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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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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연구(설교자를 위한)
제8권 제7호 통권 제91호
ISSN : 2092-061X(Print)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 □ 창세기 18장 1-21절 □
김지은
To cite this article : 김지은 (2002)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 □ 창세기 18장 1-21절 □, 성경연구(설교자를 위한), 8:7,
2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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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주일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
□ 창세기 18장 1-21절 □
김지은 교수 (한세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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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창 18:1-21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자손에 대한 약속을 지키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세
명의 천사를 아브라함에게 보내며 그 약속을 이루신다는 이야기(1-15절)에 뒤이어 의(儀)
의 구현을 위해 소돔 성을 방문한다는 이야기(16-21)가 서로 얽혀 있다. 두 이야기가 서로
다른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각각의 주제는 서로 밀접한 연관이 있다. 1-15절은 삶과
새로 태어나는 자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16-21절은 죽음과 영원한 멸망에 대해 이야
기하고 있다. 서로 대립하는 주제를 이끌면서 두 본문은 아브라함이라는 인물과 그 인물
을 통한 하나님의 섭리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을 통한 하나님의 약속 성취 과정을 보여주는 18장은 앞의 17장과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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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 / 창 18:1-21 / 김지은
응을 이룬다. 자손에 대한 약속이 주어진 후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아브
라함의 아내 사라에게는 하나님의 약속된 자녀가 없다(17:15-16). 그러나 노령의 나이를
아랑곳하지 않으며 하나님은 1년 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임을 구체
적으로 말씀한다(18:10). 또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의 약속이 그 세대를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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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손에 이르기까지 영원할 것을 선포한다(17:9). 상대적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이
세대를 지나 후손에 이르기까지 영원하도록 후손에게 준수하고 지켜야 할 법도를 전한다
(18:19). 한편 하나님의 약속 이행을 듣고 자신의 나이를 생각하며 아브라함이 웃었듯이
(17:16-21) 사라 또한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웃음(18:10-14)으로 대한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자신들의 나이와 경수가 끊어진 상태를 생각하며 하나님의 약속 주심
에 웃음으로 답하지만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약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웃음을 놀라움으로 바꾸시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웃음을 이루어 나간
다. 즉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의심하는 인간의 태도에 대한 하나님의 웃음인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자연의 한계를 넘어서 활동하시는 초월적인 능력을 가진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아들에 대한 약속은 아브라함 집안의 연속성을 보장하는
것이며 나아가 다윗 왕조에 대한 약속으로 이어져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미래와 영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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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보장한다. 더 나아가 아들에
대한 약속은 신약 속에서 구원에 관한 약속과 이어져 약
속된 아들 메시야(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다윗 왕의 후손으로서의 약속된 왕)를 낳는다.
따라서 이어지는 18:16-21은 하나님의 약속된 아들로 이 땅에 태어남에 특별한 신학적
인 목적과 의미를 전하고 있다. 18:1-15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신다는 약
속을 성취한 뒤 곧 이어서 소돔 성을 향하여 내려간다(18:16-21). 도시의 사악함이 참을
수 없는 수준에 이르러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을지라도 하나님은 소돔 성을 멸하지 않
아도 되는 이유를 찾고자 두루 살피시기 위하여 친히 인간의 삶으로 내려오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소돔 성을 조사하기 위하여 내려간 것은 하나님 능력의 한계를 나타내
는 것은 아니라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신중함을 말해준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
에게 약속을 성취시켜 주신 의로운 하나님으로서 소돔 성에 내려질 심판 또한 하나님이
이로운 심판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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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연구≫ 제 8권 제 7호 / 2002년 6월∙∙∙∙∙∙∙∙∙∙∙∙∙∙∙∙∙∙∙∙∙∙∙∙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소돔 성을 향하여 내려가는 것을 보고하며 함께 그 일
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신다. 즉 아직 결정되지 않은 소돔 성의 운명에 함께 참여하여 하
나님의 약속을 가진 백성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안에서 특별히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은 더할 수 없는 영광이요 큰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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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또한 하나님의 백성다운, 선민다운 삶을 영위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을 받았다는 특권은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
은 하나님의 구원 활동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한 백성으로서 다른 사람도 하나님의 구
원 활동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도록 전하고 권면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그래서 아
브라함은 소돔 성을 위하여 하나님께 중재의 기도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2. 본문 사역과 구성
1) 본문 사역
1. 여호와께서a 마므레 b상수리 수풀 근처에서b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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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아브라함은 한낮의 더위로
장막 문에 앉아 있었다.
