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두기 1. 제1장은 데이비드 흄David Hume의 <기적에 관하여Of Miracles>를 옮긴 것으 로, 에릭 스타인버그Eric Steinberg가 편집한 《 인간 이해력 탐구An Enquir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 (Indianapolis : Hackett Pub. Company, 1977)에 수록된 것을 번역 대본으로 삼았다. 제2장과 제3장은 흄의 이 소론에 대한 토 머스 러더퍼드Thomas Rutherford와 새뮤얼 빈스Samuel Vince의 반박문을 옮긴 것 으로, 캐나다 요크 대학의 교수로서 흄 전문가인 스탠리 트위먼Stanley Tweyman이 편 집한 《기적에 대한 흄의 견해Hume on Miracles》(Bristol : Thoemmes Press, 1996) 에 수록된 것을 번역 대본으로 삼았다. 2. 원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옮긴이가 보충한 내용은 〔 〕 안에 넣었다. 3. 원서에서 이탤릭체로 강조한 부분은 이 책에서도 이탤릭체로 표기했다. 4. 저자의 주는 (저자주)로, 대본으로 사용한 책의 편집자의 주는 (편집자주)로, 옮긴 이의 주는 (옮긴이주)로 표시했으며, 모두 후주로 처리했다. 해제의 주는 모두 옮긴이의 주이다. 5. 주요 인명과 책명은 최초 1회에 한해서 원어를 병기했다. 6. 단행본과 잡지는 《 》로, 논문이나 소론은 〈 〉로 표시했다. 7. 맞춤법과 외래어 표기는 1989년 3월 1일부터 시행된 <한글 맞춤법 규정>과 《문교 부 편수자료》를 따랐다. 들·어·가·는·말 종래 한국 철학계에서 데이비드 흄David Hume은 칸트Immanuel Kant가 독단의 잠에서 깨어나 선험 철학1)을 정립하는 데 영향을 미친 극 단적인 회의론자로 알려져왔다. 이 때문에 그의 철학은 인식론 위주로 소 개되어왔을 뿐 그가 일생 동안 관심을 기울였던 종교 철학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종교의 문제는 그가 일생을 두고 끈질기게 천착해온 주제로 서 거의 모든 저작에서 종교에 대한 논의가 다루어지고 있다. 특히 흄의 위대한 첫 저작인 《인성론A Treatise of Human Nature》에서는 종교와 신학에 관해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기적에 관하여Of Miracles> 라는 글은 원래 이 책에 수록될 예정이었으나 《인성론》의 출간이 어려워 질 수도 있으리라는 판단에서 유보되었다. 또한 《인성론》에 대한 해명서 의 성격을 갖는 《 인간 이해력 탐구An Enquir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역시 종교와 신학에 대해 많이 언급되고 있으며, <기적 에 관하여>와 역시 종교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는 <특별 섭리와 내세에 대 하여Of a Particular Providence and of a Future State>가 이 책에 수록되어 있다. 이 밖에도 흄은 종교에 관한 소론(小論)을 여러 편 썼는데 그의 《소론집Essays : Moral, Political, and Literary 》에 수록된 <미신 과 광신에 대하여Of Superstition and Enthusiasm>, <자살에 대하여 Of Suicide>, <영혼의 불멸성에 대하여Of the Immortality of the Soul> 등이 바로 그것이다. 흄은 이외에도 종교를 주제로 한 두 편의 저 서를 출간했는데 그 하나가 《 종교의 자연사Natural History of Religion 》 이고 다른 하나가 사후에 출간된 《 자연 종교에 관한 대화 Dialogues Concerning Natural Religion》이다. 흄의 종교 철학은 그가 《종교의 자연사》 서론에서 밝히고 있는 두 과 제, 즉 종교적 신념을 정당화하는 종교의 토대 문제와 종교적 신념의 발 생을 규명하는 종교의 기원 문제로 요약할 수 있다. 전자는 《자연 종교에 관한 대화》에서, 후자는 《종교의 자연사》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자연 종 교에 관한 대화》에 나타난 종교적 신념의 철학적인 무근거성에 관한 지적 은 흄을 무신론자로 판단하는 근거가 되었고, 《종교의 자연사》에서 중점 적으로 언급되는 대중 종교의 해악성은 흄을 반종교론자로 판단하는 근 거가 되었다. 그러나 1905년에 《마인드Mind 》지에 발표된 영국의 대표적인 철학자 중 한 사람인 노먼 켐프 스미스Norman Kemp Smith2)의 <흄의 자연주 의Naturalism of Hume>라는 기념비적인 논문은 흄의 철학을 단순히 파괴적이며 회의적이라고 판단한 종래의 해석을 구성주의적인 것으로 해 석할 수 있는 지평을 열어놓았다. 켐프 스미스에 따르면 흄은 근대 이성 주의의 이성에 대한 지나친 신뢰에 기인하는 독단론의 지적 오만을 경계 하기 위해 회의론적인 입장을 취하고는 있으나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기 반을 부정하는 극단적인 회의론자는 아니며, 일상적인 삶의 양식을 자연 과학에서와 같이 관찰과 실험을 통해 밝히고자 했던 방법론적인 자연주 의자3)이다. 흄의 철학에 대한 이 같은 자연주의적 해석은 오늘날 철학계 에서 대체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유독 종교에 관한 입장에 있어 서는 그가 극단적인 회의론자라는 해석이 여전히 지배적이다. 그러나 흄 을 방법론적인 자연주의자로 볼 때 그가 인식에서와 마찬가지로 종교에 서도 회의론자가 아니라 구성주의자였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흄은 《자연 종교에 관한 대화》에서 자연 신학4)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신 의 존재와 본성에 관한 철학적 논증의 불합리를 비판함으로써 이성을 통 해 종교에 이르는 길이 닫혀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에 기 초한 지적인 설계자에 대한 자연적 신념[이신론(理神論)5)]이 존재함을 보 여줌으로써 인간 본성을 통해 종교(자연 종교6))에 이르는 길을 열어놓고 있다. 한편 흄은 인간 본성 안에서 종교의 기원을 탐구하는 《종교의 자연 사》에서 인류의 역사를 통해 살펴볼 수 있는 모든 대중 종교는 지적인 설 계자에 대한 자연적 신념(이신론)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사제들에 의 해 인위적으로 도입되고7) 그릇된 철학에 의해 독단화되고 계시에 의해 정 당화된 의인화된 유신론에 기초함으로써 심하게 왜곡되어 있다고 주장한 다. 흄은 인간 본성에 기초한 이신론이야말로 일상적인 삶에서 미신과 광 신의 잔재를 제거하고 세속적인 도덕의 원리나 정치적 질서를 확보할 수 있는 건전한 종교적 신념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종교의 자연사》에서는 이러한 이신론이 왜곡되지 않기 위해서는 인간 본성에 내재하는 자연적 인 나약성의 요소인 감각과 상상에 적절히 의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래서 그는 감각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해 미신으로 흐르거나 상상의 역 할을 지나치게 강조해 광신주의로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해, 가톨릭과 개신 교의 중도적인 입장이라고 생각한8) 영국 국교회를 현실적으로 가장 이상 적인 종교로 간주했다. 요컨대 흄은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모든 신화적 요소를 부인하고 오 직 도덕적인 실천만을 유일한 종교적 실천으로 삼았던 18세기 영국 이신 론자9)들의 개혁적인 자연 종교와, 계시와 신화적인 토대 위에서 인간 본 성에 반하는 온갖 광신적인 종교적 실천을 강요해온 타락한 기성 종교의 두 극단 가운데서 종교를 인간의 자연적인 나약성에 기인하는 삶의 양식 으로 수용하고 중용을 찾고자 했던 종교 개혁론자였던 것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기적에 관하여>는 종교 개혁론자로서 영국 이신 론자들의 자연 종교와 기독교라는 기성 종교 사이에서 중용을 찾고자 했 던 흄의 면모를 찾아볼 수 있는 글로서 사이비 종교와 참된 종교를 구분 짓는 시금석을 마련하고자 했던 그의 의도를 엿보게 해준다. 이 글이 처 음 발표되었던 18세기에는 수많은 학자와 성직자들이 이 글을 기독교의 토대를 파괴하는 반기독교적인 글로 간주해 비판이 줄을 이었다. 이 비판 들은 주로 두 가지 방향에서 전개되었다. 하나는 이성적 관점의 비판으로 흄이 전개한 논변상의 논리적인 결함을 지적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신앙적 관점의 비판으로 기적에 관한 종교적 담론이 흄의 불신앙에서 비 롯된 편견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기적에 관하여>와 함께 이 책에서 소 개하는 토머스 러더퍼드Thomas Rutherford의 글은 전자에 해당하며 새뮤얼 빈스Samuel Vince의 글은 후자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기적에 관 한 흄의 비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당시의 학자와 종교인 에게 흄의 견해가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유행처럼 번진 반이성적, 탈토대주의적 non-foundationalism 성격의 탈근대성의 사조는 그것이 주장하는 다 원성과 다양성을 종교의 영역에까지 확장시키면서 오늘날 규범적 종교다 원주의를 확산시키고 있다.10) 그 결과 탈근대성의 담론은 종래 이단과 미 신 등 사교(邪敎)로 간주되었던 많은 사이비 종교를 포함하여 그 사회적 유익성이 아직 검증되지 않은 많은 유사 종교의 입지를 강화시켜주는 결 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 볼 때, 근대 종교 철학의 효 시이자 전형이라 할 수 있는 기적에 관한 흄의 종교 철학적 논의는 참된 종교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할 뿐 아니라 삶의 긴 장과 불안 가운데서 그 어느 때보다 기적을 바라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 게 참된 기적의 의미를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 다. 옮긴이 이태하 제1장 기적에 관하여 1. 틸랏슨John Tillotson의 책11)을 보면 진지하게 반박할 만한 가치도 없 는 교리에 대해 어떤 논변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간결하고, 격조 있고, 강력하게 〔성찬식의 빵과 포도주를 통한 예수 그리스도의 육(肉)과 혈(血)의〕 실재적 현존(現存)12)을 반박하는 논변이 있다. 이 박식한 성직 자에 따르면 사람들은 대부분 성서나 전승의 권위는 단지 예수 그리스도 가 자신의 신성한 사명을 입증해 보이기 위해 행했던 기적을 목격한 사도 들의 증언에 기초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기독교가 진리임을 입 증하는 우리의 증거가 우리의 감각이 진실함을 입증하는 증거보다 불충 분하다는 말이 된다. 이는 우리 종교의 초창기 저술가들의 경우에도 예외 가 아닌데, 기독교가 진리임을 입증하는 증거는 그들의 제자들에게 전해 지는 동안 점차 약화되어 결국 어느 누구도 자신이 직접 지각하는 경우처 럼 자신의 증언을 확신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약한 증거는 결코 강한 증거를 물리칠 수 없으며, 실재적 현존에 대한 교리가 성서에 분명하게 계시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에 동의해야 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추리 규칙 에 전적으로 어긋나는 것이 된다. 실재적 현존에 관한 주장은, 그것의 근 거가 되는 성서와 전승이 감각의 경우에서와 같은 분명한 증거를 제공하 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인 증거로서 간주되는 경우 그것은 일반적 경험에 어긋나는 것이 되며, 또한 성령의 임재(臨在)를 통해 우리의 마음 에 다가오는 것도 아니다. 최소한 가장 완고한 광신이나 미신을 침묵시키고 그것의 유혹에서 벗 어나기 위해서는 이러한 종류의 결정적인 논증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없 다. 나는 지혜 있고 학식 있는 사람들이 온갖 종류의 미신적인 현혹을 영 원히 저지하고 세상이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어떤 논변을 발견했다고 자부한다. 기적과 이적(異蹟)에 관한 이야기는 그것이 신성하든 불경스럽든 역사가 끝나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태에 관해 추리를 할 때 경험은 유일한 안내자 역할을 하지만 전혀 오류가 없지는 않으며 종종 실수를 저지른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 다. 우리 고장의 기후를 12월의 어느 주보다는 6월의 어느 주에 더 화창 한 날씨로 예상하는 것이 경험에 합치하는 올바른 판단이지만 분명 그러 한 예측은 빗나갈 수도 있다. 그렇다고 우리는 경험에 문제가 있다고 생 각하지 않는데, 일반적으로 경험은 면밀한 관찰을 통해 예기치 않은 사건 이 일어날 수 있는 불확실성을 사전에 일러주기 때문이다. 모든 결과가 가정된 원인에서 확실하게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건들은 시간과 장소를 초월해 한결같이 공존하며, 어떤 사건들은 항상 변화하여 우리의 예측을 벗어난다. 따라서 사태를 추리함에 있어 ‘경험이나 사태에 기초한 증거moral evidence’13)는 가장 높은 단계에서 가장 낮은 단계에 이르기 까지 확실성의 정도가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현명한 사람은 증거에 비례하여 자신의 믿음을 조절한다. 절대 확실한 경험에 기초하여 추론을 하는 경우 그는 확실성을 갖고 사건을 예 측하며 그의 과거 경험을 그 사건이 미래에 일어날 완벽한 증거로 생각한 다. 이 밖의 다른 경우에는 좀더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다시 말해 반대 의 사례를 고려해야만 한다. 즉 어느 쪽에 지지 사례가 더 많은지를 고려 해보아야만 한다. 한쪽으로 생각이 기울게 되면 의심하거나 주저해야 하 며 마침내 어떤 판단을 내릴 경우에도 그 증거는 우리가 개연성이라 부르 는 것을 넘어서지 못한다. 개연성이란 실험과 관찰이 상반되는 것을 가정 하며, 이때 한쪽이 다른 쪽보다 우세할 경우 그 우세함에 비례해서 증거 의 개연성이 결정된다. 동일한 실험을 100번 했는데 단 한 번의 모순된 결과가 나왔다면 그 실험은 매우 높은 확실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지만, 100번이 되었든 50번이 되었든 그 사례나 실험은 어떤 사건에 대한 불확 실한 예측에 불과하다. 실험 결과가 상반될 경우에는 항상 양자를 비교해 야만 하며, 우월한 증거가 얼마나 설득력 있는지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좀더 많이 나온 결과에서 좀더 적게 나온 결과를 차감해보아야만 한다. 이 원리들을 어떤 특정한 사례에 적용하기 위해 사람들의 증언 또는 증 인이나 목격자의 보고에서부터 추론하는 것이 우리의 삶에서 가장 일반 적이고 유용하고 필요한 추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같은 추론 방 식을 어떤 사람은 그것이 인과 관계에 기초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할 수 있다. 나는 단어에 대해 논의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러한 유형의 추론에 대해서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은 단지 사람들의 증언이 진실하다는 것과 증인이 보고한 바와 사실이 일치한다는 것을 관찰하기 때문이다. 어 떠한 대상들도 관찰 가능한 연관성connexion을 갖고 있지 않으며, 우리 가 하나에서 다른 하나를 도출하는 모든 추론은 단지 그들간에 존재하는 항시적이고 규칙적인 연언conjunction에 대한 경험에 기초할 뿐이라는 것이 하나의 일반적 준칙general maxim이다. 우리는 사람의 증언에 치 우친 나머지 이 같은 원칙에 예외를 두어서는 안 되며, 증언자와 사건과 의 관계 역시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필연성을 띠고 있지 않음이 분명하다. 기억력이 신뢰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진리와 성실을 추구하는 성향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또한 거짓이 드러났 을 때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면, 다시 말해서 이러한 것들이 타고난 품성 임이 경험을 통해 밝혀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인간의 증언을 조금도 신뢰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나 거짓과 악행에 젖어 있는 사람은 우리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지 않는가. 목격자의 증언에 의존하는 증거는 과거의 경험에 기초하는 것이므로 경험에 따라 다르고, 어떤 특정한 보고와 어떤 종류의 대상이 항시 연결 되느냐 아니냐에 따라 증명이 되거나 개연성을 띤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 다. 이러한 종류의 판단을 내릴 때는 수많은 상황들을 고려해야 하며, 그 러한 판단들과 관련해 제기될 수 있는 모든 논쟁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우리가 의존해야 할 궁극적인 규준은 항상 경험과 관찰에서 나온다. 궁극 적인 규준으로서의 경험이 어디서나 한결같지 않을 경우 우리의 판단은 불가피하게 대립하게 되며, 다른 유형의 증거에서와 같이 논쟁의 대립과 상호 파괴가 일어나게 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보고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며, 의심과 불확실성을 야기하는 상반되는 상황들을 고려하며, 어느 편이 우세한지를 알게 되면 우세한 편으로 기울게 된다. 따라서 상반되는 증거의 설득력이 강할수록 최초의 증거에 대한 확신은 줄어들게 된다. 현재 이 같은 상반되는 증거는 여러 가지 상이한 원인들에서 생겨날 수 있는데, 그것은 상반되는 증언의 모순, 목격자들의 특색이나 수, 증언하 는 방식, 또는 이 모든 상황에서 생겨날 수 있다. 목격자들이 서로 상반되 는 증언을 할 때, 그들의 수가 적거나 의심스러울 때, 그들이 자기가 주장 하려는 것에만 관심을 가질 때, 그들이 주저하며 증언할 때나 또는 반대 로 지나치게 확신하며 증언할 때 우리는 그 사건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된 다. 인간의 증언에 근거한 추론의 경우 그것의 설득력이 약화되거나 상실 될 수 있는 경우는 이 밖에도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증언이 입증하고자 하는 사실이 진기하고 신비스러운 면을 지니고 있다고 하자. 그 경우 사실이 진기할수록 증언의 신뢰성은 떨어진다. 우리가 목격자나 역사가들을 신뢰하는 것은 그들의 증언과 사 실 사이의 모종의 인과적 관계를 선험적으로 지각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들의 증언이 사실과 일치하는 것을 늘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증언된 사실을 관찰할 수 없을 경우 상반되는 경험이 대립할 수 있는데, 그중 우 세한 것이 잔존하는 설득력을 갖고 우리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목격 자들의 증언에 대해 어떤 확신을 주는 경험의 원리가 그들이 입증하려 하 는 사실과 상반되는 것에 확신을 주기도 하는데 이러한 모순으로 인해 필 연적으로 믿음과 권위의 대립과 상호 파괴가 일어나게 된다. “카토Marcus Porcius Cato14)가 한 말이라면 나는 어떤 것도 믿지 않 는다.” 이 말은 그 철학적인 애국 지사가 생존했던 바로 그 시절 로마에서 유행했던 속담이다.15) 어떤 사실에 대한 불신은 이처럼 위대한 대가조차 무력화시킬 수 있다. 서리가 내리는 것을 믿지 못했던 인도의 왕자16)는 사려 깊게 판단하여, 그가 접해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늘 한결같이 경험했던 사건으로는 유추 해볼 수 없는 그러한 자연의 사실에 동의하기 위해서 더욱 강력한 증언을 요구했다. 그러한 사건은 그의 경험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경험과 일치하는 것도 아니었다.17) 그러나 목격자의 증언이 사실이 아닐 개연성을 높이기 위해서 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사실이 단지 신기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기적적인 것이라 고 가정하고, 그 증언이 그것만으로도 완벽한 증거가 된다고 가정하자. 그 경우 그 증거에 상반되는 증거가 있게 되고 그중 강력한 증거가 설득 력을 지니게 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것과 반대되는 증거의 설득력 을 제외한 만큼의 설득력을 지닌다. 기적은 자연 법칙의 위반이다. 확고하고 불변하는 경험은 자연의 법칙 을 확립해왔으며, 따라서 모든 경험에 입각한 추론이 완벽한 것처럼 기적 에 상반되는 증거 역시 그 성격상 완벽하다. 모든 사람은 죽으며 납덩어 리는 공중에 떠 있을 수 없으며 화염은 나무를 태우고 물로 꺼진다는 사 실들은 자연의 법칙과 일치하는 사건들이고 그러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 기 위해서는 자연의 법칙에 대한 위배, 즉 기적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어 찌 개연성을 넘어서는 사건이 아니겠는가? 자연의 일상적인 과정에 따라 일어난 것이라면 어떤 것도 기적이 될 수 없다. 건강해 보이는 어떤 사람 이 갑자기 죽었다면 그것은 기적이 아니다. 그러한 종류의 죽음은 일상적 인 것은 아니지만 종종 목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 면 그것은 어떤 시대에도 어떤 지역에서도 목격된 적이 없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기적이다. 따라서 모든 기적적인 사건에는 그것에 상반되는 일양 (一樣)적인 경험이 있게 마련이며, 그렇지 않은 경우 그 사건은 기적이라 불릴 수 없을 것이다. 일양적인 경험이 증거가 된다는 점에서 당연히 기 적의 존재를 부정하는 직접적이고도 만족할 만한 증거가 존재하며, 그 증 거는 그보다 강력하면서 그와는 상반되는 증거에 의해서만 파괴될 수 있 으며, 그렇지 않은 한 기적은 신뢰할 만한 것이 될 수 없다.18) 우리의 관심을 끌 만한 일반적 준칙이자 명백한 결론은 “그것이 입증 하고자 하는 사실보다 그것의 거짓됨이 더 기적적인 그러한 종류의 증거 가 존재하지 않는 한 어떠한 증언도 기적을 입증하기에 충분치 않다는 것 이다. 따라서 그러한 경우에 추론들간에 상호 파괴가 있게 되며, 더욱 우 월한 추론은 열등한 추론이 지닌 설득력을 차감하고 남은 만큼의 설득력 을 지니게 된다.” 누군가가 나에게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을 때 나는 즉시 그 사람이 나를 속이고 있는지, 아니면 그가 속은 것 인지, 아니면 그가 증언한 사실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기적을 서로 비교해보고 나서 더욱 개연성이 큰 기적을 받아 들이며, 항상 좀더 놀라운 기적을 거부하게 된다. 그의 증언의 거짓됨이 그가 증언한 사건보다 더 기적적인 경우에만 비로소 그는 나의 믿음이나 견해를 바꿀 수 있는 것이다. 2. 앞의 논의에서 우리는 기적을 주장하는 증언이 완벽한 증명이 될 수 있 으며, 그 증언의 거짓됨이 실제로 이적prodigy일 수 있다고 가정했다. 그 러나 그와 같은 양보는 지나치게 관대한 것으로, 어떠한 기적적인 사건도 그렇게 완벽한 증거를 지니지 않는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첫째, 기적이 기만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줄 만큼 양식과 학식을 갖 추었거나 사람들을 속이려는 어떤 의도가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떨쳐 버리게 할 만큼 성실하거나, 거짓임이 발각되었을 때 크게 손상을 입을 신용이나 명성을 갖추고 있는 충분히 많은 사람들에 의해 증언되고, 동시 에 그 증언이 공개되어 세상이 다 알게 됨으로써 숨길 수 없는 방식으로 기적이 증언된 경우는 유사 이래 찾아볼 수 없다.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 을 완벽하게 신뢰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 모든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둘째, 인간의 본성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는 어떤 종류의 기적이든 우 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갖게 되는 확신을 극단적으로 감소시키는 어 떤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추리를 할 때 일반적으로 따르게 되는 원칙은 우리가 경험하지 않은 대상들이 우리가 경험한 대상과 유사할 것 이고, 우리에게 가장 일상적인 것으로 보이는 것이 항상 가장 개연적이 고, 상반된 논증이 있는 경우에는 좀더 많은 과거의 경험에 근거한 논증 을 선택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규칙을 따르면서 우리는 상식적인 선에서 신뢰할 수 없거나 비일상적인 사실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게 되지 만 우리의 정신이 항상 그런 규칙을 준수하는 것은 아니다. 황당하고 기 적적인 어떤 주장이 있을 때 정신은 바로 모든 규칙의 권위를 파괴시키는 상황 때문에 이러한 주장을 너무도 쉽게 받아들인다. 기적으로 인해 생겨 나는 유쾌한 정서인 놀라움과 경이로움의 감정passion은 이러한 감정을 야기시킨 기적적인 사건을 믿고자 하는 감성적인sensible 성향을 불러일 으킨다. 그리고 그 기적적인 사건에 대해 이 같은 즐거움을 직접 느낄 수 없고 그것을 믿을 수 없는 사람조차 간접적으로, 즉 타인의 반응을 통해 기쁨을 나누고자 하며, 타인의 경탄을 자아내는 데서 만족과 즐거움을 느 낀다. 우리는 바다와 땅 위의 괴물에 대한 이야기, 멋진 모험담, 낯선 사람과 기묘한 풍습에 대한 여행가들의 신비로운 이야기를 얼마나 열심히 듣는 가? 그러나 종교의 정신이 경이로움에 대한 애착과 연결되면 상식의 종말 이 오게 되며,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의 증언은 권위를 상실하게 된다. 성 직자는 광신주의자일 수 있으며, 따라서 실재하지 않는 것을 본다고 상상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거짓임을 알면서도, 이 세상에 대한 선 의(善意)를 갖고 성스러운 주장을 늘리기 위해 계속해서 거짓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이 같은 기만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강력한 유혹에 의 해 생겨난 헛된 망상은 어느 누구보다도 성직자에게 강하게 작용하며, 이 기심 역시 성직자에게 강하게 작용한다. 신자들은 성직자의 증언을 검토 해볼 수 있는 충분한 판단력을 지니지 않을 수 있으며, 일반적으로 실제 로 그렇다. 이처럼 장엄하고 신비로운 주제와 관련해 그들은 어떤 판단을 내리기를 포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설혹 그들이 판단력을 기꺼이 사용한다고 해도 그들의 감정과 열띤 상상력은 정상적인 판단을 흐려놓 는다. 신자들의 경신(輕信)이 성직자의 무례를 키우며 성직자의 무례는 신 자들의 경신에 더욱 힘을 발휘한다. 절정에 이른 웅변은 이성이나 반성의 여지를 남겨놓지 않고 전적으로 상상과 감성으로 흐르며, 청중을 사로잡아 그들의 판단을 흐린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 같은 절정에 이르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비록 툴리우스 Marcus Tullius Cicero19)나 데모스테네스Demosthenes20)는 로마나 아테네의 청중들을 사로잡을 수 없었지만 프란체스코회 수도사는 순회설 교자가 되었든 수도원 교사가 되었든 천박하고 세속적인 감정을 강도 높 게 자극함으로써 모든 사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어느 시대에나 서로 상반되는 증거나 증거 자체의 불합리로 인해 드러 나게 된 날조된 기적과 예언, 초자연적인 사건들의 수많은 사례들은 진기 하고 신비로운 것을 향한 인류의 강렬한 성향을 충분히 입증해주며 따라 서 당연히 이러한 유형의 모든 이야기들에 대한 의심을 낳게 마련이다. 심지어 가장 일반적이며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건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지방 소도시에서 결혼에 관한 이야기만큼 쉽게 그리고 빨리 전파되는 이야기는 없을 것이다. 조건이 맞는 두 젊은이가 서로 채 두 번도 만나지 않았는데 마을 주민 모두는 곧 그들을 하나로 묶어놓는 다. 흥미로운 소식을 전하고 그것을 소문 내고 그 소식의 첫 번째 전달자 들에 포함되는 기쁨은 지성인들에게도 만연되어 있다. 너무나도 잘 알겠 지만, 식견이 있는 사람은 더욱 확실한 증거에 의해 그 이야기가 확증될 때까지는 그것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와 같은 열정이나 이보다 좀더 강한 열정이 바로 대부분의 사람들로 하여금 좀더 강력한 열정과 확신으 로 모든 종교적 기적들을 믿고 전파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닌가? 셋째, 초자연적이며 신비로운 사건들을 주로 무지하며 야만적인 민족 들 사이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는 사실은 바로 그러한 사건들을 부정하 는 강력한 근거가 된다. 만약 계몽된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이러한 사건 중 일부를 받아들이고 있다면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제재와 권위로 항상 기존의 견해를 수호하고 자손에게 전달하려 하는 무지하고 야만적인 조 상 때문인 것이다. 모든 민족의 건국역사를 듣다 보면 우리는 자연의 전 체적인 구조가 붕괴되고 모든 것이 지금과는 상이한 방식으로 작용하는 어떤 신세계로 빠져드는 상상을 하게 된다. 여기서 전쟁, 혁명, 질병, 기 근, 죽음은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자연적인 원인들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이 사건들에 개입되어 있는 이적, 예언, 신탁, 심판 등이 바로 흔 치 않은 자연적인 사건들을 이상한 사건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점점 계몽됨에 따라 우리는 개국 역사에는 기적적이거나 초자연적인 것이 존 재하지 않고, 기적적이거나 초자연적인 것들은 신비한 것을 향한 인류의 일상적인 성향에서 야기된 것이며, 이 같은 성향이 식견과 학식을 통해 종종 제어를 받기는 하지만 인간 본성에서 철저히 근절될 수는 없다는 사 실을 깨닫게 된다. 기이한 역사가들의 이야기를 읽어본 현명한 독자는 그런 이적의 사건 들이 오늘날 일어나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어느 시대에나 사람들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 같은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사례는 충분히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지 혜롭고 현명한 사람들이 조롱하는, 심지어 대중조차 믿지 않는 수많은 신 비로운 사건들에 대해 누구나 들어보았을 것이다. 엄청나게 널리 퍼지고 부풀려진 유명한 거짓말도 처음에는 아무도 믿지 않지만 좀더 적당한 토 양에 뿌려지면 그것은 거기 관련된 사람들에게는 거의 기적으로 비치게 된다. 루키아노스Lucianos21)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22) 지금은 잊혀졌지만 한때는 아주 유명했던 사이비 예언가 알렉산더가 파플라고니아23)에서 처 음으로 사기를 쳤다. 