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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온 여성들의 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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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온 여성들의 발화
- <미몽>, <자유부인>을 중심으로
20)
이 대 범*
Ⅰ. 들어가며
Ⅱ. 집 나온 여성들 거리를 거닐다
Ⅲ. 발화하는 주체의 등장
Ⅳ. 나가며
Ⅰ. 들어가며
본 연구는 ‘집 나온 여성들이 거리를 배회’하는 서사를 전면에 배치
한 <미몽: 죽음의 자장가>(양주남, 1936)와 <자유부인>(한형모, 1956)의 비
슷하면서도 각기 다른 세 인물의 층위를 분석한다. <미몽>의 애순(문예
봉),
<자유부인>의 선영(김정림)과 윤주(노경희)는 20년의 시간 차이를 보
이지만, 동일한 서사에 놓여 있다. 그들은 집을 나왔으며, 자신의 욕
망에 따라 거리에서 남자들을 만난다. 먼저, 20년의 시간 차이를 보이
는 두 영화를 같은 선상에서 논의하는 이유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설명
이 필요하다.
* 세종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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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이후 한국영화가 대중 관객들과 폭발적인 만남의 기회를 갖는
계기는 <춘향전>(이규환, 1955)과 <자유부인>이다.1) <춘향전>은 유교적
정절을 여성의 최고 덕목으로 내세운 작품이다.2) <자유부인> 역시 남
편 앞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선영을 보여주는 마지막 시퀀스에서
<춘향전>과 유사한 덕목을 관객에게 요구한다. <춘향전>과 <자유부
인>이 갖는 동질성과 간극은 전근대와 근대의 불안이 이미 대중에게
내재되었음을 말한다. 이는 고스란히 20년 전 상황을 반복한다. 경성촬
영소는 1935년에 <춘향전>(이필우)을, 1936년에 <미몽>을 제작하여,3)
신여성의 근대성을 드러내는 양가적 태도를 취한다.
우연적 현상으로 보이는 1930년대 중반과 1950년대 중반의 반복
은 우연이 아니다. 20년이라는 시대적 간극이 있지만, 1936년 <미몽>
과 1956년 <자유부인>의 유사성은 발화하는 여성 주체의 층위는 차이
가 있다하더라도, 이는 근대적 시․공간에 전근대적 시선이 작동하고
있다는 상징적 지표이다. 그곳에는 집 나온 여성의 근대적 목소리와
집으로 돌아가라고 강요하는 전근대적 목소리가 20여 년의 시간 동안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보인다.
본 연구는 <미몽>과 <자유부인>의 주인공 애순과 선영 그리고 조연
인 <자유부인>의 윤주를 다룬다.4) 애순, 선영, 윤주는 전근대와 근대
1) <춘향전>은 12만 명, <자유부인>은 13만 명을 동원했다. 서울인구는 157만 명이
었다. 김형석, 「한국영화 흥행사」, 󰡔스페셜무비에디션󰡕, no. 1402, 2012.(http://
movie.naver.com/movie/magazine/magazine.nhn?nid=1518, 2016. 07.13.)
2) 1950년대 ‘춘향’을 읽어내는 코드는 유교정절 이외에도 불의와 허위에 항거한 여
성이다. 그러나 후자의 태도는 전근대적 가치관이 주도하는 세계에 균열을 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전자에 종속된다. 김미현 편, 󰡔한국영화사:開化期에서 開花期까
지󰡕, 커뮤니케이션북스, 2006, 136~139쪽.
3) 1935년 <춘향전>의 주인공을 맡아 가난한 집안의 현모양처의 이미지를 갖고 있던
문예봉은 1936년 <미몽>에서 집을 나가 다른 남자와 동거하는 소비적 모던 걸을
맡았다; 김소영, 󰡔한국영화 최고의 10경󰡕, 현실문화, 2010, 273~274쪽.
4) <자유부인>의 또 다른 여성으로는 은미와 명옥이 있다. 선영과 윤주와 마찬가지
로 이들 역시 ‘연애’를 하지만 이들은 처벌 받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에 대해서 진
수미는 결혼 제도의 불평등을 언급한다. 근대 이후 일본은 내지에서는 일부일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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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충돌이 야기하는 자장아래 놓여 있다. 애순과 선영은 근대적 욕망
의 주체로서 집을 나왔지만, 전근대적 가부장제의 가치체계 앞에서
좌절하며 다시 집으로 돌아가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 결론적으로 그
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갔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탈주는 실패로 볼 수
는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집을 나왔다는 점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근대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공간으로부터의 탈주 경험은 삭제되지
않고 굳건한 전근대적 관념 체계에 균열을 낸다.5) 그들의 탈주를 실
패라는 성급한 단정을 내려 탈주의 흔적 자체를 제거하려는 시도는 힘
겹게 만들어낸 전근대의 균열을 봉합하는 것이다.
애순, 선영, 윤주는 전근대적 가부장제의 억압 앞에서 각기 다른 선
택을 한다. 선영은 자신의 탈주를 후회하며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 애
순은 우연한 딸의 교통사고로 가부장적 질서로 회귀하여 욕망의 탈주
를 멈춘다. 윤주는 욕망의 주체로서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윤주는 자신의 욕망을 실천했던 댄스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본 연구에서는 비록 조연이지만 윤주를 애순과 선영의 한계를 넘어서
는 문제적 인물로 살펴보고자 한다. 즉, 윤주는 애순과 선영의 한계에
서 진일보한 발화하는 주체의 등장을 알리는 전조다.
제를 채택했지만, 식민지 조선에서는 통치의 편의를 위해 기혼 남성의 연애는 암
묵적으로 묵인했다. 반면, 기혼 여성의 연애는 그 자체가 불가한 것으로 봤다; 진
수미, 󰡔한국 영화에 나타난 하위주체의 재현 연구󰡕, 동국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16, 60쪽 .
5) 황혜진은 선영과 윤주의 탈주를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안에서 실패했다고 보았다.
