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 중심설을 조합한 독창적인 우주론을 제안 했다. 케플러는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설을 토대로 행성의 운동이 타원임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갈릴레이는 직접 망원경을 만들어 태양 중심설을 입증하는 다양한 관측 자료를 생산해 냈다. 뉴턴은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이의 연구 를 바탕으로 태양을 중심으로 하는 태양계의 운동을 중력으로 설명하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여 천문학 혁명을 완수했다. 2. 역학 혁명: 갈릴레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에 대한 설명에서 여러 가지 모순 을 발견하고 이를 반증하는 사고 실험을 하여 근대 역학의 문을 열었고, 관성에 대 한 개념 등을 고안하여 역학 혁명의 토대를 세웠다. 데카르트는 갈릴레이 역학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여 관성에 대한 개념을 확대 발전시켰고, 한 물체가 다른 물체와 충돌하면 운동이 교환된다는 운동량 보존 법칙의 기본적인 개념을 제시하여 역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뉴턴은 행성이 어떤 힘에 의해 타원 궤도를 따라 공전하는 가를 연구하던 중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고 세 가지 운동 법칙을 알아내어 고전 역학 혁명의 정점을 이루었다. 1. 르네상스로 신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에 회의를 가졌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철학 외에 다양한 고대 그리스의 자연 철학 사상을 접하여 인간의 이성과 물질에 토 대를 둔 다양한 사고의 전환과 발전이 있었다. 이것이 과학 혁명 시대를 여는 불씨 가 되었다. 2.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기존의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과학 분야에서는 해부학, 광 학, 기하학, 의학 등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기술 분야에서는 획기적 인 아이디어로 잠수함과 헬리콥터, 낙하산 등의 원리를 제공하는 다양한 발명품을 남겼다. 대표적인 업적으로는 해부학으로 사람의 몸의 구조를 밝히는 일이었는데, 그는 인류 최초로 사람의 몸 구조에서 기하학과 역학의 규칙을 발견하려는 노력을 했다. 인체 구조를 수학의 눈으로 바라보았다는 사실은 가장 르네상스적인 발상이라 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17세기 뉴턴의 과학 혁명 완성 이후 유럽인들은 세상 만물이 어떤 자연 법칙의 지배를 받는 것으로 생각하는 ‘기계론적 세계관’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세계관은 18세기의 계몽사상이라는 합리적인 사상의 기초를 마련했고, 19세기에 들어오면서 산업 혁명을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후 서양인들은 인간의 우월성을 바 탕으로 우주와 자연의 신비에 도전을 했고, 현대 첨단 과학의 시대를 열었다. 그러 나 한편으로는 서양 중심의 세계관이 지나쳐 식민주의 사상과 인종 차별적인 세계 관을 가져오는 폐단을 낳기도 했다.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정리하기 95쪽 18세기 라부아지에는 연소 이론으로부터 근대적 화학 체계를 세웠다. 프리 스틀리와 같은 과학자들은 연소 이론을 플로지스톤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는데, 라부아지에는 물질이 공기 중의 산소와 결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원소의 개념과 질량 보존의 법칙, 화학 명명법이 체계화되었다. 돌턴은 각각의 원소가 서로 다른 질량을 갖는 원자로 구성되었다는 원자설을 내놓았다. 이 러한 돌턴의 원자론은 원자의 개념을 질량으로 표현한 것으로 복잡한 화학 반응을 시각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아보가드로는 돌턴의 원자론의 결함을 보완하여, 원 자들이 둘 이상 결합된 형태의 분자를 개념화했다. 멘델레예프는 원소의 화학적 성 질과 원자량을 이용해서 주기율표를 완성했다. 103쪽 멘델레예프 이후 여러 과학자들의 실험을 통해 원자도 변화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뵐러의 요소 합성으로 유기물도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음을 깨 닫게 되어 화학자들은 신약 및 신소재 탐색에 매진할 수 있었다. 107쪽 생물의 종이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낙시만드로스 로부터 찾을 수 있으며, 그는 인간도 바다에서 출현한 생물체가 진화하여 육지에서 살게 된 것으로 설명하였다. 이후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의 대사슬을 통하여 식 물, 동물, 미생물 등 세상 만물이 계층을 이룬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계층적 사고는 18세기 이전의 서구인들의 사고에 영향을 주었고, 이때까지 사람들은 모든 생물의 종은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기 때문에 변화될 수 없는 고정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 었다. 이후 유럽의 대항해 시대에 세상에는 많은 동식물이 존재함을 알게 되고 18 세기에 이르러 린네에 의하여 오늘날의 생물 다양성 파악의 토대가 되는 이명법과 생물 분류학이 확립되었다. 115쪽 다윈의 진화론이 형성되기까지 다양한 생각들이 있었다. 우선, 퀴비에가 제시한 격변설은 갑자기 닥친 큰 환경 재난으로 멸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였 고, 뷔퐁은 종은 창조된 것이 아니며 변화될 수 있다는 생각을 『박물지』를 통해 주 장하였다. 그 후 1809년 라마르크는 『동물 철학』에서 생물체들의 진화에 대해서 용 불용설과 획득 형질 유전을 통해 설명하려 하였다. 한편, 다윈은 비글호에 탑승해 5년간의 여행에서 얻은 관찰 결과와 맬서스의 『인구론』에서 얻은 통찰을 통해 생물 의 종이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선택을 통해 환경에 적합한 것으로 변할 수 있 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 무렵 월리스 역시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라는 생각을 하 고 다윈에게 편지를 보냈고, 이들의 생각은 학계에 공동 발표되었다. 다윈은 1859 년 생물의 진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담긴 책 『종의 기원』을 출판하게 된다. 127쪽 생명의 연속성 개념은 부모의 몸에서 각 부위의 씨앗과 같은 물질이 혈관 을 타고 생식기로 이동하여 자손에게 전해진다는 범생설을 거쳐 미리 완전한 생명 체가 만들어져 있다가 탄생한다는 전성설이 등장하고 그 뒤에 수정란이 분화되면서 몸의 각 부분이 된다는 후성설이 나타났다. 19세기가 되면서 생물학계는 모든 생명 체를 세포의 수준에서 바라볼 수 있는 세포설을 확립하게 되고 생명의 연속성도 세 포설을 통해 생각하게 되었다. 멘델은 완두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 양친의 유전자가 섞인다는 혼합설이 아닌 각각의 유전자가 독립적으로 유전된다는 입자설이 옳다는 것을 검증해 내었다. 멘델의 이러한 생각은 1900년대 이후 돌연변이를 발견한 더프 리스에 의해서 재발견되었으며, 유전자가 염색체 위에 존재한다는 염색체설이 서턴 과 모건에 의해 제안되었다. 1953년에 이르러서는 왓슨과 크릭에 의하여 유전자의 본체가 DNA라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135쪽 마찰열과 같은 열소 이론으로 설명될 수 없는 현상들이 많아지면서 열소 이론은 폐기되고 물질 내부의 분자 운동과 관련되는 열에너지 개념이 도입되었다. 그러면서 역학적 에너지에 열이 포함된 에너지 보존 법칙인 열역학 제1법칙이 발견 되고 열의 이동은 항상 온도가 높은 곳에서 온도가 낮은 곳으로 이동하는 비가역 현상임이 밝혀지고 이로 인해 자연 현상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일어난다 는 열역학 제2법칙도 확립되었다. 141쪽 뉴턴은 프리즘을 이용한 실험으로 햇빛이 여러 가지 색깔의 빛이 혼합되 어 있음을 밝히며, 빛의 직진과 반사, 굴절 등의 성질을 확인함으로써 빛의 입자성 을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하위헌스는 빛을 파동으로 보면 빛의 성질을 더 잘 설명 할 수 있다며 빛의 파동성을 주장하여 빛의 성질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이러한 빛의 성질에 대한 논쟁은 영의 이중 슬릿 실험으로 빛의 회절과 간섭 현상이 확인됨 으로써 파동성이 증명되었으며, 결국에는 빛은 파동이기도 하고 입자이기도 한 이 중성을 가졌음이 밝혀졌다. 정답 233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33 2018-08-31 오후 4:28:08 주제 마무리 & 단원 매듭짓기 정답 147쪽 전기와 자기가 별개 현상인 것으로 생각했던 고대와 중세의 생각은 외르 스테드의 전류가 흐르는 도선 주위의 나침반 바늘의 움직임 관찰에 의해 변화를 가 져왔다. 전기와 자기 현상의 관계를 더 심층적으로 관찰하고 연구한 패러데이는 전 기장과 자기장의 개념을 발견하였고 이들을 역선과 역장으로 표현하였으며, 이들의 관계를 전자기 유도에 관한 패러데이 법칙으로 정리하였다. 맥스웰은 패러데이가 정리한 법칙들을 수식화하여 간단하게 표현하였고, 전자기파 개념을 도입하였으며, 결국 빛은 전자기파의 일종인 것으로 밝혀졌다. 153쪽 뉴턴 역학의 절대성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의해 변화된다. 시간 과 공간이 서로 관련되어 있어서 시공간 개념으로 해석해야 하며, 진공 중에서의 광 속이 일정하며 상대 속도를 갖지 않는다는 개념은 동시성의 상대성, 길이 수축, 시 간 지연 등의 개념을 낳았다. 한편, 원자 이하의 작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소립자들 의 운동에 대해 연구하여 러더퍼드와 보어의 원자 모형이 만들어졌으며, 에너지 준 위가 불연속적으로 존재하여 에너지가 양자화되어 있으며, 광전 효과 실험의 결과 로 빛의 입자성이 밝혀지고 이를 광양자라고 표현하였다. 그리고 원자에 속박된 전 자의 위치는 확률적으로만 알 수 있으며 슈뢰딩거는 방정식으로 표현하였다. 159쪽 스테노는 ‘지층 누중의 법칙’을 주장하였으나 신이 6일 만에 세상을 창조 했다고 하는 성서의 논리와 지구의 나이가 6,000년에 불과하다는 성서학자인 어셔 의 주장으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다. 허턴은 ‘동일 과정설’을 주장했으나 역 시 노아의 대홍수 등을 믿는 격변설에 의해 배척을 당했다. 또 일부 과학자들은 허 턴의 화성론을 뒷받침하는 지구 내부의 열에 대해 의심을 했다. 그 결과 한때 지구 수축설과 같은 이론이 대세를 이루기도 하였다. 165쪽 1920년대 허블이 적색 편이 현상을 발견하여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 실을 증명한 후에 과학자들은 우주의 크기가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 다. 우주의 팽창을 설명하기 위해 가모프 등은 빅뱅 이론을 제안했으나 우주의 크기 에 비례하여 물질이 생성된다는 정상 상태 우주론이 아인슈타인 등의 지원을 받으 며 한동안 힘을 발휘했다. 그러나 1960년대에 우주 배경 복사가 발견되어 빅뱅 이 론이 표준 우주 모델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최근에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가 발 견됨에 따라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우주론이 요구되고 있다. (168쪽) 1. 라부아지에는 화학을 근대 과학의 한 분야로 체계화했다. 원소 이론을 바탕으로 화학 물질을 분류하고 화학의 용어, 개념, 화학 반응을 새롭게 정의했다. 돌턴은 원 소의 기본 단위를 원자로 하는 원자론을 세워 화학 결합을 설명했다. 멘델레예프는 원소의 원자량과 화학적 성질을 바탕으로 원소들의 주기율표를 만들었다. 모즐리는 원자의 성질이 원자 번호(양성자 수)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밝혔고 원자 번호를 기준으로 주기율표를 만들었다. 마침내 원자의 화학적 성질이 갖는 의미가 규명되 고, 새로운 주기율표가 만들어졌다. 2. 고대로부터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생명의 다양성에 대해 궁금해 하였으며, ‘저것 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얻으려 하였다. 