그곳 주민들은 극도로 무식하고 어리석었으며, 심지 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도 넘어갔다. 그의 사기를 진지하게 생각할 만 큼 어리석었던 그들은 더 나은 정보를 받아들일 기회가 없었다. 그 거짓 말은 전파되는 과정에서 더욱 부풀려졌다. 바보들은 그 거짓말을 부지런 히 전파했으며, 반면에 지혜롭고 학식 있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그 이야 기가 말도 되지 않는다며 조롱하는 데 만족했지 그것을 반박할 수 있는 특정한 사실을 알리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그 사이비 예언가는 무지한 파플라고니아 주민들부터 그리스 철학자와 로마의 가장 명망 있 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추종자들을 형성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현명한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까지도 그의 기만적인 예언에 속아 군사 원정의 성공을 믿을 만큼 그에게 관심을 가졌다. 사기를 칠 때는 무식한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 좀더 유리한데, 많 은 사람들을 속이기에는 너무나 황당한 사기(드물기는 하나 모두를 속일 수 있는)라 하더라도 예술과 학문이 발전된 도시가 아닌 궁벽한 지방에서 는 성공할 확률이 매우 높다. 무지하고 미개한 사람들은 거짓된 사실을 널리 퍼뜨린다. 그들은 그 같은 사기를 반박하고 때려부술 수 있을 만큼 의 능력이나 권위를 지니고 있지 않으며, 결국 신비한 것을 향한 인간의 성향이 한껏 발휘된다. 따라서 처음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지 않았던 거짓말이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확실한 사실이 된다. 그러나 알렉산 더가 아테네에 자리를 잡았다면 그 유명한 학문의 전당에 있던 철학자들 이 곧 전 로마 제국을 통해 그 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를 전파했을 것 이고, 위대한 권위에 의해 지지되고 이성과 웅변으로 전개되는 그들의 견 해를 통해 모든 사람들이 계몽되었을 것이다. 파플라고니아를 우연히 지 나간 루키아노스는 이러한 선한 임무를 수행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바라기는 해도, 알렉산더와 같은 사람의 사기 행각을 간파하고 그것을 폭로한 루키아노스와 같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항상 있 는 일이 아니다.24) 기적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네 번째 이유로서 내가 덧붙이고자 하는 것 은, 수많은 증언에 의해 반증되지 않는 기적이란 심지어 명확하게 밝혀지 지 않은 것이라 할지라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모든 기적이 증언의 신빙성을 파괴할 뿐 아니라 증언이 증언 자체를 파괴한다. 이 점 을 좀더 잘 이해하기 위해 종교의 문제에서 상이한 종교는 서로 모순되며 따라서 고대 로마와 터키, 시암〔타이의 옛 이름〕과 중국의 종교가 견고한 토대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님을 살펴보자. 모든 기적은 이 종교 중 어느 하 나에서 가공된 것이고(이 모든 종교는 기적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직접적 인 목적은 그 기적이 공헌할 수 있는 특정한 체계를 세우는 것이며, 좀더 간접적인 목적이긴 하지만 그와는 상이한 다른 체계를 파괴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의 체계를 파괴하는 것은 또한 자신의 체계의 기초를 이루 고 있는 기적의 신뢰성 역시 파괴하는 것이다. 따라서 상이한 종교의 모 든 이적들은 서로 상반되는 사실로 이루어지며, 약하건 강하건 이적들의 증거는 서로 모순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호메트나 그의 계 승자들이 행한 어떤 기적을 믿을 때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보증하기 위해 몇몇 야만적인 아라비아인들의 증언을 내세운다. 그렇다면 우리는 티투 스 리비우스Titus Livius,25) 플루타르코스Plutarchos,26) 타키투스 Publius Cornelius Tacitus27)의 권위도 존중해야 한다. 다시 말해 각 종 교에서 어떤 기적을 언급하는 그리스인, 중국인, 로마 가톨릭교도의 창시 자와 증언자의 권위를 존중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이 마호메트의 기적을 언급하는 양 그들의 증언을 존중해주어야 하며 그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기적이 확실할수록 우리는 그들과 모순된 입장에 처하게 된다. 이 논증은 매우 난해하고 정교한 듯 보이지만 사실 어떤 한 사람의 범죄를 주장하는 다른 두 사람의 증언의 신뢰성이 범죄 발생 당시 그 사람이 200리그 league28) 떨어진 곳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또 다른 두 명의 증언에 의해 깨진다고 생각하는 판사의 추리와 다를 바가 없다. 세속적인 역사 가운데서 가장 유명한 기적 가운데 하나는 타키투스가 전하는 것으로서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us 황제29)의 사건이다. 이 황 제는 알렉산드리아에서, 기적적인 치유를 위해서는 황제를 찾아가야 한 다고 말한 세라피스 신30)의 환영을 쫓아 찾아온 장님을 침으로 고쳐주고, 또 절름발이의 발을 만져 치유시킨다. 저 유명한 역사가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 이 이야기에서31) 모든 상황은 증언에 무게를 더하는 쪽으로 진행 되며, 오늘날 이 타파된 우상적 미신을 옹호하는 데 관심 있는 사람이 있 다면 거기서 그 논증과 웅변의 설득력을 접하게 될 것이다. 근엄하고 친 절하고 노련하고 성실했던 위대한 황제는 전 생애를 통해 친구와 신하들 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으며, 알렉산더Alexander와 디미트리오스 Demetrius가 꾸며낸 종교적으로 진기한 분위기에 결코 넘어가지 않았 다. 그와 동시대의 인물이었던 역사가 타키투스는 공평함과 진실함으로 이름난 사람으로서 모든 고대인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통찰력 있는 천재 로 알려져 있으며, 경신의 성향이 없어서 당시 무신론자이자 신성 모독자 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가 기적을 언급할 때 의존했던 사람들[증언자]은 우리가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분별력과 진실성을 갖춘 사람들로서, 그들 은 플라비우스 가(家)32)가 몰락하여 거짓말에 대한 대가를 받을 수 없게 된 뒤에도 그 사실을 증언하고 그 증언을 확인해주었다.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은 거짓말에 대해 아무런 대가를 지불받지 못하면서도 여전히 증 언을 했던 것이다. 그 사실의 공개적인 성격으로 보아 그렇게 불합리하고 명백한 거짓에 대해서 이 이상의 강력한 증거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외에도 레츠De Retz 추기경33)이 전하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는데 생 각해볼 만하다. 음모를 꾸미던 어떤 정치인이 정치적 탄압을 피하기 위해 스페인으로 도망갈 때 아라곤34)의 수도였던 사라고사를 지나게 되었다. 거기서 그는 성당 문지기로 7년 동안 일해왔고 그 성당에 다녔던 마을 사 람들 모두가 잘 알고 있던 어떤 사내를 보았다. 그는 오랫동안 다리 한쪽 이 없었다. 그런데 잘린 다리에 성유를 바른 후 다리가 정상이 되었다. 레 츠 추기경은 그 정치인이 그 사내가 두 다리를 가진 것을 보았다고 확언 한다. 그 교회의 모든 참사회 의원들과 마을의 모든 주민이 이 기적을 증 언했다. 레츠 추기경은 그 마을 주민들이 열성적인 신앙으로 인해 그 기 적의 철저한 신봉자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기적을 전한 사람은 그 기적과 동시대의 인물로서 똑똑할 뿐만 아니라 회의적이고 자유분방한 성격의 사람이었다. 또한 그 진기한 기적은 거의 위조가 불가능한 것으로 서 증언자가 너무도 많았을 뿐 아니라 증언자들 모두가 한결같이 그 사건 의 직접적인 목격자들이었다. 또한 이 사건에서 증거에 힘을 실어주며 우 리의 놀라움을 배가시키는 것은, 그 이야기를 전하는 추기경 자신이 그 이야기를 믿지 않는 것처럼 보이며 그렇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가 그 성 스러운 사기 행각의 공범자일지 모른다는 의심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이적을 부인하기 위해 증언을 정확하게 반증하고 그러한 거짓을 낳 은 속임수와 경신의 상황을 모두 밝힐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설혹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해도 그것을 밝 히는 것은 전적으로 불가능하며, 심지어 직접 그곳에 있었다 해도 대부분 의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완고한 신앙, 무지, 교활함, 짓궂음 등으로 인해 그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그는, 그런 증거는 분명 거짓이며 인간의 증언이 지지하는 기적은 논쟁거리라 기보다는 조소거리에 불과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프랑스에서, 오랫동안 그 신성으로 사람들을 현혹했으며 유명한 얀센 주의자35)였던 파리 대수도원장의 묘에서 일어난 기적보다 더 한 사람에 게 많은 기적이 일어났던 예는 없었다. 아픈 사람이 낫고 귀머거리가 듣 게 되고 장님이 보게 되는 일이 그 성묘의 일상적인 효험으로서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많은 기적들이 계몽된 시대 에 고귀한 심판자들 앞에서 신망 있는 증인에 의해 즉석에서 직접 입증되 었을 뿐 아니라 오늘날 이 세상의 가장 유명한 극장에서도 증언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기적에 관한 이야기가 책으로 출간되 었으며 방방곡곡으로 퍼지게 되었다. 시민 정부의 지지를 받는 학식 있는 예수회 회원들조차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을 받아들이지는 않으면서도 그 것을 명확하게 반박하거나 거짓임을 밝혀내지 못했다.36) 하나의 사실을 일치되게 확증하는 그렇게 수많은 상황들을 대체 어디에서 또 발견할 수 있겠는가? 그러한 무수한 증언에 대해 그들이 말하는 사건의 절대적인 불 가능성이나 기적의 본성을 지적하는 것 외에 우리가 달리 무슨 반박을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야말로 분명 모든 합리적인 사람들의 눈에는 충분한 반박으로 비칠 것이다. 예를 들어 필리피37)나 파르살리아38)의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처 럼 때에 따라 어떤 사람의 증언은 최고의 설득력과 권위를 지니게 되는데 모든 경우에 모든 종류의 증언이 그와 같은 동일한 설득력과 권위를 지닌 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카이사르파와 폼페이우스파가 서로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주장하고 각 파의 역사가들이 똑같이 자기편 에 유리하게 역사를 기술했다고 가정해보자. 후손들은 어떻게 판단을 내 릴 수 있겠는가? 헤로도토스Herodotos39)나 플루타르코스가 전하는 기 적들과 마리아나Mariana,40) 비드Bede41) 같은 사제 신분의 역사가들이 전하는 기적들 사이에도 마찬가지로 아주 상반된 모순이 존재한다. 현명한 사람들은 기록이 기록자의 나라나 가족 또는 그 자신을 과장하 든 아니면 어떤 방식으로든 그의 자연적인 성향이나 경향성을 일깨우든 간에 기록자의 감정에 치우친 기록에 대해 학문적인 집착을 보인다. 그러 나 하늘에서 내려온 선교사나 예언자나 사자(使者)보다 더 큰 유혹은 없을 것이다. 그처럼 굉장한 인물이 되기 위해서라면 어느 누가 그 많은 위험 과 난관을 피하겠는가? 다시 말해 사람들이 허영심이나 들뜬 상상력에 의 해 먼저 자신을 개종하고 진지하게 기만에 빠져든다면 어느 누가 그처럼 신성하고 가치 있는 대의를 위해 경건한 기만을 이용하는 데 주저하겠는 가? 여기서는 가장 작은 불씨가 가장 큰 화염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이는 재료가 항상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잡담하기를 좋아하는 종족,42) 호기 심에 찬 대중은 미신을 부추기고 경탄을 자아내는 것이라면 아무런 검토 없이 무엇이나 받아들인다. 인류 역사상 이 같은 유형의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이 초기 단계에서 발 견되고 폭로되었는가?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한동안 회자되다가 잊혀 져 후일에 망각 속으로 사라져버렸는가? 따라서 그러한 기록들이 떠돌아 다니는 곳에서 그 같은 현상을 해결하는 방법은 분명하다. 익히 잘 알려 져 있는 경신과 기만이라는 자연적 원리에 입각해 그 현상을 설명하는 경 우, 우리는 규칙적인 경험과 관찰에 부합되는 판단을 내린다. 그런데 우 리가 그렇게 자연스러운 해결책에 의존하기보다 가장 확고한 자연 법칙 에 대한 신비스러운 위반을 인정하는 것은 어찌 된 일인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어떤 야사나 심지어 정사에서도 거짓을 탐지하기 란 쉽지 않은데, 거짓이 발생한 장소에서도 물론 그렇지만 조금 거리가 떨어진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권위와 정확성과 판단력을 지니고 있는 법정조차 가장 최근의 사건을 다루면서 진실과 거 짓을 가려내지 못하고 어찌할 바를 모른다. 심지어 언쟁과 토론과 풍문이 라는 일상적인 방식에 의존한다면, 특히 인간의 감정이 한쪽 편에 치우쳐 있을 때는 문제가 결코 해결되지 못한다. 신흥 종교의 초기 단계에서 현자나 학자는 일반적으로 그 문제를 지나 치게 하찮은 것으로 보아 주목하지 않거나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런데 후일 그들이 기만당하고 있는 대중을 일깨우기 위해 기꺼이 그 기만을 들 추어내려 할 때는 이미 시기를 놓쳐, 그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기록과 증언은 사라지고 없게 된다. 따라서 기록자들의 증언 외에 그들의 기만을 탐지할 수 있는 방법이 없 으며, 그 기만은 너무나 완벽한 것이어서, 사리 분별력과 지적인 예민함 을 지닌 사람이라면 충분히 알 수 있지만 보통 사람들은 이해할 수가 없 다. 대체로 어떤 유형의 기적에 관한 증언도 기적의 개연성을 보여줄 수 없 으며 하물며 기적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없음이 드러났다. 또한 그것이 설 혹 증거라고 해도, 이 증거는 그것이 확증하고자 하는 바로 그 사실의 본 성으로 인해 야기되는 또 다른 증거에 의해 곤경에 처하게 된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인간의 증언에 권위를 제공하는 것은 경험뿐이며, 우리에게 자 연의 법칙을 확신시켜주는 것 역시 경험이다. 따라서 이 두 종류의 경험 이 서로 모순될 때는 하나에서 다른 하나를 뺀 후에 남는 것이 주는 확신 으로 어느 한쪽의 견해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모든 대중 종교의 경우 여기서 설명한 원리에 따라 뺄셈을 한다면 모든 종교가 사라져버릴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인간의 어떤 증언도 기적을 입증할 힘을 갖고 있 지 않으며 또한 어떤 종교의 체계를 위한 정당한 토대가 될 수 없다는 하 나의 원칙을 세울 수 있게 된다. 내가 여기서 언급한 것, 즉 기적은 증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결코 어떤 종교 체계의 토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주목해주기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의 증언이 증거가 될 수 있는 그러한 유형의 기적, 즉 자연 의 일상적 과정에 대한 위반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역사 의 기록 가운데서 그러한 기적을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1600 년 1월 1일부터 8일 동안 전 세계를 뒤덮은 칠흑 같은 암흑이 있었다고 이 세상의 모든 저술가들이 동의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이 진기한 사 건이 아직도 사람들 사이에서 생생하게 회자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또 한 외국에서 돌아온 모든 여행자들이 동일한 이야기를 조금의 차이나 모 순도 없이 전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오늘날 우리의 철학자들은 그 사 실을 의심하는 대신에 그것을 확실한 사실로 받아들이고 그러한 일이 발 생하게 된 원인을 탐구할 것이 분명하다. 자연의 몰락, 쇠퇴, 해체는 유사 한 사례들, 즉 대재앙으로 연결되는 현상들에 대한 사람들의 증언, 즉 매 우 광범위하고 한결같은 증언이 있기에 개연적인 사건으로 여겨지는 것 이다. 그러나 잉글랜드의 역사를 쓰는 모든 역사가들이 1600년 1월 1일에 엘리자베스여왕이 사망했고, 죽은 후에도 여왕이 전과 같이 호위병들과 함께 주치의와 궁정의 조신들 앞에 나타났다는 일치된 기록을 남기고 있 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여왕의 후계자가 의회에서 인준되어 선포되었다 고 가정하자. 그런데 매장된 지 한 달 후에 그녀가 다시 살아나 왕좌를 차 지하고 3년 동안 잉글랜드를 통치했다고 가정하자. 나는 내가 이런 아주 이상한 이야기들에 대해 역사가들이 일치된 기록을 보이는 것에 놀라움 을 감추지 못하나 그렇게 신비스러운 사건을 믿을 생각은 추호도 없으리 라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나는 그녀의 죽음이 꾸며진 것이고 그 후에 일 어난 모든 공적인 상황 역시 꾸며진 것임을 확신한다. 나는 그것이 단지 꾸며진 것이고 전혀 사실이 아니며, 또한 사실일 수도 없다고 단언한다. 여러분은 경솔하게도 지혜롭고 사리 분별이 있는 그 유명한 여왕이 그같 이 어리석은 농간을 통해 아무런 이득도 없는 일로 세상을 속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뿐 아니라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반박할 것이다. 이것은 나를 놀라게 하겠지만 나는 여전히, 사람들의 속임수와 어리석음은 너무 나도 일상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그 이상한 사건들을 자연 법칙에 대한 명 백한 위반으로 보기보다는 차라리 사람들이 꾸며낸 것으로 봐야 한다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이 기적이 어떤 새로운 종교 체계와 연관될 경우, 사리 분별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거부할 뿐 아니라 심지어 아무런 확인 없이도 거 부할 만큼 거짓임이 명확한 우스꽝스러운 거짓말에 모든 사람들이 속아 왔다. 이 경우에 기적의 원인이 되는 존재가 전능한 신이기는 하지만 그 때문에 그것이 좀더 개연적인 것이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연 의 일상적인 과정에서 신의 피조물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신의 속성과 행 위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아직도 과거의 관찰을 돌아보게 되며, 사람들의 증언에서 진리 위반의 사례와 기적에 의한 자연 법칙의 위반 사례 중 어느 것이 더 그럴듯하고 개연적인지를 판단하기 위 해 그것들을 비교하게 된다. 어떤 다른 사태에 관한 증언에서보다 종교적 기적에 관한 증언에서 진리의 위반이 좀더 흔한 일이기에 종교적 기적에 관한 증언의 권위는 훨씬 더 약화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종교적 기적에 관한 증언에는 그것이 어떤 위장을 하고 있든 어떤 관심도 갖지 말아야 한다는 일반적인 해결책을 갖게 된다. 베이컨Francis Bacon 경43)은 이와 동일한 추론의 원리를 수용했던 것 같다. 우리는 모든 괴물들과 기이한 출생이나 산물들, 즉 자연의 새롭고 특이하고 진기한 모 든 것들을 수집하거나 하나하나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나 진리에서 멀어지면 안 되기 때 문에 이것들은 가장 세심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리비우스가 말하는 기이한 이야기처럼 조금이라도 종교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모두 의심해보아야 한다. 또한 마술 이나 연금술에 대해 글을 쓰는 작가나 거짓이나 우화를 좋아하는 작가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모두 의심해보아야 한다.44) 나는 여기 설명된 추론 방법에 아주 만족하는데, 이것이 인간 이성의 원리에 의해 기독교를 옹호하고자 하는 기독교의 위험한 친구나 위장된 적을 좌절시키는 데 이바지할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성한 종교는 이성이 아닌 신앙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에 견뎌내기 어려운 시 험에 종교를 내맡기는 것은 종교의 정체를 드러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다. 이 점을 좀더 분명하게 하기 위해 성서에서 언급된 기적들을 검토해 보자. 그런데 너무 광범위한 주제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 모세 오경45)에 서 찾아볼 수 있는 기적들에 우리의 관심을 국한시키는 한편, 이른바 기 독교의 원리에 따른 하느님 자신의 말씀이나 증언으로서가 아닌 단지 한 인간적인 기록자나 역사가의 기록으로서 모세 오경을 검토하려 한다. 우 선 여기서 야만적이고 무지한 사람들이 전하는 책 한 권을 살펴보자. 이 책은 지금보다 더 야만적인 시절에 씌어졌으며,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사 실이 일어난 때보다 훨씬 나중에 씌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어떠한 일치된 증언에 의해 확증되지도 않았으며, 모든 민족이 그들의 기원을 밝 힐 때 그러는 것처럼 황당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러한 책을 읽어보면 내용이 수많은 이적과 기적으로 채워져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책은 지금 과는 아주 다르게 세상과 인간 본성의 상태를 설명한다. 우리의 타락에 대해, 그리고 천 살이나 먹는 인간의 나이에 대해, 대홍수에 의한 세상의 파괴에 대해, 하늘의 총애를 받는 저자와 한 동포인 한 민족의 임의적인 선택에 대해, 가장 놀라운 상상이라고 할 수 있는 이적 덕분에 속박에서 해방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사람들이 가슴에 손을 얹고 진지하 게 생각해본 후에, 그러한 증언에 의해 뒷받침되는 그러한 책의 거짓이 그 책에서 언급되는 모든 기적들보다 더 진기하고 기적적이라고 생각하 는지, 그리고 위에서 세운 개연성의 기준에 따라 그것을 반드시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판단을 내리기를 바란다. 우리가 기적에 대해 논한 내용은 예언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 다. 사실 모든 예언은 참된 기적이며 그것만이 계시의 증거로 간주될 수 있다. 미래의 사건을 예언하는 것이 인간 본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면 신성한 사명이나 하늘에서 부여하는 권위를 입증하는 논거로 예언을 사용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대체로 기독교가 처음부터 기적을 수반했으며,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기적이 없 으면 합리적인 사람들조차 기독교를 믿을 수 없을 것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다. 이성만으로 기적의 진실성을 확증시키는 것은 역부족이다. 신앙에 의해 기적에 동의하는 사람은 누구나, 인간 이해력의 모든 원리를 전복시 키며 관습과 경험에 어긋나는 것을 믿게 만드는, 자신의 인격 안에서 지 속되고 있는 어떤 기적을 의식한다. 제2장 〈철학적 소론〉의 저자에 반대하여 기적 의 신뢰성을 옹호함46)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기적들도 수없이 행하셨다. 이 책을 쓴 목적은 다만 사람들이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려 는 것이다. <요한복음>, 20장 30〜31절 여기서 성서의 기록자는 그가 어떤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기적을 기록 했는지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그는 그러한 권능을 행할 수 있는 사 람은 인류에게 신의 뜻을 전하도록 위임받은 신의 대리자라는 사실을 납 득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수호자들은 항상 《신약 성서》 에 기록된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이 행했다고 전해지는 기적의 실재성 을, 모든 모순을 넘어서 어떤 사건이 참임을 확증할 만큼의 충분한 증언 에 의해 명료하게 입증해 보일 수 있다면 기적은 우리의 신앙을 지지하는 명백한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 같은 논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상당히 많이 변화됐다. 그리스 도와 그의 제자들이 행한 기적을 입증할 수 있는 증언을 요구받는 대신에 이제 우리는 어떠한 증언이 되었든 그것이 모든 종류의 기적들의 진실성 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가 듣기로 기적은 자연 법칙의 위반이다. 자연의 일상적인 과정에 따라 일어난 것 이라면 어떤 것도 기적이 될 수 없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확실한 불변적 경험이 이 법칙 을 확증하기에 모든 기적적인 사건에는 그것에 상반되는 일양적인 경험이 있게 마련이 다. 그러나 어떤 사태에 대해 판단을 내릴 때 이러한 경험들은 완벽하고 직접적인 증거 가 된다. 따라서 우리는 사실의 본성상 어떤 기적의 존재에 반하는 완벽한 직접적 증거 를 갖게 된다. 이처럼 상반된 증거를 지니고 있는 기적이 신뢰할 수 있는 것이 되려면 그 상반된 증거보다 더 우월한 증거가 있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증언에 의한 증거는 그것이 사실의 본성에 기초한 증거보다 우세하지 않은 한 기적의 존재를 입증할 수 없다. 바꾸 어 말하면 그것이 입증하고자 하는 사실보다 그것의 거짓됨이 더 기적적인 그러한 종류 의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 한 어떠한 증언도 기적에 대한 믿음을 입증하기에 충분치 않 다.47) 복음서에 대한 믿음에 어떤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생각은 복음서의 시비를 가릴 것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이 주제와 관련해 당신 의 생각을 검토해보려고 하는데, 신뢰성의 기준을 살펴봄으로써 이 논증 이 완결적이지 못하며 기적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서 초자연적인 차원 의 증언이 반드시 요구되는 것은 아님을 보여줄 것이다. 우리가 어떤 사실을 목격해 그것에 대한 지식이나 확신을 갖고 있는 경 우가 아니라면 그 사실의 진위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데 사용되는 신뢰성 의 기준은 우리의 경험, 즉 우리의 지식 일반이 사실과 일치하거나 조화 를 이루는가의 여부와 타인의 감각적 증거를 토대로 한 증언이 사실과 일 치하거나 조화를 이루는가의 여부이다. 따라서 사태는 나름대로 경험과의 조화와 일치에 따라 세 가지 종류의 신뢰성을 갖는다. 첫째, 항상 꾸준하고 변함 없이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조금의 불규칙 이나 예외도 없이 발생하는 사건들이 있다. 이러한 사건들의 존재에 대해 서는 어떠한 의심의 여지도 없다. 우리는 그러한 일양적인 경험의 증거를 토대로 그러한 사건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에 다른 어떤 증거도 요구하지 않고 그것에 확신을 갖는다. 우리는 내일 아침에 태양이 떠오를 것이라든가 어제 조수가 밀려왔다는 것에 대해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다른 사실들 역시 이 사실들과 유사하다는 것을 우리는 보았고, 그것이 참임을 알고 있기에 아무 주저 없이 그러한 사실들을 받아들인다. 다시 말해 우리가 그러한 사실들을 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것들이 모든 점 에서 서로 완벽하면서도 완전한 유사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어떤 사건은 정확도가 조금 떨어지고 진리에 덜 가깝다. 우리는 그것들이 우리의 경험과 대체로 일치하지만 전적으로 일치하지는 않는다 는 것을 안다. 영국에서는 12월의 어떤 주간에 서리가 내리고 6월에 천둥 이 치는 것을 일상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대체로 의 견이 일치된다. 이러한 종류의 사건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진리의 일반적 근접성은 우리가 이들 사건을 개연적이고 참이라고 생각하게 만들며, 따 라서 이러한 사건들을 믿게 만든다. 그러나 종종 기대와 달리 이러한 사 건들이 어떤 점에서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며, 따라서 이러한 사건 의 성격상 그러한 신뢰성은 그 사건에 대한 완벽한 증거가 되지 못한다. 이러한 사건들을 직접 관찰할 기회가 없을 때, 즉 우리 자신의 감각적 증 거에 의해 사건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앞의 경험에 기초해 이러한 사건들이 발생했음을 믿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아무런 증 거 없이도 일정한 확신을 가질 수 있을 만큼 그렇게 확고한 것이 아니다. 셋째, 어떤 사건들과 관련해서 우리는 앞서 언급한 두 가지 방식의 경 험을 가질 수 있지만 또 다른 종류의 사건들과 관련해서는 그러한 방식의 경험을 갖지 못한다.48) 사람의 오른편에서 천둥이 치는 것이 왼편에서 천 둥이 치는 것보다 우리의 경험에 더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율리우스 카 이사르라는 한 남자가 로마에 살았고 장군이었으며 폼페이우스라는 사람 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는 아무것도 경험한 바가 없다. 이와 같은 사실들은 그 자체로 신뢰할 만한 것으로 간주되는데, 이는 단 지 그 사실들의 성격상 그것을 의심할 만한 아무런 이유가 없기 때문이 다. 좀더 적절하게 말한다면, 그 자체가 중립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실들은 성격상 의심이 들 만한 어떤 원인도 제공하지 않으 며, 또한 그것을 믿을 만한 원인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가 그 사실들을 신뢰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든 중립적인 것이라고 생각 하든 그 사실들은 분명 공정한 증언에 의해 입증될 수 있다. 