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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은, 겨울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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뺷음악논단뺸 제44집
2020년 10월, 173-208쪽
ⓒ 2020 한양대학교 음악연구소
https://doi.org/10.36944/JSPM.2020.10.44.173
방랑자의 내적 시간: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와 주제 재현
정 이 은
(서울대학교 강사)
Ⅰ. 들어가면서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 1797-1828)의 말년의 작품, ≪겨울 나그
네≫는 연가곡의 범주 안에서 논의되지만, 여러 면에서 연가곡(song cycle,
독일어 Liederkreis)의 일반적인 정의와 충돌하는 지점들이 있다. ‘연가곡’이
최초로 개념화되었던 것은 연가곡의 인기가 수그러들고 있었던 1865년, 아레
이 폰 도머(Arrey von Dommer)가 편찬한 뺷코흐의 음악사전뺸(Koch’s
Musikalisches Lexikon)에서였다. 연가곡에 대한 도머의 정의에 가장 중요
한 요소로 언급된 것은 전체를 하나로 엮어주는 시적 통일성과 음악적 통일성
이었다.1) 오늘날 수잔 유엔스(Susan Youens)가 뺷뉴 그로브 음악사전뺸(The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에서 정의하는 연가곡의
정의 역시 1865년의 도머의 정의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하다.
연가곡의 필수적 특징으로 여겨지는 통일성은 가사(단일한 시인, 스토리
라인, 사랑 혹은 자연과 같은 중심 주제 혹은 토픽, 통일된 분위기, 소네트
1) Arrey von Dommer(ed.), Musikalische Lexicon auf Grundlage des
Lexicon’s von H. Ch. Koch, second edition of H. Ch. Koch’s
musikalische Lexicon (Heidelberg: J. C. B. Mohr, 1865), 513; David
Ferris, Schumann’s Eichendorff Liederkreis and the Genre of the
Romantic Cycl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0), 9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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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발라드 사이클과 같이 시적 형식이나 장르의 통일성)에서 비롯되거나,
혹은 음악적 절차(대규모 조성 도식, 모티브, 패시지, 노래 전체의 반복,
형식 구조)로부터 만들어진다.2)
연가곡에 대한 오늘날의 정의를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에 대입해 본다
면, 연가곡으로서 ≪겨울 나그네≫의 지위는 빈약해 보인다. 먼저 가사의 측면
에서 살펴볼 때, 뮐러의 24개의 시들을 명백하게 하나로 묶어주는 이야기의
실체는 희박하다. 슈베르트가 뮐러의 시에 음악을 붙인 복잡한 과정은 이 연
가곡집의 빈약한 응집성의 근원에 대한 부분적인 설명이 된다.3) 시인 빌헬름
뮐러(Wilhelm Müller, 1794-1827)는 1823년 뺷겨울 나그네: 12개의 노래뺸
(Die Winterreise: In 12 Liedern)라는 제목의 시집에 12개의 시를 발표했
다. 그리고 그는 같은 해 10개의 시를 추가했다. 다시 그가 이 22개의 시에 2
개를 추가해서 24개의 시가 하나의 시집으로 출판된 것은 그 이듬해였던
1824년이었다. 1824년 24개의 뺷겨울 나그네뺸 연작시를 내놓으면서, 뮐러는
시의 순서를 상당 부분 바꿔놓았다. 슈베르트가 뮐러의 시를 처음 알게 된 버
전은 1824년 발표된 24개의 연작시 버전이 아닌, 1823년 출판된 12개의 시
였다. 슈베르트는 1826년과 1827년 사이 이 12개의 시에 음악을 붙였다.
