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loaded by 양정모

마하트마 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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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수를 좋아한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와 전
혀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하트마 간디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간디의 말처럼 지금 이 사회에서 예수는 좋
은데 교회 다니는 사람이나 교회는 싫다고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 이
유가 뭘까. 간디가 정확하게 지적했듯,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예수와 전혀 닮
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점에서 닮지 않았는지 따져 보면 꽤 많은 차이를 분석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아
마도 가장 큰 차이점은 예수가 당시 사람들이 놀랄 만큼 파격적으로 사랑과 관용
의 정신에 기초해 이타적인 사랑을 행동으로 보여 준 데 비해, 지금의 교회와 기독교
인이 혐오와 차별에 앞장서며 이기주의에 가득 찬 모습을 보여 준다는 데 있다.
비기독교인은 성경을 잘 모르고 교리나 신학은 더욱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
가 추구했던 가치와 지금의 교회와 개신교인이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다는 것은 충분
히 구별할 수 있다. 종교적으로 아무리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변명해도 그들은 속
지 않는다.
예수를 따른다는 자가 번영과 돈을 추구하고, 불의의 권력을 옹호하며, 가난하고 소
외된 자들과 여성을 차별하는 데 앞장서고, 온갖 부정과 횡령, 부끄러운 범죄를 저지
른다. 그렇게 해 놓고도 하나님이 자신을 용서하셨다고 스스로 선포하는 뻔뻔스러
운 모습을 보인다. 이들을 보면서 예수와 닮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
연하지 않을까.
예수는 당대 고정관념을 깨뜨리며, 손가락질 받는 온갖 죄인과 민족 반역자에 이르
는 다양한 사람을 품고 변화시키는 놀라운 사랑과 관용을 보이셨다. 그러나 그를 따
른다는 지금의 교회와 교인들은 자기 이익만을 챙기며 혐오와 차별에 앞장서 근
거 없는 거짓 선동을 퍼뜨리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귀스타프 도레 판화, '어린이를 축복하신 예수'
이렇게 한국교회와 교인들이 예수의 모습에서 동떨어져 변질한 이유가 뭘까. 몇 가
지를 생각해 보았다.
첫 번째는 오직 교회 안에만 매몰되어 세상에 대한 무지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
는 '교회 매몰적 신앙' 때문이다. 이 매몰적 신앙이 차별적 세계관을 낳는다고 생각한
다.
나와 그들, 구원받은 자와 받지 않은 자, 교인과 교인이 아닌 자 등 차별적 인식이 쉽
게 생성되기 좋은 것이다. 게다가 교회 밖 세상 문제나 이슈는 전혀 교회에서 다루
지 않거나, 다루더라도 지나치게 편협하고 단순화된 가르침으로 세상에 대한 무지
와 두려움을 증폭시키고 왜곡시킨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모르는' 상대에 대해 두려움과 적의를 갖게 된다. 세상을 잘 모르
고, 교회 밖 비기독교인을 잘 모르고, 우리 교인이 아닌 이들을 모른다. 그래서 자기
가 잘 알지 못하는 대상에 대해 두려움과 적의를 느낀다. 교회 안에서 '절대 권위'
를 갖는 목사나 장로, 직분자가 확인되지도 않은 거짓 루머와 악의적인 정보와 메시
지를 설교나 카카오톡으로 전파하면, 이들을 존경하고 따르는 교인들은 마치 세상
이 지금 당장이라도 망할 것 같은 두려움으로 거짓 뉴스와 혐오를 퍼뜨린다. 교회 단
톡방이 온갖 거짓 루머와 선동의 주요 근원지로 악명을 떨치는 이유다.
'거짓 루머를 퍼뜨리지 않는 기독교인이 되기 위한 원칙' <ㅍㅍㅅㅅ> 1월 18일 보도.
두 번째는 기독교인으로서 마땅히 따라야 할 윤리와 가치를 지지하는 것과 그렇
게 살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같다고 생각하는 착각 때문이다.
2,000년 전 예수님의 행보가 놀라움의 연속이었던 것은 당시 명백한 죄인으로 손가
락질 받던 창기와 로마 군인, 세리 등 다양한 부류의 사람을 배척하지 않고 받아 주
시고 식사까지 같이하며 교제하는 모습을 보여 주셨기 때문이다. 단순히 그들을 한
두 번 만난 정도가 아니라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다. 이를 보고 당대 율법학자이
자 종교 기득권자였던 바리새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예수께서 집에서 음식을 드시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
과 자리를 같이하였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예수의 제자들에게 말하였
다. '어찌하여 당신네 선생은 세리와 죄인과 어울려서 음식을 드시오?'" 마태복
음 9:10-11(새번역)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세리, 죄인과 교제하고 식사를 같이하고 어울리는 것 자체
를 그들의 죄에 동참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정죄하였다. 지금의 많은 교회와 기독교
인은 2,000년 전 예수의 행동을 정죄했던 바리새인들의 사고방식과 같은 고정관념
에 젖어 있다. 믿고 따르고 추구해야 하는 가치와 윤리를 지키는 것을 그렇게 살
지 못하는 사람들을 정죄하는 것과 동일한 가치로 착각하는 것이다.