이상이 우리의 경험과 사건의 일치나 조화에 따른 신뢰성의 정도이다. 우리는 이 같은 탐구를 통해, 사건과 우리의 지식이 일치하거나 조화되는 지에 따라 신뢰성이 생겨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건의 신뢰성이란 사실 진리의 유사성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건들이 이 같은 진리의 유사 성을 지니고 있을 때 그 유사성이 경험의 대상이었든 지식의 대상이었든, 그리고 우리가 그 유사성을 우리 감각을 통해 직접 지각해 알게 되었든 아니면 귀납과 이성의 추론을 통해 알게 되었든 그 사건은 사실로 받아들 여진다. 첫째, 어떤 사건은 모든 면에서 우리의 지식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 러한 사건들은 그것을 입증하는 어떠한 증거 없이도 진리와의 완벽하고 도 완전한 유사성을 기초로 하여 사실로 인정된다. 우리는 관찰이나 추론 을 통해 사건들로부터 이끌어낼 수 있는 일반적인 결론에 입각해 달이 중 력에 의해 그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논증한다. 이때 우리는 지 구 주위를 도는 달의 운동과 금성 주위를 도는 위성들의 운동 사이에서 발견되는 유사성에 기초해 거의 확실한 믿음을 갖고 이들 물체들이 동일 한 중력에 의해 각기 자신의 궤도를 이탈하지 않는다고 믿게 된다. 둘째, 어떤 사건이 대체로 우리의 지식과 일치하지만 전적으로 일치하 는 것은 아닐 때 그것이 지닌 진리의 유사성은 그 사건을 신뢰할 만한 것 으로 만들어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믿게 한다. 사건의 성격상 좀더 정확 하고 세밀한 유사성이 부족하면 사건의 존재에 의심이 든다. 그러나 신뢰 할 만한 증언자의 보고는 이 같은 의심을 떨쳐버리고 신뢰를 갖게 한다. 경험을 통해 영국에서는 12월의 어떤 주간에 서리가 내리고 6월의 어떤 주간에 천둥이 친다는 사실에 대해 어느 정도의 개연성을 부여하든 간에, 우리는 지구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남반구에서는 6월의 어떤 주간에 서 리가 내리며 12월의 어떤 주간에 천둥이 친다는 것에 동일한 개연성을 부 여한다. 이 사실 중 전자는 우리의 경험과 일치함으로써 신뢰할 만한 것 이 되며, 후자는 우리의 지식과 일치함으로써 신뢰할 만한 것이 된다. 이 두 가지 사실 모두 증언에 의해 쉽게 확증될 수 있어서 지금까지 신뢰할 만한 것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그들 가운데 어느 것도 증언 없이는 설득 력 있게 확증될 수 없다. 셋째, 어떤 사건은 어떤 방식으로든 발생할 수 있고 우리의 지식과 일 치할 수 있으며, 또 어떤 사건은 현재까지는 우리의 지식과 모순되지 않 으므로 우리가 확신하고 있는 어떤 다른 진리와 모순되지 않는 한 진리일 수 있다. 중립적이거나 그 자체로 신뢰할 만한 이러한 사건들은 우리의 지식과 일치하거나 조화를 이룰 때 그 사건의 본성상 아무런 의심의 여지 도 없으며, 따라서 공정한 증언에 의해 입증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승률 이 절반인 게임을 할 때 그가 이기거나 지는 것은 승률 이론에 대한 우리 의 지식과 정확히 일치한다. 화성은 우주의 운행을 지배하는 원인들에 대 한 우리의 지식과 일치하는 위성들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사실들 가운 데 도저히 의심할 수 없을 만큼 그 자체로 신뢰할 만한 사실은 없다. 그러 나 이 사건들은 모두 지금까지 사물의 본성 안에서 우리 지식과의 일치와 조화를 통해 신뢰할 만한 것이었기 때문에, 적절한 증언을 통해 앞의 사 례에서는 그 사람이 게임에서 질 것이 입증되고 뒤의 사례에서는 화성이 위성을 갖는다는 것이 입증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사실의 실재적 존재에 대해 어떤 확신이나 지식을 가질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은 모두 감 각적 증거라는 점에서 동일한 것에 대한 상이한 이름에 지나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지식과의 일치와 경험과의 일치는 서로 다른 신뢰성의 척도 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자연의 법칙과 질서에 관한 모든 추론은 실 험과 관찰에 기초해 전개되지 않는 한 불확실하고 근거 없는 것이다. 그 러나 우리가 출발점이 되는 어떤 기반이나 근거를 가지고 있을 때 우리의 이성은 그것을 발판으로 하여 우리의 감각이 발견할 수 없는 자연의 많은 부분들을 탐구할 수 있다. 우리가 관찰에 의해 태양에서부터 행성들까지 각각의 거리와 행성들이 궤도를 도는 주기를 결정한다고 하자. 사실에 대 한 우리의 경험은 여기서 끝나지만 우리의 지식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우리의 이성은 감각의 정보를 기초로 행성들이 지속적으로 태양을 향하 도록 하는 중력의 법칙을 추론한다. 태양에서부터 행성까지의 거리와 행 성의 주기는 경험의 대상이며 혹은 경험의 대상일 수 있지만, 그렇게 함 으로써 우리는 중력의 법칙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경험과 지식을 구분한다고 해서 부분과 전체가 다른 것처럼 경험과 지식이 서로 다르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진리에 대한 모든 확고한 지 식은, 이성에 의해서 얻든 감각에 의해서 얻든 모두 지식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경험은 지식이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그 경우 우리의 모든 지식이 경험인 것은 아니다. 실질적인 존재와 연관된 어떤 진리는 감각에 의해 직접적으로 지각되는 데 반해 어떤 것들은 귀납과 이성의 추론을 통 해 깨달아진다. 진리의 유사성은 우리로 하여금 사실을 진리로 인정하게 하는 근거인 개연성의 요인이기 때문에 경험과의 일치는 분명 신뢰성을 판단하는 빈약한 척도다. 왜냐하면 경험이 진리를 발견하는 유일한 방법 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앞의 관찰을 통해 다음 두 가지 결론을 확증하고자 한다. 첫째, 사 건들은 본성상 우리의 경험과 일치하거나 또는 모순되지 않음으로써 신 뢰할 만한 것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지식과 일치하거나 모순되 지 않음으로써 신뢰할 만한 것이 된다. 둘째, 우리의 지식과 일치하거나 모순되지 않는 사건들이 공정한 증거fair testimony에 의해 지지될 때 그것에 대해 우리가 동의하는 것은 정당하다. 우리가 이미 입증한 이 두 결론을 진리라고 하고, 나아가 당신은 부인 하지만 우리가 입증할 수 있는 것, 즉 신의 존재, 권능, 지혜, 선 등에 대 한 논증적 지식을 가질 수 있다고 하자. 그러면 이 두 원리에 입각해 우리 는 당신의 논증이 지니고 있는 오류를 밝힐 수 있고, 또한 기적에 대한 신 념을 확증하기 위해서 초자연적인 증언이 필요한 건 아니라는 것을 밝힐 수 있다. 당신은 확고한 불변적 경험이 완벽한 직접 증거가 된다고 말한다. 그러 나 당신의 논증을 따르면 어떠한 사건도 그것에 반하는 확고한 불변적 경 험이 존재하는 한 기적이라고 불릴 수 없다. 그러므로 당신은, 모든 기적 의 존재에 대해 우리가 그 사실의 성격상 그것과 상반되는 완벽하고 직접 적인 증거를 갖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당신 논변의 전체적인 요지는 이 두 개의 기본적인 원리와 그것을 기초로 해서 당신이 추론해낸 위와 같은 결론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원리가 참인지를 조사해보고 그것들이 어떻게 당신의 결론을 확증해주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확고한 불변적 경험은 완벽한 증거가 된다. 그러면 당신은 경험이 그렇 게 결정적인 방식으로 입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주어야 할 것이다. 당신은 사려 깊고 꼼꼼하게 자연의 일상적인 과정을 관찰하 고, 어떤 유형의 사건들이 꾸준하고 한결같이 일상적인 인과 관계에서 발 생했는지를 살펴보았을 것이다. 그 결과 당신은, 매우 높은 개연성을 갖 고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되는 동일한 원인들에 의해, 혹은 경험의 대상이 되는 자연의 일상적인 힘에 의해 자연과 모순되는 어떠한 사건도 발생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경험에 기초한 당신의 논증은 여기서 더 이상 진전될 수 없다. 당신은 자연의 창조주가 최초에 만들어놓은 법 칙의 작용과 창조주가 물질에 부여한 속성에 의해, 또는 그가 그의 피조 물에 부여한 힘에 의해 어떤 사건이 항시적이고 일양적으로 발생함을 관 찰할 때 확고한 불변적 경험을 얻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경험은 법칙을 만들고 통제하며, 속성을 부여하고 그것의 작용을 중지시킬 수 있으며, 힘을 부여하고 그것을 조절하거나 증가시킬 수 있는 존재의 직접적인 간 섭에 의해 경험과 모순되는 사건이 발생될 수 없음을 결코 입증하지 못한 다. 왜냐하면 경험에서 추론된 논증은 추론의 근거가 되는 경험이 미치는 영역 너머까지는 그 힘이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의 일상적인 힘에 대한 당신의 경험은 경험의 직접적인 대상이 되는 그 힘에 대해서는 결정 적인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경험의 직접적인 대상이 아니라 논증적 지식의 대상인, 자연을 초월한 어떤 힘과 관련해서는 전혀 증거가 될 수 없다. 당신의 또 다른 기본 원리는 어떠한 사건도 그것에 반하는 확고한 불변 적 경험이 있는 한 기적으로 간주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표현은 모호하 고 애매하다. 따라서 우리는 당신이 이 같은 입장을 취하게 된 제1원리를 살펴보고 그것을 명확하게 하지 않는 한 당신의 의도를 오해할 수 있다. 당신은 기적을 자연 법칙의 위반으로 정의하며, 확고한 불변적 경험이 자 연 법칙을 확증하므로 모든 기적적인 사건에는 그것에 반하는 경험이 있 게 된다고 추론한다. 당신은 자연 법칙의 개념을 확증해준 경험이 모든 기적적인 사건과 모순된다는 것과, 모든 기적은 상식과 가시적인 일련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우리의 경험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당신이 이같이 추론할 때, 경험과 지식, 또는 자연의 일상 적인 과정이나 법칙의 창조주이며 이를 만든 신의 능력을 혼동하지 말 것 을 촉구한다. 당신은 분명 기적에 대해 정의할 때 어떤 사건도 자연의 일 상적인 과정에 대한 우리의 경험과 모순되지 않는 한 기적이라 불릴 수 없다고 추론했다. 그러나 기적에 대한 이 같은 정의는 당신이 의도적으로 도입한 이 추론을 정당화하지 못할 것이다. 즉 당신은 그 정의로부터 모 든 기적이 신의 능력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모순된다고 추론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당신의 기본적인 각 원리들을 검토해왔으며 그것들이 어느 정도 참인지를 살펴보았다. 다음에는 당신의 기본적인 원리들을 모 두 함께 살펴보고 어떤 결과가 나올지를 알아보자. 그러면 당신의 논변을 다음과 같이 진술해보자. — 자연의 일상적인 과정에 대한 확고한 불변적 경험은, 그경험과 조화 되지 않는 어떠한 사건도 우리의 지식의 대상이 되거나 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힘에 의해 발생할 수 없다는 완벽하고도 직접적인 증거다. — 그러나 우리는 모든 기적적인 사건과 상반되는 자연의 일상적인 과 정에 대해 항시적이고 불변적인 경험을 갖고 있다. — 이로부터 도출되는 당신의 당연한 결론은, 우리가 우리의 지식의 대 상이 되는 어떤 힘에 의해 기적적인 사건이 발생할 개연성이나 가능성과 반대되는 완벽하고도 직접적인 증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론은 당신이 주장하고 있는 원리에서 적절하게 도출된 것으 로서 참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같은 결론을 이끌어낸 원리들 중 하나가 거짓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일상적인 과정에 대한 확고한 불변적 경험은, 실로 일상적인 일련의 원인, 결과들과 모순되는 어떠한 사건도 이 같은 경험의 대상이 되는 자연의 일상적인 힘에 의해 발생할 수 없다는 직접적 인 증거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당신에게 보여주었듯이 그 같은 경험은 자연의 일상적인 과정을 초월하는 힘, 즉 우리가 그것의 존재를 논증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지식의 대상이 되는 그 힘에 의해 그러한 사건이 발생될 수 있는 개연성이나 가능성에 반하는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 그러면 당신의 결론을 이끌어낸 원리를 또 다른 방식으로 진술할 경우 당신의 결론이 성공적일 수 있는지를 살펴보자. — 자연의 일상적인 과정에 대한 확고한 불변적 경험은, 그것과 모순되 는 어떠한 사건도 이 경험의 대상이 되는 자연의 일상적인 힘에 의해 발 생할 수 없다는 완벽하고 직접적인 증거이다. — 그러나 모든 기적적인 사건은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힘들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모순된다. 논리학자라면 당신의 삼단논법이 네 명사의 오류49)를 범하기 때문에 이 전제들로부터 어떠한 정당한 결론도 이끌어낼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 또한 상식에 비추어 보아도 이 전제들 가운데 하나가 거짓이기 때문에 거 기서는 어떠한 결론도 도출될 수 없다. 또한 우리는 모든 기적이 그 개념 상 자연의 일상적인 과정에 대한 우리의 경험과 모순된다는 것을 인정하 는 데 반해 당신은 기적이 그 개념상 신의 능력에 대한 우리의 논증적 지 식과 모순된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했으며, 우리의 생각으로는 당신은 그 것을 입증할 수도 없다. 당신의 논변은 또 다른 세 번째 방식으로 진술될 수 있다. — 자연의 일상적인 과정에 대한 확고한 불변적 경험은, 그것과 모순되 는 어떠한 사건도 이 경험의 대상이 되는 자연의 일상적인 힘들에 의해 발생할 수 없다는 완벽하고 직접적인 증거다. — 그러나 모든 기적적인 사건은 그 개념상 자연의 일상적인 과정에 대 한 우리의 경험과 모순된다. 우리는 이와 같이 진술된 당신의 전제들이 참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 러나 우리의 지식의 대상이 되는 어떤 힘들에 의해 기적이 발생했다는 사 실을 반박하는 완벽하고 직접적인 증거를 우리가 갖고 있다고 당신이 결 론을 내린다면 그러한 결론은 거짓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제 에 포함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전제들 은 경험의 대상이 되는 자연의 일상적인 힘들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을 뿐인데 당신의 결론은 자연의 일상적인 과정을 초월해, 우리의 지식의 대 상이 되는 힘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제들에서 도출할 수 있 는 유일하고 정당한 결론은, 우리가 우리의 감각 또는 일상적인 경험의 대상이 되는 자연의 일상적인 힘들에 의해 기적이 발생한다는 것을 반박 하는 완벽하고 직접적인 증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당신은 이 결론에 만족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당신의 논변이 전제로 삼고 있는 원리들이 참 이라면 그것들은 다른 어떤 것도 정당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같은 결론에 대해 기독교를 변호하는 사람들이 염려할 하등의 이유도 없 다. 이상의 논변에 답변함에 있어서 나는 우리가 기적의 존재를 수용하는 근거를 밝혔다. 따라서 우리가 가시적인 일련의 원인과 결과 속에서 작용 하고 있는 힘들을 제외하고는 우주에 존재하는 어떤 힘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면, 기적적인 사건은 사물의 일상적인 과정에 대한 우리의 경험과 모 순되므로 그 자체로는 믿어지지 않으며 어떠한 증언에 의해서도 입증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지식은 경험보다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다. 즉 이 성은 감각의 대상이 되는 힘들을 초월하여 자연의 법칙을 최초로 제정하 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자연이라고 말하는 것의 운행을 조정하고 언제든 원하는 대로 그 힘을 중지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신의 능력에까지 도달할 수 있다. 기적의 존재는 그러한 신의 능력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총체적 으로 일치하며 아무런 모순도 없다. 이처럼 우리의 지식과의 일치나 조화 로 인해 기적은 공정한 증언에 의해 입증될 수 있을 만한 신뢰성을 갖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관심을 끄는 기적적인 사건을 기만적인 것으로서 거부 하는 것은, 모든 기적이 그 일반적 본성상 그것을 부인하는 어떤 단정적 인 증거가 있기 때문이 아니며 또한 그래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사물의 일상적인 과정에서 단지 초자연적인 변화로 간주되는 기적은 신의 능력 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우리의 지식과 조화를 이루는, 어떠한 의심이나 회의도 들게 하지 않으며, 사건의 성격상 그것 을 부인하는 어떠한 증거도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방인의 역 사와 가톨릭의 전승에서 언급되는 기적과 이적을 배척하는데, 이중 어떤 것들은 우리 스스로 검토해볼 때 아무런 하자가 없고 또한 어떤 일상적인 사건의 진실성을 확증해주기에 충분한 증언들에 의해 지지되고 있다. 기 적의 일반적인 본성상 그것을 반대할 어떤 근거도 없다면, 그리고 우리가 기적을 지지하는 증언을 조사해보지도 않았거나 또는 조사 끝에 다른 증 언을 찾아내지 못했다면 어떠한 근거에서 이 기적들을 정당하게 거부할 수 있는지에 관해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 같은 탐구를 하는 사람이 이 문제를 자세히 살펴보면 위에서 언급된 두 가지 이유 외에도 수많은 특정 한 기적들을 거부할 세 번째 이유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사건 의 성격상 기적 일반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를 제기하지는 않지만, 기적의 진리성에 대해 결정적인 반대가 될 수 있는 상황이 특정한 기적들과 관련 해서 종종 나타난다. 만약 어떤 특정한 기적의 상황이 직접적으로 또는 필연적인 귀결로, 사물의 일상적인 과정을 변화시킬 수 있는 모든 존재의 통치자를 배척한다면 그러한 기적은 기적의 일반적 본성 때문이 아니라 그것 자신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우리의 지식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 이며, 따라서 어떠한 증언에 의해서도 입증될 수 없다. 디오니시우스Dionysius50)에 따르면, 로마인과 라틴 민족 간의 전쟁에서 카스토르와 폴룩스51)는 백마를 타고 나타나 로마 편에서 싸웠고, 그들의 지원을 받은 로마는 완승 을 거두었다.52) 우리가 기적을 거부하게 하는 되는 것은 기적에 대한 증언이 지니고 있 는 결점 때문이 아니다. 동일한 증언의 권위에 의지해 우리는 싸움을 걸 고 승리한다. 우리는 기적을 지지하는 증거를 살펴보지도 않고 무조건 기 적을 거부하거나, 살펴보는 경우라 해도 증언상의 어떠한 문제도 발견할 수 없는데 계속 기적을 거부한다. 이 경우 우리는 사건의 성격상 모든 기 적의 존재에 반하는 어떤 일반적인 근거나 증거에 입각해 그것을 합리적 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기적은 그 자체로는 우리의 지식과 모순되지 않는 것으로 보이며, 다른 수많은 사건들처럼 신뢰할 만한 것으 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에 언급된 특정한 기적은 그 기적을 산출 하는 신의 권능을 직접 배제시키는 상황을 수반한다. 카스토르와 폴룩스 는 우리가 알다시피 사물의 안정된 과정을 변화시키는 어떤 힘도 갖고 있 지 않다. 따라서 행위 주체의 능력 부재로 인해 기적의 사실은 우리의 지 식과 조화를 이루지 않으며, 그 결과 그러한 기적은 인간의 어떠한 증언 에 의해서도 입증될 수 없다. 이 같은 예는 거의 모든 이방인의 기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가 이 방인들의 신탁 내용을 믿는 경우 우리는 먼저 그 사실을 우리의 지식과 조화시킨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그 인류의 위대한 사기꾼이 비록 신의 지배 아래 있기는 하지만 언제든지 신에게 말할 수 있고, 또 신이 허용한 다면 사물의 일상적인 과정을 변경시키고 우리의 경험의 대상인 자연의 가시적인 힘에 의해 발생할 수 없는 사건을 발생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 니고 있다는 데 대한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아 나선다. 가톨릭의 기적 가운데 많은 것이 신뢰할 만한 기적이 되지 못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 이유 때문이다. 파리 대수도원장의 묘에서 발생했다고 전 해지는 기적들이 단지 기적을 일으킨다고 알려진 이 성인의 묘가 있는 교 회의 일부분에 담을 쌓음으로써53) 효과적으로 저지될 수 있다고 한다면 이 같은 사실은 우리가 아는 신의 권능과는 모순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의 의지는 우리도 알다시피 담을 쌓음으로써 저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니 기 때문이다. 이런 전설적인 기적 가운데 상당수는 기적을 산출하는 신의 권능을 필 연적으로 배척하는 상황을 수반한다. 사람들이 종교적인 삶에 헌신하는 것 외에 창조적인 목적과 명백히 위배되는 기적에 의존하는 삶을 살려고 할 때 그들과 인류 전체는 항상 무익하고 사회에 짐이 되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그들이 신은 그들의 편에 개입하며 그들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 기적을 행한다고 주장한다면, 비록 그것이 그들의 성인전(聖人傳)을 쓰기 위해 수도승들이 지어낸 것보다 더 나은 증언이라 해도 현명한 사람들은 그러한 기적을 믿지 못한다. 그런 식의 개입은 총체적인 행복의 관점에 서, 모든 활동을 계획하고 이 세계의 어느 하나도 불필요하지 않게 조정 하는 신의 지혜나 선성(善性)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모순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성이 알려주는 신의 의지에 따라 인간과 동물, 그리고 어떠한 처지의 피조물이건 각각은 그들이 처한 상황에서 동일한 중요한 목적을 추구하는 데 있어 신과 협조해야만 한다. 그러나 신의 지혜와 선 성이 명백하게 배척되는 곳에서는 어떠한 증언도 우리에게 신의 능력이 관여하고 있음을 확신시키지 못한다. 사실 가톨릭의 여러 기적들을 검토하는 수고를 가능한 한 피하고 그것 들을 단번에 반박할 수 있는 어떤 것을 원하는 경우 우리는 개신교를 변 호한다는 구실하에 너무도 쉽게 기독교 자체의 기초를 뒤흔들 것이다. 그 리고 사건의 성격상 기적 일반 모두를 반박하는 증거나 근거가 있다고 주 장하기 위해 우리가 그러한 기적들을 확증하는 데 필요한 증언이 어느 정 도여야 하는지를 알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편에 서게 될 것이다. 그 러나 우리가 어떤 근거에서, 가장 잘 입증된 가톨릭의 기적이 직접적이거 나 필연적인 귀결에 의해 신의 능력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모순되는 어떤 상황들과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개신교도로서 우리 자신을 변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기적에 대해 우리가 갖 고 있는 신앙의 근거를 묻는 모든 사람들에게 답변할 수 있을 것이다. 나 는 기적들이 각각의 특수한 상황에서 도출된 논변들에 의해 반박될 때 어 떤 것이든 전설적인 신화가 되어버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적이 자연의 일상적인 과정에서 변화로 생각되고, 우리가 아는 신의 능력과 조화를 이 루고, 자연의 순리에 아무런 의심도 제기하지 않을 때, 즉 직접적으로든 필연적 귀결에 의해서든 신의 능력을 배제하는 어떠한 상황도 일어나지 않을 때, 특히 기적의 의도가 우리가 아는 신의 지혜와 선함과 일치되는 경우에 기적에 관한 공정한 증언은 그것이 비록 초자연적인 것이 아닐지 라도 우리의 동의를 이끌어낼 뿐만 아니라 확신과 자신감을 주기에 충분 할 것이다. 이 같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어느 정도 정확한 증언이 요구되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현재 내가 해야 할 바는 아니다. 내가 제기한 것은, 기적의 일반적 본성상 그것의 존재에 반하는 어떠한 증거나 근거도 없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기적에 관한 질문을 그것의 원초적인 상태로 되돌려놓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점이 충분히 밝혀졌다면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이 행한 기적들이 모순을 초월해 사태의 진실성을 확증할 만 큼 충분한 어떤 증언에 의해 지지되었느냐를 탐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나보다 더 유능한 사람들이 잘 검토해주었으며 이미 현명하게 해 결되었다. 따라서 내가 이 주제에 마음이 끌리고 또한 당신이 인내심을 갖고 보아준다고 해도 그것을 상세히 설명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필요 하다. 제3장 〈기적에 대한 소론〉에 나타난 흄의 원리 와 추론에 대한 견해54) 성서의 기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기적적인 사실이 지닌 그 진기한 성 질로 인해 기적의 신뢰성에 반대하며, 바로 그 이유로 인해 기적을 입증 하고자 하는 증거들을 무시하고 있다. 그 경우 증거와 사실은 별개의 상 황이 된다. [기적에 대한] 증거의 결함은 증거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것이 기적의 증거가 될 만한 사실이 없기 때문이 다. 어떤 논증의 경우 그 논증 방식이 올바른 것이라 판단되면 그 논증의 결론은 받아들여지게 된다. 그러나 그 경우 우리는 그 논증 방식이 진기 해 보인다는 이유 때문에 잘못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나의 선이 다 른 선에 끝없이 접근하는데도 그것과 결코 만나지 않는다는 것은 얼핏 보 면 불가능한 일로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논증을 검토하고 그 추론이 정당한 것임을 밝힘으로써 그 명제가 참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우 리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지금 우리의 논의를 이끌어가고자 한다. 어떤 사실이 진기하다는 사실이 곧 추론의 규칙을 전복시킬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그 사실을 입증하고자 하는 증거에 대해 좀더 조심 스러운 검토를 요구할 뿐이다. 우리는 단지 고려되는 사실 그 자체와 관 련된 문제점으로 인해 증거에 대해 성급한 판단을 내리거나 증거를 비난 해서는 안 된다. 물리적인 문제점이 경험적인 확실성moral certainty에 이르기 위한 증거를 무효화시킬 수는 없다.55) 사태에 관한 증거는 논증의 모든 단계들과 마찬가지로 모두 진리를 탐구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우 리는 전자의 경우에는 경험적 확실성에, 후자의 경우에는 절대적 확실성 에 이른다. 어떤 사실에 대해 불신을 가정하는 것은 그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를 고려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불신자들이 기적의 신뢰성을 부인하는 방식이다. 첫 번째 장애물은 전적 으로, 사실을 고려할 때부터 생겨난다. 마음이 불신으로 기울어 있기 때 문에 어떤 증거에 대한 공정한 경청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불신자들이 처해 있는 곤경이다. 좋은 씨앗이 좋은 땅에 뿌려지지 않는 한 결실을 맺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실이 진기하다는 것이 곧 신뢰할 만한 증거를 거부하는 반대하 는 논증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그러한 사실이 기대되지 않는 다는 것을 함축할 뿐이다. 비개연성은 단지 기대expectation에 대해서 이야기할 뿐이며, 사실의 증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어떤 것도 제공하지 않는다. 사태의 진리에 대한 탐구는 증언의 문제이지 개연성의 문제는 아 니다. 어떤 사건의 발생을 입증하거나 반증하는 것은 그 사건의 진실을 탐구하는 것과는 무관한 것이다. 흄은 어떤 기적적인 사건의 비개연성에 대해 그릇된 설명을 하고 있다. 그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를 상반된 방 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개연성의 적절한 역할이란 단지 우리의 예측 또는 기대에 영향을 주는 것이며, 따라서 증거가 있을 때까지 우리의 신념을 보류하는 것이다. 그러나 증거란 비개연성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으므로 우리는 제공될 수 있는 증거와 관련해서는 어떠한 편견도 가져서는 안 된 다. 만약 편견에 사로잡힌다면 그릇된 근거를 토대로 결론을 내리게 된 다. 기적에 관한 흄의 정의는 진리에 대한 하나의 가설로서, 어떤 것을 가 정하는 것이지 정의는 아니다. 그의 가정을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반대한다. 사실이란 물리적인 법칙에 따른 것일 수도 있고 도덕적인 법칙 에 따른 것일 수도 있다. 도덕적인 목적과 관련된 기적적인 사실은 신의 도덕적 통치의 법칙에 좌우되며 그것에 따르게 된다. 반면 우리의 저자 [흄]는 그것을 단지 물리적인 관점에서만 고려했다. 신의 모든 작업은 태 초부터 신에게 알려져 있으므로 기적이 발생할 때도 신의 관점에서는 사 물의 물리적 질서에 아무런 변동 사항이 없다. 물론 그러한 사건들은 어 떤 물리적인 목적에서 요구되는 것은 아니지만 신의 진기한 행동에 대한 증거가 되며, 어떤 도덕적인 목적에서 시행된 것이기 때문에 도덕 법칙의 규제 하에 있고, 신의 도덕적 지배의 법칙에 부합한다. 따라서 우리는 특 별한 도덕적 목적을 위해 신이 행한 진기한 물리적 행위로 기적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이와 같이 설명할 수는 없지만 기적적이라고 말할 수 있 는 행위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행위에 대 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고 말한다.56) 신의 모든 행위들은 “눈먼 자는 볼 것 이고, 절름발이는 걸을 것이고, 문둥이는 깨끗해질 것이고, 귀머거리는 들을 것이고, 죽은 자는 살아날 것이다”라는 신의 나라의 일반적인 통치 계획과 관련돼 있는데, 이는 개인의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신의 영광 을 위한 것이며, 그로 인해 인자(人子, the Son of Man)가 영광을 받게 하기 위한 것이다. 