이에 대한 답은 18세기 스웨덴 의 린네에 이르러 분류학이 정립되면서 체계화되었다. 이후 생물학은 ‘다양한 생물 은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뷔퐁, 라마르크, 다윈과 같은 생물의 진화를 연구한 학자들로부터 얻게 되었다. 즉, 종 간 변이가 생겨나고 그 변이가 다음 세대로 전해지면서 생명이 다양해졌다는 진화론으 로 설명하였다. 마지막으로 생물학은 ‘다양한 생물은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이 의문에 대해서는 멘델을 비롯한 유전학자들의 연구에 의하 여 대답을 듣게 되었다. 다시 말해, 멘델의 유전 법칙이 재발견되고 이어지는 유전 학, 발생학, 세포학, 분자 생물학 등의 발달로 유전자의 본질이 규명되면서 그 원리 가 밝혀지게 된 것이다. 3. 뉴턴 역학이 완성되었을 때 과학자들은 물리학에서 더 이상 연구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뉴턴 물리학보다도 훨씬 더 많은 자연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으며, 뉴턴 물리학은 그 일부에 불과한 것으로 확 인되었다. 더욱이 소립자 세계에서는 뉴턴 물리학으로는 원자 세계의 입자들의 운 동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양자 역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영역이 생겨났다. 이처럼 물리학의 세계는 앞으로 어떤 새로운 이론들이 생겨날지 기대되는 학문이다. 4. 지질학은 다른 과학 분야보다 체계를 갖춘 학문으로서의 출발이 늦었다. 16세기 초 아그리콜라는 독일의 광물학자로 광물 분류학의 토대를 세웠다. 이후 스테노가 지층 누중의 법칙을 주장하면서 성서의 지구 나이에 반기를 들었다. 지구에 대한 과 학적인 연구가 계속되면서 현재의 현상은 과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허턴의 동 일 과정설이 등장하여 지질학적인 시간 개념이 정립되었다. 또한 암석의 성인에 대 한 화성론과 수성론의 논쟁 과정은 전지구적 원리와 과학적 사실에 기초하는 지질 학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대륙 이동설을 시작으로 축적된 지식들이 판 구조 론으로 정립되었다. 현대 지구 과학은 지질학이라는 고체 지구뿐 아니라 대기와 해 양, 우주의 영역까지 포함하는 복합 학문으로 자리 잡고 있다. 1. 첫 번째는 화학에서 돌턴의 원자론이 등장했다. 돌턴은 18세기 라부아지에의 화 학체계를 연구하고 원소들의 체계적인 목록을 작성했다. 그리고 각각의 원소가 서 로 다른 질량을 갖는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돌턴의 원자론을 바탕으로 화학 결합에 대한 체계적인 법칙을 만들었다. 두 번째는 물리학에서 기체의 열과 온도, 압력 등의 관계를 다루는 열역학이 발전했 다. 열역학은 기체에 원자의 개념을 적용한 다음, 뉴턴의 운동 법칙을 적용했다. 이 렇게 원자들의 운동으로 열 현상을 설명하는 것을 기체 운동론이라고 한다. 돌턴의 원자가 특정한 원소의 기본 단위인 화학의 원자라면, 기체 운동론의 원자는 크기를 가지고 어떤 속도로 움직이며 특정한 위치를 점하는 물리적 실체였다. 세 번째는 분광학에서 원소마다 스펙트럼 패턴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19세기 독일의 프라운호퍼는 태양광 스펙트럼에서 검은 선을 찾아냈고 과학자들은 각각의 원자가 고유의 파장을 지닌 빛의 패턴과 연관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 (1) 린네는 자연계의 생물을 분류하면서 인위 분류법을 사용하였고, 한번 생겨난 종은 고정되어 절대 변할 수 없다는 관점으로 자연을 바라보았다. 린네가 이러한 관 점으로 생물의 종을 바라본 이유는 창조론적 세계관을 통해 관찰을 했기 때문이며, 한 번 창조된 모습은 변할 수 없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2) 라마르크의 진화론, 에라스무스 다윈의 진화론 등 진화에 대한 생각은 당시에 다윈 이외의 학자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자연 선택에 의한 생물 종의 진화라는 생각은 다윈의 진화론의 독창성이라고 할 수 있다. (3) 더프리스는 다윈처럼 범생설을 통하여 유전 현상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다만 다 윈이 제뮬이라는 입자를 가정한 것과 달리 더프리스는 판젠이라는 거의 변하지 않 는 안정한 입자를 통해 유전 현상을 설명하려 하였다. 3. 지구상의 다양한 물체의 운동과 태양계 행성의 운동은 물리학의 발달 이전에는 각각의 운동에 대하여 개별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만 뉴턴 역학과 전자기학 발달 이후에는 뉴턴의 운동 법칙과 전자기학 이론들로 대부분 설명이 가능하게 되었다. 나아가 우주의 물리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힘은 굉장히 많을 것 같으나 사실은 네 가지의 기본적인 힘(중력, 전자기력, 약한 상호 작용, 강한 상호 작용)들로 정리할 수 있으며, 이 힘들도 한 가지 원리로 통일하여 설명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4. ① 맨틀 대류설: 영국의 과학자 홈스가 주장한 이론으로 지구 내부에 있는 방사 성 원소의 붕괴열이 대륙을 이동하는 힘의 근원이라고 했다. ② 해저 확장설: 미국의 지질학자 헤스가 해령의 중앙부에서 올라온 맨틀 물질이 좌 우로 퍼져 나가 새로운 해양 지각을 만들고 대륙(판)을 이동시킨다고 했다. ③ 지자기 역전의 대칭성: 영국의 바인과 매튜가 중앙 해령 양쪽의 해양 대륙(판)에 서 지자기 역전이 대칭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여 해양저 확장설을 입증했다. Ⅴ. 동양 및 한국 과학사 정리하기 179쪽 중국의 유교적 세계관은 세계를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은 유기체로 생각 했다. 유기체적인 자연관에서 자연 세계와 인간 사회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고 보았다. 한나라 때 동중서는 하늘과 인간이 서로 교감한다는 천인감응론을 주장 하였다. 이러한 유교적 세계관에서 하늘의 천체 운행과 재이(홍수, 가뭄, 지진, 일식 등)는 정치적으로 해석되었고, 천문과 역법과 같은 천문학이 발전하게 되었다. 185쪽 9세기에 이슬람 문명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남긴 문헌을 적극 발굴해 서 이슬람어로 번역하는 운동을 벌였다. ‘지혜의 집’이라는 학문 연구 기관을 세워 서 의학과 수학, 천문학, 점성술, 연금술 등 그리스 과학을 번역하고 탐구했다. 콰 리즈미는 인도로부터 0과 아라비아 숫자를 최초로 도입하고, 정확한 천문표를 작 성했다. 그의 천문표와 대수학 등은 중세 유럽에 전해져 지적 활력을 불어넣는 데 크게 기여했다. 234 부록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34 2018-08-31 오후 4:28:09 주제 마무리 & 단원 매듭짓기 정답 197쪽 세종은 조선의 지역성과 독자성을 살린 문화를 만들기 위해 주력했다. 먼 저 조선의 한양에 맞는 천문 역법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새로운 천문 관측기구 를 제작하고 중국의 천문 역법을 통달하여, 자주적인 천문 역법인 『칠정산내ㆍ외편』 을 출간했다. 이렇게 중국의 최신 지식을 검토하고 조선에 맞는 과학기술을 추구하 는 정책은 음악과 농학, 의학 등의 모든 분야로 이어졌다. 박연을 시켜 아악을 정비하 고, 정초를 불러 농법서 『농사직설』을 쓰게 하였다. 또한 우리나라의 약재인 향약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향약집성방』 등을 편찬하였다. 1443년에는 우리나라의 독자적 인 글자인 『훈민정음』을 만들어 반포하였다. 203쪽 17세기 초 마테오 리치 등의 예수회 선교사들은 중국에 입성하여 서양의 과학기술 문명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중국의 지식인들은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이 흔들리는 체험을 했다. 그러나 굳건히 자리 잡고 있던 유교 적 세계관을 깨지는 못했다. 반면에 조선의 실학자들 중 김석문과 홍대용은 지전설 과 무한 우주론과 같은 독창적인 사상을 내놓기도 했다. 동아시아 삼국 중에 예수회 선교사가 가장 먼저 도착한 일본은 화란어(네덜란드어)를 배워서 서양 과학기술을 직접 수용하는 토양을 만들었다. 난학은 일본 근대화에 밑거름으로 작용하였다. 209쪽 우리는 20세기 초반 일제의 식민지 침략을 겪었다. 1930년대에 김용관과 같은 독립투사가 과학기술 대중화 운동을 펼쳤다. 주권을 빼앗긴 식민지 상황에서 진정한 과학기술의 발전이 무엇인지를 고민한 사회 운동이었다. 이렇게 시대를 앞서 간 사람들의 노력으로 해방 이후 한국은 고속의 경제 성장과 산업화를 이루었다. 그 러나 과학기술은 경제 개발과 산업화의 도구로만 인식되어 기초 과학 연구와 과학 문화가 사회에 저변화되지 못했다. 21세기는 과학기술의 불확실성에 직면하여 핵발 전소의 부지 선정, 가습기 살균제 피해 보상, 핵폐기물 처리 문제 등등 사회적 갈등 을 겪고 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우리는 과학기술 문제를 정부에만 맡겨 놓을 것이 아니라 시민의 참여와 공론화를 통해 좋은 대안을 찾아나가야 한다. (210쪽) 1. 동양의 전통 과학: 동양 과학사는 중국의 유교 문화권 아래에서 발전했다. 중국 의 유교 사상은 음양오행 사상이 깃든 유기체적인 자연관을 바탕으로 자연을 해석 했다. 특히 자연 세계와 인간 사회가 연결되었다고 보는 생각은 하늘에서 일어난 일 들을 정치적 사건으로 설명했다. 그래서 천문과 역법이 황제의 학문, 제왕학으로 발 전하였다. 이러한 영향을 받은 조선 시대에는 「천상열차분야지도」와 같은 세계적인 천문도가 제작되었고, 조선의 독자적인 천문 역법인 『칠정산 내ㆍ외편』이 출간되었 다. 또한 세종은 천문학, 수학, 농학, 의학, 음악 등 과학기술 문화의 모든 영역을 발 전시켰고, 그 중에서 자랑스러운 우리 글자, 한글을 창제하였다. 2. 동양의 근대 과학: 유럽인들은 중세를 암흑기라고 한다. 하지만 유럽이 아닌 중 국과 이슬람, 한국 등의 문명권에서는 독자적인 과학기술 문화가 발전하였다. 특히 이슬람 문명권에서는 그리스 과학과 철학책을 번역하며 탐구하였다. 이러한 이슬람 의 번역서와 과학기술은 아시아와 유럽으로 자연스럽게 유입되었다. 기본적으로 과 학사는 다양한 문명권의 교류의 역사이다. 동아시아의 중국, 일본, 한국은 서양 예 수회 선교사를 통해 서양 과학기술을 접했고, 이것을 발판으로 근대화 물결에 합류 했다. 일본은 네덜란드어를 배워 서양 책을 번역하는 난학 운동을 통해 가장 먼저 근대 국가가 되었다. 조선에서는 홍대용과 같은 독창적인 과학 사상을 내놓은 실학 자가 있었으나 사회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지는 못하였다. 1. 일찍이 중앙 집권 체제를 갖추었던 중국은 유교 문화와 관료 체제가 전통 과학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중국의 전통 과학은 국가에 의해 육성되고 통제되었으며, 과 학자들은 관료였다. 중국의 과학자들은 순수 이론적인 탐구보다는 실용적인 탐구에 주력했다. 또한 유교 문화에서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나라를 잘 다스리고 세상을 평화롭게 만드는 것’이었다. 2. 중국의 유교 문화에서는 하늘과 인간 사회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하늘의 뜻 을 정확하게 해석해서 정치에 반영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하늘의 운행과 이치를 탐구하는 천문학이 발전했는데, 중국의 전통 과학에 천문과 역법으로 구현되었다. 특 히 역법은 왕조가 바뀌면 달력을 고쳐야 한다는 관습에 따라, 새로운 달력의 개정이 계속 추진되었다. 이 과정에서 중국과 한국 등에서는 유럽보다 훨씬 정확한 태양 태음 력이 발전하였다. 3. 서양의 과학기술이 동아시아 삼국에 전해졌을 때 각국마다 받아들이는 양상이 달랐다. 유럽 세력에 쉽게 노출되는 위치에 있었던 일본은 서양 선교사와 상인이 접 근하기 용이했다. 그래서 네덜란드어를 배워 직접 서양 과학책을 번역하는 난학 운 동이 일어나 근대화의 좋은 토양을 제공했다. 반면에 중국은 서양 선교사들의 직접 적인 활동에도 불구하고 중화사상으로 인해 서양 과학기술의 수용에 소극적이었다. 조선의 경우는 삼국 중에 가장 열악한 상황이었다. 위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언제 나 중국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서양 선교사의 만남조차 19세기에 가서야 이루어 졌고, 주체적으로 과학기술을 수용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4.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뤄야 할 중요한 시기에 우리는 일제의 침략을 받았다. 