물론, 이 글은 가부장제의 균열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하지만 장태연 교수로 대변
되는 전근대적 사고를 고집할 능력을 상실한 남성 주체의 무능력에 방점을 두면서
여성주체로서 새로운 근대적 인간형의 대두에 대해서는 간과한다; 황혜진, 「1950
년대 한국영화의 여성 재현과 그 의미: <자유부인>과 <지옥화>를 중심으로」, 󰡔대
중서사연구󰡕, 제 18호, 2007, 19~21쪽. 박유희는 1950년대 멜로드라마의 변화
를 분석하는 글에서 윤주의 자살이 타락에 대한 응징이 강화된 것으로 보았다. 이
는 윤주의 죽음의 공간에 대한 이해, 그리고 죽음의 주체적 선택을 통해 얻어지는
욕망의 지속을 간과한 것이다; 박유희, 「<자유부인>에 나타난 1950년대 멜로드라
마의 변화」, 󰡔문학과 영상󰡕, 제6권 2호. 2005, 1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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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집나온 여성들 거리를 거닐다
스스로의 발화가 제한된 전근대의 공간인 집에서 숨죽이며 지내던
여성들은 서구 교육을 통해 거리로 나와 근대적 주체로 변모한다. 초
기, 즉 1910년대에는 소수의 여성들이 거리로 나와 전문직 지식인 그
룹을 형성했다면, 교육의 기회가 확대되고, 도시 소비문화가 확산된
1930년대 거리는 다양한 여성들로 가득했다. 여학생부터, 신종 직업
여성, 그리고 기생까지 다양한 계층의 여성들이 서구적 외양으로 치
장하고, 상품 및 문화를 소비하며 거리를 거닐었다.6)
집 밖으로는 목소리조차 넘지 말아야 했던 여성들이 거리에 등장했
다는 것은 알랭 바디우(Alain Badiou)적인 의미에서 하나의 ‘사건’이다.
알랭 바디우에게 사건이란, “상황, 의견 및 제도화된 지식과는 ‘다른
것’을 도래시키는 것”이다.7) ‘주어진 것’은 그 자체로 주어졌기에, 진
리 산출 공정을 가동시키지 못한다. 오히려 진리 산출 공정은 그간 고
려되지 않았던 사건에 의해 가동된다. 그런 의미에서 근대에서 요구
하는 새로운 인간형은 사건 그 자체이다. 새로운 인간형의 일상은 근
대성을 자신의 몸에 구체화한다. 그들은 거리를 거닐며 유행에 따라
외모를 가꾸고 책보를 들고 학교를 다니고, 자유연애를 주창하며 거
리를 거닐었다.8)
6) 물론, 여성만 거리로 나온 것은 아니다. “서울의 볼거리, 세기말적 퇴폐의 거리!
안국동 네거리를 활개치며 내닷는 모던보이와 모던걸”(≪동아일보≫, 1928.04.
19.)이 있었다. 모던보이와 모던걸은 서구의 물질문화를 무조건적으로 향유하는
이들을 비판적으로 풍자하는 용어이다; 서지영, 「식민지 조선의 모던걸: 1920
~30년대 경성 거리의 여성 산책자」, 󰡔한국여성학󰡕, 22권 3호, 2006, 202쪽. 인용
한 신문기사에서 중요한 것은 ‘볼거리’이다. 즉 이들의 걸음은 시선의 주체로서 볼
거리를 찾아 움직인다. 이후 논의에서 살펴보겠지만, 모던보이는 오롯이 시선의
주체에 놓인다면, 모던걸은 시선의 주체인 것처럼 보이지만 전시되는 대상이다.
7) 알랭 바디우 저, 이종원 역, 󰡔윤리학󰡕, 동문선, 2001, 84쪽.
8) 1920년대 신여성은 여성 자신의 인격 존중, 자유연애와 결혼, 정조에 대한 도전
등 그간 자신을 구속하던 가치체계의 부당함을 공공적 차원에서 제기하며 전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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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와 근대의 충돌이 빚어낸 시․공간은 누군가에게는 축제이
지만, 누군가에게는 혼란이다. 전근대적 체계에서 억압된 발화자들은
새로운 시․공간에서 목소리를 부여받았고, 발화하기 시작했다. 그들
의 수런거림은 굳건하게 유지하던 체계에 틈을 냈으며, 온 몸에 뚜렷
하게 체화된 전근대적 습속은 폐기의 대상으로 재정의 했다. 그러나
새로움을 재정의 하는 그 순간에도 끊임없이 전근대적 가치관을 유지
하려는 세력이 잔존한다. 이들은 자유를 혼란 혹은 퇴폐로 규정하며,
근대적 가치관과 대립각을 세우며 날선 전면전을 펼친다.
전근대와 근대의 충돌․개입․조우가 생산한 이데올로기는 텍스트
를 통해 유통된다. 신문사설, 소설, 영화 등을 통해 근대의 새로운 인
간형이 제시된다. 근대 초기에는 신문사설과 소설이 새로운 인간형의
주요한 전달자였다면, 1930년대 이후에는 영화가 그 자리를 차지한
다. 이렇게 생산된 텍스트는 오롯이 전근대 혹은 근대라는 극단의 관
념만을 담아내지는 않는다. 오히려 텍스트는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
건 전근대와 근대라는 두 관념이 공존이라는 불연속적인 단면을 내포
한다.9) 근대적 시․공간은 동질적인 문화의 합의가 존재하기 보다는
서로 갈등하는 다층적 반응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적 가치 체계에 도전했다. 김경일의 분류에 따르면 근대여성은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1세대 근대여성은 서구 문물의 도입과 수용의 시기에 남성 지식인과 마찬
가지로 자주독립과 부국강병의 근대 국가 건설에 동참하고자 했으며, 1920년대
신여성으로 호명된 2세대 근대여성은 자유연애와 여성해방의 쟁점을 공론화했
다. 그러나 2세대 근대여성의 급진적 태도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그들은 소수
였으며, 다수는 가부장 질서에 대한 도전이라기보다는 남성지식인들과의 화해를
모색했다. 1930년대 이후 근대교육제도가 보편화되면서 등장한 3세대 근대여성
은 세속화되면서 자신을 드러내던 표현의 주체는 소비의 주체로 또는 전시되는
대상으로 변한다; 김경일, 󰡔신여성, 개념과 역사󰡕, 푸른역사, 2016, 22~50쪽.