물리적인 세계는 어떠한 교정도 요구하지 않고 시간이 흘러도 쇠퇴하지 않으며, 물리적 체계와 연관된 목적을 위해 진기한 물리 적 행위가 요구되지 않는다. 그러나 도덕적인 세계는 종종 개혁을 필요로 하며, 신은 인간들이 자기 의무를 인식하고 느낄 수 있도록 신의 손을 가 시적으로 드러낸다. 이처럼 생각한다면 기적적인 사건들에 대한 불신이 매우 크게 감소한다. 또한 기적 역시 다른 어떤 사태에 대한 신념을 확증 하는 데 요구되는 것과 같은 유형의 증거에 의해 확증될 수 있게 된다. 우 리는 어떤 사실에 대한 신뢰성 여부를 그 사실이 세계에 대한 신의 물리 적인 통치에서와 마찬가지로 도덕적 통치에서 신의 의지와 부합하느냐에 따라 판단할 수 있다. 기적은 어떠한 물리적인 목적도 저해하지 않고 도 덕적인 목적을 성취한다. 기적의 신뢰성을 부인하는 저자의 논증이 지니 고 있는 설득력은 대체로 그의 정의에 의존한다. 기적의 신뢰성을 검토하기 위해서는 신의 존재와 그의 섭리를 인정해 야만 한다. 만약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 문제는 이미 결판이 난 것 이다. 이 상황을 부정하면 논의는 즉각 끝나게 된다.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권능자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그 섭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증거를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논증을 통해 성서의 기적을 입증하는 증거를 파괴하고자 시도한 흄은 필 연적으로 신의 존재와 그의 섭리를 인정했음이 분명하다. 모순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흄은 이 같은 전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상 그는 명 확하게 그 점을 인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기적은 신의 특별한 의지 나 어떤 비가시적인 대리인의 간섭에 따른 자연 법칙의 위반이다”57)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흄과의 논쟁에서 신의 존재와 인 간사에 대한 신의 간섭에 대해 아무런 논의 없이도 이들이 진리임을 가정 할 수 있으며, 앞의 논의에서도 우리는 이것을 추리를 위한 원리로 삼았 다. 이를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논증이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목적인 (目的因)58)을 인정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또한 기 적의 존재를 부정하는 전제를 제거하는 것이 된다. 어떤 사태의 진실성 여부는 논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증거 는 일종의 수학적인 증명이 아닌 다른 근거, 즉 인간의 증언과 경험, 이와 연관된 확증된 사건, 신의 섭리에 대한 관찰에서 추론될 수 있는 것들에 의존한다. 바로 이러한 근거들이 우리가 현재 논의하고 있는 주제에 대해 추론할 때 의존하게 되는 원리들이다. 흄에게서 경험은 단지 개인적인 경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데, 이는 그 가 자신의 논증에 과거의 경험을 포함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류 의 경험은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의 보고에 의존하게 되며, 따라서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문제와 관련해 엄청난 양의 직접적인 증거가 존재하게 된 다. 그러므로 이 경험은 증언에 의해 평가되어야 하며, 우리는 증언 대신 경험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흄이 주장한 것과는 달리) 기독교의 기적을 입증하는 총체적인 경험(증언)을 갖게 되는데, 기 독교가 생긴 이래 그러한 경험은 몇몇 현대의 불신자들을 제외하고는 우 리 종교를 지지하는 사람들이나 반대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인정받아왔 다.59) 사태의 신뢰성을 판단하는 일반적 원리를 진술한 후에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들어 우리가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어떻게 속을 수 있는지, 그 리고 그 같은 속임수가 어떤 불확실한 원리에 의존하게 되는지를 보여주 고자 한다. 이 모든 사례들은 기적에 대한 신뢰성의 근거에 의혹을 제기 하는 것들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소론의 대부분은 그것이 검토하고자 했 던 주제와 아무런 관련도 없을 것이다. 사실 그는 그가 논의한 모든 것에 서 결론을 이끌어낸다. “대체로 어떤 유형의 기적에 대한 증언도 기적의 개연성을 보여줄 수 없으며60) 하물며 기적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없음이 드러났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견해와 인용된 사례들이 기적에 대한 우 리의 신념과 관련된 문제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기적을 반박 하는 완결적인 것인지를 고려해보아야만 한다. 흄은 틸랏슨 박사가 기적의 신뢰성에 반하는 결정적인 논증을 그에게 제공해주었다고 말했다. “실재적 현존에 대한 교리가 성서에 분명하게 계 시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에 동의해야 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추리 규칙에 전적으로 어긋나는 것이 된다……그것은 일반적 경험에 어긋나는 것이 다.” 이 가설을 따르면 성서에 진술된 상황에서는 〔 그리스도의 육과 혈 의〕 실재적 현존은 신뢰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성서 에는 이러한 내용이 진술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그 가설은 어느 것에도 적용되지 않으며 그 가설에서는 어떤 것도 추론할 수 없다. 그러나 흄은 “지혜 있고 학식 있는 사람들이 온갖 종류의 미신적인 현혹을 영원히 저 지하고 세상이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어떤 논변을 발견했다고 자부한다”. 틸랏슨 박사는 감각의 증거에 모순되는 어떠한 것 도 인정하지 않는다. 흄은 인간의 증언을 무효화하고자 한다. 다음은 흄 의 대략적인 논증이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진리와 성실로 추구하는 성향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또한 거짓 이 드러났을 때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면, 다시 말해서 이러한 것들이 타고난 품성임이 경험을 통해 밝혀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인간의 증언을 조금도 신뢰할 수 없었을 것이 다.61) 그렇다면 기독교의 기적을 처음으로 이야기한 사람들은 인간의 증언에 확신을 주는 자질들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 흄은 그들이 그러한 자질을 갖고 있지 않았음을 보여주지 못했고, 그의 관찰 역시 그들의 증언을 받 아들일 수 없음을 입증하지 못했다. 기독교의 기적은 다른 사태들이 가질 수 있는 것과 같은 역사적인 증거를 갖고 있으며, 또한 어떤 다른 사태도 갖지 못한 더 많은 증거를 가지고, 이 세계가 여태껏 지켜보았듯이 도덕 적 세계의 가장 진기한 변혁 중 하나를 이루어냈다. “카토가 한 말이라면 나는 어떤 것도 믿지 않는다.” 이 말은 그 철학적인 애국 지사가 생존했던 바로 그 시절 로마에서 유행했던 속담이다. 어떤 사실에 대한 불신은 이처럼 위대한 대가조차 무력화시킬 수 있다.62) 성서에 기록된 기적의 진실성에 대한 증거가 전적으로 한 사람의 증언 에만 의존한다면 그 기적은 신뢰할 수 없는 것일 것이다.63) 위에 언급된 속담은 여기에 적용될 수 없다. 따라서 그것은 유대교와 기독교적인 종교 를 세우기 위해 필요했던 기적들의 신빙성에 손상을 입힐 수 없다. 사실 그 속담은 단지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 사실에 대한 불신은 최초의 증언이 비록 권위에 의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의심할 수 있다 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계속되는 증거를 물리칠 수는 없다. 결국 성서 에 나오는 기적의 신뢰성을 부정하기 위해 로마의 속담을 끌어들인 것이 아닌가! 서리와 관련된 첫 번째 이야기를 믿지 않은 인도의 왕자는 올바르게 추 론한 것이다. 만약 그가 올바르게 추론했다면 그의 전제는 잘못된 것이 다. 왜냐하면 그의 결론이 틀렸기 때문이다. 인도의 왕자는 그 이야기의 목격자의 증언을 거부하고 자신의 경험만을 신뢰하여 사태에 어긋나는 결론을 내렸다. 흄도 이와 마찬가지다. 흄 역시 종교적인 문제에서 인류 에게는 속임수와 어리석음만이 있을 뿐이며 따라서 기적의 신뢰성을 받 아들일 수 없다는 가설적 원리에 따라, 어떤 사태를 입증하기 위해 끌어 들일 수 있는 모든 증거에 의해 확증된 목격자의 증언을 받아들이기를 거 부했다. 만약 흄이 이 이야기를 해당 문제에 적용하려 했다면 그것은 즉 시 흄을 모순에 빠지게 했을 것이다. 만약 적용할 생각이 없었다면 그는 왜 그 이야기를 했을까? 우리는 현재의 논의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경 험에 어긋나지 않는다’와 ‘경험과 일치하지 않는다’에 대한 흄의 구분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없다. 기적은 자연 법칙의 위반이다. 확고하고 불변하는 경험은 자연의 법칙을 확립해왔으 며, 따라서 모든 경험에 입각한 추론이 완벽한 것처럼 기적에 상반되는 증거 역시 그 성 격상 완벽하다.64) 확고한 불변적 경험이란 단지 자연의 법칙이 결코 깨질 수 없다는 것 을, 즉 그 정의에 맞는 그러한 기적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 할 뿐이다. 따라서 사실상 흄은 그가 입증하려고 하는 결론을 하나의 원 리로 가정하고 있는 것이며, 추리의 형태를 빌려 그가 가정한 것을 이끌 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를 옹호하는 것은 어떠한 가설에도 의 존하지 않는다. 우리는 증언과 거기에 연관된 명확한 사실들에서 기적을 입증하는 직접적인 증거를 갖게 되며, 그 결과 기적의 신뢰성을 주장하게 된다. 우리는 이것이 공정한 추론이며, 이것은 단순히 가설적인 원리에 의존한 어떠한 논변에 의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65) 기적에 대한 믿음은 경험적인 확실성에 토대를 두며, 따라서 기독교를 옹호하는 다양한 논증에 대한 숙고에서 생겨나는 개인적인 설득의 문제가 된다. 따 라서 모든 사람은 전체적인 증거의 관점에서 자기 마음을 정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종종 이와 유사한 결정 방식을 언급했다. “각 사람은 자신의 마음이 정한 대로 할지니라.”66) “모든 기적적인 사건에는 그것에 상반되는 일양적인 경험이 있게 마련 이며, 그렇지 않은 경우 그 사건은 기적이라 불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러 나 신이 기적을 행한다고 가정하자(이 점은 우리의 저자도 가능하다고 인 정했다). 그렇다면 기적이 존재할 것이며, 그것을 부인하는 일양적인 경 험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흄에 따르면 기적이란 일어나자마자 곧 기적이기를 멈춘다. 정의상의 기적은 실재하는 기적이 아니다. 저자는 그가 입증하고자 하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그의 정의를 짜맞추는 데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그의 정의는 정의된 것의 존재와 일치하지 않 는다. 흄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일양적인 경험이 증거가 된다는 점에 서 당연히 기적의 존재를 부정하는 직접적이고도 만족할 만한 증거가 존 재한다.” 그러나 모든 사태는 가능하며, 사실의 본성상 존재가 부정되는 어떠한 존재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흄에 따르면 그 자체가 자신의 존재 를 부인하는 논증이 되는 그러한 사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마르티누스 스크리블레루스Martinus Scriblerus67)의 경우와 같 은 의문을 품게 한다.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천사가 실재하는 파리보다 더 낫단 말인가?” “그것이 입증하고자 하는 사실보다 그것의 거짓됨이 더 기적적인 그런 종류의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 한 어떠한 증언도 기적을 입증하기에 충분 치 않다.” 그러나 증언의 거짓이 기적적인 것이 된다고 말하는 것은 불합 리하지 않은가? 증언의 거짓이 자연 법칙의 위반일 수 있는가? 저자 자신 의 정의에 따르면 그 말은 아무 의미도 없다. 그는 공격에서 벗어나기 위 해 그 용어를 사용해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68) 만약 그가 기적적인 사건을 단지 비개연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것이 기적의 신뢰성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그의 입장을 그 어떤 두려 움 없이 수용할 수 있다. 그렇지만 흄은 여기서 그의 견해를 적용하지 않 고 우리와 반대되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우리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기적이 기만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줄 만큼 양식과 학식을 갖추었거나 사람들을 속이려는 어떤 의도가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떨쳐버리게 할 만큼 성실하거나, 거짓임 이 발각되었을 때 크게 손상을 입을 신용이나 명성을 갖추고 있는 충분히 많은 사람들에 의해 증언되고, 동시에 그 증언이 공개되어 세상이 다 알게 됨으로써 숨길 수 없는 방식 으로 기적이 증언된 경우는 유사 이래 찾아볼 수 없다.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완벽하 게 신뢰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 모든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69) 이 같은 주장은 저자가 입증하고자 하는 결론으로 직접 연결된다. 그러 나 반대로 우리는 ‘역사적으로 입증된 기적을 찾아볼 수 있다’고 주장한 다. 사실, 성서의 기적이 신뢰할 만한 것인지의 여부에 관한 문제는 전적 으로 저자의 견해에 담긴 논점들을 꼼꼼히 검토한 후에 결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이 논점들을 검토하지 않았으며, 그것을 유클리드의 공리처 럼 자명한 것인 양 확신을 갖고 진리로 가정했다. 흄의 기적에 관한 소론 전체에서 볼 수 있는 그의 추론에 대한 가장 큰 이의는, 모든 사실들이 나 름의 증거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신뢰성의 유일한 판단 근거가 되는 증거 로 제시된 특정한 사실을 검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증언을 통한 완전한 증명”, “경험에 의한 완벽한 증명” 등의 표현을 매우 느슨하고 일 반적인 방식으로 사용했으며, 자기 앞에 놓인 사례를 조사하지도 않고 마 치 자기가 각각의 개연성에 대한 대수학적인 계산을 할 수 있으며 또 실 제로 그것을 계산했다는 듯 항상 기적의 신뢰성을 부인하는 결론을 이끌 어냈다. 황당하고 기적적인 어떤 주장이 있을 때 정신은 바로 모든 규칙의 권위를 파괴시키는 상황 때문에 이러한 주장을 너무도 쉽게 받아들인다. 기적으로 인해 생겨나는 유쾌한 정 서인 놀라움과 경이로움의 감정은 이러한 감정을 야기시킨 기적적인 사건을 믿고자 하 는 감성적인성향을 불러일으킨다.70) (흄이 주장하듯이) 놀라움과 경이로움은 여기서 원인으로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로서 존재한다. 놀라움과 경이로움은 과연 전적으로 황 당한 이야기를 말하는 데서 생겨나는 것일까? 적절한 증거에 의해 매우 진기한 사실을 확증했다고 하자. 그러면 놀라움과 경이로움의 정서가 생 겨날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경이로워하며 그러한 사태에 놀라워한다. 이러한 정서는 그 사실에 대한 신뢰성이 확증 된 후에, 그 사건의 적절한 원인을 알 수 없는 인간 정신의 무능력에서 생 겨나는 것이다. “종교의 정신이 경이로움에 대한 애착과 연결되면 상식은 종말을 맞게 되며,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의 증언은 권위를 상실하게 된다.”71) 그러나 종교의 정신이 경이로움에 대한 애착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증언은 신빙 성을 갖게 된다. 모든 가정에 대해 흄의 입장을 무너뜨리는 상반된 가정 이 성립될 수 있다. 따라서 흄은 가설에 입각해서 추론하는 대신에 이미 확증된 사실과 원리 위에서 추론해야 할 것이다. 해 · 제—극단적 회의주의에서 창조적 회의주의로 1. 철학자이기보다 인간이 되고자 했던 사람 흄 데이비드 흄은 1711년 4월 24일 스코틀랜드의 수도인 에든버러에서 태어났다.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읜 그는 나인웰스의 지주였던 아버지 조 지프 흄Joseph Hume의 지위를 승계했고, 홀로된 어머니와 지역 지사였 던 삼촌 밑에서 자랐다. 그는 그곳에서 초등 교육을 받았으며, 당시의 관 례대로 열두 살에서 열다섯 살까지 에든버러 대학에서 수학했다. 대학 시 절 흄은 법학 공부를 원했던 가족의 기대와는 달리 철학에 심취하여 3년 내내 철학적 사색과 독서에 매달렸다. 흄은 자서전 《나의 인생My Own Life 》에서 당시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나의 면학적 기질과 절제, 근면으로 인해 내 가족은 법률가가 내게 적합한 직업이라고 생각했 다. 그러나 나는 철학과 일반 학문의 탐구 외의 모든 것에 참을 수 없는 혐오감을 갖게 되었다.”72) 당시 흄은 오늘날의 젊은이들처럼 경제적 자립 을 위한 전문적인 직업인의 길과 순수한 학문의 길을 놓고 심각한 내적 갈등을 겪고 있었으며, 이로 인해 신경 쇠약에 걸려 학교를 졸업하지 못 한 채 나인웰스로 귀향하게 되었다. 그 후 그는 고향에 머물다가 1734년 브리스틀의 한 해운상에서 서기로 일할 기회를 얻어 고향을 떠났으나 얼 마 안 돼 그 일을 그만두고 다시 낙향했다. 그러나 연 40파운드에 해당하 는 유산을 상속받게 되면서, 원했던 철학 공부를 위해 프랑스 유학 길에 오르게 된다. 그는 데카르트René Descartes가 교육받았던 라 플레셰La Flèche의 예수회 대학에서 공부하며 그의 첫 번째 대작인 《인성론》을 집 필하기 시작했고, 3년 만에 완성했다. 1739년 영국으로 돌아와 《인성론》 을 출간했으나, 그 책은 “인쇄기에서 사산된 상태로 떨어졌다”는 그의 표 현처럼 최악의 평가를 받았다. 에든버러로 다시 돌아온 그는 도덕과 정치 분야의 소론을 쓰며 소일하 던 중 1744년 모교인 에든버러 대학의 윤리학 및 정신 철학 교수직에 지 원했으나, 그를 무신론자요 회의론자로 규정 지은 장로교 목사들의 반대 로 고배를 마시게 되었다. 그 후 경제적 자립을 위해 에넌데일 후작 Marquis of Annandale의 가정 교사로 얼마간 지냈고, 제임스 세인트 클레어James St. Clair 장군의 비서로 일하면서 프랑스 군사 원정에 동 행했으며, 그 공로로 클레어 장군과 함께 외교 사절단의 일원으로 유럽 각지를 여행하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견문을 넓히고 돌아온 그는 《인성 론》 개작에 착수하여 앞부분은 《인간 이해력 탐구》로, 뒷부분은 《도덕 원 리 탐구An Enquiry Concerning the Principles of Morals》로 개작했 다. 1752년 흄은 에든버러에 있는 변호사 도서관의 사서직을 얻어 집필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을 얻게 되었고, 덕분에 일찍이 계획했던 《 영국사 The History of Englandds 》 집필에 들어갔다. 기원전 55년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침입부터 1688년 명예 혁명에 이르기까지 전 6권에 걸친 방 대한 《영국사》가 1762년 탈고되었다. 이 책은 거의 1세기 동안 베스트 셀러로 읽혔고, 대영제국 도서관에서 지금까지도 흄이 역사가로 기재되 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이 출간된 지 1년 후에 로마 가톨릭 교회는 그의 모든 저작을 금서 목록에 올렸다. 이것은 오늘날로 치면 ‘노벨상에 버금가는 명예’라고 할 수 있는데, 각 분야에서 놀라운 업적을 이룬 천재 들의 저작들이 바로 이 금서 목록에 올랐기 때문이다. 1763년 흄은 프랑스 주재 영국 대사의 비서가 되어 파리에 부임하면서 프랑스 살롱가의 환영을 받았다. 그는 유머와 박식함으로 인해 ‘영국의 볼테르’라는 애칭을 들으며 사교계의 매력적인 총아가 되었다. 후일 그는 내무차관으로 재임한 뒤 1769년 여생을 보내기 위해 에든버러로 귀향했 으며, 자신의 저서들을 교정하거나 개작하는 한편 자서전을 쓰면서 시간 을 보내다가 1776년 8월 25일 지병인 간종양으로 사망했다. 2. 흄의 철학 : 회의론과 자연주의 (1) 철학의 동기 오늘날 흄의 철학을 한마디로 ‘회의론’이라 규정 짓는 데는 이론의 여 지가 없는 듯하다. 그러나 회의론의 성격을 규정 짓는 데 있어서는 학자 들간에 서로 상반된 견해가 있어왔다. 흄의 사후 거의 1세기 가까이 잊혀 져온 그의 철학을 발굴해낸 영국의 관념론자 그린Thomas Hill Green은 흄의 철학을, 경험으로는 아무것도 확증할 수 없음을 보여준 경험에 기초 한 이론73)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흄을, 칸트가 선험 철학으로 나아가 는 길을 열어준 로크John Locke와 버클리George Berkeley의 파괴적 계승자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흄을 경험론의 파괴적 계승자로 해석하는 것은 《 인성론 》 에서 시작하여 그의 전 생애에 걸친 모든 철학적 사유를 관류했던 인간학의 이 념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소치이다. 흄의 전기 작가인 모스너Ernest C. Mossner는 그가 편집한 《인성론》 서론에서 흄의 철학을 다음과 같이 평 가하고 있다. 흄의 철학을 단순히 회의주의나 불가지론으로 기술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것은 부분적으로는 파괴적이지만 대체로 건설적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흄의 회의주의는 ‘창조적 회의주의’이다.74) 우리가 누군가의 철학을 이해하려 할 때 그의 철학함의 동기가 무엇인 가를 묻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듯하다. 흄은 《인 성론》에 대한 관심을 끌어낼 목적으로 1740년에 익명으로 쓴 <인성론 초 록>에서 그의 철학적 저술의 동기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유명한 라이프니츠경은 논리학의 일반적 체계가 논증의 과정에서 이해력의 작용에 대 해서는 매우 풍부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개연성이나 삶과 행위의 토대가 되며 우리의 철 학적 사색을 이끌어가는 다른 증거들을 다룰 때는 지나치게 간결하다는 문제점을 인식 하고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인간 이해력에 대한 소론The Essay on Human Understanding 》 , 《 진리론La Recherche de la Vérité 》 , 《 사유의 기술L’Art de Penser》을 이해했다. 《인성론》의 저자는 위의 저자들의 결함을 파악하고 그가 할 수 있 는 한 이 같은 결점을 보완하고자 노력했다.75) 이 책에서 흄은 라이프니츠의 말을 빌려 《인간 이해력에 대한 소론》의 저자인 로크, 《진리론》의 저자인 말브랑슈Nicolas Malebranche, 《사유 의 기술》의 공동 저자인 아르노Antoine Arnauld · 니콜Pierre Nicole 등 대륙 합리론자들이 관념들간의 관계에 대한 논증적인 추론 demonstrative inference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해명하고 있지만 개연 성이나 삶과 행위의 토대가 되는 도덕적 추론moral inference에 대해서 는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를 보완하는 것이 자신의 철학적 저술의 동기임을 밝힌다. 이러한 철학적 동기에 비추 어 볼 때 우리는 흄의 철학이 단순히 부정적이거나 파괴적인 것이 아니 며, 앞선 철학자들의 부족한 설명을 보완하기 위한 건설적인 면을 지니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은 《인성론》의 서론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흄은 “모든 학문은 다소간 인간 본성과 연관을 갖는다”76)는 전제 하 에, 모든 학문의 출발점이 되는 인간학을 세울 때 비로소 학문의 진보를 기대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바로 이러한 인간학의 이념에 따라 인간 본 성에 관한 실험적 탐구에 착수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학문에서는 인간의 삶에 대한 신중한 관찰에서 실험을 수집해 야 하며, 사교, 일, 쾌락 등에서 나타나는 사람들의 행위를 통해 세상의 일상적 과정에 나타난, 있는 그대로의 그들을 수용해야 한다. 이러한 종류의 실험이 적절하게 수집되고 비교될 때 우리는 이를 토대로, 확실성에 있어서 부족하지 않고 유용성에 있어서도 어떤 다른 인간 이해보다 월등히 우수한 학문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77) 그러나 흄이 《인성론》에서 밝힌 건설적인 인간학의 이념은 그것을 위 한 정지(整地) 작업인 파괴적인 탐구에 가려졌다. 다시 말해 흄은 관찰과 실험에 기초한 인간학을 세우기에 앞서 단순히 이성이나 감각을 통해 인 식의 확고한 토대를 마련하고자 했던 합리론이나 경험론의 시도를 반박 하는 파괴적인 탐구에 착수해야 했는데, 바로 이 같은 파괴적인 탐구로 인해 그의 건설적인 탐구가 빛을 보지 못한 것이다. 1744년에 흄은 에든 버러 대학에 공석으로 남아 있던 윤리학과 정신 철학 교수직에 지원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의 목사들은 그를, 존재를 제외한 모든 것을 부인하고 어리석게도 아무것도 확실하게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보편적 회의주 의자라며 탄핵했다.78) 그러자 그는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기 위해 에든버 러 대학의 학장인 존 쿠츠John Coutts에게 보낸 《한 신사가 에든버러의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A Letter from a Gentleman to his Friend in Edinburgh 》 에서 자신이 결코 극단적인 회의론자나 무신론자가 아님을 주장했다.79) 극단적 회의론의 주장은 모든 시대에 걸쳐 인간의 삶에서 변치 않는 원리들이나 행위 에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하는 단순한 호기심의 원리 또는 정신의 유희로서 간주 되어왔다. 사실 상식적인 이성의 규칙이나 심지어 감각을 의심하는 체하는 철학자는 그 것이 자신의 본심이 아니며 그가 실상 판단과 행위의 규준으로 어떤 의견을 개진하려는 것이 아님을 충분히 밝히고 있다. 이들의 이러한 주저는, 자연의 가장 강력한 본능에서 나오는 가장 분명해 보이는 원리들조차 충분한 일관성과 절대적인 확실성을 지닐 수 없 음을 보여줌으로써 하잘것없는 인간 이성의 오만을 약화시키려는 것이다.80) 여기서 흄의 주장은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그는 인간의 삶에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하는 단순한 호기심에 불과한 극단적 회의 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둘째, 일상적인 삶에서 우리를 소외시키는 극단적 회의론의 특징은 상식적 이성의 규칙이나 감각을 의심하는 것이 다. 셋째, 극단적 회의주의처럼 보이는 흄의 회의론의 참된 의도는 인간 이성의 오만, 즉 독단을 제거하려는 것이다. 흄의 회의주의가 갖는 바로 이러한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측면이 갖는 참된 의도는 그가 물리적 실체, 인과율, 자아의 동일성 같은 상식적인 신념들을 분석하고 해명함으로써 명료하게 드러난다. (2) 상식적인 신념의 정당화 불가능 우리는 본능적으로 우리 외부에 존재하는 대상이 우리가 지각한 그대 로 존재한다는 일종의 상식적 실재론naive realism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믿음은 이 집이나 저 나무가 내 정신 안에 있는 지각 에 지나지 않으며, 정신과 독립되어 존재하는 물리적 실체의 한낱 복사나 표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철학적 반성이 이루어질 때 쉽게 무너져버리고 만다. 따라서 우리는 철학적 반성을 통해, 지각과 물리적 대상을 구분하 지 않는 상식적 실재론으로부터 지각은 지각되지 않는 물리적 실체의 일 개 표상에 불과하다는 일명 표상적 실재론representative realism으로 넘어가게 된다. 흄은 바로 이 표상적 실재론이 합리적으로 옹호될 수 없 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각되지 않는 물리적 실체를 지각의 원인으로 전제 하고 있는 표상적 실재론은 인과율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 인과율이 경험 을 통해 확증될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흄에 따르면 ‘모든 관념은 인상의 복사’라는 경험주의의 원리를 따를 때 우리는 사태에 관한 모든 추리가 의존하는 인과 관념이 어떤 인상에 근거하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 각되는 대상들로부터 우리는 단지 그들간의 공간적인 인접성과 시간적 연속성을 관찰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오비이락(烏飛梨落)의 경우와 같 이 원인과 결과간의 인접성이나 연속성만으로는 완벽한 인과 관념을 형 성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따라서 참된 인과율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원인 과 결과를 한데 묶는 필연적 연관성necessary connection을 경험을 통 해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과율의 원리를 주장함에 있어서 공간적 인접성이나 시간적 연속성 외에, 필연적 연관의 관념이 어 떤 인상에서 유래하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필연적 연 관의 관념을 야기한다고 생각되는 어떠한 인상도 물체들의 작용에 대한 개별적 사례들에 대한 경험에서 발견할 수가 없다. 결국 지각을 기초로 그것의 원인이 되는 물리적 실체를 가정하고 있는 로크의 표상적 실재론 은 경험에 의해 확증되지 않은 하나의 독단적 원리라 할 수 있는 인과율 에서 유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우리 감각의 원인이 되는 어떤 물리적 실체가 존재한다는 증거를 마련하기 위해, 완전자인 신은 성실한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를 속일 리 없다는 데카르트 식의 신의 진실성에 호소하는 것 역시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신이 우리 감각의 진실성을 보증한다면 우리의 감각은 전혀 실수 할 수 없다는 터무니없는 결론이 도출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의 정신과 독립되어 존재하는 물리적 실체에 관한 우리의 신념은 감각의 증거에 의 해서도, 이성의 논증에 의해서도 결코 확증될 수 없는 것이라는 회의적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또한 물리적 실체를 지각하는 인식의 주체로서 지각과 구분되어 독립 적으로 존재한다고 믿어지는 자아의 존재를 우리는 영원히 자기 동일성 을 유지하는 어떤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에 대응하는 어떠한 인상도 갖 고 있지 못하다. 