批评与包容 有一次参加大专美术科系学生的作品联谊活动,在开幕式上, 免不了有一些来宾和师长的致词。言语之间,除了勉励而外,却 一致的希望每位同学,都要虚心的去接受别人的批评,这使我感 触良多。 한번은 전문대학 미술과 학생들의 작품 연합활동에 참가 한 적이 있는데, 개막식에서는 내빈과 선생님들의 축사가 없 을 수 없었다. 축사에서는 격려 외에 모든 학우들이 마음을 비우고 다른 사람의 비평을 받아들이라는 것이 일치된 내용 이었는데, 이 점에 대해 나는 느끼는 바가 컸다. 接受“批评”这件事,确有它某种程度的重要性,但是我却 认为,在艺术的领域里,接受批评的最好方法,是把它幻化成自 我艺术创造的原动力。 “비평”을 받아들인다는 이 일은 확실히 일정 정도의 중요성이 있지만, 나는 예술의 영역에서 비평을 받아들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비평을 스스로의 예술 창작의 원동력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艺术之可贵,就在其五彩缤纷和千变万化的面目。我认为艺术工 作者的责任,不是要去追求一个制作艺术的方法,或者是去寻求 一个什么则律。 예술의 귀중함은 화려하고 변화무쌍함에 있다. 나는 예 술 종사자의 책임은 예술을 제작하는 방법을 추구하거나 어 떤 법칙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艺术工作者的责任,应当是以创造的方式来丰富我们的精神生活, 用欣赏的角度,去包容他人那种可贵的变异。这样把美感扩散到 我们的社会,使整体的精神生活更加美好和谐,创造才更有意义。 예술 종사자의 책임은 창조적 방법으로 우리의 정신 세계를 풍부하게 해주고 감상의 각도에서 다른 이의 귀중한 다름을 포용해야만 하는 것이다. 如果不自觉的把与自己的不同观点就视别人为异端,也就是已经 先把自己放在另一端上了,那么异端之间的差距也就愈拉愈大, 彼此愈来愈遥远了。 만약 스스로도 알지 못하면서 자신과 다른 관점을, 역시 이 미 스스로를 다른 끝에 위치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이단 간 의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질 거시고 피차간의 거리도 더욱 요 원해 질 것이다. 我这样说,或许与我的浪漫主义性格有关,也或许与我心目 中所向往的回归自然,和厌恶那种标准化、规格化而矫揉造作的 习气有关。因为在自由的心境之下,当我们创作或欣赏的时候, 才会像生命一样的清新可喜,和像生命一样的奇异、深刻、奥秘、 渺茫,甚至冲突、痛苦。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어쩌면 나의 낭만주의적 성격 과 관련이 있을 것이고, 또 어쩌면 내 마음에서 바라는 자연 으로 돌아가는 것과 표준화, 규격화 그리고 인공적 조작을 혐오하는 습성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자유스러운 심경에서 우리가 창작 혹은 감상을 할 때 (그 창작과 감상은)생명과 같 은 맑고 기쁘고 기이하고 깊고 오묘하고 멀고 심지어는 충돌 하고 고통스러울 수 있는 것이다. 所以,当我自己在创作或是欣赏的时候,每一次总把它当作 是一个内容与形式的探险,我倒不太在乎探险的结果是发现了一 株小草,还是找到了一个桃花源。对我来说,结果并没有那么重 要,我在乎的是,我曾经是否经历过、痛苦过、享受过因为生命 所带来的历练。而所有的这些历练,对一个关闭而充满了批评矛 盾的心灵,是何等的可望而不可及啊! 그러므로 나는 창작을 하거나 감상을 할 때 항상 매 번 그 행위를 내용과 형식의 탐험으로 여기지만 나는 탐험의 결 과로 발견한 것이 한 그루의 풀잎이던 도화원(유토피아)이던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는다. 나에게 있어 결과는 그다지 중 요하지 않다. 내가 신경을 쓰는 부분은 내가 일찍이 생명이 가져다 준 단련을 겪어보았는지 고통스러워 했는지, 누려보 았는지의 문제이다. 모든 단련들은 외부와 관계를 끊고 비평 과 모순으로 가득 찬 심령에게 있어 얼마나 갖기를 희망하지 만 가질 수 없는 대상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