1827년 후반에서야 슈베르트는 뮐러가 추가한 12개의 시를 알았고 여기에도
음악을 붙였다.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한 것은 이 과정에서 슈베르트가 뮐러
가 손 본 1824년 출판본의 시 순서를 다시 한번 바꿔놓았다는 것이다. 슈베
르트의 손에서 순서가 뒤바뀐 24개의 시들은 원래의 시들 사이에 암시되었던
이야기들이 제거되는 결과에 이르렀다. 슈베르트는 뮐러의 시집 제목(Die
Winterreise)에 붙어있던 정관사 ‘die’도 없애버렸다. 이로써 한 방랑자의 특
2) Susan Youens, “Song cycle,” in Grove Music Online, http://www.oxford
musiconline.com/ [2020년 8월 15일 접속]. 또한 장르로서의 연가곡의 개념적
경계들에 대한 논의에 대해서는 Laura Tunbridge, The Song Cycl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0), 1-22 참조.
3) ≪겨울 나그네≫의 탄생에 얽힌 자세한 역사에 대해서는 한미숙, 뺷슈베르트의 겨
울 여정: 가곡집 ≪겨울 나그네≫ 분석뺸 (서울: 예솔, 2018), 13-27; Susan
Youens, Retracing a Winter’s Journey: Franz Schubert’s Winterreise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1991), 3–49; Richard Kramer, Distant
Cycles: Schubert and the Conceiving of Song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4), 151–171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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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 겨울 여행을 다루는 뮐러의 시집의 제목은 인간의 보편적인 내면세계를
다루는 추상적인 겨울 여행으로 새로 태어났다.
≪겨울 나그네≫의 24개의 시들 사이의 시적 응집성을 약하게 하는 요소
중 하나는 시간 순서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이야기가 없다는 점이다. ≪겨울
나그네≫는 1인칭 시점의 주인공이 사랑했던 이가 살고 있는 마을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뮐러의 시는 그가 왜 마을을 떠나는지, 그와 사랑했던 이 사이에 어
떤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때문에 ≪겨울 나그네≫는 마치 이야기의
한가운데에서 시작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첫 번째 시, ‘잘 자요’(Gute
Nacht) 이후 이어지는 시에서도 시적 화자는 자신의 심리 상태를 묘사하는 데
에 치중한다. 따라서 1인칭 화자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세계(주변의 사물들, 자
연, 날씨, 동물 등)는 주인공의 마음 속에서 굴절되어 감각된 세계를 반영한다.
슈베르트가 붙인 음악에서 나타나는 응집성 역시 난해한 문제로 손꼽힌다.
≪겨울 나그네≫의 음악적 측면에 대한 논의는 주로 무엇이 이 연가곡집의 음
악적 통일성을 만들어내는 요소인가에 집중되어 왔다. 특히 여러 곡에 걸쳐
반복되는 모티브, 대규모의 조성 계획 등은 ≪겨울 나그네≫의 음악적 응집성
의 논의에서 자주 논의된 요소들이다. 수잔 유엔스와 데보라 스테인(Deborah
Stein)은 ≪겨울 나그네≫의 음악적 응집력을 이끌어내는 요소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네 음의 논레가토(non-legato) 음형과 한숨 모티브라고 말한다.4)
이 모티브들은 ≪겨울 나그네≫의 중요한 지점들에서 등장하지만, 그것이 음
악의 표면에서 등장하는 빈도는 사이클 전체의 시간적 길이를 고려했을 때 상
당히 낮은 편이다.
또한 ≪겨울 나그네≫의 대규모의 조성 계획은 이 연가곡집의 음악적 응집
성에 대한 논의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왔다.5) 하지만 슈베르트의 연가곡에
4) Youens, Retracing a Winter’s Journey, 84-94; Deborah Stein, “The End
of the Road in Schubert’s Winterreise: The Contradiction of Coherence
and Fragmentation,” in Rethinking Schubert, ed. Lorraine Byrne Bodley
and Julian Horto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6), 359-368.