일제 의 식민 지배는 서양의 과학기술을 우리 토양에 맞게 소화하고 그 경험과 지식을 축 적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았다. 이렇게 뒤처진 한국은 해방 이후 한국 전쟁과 분단 국가가 되는 불행을 겪었다. 1960년대부터 과학기술은 경제 개발과 산업화의 엔진 으로 인식되어 정부 주도형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 후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은 엘리트 중심의 과학기술 교육과 성장 위주의 전략을 구사했다. 근대화와 산업화를 달성하고 한국 경제가 세계 10위권에 진입하는 데 과학기술이 기여한 점이 크다. 하 지만 아직 한국의 과학기술은 사회ㆍ문화적으로 널리 확산되어 우리 삶의 질을 향 상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5. 서양 의학이 다루지 못한 현대인의 질병을 성공적으로 치료한 ‘한의학(韓醫學)’이 있다. 고대로부터 한국 의학 전통을 발전시켜 온 우리 민족의 과학이다. 대표적인 것이 1613년에 발간된 허준의 『동의보감(東醫寶鑑)』이다. 『동의보감』은 중국과 일 본 등의 동아시아 전역에 널리 퍼져, 이름 그대로 ‘동쪽 의학의 보배’로 칭송되었다. 지금까지 대학의 한의학과에서 주요 교재로 쓰일 만큼 임상적으로 훌륭한 책이다. Ⅵ. 과학과 현대 사회 정리하기 220쪽 과학기술은 법, 종교, 문화 등과 상호 작용하여 발전과 쇠퇴를 거듭하면서 현대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225쪽 과학 연구를 수행하고 결론을 도출함에 있어서 위조, 변조, 표절 등 의도 적인 연구 부정을 행하지 않고 연구의 진실성을 확보해야 한다. 230쪽 과학기술의 발달은 미래의 인간 사회에 수명 연장, 건강, 편리, 안전 등을 가지고 오는 동시에 핵물질, 유전자 조작으로 인한 새로운 병원체 출현, 인공 지능 의 오용으로 인한 재앙 등 새로운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과학기술은 인간에게 희 망과 우려를 동시에 제공하는 양날의 검과 같다. (231쪽) 1. 역사적으로 과학과 기술이 처음에는 분리되어 있었다. 과학과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과학과 기술의 경계가 모호해졌고 융합되었다. 과학기술은 경제와 산업 발전 의 원동력이 되었고 산업체에서의 연구 개발이 과학기술 개발의 중심이 되었다. 2. 인간 대상 실험에서 지켜야 할 3 가지 기본 원리로는, 인간을 자율적 존재로 대하 며, 자율 능력이 부족한 인간은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인간 존중의 원리’가 있 다. 또 인간에게 가능한 한 이익을 극대화하고 해악을 극소화한다는 ‘선행의 원리’, 연구 대상자를 선정하고 실험 결과를 이용함에 있어 부당한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 다는 ‘정의의 원리’가 있다. 1. 에디슨과 테슬라의 전류 전쟁을 통해서 업적이 많은 천재적인 과학기술자일지라 도 윤리와 정의, 인간에 대한 존중과 같은 소양이 결여되어 있다면 사회적으로 해악 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과학기술자는 자신의 연구가 사회에 미치 는 영향을 항상 생각하고 연구 윤리와 생명 윤리를 준수해야 한다. 2. 과학기술 발전의 주인공인 과학기술자, 기업, 학자들의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그 연구가 미칠 사회적 영향에 대해 고민하며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시해 야 한다. 정답 235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35 2018-08-31 오후 4:28:09 과학사 연표 물리학사 연도 인명 업적 B.C. 600 무렵 탈레스(Thales; B.C. 624?~B.C. 546?) 그리스 마찰 전기 및 자기 현상 관찰 B.C. 400 무렵 데모크리토스(Democritos; B.C. 460?~B.C. 370?) 그리스 고대 원자론 제창 B.C. 350 무렵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B.C. 322) 그리스 형식 논리학 수립 B.C. 250 무렵 아르키메데스(Archimedes; B.C. 287?~B.C. 212) 그리스 아르키메데스 원리, 지레 원리 및 원주율 발견 1543 코페르니쿠스(Copernicus, N.; 1473~1543) 폴란드 지동설 제창(지구의 회전에 관하여) 1604 갈릴레이(Galilei, G.; 1564~1642) 이탈리아 물체의 낙하 법칙 발견 1609 케플러(Kepler, J.; 1571~1630) 독일 케플러 제1, 제2법칙 발표(새 천문학) 1619 케플러(Kepler, J.; 1571~1630) 독일 케플러 제3법칙 발표(우주의 조화) 1638 갈릴레이(Galilei, G.; 1564~1642) 이탈리아 가속도 운동, 관성 법칙, 동역학의 기초 확립(신과학 대화) 1643 토리첼리(Torricelli, E.; 1608~1647) 이탈리아 대기압 측정, 토리첼리 진공 발견 1633 데카르트(Descartes, R.; 1596~1650) 프랑스 운동량 및 운동량 보존 개념의 도입 (세계, 혹은 빛에 대한 논고) 1665 그리말디(Grimaldi, F. M.; 1618~1663) 이탈리아 빛의 회절 현상 발견 1666 뉴턴(Newton, I.; 1642~1727) 영국 빛의 분산, 미적분법 발견 1678 훅(Hooke, R.; 1635~1703) 영국 훅의 법칙 발견 1678 하위헌스(Huygens, C.; 1629~1695) 네덜란드 빛의 파동설 주장, 하위헌스 원리 발견(빛에 관한 논술) 1686 라이프니츠(Leibniz, G. W. von; 1646~1716) 독일 역학적 에너지 보존 법칙 제창 1687 뉴턴(Newton, I.; 1642~1727) 영국 만유인력 법칙 및 운동 법칙을 확립(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 1738 베르누이(Bernoulli, D.; 1700~1782) 스위스 베르누이 정리 발견(유체 역학) 1742 셀시우스(Celsius, A.; 1701~1744) 스웨덴 온도계의 눈금(섭씨) 제안 1752 프랭클린(Franklin, B.; 1706~1790) 미국 번개의 전기적 성질 확인, 피뢰침 발명 1765 와트(Watt, J.; 1736~1819) 영국 증기 기관 개량 1785 쿨롱(Coulomb, C. A. de; 1736~1806) 프랑스 쿨롱 법칙 발견 1797 캐번디시(Cavendish, H.; 1731~1810) 영국 지구의 밀도 측정 1800 볼타(Volta, A. G. A. A.; 1745~1827) 이탈리아 전지 발명 1803 영(Young, T.; 1773~1829) 영국 이중 슬릿 실험으로 빛의 파동성 입증 1814 프라운호퍼(Fraunhofer, J. von; 1787~1826) 독일 회절발로 빛의 파장 측정, 태양 빛의 흡수 스펙트럼 발견 1820 외르스테드(Ørsted, H. C.; 1777~1851) 덴마크 전류의 자기 작용 발견 1820 아라고(Arago, D. F. J.; 1786~1853) 프랑스 전자석 발명 1820 앙페르(Ampere, A. M.; 1775~1836) 프랑스 앙페르 법칙 발견, 전자기학의 기초 확립 1819 프레넬(Fresnel, A. J.; 1788~1827) 프랑스 빛의 회절 이론, 빛의 파동설 완성 1826 옴(Ohm, G. S.; 1789~1854) 독일 옴의 법칙 발견 1827 브라운(Brown, R.; 1773~1858) 영국 브라운 운동 발견 1831 패러데이(Faraday, M.; 1791~1867) 영국 전자기 유도 법칙 발견 236 부록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36 2018-08-31 오후 4:28:09 과학사 연표 연도 인명 업적 1832 헨리(Henry, J.; 1797~1878) 미국 자체 유도 현상 발견 1834 렌츠(Lenz, H. F. E.; 1804~1865) 독일 렌츠 법칙 발견 1840 줄(Joule, J. P.; 1818~1889) 영국 전류의 열작용에 관한 줄의 법칙 발견 1842 도플러(Doppler, J. C.; 1803~1853) 오스트리아 도플러 효과 발견 1843 줄(Joule, J. P.; 1818~1889) 영국 열의 일당량 측정 1847 헬름홀츠(Helmholtz, H. F. von; 1821~1894) 독일 열역학 제1법칙 확립 1848 켈빈(Kelvin, W. T.; 1824~1907) 영국 절대 온도의 개념 수립 1858 플뤼커(Plücker, J.; 1801~1868) 독일 진공 기체 방전에의 자기장의 영향 발견 1879 슈테판(Stefan, J.; 1835~1893) 오스트리아 슈테판 법칙 발견 1885 발머(Balmer, J. J.; 1825~1898) 스위스 수소 원자 스펙트럼의 발머 계열 공식 수립 1895 뢴트겐(Röntgen, W. K.; 1845~1923) 독일 엑스(X)선 발견 1895 마르코니(Marconi, M. G.; 1874~1937) 이탈리아 무선 통신 실험 성공 1896 베크렐(Becquerel, A. H.; 1852~1908) 프랑스 우라늄(U) 광의 방사능 발견 1897 톰슨(Thomson, J. J.; 1856~1940) 영국 전자의 기초 개념 수립, 전자의 e/m 측정 1898 퀴리 부부(Curie, M.; 1867~1934 / Curie, P.; 1859~1906) 프랑스 라듐(Ra)과 폴로늄(Po) 발견 1905 아인슈타인(Einstein, A.; 1879~1955) 미국(독일) 특수 상대론 발표, 광양자 가설 수립 및 광전 효과 설명 1911 러더퍼드(Rutherford, E.; 1871~1937) 영국(뉴질랜드) 원자핵의 존재 확인 1913 보어(Bohr, N. H. D.; 1885~1962) 덴마크 원자 모형,원자 구조의 양자론 1916 아인슈타인(Einstein, A.; 1879~1955) 미국(독일) 일반 상대성 이론 발표 1926 슈뢰딩거(Schrödinger, E.; 1887~1961) 오스트리아 양자 역학(파동 역학)의 이론 확립 1927 하이젠베르크(Heisenberg, W. K.; 1901~1976) 독일 불확정성 원리 제창 1932 채드윅(Chadwick, J.; 1891~1974) 영국 중성자 발견 1932 앤더슨(Anderson, C. D.; 1905~1991) 미국 양전자 발견 1934 페르미(Fermi, E.; 1901~1954) 미국(이탈리아) 베타(β) 붕괴 이론 수립 1937 앤더슨(Anderson, C. D.; 1905~1991) 미국 뮤(μ) 중간자 발견 1938 한(Hahn, O.; 1879~1968) 독일 우라늄 핵분열 발견 1938 슈트라스만(Strassmann, F.; 1902~1980) 독일 우라늄 핵분열 발견 1949 유카와 히데키(Yukawa Hideki; 湯川秀樹); 1907~1981) 일본 중간자 존재 예언 1972 리(Lee, Benjamin Whisoh; 이휘소); 1935~1977) 미국 비가환 게이지 양자론의 재규격화 해결 및 참 쿼크 탐색 1990 프리드먼(Friedman, J. I.; 1930~) 미국 양성자와 중성자가 쿼크로 구성됨을 규명 1990 켄들(Kendall, H. W.; 1926~1999) 미국 양성자와 중성자가 쿼크로 구성됨을 규명 1990 테일러(Taylor, R. E.; 1929~) 캐나다 양성자와 중성자가 쿼크로 구성됨을 규명 1995 페르미 연구소 미국 여섯 번째 쿼크인 톱 쿼크(top quark) 발견 과학사 연표 237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37 2018-08-31 오후 4:28:09 화학사 연도 인명 업적 1662 보일(Boyle, R.; 1627~1691) 영국 보일 법칙 발견 1766 캐번디시(Cavendish, H.; 1731~1810) 영국 수소의 발견 1772 셸레(Scheele, Carl Wilhelm; 1742~1786) 스웨덴 산소 발견 1772 라부아지에(Lavoisier, A. L.; 1743~1794) 프랑스 질량 보존 법칙 발견 1772 러더퍼드(Rutherford, D.; 1749~1819) 영국 질소 발견 1774 프리스틀리(Priestley, J.; 1733~1804) 영국 산소 발견 1787 샤를(Charles, J. A. C.; 1746~1823) 프랑스 샤를 법칙 발견 1799 프루스트(Proust, J. L.; 1754~1826) 프랑스 일정 성분비 법칙 정리 1800 볼타(Volta, A. G. A. A.; 1745~1827) 이탈리아 볼타 전지 발명 1803 돌턴(Dalton, J.; 1766~1844) 영국 원자설, 배수 비례 법칙 발견 1808 게이뤼삭(Gay-Lussac, J. L.; 1778~1850) 프랑스 기체 반응 법칙 발견 1811 아보가드로(Avogadro, A.; 1776~1856) 이탈리아 아보가드로의 분자설 제창 1821 베르셀리우스(Berzelius, J. J.; 1779~1848) 스웨덴 산소를 기준으로 한 원자량 결정 1827 브라운(Brown, R.; 1773~1858) 영국 브라운 운동 발견 1828 뵐러(Wöhler, F.; 1800~1882) 독일 요소 합성 1831 그레이엄(Graham, T.; 1805~1869) 영국 그레이엄 법칙 발견 1833 패러데이(Faraday, M.; 1791~1867) 영국 전기 분해 법칙 발견 1836 다니엘(Daniell, J. F.; 1790~1845) 영국 다니엘 전지 발명 1840 헤스(Hess, G. H.; 1802~1850) 제정 러시아(스위스) 헤스 법칙 발견 1847 헬름홀츠(Helmholtz, H. L. F.von; 1821~1894) 독일 에너지 보존 법칙 발견 1859 분젠(Bunsen, R. W.; 1811~1899) 독일 스펙트럼 분석법 창안 1859 