2. 둘러본즉 자기 옆에 세 사람이 서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세 명을 보자
마자 장막 문으로 달려나가 땅에 엎드려 인사하며
a
b
3. 말하기를 “내 주여 내가 은혜를 입었다면 당신 목전에서 당신의 종을 떠
나지 마옵소서b
4.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여 당신들의 발을 씻기고 나무 그늘에서 당신들을
쉬게 하소서.
5. 그리고 약간의 음식을 가져오게 하여 당신들의 마음을 즐겁게 한 후에a 떠
나가소서. 왜냐하면 당신들이 종을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한다. 그들이 대답
하기를 “네가 말한 대로 그대로 할 것이다” 한다.
6. 아브라함은 황급히 장막으로 들어가 사라에게 말하기를 “빨리 고운 가루a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한다.
7. 그리고 아브라함은 짐승 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취하여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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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 / 창 18:1-21 / 김지은
에게 주니 종이 급하게 요리하였다.
8. 그리고 나서 아브라함은 준비한 버터와 우유와 송아지 요리를 가져다 너무
아래에 앉아있는 그들 앞에 놓고 그들이 먹는 동안 그들 옆에 서 있었다.
9. 그들이 아브라함에게a 말하기를 “네 아내는 어디 있느냐?” 아브라함이 대
답하기를 “사라는 장막에 있습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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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한 사람이 말씀하시길 “생명이 태어날 즈음에 내가 네게로 다시 올 것이
a
다. 보라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한다. 그런데 사라는 그 사
람 뒤에 있는 장막 문에 서서 엿듣고 있었다.
11. 그러나 아브라함과 사라는 너무 많이 늙었다. 게다가 사라의 a경수는 끊어졌다a.
12. 그래서 사라는 속으로 웃으며 말하기를 “나는 늙었고 내 남편도 늙었는데
내게 어찌 기쁨이 있을 수 있는지?”
13.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길 “어찌하여 사라는 웃으며 내가 어찌
아들을 낳을 수 있으랴 나는 너무 늙었다 하느냐?
14. 여호와께 능치 못할 일이 있느냐? 생명이 태어날 즈음에 내가 네게 돌아
올 것이다. 그때 사라에게는 아들이 있을 것이다” 한다.
15. 그런데 사라는 거짓말하며 말하기를 “내가 웃지 않았다” 한다. 왜냐하면 지금
사라는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그러나a 여호와가 말씀하기를 “너는 웃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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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그리고 나서 그 사람들은
거기로부터 나와서 소돔을 향하여 갔다. 아브라
함은 그들을 배웅하기 위하여 함께 나갔다.
a
17.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행하고자 하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18. 아브라함은 크고 강한 민족이 될 것이며 그 땅의 모든 민족이 아브라함을
통하여 복을 얻을 것이다.
19. 때문에a 나는 아브라함을 택한 것이며b, 아브라함은 그 후손과 가계에게
이와 공의를 행하며 여호와의 길을 지킬 것을 가르칠 것이다. 이는 여호와가
아브라함에 대하여 말씀한 일을 이루려 함이라“ 한다.
a
20.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길 “소돔과 고모라의 비행이 너무 크고 그 죄악이
너무 심각하다
21. 그들 모두가a 행한 비행이b 내게 보고된 바와 같은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
를 보고c 확인하기 위하여 나는 내려갈 것이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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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연구≫ 제 8권 제 7호 / 2002년 6월∙∙∙∙∙∙∙∙∙∙∙∙∙∙∙∙∙∙∙∙∙∙∙∙
a
1 70인역에는 여호와(‫ )יהוה‬대신에 하나님(‫)אלהים‬으로 되어 있다.
b
1 70인역과 시리아 역본에는 복수명사(‫אלני‬ꔶ, 상수리나무들)가 단수명사(‫אלן‬
ꔶ, 상수리나무)로 되어 있다. 12:6을 보라.
3a “내 주여”의 바른 표기는 ‫י‬ꗺ‫אד‬가 아니라 ‫י‬ꗻ‫אד‬이다.
3b-b 사마리아 히브리어 오경에는 단수 2인칭 “당신의...당신의...”(ꗘ...ꗘ...)가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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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인칭 “당신들의...당신들의”(‫ם‬ꗋ...‫ם‬ꗋ...)로 되어 있다.