9) 근대성은 안정, 통합을 가치로 내세우는 동일성의 체계보다는 “일시적이고 유동
적이며 우연한 것으로 나타나는 시간과 공간, 인과성의 불연속적인 경험”에서 나
온다. 리타 펠스키 저, 김영찬, 심진경 역, 󰡔근대성과 페미니즘: 페미니즘으로 다
시 읽는 근대󰡕, 거름, 1998, 35쪽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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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자유부인> 오프닝 시퀀스
<자유부인>은 도시의 야경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정적이 흐르는
도시의 모습은 불빛의 화려함으로 가득하다. 이후 전지적 시점으로
도시를 조망하던 카메라는 도심 한 복판으로 내려온다. 복잡한 도시
의 도로는 빠르게 움직이는 자동차의 경적 소리로 가득하다. 정면으
로 지나가는 자동차의 불빛은 반복적으로 눈을 자극한다. 그리고 다
시 정적이 흐르고 한옥 마을이, 그리고 카메라는 집의 대문 앞으로 다
가간다. 볼거리가 다채로웠던 거리의 풍경은 집으로 다가가면서 점점
단조로워진다. 집으로 들어간 카메라가 처음으로 포착한 것은 다리미
질을 하고 있는 선영의 손이다. 거리에서 집으로 점점 좁혀가는 카메
라의 이동, 그리고 가사일 자체에 클로즈업 된 카메라는 집에 종속되
어 있는 선영의 모습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미몽>의 오프닝 시퀀스에 등장하는 새장 속의 새의 답답함과
닮아 있다. 클로즈업으로 가사노동을 하는 선영의 손을 보여주던 카
메라가 줌 아웃하면 방안 전체가 보인다. 방에는 아들 경수와 남편
장태연 교수(박암)가 있다. 남편은 아내의 가사일과 상관없이 신문을
본다. 아내의 질문에도 귀찮다는 듯 얼굴 한 번 쳐다보지 않는다. <미
몽>의 새장 쇼트 이후 제시된 방 안 모습 역시 마찬가지이다. 애순과
남편 선용(이금룡)은 서로 다른 곳을 본다. 애순은 쇼핑을 하기 위해
거리로 나가려 하지만, 남편은 이를 저지한다. 애순은 자신이 보던
거울을 밀치며 남편 의 일상적인 질문에 애순은 “나는 새장의 새가
아니에요”라는 공격적인 답변을 한다. 그리고 애순은 거리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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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순은 의지에 따라 집을 나갔으며, 선영은 남편을 승낙을 받고 나갔
다. 애순은 매사에 과감하게 결정하고 움직인다면, 선영은 조심스럽
게 움직인다. 하지만 극이 전개됨에 따라 선영의 결정 속도는 빨라진
다. 남편은 점점 배제되고 모든 선택은 선영 스스로 한다.
그림 2. 선영은 가사노동을 하며 등장
그림 3. <미몽>의 새장 속의 새
그들이 걷고 있는 거리는 화려하고 볼거리로 가득하다. <자유부인>
속 댄스홀, 식당, 양장점, 다방, <미몽>의 호텔, 백화점, 미용실은 화
려하게 빛난다. 특히, <미몽>의 택시 장면은 속도의 전면화를 통해 관
객에게 시지각의 충격을 준다. 애순은 연모하던 무용수를 따라가기
위해 택시를 탄다. 경성역으로 갔지만, 기차는 출발했다. 이후 애순은
택시 기사에게 더 빠른 속도를 요구한다. 택시는 기차와 나란히 달리
며, 속도의 쾌감을 증폭시킨다. 택시는 흔들리고 차창 밖 풍경은 빠르
게 지나간다.10) 고정불변의 이미지가 아닌 유동적인 이미지의 연쇄
는 거리를 볼 공간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며, 여기서 시선의 주체는 바
로 거리에 있는 자신이다.
10) 1930년대 조선의 근대도시와 그것이 야기한 시지각적 변화에 대해서는 정민아,
󰡔1930년대 조선영화와 젠더 재구성󰡕, 동국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10, 25~39
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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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미몽>의 택시 시퀀스
그림 5. 󰡔별건곤󰡕1926년 12월
그러나 시선의 주체로서 여성이 발화하는 것은 장벽에 부딪힌다.
1924년 6월호 󰡔신여성󰡕에는 은파리라는 가명의 필자가 거리에 나온
여성을 미행하거나 엿본다. 은파리가 쫓아다니는 여성은 허영과 사치
에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 이들이다. 은파리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여성을 미행하며 시선의 우월성을 가진다.11) 즉, 여성의 자율적 발화
의 측면보다는 전시되는 방식에 초점을 둔다. 1926년 12월 󰡔별건곤󰡕
에 실린 만평에서도 보이듯 여성 주체의 자율성은 남성의 지배적인 시
선에 의해 제거된다.12) 지배적 시선은 여전히 남성에게 있다. 모던보
이가 근대적 지식인으로 표상되었다면, 모던걸은 허영심이 가득한 근
대성의 병폐로 표상되었다.13)
11) 연구공간 수유+너머 근대매체 연구팀, 󰡔신여성-매체로 본 근대 여성 풍속사󰡕,
한겨레 출판, 2005, 122~123쪽.
12) 당시 󰡔신여성󰡕과 󰡔별건곤󰡕의 필자를 살펴보면, 여성이 쓴 것처럼 보이는 글도
실제로는 잡지의 편집진으로 참여하는 남성들이 기획하고 쓴 글인 경우가 많다;
김수진, 󰡔1920~1930년대 신여성담론과 상징의 구성󰡕,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박
사학위 논문, 2005, 154~155쪽.