예수를 사랑하는 것과 다른 종교를 혐오하고 배척하는 것은 같지 않다. 가정을 지키
고 건전한 성 윤리가 옳다고 믿는 것과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것은 같지 않다(전문
직 성범죄 1위 직업군은 성직자니까 차라리 성직자인 목사들을 혐오하면 또 모를까).
'성범죄 가장 많은 전문직은 성직자', <허핑턴포스트코리아> 2014년 3월 27일 보도.
예수는 그러지 않으셨다. 예수는 사마리아 여인, 창기, 세리, 과격한 열심당원, 율법
학자, 노예, 군인, 부자 등 거의 모든 부류의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셨다. 있는 모습 그
대로 사랑해 주셨다. 그리고 그런 예수의 너그러운 사랑이 그들을 변화시켰다.
얼마 전 어느 교회의 결혼 예식 신청 안내문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이런 내용이 있
었다.
- 아래 사항에 해당하는 경우는 신청할 수 없습니다.
1) 신랑, 신부의 세례 여부 미확인
2) 혼전 동거
3) 임신으로 인한 결혼
4) 재혼
예전에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당연한 내용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좀 불
편하게 다가왔다. 위 내용은 결혼에 대해 교회가 추구하고 권면해야 할 당연한 가치
를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가치를 추구한다고 해서, 이것을 지키지 못한 사람
을 배제할 필요가 있을까. 세례를 받지 못했고, 혼전 동거를 했고, 임신했고, 이혼
의 상처를 딛고 재혼했다고 해서 그들의 결혼을 교회에서 축복해 주는 게 그리 잘못
된 것일까. 내 주변에도 이혼한 지인이 적지 않다. 재혼한 사람도 몇 분 있다. 나도 이
렇게 기분이 불쾌한데, 그분들이 저 안내문을 보면 얼마나 상처받을까.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 인생을 바꾼 것은 미리엘 주교의 용서
와 사랑이었다. 호의를 베푼 주교를 배신하고 은식기를 훔쳐 달아나던 장발장이 경
찰에 붙잡혀 오자, 마리엘 주교는 은촛대까지 주었다. 미리엘 주교의 관용과 사랑
이 분노와 증오에 가득 찼던 장발장의 인생 전환점이 되었다.
영화 '레미제라블' 중에서
나는 팍팍하고 삭막한 이 세상에서 교회가 예수의 너그러운 사랑과 관용의 정신
을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회가 교회 밖 세상을 껴안고 위로해 줄 수 있어
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교회 안에만 매몰되어 살아서는 안 된다. 세상
을 알아야 하고, 교회 밖 이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시도 때도 없이 전도 폭발 집회
만 할 게 아니라, 귀한 인간을 한낱 수단으로 여기고 착취하는 사회의 구조와 잘못
된 관행을 고쳐 나가는 데 관심과 역량을 기울여야 한다.
세상에서는 노력이 부족하고 능력이 안 되면 차별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교회에
서는 능력이 있건 없건, 누구라도 하나님 형상을 따라 지음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
고 차별 없이 귀하게 여기고 사랑해야 한다.
몇 년 전 미국 금융 위기로 수많은 실직자가 생기고, 노숙하는 이가 늘어났
을 때 한 천주교 성당에서 오갈 데 없는 이들이 쉴 수 있는 거처로 예배당을 내어 줬
다. 이를 찍은 동영상을 봤는데, 미사를 지내는 중에도 계속 쉴 수 있게 성당 측은 이
들을 배려해 줬다. 그들이 예배당으로 찾아와 쉬고 눕는 모습을 몇 분간 담담히 보
여 준 영상을 보면서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와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그 영
상에서처럼, 아무 편견 없이 아프고 힘든 이를 위로하고 쉬게 하는 교회 모습을 오랜
만에 봤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사랑과 관용의 예수를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너무 오랜만에 봤다는 생각이 들었
다. 차별 없이 너그럽게 사랑하는 아름다운 예수의 사랑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
다. 거짓으로 가득한 근거 없는 루머만 퍼뜨리고 태극기 휘날리며 혐오와 차별에 앞
장서는 교회 모습은 이제 그만 보고 싶다. 예수는 그러지 않으셨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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