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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사칠설과 법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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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학교 동서사상연구소
『철학·사상·문화』 제37호 2021.11. 147~172쪽
10.33639/ptc.2021.37.007
정약용의 사칠설(四七說)과 법감정(法感情)
이재복*
ㅇ47)
<목
차>
1. 들어가는 말
2. 사칠논변에 대한 이해와 기호로서의 성
3. 도덕 감정과 굴법(屈法)
4. 나가는 말
【요약문】 정약용은 기존의 사칠논변(四七論辨)에 대한 그의 견해를 밝혀 간접적으로 자신의
사칠설(四七說)을 드러냈다. 본 연구는 그러한 정약용의 사칠설이 그의 성기호설(性嗜好說)과
함께 어떻게 실천적 영역에 적용될 수 있는지 고찰한다. 그 과정에서 정약용의 사칠설은
성호학파(星湖學派)의 공칠정(公七情) 논변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그의 성기호설은 도덕
감정의 인지적 판단에 관한 논의임을 검토한다. 이어서 정리(情理)를 적용하여 처벌을 감면한
판결에 대한 정약용의 견해를 살펴 그가 제시한 감정과 법의 긴장 문제를 논한다. 특히
정약용이 법을 굽혀[屈法] 판결해야 한다고 말한 판례를 분석하고, 그의 감정설이 실천의
측면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확인한다. 그로부터 정약용의 철학과 현대적 감정이론의
접점을 모색한다.
【주제어】 정약용(丁若鏞), 사칠설(四七說), 성기호설(性嗜好說), 흠흠신서(欽欽新書),
법감정(法感情), 인지주의(cognitivism)
* 한양대학교 철학과 동양철학전공 박사과정 수료
148 철학·사상·문화 제37호
1. 들어가는 말
대한민국 형법 제21조는 정당방위에 대한 조문으로, 1항은 “현재의 부당한 침
해로부터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法益)을 방위하기 위하여 한 행위는 상당한 이
유가 있는 경우에는 벌하지 아니한다.”이다.1) 이와 관련된 최근 판례를 보면,
피고인은 야간에 자신의 집 마당에서 술에 취한 남성 세입자 갑(甲)과 자신의
딸이 말다툼하는 모습을 보고 화가 나 죽도(竹刀)로 갑의 머리를 수회 폭행하여
상해를 입혔다. 또한 피고인을 말리던 갑의 모(母)인 을(乙)의 팔을 죽도로 수회
내려쳐 다치게 했다. 피고인은 특수폭행치상 및 특수상해의 공소사실로 기소된
후 국민참여재판을 받았다. 재판 결과 피고인의 행위는 딸의 생명 또는 신체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로서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인정
받았다. 피고인이 죽도로 갑, 을을 가격한 행위가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방위의
정도를 넘은 과잉방위라 하더라도, 그 행위가 야간에 자신의 딸이 사람들로부터
위협을 당하고 있는 상태에서 공포, 경악, 당황 등으로 말미암아 저질러진 것은
형법 제21조 제3항의 ‘벌하지 아니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간주됨으로써 피고
인은 처벌받지 않을 수 있었다.2)
위 판결에서 피고인은 무죄를 선고 받았지만 그가 타인에게 상해를 입힌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위법일 수도 있었던 그의 행위는 ‘상당한 이유’에 근
거하여 ‘벌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인정받아 책임을 면했을 뿐이다.3) 이와 관련
하여 본 연구는 부당한 침해를 당한 것이 피고인 본인이 아니라 딸이었음에도 피
고인의 행위가 정당방위로 인정된 점, 피고인이 죽도로 상해를 입히는 과정에서
그의 감정 상태가 고려되었다는 점 등의 철학적 의미를 고찰한다. 형법 제21조
제1항에 규정된 바, 정당방위에는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법익을 방위하기 위한
1) 현행 형법 제21조(정당방위) ② 방위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할 경우에는 정황(情況)에 따라 그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 ③ 제2항의 경우에는 야간이나 그 밖의 불안한 상태에서 공포를 느끼거
나 경악(驚愕)하거나 흥분하거나 당황하였기 때문에 그 행위를 하였을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2) 서울남부지법, 2019. 9. 23. 선고 2019고합127 판결 참조.
3) 이 사건의 쟁점인 ‘정당방위를 성립시키는 상당한 이유는 무엇인지’, ‘피고인에게 그러한 이유가 갖
춰져 있었는지’ 등은 법학 분야에서 다룰 주제로 이 글에서는 논의하지 않는다. 정당방위에 관한 여
러 입장과 성립요건에 대해서는 최석윤, 「정당방위의 근본사상에 관한 연구」, 2010, 259-280쪽;
이원상, 「정당방위의 성립에 대한 비판적 고찰-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 2014고단444 판결을 대상으
로」, 2015, 169-194쪽 참조.
□ 이 재 복—정약용의 사칠설(四七說)과 법감정(法感情) 149
행위도 포함된다. 대한민국 형법은 자신을 위한 행위뿐만 아니라 타인을 위한 행
위, 즉 공적인 행위에 대해서도 상당한 이유를 고려하여 위법성을 조각(阻却)한
다는 것이다.4) 또한 재판부는 피고인의 방위행위가 정도를 초과하였더라도 그것
은 자신의 딸이 야간이라는 불안스러운 상태에서 사람들로부터 위협을 당하자 공
포, 경악, 당황 등을 하여 발생한 것이기에 벌하지 않는 행위로 보아야 한다고
판결하였다. 감정을 비합리적인 것으로 여겨 행위자의 적법행위에 대한 기대가
능성이 없어 책임을 묻지 못한다고 본 것이다. 감정을 적법행위를 방해하는 부정
적 요소로 여긴 것이기는 하지만, 행위에 대한 책임 여부를 판단하는데 행위자의
감정이 영향을 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일반적으로 재판부는 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의 유무를 결정할 때에 행
위의 성격이 공적인지 사적인지를 고려하거나 감정의 개입 여부, 다른 시민들의
여론 등을 검토한다. 이른바 사회통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통념에 따라 어
떤 위법행위가 정당방위로 인정받는 경우는 흔치 않다. 실무적으로 법원은 정당
방위의 성립을 엄격하고 좁게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정당방위라는 이유로 위법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 일이 많아지면 사회질서를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발생한다고 보기 때문이다.5)
재판관이 판결을 내릴 때에는 행위의 결과뿐만 아니라 범행 동기, 인물 관계,
사건 정황 등을 포괄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본 것은 조선후기의 유학자 정약용
(丁若鏞, 1762∼1836)도 마찬가지였다. 정약용은 유학자로서 사칠논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고 성기호설(性嗜好說)과 권형(權衡) 혹은 자주지권(自
主之權) 등을 논한 인물이다. 또한 그는 다양한 실무서를 집필하여 경세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 중 각종 사건 판례를 모은 법제서인 『흠흠신서(欽欽
4) 이에 대하여 이원상은 자신의 법익을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자기보호원칙에 따라 정당방위로 인정되
지만, 제3자를 위한 정당방위는 법을 수호하기 위한 원칙이 작동된 것으로서 논의 맥락이 다름을 지
적하였다. 이원상, 「정당방위의 성립에 대한 비판적 고찰-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 2014고단444 판결
을 대상으로」, 2015, 170-173쪽 참조.
5)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서울고등법원 2015. 1. 29. 선고 2013노2350 판결이다. 피고인은 폭력을
휘두르던 남편의 손을 뿌리친 후 그를 발로 찼다. 남편은 머리를 방바닥에 부딪쳤고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으며 피고인은 폭행치상 혐의로 기소되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의 재판부는 정당방위
를 인정하여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을 파기하고 피고인에게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였다. 피고인이 남편의 손을 뿌리친 순간에 위협 상황은 종료
되었으므로 피고인이 남편을 발로 찬 행위는 현재의 부당한 침해에 대한 방위 행위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정당방위에 대한 국민(배심원)과 재판부 사이의 이해에 차이가 있음이 드러난다.
150 철학·사상·문화 제37호
新書)』(1822)에서 보이는 감정과 법의 긴장은 사칠설의 실천적 변용이라는 측
면에서 중요한 연구주제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본 연구는 정약용이 인간의 감
정을 이해한 방식과 함께 그가 법과 감정의 긴장을 어떤 방식으로 논의하였는지
살펴본다. 이로써 그의 감정설이 현대적 법감정 담론과 어떤 접점이 있는지를 확
인하는 것이 이 글의 목표이다.