5a 몇 개의 히브리어 필사본과 사마리아 히브리어 오경과 70인역과 시리아 역
본과 예루살렘 탈굼 필사본에는 ‫~(אחר‬후에)에 접속사 ꕵ(그리고)가 첨가되어
‫אחר‬ꕵ(그리고 나서)로 되어 있다.
6a 고운 가루를 뜻하는 히브리어 ‫סלת‬가 70인 역에서는 2번 이상 번역되어 있다.
9a “아브라함에게”를 뜻하는 히브리어 표기는 ‫וֹ‬ꖼꗚꔞ가 아니라 ‫יוֹ‬ꗚꔞ이다. 즉 남
성 단수 3인칭 목적어 ‫(לוֹ‬그에게)를 의미한다.
10a 사마리아 히브리어 오경에는 남성 3인칭 단수 그(‫הוּא‬ꕵ)가 여성 3인칭 단
수 그(‫יא‬ꕙꕵ)로 되어 있다. 문맥에 맞게 본 글의 번역은 사마리아 히브리어 오
경에 따랐다. 70인역에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애매한 표기 ‫וא‬ꕙꕵ로 되어“아
11a-a 경수가 끊어졌다(‫נשׁים‬ꗐ ‫)ארח‬는 히브리어 표기는 사라의 조건을 나타내
는 것으로서 맨 앞에 접속사를 넣어 ‫ארח נשׁים‬ꗖ으로 표기하는 것이 바람직하
다. 31:35고 비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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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5 사마리아 히브리어 오경에는 부정을 뜻하는 ‫(לא‬아니다)가 ‫לה‬로 잘못 표
기되어 있다.
17a 사마리아 히브리어 오경과 예루살렘 탈굼 필사본에는 아브라함을 통하여(‫רהם‬
‫אב‬ꗭ) 앞에 목적격 전치사 ‫ת‬ꔟ(~을, ~를)이 첨가되어 ‫אברהם‬ꗭ ‫ת‬ꔟ로 되어 있다.
19a 70인역에는 이유를 나타내는 종속절의 관계가 아니라 동등의 관계를 나타
내는 대등절로 번역되어 있다.
b
19 문자적으로 ‫ידעתיו‬는 “내가 그를 알았다”이다. 그러나 사마리아 히브리어 오
경과 탈굼 역본과 예루살렘 탈굼 필사본과 라틴어 역본 불가타에는 “내가 선택했
다”는 뜻하는 히브리어 표기 ‫ידעתיו‬를 바르게 표기하여 ‫ידעתי‬라고 되어 있다.
20a 사마리아 히브리어 오경에는 “비행”을 뜻하는 히브리어 표기가 ‫זעקת‬가
아니라 뒤이은 21절과 같이 ‫צעקת‬로 표기되어 있다.
a
21 “모두”를 뜻하는 히브리어 표기는 ‫ה‬ꗚꗏ가 아니라 ꖚꗢꗕ 혹은 ‫ם‬ꗢꗕ이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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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 / 창 18:1-21 / 김지은
할 것이다.
b
21 “비행”에 붙은 여성 단수 3인칭 접미어가(‫ה‬ꚓ‫צעק‬ꗎ, 그 도시의 비행) 70인
역과 탈굼 역본과 다른 필사본에는 여성 복수 3인칭 접미어가 붙어 ‫ם‬ꚓ‫צעק‬ꗎ
(그 도시들의 비행)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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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본문 구성
18:1-21은 내용적으로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1-15절이 하나님의 약속 성취에 대한
사라의 태도를 다루고 있는 반면에 16-21절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다
루고 있다. 18:1-15은 앞의 16장의 이야기와 연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브라함
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아들 약속의 성취에 관한 본래적인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18:16-21은 이어지는 18:22-19:38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이야기와 관련이
있다. 그렇다고 18:16-19:38이 하나의 단위라는 것은 아니다. 18:16,22에서는 사람들이 소
돔과 고모라를 향해 내려갔다고 하지만 19:1,15에서는 천사가 소돔과 고모라를 향해 내려
갔다고 한다. 따라서 18:16-21은 19장부터 시작하는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와 18:1-15의 아
브라함 자손 약속에 대한 사라의 웃음 사이에서 하나의 신학적 전망을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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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아브라함(18:2-8)과 소돔 성(18:16)은 똑같이 세 사람의 방문을 받는다. 그러나
18:1,9-15에서 화자는 주 여호와 하나님이다. 따라서 세 사람의 방문중에서 한 사람은 하
나님이며, 나머지 두 사람은 천사 혹은 기독교 전통에서 말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변증할 필요는 없다. 단지 화자의 차이는 아브라함에 관한 이야기를 보고하는 전승의 다
양성에 기인할 뿐이다.
