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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01월 스터디 결과물8.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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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주제 연구
―수록작의 수정 양상과 주제 이동을 중심으로
조자영
<목 차>
1. 서론
2. 기존연구 및 문제제기
3. 유기성을 위한 수록작의 부분적 수정
―수정을 통한 주제의 유기적 연결
4. 수록작의 순서 배치에 따른 주제 이동
(1) 「칼날 」과 「뫼비우스의 띠 」
(2) 「에필로그」와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
5. 결론
1. 서론
조세희의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1)은 1975년 󰡔 문학사상 󰡕 12월호에 발표된 「 칼날」 을
시작으로 1978년 󰡔 창작과비평 󰡕 여름호에 발표된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까지 총 열두 편
의 단편소설이 연작형식으로 묶여 1978 년 6월에 문학과지성사에서 초판이 발행됐다. 각 작품
은 모두 완결된 형태를 띠고 있고 발표된 지면이 다양했으므로 연재의 성격을 보이진 않았으
나, 주요인물이 반복해 등장하고 동일한 사건이 언급되는 등 발표가 지속될수록 작품 간의 연
결성이 강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조세희 역시 󰡔난쏘공󰡕 연작에 관해 “ 한 번에 끝내야 할 이야
기를 조각내고 있다”2)고 밝히며 각 작품의 연계를 드러낸 바 있다.
본고는 첫째로 개별적으로 발표된 열두 편의 단편소설을 󰡔 난쏘공󰡕이라는 한 편의 연작소설
로 구성하기 위한 부분적인 수정 사항을 분석한다. 단편소설로 발표한 작품들을 묶어 발행하
기 위해 퇴고하는 과정에서 맞춤법에 맞게 단어를 교정하고 문장에 간결성을 더했다는 점 외
에도 인물의 이름을 변경하거나 대화를 고치는 등의 수정을 통해 각 발표작 간의 유기적 연계
성을 강화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둘째로 다양한 지면에서 발표된 작품들이 󰡔난쏘공󰡕의 수록작으로 묶이며 몇몇 작품의 순서
이동이 있었음을 고려하여, 발표연도순으로 독해했을 때와 단행본에 수록된 순으로 독해했을
때의 차이를 비교한다. 작가의 창작순서와 유사할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 발표연도순의 독해
를 통해 우선 ‘난장이 연작’의 창작 초기에는 ‘중산층’3) 인물이 보다 주요하게 다뤄졌음을 밝
1) 1978 년 6 월에서 2000 년 3월까지 문학과지성사에서 발행됐고 2000 년 7월부터 현재까지 이성과힘에서
발행되고 있다. 본고는 이성과힘에서 발행된 단행본을 인용한다 . 이하 󰡔난쏘공󰡕으로 표기한다 .
2) 조세희, 「창작일기」. 󰡔문학사상󰡕, 1997, p.193.
3) 한국에서 ‘중산층’에 대한 사회적 논쟁은 크게 세 번 있었다(홍두승·김병조, 「한국사회발전과 중산층의
- 1 -
히고 , 결말 역할을 하는 「 에필로그」 이후 ‘ 재벌 ’ 인물의 초점이 새롭게 추가됨으로써 창작 초
기의 주제의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검토한다.
󰡔 난쏘공 󰡕은 70 년대 산업화시기의 철거민과 노동자 문제를 감각적으로 다루는 소설로 익히
알려져 있으나, 이 작품이 60 년대 근대화 이후 불어나기 시작한 중산층에 대한 성찰 역시 구
체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은 종종 외면된다. 열두 편의 수록작 중 다섯 편이 중산층 인물의
초점으로 서술된다(「칼날」 , 「 우주여행」 , 「 육교 위에서」, 「 궤도 회전」, 「기계 도시」). 물론 모두
난장이 일가를 중심으로 한 사건과 직 ·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으나 , 중심사건은 중산층 인물
간의 갈등을 통해 발생한다는 점에 주목하여 작품의 주제 변화에 접근할 것이다. 이를 통해 󰡔
난쏘공 󰡕을 한 편의 연작소설로 독해하는 데 있어 중산층 인물의 역할을 ‘중개자 ’, ‘조력자 ’,
‘관찰자 ’ 등으로 설명하며 그 까닭을 다성성 혹은 중립성으로만 다뤄온 대다수의 기존논의를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2. 기존연구 및 문제제기
개별 단편소설 발표 당시의 평론에서부터 단행본으로 발행된 󰡔 난쏘공 󰡕 연구를 포함하여 이
후 출간된 사진 산문집 󰡔 침묵의 뿌리󰡕 와 소설집 󰡔 시간 여행󰡕, 󰡔 작가세계󰡕에서 3회분으로 분재
된 장편연재작 󰡔 하얀 저고리󰡕 등을 아우르는 독해까지 조세희 연구는 지속적으로 진행되며 상
당한 수로 축적되어왔다. 그러나 연구방법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초기 연구에서 크게 벗어나
지 않는 독해가 이어져왔다. ‘조세희 연구의 클리셰’ 라고 볼 수 있는 관점을 우선 지적하자면
① 사실성 /환상성 논의, ② 생태주의적 관점, ③ 노동소설로의 독해, ④ 대립적 상징어 연구, ⑤ 시
점 교차의 기능으로 압축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접근방식들의 통합이나 사회·철학이론을 통한
해석 등으로 인해 조세희 연구의 방법론이 풍요로워지긴 했으나, 대부분의 연구가 ‘소외된 이
들과 자본을 독점하는 이들의 대립’ 을 중심사건으로 파악하며 중산층의 역할에 주목하지 않거
나 중산층 인물이 위성적으로 전락한 이유에는 관심 갖지 않았다 . 또한 주제연구에 있어 ‘사
랑을 통한 상생과 통합 지향’ 이라는 초기연구들의 독해를 답습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증명 과
정만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한계를 지적해 볼 수 있다.