이에 따라 이 글의 2장에서는 정약용의 사칠설과 성기호설을 검토한다. 정약
용은 자신의 사칠설을 직접 제시하기보다는 기존의 사칠논변에 대한 견해를 밝혀
자신의 관점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본 연구는 그의 견해로부터 사칠논변의 한
귀결점을 확인한 후, 그의 감정설이 실천 영역에는 어떤 방식으로 적용될 수 있
는지 고찰할 것이다. 먼저 밝히자면, 필자는 정약용의 관점이 성호학파의 이병휴
(李秉休, 1710∼1776)가 제기한 공칠정설(公七情說)과 궤를 같이한다고 이해
한다. 공(公)과 사(私)를 기준으로 감정을 구분함으로써 사칠논변의 전환을 꾀
한 그의 관점이 정약용의 설에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정약용의 기호로
서의 성(性)은 도덕적 선악을 승인하거나 거부하는 감정의 인지능력이라고 해석
한다. 3장에서는 정약용이 정리(情理)를 고려하여 참작감률(參酌勘律)하는6)
것이 옳다고 말한 사례를 위주로 법과 감정의 긴장을 살펴보겠다. 특히 공적인
감정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행위의 처벌에 대한 정약용의 견해를 검토할 것이다.
이를 통해 정약용의 감정설이 지니는 현대적 의미를 조망하겠다.
2. 사칠논변에 대한 이해와 기호로서의 성
1) 정약용이 이해한 사칠논변
정약용의 사칠설에 대한 연구의 주요 쟁점 중 하나는 그의 설이 어떤 사상으로
부터 영향을 받았느냐이다.7) 이러한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 중 하나는 정약용의
6) 대한민국 형법 제53조인 작량감경(酌量減輕)에 해당한다. 법률상의 감경사유가 없더라도 법률로 정
한 형벌이 범죄의 정상에 견주어 과중하다고 인정되면 법관이 재량으로 형을 감경할 수 있다.
7) 이 질문에는 두 가지 물음이 걸려 있다. 하나는 정약용의 철학이 서학의 영향을 받았는지 아니면
성리학의 연장선상에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정약용의 철학이 성리학의 흐름을 벗어나
지 않는다면, 그것이 이황으로부터 연원하는지 아니면 이이로부터 연원하는지, 또는 이황과 이이를
절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물음이다.
□ 이 재 복—정약용의 사칠설(四七說)과 법감정(法感情) 151
설에 서학(西學)의 것으로 보이는 개념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정
약용의 사칠설은 그가 리(理)와 기(氣)를 어떻게 이해했느냐에 따라 크게 전기
와 후기로 구분된다. 서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그의 사칠설은 『중용강
의(中庸講義)』(1784)에 서술되어 있다. 본 절에서는 이러한 해석의 타당성을
검토하면서 그의 사칠설을 살펴보겠다. 정약용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개 기는 스스로 있는 것이고, 리는 의지하여 붙어 있는 것이다. 의지하여
붙어 있는 것은 반드시 스스로 있는 것에 의지하므로 잠시라도 기발이 있으면 리
가 있다. 그렇기에 ‘기발이리승지’는 가하지만, ‘리발이기수지’는 불가하다. 어
째서인가? 리는 스스로 설 수 없으므로 먼저 발하는 방도가 없다. 미발 이전에
비록 리가 먼저 있더라도 장차 그 발하는 것은 반드시 기가 먼저 있어야 한다.
이이가 말한 ‘발하는 것은 기이고 발하는 까닭은 리이다’라는 설이 확실하니 누
가 그것을 바꿀 수 있겠는가?8)
정약용은 이황(李滉, 1501∼1570)의 호발설(互發說)을 부정함과 동시에 이
이(李珥, 1536∼1584)의 설을 긍정하였다. 그 근거로 제시된 것이 리는 의존
(依存)하고 기는 자존(自存)한다는 것이다.9) 별도의 논의는 없지만, 정약용은
그러한 기의 자존성에 운동성을 포함하여 기발 개념은 문제 삼지 않았다. 반면
의존하는 리는 운동성을 지닐 수 없다고 봄으로써 리발은 성립할 수 없다고 말하
였다. 여러 선행연구가10) 『중용강의』에서 드러난 이와 같은 정약용의 리와 기
개념 이해를 『천주실의(天主實義)』(1603)에서 마테오 리치가 리와 기를 규정한
방식과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8) 丁若鏞, 『中庸講義補』: 蓋氣是自有之物, 理是依附之品, 而依附者必依於自有者, 故纔有氣發,
便有是理. 然則謂之氣發而理乘之可, 謂之理發而氣隨之不可. 何者. 理非自植者, 故無先發之
道也. 未發之前, 雖先有理, 方其發也, 氣必先之. 東儒所云發之者氣也, 所以發者理也之說, 眞
眞確確, 誰得以易之乎. (이 글에서 인용한 정약용의 글은 한국문집총간(韓國文集叢刊), 『여유당
전서(與猶堂全書)』를 활용하였으며, 『중용강의』 원문은 『중용강의보』(1814)에서 인용하였다.)
9) 김상현은 이에 근거하여 정약용이 기를 실체로, 리를 속성으로 규정하였으며, 그 의도는 주자학의
우주생성론 및 존재론 비판에 있다고 분석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정약용이 마테오 리치의 『천
주실의』에 반영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온전히 수용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의존과 자존이라는
개념에 근거하여 정약용이 리를 속성, 기를 실체로 간주했다고 해석하는 일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별
도의 연구가 필요하지만 이 글에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는다. 김상현, 「이황·이이의 사단칠정론에 대
한 정약용의 관점」, 2013, 26-32쪽 참조.
10) 김상현, 「이황·이이의 사단칠정론에 대한 정약용의 관점」, 2013, 26-32쪽; 김영우, 「다산의 사단
칠정론 고찰」, 2005, 245-250쪽; 김영우, 「율곡 사상에 대한 다산의 이해와 비판적 계승」, 2014,
61-65쪽 참조.
152 철학·사상·문화 제37호
사물의 범주에는 두 가지가 있다. 스스로 존재하는 것과 다른 것에 의존하는
것이다. …… 이 두 가지 범주를 비교해보면, 스스로 존재하는 것은 앞서 있고
귀중하며, 의존하는 것은 뒤에 있고 천하다. …… 리 역시 의존하는 부류이니 스
스로 자립할 수 없는데, 어떻게 다른 사물을 존재하게 할 수 있겠는가?11)
마테오 리치는 정약용에 앞서 리와 기를 다른 것에 의존하는 것[依賴者]과 스
스로 존재하는 것[自立者]으로 구분하였다. 더 나아가 그는 자존할 수 있는 실
체로서의 기는 의존하는 속성으로서의 리보다 존재론적으로 우위에 있다고도 주
장하였다. 그런 점에서 정약용이 리와 기를 존재양상에 따라 구분한 것은 마테오
리치와 유사하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으니, 정약용은 존재양상으로
부터 운동성의 존재 여부만 논하였지 존재론적 우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의 논설은 어디까지나 리와 기의 존재양상에 근거하여 호발설을 부정하고 ‘발
하는 것은 기이고 발하게 하는 까닭은 리’임을 강조하는데 방점이 있다. 기를 리
보다 존재론적으로 우위에 둔 마테오 리치의 탈(脫)성리학적 주장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12)
한편 리와 기의 존재양상을 근거로 이황과 이이의 사칠설을 평가한 전기 사칠
설과 달리, 후기 사칠설에서 정약용은 이황의 호발설도 긍정적으로 평가하였
다.13) 정약용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이에 두 선생[이황과 이이]께서 리와 기라고 말한 것은, 비록 글자는 같으나
가리키는 바에 전일과 총체가 있다. 곧 퇴계는 퇴계대로 하나의 리와 기를 논하
였고, 율곡은 율곡대로 하나의 리와 기를 논한 것이며, 율곡이 퇴계의 리와 기를
취하여 어지럽힌 것이 아니다. 대개 퇴계는 오로지 인심상에 나아가 여덟 글자
[理發氣隨氣發理乘]를 밝힌 것이니, 리라고 말한 것은 본연지성, 도심, 천리지
11)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利瑪竇), 『天主實義』 上卷, 「第二篇: 解釋世人錯認天主」: 夫物之
宗品有二, 有自立者有依賴者. ……. 比斯兩品, 凡自立者先也貴也, 依賴者後也賤也. ……. 蓋
理亦依賴之類, 自不能立, 曷立他物哉?
12) 정약용이 마테오 리치로부터 리와 기를 규정하는 존재론적 개념틀을 차용했다는 추론은 합리적이지
만, 그로부터 정약용이 서학의 영향을 받아 탈성리학적 리기설에 근거한 존재론을 제시했다고 말하
기는 어렵다. 리와 기를 의존과 자존으로 규정한 것과 별개로 정약용은 여전히 성리학적 존재론 내
에서 리발과 기발을 논하였으며, 이는 그의 후기 사칠설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13) 정약용의 후기 사칠설 분석에는 주로 『서암강학기(西巖講學記)』(1795), 『리발기발변 1, 2(理發
氣發辯 一, 二)』(1801)가 활용된다. 『서암강학기』는 정약용이 자신의 전기 입장을 확장하여 이황
의 호발설이 이이의 설과 마찬가지로 어떻게 하나의 설이 될 수 있는지를 밝힌 첫 번째 저술이다.