그런데 18:1-15절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먼저 자신을 방문한 세 사람을
대접하느라 분주한 아브라함의 모습(6-7절)은 곧 하나님의 예기치 못한 놀라운 일이 일어
날 것을 전한다. 따라서 뒤이은 부분에서 화자는 하나님이 되고 아브라함은 조용히 소식
을 듣는 자가 된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불모의 세계가 새로운 가능성에 의해 아들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된다는 소식이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세계가 완전히 바뀐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새로운 시작(beginning)을 약속하시는 하나님이지만 이어지는 18: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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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연구≫ 제 8권 제 7호 / 2002년 6월∙∙∙∙∙∙∙∙∙∙∙∙∙∙∙∙∙∙∙∙∙∙∙∙
에서 하나님은 소돔의 역사를 끝내고자(ending) 한다. 즉 아브라함과 사라를 위하여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이 이제는 롯을 위하여 일을 끝내신다는 것이다. 시작과 끝이 하나님의
전적인 능력에 의해 비롯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작과 끝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알 수
없는 시간에 속한 일로서 하나님에 관한 많은 신학적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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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1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그 의(儀)를 지키면 하나님이 직접 찾아와
서 그 시작과 끝의 때를 알려주심을 보여준다.
3. 본문 주해
1절 “여호와께서...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 - 하나님의 현현을 알리는 이 문구는 곧
이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선포 없이도 사용하는 공식 문구이다. 아마도 본 구절에서
는 이것은 하나님의 현현을 나타내든지 혹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나타내든지 혹은 천
사를 통한 하나님의 중재 행위를 나타내는 듯하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현현에
는 제단이 쌓여지고 하나님 제의가 행해지는데 여기에서는 그와 같은 예배 행위는 없다.
다만 낯선 자를 반가이 맞을 뿐이다. 그러나 탈무드에 의하면 낯선 자에게 호의를 베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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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 하나님을 만나 기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한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자신을
찾아 온 하나님을 환대했다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한 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 헤브론의 한 지역이다. 13:18을 참조하라.
“한낮의 더위로” - 정오를 가리킨다. 성서에는 하루의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는 어떤 가
르침도 없다. 다만 ‘선선한 바람’과 ‘강한 태양 빛’과 ‘해가 기운다’와 같은 표현으로 하루
의 시간을 가늠할 뿐이다.
2절 “둘러본즉” - 방문이 예고되어 있거나 혹은 일반적인 방문을 뜻함이 아니다. 이것
은 아브라함이 준비하지 못한 갑작스런 방문을 받았음을 말해준다.
“세 사람” - 아브라함을 방문한 세 사람은 소돔 사람들이 사람이라고 명하고 있듯이
(19:5) 외견상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소돔에 도착한 사람은 두 사람이다(19:1).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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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 / 창 18:1-21 / 김지은
브라함에 도착한 사람은 세 사람인데 그 후 소돔에 도착한 사람은 두 사람이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도착한 세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다른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아브라함과 세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있는 가운데 3절과 10절은 세 사람 중의 한 사람과
대화를 하고 있다. “내 주”(19:3)는 은혜를 주시는 분을 가리키며 일인칭으로 말하는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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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19:10)는 아브라함에게 준 약속의 성취자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방문한 세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두 종, 곧 두 천사를 말한다.
“달려나가” - 가만히 바라보면서 가까이 다가옴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먼저 호의를
푸는 것을 말한다.
“땅에 엎드려 인사하며” - 땅에 엎드려 인사함은 당신의 종임을 밝히며 주인에 대한
명예와 존경을 나타내는 인사이다.
4절 “발을 씻기고” - 낯선 방문자에게 물을 가져와 그들의 발을 씻기는 아브라함의 행
위는 관대한 호의라고 볼 수 있다. 먼지가 많은 길을 샌들로 다니기 때문에 방문한 집에
서 발을 씻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집을 향해 가고 있는 한 레위 사람
을 기브아의 한 노인은 청하여 자기 집에 모시는데 있어서 행해진 것이 씻게 하고 먹게
하며 쉬게 한다(삿 19:21). 그러나 지금 아브라함은 자신을 방문한 자의 발을 친히 씻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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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있다. 그리고 상수리나무 아래로 모시며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청하고 있다.