󰡔 난쏘공 󰡕에 대한 기존연구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스토리와 주제층위에서의 연구와 서술
층위에서의 연구가 그것이다. 조세희 소설은 다양한 방법론으로 상당한 수의 연구가 진행되었
음에도 , 갈등 양상을 연구함에 있어 ‘난장이’와 ‘ 거인’의 대립, 자본주의사회의 계층구조, 피지
배층과 지배층의 갈등 등의 약자-강자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조세
희 소설의 큰 특징인 변칙적인 초점화와 액자소설적 구성, 특정한 인물의 반복적인 목소리 등
의 서술양상을 통해 조세희 소설의 제재가 그토록 단순하지만은 않음을 증명할 수 있다.
앞서 밝힌 기존논의의 커다란 두 갈래 중 스토리층위의 연구에 있어서는 수용 양상과 갈등
양상 , 사물화적 양상 , 서사변용양상 , 소외양상 등의 양상 연구가 주를 이뤄왔다 .4) 이들 양상
역할」, 󰡔한국사회학회󰡕, 2006, 3 쪽). 홍두승과 김병조의 논의에 의하면, 이는 각각 60 년대 이후의 근
대화 초기, 80년대의 민주화 시기, 90년대 이후의 경제위기 시기로 분류된다. 60-70년대 근대화 시기
의 중산층 논의는 국가의 근대화 정책 추진과 더불어 중소기업 육성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시작되었
다. 80 년대는 권위주의에서 민주화로 나아가는 정치적 격동기로, 국가에서는 중산층을 사회 안정 세
력으로 육성하고자 하였으나 1987년 이후 중산층은 민주화로의 변혁을 선호하는 계층으로 변모했다.
그러다 1997년 금융위기로부터 시작된 경제 위기는 곧 중산층의 위기로 이어졌으며, 이로 인한 양극
화 현상으로 중산층 논의는 사회통합 논의로 발전됐다. 2000년대 이후 이루어지는 중산층 논의는 80
년대적 민주화 논의와 90년대적 사회통합 논의가 결합된 형태로 본다.
4) 순서대로 우찬제, 「탈구성적 서사와 탈구성적 소통 」; 류경동,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 2 -
연구는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중심으로 자본으로부터 소외된 이들과 자본을 독점하
는 이들의 대립 속에서 작가의 대안적 주제의식을 강조하는 논의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주제
층위의 연구는 노동자 문제와 거주권 문제, 산업시대의 빈부격차 문제 등 당시의 시대적 배경
을 중심으로 청년 담론, 법률적 인간, 노동 담론, 사랑과 상생, 아버지상의 제시, 사회적 상상
력, 생태윤리 등 수많은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져 왔으며, 조세희 소설 연구에 있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연구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5)
그러나 앞선 두 연구에 반해 가장 연구 성과가 부족한 분야로 여겨지는 서술층위의 연구는
그 수도 적을뿐더러, 몇몇 연구를 제외하고는 결론적으로 특정한 서술기법을 통한 주제층위의
연구로 귀결되고 있으므로 층위 설정의 문제에 있어 명확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렵
다 . 핵심어 연구, 리얼리티 효과, 불구적 신체 표상 , 연작소설의 장르적 특성 , 어휘의 상징성,
다원적 스타일 등을 다루고는 있으나, 텍스트에 제시된 정보를 활용하기 보다는 여러 분야의
이론을 활용해 해석적 관점으로 기법에 접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6)
조세희 소설의 서술층위적 분석은 오히려 당대 소설들과의 비교연구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이문구와 조세희를 중심으로 1970년대 연작소설에 관한 김인경의 연구는 이들의 서사 전략을
양가성 (ambivalence)으로 보며 , 이를 위한 서술기법으로써 시점의 교차를 통한 현실 인식의
확대와 공간의 의미 확장을 통한 대안적 전망의 제시를 확인한다. 김인경은 이를 당대 현실의
복합적 성격을 인정하고 다양한 각도로 이를 조명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며 이러한
양가성은 통합 지향의 근대화를 추구하는 작가의식의 반영이라고 결론 짓는다. 그 과정에 있
어 󰡔 난쏘공󰡕 에 드러나는 주요한 시점의 교차를 ‘ 영수- 영호 -영희 -경훈 ’ 의 순서로 유형화하며 ,
각각 ‘계층적 인식의 틀 -상실감 -증오- 부유층의 합리화 ’를 드러내고 있음을 밝힌다. 이러한 다
성성은 모순을 극대화시키며 독자들 스스로가 올바를 판단을 내리도록 돕는다고 평하고 있다.