그 논지가 『리발기발변 1, 2』에도 반영되어 있기에 본 연구에서는 후자에 집중한다.
□ 이 재 복—정약용의 사칠설(四七說)과 법감정(法感情) 153
공이고 기라고 말한 것은 기질지성, 인심, 인욕지사이다. 그러므로 사단과 칠정
이 발하는 데 공사의 구분이 있어서 사단은 리발, 칠정은 기발이 된다고 한 것이
다. 율곡은 태극 이래의 리와 기를 총괄하여 공론하였으니, 이를테면 무릇 천하
의 사물은 발하기 전에는 비록 리가 있는 것이나 장차 그것이 발할 때에는 기가
반드시 리보다 앞선다. …… 그가 말한 리는 형이상이며 사물의 근본법칙이고,
기는 형이하이며 사물의 형질이다. 그러므로 절절하게 심·성·정으로써 말한 것이
아니다.14)
정약용은 이황과 이이의 설은 논의 범주가 다르며 이황의 설도 타당한 하나의
설이라고 하였다. 존재론의 맥락에서 리와 기를 논한 이이와 달리, 이황은 리와
기를 가치론의 맥락에서 논하였기에 두 설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으며 어느 하나
는 맞고 다른 하나는 틀리다고 평가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정약용은 사칠논변
을 존재론과 가치론 두 가지 차원으로 구분하여 두 학자의 설을 각자의 맥락에서
긍정하였다. 그의 사칠설에 대해서는 전기와 후기 사이에 어떤 굴절이 있다고 해
석하기보다는, 전기의 존재론적 접근은 그대로 유지된 상태에서 후기에 이르러
이황의 설에 대한 가치론적 평가가 추가된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정약용은 리와 기에 대한 가치론적 접근을 전일[專], 존재론적 접근을 총체
[總]라고 칭하였다. 이러한 구분은 성호학파(星湖學派) 중에서도 이익(李瀷,
1681∼1763)의 제자인 이병휴의 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15) 이병
휴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사단은 성명의 리에 근원하기에 리발이라 하고 칠정은 형기의 사에서 생기므
로 기발이라 한다. 그렇다면 리발의 리는 곧 성명의 리를 가리키니 ‘리가 움직인
다’고 할 때의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리와 같지 않다. 기발의 기는 곧 형기의 기를
가리키니 ‘기가 따른다’고 할 때의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기와 같지 않다.16)
14) 丁若鏞, 「理發氣發辯 一」: 乃二子之曰理曰氣, 其字雖同, 而其所指有專有總, 卽退溪自論一理
氣. 栗谷自論一理氣, 非栗谷取退溪之理氣而汨亂之爾. 蓋退溪專就人心上八字打開, 其云理者
是本然之性, 是道心, 是天理之公, 其云氣者是氣質之性, 是人心, 是人欲之私. 故謂四端七情
之發, 有公私之分, 而四爲理發, 七爲氣發也. 栗谷總執太極以來理氣而公論之, 謂凡天下之
物, 未發之前, 雖先有理, 方其發也, 氣必先之. …… 其云理者是形而上, 是物之本則, 其云氣
者, 是形而下, 是物之形質, 非故切切以心性情言之也.
15) 성호학파와 정약용의 사상적 연관성을 다룬 논문은 정소이, 「퇴계 이황, 성호 이익, 다산 정약용
심성론의 연속성과 차이에 대한 연구」, 2013, 37-70쪽 참조.
16) 李秉休, 『貞山雜著』, 「上平湖答書」, 302쪽: 四原於性命之理, 故曰理發, 七生於形氣之私, 故
曰氣發. 然則理發之理字卽指性命之理, 而與汎稱理動者不同. 氣發之氣字卽指形氣之氣, 而與
154 철학·사상·문화 제37호
이병휴의 철학에서 리발과 기발이라고 할 때의 리와 기는 사단과 칠정이 발원
하는 성명과 형기를 가리킨다. 정약용이 「리발기발변 1」에서 주장한 바와 그 뜻
이 합치한다. 사단과 칠정의 원천을 논하는 담론에서 리와 기는 한정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정약용의 표현을 빌리면 전일하게 논한 리와 기를 가리킨다고 말하
는 것과 같다. 한편 이병휴는 ‘일반적으로 지칭하는[汎稱]’이라는 표현을 사용
하는데, 이때의 리와 기는 만물을 구성하는 존재론적 범주의 리와 기를 가리킨
다. 정약용이 총체를 가리키는 리와 기라고 말한 것에 해당한다. 이병휴는 사칠
논변이 끝나지 않는 이유를 사람들이 전일한 리기를 총체인 리기와 구분하지 않
고 혼용하기 때문이라고 비판하였다.17)
이병휴의 사칠설에서 사상사적으로 중요하게 다뤄지는 주장은 그의 공칠정 리
발설이다. 그는 성현의 칠정, 이른바 공칠정은 리발이라고 규정하였다. 아무리
공적이더라도 그것이 칠정이면 기발이라고 간주한 기존의 사칠논변과 다른 관점
을 제시한 것이다.
맹자의 기쁨, 순의 노여움과 같은 것은 애초에 형기와 간섭하지 않는다. 여기
에 기발이라는 글자를 써서는 안 된다. 이는 앞서 이른바 칠정은 기발이라고 한
것과 다르다. 이것은 마땅히 별개의 한 이론이라고 해야지, 이제 다시 기발이라
고 하니 견강부회를 면치 못한다.18)
이병휴는 성현의 칠정을 기발인 칠정과 구분함으로써 사단과 칠정에 포함되지
않는 공칠정이라는 별도의 범주를 제시하였다. 그에게 성현의 칠정은 범인(凡
人)의 칠정과 다르게 애초부터 형기가 아니라 성명에서 발한 감정이다.19) 그러
한 칠정은 기발인 칠정과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 주장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汎稱氣隨者又不同.(이 글에서 인용한 이병휴의 글은 『근기실학연원제현집(近畿實學淵源諸賢集)』,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02, 영인본 3冊을 활용하였다. 표기된 쪽수는 『근기실학연원제현집』
3冊의 쪽수이다.)
17) 李秉休, 『貞山雜著』, 「答安百順書」, 631쪽: 大抵此訟紛紜未決者, 只緣今人看理發氣發字不
分曉, 若看得分曉, 則無此紛紜矣. 蓋理氣二字, 有汎說者, 亦有非汎說而別有所指者. 若汎說,
則四七之發, 理動氣隨似無例, 而四必謂之理發, 七必謂之氣發, 各有攸屬, 不容錯互, 則其言
理氣, 決非汎說, 而別有所指, 可知矣.
18) 李秉休, 『貞山雜著』, 「四七理氣辨」, 552쪽: 愚案, 如孟喜舜怒, 初不干於形氣, 於此不氣發字
不得, 則與前所謂七情氣之發者不同. 此當別謂一說, 而今亦謂氣發, 似未免牽强矣.
19) 성인의 칠정이 지니는 도덕성에 관한 연구는 박지현, 「七情과 도덕성-‘聖人의 七情’을 중심으로」,
2015, 1-27쪽 참조.
□ 이 재 복—정약용의 사칠설(四七說)과 법감정(法感情) 155
그는 사칠설에 한정하여 리와 기를 성명과 형기라고 규정함으로써 그동안 합의되
지 않았던 리의 운동성 문제를 해소하였으며 사단과 칠정으로 구분되던 인간의
감정을 리발인 공적인 감정과 기발인 사적인 감정으로 구분하였다.