6절 “고운 가루” - 아브라함은 사라에게 고운 가루를 내어주며 빵을 굽도록 한다. 최고
품질의 밀가루로 만든 빵은 최고의 대접을 의미한다. 그래서 고운 가루로 빚은 빵은 하나
님께 드리는 빵으로 성전에 드려졌다.
8절 “버터와 우유와 송아지” - 아브라함의 유목민적인 삶을 엿볼 수 있다. 주 요리로
송아지 요리를 내어놓음은 유목민의 삶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내놓은 것이다. 더불어
서 아브라함은 유목민의 가장 기본적인 생산품 버터와 우유를 제공한다. 그렇지만 넉넉하
지 않은 유목민의 삶에서 버터외 우유 제공은 또한 존경의 환대를 뜻한다. 고대 근동 지역에
서 우유는 최고의 음식이며 가장 존귀한 자에게 곧 신들(gods)에게 드리는 음식이다.
“그들이 먹는 동안” - 아브라함이 자신을 방문한 낯선 자를 귀한 음식으로 대접하는
것은 낯선 자에게 생명의 근원이 있으며 치유의 능력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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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연구≫ 제 8권 제 7호 / 2002년 6월∙∙∙∙∙∙∙∙∙∙∙∙∙∙∙∙∙∙∙∙∙∙∙∙
아브라함은 음식을 풍성히 준비하고 그 옆에 가까이 서서 시중들 준비를 갖추고 있는 것
이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태도에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자리에서 자신의 회복을 이루
고자 하는 소망과 믿음이 깃들여 있음을 알 수 있다.
9. “네 아내는 어디 있느냐?” - 아브라함을 방문한 낯선 자의 이 물음은 실제로 아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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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의 아내 사라를 데려오라는 말씀이 아니다. 이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성취하기
위한 것으로서 그 아내 사라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기 위함이다.
10. 하나님이 약속의 성취를 향해 나아간다. 아브라함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양자
로 삼은 뒤 하나님으로부터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15:4)는 말씀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 아들이 사라의 몸에서 태어날 것임을 들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이제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확증하는 순간이다.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때가 된 것이다.
“한 사람이 말씀하시길” - 앞의 9절과 연관하여 보면 묻는 자가 복수에서 다시 단수로
바뀌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권위에 의해 이루어짐
을 말한다.
“내가 네게로 다시 올 것이다.” - 이 표현은 아브라함을 방문한 낯선 자의 초자연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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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을 나타낸다. 따라서 문자적인 의미로 1년 뒤 다시 아브라함을 찾아오겠다는 말씀이
아니라 내년 이때쯤에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어 있을 것임을 뜻한다.
“생명이 태어날 즈음에” - 이 표현은 17:21과 왕하 4:16 이하에 나타난다. 그런데 모두
가 임신한 여인의 때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따라서 ‫עת חיה‬ꗏ는 생명을 의미하는 ‫חיה‬
(life)의 때로서, 곧 임신한 여인의 해산의 때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겔 7:13, 욥
33:18-20).
11. "사라의 경수" - 문자적으로 ‫נשׁים‬ꗐ ‫ארח‬는 “여인의 길”로서 여자의 경수를 뜻한다.
그래서 31:35에서 라헬은 아버지 라반에게 지금은 경수 중(‫ נשׁים‬ꗗ‫)דר‬이라 맞이할 수 없
다고 말한다. 사라의 경수가 끊어졌음을 밝히는 것은 하나님이 전적으로 자기 백성 이스
라엘을 이끌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의 삶과 죽음은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달려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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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 / 창 18:1-21 / 김지은
12. “사라는 웃었다” - 이삭의 탄생과 관련하여 웃었다는 표현은 세 번에 걸쳐 나타난
다. 이삭을 나타내는 히브리어 표기 ‫יצחק‬는 ‫יצחק אל‬의 축약된 표현이다. 즉 “그가 웃었
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웃었다”이다. 아마도 이것은 ‫(ישׁמאל‬이스마엘)과 병렬을 이루기
위함인 듯하다. 그렇지만 성서 어디에서도 이삭의 이름과 관련한 완전 표기 ‫יצחק א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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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삭의 탄생은 분명 웃음과 연관이 있다(17:19; 18:12; 21:6). 성
서에서 하나님이 웃었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행동에 대한 인간의 비웃음과 조롱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으로 작용한다(시 2:4;37:13; 59:9). 그런데 이삭의 탄생 예고에 대해 아브라
함과 사라는 세 번에 걸쳐 웃었다. 따라서 그 이름이 이삭이 됨은 하나님의 주권을 의심
하는 인간의 웃음에 대한 하나님의 반격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인간의 웃음에
대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웃음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삭이라는 이름에는 자연의 한계를
넘어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담겨져 있다.