5) ≪겨울 나그네≫에서 나타나는 소규모, 대규모의 조성 도식에 대한 연구에 대해서
는 Youens, Retracing a Winter’s Journey, 95-104; Stein, “The End of
the Road,” 371; Lauri Suurpää, Death in Winterreise: Musico-Poetic
Associations in Schubert’s Song Cycle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2014), 174을 참조. ≪겨울 나그네≫에서 나타나는 조성 도식에 대한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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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나는 조성 도식에 대한 논의는 몇몇 문제점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먼저
대규모의 조성 계획이 감상자들이 인지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이런 문제는 사이클 전체를 차치하고서라도, 하나의 노래, 혹은 기
껏해야 인접한 두 노래가 넘어서는 범위에서는 대규모의 조성 계획이 인지되
기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과 충돌하게 된다.6) 더 나아가서, 대규모 조성 계획
을 통해서 ≪겨울 나그네≫의 음악적 통일성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겨울 나
그네≫를 구성하는 몇몇 노래들이 원래는 다른 조성으로도 작곡되었다는 사실
과도 문제를 일으킨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필사본의 조성 배열은 출
판본의 조성 배열과 다르다.7) 따라서 전체의 조성 계획에 대한 해석은 연구자
입장에 대해서는 다음의 글을 참조하시오. Walter Everett, “Grief in
‘Winterreise’: A Schenkerian Perspective,” Music Analysis 9/2 (1990),
157-175; Charles Rosen, The Romantic Generation, fifth edition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998), 203-204.
6) 예를 들어 연가곡집의 조성 계획을 논의하는 데에 있어서 쉔커식 분석 이론가들은
연가곡집을 통합된 전체로 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듣기에서 연가곡 전체
는 대규모의 조성 도식을 투사하고, 그것은 개별 곡들의 수준 너머에서 대규모의
음 구조를 인지하는 듣기이기도 하다. 특히 슈만의 연가곡집과 초기의 피아노 사
이클은 작품 전체의 수준에서 대규모의 조성 도식을 듣는 쉔커식 듣기 방법의 사
례로 연구되어 왔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문헌들을 참조하시오. Arthur
Komar, “The Music of Dichterliebe: The Whole and Its Parts,” in
Dichterliebe, ed. Arthur Komar, Norton Critical Score (New York: W.
W. Norton & Company, 1971), 63-93; David Neumeyer, “Organic
Structure and the Song Cycle: Another Look at Schumann’s
‘Dichterliebe’,” Music Theory Spectrum 4 (1982), 92-105; Patrick
McCreless, “Song Order in the Song Cycle: Schumann’s ‘Liederkreis’,
Op. 39,” Music Analysis 5/1 (1986), 5-28; Peter Kaminsky, “Principles
of Formal Structure in Schumann’s Early Piano Cycles,” Music Theory
Spectrum 11/2 (1989), 207-225.
7) 슈베르트는 ≪겨울 나그네≫의 2부에 12곡을 새롭게 추가하면서, 1부의 마지막
곡, ‘고독’(Einsamkeit)의 조성을 D단조에서 B단조로 바꿨다. 이로써 ≪겨울 나그
네≫의 1부의 첫 곡 ‘잘 자요’와 마지막 곡 ‘고독’은 다른 조성이 되었다. 이는 ≪
겨울 나그네≫의 1부가 가진 사이클로서의 조성적 완결성을 없애버리는 결정이기
도 했다. ≪겨울 나그네≫에서 원래 작곡에 사용된 조성과 다르게 전조되어 출판
된 곡은 6곡, ‘넘쳐흐르는 눈물’(Wasserflut, F♯단조에서 E단조), 10곡 ‘휴
식’(Rast, D단조에서 C단조), 22곡 ‘용기’(Mut, A단조에서 G단조), 24곡 ‘거리의
악사’(Der Leiermann, B단조에서 A단조) 등이 있다. 이들 전조된 곡들의 공통점
은 음역이 낮아지는 방향으로 전조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유엔스는 낮은 방
