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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한국 IMF 위기: 원인, 영향 및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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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F외환위기 국내외 발생원인 」
목차
1. 서론
2. IMF의 설립과 역할
3. 1997년 한국 외환위기 배경
3.1 국내적 요인
- 고정환율제와 고금리 정책
- 단기 외채 급증과 금융 시스템의 취약성
3.2 국제적 요인
- 일본 엔저와 글로벌 경제 환경
4. IMF 구제금융의 주요 내용과 조건
5. 외환위기가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
6. 결론
과목명 국제통상입문
교수명 전기홍
제출자 글로벌무역학과 2023113116 신유진
제출일 2024년 11월 28일
1. 서론
IMF 외환위기는 단순히 경제적 위기를 넘어 한국 경제 구조와 국민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건이다. 1997년 외환위기는 고정환율제와 고금리 정책 등 국내 요인, 그리고 일본의
엔저와 동남아시아 외환위기 등 국제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본 레포트는 외
환위기의 발생 배경, IMF 구제금융의 내용과 결과, 그리고 외환위기가 한국 경제에 미친 영향
을 알아보고자 한다.
2. IMF의 설립과 역할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 국제통화기금)는 191개의 회원국이 달러가 부족할 때
재정을 지원해주는 곳으로, 1930년대 대공황의 여파로 1944년에 설립되었다. 채권자들은 당
장 상환할 달러가 없으면 국가 파산으로 몰리게 되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IMF에서 급전을
빌려오는 것을 ‘IMF 구제금융’이라고 한다. IMF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에 자금을 대여해
준 만큼 그 자금을 안정적으로 상환받기 위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3. 1997년 한국 외환위기 배경
3.1 국내적 요인
- 고정환율제와 금융 시스템의 취약성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전 관리변동환율제를 채택했다. 관리변동환율제는 환율을 일정 수준으
로 고정시켜 두었다가 무언가 이슈가 생겨서 외환 당국이 환율의 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 환율을 소폭 변동하는 제도이다.
우리나라의 환율은 달러당 700원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었고, 당시 달러화가 강세였기 때문
에 달러당 700원의 원화가치가 낮은 수준은 아니었다. 원화 가치가 낮은 상태가 장기적으로
유지되면 기업들이 제품 경쟁력을 끌어올리려고 하기보다는 약한 원화에 힘업은 가격경쟁력에
안주할 수 있고, 이는 소비자 후생의 수준이 낮아지는 것으로 이어진다.
- 고금리 정책과 단기 외채 급증
1997년 외환위기 발생 전 한국의 금리는 일본, 대만 등 주요 수출 경쟁국의 1.8 ~ 3.2 배
에 달하는 등 금리 수준이 지나치게 높아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저하시켰다. 한국은 당시 강한
고성장을 이어나가고 있었고 기업들도 설비투자를 늘리고 있었다. 기업들이 투자에 활용할 자
금을 조달하기 위해 가계들의 자금을 유인하고, 당시 인플레이션을 견제하기 위해 정부는 고
금리 정책 기조를 유지했다.
당시 고금리 정책을 유지하던 우리나라는 OECD 가입 이후로 자본시장 개방속도를 높였고,
국내 금융기관들 특히 ‘종금사’라고 불리던 종합금융사들이 외국 자금을 차입을 확대하였다.
국내 은행의 금리가 높았기 때문에 기업들은 낮은 금리의 ‘단기 외채’로 자금을 조달했는데.
단기 외채의 특성상 만기가 짧아 사업이 어려워지더라도 기한 내에 자금을 상환해야하고, 환
율이 급등하면 대출 원금과 이자가 동시에 늘어나 상환해야할 자금의 규모가 증가한다.
단기외채가 많더라도 수출실적이 좋아서 외국의 달러 유입이 많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
만, 엔화가치가 절하되고 반도체 가격이 급락하면서 수출에 불리한 여건이 만들어졌다. 더불
어 1997년 중반부터 태국과 인도네시아가 외환위기에 휩쓸리기 시작했고, 한국에 투자한 외국
인들의 한국 기업에 대한 신용이 떨어지며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대출 연장이 불가해진
기업들은 부도 처리를 막기 위해 달러를 구해서 갚아야했고, 이는 환율 급등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는 고정환율제를 채택하고 있었고, 환율이 오르는 것을 막기위해(환율방
어) 외환 당국은 보유하고 있던 저축(즉 외환보유고)에서 달러를 인출해 외환 시장에 팔아 환
율을 방어했고 당장 달러 자금이 절실한 기업이나 금융회사들에게 달러를 지원해주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가 빠르게 줄어들게 된다.