“기쁨” - 히브리어 “‫”עדנה‬는 여자의 기능이 상실되었음을 말하는 것으로서 앞 절의
“경수가 끊어졌다”와 같은 의미라고 볼 수 있다.
13. “어찌하여 사라는 웃느냐...나는 너무 늙었다” - 이삭(‫)יצחק‬의 본래적인 히브리어
표기가 ‫יצחק אל‬에 의하여 그 의미는 “하나님이 웃었다”이다. 그런데 자손의 약속에 대
한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전에www.earticle.net
웃었던 아브라함은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반면에 사라는
웃고 만다. 자신의 많은 나이에서 사라는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씀을 믿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같은 시간을 보낸 아브라함의 나이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즉 아브라
함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믿음으로 바라보기에 자신의 나이가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15. “사라는 거짓말하다” - 성서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인간의 완전함을 나타내지 않
는다. 성서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인간 또한 육과 피를 가진 유한한 자이며 다른 사람들
과 마찬가지로 유혹을 경험할 수도 있으며 실패를 맛볼 수도 있다. 하나님의 비웃음을
피하기 위해 사라는 지금 거짓말하고 있는 것이다. 성서에서 ‘하나님이 웃었다’는 하나님
의 행동에 대한 인간의 비웃음과 조롱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의미한다. 사라는 하나님
의 주권에 대해 의심하며 비웃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앎으로 인하여 사라는 하나님의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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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연구≫ 제 8권 제 7호 / 2002년 6월∙∙∙∙∙∙∙∙∙∙∙∙∙∙∙∙∙∙∙∙∙∙∙∙
속을 의심하는 자로서 도리어 하나님으로부터 조롱을 받게 된다. 바로 사라는 하나님으
로부터 비웃음을 사게 될지도 모르는 두려운 상황에서 거짓말을 행하고 만 것이다.
16-19. 소돔 성 사건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은밀하게 관여시킨다. 이전에 하나님이 노
아에게 자신의 뜻을 밝히며 사람들을 생명 가운데로 이끄셨듯이 아브라함에게 소돔 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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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한 하나님의 은밀한 계획을 알게 해 주며 다른 사람의 생명에 관해 공정하게 구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암 3:7에서도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
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리라” 한다. 또한 렘 23:18에서는 “누가 여호와의 회
의에 참여하여 그 말을 알아들었으며 누가 귀를 기울여 그 말을 들었느뇨” 한다. 하나님
이 예언자에게 자신의 계획을 알림은 임박한 재난의 위기에서 회개를 일으키며 인간이
처하고 있는 상황을 높이고자 하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한다.
17. “내가 행하고자 하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 하나님은 지금 하나님의 인
간에 대한 사랑에서 족장인 아브라함의 인간성을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브
라함은 장차 있을 하나님의 백성 유다 뿐만이 아니라 다른 민족에게도 복의 근원으로 자
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길에 있어서 공의(justice)와 의
(righteousness)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바로 하나님은 아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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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이 그 후손에게 공의와 의를
가르치며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이루어 나갈 것임을 확
신한 것이다.
19. “나는 아브라함을 택하였다” - 이것은 하나님과 아브라함은 친밀한 관계를 나타낸
다. 여기에서 히브리어 ‫(ידע‬그는 알았다)는 지식적으로 앎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성서에
서 앎은 경험적이고 감정적이며 무엇보다도 이성적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 아브
라함을 선택하신 것이다. 따라서 성서에서 ‫ידע‬는 관계 개념에서 비롯한 의무에 대한 순
종과 상호작용을 말한다.
“아브라함은...여호와의 길을 지킬 것을 가르칠 것이다” - 어린 아이에 대한 교육의 책
임은 부모에게 있다. 즉 아브라함은 자기 후손들에게 계속하여 하나님의 길을 가르치며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가족의 울타리를 유지해 나갈 것이다.