향으로의 전조는 출판업자 토비아스 하슬링어(Tobias Haslinger)의 요구에 따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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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어떤 버전을 자신의 분석을 위한 판본으로 삼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8)
슈베르트는 특정 가수의 음역대에 따라, 또한 출판업자의 권고에 따라 조성을
바꾸는 일이 많은 작곡가였다. 또한, 중요한 문제는 슈베르트의 시대의 청중들
이 ≪겨울 나그네≫의 전곡을 한꺼번에 감상할 기회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연
가곡은 19세기 중반 이후가 되어서야 살롱과 같은 사적 영역을 벗어나 콘서트
홀과 같은 공적 영역에서 연주되던 장르였기 때문이다. 사적 음악회에서 연가
곡은 전곡으로 연주되지 않고, 개개의 노래가 독립적으로 연주되거나, 혹은 몇
몇 노래들만 따로 연주되는 것이 19세기 전반의 노래와 관련된 연주의 관행이
었다.9)
이 모든 점들을 고려했을 때, ≪겨울 나그네≫의 시적, 음악적 특징과 연가
곡의 연주와 관련된 문화적 관습은 이 사이클 안의 24개의 노래들을 통합된,
통일된 전체로 듣는 것과 상충되는 지점들이 있다. 사실상 ≪겨울 나그네≫의
24개의 노래들은 그 자체가 각각 독립되고 완결된 에피소드이자, 연가곡을
구성하는 노래들 사이의 관계는 느슨하다. 이러한 관점은 낭만주의 문학의
‘파편’(fragment)의 관점에서 연가곡을 설명하는 관점과 공명한다. 또한 이는
≪겨울 나그네≫의 불완전하고 열린 결말을 보다 설득력있게 설명하는 방법이
된다.10) 이러한 시각으로 연가곡을 바라볼 때, ≪겨울 나그네≫를 분석하는
결정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Youens, Retracing a Winter’s Journey, 95-96.
8) 예를 들어 발터 뒤어(Walther Dürr)는 출판된 버전의 노래들이 슈베르트의 “최종
의도를 반영한 판본”(Fassung lezter Hand)이라고 여기는 반면, 리쳐드 크레이머
(Richard Kramer)는 출판되기 이전의 버전이 작품에 대한 작곡가의 생각을 살펴
보기에 더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Walther Dürr(ed.), Schubert: Neue Ausgabe
Sämtlicher Werke, Serie IV, Vol. 5a (Kassel: Bärenreiter, 1969), xii;
Kramer, Distant Cycles, 11-17.
9)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Die schöne Müllerin)의 공공 연주
회 초연은 1856년이 되어서야 율리우스 슈톡하우젠(Julius Stockhausen)의 연주
로 이루어졌다. 이는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가 작곡된 지 무려 30년이
지난 후였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슈만의 ≪시인의 사랑≫(Dichterliebe) 역시
1861년이 되어서야 전곡으로 연주되었다. 이 초연을 이끈 성악가 역시 슈톡하우
젠이었다. 연가곡의 뒤늦은 초연은 장르로서의 연가곡이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점
차 사적 영역에서 공적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Inge
Van Rij, Brahms’s Song Collection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9), 137-167.
10) 몇몇 학자들은 19세기의 문학적, 철학적 개념으로서 ‘파편’(fragment)의 개념을
19세기 전반의 음악, 특히 연가곡에 대한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다음의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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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점은 사이클 전체가 아닌, 개개의 노래여야 할 것이다. 느슨하게 연결된
파편들의 배열로 연가곡을 이해하는 관점은 연가곡 속의 시간이 가진 단편적
이고, 비선형적인 성격이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이해하는 단초 역할
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사이클 전체를 관통하는 선적이고, 통일
된 시간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겨울 나그네≫의 각각의 노래 속에서 흐
르는 시간은 그 노래의 파편적인 성격과 현상학적 시간의 존재를 환기시킨다.
결국 ≪겨울 나그네≫에서 감각되는 시간성은 시적 화자의 겨울 여행이 곧 그
의 마음의 여정임을 일깨워준다.