키르히호프(Kirchhoff, G. R.; 1824~1877) 독일 스펙트럼 분석법 창안 1861 그레이엄(Graham, T.; 1805~1869) 영국 콜로이드와 결정질 구별 1863 솔베이(Solvay, E.; 1838~1922) 벨기에 암모니아 소다법 발명 1865 케쿨레(Kekule, F. A.; 1829~1896) 독일 벤젠의 구조식 제안 1869 멘델레예프(Mendeleev, D. I.; 1834~1907) 러시아 원소 주기율 발견(단주기) 1873 반데르 발스(van der Waals, J.D.; 1837~1923) 네덜란드 실제 기체의 상태 방정식 정립 1878 마이어(Meyer, V.; 1848~1897) 독일 기체 밀도 측정에 의한 분자량 결정법 발명 1884 르샤틀리에(Le Chatelier, H. L.; 1850~1936) 프랑스 평형 이동 법칙 발견 1885 발머(Balmer, J. J.; 1825~1898) 스위스 수소 스펙트럼의 발머 계열 발견 1886 홀(Hall, C. M.; 1863~1914) 미국 알루미늄 제조 1887 아레니우스(Arrhenius, S. A.; 1859~1927) 스웨덴 이온화설 제창 1895 뢴트겐(Röntgen, W. C.; 1845~1923) 독일 엑스(X)선의 발견 238 과학사 연표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38 2018-08-31 오후 4:28:10 과학사 연표 연도 인명 1896 베크렐(Becquerel, A. H.; 1852~1908) 프랑스 우라늄의 방사능을 발견 1897 톰슨(Thomson, J. J; 1856~1940) 영국 전자의 존재 확인 1898 퀴리 부부(Curie, P.; 1859~1906 / Curie, M.; 1867~1934) 프랑스 폴로늄과 라듐 발견 1900 플랑크(Planck, M. K. E. L.; 1858~1947) 독일 양자설 주장 1903 러더퍼드(Rutherford, E.; 1871~1937) 영국(뉴질랜드) 방사능을 원자 붕괴로 설명 1904 램지(Ramsay, W.; 1852~1916) 영국 아르곤 발견 1906 하버(Haber, F.; 1868~1934) 독일 암모니아의 공업적 합성법 발명 1906 파셴(Paschen, F.; 1865~1947) 독일 파셴 계열 발견 1906 라이먼(Lyman, T.; 1874~1954) 미국 라이먼 계열 발견 1908 러더퍼드(Rutherford, E.; 1871~1937) 영국(뉴질랜드) 핵분열과 방사성 물질 연구 1909 밀리컨(Millikan, R. A.; 1868~1953) 미국 전자의 전하 측정 1911 러더퍼드(Rutherford, E.; 1871~1937) 영국(뉴질랜드) 원자핵 발견 1911 소디(Soddy, F.; 1877~1956) 영국 동위 원소의 명칭 제안 1913 보어(Bohr, N. H. D.; 1885~1962) 덴마크 수소 스펙트럼의 설명 모형 설명 1917 모즐리(Moseley, H. G. J.; 1887~1915) 영국 현대적 주기율표 완성 1922 애스턴(Aston, F. W.; 1877~1945) 영국 질량 분석기 발명, 질량수 정의, 동위 원소 분리 1924 파울리(Pauli, W.; 1900~1958) 미국(오스트리아) 파울리 배타 원리 제창 1931 캐러더스(Carothers, W. H.; 1896~1937) 미국 합성 고무 네오프렌 발명 1932 앤더슨(Anderson, C. D.; 1905~1991) 미국 양전자 발견 1932 채드윅(Chadwick, J.; 1891~1974) 영국 중성자 발견 1933 페르미(Fermi, E.; 1901~1954) 미국(이탈리아) 베타(β) 붕괴 이론 제창 1935 졸리오퀴리(Joliot-Curie, J. F.; 1900~1958) 프랑스 새로운 방사성 원소 합성 1935 졸리오퀴리 (Joliot-Curie, I.; 1897~1956) 프랑스 새로운 방사성 원소 합성 1938 한(Hahn, O.; 1879~1968) 독일 우라늄 원자핵의 분열 발견 1941 시보그(Seaborg, G. T.; 1912~1999) 미국 악티늄족 개념 및 현주기율표 제창 1950 리비(Libby, W. F.; 1908~1980) 미국 방사성 탄소로 연대 결정 1954 폴링(Pauling, L.; 1901~1994) 미국 화학 결합, 분자의 구조 1961 국제 순수 및 응용 화학 연합(IUPAC,1919〜) 12 1974 플로리(Flory, P. J.; 1910~1985) 미국 고분자의 물리 화학 1996 컬(Curl Jr., R. F.; 1933~) 미국 풀러렌 발견 1996 크로토(Kroto, H. W.; 1939~) 영국 풀러렌 발견 1996 스몰리(Smalley, R. E.; 1942~)미국 풀러렌 발견 2011 셰흐트만(Shechtman, D.; 1941~) 이스라엘 준결정의 발견 C를 기준으로 한 원자량의 결정 과학사 연표 239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39 2018-08-31 오후 4:28:10 생물학사 연도 인명 업적 B.C. 400 무렵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B.C. 460?~B.C. 377?) 그리스 고대 의학의 창시자 B.C. 340 무렵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B.C. 322) 그리스 동물학 창시자 A.D. 60 무렵 플리니우스(Plinius; 23~79) 로마 동식물에 관한 지식 집대성 180경 갈레노스(Galenos; 129?~199?) 그리스 해부학과 실험 생리학 연구 1543 베살리우스(Vesalius,A.; 1514~1564) 벨기에 근대 해부학의 기초 확립 1590 얀선(Janssen,H.; 1580?~1637?) 네덜란드 현미경 발명 1628 하비(Harvey, W.; 1578~1657) 영국 혈액 순환의 원리 규명 1665 훅(Hooke, R.; 1635~1703) 영국 세포 발견 및 명명 1668 레디(Redi, F.; 1626 ~ 1697) 이탈리아 자연 발생설 부정 1673 레이우엔훅(Leeuwenhoek, A. van; 1632~1723) 네덜란드 여러 종류의 미생물 관찰, 동물의 정자에 대해 최초로 기술 1682 레이(Ray, J.; 1627~1705) 영국 외떡잎식물과 쌍떡잎식물 구분. 종의 개념 정의 1735 린네(Linne, C. von; 1707~1778) 스웨덴 동・식물 분류, 이명법 제창, 현대 동・식물 분류학의 시조 1749 뷔퐁(Buffon, G. L. de; 1707~1788) 프랑스 동물 분류, 생태에 대하여 광범위한 조사 1809 라마르크(Lamarck, J. B. P. A.; 1744~1829) 프랑스 용불용설로 진화론 주장 1813 퀴비에(Cuvier, G.; 1769~1832) 프랑스 화석 연구로 고생물학의 기초 확립 1822 생틸레르(Saint-Hilaire, E. G.; 1772~1844) 프랑스 동물 분류, 진화 연구 1833 뮐러(Muller, J. P.; 1801~1858) 독일 분비샘의 기능 연구, 뮐러관 발견 1838 슐라이덴(Schleiden, M.; 1804~1881) 독일 식물 세포설 주창 1839 슈반(Schwann, T.; 1810~1882) 독일 동물 세포설 주창 1844 쾰리커(Kolliker, R. A. von; 1817~1905)스위스 분열 중인 세포 관찰, 신경 단위가 뉴런이라고 주장 1855 피르호(Virchow, R.; 1821~1902) 독일 세포 속생설 주창, 세포 생물학의 창시자 1859 월리스(Wallace A. R; 1823~1913) 영국 월리스선 제창, 다윈의 자연 선택설 발표 계기 제공 1859 다윈(Darwin, C. R.; 1809~1882) 영국 자연 선택에 의한 생물 진화 주창 1865 멘델(Mendel, G. J.; 1822~1884) 오스트리아 멘델 법칙 발견 1866 헤켈(Haeckel, E. H. P. A.; 1834~1919) 독일 진화 재연설 주창, 계통수 창안 1880 플레밍(Fleming, W.; 1843~1905) 독일 감수 분열의 이형 핵분열 발견, 체세포 분열 용어 창제 1883 바이스만(Weismann, A.; 1834~1914) 독일 생식질 연속성 제창 1886 알트만(Altmann, R.; 1852~1901) 독일 핵산이라는 용어 사용, 원형질 과립설 발표 1890경 아이머(Eimer, T.; 1843~1898) 독일(스위스) 정향 진화설 주장 1890경 스펜서(Spencer, H.; 1820~1903) 영국 다윈 진화론 굳힘 1890경 드리슈(Driesch, H. A. E.; 1867~1941) 독일 실험 발생학 개척, 조절적 후성설 증명 1900 코렌스(Correns, C. E.; 1864~1933) 독일 멘델 법칙 재발견, 중간 유전 연구 1900 더프리스(de Vries, H.; 1848~1935) 네덜란드 멘델 법칙 재발견, 돌연변이설 발표 240 부록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40 2018-08-31 오후 4:28:10 과학사 연표 연도 인명 업적 1900 체르마크(Tschermak, von S. E.; 1871~1962) 오스트리아 멘델 법칙 재발견 1900경 골턴(Galton, F.; 1822~1911) 영국 우생학 창시, 생물 통계학의 시조 1902 서턴(Sutton, W. S.; 1876~1916) 미국 서턴・보베리 이론 발표 1905 코흐(Koch, H. H. R.; 1843~1910) 미국 탄저균 순수 배양, 결핵균과 콜레라균 발견 1909 요한센(Johannsen, W. L.; 1857~1927) 덴마크 유전자(gene) 용어 창안 1920 퍼넷(Punnett, R. C.; 1875~1967) 영국 퍼넷 방정형 고안 1933 모건(Morgan, T. H.; 1866~1945) 미국 유전자가 염색체 내에 존재함을 규명 1937 오파린(Oparin, A. I.; 1894~1980) 소련 생명의 기원을 화학적 진화로 설명 1940 에이버리(Avery, O. T.; 1877~1955) 미국 폐렴균의 형질 전환 실험으로 DNA가 유전 물질임을 증명 1946 멀러(Muller, H. J.; 1890~1967) 미국 초파리에 X선 조사로 돌연변이 유발 1954 폴링(Pauling, L. C.; 1901~1994) 미국 단백질 나선 구조 발견 1958 비들(Beadle, G. W.; 1903~1989) 미국 붉은빵곰팡이 돌연변이체 연구로 1 유전자 1 효소설 주창 1958 생어(Sanger, F.; 1918~ ) 영국 인슐린 분자의 아미노산 순서 규명 1958 테이텀(Tatum, E. L.; 1909~1975) 미국 붉은빵곰팡이 돌연변이체 연구로 1 유전자 1 효소설 주창 1959 콘버그(Kornberg, A.; 1918~2007) 미국 인공적으로 DNA 합성 1962 크릭(Crick, F. H. C.; 1916~2004) 영국 DNA의 이중 나선 구조 발견 1962 왓슨(Watson, J. D.; 1928~) 미국 DNA의 이중 나선 구조 발견 1962 윌킨스(Wilkins, M. H. F.; 1916~2004) 영국(뉴질랜드) X선 회절로 DNA 구조 연구 1965 자코브(Jacob, F.; 1920~) 프랑스 오페론설 주창 1965 모노(Monod, J.; 1910~1976) 프랑스 오페론설 주창 1968 코라나(Khorana, H. G.; 1922~2011) 미국(인도) 단백질 합성 과정에서 유전 암호의 해독 과정 규명 1968 니런버그(Nirenberg, M. W.; 1927~2010) 미국 단백질 합성 과정에서 유전 암호의 해독 과정 규명 1969 허시(Hershey, A. D.; 1908~1997) 미국 박테리오파지의 유전 물질이 DNA라는 사실 입증 1970 도브잔스키(Dobzhansky, T.; 1900~1975) 미국(소련) 유전 진화학 정립 1973 프리슈(Frisch, K. von; 1886~1982) 독일(오스트리아) 꿀벌의 춤 언어 연구로 동물 행동 양상의 원리 발견 1973 로렌츠(Lorenz, K.; 1903~1989) 오스트리아 조류의 인상찍히기 현상 발견. 현대 동물 행동학 확립 1976 도킨스(Dawkins, C. R.; 1941~ ) 영국 『이기적 유전자』, 『눈먼 시계공』 저술 1978 스미스(Smith, H.; 1931~) 미국 제한 효소 발견 1984 쾰러(Kohler, G. J. F.; 1946~1995) 독일 단일 클론 항체 생산 방법 개발 1993 멀리스(Mullis, K. B.; 1944~) 미국 중합 효소 연쇄 반응(PCR)법 개발 1997 윌멋(Wilmut, L.; 1944~ ) 영국 복제 포유동물 돌리(양) 생산 2001 사람 유전체 사업(HGP)과 셀레라 제노믹스 26,000~40,000 종의 사람 유전 지도 완성 2012 거던(Gurdon, J. B.; 1933~) 영국 성체 세포를 분화 재편성하여 유도 만능 줄기 세포화 성공 과학사 연표 241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41 2018-08-31 오후 4:28:10 과학사 연표 지구과학사 연도 인명 업적 B.C. 140 무렵 히파르코스(Hipparchos; B.C.190?~B.C. 125?) 그리스 세차 운동, 별 운동의 불규칙성 발견 150 프톨레마이오스(Ptolemaeos, C.; 85?~165?) 