20-21. 소돔 성에 내려진 하나님의 징벌은 사악한 자에게 내려지는 하나님의 심판을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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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 / 창 18:1-21 / 김지은
변한다. 소돔 성이 범한 죄는 하나님을 대항한 죄이다. 소돔 성 거주민의 부도덕함은 “여
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다”(13:13)에서 알 수 있다. 소돔 성의 부도덕한 행위는 부르짖음(ꗗ
‫)צע‬을 낳는다(19:13). 그런데 성서 속에서 부르짖음을 뜻하는 히브리어 ꗗ‫צע‬는 하나님의
분노를 뜻하는 ꗗ‫זע‬와 빈번하게 교차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억압받고 있는 자들의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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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부르짖음이 불의에 직면하여 도움을 간절히 원하는 하나님의 요청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부르짖음을 들으며”(출 3:7) 더 나아가 부르짖음에 답을 한다(출
22:21-23). 그래서 예언자 이사야는 “하나님은...공평을 바라셨더니...도리어 포악이요...의
로움을 바라셨더니...도리어 부르짖음이었더라”고 한탄한다. 인간에게 요구한 하나님의
의(儀)가 포학하게 행해진 착취에 의해 빼앗긴 약자의 고통으로 짓밟힌 것이다.
소돔 성의 비행이 “너무 크고...너무 심각하다”(19:20)는 평가를 통해 도덕적 사회적 부
폐가 극에 달하면서 인간의 기본 권리가 가진 자에 의해 유린당하고 무감각해지는 상황
에 이르렀다고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래서 예언자 예레미야는 소돔을 간음을 행하고 거짓
을 말하며 돌이키지 않는 완고한 자로 비유한다(렘 23:14). 예언자 에스겔은 소돔의 죄에
대하여 “소돔의 죄악은...그와 그 딸들에게 교만함과 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고...가
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않는다”(겔 16:49)고 자세하게 기술하기도 한다. 소돔의 죄
는 전적으로 도덕적 범주에 속한다.
제의한 관한 범죄 혹은 우상에 관한 죄는 없다.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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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인간의 사회적 행위와 도덕적 행위 사이에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나님은 최소한 모든 인간이 도덕적으로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21. “나는...확인하기 위하여 내려갈 것이다” - 이러한 하나님의 행위는 하나님의 정의
수호와 관련이 있다. 그런데 하나님이 조사하기 위하여 내려가 본다는 것이 하나님 능력
의 한계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아무리 높은 담을 쌓는다
해도 하나님은 저 높이, 저 멀리 계신다는 하나님의 비교할 수 없는 초월적 존재를 나타
낼 뿐이다. 하나님은 도시의 사악함이 참을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을 때 상황을 조사하기
위하여 친히 인간의 삶으로 내려간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려가셨다는 것은 또한 인간
을 향해 내려질 심판에 대해 하나님이 신중함을 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소돔의
운명은 아직 하나님으로부터 결정되지 않았다. 심판에 신중을 보이시면서 하나님은 동시
에 하나님의 약속의 주체로서 서 있는 아브라함이 소돔을 향해 그 임무를 잘 수행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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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연구≫ 제 8권 제 7호 / 2002년 6월∙∙∙∙∙∙∙∙∙∙∙∙∙∙∙∙∙∙∙∙∙∙∙∙
를 시험하신다. 즉 하나님은 복의 근원으로 자리하는 아브라함의 인간다움을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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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메시지
위의 본문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말씀과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말씀
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의 웃음과 더불어서 하나님 앞에 약속
의 대상으로 서 있는 아브라함의 실존의 의미를 전하고 있다. 하나님의 약속을 가진 이스
라엘이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말씀은 인간의 이성과 이해를 초월하여 있다. 즉 아
브라함과 사라가 받아들이기에 하나님의 약속은 너무도 멀리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문은 하나님 앞에서 갖는 우리의 신앙의 자리가 얼마나 세상으로부터 반감을
사고 힘겨운지를 가늠케 한다. 신앙은 규범적이고 상식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는 이성적
인 차원을 뛰어넘어서고 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무엇보다도 자신들이 잉태할 수 없다
는 것을 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닫혀진 미래 가운데서 순응하며 지낸 것이다. 자신들의
절망의 상황을 규범으로 받아들이고 산 것이다. 현재적 상황의 한계 소에서 바라보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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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함과 사라이기에 하나님의 복된 약속에 대해 아브라함과 사라는 불가능한 일로 웃고
만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된 선포, 약속은 자신의 소망 없음을 저항하는 자가 얻을
수 있다.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18:14)는 반의적인 물음은 절망 가운데 지내고 있
는 아브라함과 사라의 항변을 일축하고 해소하는 물음이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논박이
곧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증과 단언을 주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에
게 묻고 계시는 것이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일으키는 분은 누구냐? 이와 같이
복음은 우리의 결단을 요구한다. 우리의 믿음의 결단은 위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은 전적으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있다. 따라서 “여호와께 능
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는 하나님의 물음은 대답을 기다리는 열려진 물음이다.