정약용의 후기 입장은 공칠정 리발설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병휴가 리와 기의
의미를 두 가지 차원으로 구분한 것처럼, 정약용은 리와 기를 전일과 총체를 가
리키는 것으로 구분하여 이황의 설과 이이의 설이 서로 양립할 수 있음을 보였
다. 이는 전기 사칠설에서는 고려되지 않았던 것이다. 존재론의 맥락에서 자신의
입장을 제시하였던 정약용이 후기에 이르러 이황의 설을 긍정하게 된 것은 가치
론의 맥락에서 사칠설의 실천적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인용한 「리발기발변 1」에서 정약용은 감정에는 공과 사의 구분이 있으며
공적인 사단은 리발, 사적인 칠정은 기발이라고 하였다.20) 사단과 칠정이 아니
라 공과 사를 기준으로 리발과 기발을 구분한 것이다. 그의 구분은 이론적 측면
에만 머물지 않고 감정의 확충과 제어라는 실천적 측면에도 적용된다. 정약용은
「리발기발변 2(理發氣發辯 二)」(1801)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군자가 고요할 때는 존양하고 움직일 때는 성찰한다는 것은, 무릇 한 가지 마
음이 발하면 즉시 삼가고 준엄하게 살펴 말하기를, ‘이 마음은 천리의 공변에서
발한 것인가 인욕의 사사로움에서 발한 것인가. 이것은 도심인가 인심인가’라고
한다는 것이다. 세밀하고 절실하게 추구하여 이것이 천리의 공변이면 북돋아 기
르고 확충하며 혹여 인욕의 사사로움에서 나온 것이면 막고 꺾어 극복한다. 군자
가 정성스레 리발과 기발을 변론한 것은 이를 위한 것이다.21)
정약용은 리발과 기발을 둘러싼 사칠논변의 목적이 천리의 공변에서 나온 감
정과 인욕의 사사로움에서 나온 감정을 분별하여 전자는 확충하고 후자는 제어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그는 사단은 대체로 리발이지만 천리의
공변에서 발하지 않는 사단도 있다고 하였다. 칠정은 대체로 기발이지만 형기의
사사로움에서 발한 것으로 볼 수 없는 칠정도 있다고도 말하였다.22) 그렇기에
20) 본고 주석 14 참조.
21) 丁若鏞, 「理發氣發辯 二」: 君子之靜存而動察也, 凡有一念之發, 卽已惕然猛省曰, 是念發於天
理之公乎, 發於人欲之私乎, 是道心乎, 是人心乎. 密切究推, 是果天理之公則培之養之, 擴而
充之, 而或出於人欲之私則遏之折之, 克而復之. 君子之焦唇敝舌而慥慥乎理發氣發之辯者, 正
爲是也.
156 철학·사상·문화 제37호
정약용에게 ‘사단은 확충하고 칠정은 제어해야 한다’는 주장은 실천적으로 의미
가 온전하지 않다. 사단이든 칠정이든 리발로서 공적이면 확충하고 기발로서 사
적이면 제어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단과 칠정으로 감정의 도덕성 여부를 구분하
던 기존 체계를 공과 사로 구분하는 체계로 전환한 것이다.23) 이는 도덕 감정을
분류하는 기준을 사단과 칠정이라는 감정의 이름이 아니라 공과 사라는 성격에
둔 것이며, 이것이 사칠논변에 대한 정약용의 최종견해이다.
2) 기호로서의 성과 도덕 감정
인간의 성이 이미 선하거나 악한 것으로 결정되어 있으며 모든 행위가 그로부
터 벗어날 수 없을 때, 우리는 다음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즉, 행위에 대한
근본적인 책임이 성을 부여한 자에게 있는 것인지 아니면 성을 실현시킨 행위자
로서의 인간에게 있는 것인지를 물을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답변이 가
능하다. 주지하듯이 정약용은 성기호설을 주장하며 행위에 대한 책임은 그렇게
행위 하기로 선택한 인간 자신에게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24) 그는 인간의
성이란 선을 즐거워하고 악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인간에게
는 그러한 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치들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항상 선한 행위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도 하였다. 아래는 정약용의 심성설에서 주요하게 논의
되는 『심경밀험(心經密驗)』(1815)의 한 부분이다.
총괄하면, 영체의 안에는 세 가지 이치가 있다. 성을 말하면 선을 즐거워하고
악을 부끄러워하니, 이것이 맹자의 성선이다. 권형을 말하면 선할 수도 있고 악
할 수도 있으니, 이것이 고자의 소용돌이치며 급하게 흐르는 물의 비유와 양웅의
선악이 뒤섞여 있다는 설이 만들어진 까닭이다. 행사를 말하면 선하기는 어렵고
악하기는 쉬우니, 이것이 순경의 설이 만들어진 까닭이다. 순경과 양웅은 성이라
22) 丁若鏞, 「理發氣發辯 二」: 四端大體是理發, 謂發於本然之性. 雖然明皇於馬嵬, 引貴妃而發惻
隱之心, 此先儒之言. 漢高祖自白登還而發羞愧之心, ……, 若此類謂其發於天理之公, 不可得
也. 七情大體是氣發, 謂發於氣質之性. 雖然子路喜聞過, 文王一怒而安天下之民, ……, 大學
之欲誠其意欲正其心, 若此類, 謂其發於形氣之私, 不可得也.
23) 정약용의 공과 사 개념에 대한 연구는 백민정, 「유교 지신인의 公 관념과 公共 의식: 이익, 정약용,
심대윤의 경우를 중심으로」, 2012, 19-29쪽 참조.
24) 정약용의 관점을 결정론과 자유의지론의 대립 양상으로 설명한 논의는 이영경, 「다산 정약용의 심
성론에서 자유의지론의 문제와 윤리적 특징」, 2007, 1-20쪽 참조.
□ 이 재 복—정약용의 사칠설(四七說)과 법감정(法感情) 157
는 글자에 대한 근본을 그릇되게 인식하여 설이 어긋났지만, 우리 영체의 안에
본래 이 세 가지 이치가 없는 것이 아니다.25)
정약용이 보기에 인간의 성은 행위에 전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인간의
행위에는 성과 대등한 이치인 권형과 행사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아무리 성
이 선을 즐거워하고 악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더라도 그 성을 실현시키는 행위자인
인간에게는 권형이 있어서 기호와 무관하게 선하게 행위 할 수도 있고 악하게 행
위 할 수도 있다.26) 권형의 존재가 인간을 책임의 주체로 만드는 것이다. 성이
무엇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고 행위의 근원이 될 수 있다면 인간의 행위는 선
을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형기 또는 처해 있는 상황의 영향을
받아 스스로 판단하여 선하거나 악해질 수 있다.
기호로서의 성에 대한 설명에서 한 가지 불분명한 점은, 우리의 성이 선을 즐
거워하고 악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그 대상이 선임을 알기 때문에
우리가 즐거워 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대상이 선이라는 것을 모르는 상태에서도
우리는 그것을 즐거움으로서 지향할 수 있다는 것인지’이다. 둘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전자는 무엇이 선 또는 악인지를 아는 게 선행되어야 우리의 감정이 그에
맞게 발한다는 의미이다. 그렇기에 감정이 발하기 전에 선악을 분별하여 아는 것
이 중요하다.27) 후자는 우리의 감정 자체가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이라는 뜻이
다. 여기서는 주관적 감정이 어떻게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 등이 과제로 주
어진다.28) 정약용은 전자의 관점에서 인간의 성을 기호라고 하였다.
이제 인간의 성을 논하면, 인간은 선을 즐거워하고 악을 부끄러워하지 않음이
25) 丁若鏞, 『心經密驗』, 「心性總義」: 總之, 靈體之內, 厥有三理 言乎其性, 則樂善而恥惡, 此孟
子所謂性善也. 言乎其權衡, 則可善而可惡, 此告子湍水之喻, 揚雄善惡渾之說所由作也. 言乎
其行事, 則難善而易惡, 此荀卿性惡之說所由作也. 荀與揚也, 認性字本誤, 其說以差, 非吾人
靈體之內, 本無此三理也.
26) 권형 개념에 대한 연구는 이행훈, 「다산 정약용의 심성론: 인심도심의 재해석과 성기호설」, 2015,
41-69쪽; 정소이, 「다산 정약용의 윤리론에서 최종 결정권은 어디에 있는가?」, 2015, 31-60쪽
참조.
27) 정약용의 선악 개념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이영경, 「丁若鏞의 善惡論」, 2012, 87-113쪽 참조.
28) 기존 연구에서 정약용이 주장한 성을 도덕 감정으로 해석한 연구는 다수이나 이처럼 그 의미를 구분
하여 논한 연구는 많지 않다. 정약용의 주장을 도덕 감정으로 해석한 연구로는 백민정, 「다산(茶
山) 심성론(心性論)에서 도덕 감정과 자유의지에 관한 문제」, 2007, 428-440쪽; 정소이, 「정약
용의 성 기호설-윤리적 자연주의의 시각에 입각하여-」, 2009, 449-488쪽 참조.
158 철학·사상·문화 제37호
없다. 그러므로 하나의 선을 행하면 그 마음은 충만하여 기뻐하고, 하나의 악을
행하면 그 마음은 시름겨워 꺾인다. 내가 선을 행하지 않았는데 남이 나를 선하
다고 칭찬하면 기쁘고, 내가 악하지 않은 것이 아니나 남이 나를 악하다고 비방
하면 화가 난다. 이것은 선이 기뻐할만하고 악은 부끄러워할만한 것임을 아는 것
이다. 남의 선을 보고는 따라가 좋아하고, 남의 악을 보고는 따라가 미워한다.