그리스 주전원을 이용한 지구 중심설 주장 1543 코페르니쿠스(Copernicus, N.; 1473~1543) 폴란드 지동설 발표로 과학의 전기를 마련 1570 브라헤, 티코(Brahe, Tycho; 1546~1601) 덴마크 화성을 비롯한 행성에 대한 정밀한 관측 기록을 남김 1610 갈릴레이(Galilei, G.; 1564~1642) 이탈리아 진자의 등시성 발견, 망원경 발명, 목성 위성 관찰 1619 케플러(Kepler, J.; 1571~1630) 독일 케플러 제3법칙 발견(우주의 조화) 1669 스테노(Steno, N.; 1638~1686) 덴마크 지층 수평성 법칙과 지층 누중 법칙, 면각 일정 법칙 발견 1735 해들리(Hadley, G.; 1685~1744) 영국 대기 대순환의 원리를 밝힘 1760 메시에(Messier, C.; 1730~1817) 프랑스 21개 혜성 발견, 메시에 목록 작성 1781 허셜(Herschell, W. F; 1738~1822) 영국(독일) 최초의 반사 망원경 제작, 천왕성 발견 1785 허턴(Hutton,J.; 1726~1797) 영국 동일 과정설 제창, 화성암의 성인에 대한 화성론 주장 1790 베르너(Werner, A. G.; 1750~1817) 독일 근대 지질학의 선각자로 수성론자 1828 코리올리(Coriolis, G. G.; 1792~1843) 프랑스 ‘코리올리 효과’ 주창 1830 라이엘(Lyell, C.; 1797~1875) 영국 지질학의 근대적 체계 확립, 퀴비에의 격변설 반박 1872 톰슨(Thomson, C. W.; 1830~1882) 영국 해수의 순환 주장 1889 에어리(Airy, G. B.; 1801~1892) 영국 지각 평형설(Isostasy) 제창 1909 모호로비치치(Mohorovičić, A.; 1857~1936) 크로아티아 출생 지각과 맨틀의 경계면(모호면)의 최초 발견 1910 에크만(Ekman, V. W.; 1874~1954) 스웨덴 에크만 나선형, 에크만 수송 등 현대 해양 물리학에 공헌 1911 헤르츠스프룽(Hertzsprung, E.; 1873~1967) 덴마크 별의 절대 등급과 스펙트럼형 관계를 나타낸 H-R도 고안 1912 베게너(Wegener, A. L.; 1880~1930) 독일 대륙 이동설 제안 1919 구텐베르크(Gutenberg, B.; 1889~1960) 미국(독일) 지하 2,900km에 불연속면이 있음을 밝힘 1922 보웬(Bowen, N. L.; 1887~1956) 미국 화성암의 성인 확립 1929 허블(Hubble, E. P.; 1889~1953) 미국 우주 팽창에 관한 ‘허블 법칙’ 제안 1936 레만(Lehmann, I.; 1888~1993) 덴마크 내핵과 외핵의 경계 발견 1956 가모프(Gamow, G.; 1904~1968) 미국 우크라이나 출신 원자핵 이론에 공헌, 대폭발설(Big Bang Theory) 제안 1962 헤스(Hess, H. H.; 1906~1969) 미국 디츠(Dietz)와 함께 해저 확장설 주장 1965 윌슨(Wilson,J. T.; 1908~1993) 미국 판과 변환 단층 개념 제안 1974 라일(Ryle, M.; 1918~ 1984) 영국 펄서 발견 1978 윌슨(Wilson,R. W.; 1936~) 미국 3K의 배경 복사 발견 1978 펜지어스(Penzias,A. A.; 1933~) 미국 우주의 초단파 배경 복사 발견과 대폭발 이론에 공헌 1993 헐스(Hulse,R. A.; 1950~) 미국 쌍성 펄서 PSR 1913+16 발견 1995 헤일(Hale, A.; 1958~) 미국 헤일·밥 혜성 발견 2002 데이비스(Davis Jr., R.;1914~2006) 미국 우주 중성 미자의 탐지에 공헌 2006 스무트(Smoot, G. F.; 1945~) 미국 우주 배경 복사(CMB)의 비등방성과 흑체 형태의 발견 2011 슈밋(Schmidt, B. P.; 1967~) 미국/오스트레일리아 우주 팽창 속도가 가속됨을 발견 242 부록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42 2018-08-31 오후 4:28:11 과학사 연표 동양과학사 연도 인명 업적 B.C. 150 무렵 동중서(董仲舒; B.C. 170?~120) 중국 한나라의 유학자, 천인감응론과 재이론 주장 2세기 장형(張衡; 79~139) 중국 한나라의 과학자, 세계 최초의 지진계인 ‘지동의’ 발명 6세기 아리아바타(Aryabhata; 476~550) 인도 인도의 수학과 천문학 발전에 기여, 숫자로서 '0' 개념 등장 7세기 첨성대(신라 27대 선덕 여왕 시기)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 705 무렵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 9세기 콰리즈미(al-Khwarizmi; 780?~850?) 아라비아 이슬람의 천문학과 수학 분야에 공헌 10세기 이븐알하이삼(Ibn al-Haytham; 965?~1036?) 아라비아 이슬람의 광학 이론에 뛰어난 업적 10세기 이븐시나(Ibn Sina; 980~1037) 아라비아 이슬람의 의사이며 철학자, 『치유의 서』 저술 11세기 소송(蘇頌; 1020~1101) 중국 송나라의 과학자, 거대한 천문 시계 제작 12세기 이븐루시드(Ibn Rushd; 1126~1198) 아라비아 이슬람의 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에 대한 방대한 주해 서를 남김 13세기 곽수경(郭守敬; 1231~1316) 중국 원나라의 천문학자이며 기계공학자, 간의를 제작하고 수시 력을 완성 1377 『직지심경』 간행 고려 시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 제작본 1395 ‘천상열차분야지도’ 제작 조선 초 석각 천문도 15세기 세종 대왕(世宗 大王; 1397~1450) 조선 『훈민정음』 한글 창제, 천문, 역산, 의학, 농업, 도량형, 음 악, 인쇄, 화약 기술 등 과학기술 전 분야에서 뛰어난 성취 15세기 장영실(蔣英實; 1390~?) 조선 조선 시대 기계 기술자, 자동 물시계 자격루와 옥루 창제 15세기 정초(鄭招; ?~1434) 조선 조선의 학자, 『농사직설』 저술 16세기 허준(許浚; 1539~1615) 조선 조선의 의학자, 『동의보감』 저술 16세기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 이탈리아 예수회 선교사, 중국에 자명종과 망원경, 세계지도 등 서양 의 과학기술을 전함 17세기 아담 샬(Adam Schall; 1591~1666) 독일 예수회 선교사, 청나라 때 시헌력 채택 18세기 김석문(金錫文; 1658~1735) 조선 조선의 실학자, 지전설 주장 18세기 홍대용(洪大容; 1731~1783) 조선 조선의 실학자이며 과학 사상가, 『의산문답』에서 무한 우주 론 주장 19세기 스기타 겐파쿠(Sugita Genpaku; 杉田玄白; 1733~1817) 일본 의사, 서양 해부학 책 『해체신서』를 일본어로 번역하고 난 학을 보급시킴 19세기 김정호(金正浩; ?~1864) 조선 지리학자, 우리나라의 정밀 지도 제작, 대동여지도 완성 19세기 김용관(金容觀; 1897~1967) 한국 일제 강점기 독립 운동가, 1930년대 과학기술 대중화 운동 의 기수 20세기 니덤(Needham, J.; 1900~1995) 영국 생화학자, 중국의 과학사를 세계에 알린 『중국의 과학과 문명』 저술 1940 석주명(石宙明; 1908~1950) 한국 한국 최초의 나비류 분류 및 분포 연구 1959 한국 원자력연구소 설립 국내 최초의 과학기술연구소 1973 포항제철소 1기 설비 시설 완공 연간 103만 톤 생산 1988 남극 세종과학기지 건립 한국 최초의 남극 기지 과학사 연표 243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43 2018-08-31 오후 4:28:11 인용 자료 & 사진 출처 Ⅲ. 과학 혁명 56쪽 페스트 지도/http://www.stevenson-map-black- death 인용 자료 16쪽 정용재, 송진웅. 『Pierce의 귀추법에 관한 이론적 고찰을 통 한 과학교육적 함의 탐색』 한국과학교육학회지, 2006, 705 99쪽 Peter J. 『Ram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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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20/13/04/19/201304190500003_1.jpg 21 쪽 유사과학탐구영역 / https://webtoon.daum.net/ webtoon/view/PseudoScience 22쪽 일출 / 셔터스톡 24쪽 마이어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o hryan77&logNo=60135886026 포퍼 / https://namu.wiki/ 쿤 /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philoso phy78&logNo=130190637653&proxyReferer=https%3A%2 F%2Fwww.google.co.kr%2F 25쪽 러커토시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 commons/thumb/c/c0/Professor_Imre_Lakatos%2C_ c1960s.jpg/150px-Professor_Imre_Lakatos%2C_c1960s.jpg 26쪽 제인구달 / https://www.neverapart.com/features/20questions-with-dr-jane-goodall/ 관찰노트 / http://news.tourl.net/ai288342 27쪽 휴얼 / https://it.wikipedia.org/wiki/William_Whewell#/ media/File:Whewell_William_signature.jpg 29쪽 파이어아벤트 / https://probaway.files.wordpress. com/2013/07/feyerabend-5.jpg 장하석 / http://image.donga.com/news/ 100people/2014pc/ images/25.jpg 비잔티움 제국 멸망 / https://en.wikipedia.org/wiki/Fall_ of_ Constantinople#/media/File:Siege_constantinople_bnf_ fr2691.jpg 57쪽 천지창조 / https://en.wikipedia.org/wiki/Sistine_ Chapel#/media/File:Creaci%C3%B3n_de_Ad%C3%A1m.jpg 59쪽 다빈치 태아/Leonardo_da_Vinci_-_Studies_of_the_foetus_ in_the_womb 루터의 종교 개혁/http://www.worship.calvin.edu 61쪽 보일과 훅의 실험/https://commons.wikimedia.org/wiki/ File:4_The_Scientists.JPG 영국 왕립학회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 Category:Royal_Society#/media/File:ONL_(1887)_1.103 62쪽 천구 회전에 관하여 / https://es.wikipedia.org/wiki/ De_revolutionibus_orbium_coelestium#/media/ 63쪽 프톨레마이오스 / /https://commons.wikimedia.org/ wiki/File:Ptolemy_16century.jpg 프톨레마이오스 우주 체계/https://www.setthings.com/ro/fizica -lui-aristotel-elemente-si-sfere 65쪽 티코 브라헤의 초신성 / http://www.culturesofknowledge.org/?p=5304 66쪽 티코 브라헤 천체 관측 / https://rosetta.cnes.fr/fr/web/ CNES-fr/11349-gp-d-ou-viennent-les-cometes-.php 티코 브라헤 우주 체계 / https://i.pinimg.com/736x/0e/44/62/ 0e4462eb9af9467b9d8ea4469dfc884e--andreas-les.jpg 루돌프 목록 표지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 commons/thumb/2/24/Libr0310.jpg/210px-Libr0310.jpg 67쪽 케플러의 우주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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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5_2008-24_Mister_Galileo_was_correct.jpg 76쪽 방법서설/http;//www.antiquariat-voerster.de 77쪽 우주의 소용돌이 / http://humanswhoread grammars.tumblr.com/page/2 통증의 전달 경로 / http://www.mdpi.com/2076-3425/5/4/521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과학 / https://www.mediamatic.net/en/ page/9118/virtual-voices-1 79 쪽 계몽주의 / https://www.theodysseyonline.com/ secularism-saved-christianity-west 80쪽 하비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Statue_ of_William_Harvey_by_H._Weeks._Wellcome_L0004811.jpg 결찰사 실험/http://digital.lib.uiowa.edu/bai/books_ Ⅳ. 전문 과학 분야의 성립과 발전 Ⅱ. 