13) ‘모던걸’은 서구적 외양과 취미,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며 섹슈얼리티 젠더 규범
을 위반한다. 이로 인해 지식인 남성들이 주도한 지배 담론에서 타락하고 불량
한 ‘못된걸’의 표상으로 고착된다; 서지영, 앞의 논문, 215~2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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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미몽>의 애순
그림 7. <자유부인>의 윤주와 선영
<미몽>에서 집을 나온 애순은 우연히 창건(김인규)을 만나 가까워진
다. 불만이 쌓여가던 남편 선용은 애순에게 참회를 강요하며 집으로
돌아오라고 한다. 그러나 애순은 집을 나가 거리를 활보한다. 정부(情
夫)
창건과 애순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호텔에서 지낸다. 딸 정희
는 엄마 애순을 그리워하고 남편 선용은 이를 안타까워한다. 창건과
지내던 애순은 무용 공연장에서 만난 무용수(조택원)에게 애정을 느끼
고 꽃다발을 보내는 적극성을 보이지만 단호하게 거절당한다. 창건의
절도 범행 사실을 알게 된 애순은 경찰에 창건의 범행을 신고하고, 무
용수를 따라가기 위해 택시를 탄다. 급하게 달리던 택시는 한 소녀를
치게 된다. 그 소녀는 애순의 딸 정희이다. 병원에 입원한 정희를 걱
정하던 애순은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독약을 먹고 죽음을 택한다.
<자유부인>의 주인공 선영의 남편은 교수이다. 선영은 부부생활의
권태를 느끼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생활에 만족하며 지낸다. 하지만
답답함을 참지 못하던 선영은 남편에게 동의를 구하고 양품점 매니저
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우연히 만난 동창생 윤주의 소개로 사교모
임에서 춤을 접하지만, 처음에는 춤 문화의 자유분방함을 거부한다.
하지만 남편과의 불화가 깊어지면서 댄스홀에 스스로 출입한다. 이웃
집 대학생 춘식(이민)과 정사 직전까지 발전하지만 춘식의 배신으로 깨
지고, 대신 자신이 일하는 양품점 주인 월선여사의 남편 한태석(김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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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가까워진다. 그러나 한태석과도 정사 직전 월선여사에게 발각된
선영은 망신만 당하고 집으로 돌아와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
선영과 비슷한 길을 걷는 또 다른 여성이 <자유부인>에 등장한다.
선영과 윤주가 다른 점은 선영은 정사 직전에서 실패하지만, 윤주는
암시적이기는 하지만 정부 백광진(주선태)과 정사에 성공한다는 것이
다. 또 다른 그리고 결정적인 차이는 선영이 ‘참회’의 눈물을 흘릴 때,
윤주는 ‘자살’을 택한다는 점이다. 윤주는 불륜관계를 맺은 동업자 백
광진이 사기꾼임이 드러나면서 모든 사회적 기반을 상실한다. 경제적
으로 파멸한 윤주는 동창회 춤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두 영화에 등장하는 세 명(애순, 선영, 윤주)은 집 나온 여성이라는 동질
성이 있다. “어떤 방탕녀의 이면을 묘파한 행장기요, 상괘(上卦)를 벗어
난 인생의 고백록이다”(<미몽>), “사량이냐? 허영이냐? 운명의 기로에
서 방황하는 아내의 성도덕의 위기!!”(<자유부인>)라는 두 영화의 광고에
서 알 수 있듯이 집을 나온 세 명의 여성은 공적공간에서 자신을 공개
해야하는 그리고 단죄해야하는 인물로 형상화된다. “나는 새장의 새가
아니에요”라고 말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들은 새장에 갇혀 있다. 그러
나 이 결론을 최종심급으로 처리할 경우 그들이 탈주 경험을 통해 열
어 놓은 전근대 담론의 균열은 제거해야 하는 어떤 것으로 남을 뿐이
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애순, 선영, 윤주의 탈주 경험을 점검, 비교하
여 그들의 탈주 경험을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의 운동성으로 자리
매김해야 한다는 것이다.
Ⅲ. 발화하는 주체의 등장
1926년 12월 󰡔별건곤󰡕의 만평에 등장하는 여성은 머리부터 발끝까
지 근대적 장식물로 치장했다. 그리고 거리를 나왔다는 사실에서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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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듯 이 여성은 전근대적 가치관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여성의 오
른편에는 담장이 있고, 그 위에는 수많은 남성이 있다. 여성은 마치
그들에게 관심이 없는 듯 시선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몸짓은 누
군가를 의식하듯 부자연스럽다. 담장 위에 다수의 남성은 노골적인
시선으로 여성을 바라본다. 희희낙락거리며 ‘바라보는 남성’과 시각적
자기 연출을 통해 전시되는 여성 즉, ‘보여지는 여성’의 등장이 근대적
시․공간을 채운다.14) 거리에 나온 여성은 남성의 시선에 의해서 재
현되고, 의미화 과정을 거친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모순과 왜곡이 거
리에 나온 여성을 다루는 영화, 소설 등 당대 텍스트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미몽>과 <자유부인>에 등장하는 남성은 거리에 나온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인물과 집으로 돌아가라고 강요하는 인물로 나뉜
다. 이는 상이한 태도를 지향하는 듯하지만, 실상은 동일한 지점을 바
라보는 이중적 태도이다. 1930년대 일본의 조선 여성정책은 현모양
처론이었다. 즉, 국가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신민을 키워내는 성모가
필요했다.15) 한국전쟁 이후 등장한 세대 갈등16)이 ‘자유’라는 새로운
가치관으로 포장하여 확산되었지만, 종국에는 ‘방종’으로 해석되었
다.17) <자유부인>에서 집으로 돌아온 선영에게 남편이 “허영에 빠져
14) 󰡔별건곤󰡕그리고 1923년 창간한 󰡔신여성󰡕은 ‘보여지는 여성’과 ‘바라보는 남성’의
노골적으로 드러낸 잡지이다. 남성주도로 창간한 이 잡지들은 여성을 대중문화
의 핵심으로 그리고 근대 생활의 주체로 재현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을 비난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15) 문영희, 「한국영화에 나타난 근대와 여성정체성」, 󰡔여성학연구󰡕, 16호, 부산대
학교 여성학연구소, 2006, 238쪽.
16) 한국전쟁은 세대갈등을 전면화했다. 미국의 세례를 받은 젊은이들에게 일제 식
민시기에 기반을 둔 가치관은 낡은 것으로 치부되었으며, 일제 식민시기의 가치
관에 기반을 둔 기성세대는 엘리트 의식에 바탕을 두고 젊은 세대와의 동질화에
반대했다. 이는 한국전쟁이 야기한 가치관의 단절을 통해 사회․문화 전반에 표
면화됐다.