3. 유기성을 위한 수록작의 부분적 수정 : 수정을 통한 주제의 유기적 연결
발표 당시 각 작품은 모두 완결된 형태를 띠고 있었고 지면 또한 다양했으므로 연재의 성격
이 명확하진 않았다. 그러나 주요인물이 반복해 등장하고 동일한 사건이 언급되는 등 작품 간
의 연결성이 점차 강화되고 있으므로 단행본으로 엮이기 전부터 발표작들은 연작의 성격을 지
니고 있었다. 또한, 작가 역시 발표했던 당시의 열두 작품들에 관해 “한 번에 끝내야 할 이야
기를 조각내고 있다” 7)고 밝히며 각 작품이 지닌 애초의 연계성을 드러낸 바 있다 . 그러므로
본고는 발표된 순서로의 독해 역시 ‘난장이 연작 ’의 주제를 함축하는 하나의 해석 방식으로
보고 , 이와 같은 독해를 통해 창작과정에서 그려졌던 연작의 전체 주제에 접근하여 󰡔 난쏘공󰡕
의 주제를 보완하는 데 초점을 둔다.
연구」; 최용자 , 「조세희의 󰡔난쏘공󰡕에 나타난 사물화적 양상 연구」; 송미라, 「조세희 소설의 갈등 양
상 고찰 」; 최강민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서사 변용 양상― 소설, 영화, 드라마 서사 비교」;
정규희,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에 나타난 소외양상 연구」 참조.
5) 순서대로 최성민, 「‘청년 ’ 개념과 청년 담론 서사의 변화 양상」; 김경민 , 「‘법률적 인간’의 출현과 문
학적 형상화 」; 심지현, 「1970년대 한국소설의 노사갈등 연구― 황석영 ·조세희를 중심으로」; 이소연, 「
공생의 법 , 사랑의 생태학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연구」; 김영철, 「근대소설에 나타
난 아버지 상의 변천과 가정교육」, 이현석, 「선의 의무와 악의 권리 : 1970 년대 사회적 상상력의 두
양상―󰡔당신들의 천국 󰡕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중심으로」; 이평전, 「1970 년대 사회생태론
적 사유와 정치의식 연구―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중심으로」 참조.
6) < 각주 4> 참조.
7) 조세희, 「창작일기」. 󰡔문학사상󰡕, 1997, p.193.
- 3 -
기존의 󰡔 난쏘공󰡕 연작에 대한 주제연구는 ‘사랑’, ‘ 공존’, ‘ 생태’, ‘ 산업화’, ‘노동자’ 등의 키
워드로 쉽게 압축할 수 있을 만큼 대체로 몇 가지 모티프 발견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창작
과정이 드러나는 발표순 독해를 통해서는 ‘분노’ 라는 새로운 모티프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비단 도시빈민, 노동자. 철거민 등의 소외계층의 분노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전 계층의 분노
라는 점에서 새로운 의의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분노’ 모티프는 창작과정에서 주요한 주
제로 활용되는데, 편집을 거친 후 󰡔난쏘공 󰡕으로 발간된 이후에는 ‘ 분노 ’ 의 정도가 약해지고
‘분노 ’의 대상이었던 ‘자본주의 ’로 주요 모티프가 이동함을 확인할 수 있다. 본고는 이를 편집
과 수정을 통한 주제의 이동으로 보고, 몇 가지 수정사항을 짚어보며 이러한 주제 이동이 어
떻게 이루어졌는지 그 양상을 살펴볼 것이다.
여러 지면을 통해 발표된 열두 편의 단편소설들은 󰡔난쏘공󰡕 단행본으로 묶이며 부분적인 수
정을 거쳤는데 , 서술방식이나 이야기는 바뀐 바 없으나 , 보다 간결한 문장을 위한 맞춤법 교
정과 더불어 각 작품들을 유기적으로 연결 짓기 위해 인물에게 새 이름을 부여하고 난장이 일
가의 설정을 통일시킨다. ‘난장이 연작 ’ 의 초기작품으로 볼 수 있는 「 칼날」 에서부터 「 육교 위
에서 」까지 다섯 편의 단편소설은 철거민과 노동자의 삶을 비교적 멀리서 바라보며 산업사회의
모습에 대한 중산층과 지식인의 입장을 보다 자세히 묘사한다. 그러나 여섯 번째 발표작인 「
궤도 회전」 을 기점으로 초점자의 계층과 상관없이 노동자의 입장에서 노동구조의 불합리성을
고발하기 시작하며 이른바 ‘난장이 /거인 ’, ‘피지배자 /지배자 ’, ‘ 못 가진 자 /가진 자 ’의 대립구
도가 심화된다. 이러한 대립구도는 텍스트가 ‘분노’를 모티프 삼아 중심 갈등을 구성해나가도
록 한다.
‘ 난장이 연작 ’의 중심 갈등은 앞서 나열한 대립구도를 소재로 하고 있으나, 그 대립 자체가
중심 갈등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기에는 정확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그 이유는 이 연작이
다양한 시점으로 서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중심이 되는 갈등을 이끄는 중심인물을
특정하기 어려워진다. 이는 연작이라는 구성 자체의 특징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나, 다만 특
정할 수 있는 것은 다양한 시점의 다양한 갈등이 모두 ‘자본주의’를 중심으로 발생하고 있다
는 것이다. 1975 년부터 1977 년까지 발표된 「칼날」 부터 「 육교 위에서」까지의 다섯 작품은 각
각 중산층(「 칼날」), 철거민 (「 뫼비우스의 띠」), 상류층 (「 우주 여행」), 철거민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 중산층 (「 육교 위에서 」) 의 시점으로 철거민과 도시노동자의 빈곤하고 억울한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각각의 단편이 다루는 중심 갈등은 모두 다르나, 기실 각 작품은 모두 자본
주의에 편승하기 위해서는 비겁해져야 하거나 비겁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가난해질 수밖에 없
는 구조 안에서의 분노를 다루고 있다.