고대와 중세의 과학 34 쪽 피라미드 / https://www.youtube.com/watch?v =7TiQaW4DVUo 35 쪽 바빌로니아 점토판 / https://therealsamizdat. com/2015/05/18/babylonian-astrology/ 석회암 경계석 / http://www.ancient-wisdom.com/zodiac.htm 수메르인 바퀴/https://www.emaze.com/@AIOCLFQF/Mesopotamia 이집트 여신 누트/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 36쪽 파피루스 만드는 법 / http://www.waterwereld.nu/ papyrus.php 37쪽 미라 황금관/http://bestcameronhighlandsapartment.com/ 로제타석 / http://www.history.com/this-day-in-history/ 38쪽 페니키아 알파벳 / https://www.metmuseum.org/ 43쪽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 https://nbamania.com/ 알렉산더 모자이크 / https://en.wikipedia.org/wiki/ 뮤세이온/http://www.ancientpages.com/ 44쪽 수도교 / https://en.wikipedia.org/wiki/ 50쪽 중세 대학 / https://en.wikipedia.org/wiki/ 51쪽 토마스 아퀴나스/https://en.wikipedia.org/wiki/ 로버트 그로스테스트 / https://onartandaesthetics.com/ 로저 베이컨/https://www.lookandlearn.com/history-images/ 53쪽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http://thefederalist.com/ 86쪽 조지프 라이트 그림/https://commons.wikimedia.org 불꽃 / 셔터스톡 87쪽 라부아지에실험실 / https://www.ritualpodcast.com/ episode-6/ 라부아지에 / https://www.missedinhistory.com/podcasts/ classics-antoine-lavoisier.htm 89쪽 라부아지에 처형 / https://fineartamerica.com/products/ execution-of-lavoisier-8-may-1794 90쪽 돌턴의 원소 기호/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 91쪽 베르셀리우스 원소 기호 / https://d1w9csuen3k837. cloudfront.net/Pictures/480xany/0/0/1/126001_featureberzelius-300_tcm18-136777.jpg 92쪽 게이뤼삭/https://namu.moe/w/%EB%A3%A8%EC%9D 93쪽 칸니차로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 commons/thumb/ 94쪽 뉴랜즈 옥타브설1/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 commons/e/e5/Newlands_periodiska_system_1866.png 뉴랜즈 옥타브설2/http://www.meta-synthesis.com/webbook/ 35_pt/Newlands_notes.jpg 95쪽 멘델레예프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 멘델레예프 주기율표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 commons/thumb/b/bb/Mendeleev%27s_1869_periodic_table. 96쪽 토르 / https://namu.wiki/w/ 헬리오스 / https://www.thinglink.com/scene/ 아인슈타인/http://www.op.gg/forum/view/468025&start=40 멘델레예프 / https://fi.wikipedia.org/wiki/Dmitri_Mendelejev#/ media 97쪽 코틴즈의 주기율표 / http://www.meta-synthesis.com/ webbook/35_pt/pt_database.php?PT_id=735 안트로포프의 주기율표/http://www.meta-synthesis.com/webbook/ 35_pt/pt_database.php?PT_id=26 베일리의 주기율표/http://www.meta-synthesis.com/webbook/ 35_pt/pt_database.php?PT_id=66 소디의 주기율표 / http://www.meta-synthesis.com/webbook/ 35_pt/pt_database.php?PT_id=288 벤파이의 주기율표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 3578067&cid=58949&categoryId=58982 현재의 주기율표/https://en.wikipedia.org/wiki/Periodic_table#/ media/File 모즐리 / https://namu.mirror.wiki/w/ 98쪽 현자의 돌/http://blog.daum.net/miruekan/365 유리/https://wikivisually.com/wiki/Crystallography 99쪽 과일, 약 / 셔터스톡 뵐러 / https://ko.wikipedia.org/wiki/ 100쪽 생약 / 셔터스톡 아스피린-http://blog.lgchem.com/2014/12/chem-in-name/ 101쪽 플레밍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 commons/thumb 페니실린콜로니/http://botit.botany.wisc.edu/toms_fungi/images/ pen-colony.jpg 페니실린 광고/http://www.digitaldeliftp.com/DigitalDeliToo/ Images/The-Doctor-Fights-Schenley-Ad-1944.png 102쪽 피라밋, 모르타르 / 셔터스톡 나일론 광고 / https://commons.wikimedia.org 103 쪽 고양이 / http://physicsbuzz.physicscentral. com/2010/10/2010-physics-nobel-prize-for-invisible.html 탄소 나노 소재/https://www.windpowerengineering.com/wpcontent/uploads/2014/02/McDermott-graphite-forms.jpg 그래핀 http://blog.daum.net/obk2030/16518536 106쪽 존재의 대사슬 / https://en.wikipedia.org/wiki/ 107쪽 린네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arl_ von_Linn%C3%A9_croped.jpg 수술의 수 분류 / https://natwaddell.wordpress.com/ 하늘다람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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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맞이꽃 돌연변이 / http://www.yourarticlelibrary.com/ 125쪽 왓슨과 크릭/http://dataphys.org/list/watson-and-cricks3d-model-of-dna/ 왓슨과 크릭 논문 / http://www.eoht.info/page/DNA 프랭크린 X선 회절 사진 / http://dnaandsocialresponsibility. blogspot.kr/ 126쪽 인간 게놈 프로젝트 / https://www.thinglink.com/scene/ 646061868649021440 127쪽 중합 효소 연쇄 반응/https://www.gene2drug.com/ 2016-market-real-time-pcr/ 128쪽 훅 현미경과 세포/https://commons.wikimedia.org/wiki/ https://lensonleeuwenhoek.net/content/hookes-microscope 린네, 식물의 종/http://en.wikipedia.org/wiki/Species_Plantarum 라마르크 / https://www.myinterestingfacts.com/jeanbaptiste-lamarck-facts/ 동물철학 / https://in-libris.com/products/philosophiezoologique-vol-i 멘델 / http://www.atoute.org/n/article69.html 월리스 / http://www.bellerbyandco.com/blog/random/thewallace-line-faunal-boundary/ 월리스선 / https://coraltriangleadventures.com/wp-content/ uploads/2016/03/Wallace-Line.jpg 더프리스 / https://en.wikipedia.org/wiki/Hugo_de_Vries 초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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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onobuXLT1qfqcw0o1_1280.jpg 137쪽 알하이삼 광학 실험 / http://www.muslimheritage.com/ article/reflections-optics-time 138쪽 뉴턴링 / http://semesters.in/newtons-rings/ 139쪽 하위헌스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 commons/a/a4/Christiaan_Huygens-painting.jpeg 안경1 / https://i.pinimg.com/736x/74/bf/84/74bf843df6600 b83608dc922637353cd.jpg 안경2 / https://lh4.googleusercontent.com/ 망원경 / http://blog.koreadaily.com/_data/user/n/o/u/ nounkwak/image/2009/10/25162220_54.jpg 현미경 / https://www.google.co.kr/search?sa=G&hl=ko&q= microscopio+de+robert+hooke&tbm=isch&tbs 140쪽 영 / https://d3d00swyhr67nd.cloudfront.net/ 영의 실험 / 게티 이미지 손바닥 / 셔터스톡 141쪽 전자 현미경 사진 / https://i.pinimg.com/474x/30/ea/ b8/30eab8ab5cc6b1ffeb9aa2eef60c0886--mechanicalwave-modern-physics.jpg 142쪽 윌리엄 길버트 / https://en.wikipedia.org/wiki/William_ Gilbert_(astronomer)#/media/File:Willian_Gilbed_M.D._ 지구 자석 모형 / https://en.wikipedia.org/wiki/Terrella#/ media/File:Terrella3452.png 143쪽 볼타 전지 / https://qph.fs.quoracdn.net/main-qimgc3a9d89124f60cdc350f55eaf3aba4c0-c 144쪽 외르스테드 실험 장치 / https://nationalmaglab.org/ education/magnet-academy/watch-play/interactive/ 백열등 / https://brunch.co.kr/@vittzlighting/11 발전기 / https://en.wikipedia.org/wiki/Electric_generator#/ media/File:Modern_Steam_Turbine_Generator.jpg 노트북 / https://pixabay.com/ko/ 휴보 / http://skinnovation-if.com/과학계의-한류스타-휴보 145쪽 패러데이 대중 강연 / http://journal.sciencemuseum.ac. uk/media/2442/fig-1-tri-98488.jpg 146쪽 전자기파 종류 / https://sites.google.com/site/ thepropertiesoflightenergy/_/rsrc/1434302102748/ 147쪽 4가지 힘 / http://scienceblogs.com/startswithabang/ files/2011/05/Fundamental-Forces-of-Nature.png 149쪽 마이컬슨-몰리 실험 장치 / http://blogfiles.naver.net/ 빛 전파 / 셔터스톡 150쪽 원자 폭탄/https://cdn.govexec.com/media/img/upload/ 2018/01/05/shutterstock_266546210.jpg 151쪽 휘어진 우주 공간 / https://cdn-images-1.medium. com/max/1600/1*YBIAoKCjaJxX_SXH4hU3jA.jpeg 중력 렌즈 현상1 / https://cdn-images-1.medium.com/max/ 1600/0*MaBSby9XdWeJgCm3. 중력 렌즈 현상2 / https://cdn-images-1.medium.com/max/ 1600/0*FmLfWKq0M5HEUBdC. 