17) 1950년대 제기된 ‘자유’의 다층적 의미는 권보드래, 「실존, 자유부인, 그래그머
티즘」, 󰡔한국문학연구󰡕, 35집, 2008, 101~147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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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어머니의 의무를 향락으로 바꾼 당신”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1950년대에 또 다시 여성에게 강요된 가치관은 현모양처였다. 거리
로 나간 여성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해서 택한 것은 그들을 허영심
과 사치로 그리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가족을 저버린 인물의 이미지이
다. 모든 사건과 서사는 그들의 타락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서사의 결
말은 이들이 몰락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면서 현모양처론을 정당화
했다.
<미몽>은 남편 선용을 일방적인 피해자로 묘사한다. 마치 영화는
가족을 지키고자 하는 선용과 가족을 저버린 애순의 대립처럼 전개한
다. 이 모든 문제는 애순의 참회적 고백을 통해 해결된다. 이러한 서
사 구조는 <자유부인>에서도 반복된다. 선영은 집을 찾아가지만 들어
가지는 못한다. 이때 남편 장태윤 교수가 집에서 나온다. 그리고 선영
은 남편 앞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 참회의 주체가 모두 집을 나온
여성에 국한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매우 폭력적인 서사 구
조이다. 서사에서 야기된 모든 문제는 그 문제의 타당성을 떠나서 집
을 나온 여성에게만 부과된다. 집을 나와 거리에서 만난 은밀하게 혹
은 노골적으로 ‘바라보는 남성’의 존재는 서사의 이면으로 숨는다. 선
영의 남편 장태윤 교수의 존재는 의미심장하다. <자유부인>의 마지막
장면에서 알 수 있듯 장태윤 교수는 “허영에 빠져서 가정을 저버린, 어
머니로서의 의무를 향락으로 바꾼 당신이 무슨 면목으로 돌아왔소.”
라고 말하며 아내 선영을 단죄한다. 그러나 이 말은 미스박에게 호감
을 보인 장태윤 교수에게도 고스란히 되돌아가야 한다. 그럼에도 미
스박에 대한 장태윤 교수의 태도는 서사 이면으로 숨는다. 미스박의
묘사에 있어서도 선영과 대립적인 인물로 제시한다. 선영이 화폐로
교환되는 상품을 팔고 있다면, 미스박이 태윤의 강의에 대한 보답으
로 선물한 ‘손으로 짠’ 넥타이라는 사실은 상징적이다.18)
18) 황혜진, 앞의 논문, 14~19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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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온 여성들의 발화❙이대범
<미몽>에는 절도 범행을 저지르는 창건이 있으며, <자유부인>에는
선영과 윤주에게 사기를 친 사기꾼 백광진 사장이 있으며, 선영을 성
적 노리개로 생각하는 양품점 주인의 남편 한태석과 옆집 청년 신춘호
(이민)가
있으며, 한글을 가르쳐 주다 미스박(양미희)에게 호감을 보이는
남편 태연도 있다. 물론, 이들 남성의 층위는 상이하다. 그러나 이들
이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참회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동
질하다. 서사의 이면에 숨은 이 남성들은 거리에 나온 여성을 성적 대
상으로 바라보던 󰡔별건곤󰡕 만평에 등장하는 담장 위 남성의 시선과 다
를 바가 없다. 남자의 외도는 풍류쯤으로, 여자의 외도는 죄악으로 단
정하는 이들의 시선에는 전근대적 가치관이 내재되어 있다. 거리에서
발화하는 자유를 얻은 여성의 목소리는 전근대적 폭력 앞에서 다시 잠
식된다. 자유가 도처에서 발견되지만, 오히려 자유를 지운다.19) 가부
장제도라는 전근대적 가치관을 영속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자유를
방종으로 의미화 한다.
그렇다면 자유에 대한 욕망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집 나온 여
성이 결국 집으로 귀가’한다는 서사 전체가 아니라 ‘집 나온 여성’에 방
점을 두고 읽어야 한다. <미몽>에서 애순은 현모양처론에 입각한 남편
의 질문에 공격적으로 대응한다. 그리고 집을 그가 찾은 곳은 당대 모
던의 첨단이자, 소비의 상징이었던 데파트(デパート,
백화점)이다.
이후
애순은 정부 창건을 만나 ‘갑자기’ 호텔에서 동거를 한다. ‘우연히’ 무
용 공연을 찾아간 애순은 ‘갑자기’ 무용수에게 고백을 한다. 무용수에
게 거절당한 애순은 아랑곳하지 않고 택시를 타고 그를 따라간다. 그
러나 애순이 탄 택시가 ‘우연히’ 딸 정희를 치고,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정희를 찾아가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갑자기’ 독약을
19) 특히, 19550년대 ‘자유’는 사회적 가치로 등장한다. 그러나 자유의 개념은 대부
분 난잡함의 형태로 나타나는 성해방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김소영, 󰡔근대성의
유령들󰡕, 씨앗을 부르는 사람, 2000, 148~1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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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다. 이처럼 <미몽>의 서사는 뜬금없는 우연으로 가득하다. <미몽>
의 전개 과정은 마치 ‘좀 더’ 나쁜 여자로 만들기 위한 에피소드의 나열
에 가깝다.
그림 8. 병원에서 눈물을 흘리는 애순
집 나온 이후 애순의 행적을 살펴보면, 남편의 질문에 공격적인 대
응을 하며 나와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표면화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후의 행적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건은 애순의 탈선을 위한 장치로서
만 존재한다. 애순은 남편에게도 그리고 창건에게도 문제가 있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애순은 새로운 자각을 얻은 독립적인 인물로 나아
가지는 못한다. 또 다른 대상인 무용수를 찾아 움직이는 인물로 그려
질 뿐이다. 그러기에 새로운 삶이 아닌 자살을 택한다.20) 물론, 애순
의 행적을 통해 쇼핑, 탈선, 가부장적 남편에 대한 저항, 자동차/기차
의 속도감, 현대무용 등 영화 곳곳에서 근대성을 표상한 시각적 대리
물을 배치하지만, 분명한 지향점은 관객에게 자식을 버리고, 낯선 남
20) 이런 의미에서 최초 여성 감독 박남옥의 <미망인>(1955)은 주목을 요한다. 전쟁
으로 남편을 여윈 한 여자가 직면한 경제적 자립과 성적 욕망의 문제를 다룬 <미
망인>에는 세 명의 남성이 등장한다. 한 명은 돈이 많고, 한 명은 로맨스가 있고,
또 다른 한 명은 딸을 아버지처럼 돌봐준다. 그러나 주인공은 세 명의 남성에게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스스로 딸과 함께 독립적인 삶을 추구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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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온 여성들의 발화❙이대범
자를 쫓아다닌 여성을 비난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도록 했다.