앞서 밝혔듯 「 궤도 회전」 은 ‘난장이 연작’의 한 분기점, 즉 ‘분노 ’ 에서 ‘자본주의 ’로 모티프
가 이동하는 기점으로 볼 수 있는데, 그 단서 중 하나는 앞서 언급한 등장인물의 이름과 설정
에 대한 수정이 「 궤도 회전」 이전에 발표된 작품에서만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
궤도 회전」 이후에 발표된 작품들에서는 이름과 설정이 고정되어 서사구조의 유기성이 강화되
며 연작의 성격을 명백히 지니게 된다. 수록작의 부분적 수정을 통해 전체적 서사구조에 일관
성을 부여한다는 점 외에도, 아래의 <표 1> 에서 확인할 수 있듯 발표 순서와는 다르게 단행본
수록작의 순서를 재배치하여, 계획된 액자소설로 읽히는 효과를 거두기도 한다.
또한 , 결말로 기능하는 「에필로그 」 이후 발표된 작품인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를 ‘난장
이 연작’ 안으로 포함시키며 ‘난장이/거인’의 대립구도를 통한 분노 모티프를 완전히 자본주의
모티프로 옮겨오며 전체적인 주제를 이동시킨다. 「 뫼비우스의 띠」에서 암시된 ‘ 노동자의 사용
자 살해 ’ 가 「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와 「에필로그」 에 이르러 난장이의 큰아들 영수가 회장
- 4 -
의 동생을 살해하는 행위로 반복됨으로써 폭력적으로 발산되는 ‘ 난장이들 ’ 의 과격한 분노가
불가피한 것임을 드러내는 동시에 ‘거인들 ’ 역시 모순된 구조 속의 피해자일 수 있다는 여지
를 남기며 일관된 주제의식을 부여하는 데 혼란을 겪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연작의 편
집 과정에서 ‘자본주의’로의 모티프 이동을 의도적으로 염두에 둔 것으로 독해한다면 이는 구
조적 안정성과 동시에 주제의 강화에도 기여를 하는 편집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단행본 순서
발표작 순서
1
뫼비우스의 띠
칼날
2
칼날
뫼비우스의 띠
3
우주 여행
우주 여행
4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5
육교 위에서
육교 위에서
6
궤도 회전
궤도 회전
7
기계 도시
기계 도시
8
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
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
9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10
클라인씨의 병
에필로그
11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클라인씨의 병
12
에필로그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발표지면과
발표연도
󰡔 문학사상 󰡕,
1975.12.
󰡔 세대 󰡕,
1976.02.
󰡔 뿌리깊은나무 󰡕,
1976.09.
󰡔문학과지성󰡕 ,
1976.12.
󰡔 세대 󰡕,
1977.02.
󰡔 한국문학 󰡕,
1977.06.
󰡔 대학신문 󰡕,
1977.06.
󰡔 문학사상 󰡕,
1977.10.
󰡔 문예중앙 󰡕,
1977.03.
󰡔 문학사상 󰡕,
1978.02.
󰡔문학과지성󰡕 ,
1978.03.
󰡔창작과비평󰡕 ,
1978.06.
<표 1. 󰡔난쏘공󰡕 단행본 수록순서와 발표순서 비교>
먼저 수정된 세부사항을 살펴보자 . 1975년 12월에 󰡔문학사상 󰡕을 통해 「칼날 」 이 처음 발표
됐다 . 󰡔 문학사상󰡕의 「 칼날」 속 중산층 여성 신애의 남편은 지섭이었다. 지섭이라는 이름은 이
후 「우주 여행」,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클라인씨의 병」 에서 다시금 등장한다. 그러나
전자의 지섭과 후자의 지섭은 다른 인물로 그려진다. 신애의 남편인 전자의 지섭은 시대·사회
에 불화하는 혈통을 지녀 좋은 책을 쓰는 것을 가장 큰 소망으로 가졌던 인물로, 돈을 벌어야
- 5 -
하는 상황에 놓이며 결국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한 채 피로한 눈으로 신문을 읽을 뿐인 무
기력한 중산층 가장의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그러나 후자의 지섭 , 즉 「칼날 」 이후에 등장하는 또 다른 지섭은 상류층 아이인 윤호의 가
정교사이자 난장이 가족과 가깝게 지내는 젊은 지식인이다. 지식인 지섭은 특히 난장이의 첫
째 아들인 영수에게 영감을 주는 인물로 , 「클라인씨의 병 」 에서 영수가 노동이론에 몰두하자
영수에게 현장을 지키며 “ 노동자로서 사용자와 부딪치는 그 지점에 네가 있으라 ”8) 지적하여
영수를 직접 행동하도록 부추기는 조력자 역할을 한다. 중산층 지섭은 「칼날」 이후 다시 언급
되지 않는 데 반해 지식인 지섭은 주요한 주변인물로 기능한다. 이는 첫 발표작 「칼날」의 창
작 당시에는 연작을 염두에 두지 않았거나 단편작품들 간의 연계성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 단행본 󰡔 난쏘공 󰡕 에서는 신애의 남편 이름이 현우로 변경되며 지식인
지섭과 분리된다.