153쪽 솔베이 회의/https://www.wykop.pl/cdn/c3201142/ comment_b8fAO1kJ1lYFKnJXovxDuEOAzFJ4a7Li,wat.jpg 156쪽 아그리콜라 / https://sciencesource.com/Doc/SCS/ Media/TR1_WATERMARKED/ 스테노 / https://i.imgur.com/TLH7Jih.jpg 157쪽 허턴/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0/ 0e/Hutton_James_portrait_Raeburn.jpg 158쪽 베르너/http://sp.lyellcollection.org/content/specpubgsl/ 317/1/163/F1.large.jpg 에트나 산/https://www.buffalolib.org/content/milestones-science/ charles 글렌틸트 관입암상/https://www.usgs.gov/ 159 쪽 라이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 File:Charles_Lyell_print.png 161 쪽 베게너 /https://iainbking.files.wordpress. com/2015/07/wegener.jpg 162쪽 해양저 확장 / https://www.thinglink.com/scene/ 624677765831983106 162쪽 대서양 해저 지형도 / https://www.interkart.de/ 163쪽 토리첼리의 실험 / 게티이미지 163쪽 마그데부르크 반구 실험 / 게티이미지 164쪽 라디오존데 / http://radiosondemuseum.org/wpcontent/uploads/2012/03/WhatIsARadiosonde.jpg 천리안 기상 위성 /https://ko.wikipedia.org/wiki/%EC%media/ File:G_SA-COMS_01.jpg 165쪽 태양광 패널 / https://d1o51r9qdgnnlz.cloudfront.net/ 우주 배경 복사 / http://3.bp.blogspot.com/우주선의 상상도 / http://thewallpaper.co/space-science-artviewlandscapes-futuristic-fantasy-hd-landscape 166쪽 만국 박람회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 commons/ 167쪽 공업 기술의 발전 /http://www.corradinomineo.it/ wp-content/uploads/2017/11/Economia.jpeg http://procaffenation.com/wp-content/uploads/2017/04/ sewing-room-at-stewart-1875-grafton-compressor.jpg https://www.angelaholdsworth.com/wp-content/ uploads/2013/12/Cotton-People_mini.jpg https://cdn.history.com/sites/2/2014/01/alexandergraham-bell-makes-telephone-call.jpg Ⅴ. 동양 및 한국 과학사 174쪽 장형 / https://id.wikipedia.org/wiki/ 서경의 혼천의 / http://contents.history.go.kr/mfront/km/view. do?levelId=km_015_0030_0020_0020 소송의 천문 시계 / 게티이미지 곽수경의 간의 / http://www.pmo.ac.cn/ 176쪽 순우 석각 천문도 /http://cfile5.uf.tistory.com/image/ 26267343580DB3FF1968F6 177쪽 지동의 / https://www.nature.com/articles/531585a 종이 / https://en.wikipedia.org/wiki/ 나침반 / http://www.future-redesign.com/entry/%E7 화약 / https://regmedia.co.uk/2013/03/25/fire_arrow. jpg?x=1200&y=794 178쪽 니덤 /http://richardpettymd.com/ 180쪽 아스트롤라베 판화 / https://www.nga.gov/Collection/ art-object-page.48742.html 아스트롤라베 / 셔터스톡 181쪽 번역하는 학자들 / http://aljabrr.blogspot.kr/ 182쪽 이슬람인들의 관측/http://heritagesocialstudies.weebly. com/islamic-achievements.html 콰리즈미 /http://3.bp.blogspot.com/-BcUaVvzDIKY/VYPHGqGaoII/ AAAAAAAADdY/H9QwR8Oli2c/s1600/ 아랍어 대수학 교재/https://pt.wikipedia.org/wiki/ 183쪽 이슬람의 병원 / https://www.aramcoworld.com/ en-US/Articles/March-2017/The-Islamic-Roots-of-theModern-Hospital 알라지 / https://www.aramcoworld.com/ 이븐알하이삼 / https://s3.amazonaws.com/ 184쪽 코르도바 도서관 / http://alandalustours.blogspot.kr/ 이븐시나 / https://persons-info.com/persons/IBN_SINA 이븐루시드 / http://ncc.phinf.naver.net/ncc01/2010/4/22/97/ 02.jpg 이슬람의 천문대/http://www.krpia.co.kr/IMAGE_DATA/PLCT000 05130/IMG/KR_269_S_V21_048.jpg 185쪽 아라비아 숫자 0 / http://worldnow.in/wp-content/ uploads/2017/09/zero-in-india.png 186쪽 다라니경 / http://contents.history.go.kr/mfront/ti/ viewImage.do?imageId=ti_010_0100_01 두루마리 불경 / http://blog.daum.net/eyei2/15075264 석가탑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 3/3a /Three_Storied_Stone_Pagoda_at_Bulguksa_ 187쪽 고구려 무용총 / 게티이미지 188쪽 고구려 덕화리 북두칠성 / http://contents.history.go.kr/ data/img/km/km_015_big/km_015_046_01.jpg 고구려 덕화리 천정 벽화 / http://contents.history.go.kr/data/ img/km/km_015_big/km_015_046_01.jpg 189쪽 규표 / http://xyzpedia.org/2012/05/gnomon 수미산 / http://www.jsbrdo.net/bbs/board.php?bo_ table=0204&wr_id=106 첨성대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 190쪽 대장경 목판 /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 national_treasure/1613003.jpg 장경판전 전경/http://www.doopedia.co.kr/ 장경판전 통풍창/http://cfile10.uf.tistory.com/image/226C5E5052 F6DC213082DA 장경판전 내부/https://ko.wikipedia.org/wiki/%ED%95%A9%EC% B2%9C_ 191쪽 직지심체요절 / https://ko.wikipedia.org/wiki/ 조선 시대 주자소 / http://img.hankyung.com/photo/201401/ 조선왕족실록 / http://sillok.history.go.kr/main/main.do 192쪽 금속 활자 /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 726987.html 서양 금속 활자 / https://denisdoeland.com/2014/03/17/ achtergrond-als-schrijver-ben-je-data/ 193쪽 천상열차분야지도 / http://kyujanggak.snu.ac.kr/ dohae/sub/dohae_image/L/D1370_01L.jpg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http://www.gogung.go.kr/img/ perm_06_02.jpg 간의/http://arim.pe.kr/liguard_bbs/aribbs/data_file/ li_ancient_312_ganwi.jpg 194쪽 자격루 / https://en.wikipedia.org/wiki/Borugak_ Jagyeongnu#/media/File:BoRuGak_Jagyeongnu.JPG 앙부일구 / http://gomuseum.seoul.go.kr/mobile/ searchmuseum/SearchMuseumDetail.do?museumId=305&p 정남일구 / http://contents.history.go.kr/data/img/km/ km_015/km_015_105_01.jpg 일성정시의 /http://contents.history.go.kr/data/img/km/ km_015/km_015_106_01.jpg 칠정산내편 / http://contents.history.go.kr/front/km/ popImage.do?imgpath=/data/img/km/km_015_big/ 195쪽 김홍도의 논갈이 / https://ko.wikipedia.org/wiki/ 12율관 / http://www.inews365.com/data/photos/20160519/ art_14633019142254.jpg 196쪽 훈민정음 혜례본 / http://www.heritage.go.kr/heri/cul/ imgHeritage.do?ccimId=2277761&ccbaKdcd 197쪽 측우기 / http://contents.history.go.kr/data/img/ta/ ta_m71/img_136_03.jpg 199쪽 중국판 곤여만국전도 / https://upload.wikimedia.org/ wikipedia/commons/7/71/Kunyu_Wanguo_Quantu_ 200쪽 서양신법역서 / http://contents.history.go.kr/front/km/ print.do?levelId=km_031_0050_0010_0030&whereStr= 아담 샬 / https://ko.wikipedia.org/wiki/%EC%9A%94%ED% 95%9C_%EC%95%84%EB%8B%B4_%EC%83%AC_%ED 201쪽 서양의 놀라운 기계 / https://ko.wikipedia.org/wiki/ %EB%82%9C%ED%95%99#/media/File:EnseiKiki1.jpg 해체신서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 commons/thumb/c/ca/Kaitai_shinsho_01.jpg/ 데지마섬의 네덜란드인/http://www.wikiwand.com/en/Glossary_ of_Japanese_words_of_Dutch_origin 202쪽 조선인이 만난 이국인 / http://img.hani.co.kr/imgdb/re size/2015/0828/144066974158_20150828.JPG 홍대용의 혼천의/http://contents.history.go.kr/mfront/common/ imageView.do?itemId=ta&imageId=ta_mm_h71_img_314_01 205 쪽 과학조선 / http://img.hani.co.kr/imgdb/resize/ 2017/0416/00502589_20170416.JPG 과학데이 포스터 / 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 general/791001.html 206쪽 일제 강점기 교육 / http://contents.history.go.kr/front/ ti/viewImage.do?imageId=ti_027_0220_01 207쪽 한국 과학기술연구소 / http://ehistory.go.kr/page/ view/p극hoto.jsp?photo_PhotoSrcGBN=BK&detl_ 고리 원전 1호기 / http://cdn.pressian.com/data/photos/cdn/ 20171146/art_1510733482.jpg 208 쪽 세종과학기지 / https://www.kopri.re.kr/home/ contents/images/contents/m_1111000/kingimg_01.jpg 우리별 1호 / http://cfile4.uf.tistory.com/image/273C2C4F52F 862FF049B27 Ⅵ. 과학과 현대 사회 214쪽 전기의자 / http://2il.org/a-dentist-invented-the- electric-chair/ 테슬라 / https://ko.wikipedia.org 215쪽 전신기 / http://businessownersurvivalkit.com/thetelegraph-in-your-hand/ 216 쪽 도버해협전신선 / https://fineartamerica.com/ featured/dover-to-calais-telegraph-wire-1850-science 크림전쟁전신선 / http://gbcovercollector.co.uk/wp-content/ uploads/2015/03/1992_137th-Anniversary-of-the-Battle 217쪽 자동차 대량 생산 시스템/https://userscontent2.emaze. com/images/512940d6-97-8082-43f80e0bb3d1.jpg 랭뮤어 / 게티 이미지 218쪽 남성모델 / https://data.gessulli.com.br/ file/2017/12/14/H091204-F00000-W052-2000x0.jpeg 여성모델 / https://ds04.infourok.ru/uploads/ ex/1253/000b0ed2-cef843a4/img6.jpg 219쪽 원숭이재판 / http://www.lecrayon.net/Le-blog/Loeil-le-mot/L-OEIL-ET-LE-MOT-Darwin-Episode 다로 / http://m.blog.daum.net/nebelstern1967/2375? 