이는 결국 관객이 애순을 철저하게 단죄하도록 한다.
그림 9. 양품점에서 일하는 선영
반면, <자유부인>의 선영과 윤주는 집 나온 이유가 뚜렷하다. 부부
간의 갈등에도 원인이 있지만, 직접적 이유는 보다 여유로운 경제적
생활이다. 그리고 이는 “남자의 압제에서 벗어나려면 경제적으로 자립
해야 한다.”는 윤주의 대사처럼 ‘자립’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미망
인>(박남옥, 1955)이 보여준 다급함과 절박함은 아니다. 하지만, 선영은
사회적인 자기애를 실현하고자 했으며, 이는 중년의 권태에서 벗어나
고자하는 의도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춤과 연애가 슬그머니 제시
되어 중심을 차지한다. 춤과 연애가 선영의 삶에 개입하는 것은 집을
나온 여성을 바라보는 남성적 시선에 의해서이다.21) 옆집에 사는 춘
호, 양품점 주인의 남편 한태석, 손님 백광진 등 그가 일하면서 만날
수 있는 모든 층위의 남자들은 모두 그를 은밀히 유혹하며 성적 소비
21) 가부장제 아래 억압받던 선영이 성적으로 자유로운 주체가 되는 과정에 결정적
계기는 춘호와 명옥(안나영)의 키스 장면을 선영이 목격한 이후이다. 그러나 역
설적이게도 춘호는 기혼여성에게 성적인 자유란 ‘윤리적인 가정’에 국한되어 있
다는 교훈을 주면서 더 큰 이데올로기적 억압을 가한다; 주창규, 「노란 피부, 하
얀 가면 무도회의 <자유부인>」, 󰡔식민적 근대성과 한국영화󰡕, 소명출판, 2013.
190~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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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대상으로 여긴다. 선영에게 ‘자유’라는 사회적인 자기애의 실현은
사라지고, 점차 ‘춤/연애’와 ‘가정’이라는 이분법만이 남는다.22)
그림 10. 남편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선영
춘호는 선영을 배신한다. 백광진은 선영에게 외상값을 지급하지 않
는다. 그럼에도 선영은 사회적인 자기애의 실현을 멈추지 않는다. 그
는 집에 돌아갈 생각이 없다. 춘호에게 배신을 당했을 때에도 오히려
선영은 태연히 한태석을 만나러 간다. 하지만, 한태석과의 정사를 깬
인물이 바로 한태석의 부인인 양품점 주인 월선여사(고향미)이다. 그리
고 그는 집으로 돌아간다. 그가 그토록 열망했던 ‘대문 밖의 자유의
세계’의 발판이 되어준 양품점이라는 토대가 무너진 것이다. 이를 통
해 선영이 집을 나온 이유가 ‘춤/연애’가 아닌 사회적 자기애의 실현이
라는 점은 명백하다. 그러나 결국, 선영은 좌절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가 그토록 나가고자 했던 ‘사회’는 자신이 벗어나고자 했던 남성중
심의 가정과 그대로 닮아 있다. ‘대문’만 나간다면 자유가 기다리고 있
을 줄 알았지만, 그곳은 또 다른 ‘집’이었다. 그야말로 철저한 실패이
다. 집으로 향하면서 선영은 말한다. “너무 가혹하다”라고. <미몽>은
22) 서현석, 「‘자유’와 ‘부인’의 불가능한 변증법: <자유부인>에 나타나는 단절의 미
학」, 󰡔영화연구󰡕, 22호, 2003, 131~1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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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온 여성들의 발화❙이대범
관객에게 가부장적 동조를 통해 애순을 단죄하게 했다면, <자유부인>
은 선영의 철저한 실패를 통해 대문 밖에 좀 더 교묘한 또 다른 이름의
‘새장’이 그곳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림 11. 댄스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윤주.
<자유부인>의 선영은 월선여사에게 불륜이 발각된 이후 집으로 돌
아가 남편 앞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시퀀스는 <미몽>의 애순이
딸의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병원에서 참회하는 장면과 닮아 있다.
물론 <미몽>의 마지막 병원 시퀀스는 애매하다. 딸의 교통사고는 우
연히 일어났으며, 이를 계기로 애순은 갑자기 어머니로서 자신을 자
각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던 애순은 총을 들고 자신을 죽
이려 하는 남편이 도착하기 전에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결국, 애순은
집으로 돌아갔다고도, 돌아가지 않았다고도 볼 수 없는 지점에서 죽
는다. 1956년 <자유부인>의 선영은 20년 전 1936년 <미몽>의 애순에
비해 오히려 퇴보했다.23) 그러나 이러한 주인공의 단순한 비교는 <자
23) 그러나 <자유부인>을 단순한 퇴보로만 규정할 수 없다. 김소영이 지적하는 것처
럼 <미몽>은 음독자살이라는 철저한 단죄의 현장을 목격하게 했다면, <자유부
인>은 관객 반응의 측면에서 성적 자유 추구권을 관객에게 양가적으로 도발했
다; 김소영, 「신여성의 시각적 재현」, 󰡔문학과 영상󰡕, 제7권 2호, 2006. 125~
126쪽. 1950년대~1960년대 여성 관객의 영화 관람 경험을 구술사적으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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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인>이 갖고 있는 문제적 인물인 윤주를 간과한 것이다.
<자유부인>의 윤주는 주인공 선영의 서사적 굴곡을 이끄는 부수적
인물이다. <미몽>의 애순과 <자유부인>의 선영과 마찬가지로 윤주는
경제적․심리적 독립을 위해 집을 나왔으며 연애에 자유롭다. 그러나
윤주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24) 오히려 윤주는 자신의 욕망이 적
극적으로 실현되던 댄스홀에서 죽음을 택한다. 집에 돌아가는 대신
죽음을 택했다는 점에서 윤주는 오히려 <미몽>의 애순과 닮았다. 윤주
와 애순을 짓누르는 도덕적 무게는 그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지만, 애
순이 집으로 향하는 애매한 입장에서 멈췄다면 윤주는 집으로 돌아가
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윤주의 선택은 선영과 애순의 선택에서 진
일보 한 것이다.