두 명의 다른 등장인물의 이름이 같은 경우는 여성 인물에게서 한 번 더 나타난다. 「난장이
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다방 종업원이 되고, 고속버스 안내양이 되고, 골프장 캐디가” 되
어 “집에 올 때마다 배가 불러”9) 있더니 결국 음독 자살 예방 센터에서 숨을 거두고 만 명희
는 단행본으로 엮이기 전의 발표작에서 경애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 그러나 「궤도 회전 」에서
윤호를 좋아하는 상류층 여고생 경애가 등장하며 단행본에서는 전자의 경애가 명희라는 이름
으로 분리된다. 이름을 공유하는 두 인물이 정신적( 지섭)·경제적(경애)으로 극과 극의 삶을 산
다는 점에서 풍자의 의도를 발견할 수도 있겠으나 , 지식인 지섭을 제외한 나머지 세 인물은
작품 전체에서 한 번씩만 등장하여 위성적인 사건으로만 언급된다는 점에서 풍자의 의도는 읽
히지 않거나 약하게만 읽힌다.
다음은 설정상의 수정이다 . 「 칼날 」은 ‘난장이 연작’의 첫 발표작이면서 중산층 신애의 입장
에서 난장이 일가를 관찰하는 작품이다. 수정되기 전의 「 칼날」은 이후 작품들과의 연계정도가
특히 약하다. 신애와 난장이의 대화를 통해 난장이 일가의 사정을 엿보는 방식은 변하지 않았
으나 , 난장이의 자녀의 수가 넷에서 셋으로 수정됨으로써 ‘영수 - 영호- 영희 ’ 삼남매가 암시적
으로 등장하고, 아이들이 공장 일을 그만두게 된 까닭이 공장의 폐업에서 해고로 수정되며 노
동자 문제에 대한 보다 직설적인 문제의식을 드러내게 된다.
㉠ “돼지를 다 키우세요 ?”
“옆집 겁니다. 저희도 아이들이 다니는 공장이 문만 닫지 않았어도 몇 마리 사 키울 수 있을 걸
그랬어요.”
“자녀는 몇이나 두셨어요?”
“넷입니다.” (「칼날」, 󰡔문학사상󰡕, 1975, 152 쪽.)
㉡ “돼지를 다 키우세요 ?”
“옆집 겁니다. 저희도 아이들이 공장에서 쫓겨나지만 않았어도 몇 마리 사 키울 수 있을 걸 그랬
어요.”
“자녀는 몇이나 두셨어요.”
“셋입니다.” (「칼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성과힘, 2000, 53 쪽.)
㉠ 에서 ㉡ 으로의 수정을 통해 난장이의 둘째 아들 영호의 시점으로 서술되는 「 난장이가 쏘
8)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성과힘, 2000, 257쪽. 이하 쪽수로만 표기.
9) 94 쪽.
- 6 -
아올린 작은 공」 에서 “아무도 우리에게 할 일을 주려고 하지 않았”고 “ 사람들은 우리가 공장
안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막았”으며 “사장과 그의 참모들은 회의실 창가에 서서” “우리의 일을
빼앗았다”10) 토로함으로써 노동자들이 굶주릴수록 공장과 회사는 번듯해져가는 노동구조의 불
합리를 직접 고발할 수 있게 된다 . 이 사소한 수정으로써 「칼날」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 유기적인 연결성을 지니게 된다.
단행본으로 묶이기 전 개별 단편소설로 발표되었을 때에도 「뫼비우스의 띠 」(1976.02)에 등
장한 꼽추가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1976.12)에 다시 등장하고 「 칼날」 (1975.12)의 초점
자 신애가 또 한 번 「육교 위에서 」(1977.02)의 초점자가 되며 , 「궤도 회전 」(1977.06)에서 윤
호가 대학에 떨어진 이유를 「 우주 여행」 (1976.09) 에서 먼저 밝히는 등의 유기성을 통해 작품
들이 연작의 형식을 취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는 있었다 . 그러나 김병익의 서평대로 ‘난장이
연작 ’을 “각각 독립적인 단편인 동시에 전체적으로는 장편소설의 구조”11)를 띠는 한 편의 소
설로 구성하기 위해서는 느슨했던 서사적 연관성을 보강하는 수정이 반드시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4. 수록작의 순서 배치에 따른 주제 이동
(1) 「칼날」 과 「 뫼비우스의 띠」
이름과 설정의 수정을 통해서는 각 작품 간의 유기성을 확보하려 했다면, 연작소설의 구조
를 지닌 한 편의 장편소설로서 󰡔난쏘공󰡕 의 통합적 주제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작품 순서의 재
배치가 필요했다. <표 1>에서 확인했듯 단행본에서는 「뫼비우스의 띠 」와 「 칼날 」의 배치가 바
뀌며 중산층의 시각과 노동자의 시각이 한 번씩 번갈아 진행되던 발표 순서와는 차이가 생긴
다. 발표 순서로의 독해는 중산층 신애의 시각에서 난장이를 옹호하는 「칼날」 로 시작된다. 더
불어 , 고등교육을 받는 중산층 아이들의 역할을 성찰하는 「 우주 여행」 과 자본에 의해 신념을
져버린 지식인을 비판하는 「육교 위에서」가 이어지며 산업사회의 불합리를 개선하기 위한 ‘중
산층의 역할’에 초점을 두게 된다. 더구나 「뫼비우스의 띠」 가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말을 거는
서술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점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에서 “ 너희들은 학교에만 나가면
돼”12) 하는 식의 배움을 중요시하는 태도, 지식인 지섭을 비범한 인물로 묘사하는 서술 등은