220쪽 ECS / http://dongascience.donga.com/news. php?idx=20600 223쪽 왓슨과 크릭 / http://dataphys.org/list/watson-andcricks-3d-model-of-dna/ 돌리 / http://www.businessinsider.com/what-happeneddolly-cloned-sheep-2016-7 인간게놈프로젝트로고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 commons/thumb/f/f3/Logo_HGP.jpg/906px-Logo_HGP.jpg JCVI syn1.0 / http://www.jcvi.org/cms/research/projects/ first-self-replicating-synthetic-bacterial-cell/photos/ 진핵생물 / http://science.sciencemag.org I-GEM 로고 / http://2017.igem.org/Team:INSA-UPS_France 224쪽 아실로마 회의/https://profiles.nlm.nih.gov/ps/retrieve/ ResourceMetadata/DJBBRC 225쪽 필트다운인 사건 / https://ko.wikipedia.org STAP세포 발견 / https://www.voakorea.com/a/1931412.html 226쪽 워싱턴 호수/http://4.bp.blogspot.com/-dUbu7OxOlMc/ VgSCuo8mR 227쪽 촛불 / 셔터스톡 오존홀 / NASA 229쪽 로봇팔 / 셔터스톡 230쪽 뇌과학 / https://www.ibm.com/blogs/nordic-msp/ cognitive-vision-retail-becomes-reality/ 왓슨 진단 영상 https://www.ibm.com/watson/health/imaging 인용 자료 & 사진 출처 245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45 2018-08-31 오후 4:28:12 찾아보기 ㄱ 가변 이론 가설 세우기 가설 연역법 가속도 법칙 간의 갈레노스 갈릴레이 갈릴레이 역학 갈릴레이 위성 거인의 어깨 게리케 게이뤼삭 격변설 결찰사 실험 계몽주의 고구려 덕화리 2호분 고구려 무용총 고려대장경 고전 역학 혁명 고전 유전학 고지자기 곤여만국전도 공론화위원회 과학 관련법 과학 혁명 과학 혁명의 구조 과학과 기술의 융합 과학과 인문학 과학과 종교 과학기술처 과학사 과학의 본성 과학의 역할 과학이란 과학적 방법 과학지식보급회 곽수경 관성 관성 법칙 관성 좌표계 광양자설 광자 광전 효과 광학 연구 광학의 서 구달 구텐베르크 국제 우주 정거장 귀납 추론 귀납주의적 과학관 귀추법 111 15 15, 17 79 174 44 69, 73 74 70 72 163 92 109, 159 80 79 188 187 190 72 123 162 199 228 220 56 22 215 30 219 207 27 11 214 10 26 205 174 74 79 150 152 141 141 137 183 26 192 165 13, 14 19 16 그래핀 그로스테스트 그리스-로마 고전 그리피스 극락조 글렌틸트 관입암상 금속 재 금속 활자 기계론적 자연 철학 기상학 기체 반응의 법칙 김석문 김용관 103 51 56 124 105 158 87 191 77 163 92 202 204 ㄹ 라마르크 라부아지에 라부아지에의 원소 라이엘 랭뮤어 러커토시 럼퍼드 레오나르도 다빈치 루돌프 목록 르네상스 린네 111 85 88 158 217 25 133 59 66 57 106 ㅁ ㄴ 나노 화학 나일론 낙하 실험 난학 내적 접근법 농사직설 농업 혁명 뇌과학 뉴턴 니덤 103 102 73 201 27 195 48 230 71, 78, 138 178 ㄷ 다라니경 다원주의 가치관 다윈 대기 과학 대동여지도 대륙 이동설 대륙과 해양의 기원 대수학 대항해 시대 대흑사병 더프리스 데모크리토스 데카르트 데카르트 제1법칙 도성도 돌연변이설 돌턴 돌턴의 원자 가설 돌턴의 원자론 동물 철학 동의보감 동일 과정설 동중서 등속 원운동 DNA 186 29 112 163 211 160, 161 161 182 59 56 122 40 76 76 211 122 90 90 90 111 196 109, 157 173 63, 74 125 마이어 마이컬슨 마테오 리치 맥스웰 맨틀의 대류 메소포타미아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자 멘델 멘델 유전학 멘델레예프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 모스 모스의 전신기 목판 인쇄술 몰리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무세이온 무한 우주론 문제 인식 물질론 물질의 이중성 미켈란젤로 24 149 198 146 161 35 37 120 122 94 95 215 215 186, 190 149 186 43 202 15 71 141 57 ㅂ 반증 반증주의 발명학회 버그 서한 범생설 베게너 베다 문명 베르셀리우스 베살리우스 베이컨 벨 보어의 원자 모형 보일 볼타 볼타 전지 뵐러 20 21 205 224 117 160, 161 185 91 59 14, 51 216 152 85 143 143 99 부영양화 뷔퐁 블래킷 빅뱅 이론 빛의 굴절 법칙 빛의 입자설 빛의 입자성 빛의 파동성 226 110, 157 162 164 137 152 138 138, 140 ㅅ 4원소설 4체액설 사회적 구성주의 산소의 발견 산업체 연구소 삼국사기 삼단 논법 상대성 상대성 이론 상정고금예문 생기론 생명 윤리 생식질 연속설 서양신법역서 세종과학기지 세포 세포내 범생설 세포설 소송 수다라장 수성론 수치 예보 수학적 추론 순우천문도 스위트피 스콜라 철학 스테노 스푸트니크 1호 시헌력 신소재 신약 개발 신약 개발 과정 신플라톤주의 실증주의 41 40 28 87 217 187, 188 13 75 151 191 99 222 119 200 208 119 122 119 174 190 155, 158 164 59 176 123 51 156 165 200 102 100 101 58 27 ㅇ 아낙시만드로스 106 아낙시메네스 39 아담 샬 200 아리스토텔레스 41, 49, 57, 106 아리아바타 185 아보가드로의 법칙 93 아보가드로의 분자 개념 92 아스트롤라베 180, 182 아스피린의 개발 100 246 부록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46 2018-08-31 오후 4:28:12 찾아보기 아우구스티누스 47 아유르베다 185 아인슈타인 150 아카데미아 데이 린체이 61 아퀴나스 51 아페이론 39 아폴로 11호 165 알마게스트 44, 65 암모나이트 155 앙부일구 194 양자 역학 152, 153 양자론 148 어셔 156 에너지 보존 법칙 134 에디슨과 테슬라의 전류 전쟁 214 에테르 149 엠페도클레스 39 역사주의적 과학 철학 23 역학적 에너지 134 연금술 46, 183 연소 이론 85 연역 추론 13 열소 이론 132 열역학 131 열역학 법칙 134 열역학 제1법칙 134 열역학 제2법칙 135 염색체설 123 영 140 예수회 선교사 198, 199 와동 가설 77 왕립학회 61 외르스테드 144 외적 접근법 28 우라니보르 천문대 66 우주 개발 164 우주 과학 163 우주 구조의 신비 67 우주 배경 복사 165 우주 탐사선 165 운동량 보존 법칙 77 원소 기호 91 원숭이 재판 219 위험 사회 228 유교적 관료제 173 유기체적 자연관 173 유사 과학 21 유전 물질 124 유전자 123 유전자 조작 127 유전자설 124 유전체 126 육교설 160 음양오행 173 의방유취 196 의산문답 202 이명법 107 이븐루시드 184 이븐시나 184 이븐알하이삼 137, 183 이슬람 문화 48 28수 176, 187 이집트 문명 35 이집트 문자 37 이화학연구소 206 인간 게놈 프로젝트 126 인간 대상 실험의 기본 원리 222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 114 인공 생명체 127 인공 지능 229 인문주의 57 일기 예보 164 일반 상대성 이론 151 일성정시의 194 입자론 98 ㅈ 자격루 194 자연 선택 112, 113 자연 철학자 39 작용 반작용 법칙 79 장경판전 190 장하석 29 장형 174 재이론 173 적충류 111 전성설 118 전신 사업 216 전자기장 146 전자기학 142 정남일구 194 정상 과학 23 정상 상태 우주론 165 제1원인 76 제2차 산업 혁명 217 조선왕조실록 191 존재의 대사슬 106 종교 개혁 59 종의 기원 110, 112, 114 종합 효소 연쇄 반응법 127 주전원과 이심원 63 줄 134 중국의 4대 발명품 177 중국의 과학과 문명 178 중국의 우주론 175 중력 렌즈 현상 151 지구 수축설 159 지구 중심설 63 지동의 177 지자기 역전 162 지전설 202 지질학 원리 158 지층 누중의 법칙 156 지혜의 집 직지심체요절 진화 등급설 진화론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결 질량 보존의 법칙 181 191 111 158 219 88 ㅊ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천리안 기상 위성 천문 시계 천문 역법 천문학 혁명 천상열차분야지도 천원지방 천인감응론 천주실의 천체력 천하도 철학적 접근 첨성대 초신성 발견 측우기 치유의 서 칠정산내·외편 칠정산내편 칠정산외편 62, 64 164 174 174, 193 62 193 175 173 200 175 211 18 189 65 197 184 194 194 194 ㅋ 카르노 칸니차로 케플러 케플러 제1법칙 케플러 제2법칙 케플러 제3법칙 케플러의 우주 모형 코페르니쿠스 콰리즈미 쿨리지 크세노파네스 134 93 67 68 68 68 67 63 182 217 39 ㅌ 타원 궤도 법칙 탈레스 태양 중심설 토리첼리 톰슨 통신 혁명 특수 상대성 이론 티코 브라헤 68 39 69 163 159 216 150 65, 66 ㅍ 파르메니데스 파이어아벤트 40 29 파피루스 판 판 구조론 판게아 팔만대장경 패러다임 패러다임의 전환 패러데이 팽창 우주론 페니실린 대량 생산 페니키아 알파벳 포퍼 프린키피아 프톨레마이오스 플라톤 플라톤 철학 플로지스톤 플리니우스 피타고라스 36 162 161, 162 161 190 22 23 145 164 101 38 20 71, 72 44, 63 41 58 85 44 39 ㅎ 하비 하위헌스 한국과학기술연구소 한국과학재단 한역서학서 합성 생물학 해양저 확장 해저 확장설 해체신서 핵산 향약제생집성방 향약집성방 허블 허턴 헤라클레이토스 헤르메스주의 헤스 헬레니즘 문명 호일 혼천설 혼천의 혼합설 홈스 홍대용 화성론 화학 명명법 화학 원론 화학 물질 명명법 황종 율관 회회력 획득 형질 후성설 훈민정음 훔볼트 히포크라테스 80 139 207 207 200 223 162 162 201 124 196 196 164 157 39 58 162 43 165 175 174 121 161 202 155, 157, 158 89 89 89 195 194 111 118 196 164 40, 116 찾아보기 247 과학사최종모음-0514.indb 247 2018-08-31 오후 4:28:13 집필진 김영민 •부산대학교 물리교육과 교수 정인경* •고려대학교 과학기술학연구소 연구교수 •고려대학교 대학원 과학기술학 협동과정 과학사 이학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과학사 석사 •저서 _ 청소년을 위한 한국과학사, 보스포루스 과학사, 뉴턴의 무정한 세계, 과학을 읽다 손영운 •과학 저술가, 전)신목고등학교 교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과학교육학 박사 •저서 _ 과학과 과학교육에서 문제발견과 귀추, 과학교육학의 세 계, 고등학교 물리 I·물리 II 교과서(2015개정 교육과정) 이재붕 •한국교원대학교 종합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서울대학교 과학교육학 학사 •저서 _ 청소년을 위한 서양과학사, 손영운의 우리 땅 과학답 사기, 중학교 과학 교과서(07개정 교육과정) 이준기 •전북대학교 과학교육학부 생물교육전공 부교수 •한국교원대학교 환경교육 박사, 과학교육학 석사 •저서 _ 신재생 에너지(중학교 인정도서) * 표시는 집필진 책임자임. •한국교원대학교 과학교육학 박사 •저서 _ 과학적 탐구사고력 향상을 위한 과학지식의 생성과 평가 단원별 집필자 Ⅰ단원 이준기 Ⅱ단원 손영운 Ⅲ단원 손영운 Ⅳ단원 정인경, 이준기. 김영민, 손영운 Ⅴ단원 정인경 Ⅵ단원 이재붕, 정인경, 이준기 연구진 박희경(광주고등학교), 서혜애(부산대학교), 오민영(세화고등학교), 정원(전북대학교), 조헌국(단국대학교) 대구광역시교육청인정도서심의회 위원 기초조사위원 박화수(강동고등학교), 배지득(덕화중학교), 고원태(시지고등학교), 전종호(대구일과학고등학교), 서준혁(도원고등학교), 홍영심(강동중학교) 본심사위원 박화수(위원장, 강동고등학교), 배지득(덕화중학교), 고원태(시지고등학교), 전종호(대구일과학고등학교), 서준혁(도원고등학교) 개발진 개발책임 | 김화진 편집 | 김도희, 오상근, 김선주, 백상현 표지디자인 | 이기복 디자인 | 디바젤 삽화 | 권성호, 김기환, 김윤재, 최상규, 최준석 대구광역시교육청에서 2018년 8월 31일 인정 승인을 하였음. 정가 고등학교 과학사 초판 발행 지 은 이 발 행 인 인 쇄 인 2019. 3. 1 정인경 외 4인 씨마스(서울특별시 중구 서애로 23 통일빌딩) 씨마스(서울특별시 중구 서애로 23 통일빌딩) 원 이 교과서의 본문 용지는 우수 재활용 제품 인증을 받은 재활용 종이를 사용했습니다. 교과서에 대한 문의 사항이나 의견이 있는 분은 교육부와 한국교과서연구재단이 운영하는 교과서민원바로처리센터 (전화: 1566-8572, 누리집 주소: http://www.textbook114.com 또는 http://www.교과서114.com)에 문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 도서에 게재된 저작물에 대한 보상금은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정하는 기준에 따라 사단법인 한국복제전송저작권협회(02-2608-2800, www.korra.kr)에서 저작재산권자에게 지급합니다. 내용 관련 문의 | 씨마스 출판팀 전화: 02-2274-1590~2 전송: 02-2278-6702 누리집 주소: www.cmass21.co.kr 공급 업무 대행 | (사)한국검인정교과서협회 (10881)경기도 파주시 문발로 439-1(신촌동 734-1) 개별 구입 문의 | 누리집 주소: www.ktbook.com 전화: 031-956-8581~4 (사)한국검인정교과서협회 ISBN | 979-11-5672-303-5 53400 찾아보기(246-247)최종0118.indd 248 2018-11-04 오후 6:3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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