이것은 선이 흠모할만하고 악은 증오할만한 것임을 아는 것이다.29)
인용문에서 정약용은 자신 또는 타인이 선하거나 악한 경우를 제시하며 감정
에는 선악을 승인 또는 거부하는 인지적 요소가 있음을 보였다. 그에 따르면 내
가 선을 행하였든 행하지 않았든 누군가 나에게 선하다고 칭찬하면 나는 기뻐한
다. 이미 내가 선을 기뻐할 대상이라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설령 내가 악을 행하
였더라도 누군가 나에게 악하다고 비판하면 화가 나는 것은 이미 내가 악을 부끄
러운 것으로서 거부했기 때문이다. 악을 행한 자는 스스로 부끄러움에 못 이겨
시름하게 된다. 다른 사람의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기
쁨, 화냄, 좋음, 미움 등은 선 또는 악을 지향하며 발현된 감정으로, 어떤 감정
이 발했다는 것은 그 대상을 선하거나 악한 것으로 평가했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정약용이 ‘선을 부끄러워하거나 악을 즐거워하
는’ 경우는 상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는 우리가 어떤 대상을 선으로 인지
하면 즐거워하고 어떤 대상을 악으로 인지하면 부끄러워하는 과정에는 선택의 여
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정약용에게 성은 기호이지만 그 기호는 선은 즐거워하고
악은 부끄러워하도록 정향(定向)된 기호이다. 그가 성을 기호로 규정하면서 동
시에 선하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30) 그는 불효자가 불효를 저지
르는 이유는 효가 선임을 몰라서가 아니라고 하였다.31) 불효자라고 하여 그것이
즐거워서 불효를 저지른 것은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정약용에게 선은 마땅히 즐
거워해야 하는 것이고 악은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이어서 이러한 기호의
29) 丁若鏞, 『心經密驗』, 「心性總義」: 今論人性, 人莫不樂善而恥惡. 故行一善, 則其心充然以悅.
行一惡, 則其心欿然以沮. 我未嘗行善, 而人詡我以善則喜, 我未嘗無惡, 而人謗我以惡則怒.
若是者, 知善之可悅而惡之可愧也. 見人之善, 從而善之, 見人之惡, 從而惡之. 若是者, 知善
之可慕而惡之可憎也.
30) 본고 주석 25 참조.
31) 丁若鏞, 『孟子要義』, 「滕文公第三」, <滕文公爲世子孟子言必稱堯舜章>: 里有不孝子, 不知者
譽之爲孝則悅. 彼其心以孝爲善故悅也. 里有奸淫婦, 不知者譽之爲貞則悅. 彼其心以貞爲善故
悅也. 貪官汚吏, 聚斂掊剋, 無所不爲, 奸人諂之以淸白則悅. 讒夫侫臣, 賣弄欺詐, 無所不爲,
奸人諂之以忠直則悅. 彼其心皆樂善而恥惡. 故雖知其違於實, 而第以爲悅也.
□ 이 재 복—정약용의 사칠설(四七說)과 법감정(法感情) 159
방향성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정약용은 성을 기호이되 선한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한 가지 문제를 스스로 떠
안았다. 불효가 부끄러운 일임을 알면서도 불효를 저지르는 이유, 즉 현실에 악
이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해야 했던 것이다. 그는 권형과 행사 개념을 제시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우선 정약용은 행사를 세(勢)라는 용어와 혼용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32)
세란 처지이며 기틀이다. 식욕과 색욕은 안에서 꾀고 명예와 이익은 밖에서
끈다. 기질의 사사로움은 편안함을 좋아하고 힘든 것을 싫어한다. 그러므로 그
세가 선을 따르는 것은 [높은 곳을] 오르는 것과 같고 악을 따르는 것은 [그것이]
무너지는 것과 같다. 이는 하늘이 몰라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이와 같은 연후
에 선을 행하는 것이 귀할 수 있기 때문이다33)
인간은 내외적으로 욕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욕망을 따르는 일이 선을
행하는 일에 도움이 된다면 문제가 없지만, 현실적으로 그러한 욕망들은 선을 행
하는 데 장애가 된다. 정약용에게 악이란 욕망에 휘둘려서 기호에 부합하지 않게
행위 한 결과이며, 우리는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쉽게 악에 휩쓸린다.
반면 선이란 욕망을 극복해야 실현할 수 있는 것이기에 성취하기 어려운 귀한 공
로로 여겨진다. 그가 보기에 한 인간이 처한 상황으로서의 행사는 기호를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는 이치였다.
하지만 행사만으로 선을 칭찬하고 악을 비판하는 일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성이 선을 좋아하게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선을 행하는 것이 아무리 어려운 일
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성에 의해 결정된 일을 따른 것일 뿐이다. 비록 우리
가 악을 미워하더라도 악을 행하는 일이 무너져 내리는 산처럼 쉽다면 우리는 그
책임을 자기 자신에게 묻기 보다는 자신이 처한 환경 탓을 하게 된다. 우리가
어떤 행위에 대해 선악을 판단하여 칭찬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그럴만한 연유가
그 행위자 자신에게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와 관련하여 정약용이 제시한 또
32) 정약용의 철학에서 행사와 세를 포함한 용어의 변화에 대해서는 정소이, 「정약용 심성론의 변천에
관한 연구」, 2009, 3-33쪽 참조.
33) 丁若鏞, 『梅氏書平』, 「閻氏古文疏證抄 一」, <南雷黃宗羲序>: 勢者, 其地其機也, 食色誘於
內, 名利引於外, 又其氣質之私, 好逸惡勞. 故其勢從善如登, 從惡如崩. 天非不知而使之然
也, 爲如是, 然後其爲善者, 可貴也.
160 철학·사상·문화 제37호
하나의 이치가 권형이다.
기린은 착한 것으로 정해져 있기에 착한 것이 공이 되지 않고, 승냥이와 이리
는 악한 것으로 정해져 있기에 악한 것이 죄가 되지 않는다. 인간은 그 재가 착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는데, 능력은 자력에 달려 있고 권형은 자주에 달려 있기
에 착하면 칭찬하고(악할 수 있는 기틀이 있기에 칭찬한다), 악하면 비판한다(선
할 수 있는 재능이 있기에 비판한다).34)
그러므로 하늘은 인간에게 자주지권을 부여하여 선을 하고자 하면 선을 행하
고, 악을 하고자 하면 악을 행할 수 있게 하니, 옮겨 다니며 고정된 것이 아니어
서 그 권한이 자신에게 있는 것이 금수가 결정된 마음을 갖고 있는 것과 같지 않
다. 따라서 선을 행하면 실제로 자신의 공이 되고 악을 행하면 실제로 자신의 죄
가 된다. 이것은 심의 권능이지 이른바 성이 아니다.35)
정약용은 여러 저술에서 권형, 재(才) 그리고 자주지권 등의 용어를 혼용하지
만 그 의미는 하나다. 인간에게는 기호로서의 성과 별개로 선을 행할지 아니면
악을 행할지를 스스로 판단하여 선택하는 의지 능력도 있다는 사실이다. 선을 행
하는 일이 칭찬을 받거나 악을 행하는 일이 비판을 받는 이유는 인간에게 그렇게
행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약용의 관점에서 인간의
행위는 선 또는 악 중에서 어느 하나를 적극적으로 의지한 결과이며, 우리는 그
의지에 그 행위자의 공죄(功罪)를 귀속시킨다. 달리 말하면, 어떤 행위를 선택
할지에 대한 스스로의 의지를 기대할 수 없는 상태(금수처럼 권형이 없는 상태)
에서 행위자는 기호를 실현하는 매개자로서만 기능한다. 그러한 행위자는 행위
에 대한 직접적 원인이 없기 때문에 귀책(歸責)하지 못한다. 어떤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그 행위가 그의 의지로부터 야기된 것이어야만 한다.
성, 권형 그리고 행사라는 세 가지 이치 중에 어느 하나라도 어긋나면 선은
행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세 가지는 어느 하나가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34) 丁若鏞, 『梅氏書平』, 「閻氏古文疏證抄 一」: 麒麟定於善, 故善不爲功, 豺狼定於惡, 故惡不爲
罪. 人則其才可善可惡, 能在乎自力, 權在乎自主, 故善則讚之(以其有可惡之機, 故讚之), 惡
則訾之(以其有能善之才, 故訾之).
35) 丁若鏞, 『孟子要義』, 「滕文公第三」, <滕文公爲世子孟子言必稱堯舜章>: 故天之於人, 予之以
自主之權, 使其欲善則爲善, 欲惡則爲惡, 游移不定, 其權在己, 不似禽獸之有定心. 故爲善則
實爲己功, 爲惡則實爲己罪. 此心之權也, 非所謂性也.