작품의 주제를 ‘ 중산층의 계도적 역할 ’ 내지는 ‘교육으로써의 사회구조 개선 ’ 정도로 판단할
여지를 제공한다. 중산층과 지식인의 시각을 통해 난장이 가족의 비극과 거리를 두게 되며 노
동자를 관찰하는 이들의 초점에 이입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단행본에서는 순서 재배치를 통해 수학교사의 역설적 문답과 철거민들의 폭력적 분
노를 담은 「 뫼비우스의 띠」로 작품이 시작되며 소설 전체가 자연스레 액자식 구성을 띠게 된
다. 이로써 전체작품의 심층사건, 즉 액자의 내부 이야기는 꼽추, 앉은뱅이, 난장이, 수공업자,
공장 노동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이러한 짐작은 두 번째 수록작 「 칼
날 」에서도 신애가 아닌 난장이에게 집중하게 하여 , 서술의 초점이 ‘중산층 -지식인 ’ 계층에 있
을지라도 난장이 일가를 중심인물로 판단하게 된다 . 이러한 재배치 탓에 발표 당시에는 주요
한 초점자로 읽혔던 중산층이 단행본에서는 관찰자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고 , 주제를 담고 있
10) 115 쪽.
11) 김병익, 「대립적 세계관과 미학」,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성과힘, 320쪽.
12) 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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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듯했던 윤호와 지섭 등의 젊은 지식인은 조력자 정도의 주변인물로 여겨지게 된다 . 「궤도
회전 」의 바로 앞선 수록작인 「 육교 위에서 」 에서부터 중산층의 주변인물화가 암시된다. 「 육교
위에서 」는 신애가 육교를 오르며 자본에 굴복해 변절한 동생의 친구를 떠올리고 육교의 층계
를 내려오며 그에 대한 생각을 마침으로써 , 이미 자본주의로 인해 형성된 계층인 중산층으로
서는 이 체제에 대항하기 어려움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 신애는 가파른 육교의 층계를 올랐다. 그 육교를 지나다 말고 신애는 섰다 . 사람들에게 밀리지 않
기 위해 옆쪽으로 붙어서며 난간을 꽉 잡았다 . (146쪽 )
㉣ 동생의 친구는 변해버렸다. (…) 곧 아내와 아이들을 위한 승용차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신애는
행복이라는 말을 빼어놓는다. (… ) 신애는 육교의 층계를 내려오면서 생각했다. (158 쪽)
하늘과 땅 사이의 허공에 위치한 ‘육교 위’라는 공간은 중산층의 사회적 위치 그 자체를 상
징하며 , 「칼날」 에서 언급된 중산층의 불안정함을 동시에 나타낸다 . 노동자도 상류층도 아닌
채 이제 겨우 중산계급으로 들어선 신애는 “사람들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 버티듯이 육교를
오른다 .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동생의 친구처럼 “협박과 유혹 ”에 넘어가야 한다 .
그러나 신애는 그렇게 얻어낸 자리가 풍요로울지라도 행복하진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육교의 난간을 힘겹게 붙잡고 서있던 신애는 자발적으로 층계를 내려오게 된다. 결국 중산층
이 보일 수 있는 태도란 굴복 또는 포기뿐인 셈이다.
「 육교 위에서」 다음으로 수록된 「궤도 회전」과 「기계 도시」에서는 이러한 중산층 인물이 지
닌 한계를 윤호를 통해 개선하려는 시도가 나타난다 .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고는
있었으나 분노와 반항의 방식 외에는 이렇다 할 행동을 보이진 않았던 윤호는 「궤도 회전」 에
들어서며 노동구조 개선에 참여하기 위해 자신의 의식을 고쳐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 이로써
자본주의에 대한 ‘분노’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초반 작품들과는 달리 이후의 발표작들은 어느
계층의 시점으로 서술되든 ‘난장이’로 상징되는 노동계층을 중심으로 서술되며, ‘자본주의’ 자
체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 궤도 회전」 이전의 작품은 행복동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이후의 작품은 은강을 중심으로 전
개된다 . 행복동은 이름 그대로 난장이 가족이 집을 처음 지었던 행복이 남아 있는 전근대적
공간이었으나, 산업화로 인해 집을 잃은 난장이 가족은 공업단지인 은강으로 쫓겨나게 된다 .
「우주 여행 」에서 대입을 준비하던 윤호는 “지난 이 년 동안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생각”
하면서도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 ” 으나 13) 「 궤도 회전 」에 이르러서는 은강에서 도시빈민의
처참한 삶을 목격하고 온 후 자신을 죄인으로 여기며 대입을 포기하고 노동운동에 관심을 갖
게 되고 , 「기계 도시」 에서 윤호는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단체가 필요함을 느끼게 된다 .
