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문화 보고서, 전시 《강명희-방문》을 관람하고
202422885 김이나
▲서울시립미술관, 《강명희-방문》 전시 입구
자연과 대면해 그 속의 본질을 탐구하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풍으로 그려내는 작가 강명희의
개인전이 《강명희-방문》이라는 이름의 전시로 2025년 3월 4일 화요일부터 2025년 6월 8일 일요
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렸다. 《강명희-방문》에서는 강명희의 60여 년에 걸친 도전적인 여
정들과 대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강명희 작가는 특히 1972년 한국을 떠나 동서양을 넘나드
는 다양한 국가를 방문한 경험을 빛과 색을 통한 작품으로 녹여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전시
에서는 몽골의 고비사막, 남미 파타고니아, 남극, 제주도 등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탐구하고, 느낀
자연의 본질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녹여낸 작품들이 전시장을 가득 채웠으며, 작가의 이 여정을
따라 관람하는 길이 한 명의 관객으로서 기꺼이 즐겁게 느껴졌다.
전시는 주로 거대한 사이즈의 회화 작품을 벽에 디스플레이하고, 작가가 이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거쳐온 연습과 탐구의 시간을 응축하는 서적과 연습용 그림들을 유리관에 담아 추가로 관람
객의 동선에 배치함으로써 해당 작품을 그렸을 시기 작가가 집중해서 탐구하던 자연의 주제는 무
엇이었는지, 그 국가나 장소는 어디였는지를 관객이 따라갈 수 있게 도와주는 친절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00호는 훌쩍 넘기는 커다란 스케일의 작품을 관객이 올려다볼 수 있게 하는
배치에서 자연의 어떠한 무서운 경외심을 느끼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 구성 덕분에 전시장이라는
사방이 벽으로 갇힌 공간에서도 마치 그 속에 있는 듯한 넘실거리는 자연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
었다.
작가의 작품들은 주로 그림의 대상이 되는 장소가 제목이 된다는 특징이 있는데, 추상적인 선과
색으로 이루어져 있는 작품을 보며 그 대상이 되는 곳의 풍경을 관객 스스로 그려보게 하는 과정
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특히나 나에게 있어 이 과정이 가장 흥미로웠던 작품 중 하나는 <안덕계
곡 (2024, 캔버스에 유채, 280×340 cm, Collection and Courtesy of Richard Hsiao)> 이였는데, 다른
작품에 비해 다소 어두운 계열의 유채를 많이 사용했음에도 나는 이 속에서 계곡을 방문한 작가
의 어린아이 같은 즐거움을 포착할 수 있었다.
▲<안덕계곡 (2024, 캔버스에 유채, 280×340 cm, Collection and Courtesy of Richard Hsiao)>
가까이에서 관찰해보니, 이 작품은 특히나 연필로 그려진 초반 스케치를 지우지 않고 그 위에
유채를 덧칠하듯 얇게 바르고, 물감을 뿌려 완성된 듯 보였다. 나는 이 모든 흔적에서 형태에 구
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어린아이의 시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계곡의 시원한 물이 떠오르는 푸른
계열의 몽글몽글 맺힌 물감 뒤에 은은히 보이는 스케치 선을 보며, 벽에 연필로 그림을 그리고
물감을 덧바르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에, 비록 안덕계곡이라는 장소를 가보지는 못했
지만 작가에게 계곡과 자연은 하나의 탐구 대상이자 자유로운 놀이터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었다. 오른쪽 하단에 뭉개지듯 표현되어 있는 점들은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고, 그 위에 청록
색으로 표현되어 있는 아지랑이 같은 것들은 소나무 같기도, 돌에 낀 이끼 같기도 하다. 이처럼
관람객에게 상상의 자유를 열어주고, 보는 이에게도 자신만이 해석한 안덕계곡을 방문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방문>이라는 전시의 제목과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 중 하나라고 생
각했다.
안덕계곡 외에 《강명희-방문》전에서 인상 깊게 관람한 작품으로는 <태평양 (2012, 캔버스에 유
채, 300×500cm, Collection and Courtesy of VILLPEN)>과 <벼락맞은 벚나무 (2024-12, 캔버스에
유채, 117×150cm, Private Collection)>가 있다.