답변을 기다리는 하나님의 질문에 “아니오, 당신에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로 답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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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 / 창 18:1-21 / 김지은
람은 하나님(God)을 하나님(God)으로 고백하지 못하는 사람임을 의미하며 모든 것이 변
화가 없고 안정적으로 희망이 없는 삶을 엮어갈 것이다. 그러나 “예, 당신은 하나님으로
서 당신에게 불가능한 일이란 없습니다”라고 답한 사람은 자신과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달려있음을 아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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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히도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의 질문에 대해 웃음으로 답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적하듯이 “네가 웃었지”라고 물었을 때는 도망치듯이 “아니오 웃지 않았습니다”라고
답한다. 하나님의 약속 성취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웃음으로 답한 것은 아직도 아브라함
과 사라가 어떤 변화도 없는 자신의 세계 속에서 생각하고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18:1-15에서는 사라만이 하나님의 약속 성취에 대해 웃고 있다. 이것은 아브라함
은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사고의 변화를 일으킨 반면에 그의 아내 사라는 아
직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사고의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일의 성취가 인간의 답에 의존해서 행해진다는 것은 아니다. 하나
님은 홀로 그 일을 이루어 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사라가 두렵고 의문에 싸여
있을 때 하나님은 홀로 그 일을 이루신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된 이후에 아브라함과
사라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들은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약속이 이 땅 가운데에서 성취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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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을 본다. 즉 이 땅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지 않은 약속은 없다는 고백을
이루어간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신앙의 자리에서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아브라함의 후
손의 역사 가운데에서 계속 일어난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요한을 낳은 엘리사벳은
“하나미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눅 1:37)고 고백하며 주어진 약속에 대
한 기대를 갖는다.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 또한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신 하나님의 역사
를 믿음으로 바라보며 기다린다. 이에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복이 있다. 그에게 한 모든
말씀을 이루리라”(눅 1:45)고 복 주신다. 신앙 안에서 가능한 것은 비단 아이의 출생만은
아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더불어서 하나님의 일을 예수님과 함께 이루어 나가는 제자
를 구성함이 어렵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할 것이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수행
하는 제자 공동체의 구성도 하나님 안에서 가능할 것이라는 이해이다. 그래서 “인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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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연구≫ 제 8권 제 7호 / 2002년 6월∙∙∙∙∙∙∙∙∙∙∙∙∙∙∙∙∙∙∙∙∙∙∙∙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에게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능력으
로는 가능하다”(막 10:27)는 고백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책임을 지고 수행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儀)이다. 그런데 모
든 의로운 일의 시작이 하나님에게 있듯이 또한 그 일의 끝남도 하나님에게 있다. 시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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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분이 또한 끝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시작과 끝의 결정이 인간처
럼 하나님의 변덕에 의해 행해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심판 또한
하나님의 의(儀)에서 비롯한 하나님의 결정이다. 우리 가운데 시작과 끝이 모두 하나님에
게 달려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의 부족함 속에서 채워지지 않음에 대해 하나님
의 자리를 의심하면서 다른 길을 찾는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부족함을 느끼고
있는 자가 바로 하나님을 향해서 미래가 있고 꿈이 있는 자임을 깨닫고 믿음으로 기다려
야 할 것이다.
<참
고
문
헌>
Nahum M. Sarna, Genesis, The JPS Torah Commentary
(Jerusalem: The Jewish Publication Society, 1989).
Claus Westermann, Genesiswww.earticle.net
12-36, trans., John J. Scullion S.J.
(Minneapolis: Augsburg Publishing House,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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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ter Brueggemann, Genesis, Interpretation (Atlanta: John Knox Press, 1973).
G. von Rad, 「창세기」, 국제성서주석 , 한국신학연구소 역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1).
William S. Lasor, 「구약개관」, 박철현 역 (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8).
차준희, 「창세기 다시 보기」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8).
성서와 함께 편, 「보시니 참 좋았다」 (서울: 분도출판사, 1999).
*2002년 1월 이후 연구목록*
"느헤미야가 보여준 나라사랑의 효," 「효와 신학」(2002, 2).
"구약성경이 말하는 가족관계," 「효실천학」(2002, 3).
"유다 땅 소유와 바벨론 포로의 관계,“ 「성령과 신학」(2002, 4).
"욥의 문제와 회복,“ 「구약논단」 (2002, 6 발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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