이렇듯 윤호를 초점자로 한 작품들로써 ‘난장이 연작 ’은 철거민과 도시빈민을 넘어서 노동구
조가 지닌 모순으로까지 주제를 확장한다 , 「 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 」, 「 잘못은 신에게도 있
다 」는 불합리한 노동구조의 온상인 은강에서의 억울하고 비참한 삶을 묘사하며 , 중산층 인물
을 중심으로 불안과 분노에 주목했던 초기의 단편들과는 달리 󰡔 난쏘공󰡕을 완전히 노동자의 편
에 서있는 소설로 독해하도록 이끌며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다.
13) 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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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에필로그」 와 「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 표 1>에 따르면 ‘난장이 연작 ’의 결말 역할을 하는 「에필로그 」가 1978년 2월 󰡔 문학사상 󰡕
3월호로 발표됐고 , 「클라인씨의 병 」 이 1978년 3 월에 󰡔문학과지성󰡕 봄호로 발표됐다 . 엄밀히
따지자면 결말인 「에필로그」 가 먼저 발표된 셈이나, 「클라인씨의 병」 역시 난장이 가족의 이
야기를 연속적으로 다루고 있고 ‘뫼비우스의 띠’의 4차원 모형인 ‘클라인의 병’을 제목으로 삼
고 있다는 점에서 ‘난장이 연작’으로 포함된다. 두 작품은 사실상 동시에 발표된 작품으로 봐
야하며 「 에필로그」 를 통해 「 뫼비우스의 띠」에서 시작된 액자형식을 마무리하고 있으므로 그
이후에 발표된 두 작품들 보다는 「 에필로그」를 ‘난장이 연작’ 의 마지막 작품으로 배치하는 것
이 합당하다.
1978 년 6월에 󰡔창작과비평󰡕 여름호로 발표된 「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는 명백히 「에필로
그 」 이후에 발표된 작품으로 봐야 한다 . 문학과지성사의 󰡔난쏘공 󰡕 초판 발행이 1978년 6월 5
일이라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는 단행본에 먼저 포함된 후에 󰡔창작
과비평 󰡕 여름호에 추가적으로 발표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난장이 연작’ 은 「 에필로그」로써
마무리되는 구조를 띠는데,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가 뒤늦게 덧붙음으로써 또 다른 의미
를 낳게 된다. 이는 열두 편의 수록작 중 유일하게 재벌의 초점으로 서술되는 작품으로, 난장
이의 큰아들 영수가 칼로 찔러 살해하려 했던 대기업 회장을 아버지로 둔 재벌2 세 경훈이 초
점자로 등장한다. 경훈의 아버지 대신 살해당한 이는 경훈의 숙부로, 경훈의 사촌형인 경우의
아버지다.
「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에서 처음 등장하는 경우라는 인물은 1983년 문학과지성사에서
발행된 소설집 󰡔 시간 여행󰡕에 수록된 ‘난장이 후일담’격의 중단편 작품들14) 중 「 모독」, 「나무
한 그루 서 있거라」 에서 재등장한다. 두 작품에서 경우는 각각 난장이의 막내딸 영희와 산으
로 떠난 수학교사를 찾아가 산업사회의 모순에 대항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인물로 형상화
된다 . 「 에필로그」로써 액자식 구성이 완성되고 연작의 결말이 지어진 후에, 단행본 발행 직전
뒤늦게 추가된 작품이라는 점과 이후 소설집 󰡔시간 여행󰡕에서 재벌가 인물인 경우의 적극적인
대안 모색이 다뤄진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는 ‘ 난장이 연작’과
‘난장이 후일담’격의 작품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 특수한 역할을 맡고 있음을 짐작해 볼 수 있
다.
그간의 연구에서 「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는 노동자, 중산층, 재벌의 시각을 모두 아울러
초점의 균형을 잡기 위한 장으로 여겨지거나, 재벌2세 경훈의 편협한 계급적 관점으로써 비인
간적 산업사회에 대한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게 하는 기능을 하는 장으로 해석되어왔다. 그러
나 단행본 수록 순서가 아닌 발표 순서로 독해한다면 이 작품은 앞선 작품들과는 다소 유리된
듯한 어조와 관점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품의 결말부에서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킨다
는 점 역시 어색하거니와 앞선 열한 작품 내내 대항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졌던 ‘거인’, ‘가진
자’, ‘지배층 ’ 인물이 초점자로 등장해 그 역시 삭막한 산업구조 안에서 희생되어온 인물임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작품 전체의 일관된 주제의식을 흔들어놓는 작품으로 잘못 기능할 가능성
을 배제하기 어렵다. 서사 자체는 앞선 작품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나 「내 그물로 오는 가
시고기 」에서는 기존에 전개해오던 주제의 방향을 이동시키는 서술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14) 󰡔난쏘공󰡕과 인물과 배경을 공유하는 ‘난장이 후일담’격의 작품으로 「모독」, 「모두 네 잎 토끼풀 」, 「
나무 한 그루 서 있거라」, 「신에게는 잘못이 없다」, 「우리는 모두 몰랐다」. 「참 좋았던 기계」, 「행복
동에서 돌아간 아버지」, 「난장이 마을의 유리병정」, 「긴 팽이모자」, 「시간 여행」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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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삼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지만 칼을 품었던 사람과 그의 동료들, 그리고 그들의 식구들은 이차
원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말까지 했다. 현실이 한 차원을 빼앗아버렸다는 것이었다. (271 쪽)
2 차원 도형을 3차원으로 만드는 ‘뫼비우스의 띠’와 3 차원 도형을 4 차원으로 만드는 ‘클라인
의 병’ 15)은 앞선 수록작 「뫼비우스의 띠 」와 「 클라인씨의 병」 에서 비중 있는 상징으로 다뤄진
바 있다. 그러므로 두 작품을 단서삼아 「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에서는 재벌이 속한 풍요의
세계를 ‘클라인의 병 ’으로 , 노동자가 속한 궁핍의 세계를 ‘뫼비우스의 띠 ’로 대응시키고 있다
고 유추해 볼 수 있다. 두 도형 모두 안팎도 출구도 없다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서로의 차원에
서는 절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완전하게 다르다 . 이렇듯 「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에
이르러서는 대기업과 재벌이 악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논지에서 벗어나, 그
들 역시 자신이 속한 차원에서만 생활하고 사고할 수 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온전히 이해
할 수 없는 불가피한 현실의 비극성을 드러낸다.