<미몽>과 <자유부인>은 ‘집 나온 여성이 결국 집으로 귀가’하는 서사
이다. 집을 나갔던 애순, 선영은 집으로 돌아갔다. 문제적 인물은 윤
주이다.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순간에 윤주는 예외적으로 ‘댄스홀’25)
한 변재란은 <자유부인>에 여성 관객의 양가적 감정에 대해 구술사적으로 실증
한다. “그때 다른 기억은 안나고 틀을 깨고 나왔다는 거 그거하고 여자들도 좀
움직일 수 있다. 우리들 맨 날 남자들한테 언제까지나 속해 있는 사람들이 아니
니까 조심하라고 큰 소리치고 그랬지. 힘이 많이 됐어. (중간 생략) 방종이다 뭐
다 여자들 색안경으로 보지 말라고.”; 변재란, 󰡔한국영화사에서 여성 관객의 영
화 관람 경험 연구: 1950년대 중반에서 1960년대 초반을 중심으로󰡕, 중앙대학
교 박사학위 논문, 2000, 107~108쪽.
24) <자유부인>의 원작은 정비석의 장편 소설 󰡔자유부인󰡕이다. 󰡔자유부인󰡕은 1954
년 1월 1일부터 그해 8월 6일까지 215회에 걸쳐 연재되었다. 같은 해 정음사에
서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 소설과 영화에서 가장 상이한 부분은 윤주의 죽음이
다. 소설 속 윤주는 유산을 하고 심한 출혈에 시달리는 모습으로 죽음을 예견
한다. 그리고 “남편과 자식들을 버리다니 내가 정말 미친년이지”라고 고백한다.
한형모 감독이 재해석한 영화 속 윤주는 자유를 포기하지 않는 인물로 정비석
이 형상화한 소설 속 윤주의 한계를 넘어 선 새로운 인간형이다; 서현석, 앞의
논문, 134~135쪽.
25) 1937년 1월 󰡔삼천리󰡕에는 당시 기생과 여급, 신여성이 제기한 <서울에딴스홀을
許하라-경무국장에게 보내는 我等의 書>라는 공개 탄원서가 게재되어 있다. 그
들의 주장은 댄스는 퇴폐적인 것이 아니라 건전한 근대 문화이기에 도쿄와 마찬
가지로 경성에도 댄스홀을 허가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는 봉건이라는 제약을 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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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온 여성들의 발화❙이대범
에서 죽음을 택한다. 윤주는 가정을 버리고 경제적․심리적으로 독립
했다. 윤주 역시 그가 마주한 ‘거리’는 또 다른 ‘새장’이었다. 자살에 이
르는 윤주의 서사는 비극적인 최후를 보여줌으로 애순의 죽음과 마찬
가지로 관객들에게 단죄를 강요한다.
새장 속의 새처럼 집에 가만히 있으라는 남편의 말에 거울을 밀치며
거칠게 대응하던 애순은 교통사고를 당한 딸에게 돌아가 스스로 목숨
을 끊는다. 돌이켜보면, 애순은 딸 정희에게 전근대적 관념을 고수했
었다. 남편에게 거칠게 대응하며 집을 나가는 애순을 따라오는 딸 정
희에게 애순은 “계집애가 어딜 따라오려고……”라는 말을 남긴다. 이
는 남편이 애순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다. 남편이 애순
에게 가부장적이었다면, 애순은 딸 정희에게 가부장적이다. 애순 역
시 윤주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그가 죽음의 공간으
로 선택한 병원은 ‘자유’의 상징적 공간이 아니라 죽어가는 딸이 있는
집의 다른 이름이다. 애순의 죽음은 욕망을 포기하고 다시 새장으로
돌아 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윤주는 애순, 선영과 달리 자신이 탈주하고자
했던 그 지점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윤주가 죽음에
이르는 원인은 사회적 망신도 있지만, 결정적 원인은 경제적 파탄이
다. 정부이자 동업자인 백광진이 사업 확장을 핑계로 돈을 요구한다.
윤주는 주변에서 돈을 빌려 자금을 마련하지만, 사업 확장은 사기였
다. 그러자 윤주는 자금 압박에 시달린다. 윤주는 집으로 돌아가야 할
위기에 처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자유’를 주었던 댄스홀에서 죽음을
택한다. 비극적인 최후에 도달하는 윤주의 죽음은 도덕적 방종에 대
한 단죄가 아니다. ‘비극’은 대문 밖 역시 ‘새장’이라는 사실이다. 부조
리와 모순에서 ‘어찌 할 수 없음’의 상태에 놓인 윤주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죽음뿐이다. 이 죽음을 통해 그토록 갈구 했던 자유의 상태에 머
복하고자 하는 새로운 주체가 등장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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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수 있게 된다.
선영도 윤주와 마찬가지로 경제적 파탄의 위기에 놓인다. 양품점
주인인 월선여사는 처음에는 선영이 일하는 것에 호의적이었다. 즉
선영에게 ‘자유’를 보장해주었던 인물이다. 그러나 월선여사 남편 한
태석과 선영 사이에 미묘한 감정의 기류가 흐르자, 월선여사는 선영
에게 적대적이 되었다. 결국, 월선여사는 정사 직전에 있는 한태석과
선영을 발견한다. 춘식이 선영을 배신했을 때는 자유가 보장되었기에
자연스럽게 한태석을 기다렸다. 하지만,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
에서 그는 결국 집으로 돌아간다. 선영의 자유는 윤주처럼 도달해야
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참회해야 하는 난잡함의 상태 그 자체로 회귀
한다.