만약 자아의 관념에 대응하는 어떤 인상이 있다면 그 인 상은 우리의 전 생애를 통해 변함 없이 동일성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각과 기억, 그리고 변화무쌍한 온갖 감정의 주체가 된다고 생각 되는 정신적 실체인, 불변하는 자아에 대한 인상을 발견할 수가 없다. 내 입장에서 내가 나 자신이라 부르는 것에 가장 가까이 접근할 때 나는 항상 뜨거움 이나 차가움, 빛이나 그림자, 사랑이나 증오, 고통이나 쾌락 같은 개별적인 지각과 만난 다. 나는 지각 없이는 잠시도 나 자신을 잡을 수 없으며, 지각 이외에 어떤 것도 찾아볼 수 없다. 깊은 잠에 들었을 때처럼 한동안 나의 지각이 제거될 때 나는 나 자신을 감지할 수 없고, 따라서 그때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모든 지각이 죽음으로 인해 사라지고 따라서 나의 육신이 사라진 후에 생각할 수도 느낄 수도 볼 수 도 사랑할 수도 증오할 수도 없다면 나는 완전히 소멸될 것이며, 나는 나를 완전한 비실 재로 만드는 데 그 이상 필요한 것을 생각할 수 없다.81) 여기서 흄은 우리가 의식에서 지각과 온갖 감정을 제거할 때 자아는 완 전한 비실재가 되고 만다고 주장한다. 이는 물리적 실체에 대한 신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자아라는 실체에 대한 신념 역시 정당화될 수 없는 신 념이라는 얘기다. 중세 때부터 내려오는 세 가지 실체 개념 중 물리적 실체와 자아라는 정신적 실체에 대한 신념 외에 나머지 하나인 신에 관한 신념 역시 지각 의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에 역시 정당화되기 어렵다. 그러나 18세기에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던 ‘설계로부터의 논증’과 같은 이성에 의한 논증을 통해 신에 대한 신념을 갖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도 흄은 앞의 경우와 같이 회의적인 분석을 내놓는 다. 흄에 따르면 ‘설계로부터의 논증’을 통해 우리가 주장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인간과 자연적 질서의 원인 사이에 먼 유비 관계가 있다는 것뿐이 다. 자연 신학 전체가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다소 애매하지만 하나의 단순하고 분명치 않은 명제, 즉 궁극적인 질서의 원인이나 아마도 인간 지성과 먼 유비 관계를 갖 는다는 것으로 귀결된다면……가장 호기심 많고 사변적이고 철학적인 사람이 그 명제에 대해 솔직하게 철학적으로 동의를 표하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82) 그러나 인간과 자연 질서의 원인 사이에 먼 유비 관계가 있다는 사실만 으로는 유신론을 입증하거나 반증할 수가 없다. 유신론자와 마찬가지로 무신론자 역시 자연의 자기 운동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연 질서의 원초적 원인과 인간 지성간의 유비를 강조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유신론자와 무 신론자간의 논쟁은 유비 관계의 주장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음을 알 수 있 다. 이 같은 결론은 우리를 유신론에 관한 판단 중지로 이끈다. 이러한 판 단 중지는 신에 관한 신념을 이성을 통해 논증해 보이고자 하는 자연 신 학의 시도가 독단적임을 보여준다. 이성이나 감각이 우리를 물리적 실체나 인과율, 자아 등에 대한 상식적 인 신념들로 안내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흄의 분석은, 단순히 우리 의 상식적인 신념이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종의 파괴적 인 작업이다. 그러나 이것은 앞서 언급한 인간학이라는 건설적인 탐구의 길을 열기 위한 하나의 사전 정지 작업이었던 것이다. (3) 상식적 신념에 관한 자연주의적 설명 흄은 자신이 실패한 것으로 여긴83) 《인성론》을 보완할 목적으로 집필 한 《인간 이해력 탐구》의 말미에서 “유익한 판단에 이르려면, 자연적 본 능의 강력한 힘 외에 그 어떠한 것도 극단적 회의주의에서 우리를 구할 수 없다는 점을 철저히 깨닫는 것보다 더 바람직한 것은 없다”라고 말하 면서, 철학적 판단이란 방법화되고 교정된 상식적 삶의 반성에 지나지 않 는다고 주장한다.84) ㄱ. 물리적 실체의 존재와 인과율에 대한 신념 철학을 상식적인 삶에 대한 반성으로 규정하는 흄의 철학관은 물리적 실체의 존재에 대한 철학적 분석에서 명료하게 드러난다. 회의주의자는 이성에 의해 이성을 변호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여전히 추론을 계속 하며 이성을 신뢰한다. 마찬가지로 철학 논변에 의해 물체의 존재에 대한 원리가 참이라 고 주장할 수 없어도 그것에 동의해야 한다. 자연은 이를 회의주의자가 선택하게끔 내버 려두지 않으며, 우리의 불확실한 추론과 사변에 의존하기에는 지나치게 중요한 일이라 고 판단한다. 우리는 당연히 어떤 원인이 물체의 존재를 믿게 하는지를 물을 수 있지만, 물체가 존재하는지 아닌지를 묻는 것은 무익한 짓이다.85) 여기서 흄은 그가 물체의 존재를 의심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점은 물리적 실체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고 말한다. 흄에 따르 면 우리가 어떻게 해서 물리적 실체에 대한 신념을 갖게 되느냐 하는 것 에 바로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흄은 신념의 형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심리학적인 설명을 내리고 있다. 나는 이미 수학의 토대를 검토하면서 노를 저어가는 배가 일시적으로 노를 젓지 않아 도 움직이듯이 상상이 일련의 사유 가운데서 대상이 부재할 때 계속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관찰했다…… 지속되는 물체의 존재에 대한 생각에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된다. 대 상은 우리의 감각에 나타나는 경우에서도 확실한 일관성을 지닌다. 그러나 이러한 일관 성은 대상이 지속적으로 존재한다고 가정할 때 더욱 커진다. 일단 대상들간에 일양성이 연이어 관찰되면 지속되는 존재에 대한 가정은 가능한 한 완벽한 일양성에 이를 때까지 계속된다. 존재에 대한 계속되는 가정은 이러한 일양성의 요구를 만족시켜주는 한편 우 리에게 감각이 증명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대상들간의 규칙성에 대한 관념을 준다.86) 요컨대 물리적 실체에 대한 신념은 경험되는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작 동되는 자연적 성향으로서 상상의 산물이며, 이러한 신념은 허구적인 것 이 아니라 영속적이고 저항할 수 없고 보편적인 것이다. 또한 그것 없이 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을 영위해나갈 수 없는, 우리의 모든 사유와 행위 의 토대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도덕적 추론의 기초가 되는 모든 인과율 또한 지각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부정될 수는 없다. 흄에 따르면 필연적 연관에 대한 관념은 주관적인 원천에서 비롯된다. 항시적 연접(恒時的連接)을 이루는 반복되는 사례들에 대한 관찰은 하나 의 대상을 그 대상의 일상적인 수반물과 연결시키는 성향을 만들어낸다. 이 같이 사유나 상상 가운데서 나타나는 관습적인 연결 성향은 바로 필연 적 연관의 관념을 야기하는 ‘새로운 인상’인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탐구 를 더 진전시킬 필요가 없다. 원인과 결과에 관한 모든 추리는 관습에서 도출된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이 같은 결론은 관습이 오류에 빠지기 쉽 다고 생각하는 합리론자들에게는 사태에 대한 추리의 신뢰도를 떨어뜨리 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흄은 자연적 원리인 관습 없이는 우리 의 삶을 영위해나갈 수 없으며 그것은 ‘인간 삶의 위대한 안내자’라고 말 한다. 자연의 흐름과 관념들의 연속 사이에는 어떤 조화가 있다. 자연의 흐름을 움직이는 힘 은 모두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우리가 알기로는 우리의 사유와 개념은 여전히 자 연과 같이 동일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관습은 바로 이러한 대응이 이루어지게 하는 원리 로서, 인간 삶의 모든 상황과 사건 가운데서 우리 인간의 생존과 행위의 지침에 필수적 인 것이다.87) 흄이 주장하듯이 인과율을 관습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규정하는 것은 인과율의 실재성을 부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우리가 인과율에 대한 신념을 갖게 되느냐를 해명하기 위해서이다. 흄은 1754년에 씌어진 그의 서간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어떤 것이 원인 없이 일어날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말을 결코 한 적이 없습니다. 나는 단지 그 명제가 거짓이라는 우리의 확신이 직관이나 논증이 아닌 다른 것에서 나와 야 한다고 주장했을 뿐입니다. ‘카이사르는 존재했다’라든가 ‘시실리라는 섬이 있다’ 같 은 명제에 대해 우리는 논증적이거나 직관적인 아무런 증거도 갖고 있지 못합니다. 당신 은 내가 이러한 명제의 진리나 확실성을 부정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확실성에는 여러 가 지 종류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논증적인 확실성처럼 규칙적인 것은 아니나 우리의 마 음에 흡족한 것이 있습니다.88) 인과 관계가 논증적이거나 직관적인 증거에 의해 지지되지 않는다 해 도 그것에 대한 우리의 확신이 결코 약화되지 않는다는 것이 흄의 요지 다. 여기서 우리는, 흄이 인과율과 관련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관념들 간의 관계 속에서만 나타나는 논리적 필연성이 아니라 자연의 어떤 연속 적인 사건에서 앞선 요인을 진정한 원인이 되게 하는 어떤 어김 없는 산 출성(産出性) 또는 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흄이 바로 이러한 산출성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있음을 우리는 《한 신사가 에든버러의 친구에게 보 내는 편지》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증거를 직관적인 것, 논증적인 것, 감각적인 것, 도덕적인 것으로 분류하는 것은 철학 자들에게는 상식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분류는 그들간의 우위성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상이성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도덕적 확실성은 수학적 확실성과 마 찬가지로 높은 확실성의 정도에 이를 수 있으며, 확실히 감각은 가장 분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증거에 속한다……그것[인과율]은 도덕적 증거에 의해 지지되며,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고 태양은 내일도 뜰 것이라는 진리와 동일한 확신을 수반한다.89) ㄴ. 자아의 존재에 대한 신념 흄에게 있어서 인과율에 대한 신념은 자아의 동일성을 설명하는 데 기 초가 된다. 흄에 따르면 자아의 동일성은 우리가 기억에 의해 지각들 사 이의 인과 관계나 유사성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따라 서 자아의 동일성이란 바로 인과 관계나 유사성에 의해 연결된 상이한 지 각들의 체계로 간주된다. 나는 가장 적절하게 영혼을 공화국이나 국가와 비교할 수 있는데 거기서 여러 구성원 들은 지배와 예속이라는 상호간의 속박으로 묶이며, 부분들의 끊임없는 변화 가운데서 동일한 공화국을 이어갈 다른 사람들이 나온다. 동일한 공화국에서 구성원이 바뀌고 또 한 법률과 헌법이 바뀌듯이, 동일한 사람이 자신의 동일성을 상실하지 않고도 인상이나 관념은 물론 그의 성격이나 성향 등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가 어떠한 변화를 겪든 그의 여러 자질들은 여전히 인과 관계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90) 이처럼 자아도 공화국처럼 ‘상이한 지각들의 다발이나 집합a bundle or collection of different perceptions’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흄이 자아를 단순히 상이한 지각들의 다발이나 집합으로 본 것은 아니다. 흄은 《인성론》 부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 지각들이 각각 독립된 존재라면 그것들은 함께 연결됨으로써만 하나의 전체를 형성한다. 그러나 내가 우리의 사유나 의식 안에서 연속적인 것을 묶는 원리를 설명하려 할 때 나의 모든 희망은 사라진다. 나는 이 주제에 대해 만족할 만한 어떤 이론도 발견할 수 없다. 요컨대 나에게 일관성을 가질 수 없도록 하는 두 가지 원리가 있는데 그중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다. 하나는 우리의 모든 독립된 지각은 독립된 존재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은 독립된 존재들 가운데서 어떠한 실제적인 연관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 다.91) 흄이 견지하는 두 가지 원리는 서로 독립된 상이한 지각들을 하나의 일 관되고 독립된 전체로 묶는 원리를 그 지각들 자체에서 발견할 수 없음을 말해준다. 이것은 흄으로 하여금 자아를 신념의 형성에 기여하는 어떤 주 체로 볼 것을 요구한다. 흄이 《인성론》에서 전개한 인간 본성의 원리들을 밝히는 인간학의 이념은 흄이 이러한 주체로서 자아의 존재를 전제로 하 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따라서 우리는 흄의 자아에 대한 논의 를 물리적 실체의 경우에서처럼 자아의 실재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보다는, 그러한 실재성에 대한 우리의 신념이 어떻게 형 성되는가를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바로 이 점은 흄 자 신의 고백을 통해서 확인된다. 저자[《인성론》의 저자, 즉 흄 자신]는 내가 기억하기로는 일상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영혼의 비물질성을 그 어느 곳에서도 부인한 적이 없다. 그는 단지 우리가 그러한 실재 에 대해 어떠한 명확한 관념도 지니고 있지 않으므로 그것에 대한 물음에 분명히 답할 수 없다고 말했을 뿐이다.92) ㄷ. 신의 존재에 대한 신념 흄에 따르면 신에 대한 신념 또한 인간 본성의 자연주의적 구조하에서 설명될 수 있다. 흄은 《자연 종교에 관한 대화》의 초고가 마련된 1751년 에 길버트 엘리엇Gilbert Elliot93)에게 쓴 편지에서 ‘설계로부터의 논 증’의 토대가 되는 자연 질서에 대한 신념이 경험적 증거를 기초로 형성 된 합리적인 신념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당신이 클리안테스Cleanthes94)를 지지하고자 하는 나를 돕고 싶다면 내 생각에 당 신은 《자연 종교에 관한 대화》 3부 이후를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2부에서 우리 의 모든 추리가 인간 정신의 고안물에 대한 자연 작품의 유사성에 기초하고 있음을 인정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자연은 단순히 하나의 혼돈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유일한 난점은 왜 다른 비유사성이 그 논증(설계로부터의 논증)을 약화시키지 못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가 당연히 기대하는 정도로 비유사성이 그 논증을 약화시키지 않는 것은 경험이나 느낌 때문인 것처럼 보입니다.95) 여기서 흄이 말하는, 자연의 질서를 가정하게 하는 경험이나 느낌이란 외부 대상에 대한 신념의 경우에서처럼 일련의 반복되는 사건들로 인해 작동되는 상상과 다르지 않다. 요컨대 관찰되는 개별적인 자연의 질서를 바탕으로 전체 자연의 질서가 잡혀 있다는 신념으로 발전하는 것은 상상 을 통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 따라서 자연의 질서에 대한 신념은 외적인 대상에 대한 신념이나 인과율에 대한 신념처럼 인간의 자연적 성향, 즉 상상에 의해 형성되는 하나의 자연적 신념이라 말할 수 있다. 《종교의 자연사》에서 흄은 자연의 질서에 대한 신념이 인과율에 대한 신념과 연결될 때 지적인 창조자를 믿는 이신론적인 신념이 형성된다고 말한다. 어떤 목적, 의도, 계획이 모든 것 안에 있음은 자명하며, 우리의 이해력이 이러한 가시 적인 체계의 최초 원인을 생각할 만큼 확대되었을 때 우리는 강력한 확신을 갖고 어떤 지적 원인이나 창조자의 관념을 갖게 된다.96) 흄은 1743년 그의 친구 윌리엄 뮤어William Mure에게 쓴 편지에서 리치먼William Leechman97)의 기도에 대한 설교를 논평하면서 플라톤 이 정의한 세 가지 유형의 무신론자를 언급하고 있다. 첫 번째 유형의 무 신론자는 신Deity을 부인하는 자, 두 번째 유형은 신의 섭리를 부인하는 자, 세 번째 유형은 신이 기도나 제물에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자이 다.98) 이 편지에서 흄은 기도의 힘을 믿는 리치먼을 세 번째 유형의 무신 론자로 분류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개정판에서 리치먼 씨가, 도덕의 실천과 신이 존재한다는 명제에 대한 오성의 동 의 외에 헌신과 기도 그리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종교라 부르는 모든 것에 대한 이 같은 반대에 답변하기를 바랍니다.99) 여기서 우리는 흄이 신의 존재를 부인하지는 않으나 신의 특별 섭리 또 는 직접적인 간섭을 인정하지 않는 이신론자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흄이, 신의 존재를 믿고 유일한 종교적 실천으로서의 도덕의 실천을 주장 하던 영국 이신론자들의 계승자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흄은 이신론적인 신념의 토대를 이성이 아닌 자연적인 신념 위에 두었다는 점에서 그들과 는 분명히 구별된다. (4) 창조적 회의주의 물체, 정신, 신이라는 세 가지 형이상학적 실체에 대한 우리의 상식적 인 신념들과 관련하여 흄의 철학은 이들을 확고한 토대 위에 정초시키고 자 하는 기존의 철학적 시도가 불가능한 것임을 보여준다.100) 그러나 이 러한 종류의 정당화 작업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그에게 철학의 종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흄에게 있어서 이 세 가지 형이상학적 신념들은 우리 의 상식적인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사유의 기본 틀이며, 철학의 고유한 임무는 관찰과 경험을 토대로 한 실험적인 방법을 통해 가능한 한 이러한 사유의 틀을 형성하는 인간 본성의 원리를 밝힘으로써 인간 본성과 어떠 한 형태로든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학문의 견고한 토대를 마련하는 데 있다.101) 이러한 점에서 물리적 신체, 자아, 신에 대한 신념을 인간 본성 의 자연적 원리들인 상상이나 관습, 습관, 성향 등에 의해 설명해내고자 한 흄의 시도는 자연 철학, 도덕, 자연 종교의 참된 토대를 마련하려 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흄의 회의주의를 상식적 신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상식적 실재론이나 비판적으로 거부하는 극단적 회의주의Pyrrhonism가 아니라 상식적 신념을 수용하되 그것들을 독단 적인 방식이 아닌 자연주의적인 방식102)으로 납득시키는 새로운 종류의 회의주의, 즉 창조적 회의주의로 이해해야 한다. 3. 흄의 종교 철학 흄의 종교에 관한 견해 역시 창조적 회의주의라는 흄의 철학에 대한 새 로운 해석의 틀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흄의 종교 철학에서 도 우리는 회의주의적인 측면과 자연주의적인 측면을 찾아볼 수 있다. 흄 은 인식론에서 독단론과 극단적 회의주의라는 두 가지 극단적인 입장을 지양하고 자연주의적인 입장을 취했듯이, 종교 철학에서도 역시 독단론 에 해당하는 기성 종교와 이에 맞서는 극단적 회의주의에 해당하는 이신 론에 기초한 자연 종교 양자를 비판하고 인간의 자연적 본성과 유용성에 기초한 현실적인 종교관을 취하고 있다. 흄이 종교 철학에서 관심을 갖는 문제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종교의 토대를 규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의 기원을 규명하는 것이다. 《종교의 자연사》에서 흄은 인간은 삶과 죽음, 건강과 질병, 풍요와 빈곤 같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희망과 공포의 긴장 가운데 놓여 있다고 말한다. 흄의 설명에 따르면 인간은 이러한 긴장에서 벗어나기 위 해, 긴장을 조성한다고 생각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원인을 물상화하 고 의인화하여 신으로 숭배함으로써 종교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데 문제는 여기서 숭배되는 신이 인간과 같이 사랑과 증오의 감정을 지닌 감성적 존재로서 인간의 기도나 탄원, 제물 등에 마음이 움직이는 지극히 탐욕스러운 존재라는 점이다. 이처럼 의인화된 유신론에 기초한 기성 종 교는 기적이나 계시를 통해 신이 언제든지 자연사에 개입할 수 있다고 주 장하며, 이러한 주장은 자연의 규칙성과 일양성을 약화시킴으로써 그것 에 기초한 우리의 경험이나 관습이나 도덕 등과 같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삶의 견고한 원리들을 약화시키거나 붕괴시키는 유해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 흄은 《자연 종교에 관한 대화》에서는 이처럼 유해한 것으로 판단 되는 의인적 유신론이 과연 이론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합리적인 신념 인지를 검토한다. 그는 여기서 당시에 그가 가장 명증적으로 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이라고 본 ‘설계로부터의 논증’을 꼼꼼하게 검토한다. 그는 ‘유사한 결과는 유사한 원인을 입증한다’라는 유비의 원리에 입각하여 자 연과 인위적 구성물간에 발견되는 질서의 유사성을 근거로 자연을 창조 한 지적인 창조자를 추론하는 이 논변에 여러 가지 논리적 결함이 있음을 지적한다. 첫째, 이 논변은 물리적 세계의 창조주로서 신을 추론하고 있 는데 왜 그 신을 창조한 또 다른 창조주를 추론할 수는 없는가?신을 이 물 리적 세계의 원인으로 가정하는 경우 우리는 세계의 창조 원인을 규명했 다고 볼 수 없는데, 신 역시 그 존재에 대한 설명이 요구되는 존재이기 때 문이다. 둘째, 유비의 원리가 철저히 적용된다면 우리는 유한자인 인위적 구성물에서 같은 유한자인 인간을 추론하듯이 역시 광대하기는 하지만 유한자인 자연에서 유한자인 자연의 창조주를 추론해내야 한다. 따라서 이 논증은 완전하고 무한하고 단일한 신의 존재를 추론해낼 수 없다. 셋 째, 유비의 원리에 따르면 자연은 비유기체인 인위적 구성물보다는 같은 유기체인 인간의 신체와 유사하며 우리는 경험상 신체가 없는 정신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점에서, 신이 존재한다면 아마도 신은 이 세계를 자 신의 신체로 하는 이 세계의 영혼일 것이다. 이것은 인간을 포함하는 자 연이 신과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신의 양태라고 주장하는 스피노자식의 일종의 범신론이 된다. 넷째, 이 세계가 인간의 신체와 같은 유기체와 비 교될 수 있다면 원인은 어떤 지성이라기보다는 동물이나 식물의 경우에 서와 같은 생식 작용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흄은 ‘설계로부터의 논증’에 대해 이와 같이 비판할 뿐 아니라, 오랫동 안 자연 신학에서 신의 존재를 선험적으로 입증하는 것으로 생각되어온 우주론적이며 존재론적인 논증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을 가한다. 《자연 종교에 관한 대화》에서 제시되는 신의 존재에 대한 우주론적이며 존재론 적 논증이란 다음과 같다.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나 원인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어떤 존재가 자기 자신의 원인인 것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인과 계열을 거슬러 올라가는 경우 우리는 어떠한 궁극적 원인도 없는 무한 후퇴를 가정하거나 아니면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궁극적 원인을 가정해야 한다. 그러나 전자는 불가 능하다. 왜냐하면 무한한 인과 계열의 연속 속에 각각의 개별적인 존재는 선행하는 원인에 의해 생겨난 것이지만 전체로서의 그 영속적인 인과 계 열은 개별적인 존재처럼 원인을 가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원인이 없기 때 문이다. 왜 하필 이 같은 특정한 인과 계열만이 영속적으로 존재하는지를 묻는 것은 합리적일 뿐 아니라 반드시 답변되어야 할 질문이다. 이것이 우연히 일어났다고는 말할 수 없는데, 우연이란 무를 의미하는 것이며 무 는 어떠한 것도 생겨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기 스스 로가 존재의 이유가 되는, 따라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할 때 모순을 범하게 되는 그런 필연적 존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바로 이 러한 필연적 존재가 신이다. 이 논증은 인과 계열을 따라 최초의 원인, 즉 궁극적 원인이 있어야 한 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우주론적이며, 이 궁극적 원인이 존재의 이유를 자 기 안에 안고 있는 필연적 존재라고 주장하는 점에서 존재론적이라고 말 할 수 있다. 흄이 지적하는 이 논증의 문제점은 첫째, 어떠한 사태도 선험 적인 논증에 의해서 입증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사태를 부 인할 때 그것이 모순을 범하지 않는다면 그 사태는 논증될 수 없는데 사 유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모순을 함축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우 리가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또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는 모든 것 에 대해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해도 아무런 모순에 빠지지 않으 므로 그것의 존재에 대해서는 논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영속적인 인과 계열을 쫓아 여러 인과 계열들의 총체적인 최초의 원인으로서 창조 자를 가정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왜냐하면 20개의 개체로 구성된 어떤 집 합체에서 각 개체의 원인을 규명했는데도 불구하고 다시금 그 전체 집합 체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은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살펴 본 신의 존재에 관한 자연 신학적인 논증들에 대한 흄의 비판은 의인화된 유신론에 대한 신념이 인간의 이성에 의해 정당화될 수 없는 신념임을 보 여준다. 또한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은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 Epicuros(기원전 341〜270)가 제기하는 악의 딜레마를 통해서도 실천 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이 세상을 돌아볼 때 우리는 인간의 두뇌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고난과 고통을 목격하게 된다. 만약 우리 가 악으로밖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이와 같은 고난과 고통이 신의 뜻이 아 니라면 신은 전능한 존재일 수 없으며, 만약 그것이 신의 뜻이라면 그러 한 신은 선한 존재일 수 없을 것이다. 악은 신의 뜻이거나 신의 뜻이 아니 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따라서 신은 전능하지 않거나 선하지 않다고 생각되며, 결국 이것은 완전자로서의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 되고 만 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흄은 의인화된 유신론에 기초를 둔 기성 종교가 실 천적으로 옹호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이론적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음을 보 여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흄의 비판적 논의를 근거로 하여 그를 반종교론 자나 무신론자로 간주하는 것은 흄의 종교 철학의 반쪽, 즉 회의주의적인 측면만을 본 것이다. 흄은 종교 문제에 있어서 오로지 부정적인 견해만을 견지함으로써 이 땅에서 모든 종교를 쓸어버리고자 했던 극단적인 파괴 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종교가 인간의 본성에 기초한 현실적인 삶의 한 방식이라는 점을 인식한 자연주의자이자, 어떻게 하면 종교가 건전한 삶 의 한 방식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가를 고심한 종교 계몽주의자였다. 우리 는 이와 같은 흄의 종교 철학의 나머지 반쪽인 자연주의적이고 구성주의 적인 측면을 《종교의 자연사》와 《자연 종교에 관한 대화》뿐 아니라 그의 여러 소론들에서 엿볼 수 있다. 흄에 따르면 아무리 어리석고 아둔한 사람일지라도 모든 것에는 어떤 목적과 의도 또는 계획이 있음을 알게 된다. 모든 것에는 계획이나 질서 가 있다는 이 같은 신념은 개별적인 자연 질서에 대한 경험적 증거를 토 대로 하여 형성된 합리적인 신념이라고 보기 어려운데, 우리가 종종 발견 하는 것처럼 무질서하게 보이는 자연 현상들이 이 질서에 대한 신념을 약 화시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흄은 이 자연의 질서에 대한 신념을 경 험이나 느낌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이 경험이나 느낌이란 바로 반복되는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작동되는 자연적인 성향인 상상을 말한다. 이 상상 에 의해 형성된 질서에 대한 신념이 바로 외부의 대상이나 인과율에 대한 신념처럼 영속적이고 저항할 수 없는 보편적인, 인류의 자연적인 신념인 것이다. 