□ 이 재 복—정약용의 사칠설(四七說)과 법감정(法感情) 161
없는 동등한 지위를 지닌다. 내가 선하고자 하여도 처한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면
선을 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수도 있다. 내가 악하고자 하였으나 처한 상황이
악을 행할 수 없게 만드는 경우도 가능하다. 그러나 인간은 권형으로써 행위에
대한 책임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지 능력으로서의 권형은 특히 중요하다.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즐겁지만 어려운 선과 부끄럽지만 쉬운 악 사이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경우, 우리는 어떻게 해야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
까? 이는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 선을 의지하게 만들까를 묻는 것이기도
하다. 정약용의 관점에서 답은 명료하다.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이
그것을 극복하고 자신에게 부여된 기호로서의 성을 온전히 실현하기 위해서는 천
리의 공변에서 발원한 감정은 확충하고 인욕의 사사로움에서 발원한 감정은 제어
해야 한다. 사단과 칠정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공과 사에 따라 감정을 분별하고
공적인 감정이 사적인 감정보다 우선할 때, 우리는 사사로운 욕망에 휘둘리지 않
고 선을 즐거워하는 성을 따라 기꺼이 선을 선택하게 된다.
기호로서의 성 개념을 제시하며 정약용은 뒤늦게 이황의 사칠설을 긍정하였
다. 그러나 그는 이황의 설을 그대로 수용하기 보다는 감정을 공적인 감정과 사
적인 감정으로 구분함으로써 칠정 중에도 사단처럼 천리로부터 발하는 칠정이 있
다고 하였다. 선을 즐거워하고 악을 부끄러워하는 도덕적 칠정을 칠정이라는 이
유만으로 형기의 사사로움에서 발하는 칠정과 동일한 감정으로 논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선악을 둘러싼 정약용의 성기호설은 기존의 사칠논변을 자신의 실천적
이해에 따라 변용한 도덕 감정설이다.
3. 도덕 감정과 굴법(屈法)
앞서 필자는 정약용이 이황과 이이의 사칠논변을 이해한 방식을 검토한 후,
그가 감정을 공사로 구분한 것과 성을 기호라고 주장한 것이 어떤 지점에서 만나
는지 살폈다. 그 과정에서 정약용이 말한 기호는 선악에 대한 도덕적 승인 또는
거부이며, 그것은 칠정이되 형기의 사사로움과는 다른 도덕 감정임을 설명하였
다. 정약용은 사칠설의 영역에서 다뤄지던 감정 문제를 보다 실천적인 영역에 적
용하여 인간이 선을 행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고찰하였다. 그 중에서도 주
목할 점은 정약용이 권형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우리는 행위에 대한 책임을 논할
162 철학·사상·문화 제37호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사실이다.
정약용은 『흠흠신서』를 지어 책임이 행위자에게 직접적인 문제가 되는 법적
책임에 대해서도 논하였다. 현대 법에서 책임이란 비난(처벌)가능성으로서36)
어떤 행위에 대해 비난 또는 처벌을 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일은 행위자에게
그에 대한 책임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다. 정약용이 천착한 책임의 문제
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그는 실현된 행위의 책임뿐만 아니라 행위자가 어떤 의
지를 가지고 있었는지까지 고려하여 비난가능성을 판단해야 한다고 보았다. 겉
으로 드러난 행위에 대해 판단하기 이전에 행위자가 어떤 의지를 지니고 있었는
지, 무엇을 의지하여 행위 한 것인지 등을 고려해야 책임여부를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굴법(屈法)은 이와 같은 고민에서 발생했던 문제다. ‘법을 어기다’ 또는 ‘법
을 굽히다’ 등으로 번역되는 굴법은, 어떤 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을 때 원
칙을 그대로 적용하지 않고 행위가 일어나게 된 맥락을 고려하여 감형한다는 의
미를 지닌다. 정약용은 경우에 따라 굴법을 허용하거나 비판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의 논의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도덕 감정과 책임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
장을 확인할 수 있다.
1) 정리(情理)의 적용과 굴법
사형에 해당하는 사건의 최종 재판관이었던 정조(正祖)는 공적인 감정에 의하
여 발생한 살인사건에 대해서는 감형하는 경우가 많았다.37) 정리를 적용하여 판
결함으로써 법의 원칙 보다 중요한 유교적 가치를 실현하려 했던 것이다. 여기서
정리란 인정(人情)과 도리(道理)의 줄임말이지만 지금의 논의에서는 판결을 내
릴 때 참작할만한 세인(世人) 또는 범죄자의 심정, 사회통념상 옳다고 여겨지는
일 등을 뜻한다. 정리를 고려하는 일은 추상적 법이 구체적 개별행위에 적용되면
서 미처 살피지 못한 부분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였다.
정약용은 정조의 판결에 자신의 견해를 덧붙이는 방식으로 정리의 적용문제를
36) 법률용어로서의 책임, 책임과 관련된 주요 개념의 의미에 대해서는 현암사 편집부, 『법률용어사
전』, 2021, 1070-1073쪽; 이병태, 『법률용어사전』, 2021, 940-946쪽 참조.
37) 김현진, 「『審理錄』을 통해 본 正祖의 범죄판결 특성과 對民敎化政策」, 2012, 1-37쪽 참조.
□ 이 재 복—정약용의 사칠설(四七說)과 법감정(法感情) 163
논하였다. 박작은상(朴小尙)의 친자(親子) 박봉손(朴奉孫)이 의자(義子) 배종
남(裵從男)을 살해한 사건에 대한 정조의 판결과 정약용의 견해가 판결에 정리
를 적용하여 감형한 대표적 사례이다. 이 사건은 의자가 의부를 구타하자 친자가
친부를 구하기 위해 의자를 폭행하였고 상처를 입은 의자가 사망한 사건이다.38)
정조는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 폭행을 가한 것은 하늘의 이치이며 인간의 심정으
로 그만둘 수 없는 일이라고 보았고, 풍속 교화를 위해 법률의 유무에 상관없이
박봉손을 방면하는 것이 옳다고 판결하였다. 정약용의 의견도 정조와 다르지 않
았다. 더 나아가 정약용은 중국의 법전인 『대명률(大明律)』에 따르면 일반 살인
죄로 다스려야 했던 박봉손을, 조선의 법전인 『속대전(續大典)』에 기초하여 감
형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하였다.39) 그는 『서경(書經)』, 「주서(周書)」, <여
형(呂刑)>의 ‘법률은 무겁지만 정리가 가벼우면 처벌 등급을 내리고, 법률은 가
볍지만 정리가 무거우면 처벌 등급을 올린다’라는 구절을40) 인용하여 정조의 판
결이 유교적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음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태도는 그가 군주
의 판결을 무조건 긍정한 것이 아니라 유교적 원리에 입각하여 판단하였음을 말
해준다.
박봉손의 사건이 가족 간의 정리를 고려하여 사형을 면해준 것이라면, 신여척
(申汝倜)의 살인은 타인의 일이 정의롭지 않다고 여겨 저지른 살인에 대한 사면
이었다. 장흥에 살던 김순창(金順昌)은 자신의 아우 김순남(金順南)이 자신의
곡식을 훔쳤다고 의심하여 아우에게 폭행을 가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신여척은
두 사람을 찾아가 중재하려 하였으나 김순창이 가족 일에 상관하지 말라며 신여
척을 걷어찼다. 이에 분노한 신여척은 그대로 돌려주기 위해 김순창의 배를 걷어
찼고, 김순창은 다음날 사망하였다. 정조는 신여척의 행위를 법관이 아니면서도
우애하지 않은 형제의 죄를 공적인 차원에서 다스린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하
였고 그를 방면하였다. 정약용은 이번에도 동의하였다. 정조와 정약용은 행위가
일어나게 된 근본 원인에 공적인 감정으로서의 분노[公憤]가 있음을 이유로 신
38) 해당 사건에 관한 전체 내용은 『欽欽新書』, 「祥刑追議」, ‘情理之恕三’ 참조.
39) 『대명률』에서는 자손이 부모를 구원하려 했더라도 가해자를 죽게 한 경우에는 사형에 처하지만 『속
대전』, 「형전(刑典)」, <살옥(殺獄)>의 ‘부피인구타상중(父被人毆打傷重)’ 항목에 따르면 아버지
가 남에게 구타당하여 심한 상처를 입었을 때, 그 자식이 가해자를 구타하여 죽게 한 경우에는 사형
을 감하여 유배 보낸다(其父被人毆打傷重, 而其子毆打其人致死者, 減死定配).
40) 『書經』, 「周書」, <呂刑>: 上刑適輕下服, 下刑適重上服. 輕重諸罪有權, 刑罰世輕世重, 惟齊
非齊, 有倫有要.