Ⅳ. 나가며
전근대와 근대의 충돌은 그리고 이에 따르는 ‘텍스트’의 반영은 주
목할 만한 사실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텍스트’는 전근
대의 가치관과 근대의 가치관이 서로에게 개입하면서 균열을 내고 탈
주하는 양가적 측면을 모두 담아내기에 주목을 요한다. 근대적 가치
가 배태한 자유는 전근대적 가부장제에 갇혀 살던 여성을 거리로 나가
게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전근대적 가치는 현모양처론을 주창하며
그들에게 집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다. 1936년 <미몽>과 1956년 <자
유부인>은 20년이라는 시간적 간극에도 불구하고 ‘거리로 나온 여성
이 결국 집으로 돌아간다’ 는 서사의 공통점이 있다. 이는 여전히 거리
로 나온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태도가 잔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렇다면 가부장적 논리가 작동하는 ‘집으로 돌아왔다’의 지점보다는 ‘그
들이 거리에 나왔다’는 점에 방점을 두고 텍스트를 읽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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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비로소 평면적으로 인식되던 거리로 나온 여성의 입체적 운동성
이 드러난다. ‘보여 지는 대상’이었던 여성은 ‘말하는 자’로 변모했으
며, 가부장적 질서로 다시 돌아가는 사람이 있다면(애순, 선영), 자신의
자유를 끝까지 밀고가 ‘어찌 할 수 없음’의 모순과 부조리를 직면하고
이를 온 몸으로 보여주는 윤주도 있다. 애순의 “나는 새장의 새가 아니
에요”라는 말은 20년이 지나 윤주에 와서 ‘실천’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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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전근대와 근대의 충돌이 빚어낸 시공간은 누군가에게는 ‘축제’이지
만, 누군가에게는 ‘혼란’이다. 전근대적 체계에서 억압된 발화자들의
수런거림은 굳건하게 유지하던 체계에 틈을 낸다. 이러한 시공간에서
생산된 이데올로기는 ‘텍스트’를 통해 유통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렇게 표면화된 텍스트는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전근대와 근대
의 충돌과 긴장을 내재한다. 그러기에 텍스트에서 두 관념의 개입, 충
돌, 조우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집’이라는 폐쇄적 공간에서 고립되어 있던 여성이 ‘거리’라는 해방
의 공간으로 나왔다. 집 밖으로 목소리조차 넘지 말아야 했던 여성들
이 ‘거리’에 등장했다는 것은 하나의 ‘사건’이다. <미몽: 죽음의 자장
가>(양주남, 1936)와 <자유부인>(한형모, 1956)은 ‘집 나온 여성들이 결국,
집으로 귀가’하는 서사이다. 본 글에서는 두 영화에서 집을 나온 애순,
선영, 윤주를 통해 이들이 집을 나왔다는 탈주 경험이 굳건한 전근대
적 관념에 어떤 균열을 내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거리’에 나온 여성들은 ‘바라보는 남성’의 시선에 의해 ‘보여지는 여
성’이다. <미몽>과 <자유부인> 등장하는 남성은 거리에 나온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면서도, 집으로 돌아가라고 강요한다. 거리에
나온 여성들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남성은 서사이면에 숨는다.
그리고 현모양처론을 주창한다. 여성들의 ‘자발적 자유 의지’는 거세
되고, 여성들은 종국에는 허영심과 사치로 가득한 그리고 자신의 욕
망을 위해 가족을 저버린 인물로 형상화한다.
그렇다면 가부장적 전근대 논리가 작동하는 ‘집으로 돌아왔다’의 지
점보다는 그들이 ‘거리에 나왔다’는 점에 방점을 두고 텍스트를 읽어
야 한다. 이때 비로소 평면적으로 인식되던 거리에 나온 여성의 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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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온 여성들의 발화❙이대범
적 운동성이 드러난다. ‘보여지는 대상’이었던 여성은 ‘말하는 자’로 변
모했으며, 가부장적 질서로 다시 되돌아가는 사람이 있다면(애순과 선
영)
자신의 자유를 끝까지 밀고 가서 변혁의 불가능성의 모순을 온 몸
으로 말하는 자(윤주)도 있다. 애순의 “나는 새장의 새가 아니에요”라는
말은 20년이 지나 윤주에 와서 ‘실천’이 되었다.
주제어
자유부인, 미몽, 집 나온 여성들, 바라보는 남성, 댄스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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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포럼 제24호
❚ Abstract
Women left ‘home’ :
focusing on Sweet Dream and Madame freedom
Lee, Dae Bum
Time-space which made by a clash between pre-modern and
modern is a ‘festival’ to someone and also ‘chaos’ to the others. In
pre-modern system, talking in a group of repressed speakers produce a
crack in the system; pre-modern which retained strongly. Ideology is
produced in this time-space and distributed by ‘text’. Important thing is
that the text which came to surface either consciously or unconsciously
contain a clash and tension between pre-modern and modern. So we
must check the text in some way intervention, clash and encounter of
two ideology are comprised.
Women that isolated in ‘home’ which is closed place appeared on
‘street’ which is a liberation place. It is an event that women who
should not climb their voice over a wall(home) are appeared on a street.
Sweet Dream(1936) and Madame freedom(1956) are epics of women left
home eventually return home. In this article, through Aesun, Seonyeong
and Yoonjoo who left home in both films, examine in the experience of
escape make what crack in strong pre-modern ideology.
Women on the ‘street’ are a ‘showed up woman’ by eyes of
‘looking masculine’. Man in Sweet Dream and Madame freedom
looking the woman on the street as a sexual objets and force them to
return home. Man that is looking the women who come out on a str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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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온 여성들의 발화❙이대범
as a sexual objet hide behind the epic. And advocate the good wife and
wise mother theory. Women's ‘voluntary free will’ is castrated and in
the end women are embodied in character of leaving their family for
desire and character filled with vanity and indulgence.
So we should read the text marking with a side dot better they are
‘appeared on a street’ than they ‘return home’ where patriarchal premodern logic work. Then for the first time solid activity of women on
the street which was recognized as flat emerge.
Women that were ‘shown object’ turns into ‘speaker’, and there is
a person who returns to patriarchal family order also there is a person
(Yoonju)
who speaks contradictions of impossibility of revolution with
everything pushing their freedom till the end. The Aesoon's words “I'm
not a bird in the cage.” are ‘fulfilled’ in 20years later with Yoonju.
Keyword
madame freedom, sweet dream, women left home, looking
masculine, dance hall
❙논문투고일 : 2016. 07. 15❙심사완료일 : 2016. 07. 31❙게재확정일 : 2016. 0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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