이 자연의 질서에 대한 자연적인 신념이 인과율에 대한 자연적인 신념과 연결될 때 지적인 창조자의 존재를 믿는 이신론적인 신념으로 발 전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처럼 인간의 보편적 성향이라고 할 수 있는 이신론적 인 신념이 기성 종교에서는 사랑과 증오의 감정에 따라 움직이고 기도나 제물에 의해 마음을 바꾸는 변덕스럽고 탐욕스러운 존재인 의인화된 유 신론으로 대체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흄은 그의 소론인 <회의론자The Sceptic>에서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 과 유일한 종교적 실천으로서 도덕적 실천만을 주장해온 영국 이신론자 들의 자연 종교가 제시하는 추상적이고 비가시적인 대상은 인간의 마음 을 오랫동안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감정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감각과 상상에 영향을 주는 어떤 방법을 모색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주 장은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토대가 되는 외부 대상이나 인과율, 자아 등 의 존재가 바로 인간의 감각과 상상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그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으로서 종교에서도 역시 감각과 상상이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흄은 《영국사》를 집필하면서, 튜더 왕가와 스튜 어트 왕가의 정치 및 종교적 분쟁을 통해, 종교에서 감각과 상상을 자극 하는 각종 종교적 의례와 신화를 제거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뿐 아니 라 그것이 바람직하지도 않음을 깨달았다. 우리 본성의 취약성은 우리가 관여하는 모든 것 가운데 뒤섞여 나타난다. 따라서 어떠 한 인간적 제도도 완전할 수는 없다. 무한한 정신, 우주의 창조자는 얼핏 생각하기에는 모든 종교적 의례나 제도가 배제된, 더 나아가 아무 사원도, 사제도, 또 기도문이나 기원 문도 없는, 완벽하게 순수하며 단순한 예배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종 류의 신앙이 빈번히 가장 위험한 광신주의로 타락해버리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우리가 종교를 어느 정도 인간의 취약성에 맞게끔 하기 위해 감각과 상상에 의존할 때 미신의 침투를 막거나 또는 예배에 있어 의례적이며 장식적인 요소들을 강조하지 못하게 하기 란 매우 어려우며 거의 불가능하다.103) 흄의 지적처럼 종교가 지나치게 감각과 상상을 배제하면 광신주의로 흐르고 역으로 지나치게 그것에 의존하면 미신으로 흐른다면 감각과 상 상의 역할을 적절히 조절하는 경우 인류의 복지와 사회의 존립에 긍정적 인 역할을 하는 참된 종교가 가능하지 않을까? 흄은 영국 국교회가 다른 기성 종교들과 같이 의인화된 유신론을 기초 로 하고 여전히 복잡한 종교적 의례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 국 교회를 기독교의 여러 분파 중 가장 이상적인 중용으로 평가하고 있는데, 이는 영국 국교회가 사제 계급을 시민 정부의 통제하에 둠으로써 교권이 타락하는 것을 견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구교에 비해 상당히 많은 종교 적 의례를 제거함으로써 미신과 광신으로 흐를 수 있는 위험 요소를 제거 했기 때문이다.104) 영국 국교회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또 다 른 이유는 그것이 지닌 부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그 부정적인 측면을 상쇄하는 역사적인 문맥에서 드러나는 실제적인 유용성에 있었다. 이러 한 생각은 “역사적 문맥에 대한 고려가 없는 철학적 사유란 극단으로 흐 를 수밖에 없으며 이는 결코 사물을 바라보는 올바른 관점일 수 없다”105) 는 철학과 현실에 대한 흄의 균형 잡힌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요컨대 흄은 의인화된 유신론의 토대 위에서 온갖 광신적인 계율을 강요해온 기 성 종교와 모든 종교적 의례와 신화를 배척하면서 도덕적 실천만을 강조 하는 자연 종교 모두를 지양하면서, 인간을 종교적 신념으로 이끄는 자연 적 성향의 토대 위에서 현실적인 중용을 찾고자 했던 것이다. 4. <기적에 대한 소론>의 해제 (1) 소론의 출현 배경 런던의 주교인 셜록Thomas Sherlock106)은 1729년에 나온 《예수 부 활의 증언에 대한 심리The Trial of the Witnesses of the Resurrection of Jesus》에서, 기적이 종교를 수용하는 합리적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울스턴Thomas Woolston의 주장107)에 맞서 다음과 같이 말 한다. 따뜻한 기후대에 살아서 얼음이란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은 추운 나라에서는 강 이 얼어서 얼음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실은 자연의 일 상적인 과정에 반대되는 것이기에 전혀 개연적이지 않으며, 또한 그가 생각하는 물질의 개념에 따르면 그러한 일은 전혀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108) 여기서 셜록이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일상적인 경험을 판단의 유일한 합리적 근거로 여겨 기적을 거부하는 것은 일상적인 경험의 한계를 인정 하지 않는 독단적인 태도라는 것이다. 기적에 관한 흄의 기념비적인 논의라 할 수 있는 《인간 이해력 탐구》의 10장에 해당하는 <기적에 관하여>는 바로 셜록과 울스턴간의 이러한 논 쟁의 와중에 씌어진 것이다.109) 이 글에서 흄은 기적에 대한 경험을 종교 를 지지하는 하나의 합리적인 근거로 간주하려는 기성 종교의 주장에 맞 서 기적의 경험이 결코 종교의 합리적인 호교론적(護敎論的) 근거가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2) 기적에 관하여 흄의 정의를 따르면 “기적은 자연 법칙의 위반이다.”110) 자연 법칙은 확 고한 경험에 의해 세워지는 것이기 때문에 기적을 입증하는 증거보다는 기적을 부인하는 증거들이 항상 압도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다. 모든 기적적인 사건에는 반드시 그것에 상반되는 일양적인 경험이 있으며 그렇지 않 다면 그것은 기적이라 불릴 수 없다. 또한 이러한 일양적인 경험이 증거가 된다는 점에 서 기적의 존재를 반증하는 직접적이고도 충분한 증명이 있게 된다.111) 예를 들어 누군가가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고 증언한다고 하자. 이 경우 그 증언이 기만이라는 사실보다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는 것이 더 기적적 인, 즉 덜 개연적인 사실이며, 그렇기에 그것은 기적이라 불릴 수 있다. 따라서 경험적인 증거를 토대로 기적을 믿는 것은 더 개연적인 것 대신에 덜 개연적인 것을 믿는 비합리적인 선택이다. 기적의 경험적 증거란 한마 디로 말해서 “그 증언의 거짓됨이 증언된 사실보다 더 기적적(즉 덜 개연 적)이지 않은 한 기적을 논증하기에 충분치 않은”112) 그러한 자기 모순적 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기적이 경험을 통해 입증될 수 없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리 에게는 기적을 바라는 자연적인 성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점점 계몽되어감에 따라서 건국역사에는 기적적이거나 초자연적인 것 은 존재하지 않으며 기적적이거나 초자연적인 것들은 신비한 것을 추구하는 인류의 일 반적인 성향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 같은 성향은 식견과 학식을 통해 종종 제어를 받기 는 하지만 인간 본성에서 철저히 뿌리뽑힐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113) 신비한 것, 경이로운 것을 갈망하는 인간의 일상적인 성향은 경험과 지 식의 한계로 인해 생겨나는 것이므로 인간의 지적인 발달과 더불어 어느 정도 약화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이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삶과 죽음, 건강과 질병, 풍요와 빈곤 같은 영원한 긴장”114)이 존재하는 한 기 적을 바라는 마음은 근본적으로 제거될 수 없는 인간의 자연적인 성향이 라는 것이 흄의 요지다. 현대 영국 철학자인 브로드Charlie Dumbar Broad는 <기적의 신뢰 성에 대한 흄의 이론Hume’s Theory of the Credibility of Miracles> 이라는 논문에서 자연 법칙에 대한 신념은 이러한 신념에 맞서는 기적에 대한 신념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지지하는 논리적 근거를 지니고 있지 않 다고 말한다. 따라서 경이로움을 사랑하는 인간의 자연적 성향에 토대를 둔 기적에 대한 신념보다 규칙적인 경험에 토대를 둔 자연 법칙에 대한 신념을 선택하는 흄의 입장은 일관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를 받아들 인다면 브로드의 주장처럼 기적에 대한 신념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논리 적 근거도 없는 자연 법칙에 대한 신념을 기적에 대한 신념 대신에 선택 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을 듯하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은 자연 법칙에 대한 신념과는 달리 기적에 대한 신념은 우리로 하여금 삶의 위대한 안내자인 경험과 관습에 위배되는 것을 믿게 한다는 점이며, 바로 이것은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영위를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 흄은 기적에 대한 신념 대신 자연 법칙에 대한 신 념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3) 기적의 전제 조건으로서의 신앙 자연 법칙의 위반으로서 기적이 존재하는가의 여부는 흄에게는 분명 사태에 대한 도덕적 추론의 문제이며, 따라서 우리는 경험에 의존할 수밖 에 없다. 그러나 기적과 관련해 경험이 우리에게 알려줄 수 있는 것은 기 껏해야 현재의 우리의 경험과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진기한 사 건extraordinary event이 일어났다는 사실뿐이다. 흄도 바로 이러한 진 기한 사건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1600년 1월 1일부터 8일 동안 전 세계를 뒤덮은 칠흑 같은 암흑이 있었다고 이 세상 의 모든 저술가들이 동의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이 진기한 사건이 아직도 사람들 사 이에서 생생하게 회자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또한 외국에서 돌아온 모든 여행자들이 동일한 이야기를 조금의 차이나 모순도 없이 전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오늘날 우리 의 철학자들은 그 사실을 의심하는 대신에 그것을 확실한 사실로 받아들이고 그러한 일 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탐구할 것이 분명하다.115) 흄이 말하는 것처럼 경험을 삶의 위대한 안내자로서 신뢰하는 우리는 그 진기한 사건을 목도했을 때, 당장은 그 원인을 알 수 없지만 그 사건을 어떤 자연 법칙의 한 실례로 보아 당연히 그 원인을 규명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설혹 그 진기한 사건이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어떤 자연 법칙의 한 실례가 된다고 해서 그 사건을 기적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분명 기적을 지나치게 좁게 해석한 것이다. 디이틀Paul J. Dietl에 따르면 그 사건이 어떤 자연 법칙의 실례인지 아닌지를 떠나 “어떤 사건을 기적이라 고 말하는 것은 일상적인 사건의 흐름에 초자연적인 개입이 있었음을 주 장하는 것이다”.116) 흄 역시 기적을 정확하게 정의하면 “신의 특별한 의지 나 어떤 보이지 않는 행위자의 간섭에 의해 생긴 자연 법칙의 위배a trans-gression of a law of nature by a particular volition of the Deity, or by the interposition of some invisible agent”117) 라고 말 한다. 여기서 자연 법칙의 위배가 진기한 사건을 목도한 현재의 시점에서 기술된 것이라면 논의의 관건은 거기에 신의 의지가 개입되어 있느냐 하 는 것이다. 과학의 발전이 결코 기적을 반증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미국 의 가톨릭 신학자 마이어John P. Meier에 따르면 신의 개입 여부는 경험 의 한계를 넘어서는 세계관worldview에 대한 신앙의 문제인 것이다. 마 이어는 프랑스 루드르 수도원의 의료 연구 기관에 보고되는 자료를 들어 기적의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이 수도원에서는 해마다 세계 각처에서 보 고되는 수많은 기적적인 치유 현상을 무신론자인 의학자와 유신론자인 의학자가 공동으로 연구하는데, 매년 수십 건의 치유 현상이 현대 의학으 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사건으로 결론 난다. 그런데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무신론자인 의학자의 경우 그러한 치유 현상을 우연에 의한 사 건이라고 부르는 데 반해 유신론자인 의학자는 그것을 기적으로 간주한 다는 것이다. 여기서 마이어는 그 치유가 우연이냐 아니면 신의 간섭에 의한 기적이냐 하는 판단은 의학자의 몫이 아니며, 의학자가 내릴 수 있 는 정당한 판단은 단지 그것이 현대 의학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현상이라 는 것뿐임을 지적하고 있다. 역사가나 물리학자나 의사가 각자의 전문적인 영역 안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증거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통해서 우리는 그 진기한 사건과 관련해 아무런 합리적인 원인이나 적절한 설명도 발견할 수 없었다는 사실뿐이다……그러나 신이 이렇듯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을 직접 일으켰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역사가를 철학자나 신학자와 구분하고 있는 선을 넘어서는 것이다.118) 흄은 《종교의 자연사》와 《자연 종교에 관한 대화》의 결론 부분에서 우 주 질서의 원인이 되는 지적인 창조자로서의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 다.119) 그러나 그에게 신은 우주 질서의 원인으로 가정된 것이기 때문에 이신론적 존재이며, 따라서 그는 자연의 질서를 깨뜨리는, 즉 자연의 법 칙에 위배되는 위반 기적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 신의 섭리는 어떤 작용 가운데서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으며, 태초부터 정해져 있는 일반적이고 불변하는 법칙을 통해 모든 것을 통제한다. 이런 점에서 모든 사건은 전능자 의 행위를 보여주는 것이며, 그것 모두가 신이 피조물에 부여한 힘에서 유출된 것이 다……만약 신의 특별한 의지에 의해 일반 법칙이 깨진다 해도 그것은 전적으로 인간이 알아챌 수 없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120) 요컨대 흄의 견해는 자연 법칙의 파괴로서 기적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 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진기한 사건이 나중에 어 떤 자연 법칙을 통해 일어난 일로 밝혀지더라도 이러한 진기한 사건이 바 로 그러한 법칙을 통한 신의 섭리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분명 기적이라 고 말할 수 있으며, 흄은 이 같은 주장을 허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연의 법칙과 조화를 이루는 조화 기적을 허용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 나 조화 기적을 주장하는 것은 앞서 언급했듯이 경험에 토대를 둔 객관적 인 주장, 즉 경험적 증언이 아니라 자신의 세계관을 표명하는 종교적인 주장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세계적인 종교 철학자 존 힉John Hick은 “설명할 수 없는 우연한 사건 이나 전혀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뜻하지 않은 사건 가운데서 신의 의지를 감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종교적인 반응으로서, 이것으로 인해 그 사건은 기적이 된다”121)라고 말한다. 이는 기적이 우리를 신앙으로 인 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이 우리를 기적으로 인도한다는 얘기가 되는데122) 흄은 바로 이 점을 분명하게 직시하고 있었다. 《인간 이해력 탐 구》에서 기적에 대한 논의를 마무리하면서 흄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 다. 이성의 힘만으로는 기적의 진실성을 우리에게 확신시키기에 부족하다. 신앙에 의해 기적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 자신 안에서 오성의 원리를 전복시키며 관습과 경험에 상반된 것을 믿도록 하는 어떤 지속적인 기적을 의식한다.123) 여기서 흄이 염두에 두고 있는 기적은 위반 기적이지만, 위반 기적이든 조화 기적이든 어떤 사건을 기적이라고 주장하는 판단 자체가 바로 신앙 에 의해 해석한 하나의 종교적 주장이며, 따라서 기적이란 종교를 지지하 는 객관적인 경험적 증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흄의 견해다. 이러한 연유에서 흄이 “우리의 가장 성스러운 종교는 이성이 아니라 신앙에 기초 하고 있다”124)고 말했을 때 그는 기성 종교의 호교론자뿐 아니라 자연 종 교론자들도 모두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4) 흄의 기적에 대한 비판이 갖는 종교 철학적 의의 흄의 기적에 대한 비판과 관련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흄이 정의한 기적이 바로 자연 법칙을 위반하는 기적, 즉 위반 기 적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흄이 그의 논의를 이렇게 ‘기적’에 대한 협소한 정의에 국한시킨 까닭을 두 가지 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로는 기 적이 유신론적인 종교의 견고한 토대가 된다는 호교론자들의 주장을 반 박하고, 기적이란 종교를 지지하는 합리적인 토대이기보다는 오히려 신 앙의 표현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바로 이러한 사실은 자연 종교의 수 호자였던 영국 이신론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큰데, 종교의 참된 토대 는 이신론자들이 신뢰했던 경험과 이성이라는 인간의 자연적인 인식 능 력이 아니라 신앙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기적이 자연 법칙에 위배되는 위반 기적으로 국한되고 경험 적 증거를 토대로 위반 기적과 자연 법칙 중에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한 다면 우리는 항상 확고하고 불변적인, 경험에 기초한 자연 법칙을 선택할 수밖에 없으며, 만약 계속 위반 기적을 선택한다면 이는 우리 삶의 건전 한 토대가 되는 관습과 경험을 혼란시킨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위반 기적에 대한 흄의 이러한 비판은 그의 기적에 대한 논의의 목적이 조화 기적에 토대를 둔 참된 종교와 위반 기적에 토대를 둔 미신이나 광 신주의 같은 사이비 종교를 구분 짓는 시금석을 마련하고자 하는 데 있음 을 보여준다.125) 따라서 우리는 흄의 기적에 대한 논의에서, 일상적인 삶 의 토대를 해치는 유해한 계시 종교를 배격하기 위해 철학적 근거를 마련 하려 했던 그의 계몽주의적 정신을 읽을 수 있다. 5. 러더퍼드와 빈스의 흄에 대한 반박의 요지 흄의 소론에 대한 러더퍼드의 비판의 요지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 다. — 우리는 지식을 감각에 의해 직접적으로 얻든가 귀납이나 이성의 추 론을 통해 얻게 된다. 다시 말해 경험이 지식을 얻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 다. — 어떤 사건은 그것이 우리의 경험과 일치하거나 모순되지 않을 때 신 뢰할 만한 것이듯이 우리의 지식과 일치하거나 모순되지 않을 때도 역시 신뢰할 만한 것이다. — 우리의 지식과 일치하거나 모순되지 않는 사건이 공정한 증거에 의 해 지지될 때 우리는 그 사건을 정당하게 믿을 수 있다. — 기적의 경우가 바로 이와 같은 경우다. — 우리가 가시적인 인과 관계 속에서 작용하는 힘 외에는 우주에 존재 하는 힘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면 기적적인 사건은 사물의 일상적인 과정 에 대한 우리의 경험과 모순되므로 그 자체로는 믿어지지 않으며 어떠한 증언에 의해서도 입증될 수 없다. — 그러나 이성은 경험을 넘어 감각의 대상이 되는 힘들에서 그것들을 초월하여 최초로 자연 법칙을 제정하고 자연을 운행하고 조정하는 신의 존재를 추론할 수 있다. — 기적의 존재는 그러한 신의 능력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총체적으로 일치하며 아무런 모순도 없다. — 따라서 기적이 공정한 증언에 의해 지지될 때 그것의 진실성을 정당 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 그런데 우리는 한편으로 이방 종교의 기적에 대해서는 부인하고 있 다. 어째서인가? — 이방 종교에서 주장하는 기적은 전능자로서의 신에 대한 우리의 지 식과 조화를 이루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의 러더퍼드의 비판에서 눈여겨 볼 대목은 우리가 신의 존재나 본 성에 대해 이성적 지식을 가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바로 이 비판을 염두 에 둔 결과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흄은 후일 《자연 종교에 관한 대화》에서 자연 신학과 변증론(辯證論, Apologetics)에 대한 엄정한 비판을 통해 우 리가 계시를 통하는 것 외에는 그러한 지식을 가질 수 없음을 설득력 있 게 보여주었다. 빈스의 비판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사태에 관한 증거는 우리를 도덕적 확실성으로 인도하는데 기적 에 관한 증거를 믿지 못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불신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 다. 둘째, 어떤 사실이 개연적이지 않다는 것은 단지 그러한 사실이 기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지 그 사실의 진실 여부와는 무관한 것이 다. 개연성의 역할은 증거가 제공될 때까지 우리의 신념을 유보시키는 것 뿐이다. 셋째, 자연 법칙의 위반으로 정의되는 기적이 존재할 수 없다는 흄의 주장은 물리적 세계에 대한 신의 통치 방식과 잘 부합한다. 그러나 흄은 기적을 물리적인 관점에서만 본 것이 문제이다. 기적은 영적이며 도 덕적인 관점에서도 보아야 한다. 만약 기적을 영적이며 도덕적인 관점에 서 본다면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책무를 다하게 하기 위해 가시적으로 자신의 손을 드러내 보이는 신의 개념과 자연 법칙의 위반으로서의 기적 은 잘 부합된다. 넷째, 자신의 제한된 경험을 인식하지 못하고 편견에 사 로잡혀 물이 얼음이 된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던 인도의 왕자처럼 흄 역시 편견에 사로잡혀 기적에 관해 제시된 어떠한 증거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 다. 다섯째, 일양적인 경험이 기적의 존재를 부인하는 직접적이고도 만족 할 만한 증거가 된다는 흄의 주장은 어떤 사실 자체가 그 사실의 존재를 부인하는 그런 사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태는 가능한 것 이며, 사실의 본성상 그것의 존재가 부인되는 사태는 존재하지 않는다. 빈스의 비판의 전체적인 요지는 기본적으로 흄이 불신앙의 편견으로 인해 기적에 관한 증언을 신뢰하지 않고 단지 물리적인 관점에서만 기적 을 이해함으로써 기적의 가능성을 봉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빈스의 주 장처럼 기적에 관한 증언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 불신앙 때문이라면 기 적에 관한 증언은 결국 신앙을 전제로 하는 일종의 신앙 고백이 되지 않 겠는가?또한 흄이 기적에 관한 소론에서 제기하는 비판의 논점은 기적의 진실 여부에 관한 것이 아니라 기적의 증언에 관한 신뢰성 여부에 관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흄은 기적에 대한 어떠한 증언이 있더라도 그 증 언을 부정하는 우리의 일양적인 경험의 증거가 더 많으므로 그것을 신뢰 할 수 없으며, 따라서 기적을 근거로 하여 유신론적인 신념이나 신앙을 정당화하는 것은 성공을 거둘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6. 기적에 관한 논의가 갖는 현대적 의의 종교인이 아닌 사람들이 특정 종교의 경전을 접할 때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기적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특히 모든 것을 과학적 합리성의 잣대로 판단하려 드는 현대인들에게 기적에 대한 이야기는 과장된 표현이나 거짓말로 들릴 수 있으며, 심지어 종교인 들조차 기적을 문자적으로가 아니라 비유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 다. 한편 기적은 처음부터 종교에 반감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종교 를 배척하고 거부하는 이유가 되지만 종교에 호감을 갖고 있던 사람들에 게는 종교를 가져야 할 이유가 되기도 한다. 기적은 흔히 ‘자연 법칙을 위반한 사건’으로 정의된다. 그러나 만약 기 적을 자연 법칙을 위반하는 위반 기적으로 정의한다면 어느 누구도 자신 이 목도한 사건을 기적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 우리 인간이 자연 법칙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빙산의 일각처럼 보잘것없는 지 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인간의 유전자가 백 퍼센 트 가깝게 해독되었다지만 실상 유전자 연구가들은 이 연구가 이제 시작 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자연 법칙을 근거로 어떤 사건을 위반 기적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원시인들이 일식 현상을 놓고 기 적이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자연 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라도 후일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법칙으 로 해명될 가능성을 열어놓는다면 우리가 접하는 어떤 기이한 현상도 위 반 기적이라고 단정할 수 없을 것이며, 현 시점에서 잠정적으로만 기적이 라고 일컬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곧 위반 기적은 있을 수 없 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흄이 든 예에 따르면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그리고 조상 대대로 물이 얼어 얼음이 되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아 프리카의 어떤 원주민 추장이 물이 얼음이 된다는 백인 선교사의 말을 믿 지 않는데, 이와 같은 우리의 제한된 경험과 지식을 근거로 위반 기적의 가능성을 부인하는 것은 위반 기적의 가능성을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독 단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홍해가 갈라지고 태양이 멈추는 것과 같 은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났다는 성서의 보고를 두고 우리가 경험해보 지 않은 사건이고 현대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므로 전혀 일어 날 수 없는 일이라고 단정 지어 말하는 것은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과학적 태도라기보다는 과학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지적 오만에서 야기된 독 단일 뿐이다. 기적이란 말의 일상 언어적인 용법을 살펴보면 기적이 반드시 자연 법 칙에 어긋나는 위반 기적만을 가리키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일상적으로 기적이란 말은 자연 법칙으로 설명될 수 있으나 실제로 일어나기는 쉽지 않은 진기한 사건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기적을 우리는 위반 기적과 구분하기 위해 조화 기적이라고 부른다. 2002년 한국에서 개최된 월드컵에서 한국은 꿈에도 그리던 16강을 넘 어, 그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웠던 4강의 성적을 일구어냈다. 48년간의 월 드컵 도전 역사 동안 월드컵 본선에 네 번 진출했고 단 한 경기에서도 승 리를 거둔 적이 없었던 한국이 유럽의 전통적인 축구 강국인 폴란드, 포 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을 물리치고 4강에 오른 경이적인 사건을 두 고 한국인뿐만 아니라 세계인 모두 주저하지 않고 기적이라 부른다. 그러 나 이 사건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국의 우승은 어쩌면 충분히 예측 가능한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히딩크라는 명감독과 감독의 지시에 따라 열심히 훈련을 거듭해온 스물세 명 태극 전사들의 뛰어난 기술과 투혼, 거기에 4,700만 한민족이 보여준 길거리 응원의 뜨거운 격려, 개최국으 로서의 이점 등 이 모든 것들이 한국의 4강 진출을 이루기에 부족함이 없 는 요소들이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분명 자연의 법칙을 위반한 위반 기 적이 아니라 단지 접하기 힘든 진기한 사건으로서의 조화 기적인 것이다. 사람들이 위반 기적이나 조화 기적을 체험하게 될 때 일반적으로 종교 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그것을 우연이나 행운으로 생각하는 반면 종교 를 갖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믿고 있는 신이 개입된 일로 생각한다. 우리 는 한국 축구 팀의 몇몇 기독교인 선수들은 경기 중 골을 터뜨리거나 승 리를 거두었을 때 그라운드에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하느님께 감사 기도 를 드리는 데 반해 어떤 선수들은 그것을 행운으로 돌리는 경우를 보았 다. 기독교인의 경우 자신이 경험한 사건을 기적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바 로 신이 살아 역사하시며 자신의 삶에 간섭하고 계시다는 일종의 신앙 고 백인 것이다. 