164 철학·사상·문화 제37호
여척을 방면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판결한 것이다.41)
상술한 두 사건 외에도 정약용은 다양한 사건들에 대하여 자신의 견해를 제시
하였는데, 현대적 관점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의견도 다소 있으나, 근본 취지
는 행위에 대응하는 적합한 처벌을 하거나 하지 않음으로써 법이 놓친 도덕적 가
치를 바로 세워야한다는 것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이것은 어떤 행위에 대한 평
가, 행위자가 져야 할 책임은 법에 근거하되 사회통념을 고려해야만 온당하게 판
단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형제를 살해하였다고 해서 중국의 법률에 근거하여 사
형에 처할 것이 아니라, 근본 원인을 분석하여 조선 사회의 통념과 윤리에 부합
하는 판결을 하는 것이 법의 취지를 구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박봉손과 신여척은 자신이 당사자가 아닌 일에 개입하여 살인을 저지른 자들
이다. 하지만 이들의 동기가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면, 그들은 타인의 일을 자신
의 일처럼 여겼기에 발현된 공분을 따라서 행위 하기로 선택한 자들이었다. 행위
의 결과만 놓고 보면 악을 행하였지만, 무엇을 의지했느냐를 따져보면 그들은 선
을 행하고자 결의했었다. 자신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고 타인을 위해 분연히 나선
것은 공적인 감정이 발현된 것으로서, 정약용은 그러한 정상을 참작하여 그들을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처벌이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선을
행하기로 선택한 이들의 의지를 더 중요한 것으로 여긴 것이다. 굴법이란 법을
굽히는 일이지만, 그것은 외력에 의한 굴복이 아니라, 법을 지킴으로써 훼손될
수도 있는 선을 온존하기 위해 융통성을 발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여 정약용이 어떤 사건에든 정리를 적용하고 감형해야 한다고 주
장한 것은 아니다. 형수가 간통하자 시동생인 이이춘(李二春)이 간통한 사내인
김명철(金命喆)을 죽인 사건이 있었다. 황해도의 재판관은 정조에게 『대명률』의
‘간통한 현장에서 남편이 간통한 아내와 간통한 남자를 살해한 경우에는 죄를 묻
지 않는다’라는 조항을42) 확대 적용하여 남편의 아우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도
정상을 참작할 수 있지 않느냐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에 대해 정약용은 시동생
41) 해당 사건에 관한 전체 내용은 『欽欽新書』, 「祥刑追議」, ‘義氣之赦一’ 참조. 이와 관련하여 정조
는 김은애(金銀愛)라는 인물을 풀어 준 것도 신여척을 풀어준 것과 마찬가지로 윤리를 중시한 결과
라고 하였다. 김은애는 한 노파가 자신이 간음하였다고 모함하여 소문을 내자 억울하고 화가 난 마
음에 노파를 살해하였다. 정조는 신여척과 김은애에 대한 자신의 판결 내용을 반포하여 윤리를 무시
한 인간은 짐승과 다를 바가 없음을 널리 알리라고 하였다. 그로써 풍속의 교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
고 본 것이다. 김은애의 사건에 대한 전체 내용은 『欽欽新書』, 「祥刑追議」, ‘情理之恕八’ 참조.
42) 『大明律』, 「刑律·人命」, <殺死奸夫>: 凡妻妾與人通奸, 而於奸所親獲姦夫姦婦, 登時殺死者勿論.
□ 이 재 복—정약용의 사칠설(四七說)과 법감정(法感情) 165
에게까지 정리를 적용하여 감형하는 일은 지나친 판결이라고 비판하였다.43) 그
이유를 상세하게 밝히지는 않았지만, 추측컨대 정약용은 명확한 기준 없이 면책
의 대상을 늘리는 것은 굴법의 본래 취지를 훼손하여 사회 질서가 어그러지는 일
이라고 생각했다. 당사자인 남편과 간통에 관한 법률이 있음에도 시동생이 나서
서 간통한 사내를 살해한 것은 사사로운 폭력이기에 법을 굽혀서는 안 된다고 본
것이다. 사적인 영역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의 처벌에 관용을 베푸는 일이 거듭되
면 결국 범죄에 대한 처벌의 억제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44)
도덕 감정과 굴법의 긴장은 ‘어떤 경우에 한하여 법을 굽힐 것인가’를 결정하
는 일이 어렵다는 데에서 발생한다. 황해도의 재판관과 정약용의 견해에 차이가
있었다는 점에서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긴장 속에서 정약용은 수많은 판례를
검토하며 도덕 감정에 따른 행위의 책임 문제를 고민하였다. 그는 사사로운 감정
에 휘둘려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는 엄중히 처벌하고, 공적인 감정에 따라서 선을
행하기로 결의한 결과로서의 행위에 대해서는 처벌을 하지 않음으로써 사회 질서
가 유지된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앞장과 연관 지어 생각해보면, 정약용의 논의에서 인
간에게 권형이 있다는 사실만큼 도덕적으로 중요한 것은 없다. 감정에 따라 선을
행하고자 결의하는 것은 그 결과와 무관하게 도덕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며, 때로
는 법을 굽히는 것조차 허용된다. 다음 장에서는 이러한 정약용의 논의가 현대적
법감정(法感情) 논의와 관련하여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살펴보겠다.
2) 법감정 논의로의 확장
『흠흠신서』에 대한 연구 중에는 재판관이 법보다 감정에 근거하여 참작감률했
던 것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경우도 있다. 그에 따르면 감정이란 주관적이며 모호
한 것으로, 정리를 고려한다는 것은 결국 판결이 객관적 법이 아니라 재판관의
자의적 판단에 의존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45) 법을 엄격히 준용해야 할 주
43) 해당 사건에 관한 전체 내용은 『欽欽新書』, 「祥刑追議」, ‘情理之恕七’ 참조.
44) 『흠흠신서』를 다룬 최근의 한 연구도 이와 유사한 논조에서 정약용이 의분(義憤)에 의해 일어난
사건에 대해 감형하는 것은 존중하였지만 복수 살인을 빙자한 자의적인 살인이 일어나는 것은 경계
하였다고 분석하였다. 박경, 「『흠흠신서』 殺獄 판결에 나타난 감정의 법적 수용 방식: 복수 살인
및 부모 위해자 살해 사건을 중심으로」, 2021, 41-74쪽 참조.
166 철학·사상·문화 제37호
체들이 사법 정의를 실현하지 않는다면 사회질서는 필연적으로 붕괴될 수밖에 없
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감정을 주관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으로, 굴법을
법의 원칙을 어긴 공정하지 못한 판결로 이해한 것에 기인한다.
이성에 비해 감정이 비합리적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서양철학의 오랜 틀이다.
특히 법의 영역에서 감정은 단순하고 비인지적인 현상이기에 연구자들은 이성으
로써 감정을 규제해야 사건에 대한 올바른 판단이 가능하다고 보았다.46) 이런
관점에서라면 정리를 고려한 참작감률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이 부당한 처사만
은 아니다. 하지만 정약용의 논의에서 감정은 비인지적이거나 비합리적인 것으
로 묘사되지 않았다. 기호로서의 성은 선은 즐거워하고 악은 부끄러워하는 도덕
감정이었다. 인간은 악을 즐거워하거나 선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무엇이 선이
고 악인지를 인지한 후 그것을 즐거워하거나 부끄러워하는 방식으로 승인 또는
거부한다. 기호로서의 성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품수한 본성이기에 주관적이거나
자의적일 수 없다. 서양철학에서 규정한 감정 개념을 근거로 정리와 굴법을 평가
하는 것은 그 함의를 고려하지 못한 평가이다.
서양철학의 감정이론이라고 하여 모든 이론이 감정을 비합리적인 것이라고 말
하지도 않는다. 인지과학의 발전과 함께 연구자들 중에는 감정에도 인지하고 판
단하는 능력이 있으며, 감정에는 특정 대상에 대한 지향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연
구자들도 있다. 이들의 입장을 인지주의(cognitivism)라고 부른다. 그들은 감정
을 이성과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인식하는 능력이라고 이해한다.47) 대표적으로
누스바움(Nussbaum)은 감정이 인지적 판단을 내포하며, 우리는 대상에 대한 가
치 판단에 근거하여 지각 혹은 사고의 형태를 형성한다고 말하였다.48)
인지주의 감정이론의 발전과 더불어 법의 영역에서도 감정은 중요한 논제로
떠올랐다. 일반적으로 법감정이라는 개념은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하나는 법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간의 감정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인간이 법적 문제에 직
면하였을 때 그의 결정을 야기하는 법적 정조(情操)라는 의미이다. 지금 여기서
논의하고 있는 법감정은 후자이다.49) 인지주의가 주목 받기 이전에는 감정을 어
45) 정긍식, 「참작감률(參酌減律)을 통해 본 다산의 법인식」, 2003, 99-105쪽 참조.
46) 법과 관련하여 감정의 지위가 시대적으로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해서는 김연미, 「합리적 감정에
기초한 법적 정의에 대한 연구」, 2017, 151-157쪽 참조.