▲<태평양 (2012, 캔버스에 유채, 300×500cm, Collection and Courtesy of VILLPEN)> (좌)
<벼락맞은 벚나무 (2024-12, 캔버스에 유채, 117×150cm, Private Collection)> (우)
먼저, 태평양은 작가의 생애를 한 작품에 응축한 듯한 느낌을 주는 압도적인 작품이였다. 사전
배경인 작가의 끝없는 자연 여행 및 탐구의 과정을 아는 관객이라면 이 작품이 주는 특별함을 제
목에서부터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서광동리에 살면서> <안덕계곡> 등 다른 작품은 주로 작가
자신의 눈이 돋보기가 되어 눈으로 본 범위의 장소나 대상을 그린 점에 비해 <태평양>은 명확하
고 구체적인 장소에 대한 작품이라기보다는 그 장소에 도달하기 위해 작가가 지금까지 배, 비행
기를 타고 넘어온 바다에 대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황금-구리빛으로 구현된 작가의 바다는 일반적
인 바다의 모습과는 다르다. 또, 작가의 태평양에는 구체적인 도착지인 육지가 보이지 않는다. 이
작품이 작가가 한창 세계를 넘나들던 시기인 2012년에 그려진 점과 동판이 부식된 것 같은 색감
을 전체적인 배경을 깔았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한편으로는 더 이상 자연을 대면하고, 새로운 환
경으로 향하는 것에 대한 작가의 지침도 엿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물고기 비늘을
연상케 하는 반질거리는 재질의 물감 사용.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퍼진 물감들이 중앙에서 결국
모여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는 모습이 마치 우주의 나팔 같기도, 거대한 가오리에 올라탄 사람의
형상 같기도 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바다는 지구상에서 우주와 가장 닮은 미지의 세계 중 하나라
고 한다. 어쩌면 작가는 <태평양>이라는 작품을 그려내면서 이 너머에 있을 새로운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설레임을 바다에 비유에 표현하려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벼락맞은 벚나무>은 2024년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작가의 초기 작품처럼 형태가 다 해체되지
않아 나뭇가지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비교적 뚜렷한 갈색으로 그려낸 벚
나무의 몸통과 나뭇가지 위에 흩날리는 벚꽃, 나뭇가지와 흡사하게 생겼지만, 옅은 농도의 은색
물감을 사용해 묘사한 벼락 맞은 흔적들은 이미 벼락이 한 차례 지나갔음에도 여전히 한 생명에
게 영향을 주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주로 파괴적인 힘으로 묘사되는 벼락이지만, 내가 관찰하
기에 이 작품에서 벼락은 그렇게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것은 아닌 듯하다. 반짝거리는 펄이 들어
간 물감으로 묘사된 시련은 오히려 생명에게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는 중일지도 모른다. 뿌리부터
꽃잎까지 단단하게 해주는 힘,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꼿꼿하게 서 있는 벚나무가 작가에겐 기특
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율동적인 주황빛으로 묘사된 나무의 뿌리가 마치 내게 단단한 뿌리만,
단단한 마음만 있다면 어떤 시련이든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전시 《강
명희-방문》에서 가장 오래 지켜본 작품이 바로 이 <벼락맞은 벚나무>이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규모도 작고 화려한 기법이 들어간 그림은 아니지만, 작가가 전시회를 찾은 관객들에게 하고 싶
은 무형의 말이 가장 뚜렷하게 마음 깊게 와닿은 작품이었다.
숨 가쁜 일상 속에서 디지털 화면 너머로 작품을 접하던 나에게, 《강명희-방문》전은 잊고 지냈
던 공감각적 체험을 일깨워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전시장 가득한 강명희 작가의 작품들은 자연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와 자유로운 예술혼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특히 <안덕계곡>, <태평양
>, <벼락맞은 벚나무>를 통해 작가의 시선으로 자연을 '방문'하고, 그 속에서 어린아이와 같은 순
수한 즐거움과 삶의 깊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전시를 통해 작품에 담긴 작가의 의도를 완벽히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 점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나만의 해석을 더 하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거대한 스케일의 작품 앞에서 압도적인 자연의 에너지를 느끼고, 섬세한 붓
터치와 색감 속에서 작가의 감정을 공유하며 깊은 울림을 받았다. 모니터 너머로 작품을 감상하
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지난날을 반성하며, 앞으로는 전시장을 직접 찾아 작품과 교감
하는 경험을 더욱 소중히 여겨야겠다고 다짐했다. 《강명희-방문》전은 예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
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잊고 있던 감각을 깨우는 특별한 '방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