우리는 종종 기적을 신앙을 갖게 된 이유나 신앙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으려는 목적에서 자신이 경험한 기적을 고백하는 신앙 간증이라는 것 을 접한다. 그러나 그것은 신앙 고백 이상을 넘어설 수가 없다. 위반 기적 의 경우 그러한 기적이 가능한지의 여부는 앞서 지적했듯이 인간의 지적 능력을 넘어서는 것이어서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이며, 설혹 그러한 위반 기적이 가능하다고 해도 그것이 단지 우연에 의한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 다. 또한 그러한 기적이 신에 의해서 일어났다고 해도 우리가 믿고 있는 바로 그 신의 개입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조화 기적의 경우에도 신 이 개입했다고 볼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 이 이집트를 탈출할 때 일어난 홍해의 사건을 《구약 성서》를 연구하는 일 부 학자들은 위반 기적이 아닌 조화 기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들은 성 서에서 말하는 홍해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페르시아 만이 아니라, 시나 이 반도와 이집트 사이에 있는 ‘갈대의 바다’라 불리던 갈대가 무성한 아 주 얕은 강이라고 본다. 그리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지금도 이곳에서 는 강한 동풍이 불면 얕은 물이 한쪽으로 밀리면서 걸어서도 건널 수 있 을 만큼 강의 수심이 얕아진다고 한다. 홍해의 사건이 이처럼 위반 기적 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기적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은 왜 하필 이집트 군 대에 쫓기던 바로 그 시간에 동풍이 불었는가 하는 점 때문이다. 바로 여 기에 신의 개입의 여지가 있으며, 따라서 출애굽 사건을 하느님의 인류의 구원이라는 구속사적(救贖史的) 관점에서 보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것 은 신이 개입한, 분명한 조화 기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신앙을 갖지 않 은 사람이 볼 때는 강한 동풍이 분 것은 그저 우연이나 행운 때문이지 신 의 개입 때문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위반 기적이든 조화 기적이든 어떤 기적을 근거로 자신의 신앙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는 성공을 거둘 수 없다. 오히려 어떤 사건을 위반 기적으로 보든 조화 기적으로 보든 그 사건을 기적으로 이해하려는 마음속에 이미 신앙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하기 전에 하느님은 파라오가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주게 만들려고 이집트에 열 가지 재앙을 내렸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건을 기술한 성서의 대목에서 매우 이상한 구절을 발 견하게 된다. “모세와 아론이 이 모든 기사(奇事)를 파라오 앞에서 행하였 으나 여호와께서 파라오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 손을 그 나라에서 보내지 아니하였다”(<출애굽기>, 11장 10절).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압제에서 구원하려고 모세를 보낸 하느님이 왜 파라오 의 마음을 강퍅케 하여, 열 가지 재앙을 내려 이집트 전역을 초토화할 때 까지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주지 않게 만들었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아마도 하느님이 보기에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탈출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는 파라오가 아니라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었던 것 같다. 430년간이나 살았던 삶의 터전을 버리고 늙은 모세와 아론을 따라 풀 한 포기 없는 광야를 건너 새로운 곳으로 이주한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결단 이 필요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은 파라오의 마음을 강퍅케 하여 이집트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림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느님이 살아 역사한다는 증거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실상 이적과 기사를 목도한 이스라엘 백성은 얼마 되지 않아 광 야 생활에 지친 나머지 모세를 원망하고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우상을 섬기게 되었다. 모세의 주장처럼 여호와가 그들에게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주지 않았기에 그들이 목도한 이적과 기사는 그들의 신앙으로 연결되지 못했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기적이 신앙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신앙이 기적을 만드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 할 수 있다. 따라서 참된 기적이란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나 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 즉 우리의 신앙인 것이다. 결국 기적이란 신앙의 다른 이름이며 올바른 신앙이란 올바른 기적관 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흄의 지적처럼 인간은 본성적으로 기적을 바라는 성향을 지니고 있어서 오늘날과 같이 고도로 문명화된 시대에도 여전히 우리는 기적을 바라는 마음을 갖고 살고 있다. 그러나 기적에 대한 우리 의 관심이 오직 요행을 바라는 위반 기적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이는 우리 의 일상적인 삶의 토대를 붕괴시킬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기적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참된 종교와 사교(邪敎)를 구별하는 하나의 시금석이 되며, 이러한 점에서 흄의 기적에 대한 소론은 참된 종교와 사교가 혼재하며 서 로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는 종교다원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소론은 기적의 비 밀이 신앙에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종교의 진정한 가치는 자신의 내면을 되돌아보는 데 있음을 다시 한번 되새겨보게 한다는 점에서 고전의 반열 에 들 만한 역작이라 할 수 있다. 주 1) (옮긴이주) 선험 철학은 칸트의 내재적 형이상학을 가리키는 말로, 경험에 앞서면 서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로서 인식 주체의 내재적인 구조를 밝히는 철학을 말한다. 칸트는 내재적 형이상학을 다루는 《순수 이성 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 》에서 인간의 경험적 인식의 가능 조건으로서 인간의 감성과 오성의 형식 그리고 순수 통각(統 覺)을 설명하고 있다. 2) (옮긴이주) 노먼 켐프 스미스Norman Kemp Smith(1872〜1958). 원래의 성에 아내의 성인 켐프를 추가하여 켐프 스미스라는 성을 갖게 되었다. 칸트의 《순수 이성 비 판》을 영역(英譯)한 것으로 유명하며, 데카르트, 흄 등의 고전 연구에 많은 학문적 기여 를 했다. 1차세계대전 전에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에서 심리학과 철학을 가르쳤으며 전 쟁 발발 후 영국으로 돌아가 에든버러 대학의 교수로 정년을 마쳤다. 3) (옮긴이주) 방법론적 자연주의는 형이상학적 자연주의와 구별된다. 전자는 과학을 하기 위해서 자연 법칙 이외에 어떤 것도 수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지만, 법칙을 초 월해 어떤 것이 존재할 수 있음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불가지론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후자는 물질 세계에 작용하는 자연 법칙을 초월한 어떤 존재가 있다 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무신론이다. 4) (옮긴이주) 자연 신학이란 계시 신학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계시 신학이 경전을 통 해 알 수 있는 말씀의 계시를 전제로 한 교리 체계인 데 반해 자연 신학은 경험 세계에 현시된 신의 자연적 계시를 인간의 자연적 인식 능력인 이성과 경험을 통해 밝혀내는 신 학이다. 5) (옮긴이주) 이신론에 따르면 신은 세계를 창조하고 세계에 질서를 부여한 지성적 존재자이며, 전통적인 유신론의 시각과 달리 신은 우주를 창조한 후에는 더 이상 우주의 운행에 직접 개입하지 않으며, 우주는 창조 시에 신이 부여한 자연 법칙에 따라 기계적 으로 운행된다. 6) (옮긴이주) 자연 종교란 계시 종교에 대립되는 개념으로서, 계시 종교가 계시와 신 앙을 통해 갖게 된 유신론적 신관에 기초를 둔 종교라면 자연 종교는 인간의 타고난 인 식 능력인 지성과 경험을 토대로 갖게 된 지성적 창조주에 대한 이신론적인 신념을 바탕 으로 한 인류 공통의 종교이다. 7) (옮긴이주) “모든 사람들은 포부를 갖고 있다. 그러나 성직자가 아닌 사람들의 포부 란 대개 그들의 직업을 갈고 닦아 사회에 이바지함으로써 성취되는 반면에 성직자들의 포부란 흔히 무지나 미신, 맹신과 거짓 등을 조장함으로써 성취된다”[David Hume, “Of National Characters”, Essays : Moral, Political, and Literary, (ed.) with Foreword & Notes, E. F. Miller(Indianapolis : Liberty Classics Pub., 1985), 200쪽 주석]. 8) (옮긴이주) 흄은 <미신과 광신에 대하여Of Superstition and Enthusiasm>에서 가톨릭을 미신으로, 개신교(특히 장로교)를 광신주의로 간주한다. 9) (옮긴이주) 주로 18세기에 활동한 영국 이신론자들은 창조주인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과 유일한 종교적 실천으로서 양심을 토대로 하는 도덕을 제외하고는 모든 신비적 요소와 의례를 종교에서 제거했다. 대표적인 이신론자로는 톨런드John Toland, 틴들 Matthew Tindal, 울러스턴William Wollaston, 콜린스Anthony Collins 등이 있다. 10) (옮긴이주)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는 현 사회에 이질적인 종교 집단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순히 기술하고 있는 기술적(記述的) 다원주의와, 다양한 종교 의 공존을 바람직한 것으로 보는 규범적 다원주의로 분류할 수 있다. 11) (편집자주) 틸랏슨John Tillotson(1630~1694)은 1691년에 캔터베리 대주교가 된 장로회 신학자로서 《신앙의 규칙Rule of Faith》(1676)과 《화체설(化體說)에 반대되 는 교리A Doctrine Against Transubstantiation 》(1684)에서 화체설(성체시 빵과 포 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된다는 이론)은 결코 기독교의 교리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12) (편집자주) 성찬인 빵과 포도주를 통해 그리스도의 육과 혈이 현존한다는 주장이 다. 13) (옮긴이주) 당시에 ‘moral’이라는 말은 논증적demonstrative이거나 직관적 intuitive인 것과는 대조되는 의미, ‘경험이나 사태에 기초한based on experience or matters of fact’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따라서 ‘moral philosophy’역시 단순히 도덕 철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토대로 하는 제반 학문을 지칭했다. 14) (옮긴이주) 스토아 철학에 심취했던 카토Marcus Porcius Cato(기원전 95~46) 는 고대 사회에서 독직과 뇌물을 거부한 정직과 청렴의 상징이었다. 그는 정치적으로 보 수적이고 타협을 싫어했기에 정적들이 많았다. 심지어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정적이 되 어 투쟁하다가 자살로 삶을 마쳤다. 그의 비극적인 삶은 훗날 극화되었으며, 키케로와 브루투스는 그를 찬미하는 시를 썼다. 15) (저자주) Plutarch, in vita Catonis Min. 19[Life of Cato(the Younger)]. 16) (편집자주) 이 이야기와 유사한 내용을 로크의 《인간 오성론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 , IV 15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버틀러Joseph Butler의 《종교의 유비Analogy of Religion 》(1736) 서론에서도 이와 유사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17) (저자주) 분명히 인도인들은 추운 지방에서는 물이 언다는 것을 경험할 수 없었 다. 이 경우 자연은 그들이 전혀 모르는 상황에 있으며, 따라서 그것이 어떻게 될지 선험 적으로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새로운 실험을 하는 것이며, 그 실험의 결과는 항 상 불확실하다. 우리는 종종 어떤 일이 일어날지 유비에 의해 추론할 수 있으나 이는 추 측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얼음이 어는 경우 그 사건은 유비의 규칙에 상반되는 것이 며, 이성을 지닌 인도인이라면 기대할 수 없는 사건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물에 냉 기가 작용하는 것은 냉기의 정도에 따라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빙점에 이 르면 한순간에 액체가 고체로 변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사건은 진기한 사건으로 불 릴 수 있으며, 따뜻한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그것을 믿으려면 매우 강력한 증거가 필요 하다. 그렇다고 그것이 기적적인 것은 아니며, 항상 동일한 상황인 자연의 과정에 대한 일상적인 경험에 상반되는 것도 아니다. 수마트라의 주민들은 그들의 주거지에서 항상 액체 상태의 물만 보았기 때문에 강물이 언다는 것은 그들에게 하나의 불가사의한 일로 간주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겨울날 모스크바의 물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물 이 얼 것이라는 것을 합리적으로 믿을 수 없었다. 18) (저자주) 종종 어떤 사건은 그 자체가 자연 법칙에 어긋나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 라도 그것이 사실인 경우 상황에 따라 기적이라고 불릴 수 있는데, 실은 그것이 자연 법 칙에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적인 권위를 주장하는 어떤 사람이 아픈 사람 에게는 치유를, 건강한 사람에게는 죽음을 명하고, 구름으로 하여금 비를 뿌리게 하고, 바람이 불게 하는 것과 같이 그의 명령에 따라 즉시 이행되는 수많은 자연적인 사건을 명했다면 이 사건들은 실제로 자연 법칙에 상반되는 것이기 때문에 기적으로 간주될 만 하다. 사건과 명령이 우연히 일치했다는 의심이 든다면 기적이나 자연 법칙의 위반이라 고 인정할 수 없다. 이 같은 의심이 없어야 기적이나 자연 법칙의 위반임을 인정할 수 있 다. 왜냐하면 인간의 목소리나 명령이 어떤 영향을 행사하는 것보다 더 자연을 위반하는 사건은 없기 때문이다. 기적은 정확하게, 신의 특별한 의지에 따른 자연 법칙의 위반 또 는 어떤 비가시적인 대리자의 간섭에 의한 자연 법칙의 위반으로 정의될 수 있다. 기적 은 인간에 의해 발견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이 기적의 본성과 본질을 바꾸지는 못한다. 집이나 배가 공중에 뜨는 것은 가시적인 기적이다. 깃털이 공중에 떠 오르는 경우도 바람이 그것을 들어 올릴 만한 힘이 없을 때라면,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지라도 그것은 참된 기적인 것이다. 19) (옮긴이주) 로마의 정치가, 법률가, 학자, 작가로서 다양한 분야에 많은 저술을 남 겨놓은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기원전 106~43)를 말한다. 20) (옮긴이주)데모스테네스Demosthenes(기원전 384~322). 아테네의 정치가이자 뛰어난 웅변가로서 아테네 시민을 선동해 아테네가 마케도니아에 대항하게 만들었다. 21) (옮긴이주) 루키아노스Lucianos(120 〜 180)는 그리스의 유명한 풍자 작가로서 고대 신화를 풍자의 소재로 다룬 《신들의 대화》, 《망자의 대화》 등을 남겼다. 22) (편집자주) 그리스의 작가인 루키아노스는 《알렉산더, 거짓 예언자》에서 아브노 테이코스의 알렉산더Alexander of Abonoteichos가 파플라고니아 주민들을 기만하여 신탁으로 추대받게 된 것, 신탁으로 추대받은 그가 아스클레피오스 신(의술의 신)이 거 위의 알에서 뱀의 모습으로 태어난 것처럼 꾸민 것을 이야기한다. 23) (옮긴이주) 오늘날 터키의 흑해 연안에 있던 고대국가로서 기원전 63년에 로마에 게 정복당했다. 24) (저자주) 독자들은 내가 알렉산더의 적으로 자처하는 루키아노스의 말만 듣고 성 급하게 알렉산더에 대한 견해를 피력했다고 불만을 토로할 수도 있다. 알렉산더의 추종 자나 공범자들이 남긴 기록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일상적인 삶에서도 동일한 인물에 대한 적과 동지의 견해는 너무나도 상반되고 대조적인데 하물며 종교적 인 문제에서는 알렉산더와 사도 바울의 경우처럼 더 말할 필요도 없다. 25) (옮긴이주) 티투스 리비우스Titus Livius는 로마의 위대한 3대 역사가로서 로마 건국부터 아우구스투스의 세계 통일에 이르는 역사를 기술한 《 로마사Ab Urbe Condjta Libri》(142권)를 40년 동안 저술했다. 26) (옮긴이주) 플루타르코스Plutarchos는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저술가로서 《영웅전 Bioi parall -e loi》을 집필했다. 27) (옮긴이주) 타키투스Publius Cornelius Tacitus는 로마의 정치가이자 역사가로 서 그의 장인 율리우스 아그리콜라의 생애를 그린 《율리우스 아그리콜라의 생애De vita Julii Agricolae》와 《게르마니아Germania》를 집필했다. 28) (옮긴이주)리그league는 영어권 국가에서 사용되던 거리 단위로 200리그는 약 5 킬로미터에 해당한다. 29) (옮긴이주)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us는 69~79년에 재위한 로마 황제이다. 30) (옮긴이주) 세라피스 신은 이집트의 남신( 男 神 )이다. 오시리스와 아피스의 합성 신으로 우신(牛神), 명부(冥府)의 왕, 의술의 신으로 여겨졌다. 멤피스에서 숭배되었고 그곳에는 세라피움이라는 신전이 있었다. 31) (저자주) Hist. lib. v. cap. 8. 수에토니우스Suetonius는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이력에 대해 거의 동일하게 설명하고 있다. (수에토니우스의 황제에 대한 언급은 《열두 황제의 생애Lives of the Twelve Caesars》 8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이야기는 흄이 기술한 바처럼 타키투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타키투스 자신은 그 치유가 기적적 이라는 것을 의심했다—옮긴이주) 32) (편집자주) 플라비우스 가는 69〜79년 로마 제국을 통치한 가문으로 베스파시아 누스 황제(9 〜 79), 그리고 그의 아들 티투스Titus(40 〜 81)와 도미티안 Domitian(51~96)이 대표적이다. 33) (편집자주) 레츠De Retz 추기경은 프랑스의 정치 지도자(1613〜1679)이다. 그 의 《회상록 Mémoires》(1717)은 당시의 궁중 생활을 전해준다. 34) (옮긴이주) 아라곤은 스페인 북동부에 있던 고대 왕국이다. 35) (옮긴이주) 얀센주의Jansenism는 네덜란드의 가톨릭 신학자 얀센Cornelius Otto Jansen의 교의(敎義)를 계승한 아르노와 케넬에 의해 파리 교외의 포르 루아얄 수 도원을 중심으로 전개된 종교 운동이다. 인문주의화한 프랑스의 그리스도교에 반해 초 대 그리스도교의 엄격한 윤리로 되돌아갈 것을 촉구하는 한편 인간의 본성에 대한 비관 적인 견해로 하느님의 은혜를 강조하고 인간의 자유 의지를 부정하는 학설을 주창했다. 얀센주의는 17, 18세기에 프랑스 교회 내에서 격렬한 논쟁을 일으켜 로마 교황으로부터 수차례 이단 선고를 받았으며, 특히 얀센주의자들은 예수회 소속 학자들과 격렬한 논쟁 을 벌였다. 파스칼은 얀센주의의 입장에서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Provinciales>를 써 예수회의 도덕론을 공격했다. 36) (저자주) 이 책은 파리 의회의 고문이자 심의관이고 명사이며 인격이 높은 몽제롱 Montgeron이 쓴 것으로서 그는 이 책으로 인해 순교자가 되었고 지금도 지하 감옥 어 딘가에 묻혀 있다고 한다. 이 기적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세 권으로 된 또 다른 책(《대수도원장의 기적에 관한 회상Recueil des Miracles de l’Abbé Paris 》이란 제목의 책—편집자주) 이 있는데 여기에는 멋진 서문이 있다. 그러나 이 책 전체에서 구세주의 기적과 대수도 원장의 기적이 터무니없이 비교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이 책은 사람의 증언이 성령의 영감에 찬 작가의 붓을 움직이는 신 자신의 증언과 대등한 것일 수 있고 따라서 사람의 증거가 신의 증거와 동일한 힘을 갖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성서 작가들도 인간이기 에 이 책은 한낱 인간의 증언으로서 간주될 수 있지만 이 책을 쓴 프랑스 작가는 매우 공 정했다. 왜냐하면 그는 얀센주의자들의 기적이 증거와 권위에 있어서 다른 것들을 훨씬 능가한다고 그럴듯하게 속일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의 상황은 위에서 언급 된 책에 실린 출처가 분명한 글에서 발췌한 것이다. 파리 대수도원장의 기적 중 많은 것들은 적들에게서조차 인품과 능력을 의심받지 않 았던 노아유Noailles 추기경이 참석한 주교좌에서 목격자들에 의해 즉시 입증되었다. 그의 계승자인 대주교는 얀센주의자들의 적이었기 때문에 재판을 열려고 하였다. 그 러자 파리의 22명의 교구 사제들은 그들이 명백하며 의심할 나위 없이 분명하다고 생각 하는 기적들을 심사해줄 것을 그에게 요구했다. 그러나 그는 현명하게도 그것을 받아들 이지 않았다. 몰리니스트Molinist들은 프랑크Franc 양의 기적을 하나의 예로 들어 이 기적들을 반 증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들의 반증 방식은 많은 점에서 매우 불공정할 뿐만 아니라 특 히 그들은 얀센주의자의 증언 중 아주 일부만을 언급했다. 그러나 그들은 파리의 신망 있는 부유층으로 구성된 120여 명의 새로운 기적 증언자들로 인해 기가 죽었다. 또한 이 증언자들은 의회에도 단호하고 열성적으로 항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의회는 선례상 그러한 문제에 끼어드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마침내 사람들이 종교적으로 열광할 때 는 어떠한 인간적 증언도 그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관찰되었다. 어리석게도 제3자를 통해 그 문제를 검토해서 증언상의 특별한 문제점을 찾으려 했던 사람들은 분명 실패하 고 말았다. 그것은 실로 싸움에서 이기지 못할 비참한 사기 행위였다. [몰리니스트들은 루이스 드 몰리나Luis de Molina(1535〜1600)의 가르침을 따르는 예수회원들이다. 몰리나의 핵심 교리는 신의 은총과 인간의 자유를 조화시키는 문제와 관련된 것인데, 신은 개인들이 신의 은총을 받아들일지 아닐지를 확실하게 알고 있지만 이 같은 예지가 개인의 행위를 결정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은총의 효력은 신의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신의 지식의 문제이며,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인간 편에서의 수용의 문제인 것이다—옮긴이주] 당시 프랑스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은 주의력이나 통찰력 그리고 부지런함과 해박한 지식으로 유명했던 경찰서 서장 에로Heraut의 명성을 들었을 것이다. 이 관리는 직무상 거의 완전무결한 사람이었는데, 이 기적을 반증해 보일 목적으로 그것을 열심히 조사했 다. 그는 자주 증언자들을 붙잡아 증언의 동기를 조사했다. 그러나 그 역시 그들의 주장 을 만족스럽게 반박할 수 없었다. 그는 매우 이상한 증거를 가진 티보Thibaut 양을 조사해보기 위해 유명한 드 실바de Sylva를 보냈다. 그 의사의 진단은 그가 증언에서 말한 것처럼 그녀가 그렇게 많이 아프 지 않았으리라는 것이었다. 그가 본 것처럼 그렇게 짧은 시간에 그녀가 완벽하게 회복된 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양식 있는 사람으로서 그는 자연적인 원인 들에 입각해서 추론했던 것이다. 그러나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은 그에게 그 모두가 기적이며 그의 증언 자체가 가장 훌륭한 증거가 된다고 말했다. 몰리니스트들은 난처한 딜레마에 처해 있었다. 그들은 기적을 입증하는 데 인간의 증 언이 절대적으로 불충분하다고 감히 주장하지 못했고, 이 기적은 마법이나 악마가 행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도 알다시피 이것은 고대 유대인들의 수법 이었다. 얀센주의자들은 교회 마당이 왕의 칙령에 의해 폐쇄되었을 때 왜 기적이 더 이상 일어 나지 않는지를 당황하지 않고 해명했다. 이상한 현상은 무덤과 접촉할 때 일어나는 것이 므로 아무도 무덤에 접근할 수 없을 때는 당연히 아무런 결과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었다. 실로 신은 일순간에 벽을 무너뜨릴 수 있다. 그러나 신은 은총과 의로운 행위를 베 푸는 주권자이기에 그것을 설명하는 것은 우리가 아닌 신에게 속한 일이다. 신은 모든 도시의 성곽을 여리고 성의 경우처럼 뿔나팔을 불어 무너뜨리지 않았으며, 성 바울의 경 우처럼 모든 사도들이 갇힌 옥을 부수어버리지 않았다. 높은 신분과 가문의 사람으로서 프랑스의 공작이며 귀족이었던 샤티옹 공작역시, 눈 에 띄는 질병을 지닌 채 수년 동안 그의 집에 살았던 하인에게서 일어난 기적적인 치유 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나는 이들 사기 행각에 대해 증언했던 프랑스의 교구 사제들, 특히 파리의 교구 사제 들보다 인생과 태도에 있어서 더 고지식한 사람들은 없다고 결론을 내리려 한다. 남성 사제들의 학식과 재능과 청빈, 그리고 포르 루아얄 수녀들의 금욕 생활은 전 유 럽에서 유명하다[포르 루아얄Port-Royal은 파리 근교에 위치한 유명한 얀센주의 수도 원이다. 파스칼Blaise Pascal(1623 〜 1662), 라신Jean Racine(1639~1699), 아르노 Antoine Arnauld(1612〜1694), 니콜Pierre Nicole(1625~1695) 등이 이 종교 운동 에 가담했다. 파스칼, 아르노, 니콜은 얀센주의자들을 위한 소책자를 썼으며 아르노와 니콜은 포르 루아얄의 논리로 알려진 《 논리 또는 사유의 기술Logique ou l’art de Penser 》(1662)을 썼다. 라신은 그 수도원의 학생이었으며, 이 주석에서 흄이 언급하고 있는 《포르 루아얄 역사의 개요Abrege de l’histoire de Port-Royal 》(1742, 1747)를 썼다. 게다가 파스칼의 누이는 그 수도원의 수녀였으며, 아르노의 누이는 대수녀원장이 었다—옮긴이주]. 그러나 그들은 모두 특별한 재능과 고결한 삶으로 잘 알려진 파스칼의 조카딸에게 일어났던 기적을 증언하고 있다. 라신은 유명한 《포르 루아얄 역사의 개요》 에서 이 기적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것을 의심 없이 믿고 있는 다수의 수녀들, 사제들, 의사들과 보통 사람들이 제시할 수 있는 모든 증거를 들이대며 그것을 확증하고 있다. 몇몇 학자들, 특히 투르네의 주교는 이 기적을 무신론자나 자유주의 사상가들을 반박하 는 데 사용할 수 있을 만큼 확실한 것으로 생각했다. 포르 루아얄에 극도로 편파적인 반 감을 갖고 있던 프랑스의 섭정 황후는 자신의 주치의를 보내 그 기적을 조사하게 했으나 주치의는 그것이 기적임을 확신한 채 돌아왔다. 요컨대 이 초자연적인 치유는 너무도 확 실한 것이어서 한동안 그 유명한 수도원을 예수회의 위협에서 구할 수 있었다. 만약 그 것이 사기였다면 분명히 현명하고 힘있는 적대자들에게 눈치 채였을 것이며, 파멸을 앞 당겼을 것이다. 이처럼 보잘것없는 것으로 강력한 성채를 세울 수 있었던 우리의 성직자 들은 이 사건들뿐 아니라 내가 언급하지 않은 다른 많은 사건들을 통해 거대한 조직을 건사할 수 있었다. 우리는 파스칼, 라신, 아르노, 니콜의 명성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그 들이 현명하다면 그들이 기여한 그 어떤 것보다도 기적이 수천 배 가치 있는 것임을 인 정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기적은 그들의 목적에도 이바지한다. 기적이란 가시 면류관에 박혀 있는 성스러운 가시에 의한 성스러운 찔림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37) (편집자주) 필리피는 동부 마케도니아의 소도시로 기원전 42년에 여기서 두 차례 전쟁이 일어났으며, 이 전쟁에서 안토니우스Marcus Antonius(기원전 83?〜31)는 브 루투스Marcus J. Brutus(기원전 85 〜 42)와 폼페이우스Gnaeus Pompeius Magnus(기원전 42)를 격퇴했다. 38) (편집자주) 파르살리아는 그리스 테살리아에 있는 도시로 기원전 48년에 여기서 전쟁이 있었으며, 그때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기원전 106〜48)를 물리쳤다. 39) (옮긴이주) 헤로도토스Herodotos(기원전 484〜425)는 키케로가 역사의 아버지 라 부른 그리스의 역사가로서 저서로는 9권으로 구성된 《역사Historiae》가 있다. 40) (옮긴이주) 마리아나Mariana(1536〜1624)는 스페인의 역사가, 정치 철학자, 예 수회 회원이었다. 기전체 역사서인 《스페인의 역사Historiae de rebus Hispaniae 》를 썼다. 41) (옮긴이주) 비드Bede(672〜735)는앵글로 색슨 시대의 영국의 신학자, 역사가로 서 방대한 분야의 저술을 남겼다. 당대 최고의 학자로서 《 영국인 교회사Histroria eclesiastica gentis Anglorum》를 남겼는데 이 책은 593〜731년의 영국사에 관한 귀 중한 사료가 되고 있다. 42) (편집자주) 이 표현은 루크레티우스Lucretius의 《 자연에 관하여De Rerum Natura》에 나오는 “Humanum genus est avidum nimus auricularm”(iv. 594), 즉 “인류는 너무나도 잡담하기를 좋아한다”를 고쳐 쓴 것이거나 아니면 잘못 인용한 것이 다. 43) (옮긴이주) 베이컨Francis Bacon은 16〜 17세기의 영국 고위 정치인이자 영국 고전 경험론의 창시자이다. 《학문의 진보Advancement of Learning》와 아리스토텔레 스의 논리학 서적인 《 오르가논Organon 》 에 대항하기 위한 《 노붐 오르가논Novum Organon》을 썼다. 44) (저자주) Novum Organon, lib, ii. aph. 29. 