47) 인지주의에 대한 논의는 오성, 「감정에 대한 인지주의 이론의 경계 짓기」, 2008, 297-315쪽 참조.
48) 마사 누스바움 저, 조형준 옮김, 『감정의 격동: 1 인정과 욕망』, 2015, 81-133쪽 참조.
□ 이 재 복—정약용의 사칠설(四七說)과 법감정(法感情) 167
떤 현상이나 사건으로부터 자극을 받아 일어난 수동적 반응으로 이해하였고, 법
의 영역에서 그러한 감정은 행위자의 합리적 행위를 기대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
이었다. 들어가는 말에서 논한 것처럼, 경우에 따라 불안스런 상황에서 공포나
당황 등으로 인하여 일어난 행위는 책임을 면해주는 것도 감정을 비합리적인 수
동적 반응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인지주의 이론에 근거하여 감
정의 합리적 판단 능력을 인정한다면 판결을 내리는 과정에서 감정의 위상은 달
라질 수밖에 없다. 또한 그와 연계된 판결의 내용도 달라진다. 재판관은 이성에
만 초점을 맞춰 사건을 이해하던 것에서 벗어나 감정에도 주목함으로써 다양한
맥락에서 사건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행위자가 공포를 느꼈다면 그 공포의 대
상은 무엇이었는지, 행위자는 그 대상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렸기에 그와 같은
감정을 느낀 것인지, 법 안에서 그 판단은 합당한 것이었는지 등과 더불어 그러
한 판단으로부터 해당 행위가 도출된 것은 적법한 것이었는지 등을 고려함으로써
판결은 실체적 진실에 가까워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정약용은 실증적 법에만 입각하여 판결을 내리기 보다는 정리를 고려한 판결
도 허용해야 한다고 보았다. 사건의 개별적 성격을 따져보고 그에 대한 정리를
참작하여 감형 여부를 결정함으로써 법이 담아내지 못한 도덕적 가치를 지키려
했던 것이다. 그는 인간이 선하고자 결의하여 행위 했을 때에는 의도했던 바와
행위 결과에 차이가 있더라도 그 의지를 존중하여 처벌하지 않음으로써 한 사회
의 질서가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선을 의지하였으나 위법을 저지른 행위에
대해서는 법을 굽혀서라도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는 그의 논의는 한국철학 내에도
인지주의 맥락에서 법감정을 논의할 이론적 토대가 마련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4. 나가는 말
정약용은 선한 감정에 의한 행위에 대해서는 처벌을 면해주어야 한다고 생각
한 한편, 그것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행위의 결
과는 동일하더라도 사건에 얽혀 있는 인물들의 감정과 관계, 풍속 교화 효과 등
을 고려하여 참작감률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의 이러한
49) 법감정의 정의는 전해정, 「법감정(法感情)의 인식론적 가능성 연구」, 2013, 190-195쪽 참조.
168 철학·사상·문화 제37호
관점은 지금 우리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몇 해 전, 정당방위와 관련하여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판결이 있었다. 일명
‘도둑 뇌사사건’이다. 피고인은 귀가 후 자신의 집에서 물건을 훔치려던 피해자
를 발견한 뒤 1차 폭행에서 피해자를 구타하여 넘어뜨렸다. 피해자는 넘어진 상
태에서 도주를 시도하였으나 피고인은 2차 폭행에서 피해자를 수회 발로 차고
거실에 있던 빨래 건조대로 다시 피해자를 가격하였다. 피해자는 뇌사에 빠졌다
가 수개월 후 사망하였다. 피고인은 절도범에 의해 자신의 가족이 위협 당할지도
모른다고 느껴 방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1심부터 대법원까지 3심 모
두 피고인의 1차 폭행은 정당방위에 해당할 수 있으나, 2차 폭행은 방위행위를
넘어선 것으로서 정당방위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피고인에게는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의 형이 확정되었다.50)
피고인의 행위가 정당방위로 인정되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야간 주
거 침입 절도를 가벼운 죄라고 볼 수 없으며, 피고인의 입장에서는 2차 폭행을
1차의 정당방위와 별개의 폭행이라고 인지할 상황이 아니었다는 점, 1차와 2차
폭행 동안 공포, 경악, 복수심 등의 감정이 지속되고 있었다는 점 등을 제시하였
다.51) 2심 재판에서 피고인의 변호를 맡았던 변호사는 피고인의 행위는 집에 침
입한 도둑을 보고 놀란 상태에서 일어난 행위이기에 정당방위 또는 과잉방위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52) 재판부의 최종 결론은 2차 폭행을 사회통념상 방
어의사에 따른 정당한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지만, 이 사건은 동일한 행위
라 하더라도 감정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감정에 대해서는 다양한 방식의 이해가 필요하다. 감정은 행위의 연속성 또는
단절성을 가르는 기준이 되기도 하고, 행위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
되기도 한다. 인간의 합리적 행위를 방해하는 요소로 여기는 입장도 있으나 감정
도 인지 능력 중의 하나라고 보는 입장도 있다. 정약용은 사칠논변에 대한 자신
50) ‘도둑 뇌사사건’은 해당 사건을 언론에서 지칭할 때 사용한 명칭으로서 정식 용어는 아니다. 해당
사건의 판결은 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 2014. 8. 13. 선고 2014고단444 판결(1심), 서울고등법원
2016. 1. 29. 선고 2015노11 판결(2심), 대법원 2016. 5. 12. 선고 2016도2794 판결(3심) 참조.
51) 이원상, 「정당방위의 성립에 대한 비판적 고찰-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 2014고단444 판결을 대상으
로」, 2015, 181-187, 189쪽 참조.
52) 박지은, “정별님 변호사 ‘원주 도둑 뇌사사건’ 무료변론”, 강원도민일보, 2015.03.21.,
http://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724481. {인용 2021.10.14.}
□ 이 재 복—정약용의 사칠설(四七說)과 법감정(法感情) 169
의 견해를 제시함으로써 감정을 사단과 칠정이 아니라 공과 사라는 틀로 이해해
야 함을 보여줬다. 필자는 정약용의 성기호설과 사칠설을 감정설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연속적으로 살펴보았고, 기호로서의 성이란 선악에 대한 감정의 승인 또
는 거부이며 권형은 선 또는 악을 의지하는 인간의 감정에 기초한다고 하였다.
그러한 맥락에서 정약용의 이론에는 이미 감정을 인지주의적으로 이해하는 내용
이 포함되어 있다고도 주장하였다. 그에 기초하여 정리를 고려한 처벌 여부를 결
정하는 문제, 현대적 법감정 논의로의 확장 가능성을 논의하였다.
아직까지 인지주의는 감정에 대한 여러 이론 중 하나일 뿐이다. 법감정의 긍정
적 역할을 기대하는 연구도 아직은 미진하다. 국내 연구 중에는 사칠논변과 인지
주의 감정이론의 유사성에 주목한 연구들도 나오고 있지만, 정작 그 유사성을 통
해 무엇을 할지에 대해서는 방향성을 모색하는 단계에 머물고 있다. 서로 다른
분야의 연구 성과를 비교하고 종합하여 확장된 하나의 담론을 형성하기에는 보다
치밀한 검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이 연구는 정약용의 감정설
을 현대적 관점에서 재조명함으로써 새로운 연구 의제를 제시하고자 했다. 유교
적 감정설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기대하며 법감정을 어떻게 실증법에 반영할 지
에 대한 연구는 향후 과제로 남겨둔다.
170 철학·사상·문화 제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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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철학·사상·문화 제37호
Abstract
Jeong Yak-yong's Theory of Four-Seven and Legal Emotions
Lee, Jae-Bok*
Jeong Yak-yong suggested his own theory of four-seven based on the existing
four-seven discussion, by commenting on it. This study examines how Jeong's theory
of four-seven and his theory of human nature as moral inclination can be applied in
practice. The former is an extension of Seongho School's theory of seven public feelings
and the latter is discussion on the cognitive judgment of moral emotions. Subsequently,
the paper looks into cases in which the court gave reduced punishment based on moral
emotions and discusses Jeong's view on tension between moral emotions and law. It
moves on to analyzing the precedents about which Jeong stated that the law should be
bending when judging and discussing what his theory of emotions practically implies. The
findings provide the basis in seeking the interface between Jeong's philosophy and
theories of emotions discussed in the contemporary philosophy.
【Key words】 Jeong Yak-yong, theory of four-seven, theory of human nature as moral
inclination, Heumheumsinseo[欽欽新書], legal emotions, cognitivism
53)
* Ph.D. Candidate in Oriental Philosophy, Hanyang Univ.
** 논문접수일: 2021.10.19. 논문심사기간: 2021.10.25.~11.14. 게재확정일: 2021.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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