3.2 국제적 요인
- 일본의 엔저와 글로벌 경제 환경
일본은 1990년대 초반 부동산 버블 이후 쭉 저금리를 유지해오고 있었다. 일본의 금융기관
들은 저금리로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없어 조금이라도 높은 금리를 주는 외국에 일본 자금을
투자했고 보험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고배 대지진이 발생해 상당한 보험금을 지
급을 위해 일본 손해보험사들은 외국에 투자했던 자금을 매각하고 엔화를 매입했고, 그 과정
에서 엔화가 초강세를 보이게 된다.
당시 일본의 내수 성장은 부동산 버블 붕괴와 고배 대지진으로 침체 상태였고, 수출로 실
적을 내야하는 상황이었으나 엔고 현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결국 일본은 수출 둔화를 막기
위해 선진국 회담인 G7에 엔화를 약세로 전환하게 해달라는 요청을 했고 ‘역플라자합의
(1995년 4월)’가 체결된다.
엔화는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부터 꾸준히 강세를 이어왔기 때문에 일본 제품이 다른 국
가의 수출품보다 비싸서 가격경쟁력 측면에서 열위했다. 엔화 강세로 한국의 전자, 자동차, 조
선, 철강 및 석유화학 업계는 호기를 잡을 수 있었다. 당시 엔화 강세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
이라고 전망했기에, 국내의 기업들은 설비투자를 확대했으나, 역플라자합의로 엔화가 급격하
게 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자본적 지출을 확대했으나 영업환경 악화로 부진한 실적을 보였
고, 한국의 무역 적자가 심화된 것이다.
4. IMF 구제금융의 주요 내용과 조건
1997년 11월, 우리나라 정부는 IMF에 구제금융 2백 억 달러를 공식 요청했고, IMF는 구제
금융을 제공하는 대가로 기업·금융·노동·공공 등 4대 부문 개혁을 요구했다. 정부는 IMF 권고
사항에 따라 부실 금융기관과 기업을 구조조정했다. 당시 대우그룹이 해체되고 LG반도체가
현대전자에 흡수합병되는가 하면 제일은행은 미국계 사모펀드 뉴브리지캐피털에 매각되는 등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정부 역시 구제금융 신청 이전보다 인원을 20% 감축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노동 부문은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정리해고 제도를 도입하고 파견근로자 보호법을
제정했다.국내 주식시장은 외국인에게 전면 개방됐다. 1997년 26%였던 외국인 주식 투자 한
도는 IMF 구제금융 신청 이후인 1997년 12월 55%로 늘었다. 1998년 5월 일반 기업은 외국
인이 100% 지분 보유를 할 수 있도록 했다.1)
5. 외환위기가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
제조업 관련 기업들은 사업 확장 단계에서 추가 공장 설비를 늘리는 등의 설비투자를 해야
한다. 하지만 대규모 설비 투자를 하려면 자금이 필요한데, 기업이 보유한 현금으로 전부 지
불할 수 없어 은행에서 시설 자금 대출을 받는다. 그러나 외환 위기 이후 기업들은 자본적 지
출을 꺼리게 되었다.
대출 수요가 많으면 금융기관은 높은 금리를 부르는 사람에게 대출을 하게된다. 그래서 대
출의 수요가 늘어나면 금리가 상승한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설비투자 목적으로 큰 금액을
대출받는 기업들의 대출 수요가 위축되었고, 이는 금리가 꾸준히 낮아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금융 기관들은 기업의 대출 수요가 줄어듬에 따라 다른 수요처인 가계에게 대출을 해주기
시작했다. 가계는 대출을 받아서 생활비나 주택 구입 자금으로 활용한다. 기업들이 자본적 지
출을 늘리면 일자리가 창출되고, 급여를 받은 사람들이 소비를 늘린다. 소비가 늘어난 만큼
다시 생산을 자극하면서 경제의 선순환이 일어난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경제 성장을 자극
해야할 자금이 기업이 아닌 가계와 부동산으로 유입되면서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즉, 실물경제의 성장은 정체되어 있는데 부동산 가격만 상승하는 악순환이 일어나게 된 것이
다.
1) [3대 위기 어떻게 대응했나] 금융위기, 통화스와프·금리 인하 6회(3.25%포인트)…IMF(외환위기), 금 모으기 운동
등 민간 협조 눈길, 2020.04.04 매일경제
6. 결론
비록 1997년 외환위기는 우리나라 경제 시스템 만의 문제가 아니였다고 하더라도, 한국 경
제가 외부적인 환경 변화에 얼마나 취약했는지 알 수 있는 사건이었다. IMF 외환위기를 극복
하기 위해 국민들은 줄어든 소비 내에서 물건을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는
‘아나바다’ 운동을 펼쳤다. 또한 국민들이 금으로 된 물건을 모아 나라에 헌납한 ‘금모으기’
운동으로 351만여명이 참여해 금 약 227t을 모았다. 이 금은 해외로 수출돼 부족한 외화를
확보하는데 쓰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한국은 2001년 구제금융에서 조기 졸업할 수 있었다.
참고문헌
오건영. (2023). 위기의 역사. 페이지2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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