45) (옮긴이주) 《구약 성서》의 처음 다섯 권인 <창세기>, <출애굽 기>, <레위기>, <민 수기>, <신명기>를 가리킨다. 46) (옮긴이주) 이 글의 저자인 토머스 러더퍼드Thomas Rutherford (1712〜1771) 는 에식스의 영국 국교회 부주교로서 1745년부터 케임브리지 대학 신학부의 책임 교수 를 역임했으며 1748년에는 그의 주저인 《 자연 철학의 체계The System of Natural Philosophy》를 썼다. 47) (옮긴이주) 이 책 19〜20쪽을 참고하라. 48) (저자주) Locke’s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 Bk. IV, Ch. XVI, sec. 8. B. IV. C. XVI,§8. 49) (옮긴이주) 삼단논법에서 결론의 주어는 소명사, 술어는 대명사이고 이 두 명사는 대전제와 소전제에서 중명사에 의해 서로 관계를 설정하게 된다. 따라서 4개 이상의 명 사로 구성되는 삼단논법은 오류에 해당된다. 50) (옮긴이주) 디오니시우스Dionysius는 기원전 1세기경 로마에서 활동한 그리스 의 역사가이다. 51) (옮긴이주) 카스토르와 폴룩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영웅들로서 제우스 와 레다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 아들이다. 카스토르와 폴룩스는 늘 함께 붙어다녔으며 모든 면에서 뛰어났는데, 카스토르는 특히 말타기와 전술에 뛰어났다. 이들 형제는 아르 고 호를 타고 황금 양모를 찾는 모험을 함께 하여 항해자와 모험가의 수호신으로 명성을 얻었다. 쌍둥이 형제는 숙부 레우키포스의 딸들을 사랑했는데, 이 자매는 사촌인 이다스 와 린케우스의 약혼녀였다. 네 사람은 서로 싸우다가 불사(不死)의 몸인 폴룩스를 제외 하고 모두 죽었다. 폴룩스는 제우스에게 카스토르 없이 혼자 살 수 없다며 죽음을 간청 했고, 형제의 우애에 감동한 제우스는 이들을 반신(半神)으로 삼아 지옥과 올림포스를 하루씩 번갈아 오가게 했다. 52) (저자주) Conyers Middleton, Free Enquiry, 218쪽. [미들턴(1683〜1750)은 영국의 자유주의 신학자로서 성서의 역사적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옮긴이주] 53) (저자주) Observation on St. Paul’s Conversion, 64〜65쪽. 54) (옮긴이주) 새뮤얼 빈스Samuel Vince(1749~1821)는 1775년 케임브리지 대학 을 졸업한 후 시드니 석세스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그곳의 연구원이 되었다. 그는 특히 수학과 천문학에서 천재성을 보였으며, 후일 영국 국교회의 목사가 되어 1786년 사우스 크릭의 교구 목사로 활동했다. 그곳에서 봉직하는 동안 그는 왕립 학회 회원이 되었으며, 1821년 사망할 때까지 케임브리지 대학의 천문학과 실험 철학 교수로 재직했 다. 55) (저자주) 형이상학적인 논증이 명확한 증언을 결코 물리칠 수는 없다. 판사는 후 자에 입각해 어떤 사람에게 사형 선고를 내릴 수 있으나 전자에 입각해서는 결코 그러한 선고를 내릴 수 없다. 물리적인 설명이 어렵다는 사실이 곧 의심할 수 없는 사태를 반증 하는 것이 될 수는 없다. 단지 어떤 것은 설명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아무것도 입증하는 바가 없는 것은 그 설명이 어려운 것이 의심할 수 없는 사실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팔의 운동이 의지의 결정을 따른다는 것은 설명할 수는 없으나 참이다. 설명의 어려움은 사실 을 부인하는 논증이 아니라 무지에 대한 입증이다. 어떤 사실의 진위는 우리가 알지 못 하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아는 것에 의해 결정되어야만 한다. 56) (저자주) 이교도와 가톨릭의 기적이 바로 도덕적인 목적에서 수행되지 않는 기적 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저자는 이 모든 것을 부인했으며, 그에 대한 논의를 위해 우리 역시 그것들을 부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서의 기적만이 우리의 주목을 끌 게 된다. 57) (저자주) 이 참조문은 스트랜드에서 카델Cadell에 의해 1777년에 출간된 흄의 《에세이와 논고Essays and Treatises》의 8절 판본에 들어 있다. 이것은 앞의 판본을 교 정한, 저자의 마지막 인쇄본으로서 그는 그 책이 자신의 철학적 견해와 원리를 담고 있 는 것으로 이해되기를 원했다. 따로 출처를 밝히지 않은 인용문들은 모두 흄의 《기적에 관한 소론Essay on Miracles 》에서 인용한 것이며, 그 인용문들은 하나의 예외를 제외 하고는 출전에 기록돼 있는 그대로이다. 58) (저자주) 목적인(目的因)을 옹호하는 글로는 스틸링플리트Stillingfleet의 《종교적 기원Origines Sacrœ 》, B. iii. c. 1, 페일리Paley의 《자연 신학Natural Theology 》, 그리고 본인이 쓴 《무신론에 대한 논박A Confutation of Atheism》을 참고하라. 59) (저자주) 기적에 대한 신념은 명확한 증거가 지니는 설득력에 의존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합리적 근거에서 동의하기를 거부할 수 있는가? 이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그것의 신뢰성을 지지하는 일양적인 경험을 갖는다. 60) (저자주) 기독교를 입증하는 대부분의 증거는 심지어 개연적이지조차 않다! 이는 정신의 나약성을 보여주는 매우 유감스러운 사례다. 흄의 말을 빌리면 그의 “이성은 놀 라움과 불안에 빠져들게 된다”(《인간 이해력 탐구》 제12장). 61) (옮긴이주) 이 책 16쪽을 참고하라. 62) (옮긴이주) 이 책 18쪽을 참고하라. 63) (저자주) 주 24를 참조하라. 64) (옮긴이주) 이 책 19쪽을 참고하라. 65) (저자주) 아르키메데스는 “나에게 디딜 곳을 달라. 그러면 내가 지구를 움직일 것 이다”라고 말한다. 기독교의 불신자도 이와 같이 “나에게 발판을 달라(나의 가설을 받아 들여라). 그러면 내가 기독교를 전복시키겠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철학자와 불신자는 동일한 난제에 빠져 있다. 66) (옮긴이주) <로마서>, 14장 5절. 67) (저자주) 아버스넛John Arbuthnot(1667〜1735)은 앤 여왕의 주치의였으며, 스 위프트Jonathan Swift, 포프Alexander Pope 등의 문학인들과 사귀었고, 1712년에 평론집 《존 불의 역사The History of John Bull》를 출판했다. 전형적인 영국인을 가리 켜 보통 ‘존 불’이라고 하는 것은 그의 저서에서 유래한 것이다. 학문에 있어서의 그릇된 취미를 풍자한 《 마르티누스 스크리블레루스의 회고록Memoirs of Martinus Scriblerus 》(1741)은 내용 중 상당 부분을 그가 집필하여 포프의 여러 작품과 함께 발 표한 것이다. 68) (저자주) 흄은 <관념의 기원에 대하여Of the Origin of Ideas>에서, 로크가 용어 를 정확하게 정의해 오류를 방지하지 않고 논의를 질질 끌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따라서 흄은 <필연적 연관에 대하여Of the Idea of Necessary Connexion>에서 자신 이 사용하는 용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밝힘으로써 의미의 불명료함으로 인해 생겨날 수 있는 모호성을 제거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는 현재 기적이란 용어를 통해 자 연 법칙의 위반, 비개연성, 불가능성, 불합리 등 그의 목적에 가장 적합한 것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 69) (옮긴이주) 이 책 20〜21쪽을 참고하라. 70) (옮긴이주) 이 책 21쪽을 참고하라. 71) (저자주) 헤이Hey 박사는 흄이 대중의 편견을 철학적인 추론으로 제시하고 있음 에 주목하고 있다. Lectures, vol. I, 60쪽. 72) David Hume, “My Own Life”, Essays : Moral, Political, and Literary, xxxiii쪽. 73) Thomas Hill Green·T. H. Grose, David Hume : The Philosophical Works(London : Scientia Verlag Aalen, 1964), vol. I 154쪽. 74) David Hume, A Treatise of Human Nature, (ed.) Ernest C. Mossner(New York : Penguin Book, 1984), 21쪽. 75) David Hume,“An Abstract of A Treatise of Human Nature” in A Treatise of Human Nature, (ed.) L. A. Selby-Bigge(Oxford : The Clarendon Press, 1978), 646~647쪽. 76) David Hume, A Treatise of Human Nature, (ed.) L. A. SelbyBigge(Oxford : The Clarendon Press, 1978), xv쪽. 77) David Hume, A Treatise of Human Nature, xix쪽. 78) 특히 허치슨Francis Hutcheson은 매주 월요일에 있는 ‘기독교의 진리’라는 강 좌를 맡을 인물로서 흄이 적절하지 못하다고 판단했다. 79) 《한 신사가 에든버러의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A Letter from a Gentleman to his Friend in Edinburgh 》는 종종 진실성이 의문시되어 왔다. 그러나 자신의 철학이 단순한 파괴적 회의주의가 아니라는 흄의 주장이 《인성론》에서 기술되고 있는 그의 철 학적 동기와 일치하기 때문에 그 진실성을 의심할 이유가 없다. 80) David Hume, A Letter from a Gentleman to his Friend in Edinburgh, (ed.) Eric Steinberg(Indianapolis : Hackett Pub. Company, 1977), 166쪽. 81) David Hume, A Treatise of Human Nature, 252쪽. 82) David Hume, Dialogues Concerning Natural Religion, (ed.) Norman Kemp Smith(New York : Macmillian Pub. Co., 1947), 227쪽. 83) 흄이 《인성론》이 실패했다고 생각한 것은 그 책이 자신의 의도와 달리 극단적인 회의주의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흄이 의도한 바는 극단적 회의주의와 독단적 합리주 의의 양극단을 피해가는 자연주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독자들은 합리론과 경험론의 독단적 요소를 비판하는 비판적인 측면과 극단적 회의주의를 거부하는 자연주의적인 측 면을 구분하지 못했다. 따라서 흄은 자신의 의도를 좀더 분명히 밝힐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84) David Hume, Enquiries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and Concerning the Principles of Morals, (ed.) L. A. Selby-Bigge(3rd ed)(Oxford : The Clarendon Press, 1975), 162쪽.이 같은 철학관은 20세기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철학이나 일상언어학파의 철학관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85) David Hume, A Treatise of Human Nature, 187쪽. 굵은 글씨는 옮긴이가 강조한 것이다. 86) David Hume, A Treatise of Human Nature, 198쪽. 87) David Hume, Enquiries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and Concerning the Principles of Morals, 54~55쪽. 88) David Hume, The Letter of David Hume, vol. I, (ed.) J. Y. T. Greig(Oxford : Clarendon Press, 1932), 187쪽. 89) David Hume, Letter from a Gentleman to his Friend in Edinburgh, 118 쪽. 90) David Hume, A Treatise of Human Nature, 261쪽. 91) David Hume, A Treatise of Human Nature, 636쪽. 92) David Hume, A Letter from a Gentleman to his Friend in Edinburgh, 122쪽. 93) 길버트 엘리엇Gilbert Elliot of Minto(1727〜1805). 스코틀랜드의 법무장관이 었다. 94) 클리안테스Cleanthes는 흄의 《자연 종교에 관한 대화》에 나오는 세 대담자 중 하나로서 자연주의적 견해를 표방하고 있다. 95) David Hume, A Letter from a Gentleman to His Friend in Edinburgh, 15 쪽. 96) David Hume, The Natural History of Religion, (ed.) H. E. Root(Stanford : Stanford University Press, 1975), 74쪽. 97) 리치먼William Leechman(1706〜1785). 영국 스코틀랜드 장로교단의 목사이 자 글래스고 대학의 학장이었다. 98)신이 기도나 제물에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믿는 신은 참다운 신(즉 완 전자로서의 신)일 수 없으므로 실제로는 무신론자라는 것이다. 99) David Hume, A Letter from a Gentleman to His Friend in Edinburgh, 12~13쪽. 100) 《인간 이해력 탐구》의 마지막 부분에서 흄이 양이나 수에 관한 추상적인 추론이 나 사태에 관한 실험적인 추론에 대한 것이 아닌 모든 책(즉 자연 신학이나 형이상학)을 불살라버리라고 한 것은 그가 바로 이 같은 기존의 철학적인 가식(합리론)을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101) “여태껏 우리가 좇았던 지루한 타성적 방식을 버리고 철학적 탐구에서 성공을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 여기 있는데, 그것은 이따금 변방에 있는 성이나 마을을 공략하는 대신 학문의 수도 또는 중심인 인간 본성 자체를 향해 진격하는 것으로, 일단 인간 본성을 파악한다면 우리는 어느 곳에서나 쉽게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David Hume, A Treatise of Human Nature, xvi쪽). 102) 흄은 《자연 종교에 관한 대화》에서 필로의 입을 통해 ‘자연주의자’를 다음과 같 이 기술하고 있다. “자연주의자들은 특정한 결과를 궁극적으로 완전히 설명될 수 없는 일반적 원인들 자체에 의해 설명한다”(David Hume, Dialogues Concerning Natural Religion, 164쪽). 103) Ernest C. Mossner, The Life of David Hume(Austin : University of Texas Press, 1954), 307쪽. 104) “교황권의 지배에서 벗어난 유럽의 교회 중에서 영국 국교회만큼 그렇게 합리적 이고 중용적인 것은 없다. 이는 부분적으로 시민 정부의 간섭으로 이루어진 개혁 덕분이 다……고대 미신의 특성을 약화시키고 그것을 사회의 평화와 이익에 더욱 공조할 수 있 게 만듦으로써, 현명한 사람들이 항상 추구해왔고 사람들이 유지해오기 쉽지 않았던 중 용을 지키고 있다”(History of England from the Invasion of Julius Caesar to the Revolution 1688, vol. IV(Indianapolis : Liberty Classics Pub., 1985), 119〜120 쪽. 105) David Hume, “Of the Study of History”, Essays : Moral, Political, and Literary, 568쪽. 106) 셜록Thomas Sherlock(1678〜1761).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교육받았으며 후 에 그 대학의 교수와 부총장을 지냈다. 또한 그는 런던 주교를 역임했는데, 기독교의 이 신론적 토대에 관한 콜린스Anthony Collins의 주장에 맞서 《세상의 여러 세대에 있어 서 예언의 용도와 의미The Use and Intent of Prophecy in the Several Ages of the World》(1725)라는 설교집을 발간했다. 또한 울스턴Thomas Woolston의 《구세주 의 기적들에 관한 논의Discourses on Miracles of Our Saviour 》에 맞서 《예수 부활 의 증언에 대한 심리The Trial of the Witnesses of the Resurrection of Jesus 》 (1729)를 썼으며, 이 책은 14판이나 찍을 정도로 인기 있는 책이 되었다. 이외에도 《교 회에 관한 논의Discourses at the Temple Church》(1754)를 출간했다. 107)울스턴(1669 〜 1733).성서의 비유적 해석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그것을 기독 교를 옹호하는 데 사용했다. 그는 1727년부터 1729년까지에 걸쳐 집필된 《구세주의 기 적들에 관한 논의》에서 여섯 번째 주제인 예수의 부활과 관련해 그것이 사도들에 의해 날조된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극단적이고 파격적인 주장으로 인해 그는 비판자들로부터 가장 골치 아픈 이신론자로 규정되었으며, 심지어 미친 사람 으로 취급받기까지 했다. 108) Thomas Sherlock, The Trial of the Witnesses of the Resurrection of Jesus(London, 1729), 45쪽. 109) <기적에 관하여> 초고는 1737년 이전에 씌어졌다. 원래는 《인성론》에 포함시킬 계획이었으나, 영국 이신론자들에 대한 대표적인 반대자였던 더럼의 주교 버틀러 Joseph Butler를 자극하지 않고 《인성론》의 인준을 받기 위해 유보했다. 110) David Hume, An Enquir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ed.) Eric Steinberg(Indianapolis : Hackett Pub. Company, 1977), 76쪽. 111) David Hume, An Enquir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77쪽. 112) David Hume, An Enquir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77쪽. 113) David Hume, An Enquir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80쪽. 114) David Hume, The Natural History of Religion, 29쪽. 115) David Hume, An Enquir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88쪽. 116) Paul J. Dietl, “On Miracles,” Contemporary Philosophy of Religion, (ed.) Steven M. Cahn · David Shatz(Oxford : Oxford Univ. Press, 1982), 153 쪽. 바로 이러한 해석이 기적에 대한 좀더 일상적이고 현대적인 의미에 적합하다고 하겠 다. 117) David Hume, An Enquir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77쪽. 118) John P. Meier, “What is a Miracle?”, The Catholic World,(1995. 3/4), 55쪽. 119) “원초적인 본능은 아니지만 적어도 인간 본성의 일반적인 수반물인 비가시적이 며 지적인 힘을 믿는 보편적인 성향은 신적인 창조자가 그의 피조물 가운데 각인해놓은 하나의 징표로 생각할 수 있다”(David Hume, The Natural History of Religion, 74〜75쪽). “자연 신학 전체가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다소 애매하지만 단순하 며 분명치 않은 하나의 명제, 즉 궁극적인 질서의 원인들이 인간 지성과 먼 유비 관계를 갖는다는 것으로 귀결된다면……가장 호기심 많고 사변적이며 철학적인 사람이 그 명제 에 대해 솔직하게 철학적 동의를 표하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David Hume, Dialogues Concerning Natural Religion, 227쪽). 120) David Hume, “Of Suicide”, Essays : Moral, Political, and Literary, 581 쪽. 121) John Hick, Philosophy of Religion(England Cliffs : Prentice-Hall, 1963), 39쪽. 122) 《구약 성서》의 <신명기>, 29장 2~4절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음과 같 이 말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너희 목전에 바로 와 그 모든 신하와 그 온 땅 에 행하신 모든 일을 너희가 보았나니 곧 그 큰 시험과 이적과 큰 기사를 네가 목도했느 니라.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날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여기서 우리는 기적이 여호와에 대한 신앙으로 연결되고 있지 않음을 볼 수 있다. 123) David Hume, An Enquir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90쪽. 124) David Hume, An Enquir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89쪽. 125) “나는 지혜와 지식을 겸비한 사람들을 온갖 종류의 미신적인 미혹에서 영원히 보호해줄 것이며, 따라서 이 세상이 계속되는 한 유용함을 지닐 어떤 논변을 발견했다고 자부한다”(David Hume, An Enquir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73쪽). 더·읽·어·야·할·자·료·들 데이비드 흄, 《자연 종교에 대한 대화》, 탁석산 옮김(울산대학교 출판부, 1998) 흄이 종교에 대해 가졌던 두 가지 의문 중 하나인 종교의 토대에 관한 문제를 세 명의 대담자가 논의하는 대화체의 책이다. 일생을 두고 공을 들여 논변을 다듬은 이 책에서 흄은 자연 신학과 변증학의 문제점과 한계를 지적하며, 종교란 이성이 아닌 신앙에 토대 를 둔 것임을 지적한다. 이태하, <흄과 종교>, 《철학연구》 39집(1996년 가을) 흄을 회의론자, 무신론자, 반종교론자로 규정 지어온 종래의 부정적인 해석에 맞서 흄 의 철학에 대한 자연주의적 해석을 종교적 견해에까지 확장시킴으로써 흄이 회의론자도 무신론자도 반종교론자도 아님을 논증한다. 황필호, <기적이란 무엇인가>, 《서양종교철학산책》(집문당, 1996) 기적에 대한 흄의 견해를 설명하고 그것의 문제점을 지적한 글이다. 위반 기적과 조화 기적을 나누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준다. 여기서 저자는 흄이 기적을 위반 기적에 국한 시켜 이해하고 이를 부인했다고 말한다. Anthony G. Flew, Hume’s Philosophy of Belief : A Study of His First Enquiry (London : Routledge and Kegan Paul, 1961) 플루는 흄을 무신론자이자 반종교론자로 해석하는 대표적인 학자로서 기적에 대한 흄 의 입장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도 그가 기적을 부인하고 있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8장 <기적과 방법론miracle and methodology>을 참조하라. David Hume, A Letter from a Gentleman to his Friend in Edinburgh, (ed.) Eric Steinberg(Indianaoplis : Hackett Publishing Company, 1977) 흄은 모교 에든버러 대학의 윤리 및 정신 철학 교수직에 지원했으나 그를 무신론자이 며 회의론자로 규정한 스코틀랜드 장로교 목사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이때 에든버러의 학장에게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는 서한을 보냈다. 그는 이 글에서 자신은 보 편적인 회의론자나 철저한 무신론자가 아님을 주장한다. 흄을 극단적 회의론자로 보는 사람들은 이 서한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단지 궁지에서 벗어나려는 변명에 불과한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흄의 인물됨이나 그의 전체적인 철학적 체계 안에서 볼 때 이 글 에 담긴 그의 주장은 충분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만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David Hume, Natural History of Religion,(ed.) H. E. Root (Stanford : Stanford Univ. Press, 1957) 흄이 종교에 대해 가졌던 두 가지 의문 중 하나인 종교의 기원 문제를 인간 본성의 원 리로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 흄은 대중 종교의 유해성의 원인을 규명하는데, 특히 그 는 유일신교보다는 다신교를 더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당시 자연 종교를 주장하던 영국 의 이신론자들과 달리 다신교가 인류의 최초의 종교였다고 주장한다. J. C. A. Gaskin, Hume’s Philosophy of Religion(London : Mac-millan, 1988) 에든버러 대학의 철학과 교수인 저자는 일생 동안 흄의 종교 철학만을 전공한 전문가 이고, 이 책은 흄의 종교 철학과 관련해 현존하는 가장 권위 있는 교과서이다. 이 책 8장 <기적과 계시miracle and revelation>에 기적에 관한 흄의 견해가 자세히 설명되어 있 다. John P. Meier, “What is a Miracle?”, The Catholic World (1995, 3/4) 미국의 가톨릭 대학 신학부 교수인 마이어가 평신도들을 대상으로 쓴 글로서 어째서 기적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 있는 사건일 수 있는지를 조리 있게 설명한다. 특히 기 적이란 외부에서 일어나는 어떤 특정한 사건의 문제라기보다는 그 사건을 바라보는 사 람의 세계관의 문제임을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Stanley Tweyman (ed.), Hume on Miracle(Bristol : Thoemmes Press, 1996). 흄 전문가인 트위먼이 편집한 이 책은 흄의 기적에 대한 소론이 출판된 후 발표된 동 시대의 비평문들을 수록하고 있다. 이 글들을 통해 당시에 흄이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보수 기독교계의 반응이 어떠했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기적에 대한 흄의 철학을 다룬 대표적인 논문 다음 논문들은 기적에 관한 흄의 현대적 해석과 논의들을 담고 있다. C. D. Broad, “Hume’s theory of the credibility of miracles”, Proceedings of the Aristotelian Society 17(1916~1917), 77~94쪽. R. G. Swinburne, “Miracles”, Philosophical Quarterly 18(1968), 199~212쪽. R. Fogelin, “What Hume actually said about miracles”, Hume Studies 16(1970). P. S. Wadia, “Miracles and common understanding”, Philosophical Quarterly 26(1976), 69~81쪽. R. A Sorenson, “Hume’s skepticism concerning reports of miracles”, Analysis 53(1983). J. O. Nelson, “The burial and resurrection of Hume’s essay ‘On Miracles’”, Hume Studies 12(1986), 57~76쪽. D. Wootton, “Hume’s ‘Of Miracles’ : probability and irreligion”, Studies in the Philosophy of the Scottish Enlightenment, (ed.) M. A. Stewart(Oxford : Clarendon Press, 1990), 191~229쪽. S. Clarke, “When to believe in miracle”, American Philosophical Quarterly 34(1997), 95~102쪽. 기적과 관련된 흄 당시의 또 다른 문헌 John Craig, “A calculation of the credibility of human testimony”, Philosophical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 of London 21(1699), 359~365쪽. (Reprinted in History and Theory, Beiheft 4, 1964). Antoine Arnauld · Pierre Nicole, Logic or the Art of Thinking, (trans.) Jill Vance Buroker(Cambridge Univ. Press, 1996), part 4, ch. 13~16쪽. Thomas Sherlock, The Trial of Witnesses of the Resurrection of Jesus(1729) ; The Use and Intent of Prophecy in the Several Ages of the World(New York : Garland Pub., 1978). John Tillotson, Six Discourses on the Miracles of Our Saviors and Defences of His Discourses(New York : Garland Pub., 1977). Thomas Woolston, The Golden Book of Tillotson ; selections from the writings of the Rev. John Tillotson,(ed.) James Moffatt (Westport, Conn : Greenwood Press, 1971). 옮긴이에 대하여 이태하tailee@hanmail.net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서강대학교의 자매 대학인 미국 세인트루이스 대학교의 철학과 대학원에서 <흄의 종교 철학에 대한 비판적 해석>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내에서는 주로 분석 철학 분야를 공부했으나 유학 시 절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면서 종교 철학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95년 귀국한 뒤 여러 대학에서 철학 과목과 교양 과목을 강의하는 한편 종교 철학 의 연구에 전념했다. 현재는 세종대학교 교양과정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저서로는 《경험 론의 이해》, 《종교적 믿음에 대한 몇 가지 철학적 반성》이 있고, 《현대인의 삶과 윤리》, 《종교다원주의 시대의 기독교와 종교적 관용》, 《서양근대철학》의 집필에 참여했다. 《다 윈주의자가 기독교인이 될 수 있는가》, 《이성과 신앙》, 《인식론의 역사》를 옮겼으며, < 흄과 종교>, <기초적 신념론 비판>,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철학적 접근> 등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책세상문고·고전의 세계 028 기적에 관하여 지은이 | 데이비드 흄 옮긴이 | 이태하 펴낸이 | 김직승 펴낸곳 | 책세상 서울시 종로구 경희궁길 33 내자빌딩 3층(03176) 전화 | 02-704-1251(영업부) 02-3273-1333(편집부) 팩스 | 02-719-1258 이메일 | bkworld11@gmail.com 홈페이지 | www.bkworld.co.kr 등록 1975. 5. 21 제1-5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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