사람들의 사랑이 나를 슬프게 했다. (…) 내일 아무도 모르게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보자고 나는 생각
했다. 내가 약하다는 것을 알면 아버지는 제일 먼저 나를 제쳐놓을 것이다. 사랑으로 얻을 것은 하나
도 없었다. 나는 밝고 큰 목소리로 떠들 말들을 떠올리며 방문을 열고 나갔다. (303 쪽)
「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의 마지막 문단에서 “사랑이 나를 슬프게 ” 하며 “사랑으로 얻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는 고백을 통해 드러나는 경훈의 애정결핍과 오랜 열등감은 산업사회의
지배층인 재벌 역시도 동시대의 피해자이며 동정 받을 여지가 있는 계층임을 암시한다. 그러
나 이러한 독해는 경훈이 ‘거인 ’ 집단에 온전히 포함되지 않는 인물로 형상화됨으로써 무리
없이 가능해진다. 경훈은 전형적인 ‘거인’과는 유리된 ‘거인’ 집단의 상대적 약자이며,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불안해하며 분노한다는 점에서 중산층- 노동자 인물과 유사한 모습을 지닌
다 . 그러므로 그들에 대한 경훈의 혐오는 일면 자신의 약함에 대한 자기혐오로 읽힐 수 있으
며 , 그렇기에 계층과 상관없이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자체가 지닌 필연적 폭력성이 우리 사회
도처에서 작용하고 있음을 더욱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또한, ‘난쏘공 연작 ’은 도시빈민의 분
노와 중산계급의 불안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다양한 시선 자체로 주제를 서서히 이동시켜왔으
므로 , 이러한 갑작스러운 시점의 변화가 작품 전체의 일관성을 흔든다하기 보다는 자본주의
아래에서 우리가 어떠한 방식으로 핍박을 받고 있는지 드러내기 위해 필요한 장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 결국 감정과 윤리마저 자본 아래 도구화되는 현상이 우리 모두를 불행하게 하
며, 경쟁적 먹이피라미드 속에서는 누구도 안정될 수 없음을 드러내고 있다.
15) 「클라인씨의 병」에서 그림으로 소개되는 ‘클라인의 병’은 4 차원 모형을 3차원화 하여 그려진 것으로
정확한 설명이라 할 수 없다. ‘클라인의 병’이 3 차원 세계에 존재할 수 있다면 허공에 떠있는 두 개
의 도넛 모양 튜브로 형상화될 것이다. 두 튜브를 잇는 원기둥은 4 차원 입체이므로 3 차원 모형으로
는 재현할 수 없다. 그러므로 「클라인씨의 병」에서 ‘나(영수)’가 ‘클라인의 병’ 모형을 보며 “벽만 따
라가면 밖으로 나갈 수 있죠. 따라서 이 세계에서는 갇혔다는 그 자체가 착각예요”라고 설명하는 부
분은 엄밀히 말하자면 옳은 설명이 아니다. 3차원 모형화 된 ‘클라인의 병’ 플라스크로는 가능할지라
도, 3차원 세계에서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 플라스크는 이미 ‘클라인의 병’일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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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결론
개별 단편작품으로 발표되었던 열두 편의 작품들과 단행본으로 묶인 󰡔 난쏘공 󰡕 수록작들의
차이점을 중심으로 비교해보았다. 개별 작품의 부분적인 수정을 통해 전체적인 서사구조가 일
관성을 띠도록 조정했으며 작품 순서의 재배치를 통해 주제의식을 강화시키기도 약화시키기도
했음을 확인했다 . 창작초반에는 흥미롭게 제시됐던 중산층 인물들이 관찰자와 조력자로 변모
했고 창작중반에는 도시노동자의 힘든 형편에 집중했고 창작후반에 이르러서는 지배계층의 시
선으로 서술하며 자본주의의 폭력적 구조를 드러낸다. 발표순 독해를 통해 이 작품이 ‘ 분노’와
‘불안 ’으로 시작하여 ‘자본주의 ’ 자체가 지닌 폭력성으로 주제를 확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 편집순 독해를 통하여서는 작품 전체의 주제적 일관성을 위해 모티프의 이동이 이루
어지는 양상을 확인하였다. 여전히 발표순 독해가 지니는 의의가 미약해 보일지라도, 한 편의
텍스트가 창작되는 과정을 연대기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액자식 구성이나 다양한 시점 , 연작형
식의 차용 등이 필요했던 이유를 보다 면밀히 유추할 수 있다는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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