이 겨울 여행이 가진 심리적 성격은 ≪겨울 나그네≫에서 내적 시간(inner
time)의 존재를 주목하게 한다. 시적 화자의 내적 시간에 대해서 유엔스는 다
음과 같이 말한다. “내적 시간은 시계 혹은 달력의 시간적 순서 매김이 아니
라, 시적으로 고안된 존재론적 사고 과정을 표방한다.”11) 유엔스의 설명을 그
대로 받아들인다면, ≪겨울 나그네≫에서의 내적 시간의 존재는 뮐러의 시가
만들어내는 ‘가사적’ 결과물이다. 그러나 노래로 불려지는 ≪겨울 나그네≫에
서 방랑자의 내적 시간은 어떠한 방식으로 경험되는가? 슈베르트의 음악은 어
떠한 방식으로 방랑자의 존재론적 사고 과정을 ‘읽는 것’이 아닌, ‘들리는 것’
으로 만들어내는가? 본 논문은 방랑자의 내적 시간에 주목하게 만드는 것은
뮐러의 시가 아닌 슈베르트의 음악이고, 그 음악 속에 구현된 순환적 시간
(cyclic time)이라는 점을 주장하려고 한다.
≪겨울 나그네≫의 시적 화자의 자기 성찰은 감상자들로 하여금 시적 화자
의 내면에 주목하도록 하는 부분이다. 시적 화자가 외부 세계로부터 자신의
내면으로 주의를 돌리는 부분에서, 슈베르트는 단순 3부 형식(simple
ternary form)의 음악 구성, 즉 A-B-A’의 형식 안에서 중요한 구조적 사건
인 주제 재현(A’)을 배치한다.12) ≪겨울 나그네≫의 24개의 노래 중에서 약
를 참조할 것. Rosen, The Romantic Generation, 41-236; Ferris,
Schumann’s Eichendorff Liederkreis; Beate Julia Perrey, Schumann’s
Dichterliebe and Early Romantic Poetics: Fragmentation of Desir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7).
11) Youens, Retracing a Winter’s Journey, 57. “Inner time in Winterreise is
not the temporal ordering of a clock or calendar but a poetically
crafted simulation of ontological thought processes.” 강조는 필자의 것.
12) 본 논문에서 등장하는 음악 형식과 관련된 용어는 William E. Caplin, Class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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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에 해당하는 노래들은 단순 3부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 형식에서 피아노
전주를 제외한 노래의 시작 부분은 선율, 텍스쳐, 조성 등이 바뀌거나, 혹은
바뀌지 않은 채 그대로 재현된다.13)
이러한 구조 속에서 주제 재현은 반복을 통해서 음악에 순환성(cyclicity)을
부여한다. 반면, 이러한 방식의 반복은 시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다르
게 설명하자면, 음악의 형식 구조에 내재된 시간성은 뮐러의 시에 내재된 시
간성을 음악만의 방법으로 재구성해낸다. 그 결과, 슈베르트의 음악 속의 시간
은 뮐러의 원작 시에 내재된 시간과는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구성한다. 또한
슈베르트는 때로 가사의 일부를 반복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뮐러의 원작 시
에는 존재하지 않는 부분이다. 주로 음악적 구조를 강화하고, 가사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목적에서 곡의 마지막 부분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반복들은, 시
가 노래로 변환되는 과정에서 음악 구조적 요소인 반복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노래가 대조적 중간부(contrasting middle)를 거쳐 주제를 재현할 때, 감
상자들은 재현된 음악이 지시하는 노래의 시작 부분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주제가 재현되는 순간에 들리는 노래의 시작은 더 이상 시작의 기능을 갖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음악을 듣는 이들의 시간적 현재에 환기되는 과거는, 복제
된 시간이 아니라 ‘기억된 과거’(remembered past)인 것이다. 주제 재현이
라는 음악구조적 사건이 시적 화자의 내적 성찰이라는 시적 사건과 함께 일어
날 때, 주제 재현은 노래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방랑자의 내적 시간은
슈베르트의 음악을 통해서 ‘들리는 시간’으로 경험되는 것이다.
Form: A Theory of Formal Functions for the Instrumental Music of
Haydn, Mozart, and Beethove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8);
William E. Caplin, Analyzing Classical Form: An Approach for the
Classroom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3)을 참고하였다.
13) ≪겨울 나그네≫에서 단순 3부 형식으로 된 노래들은 2, 3, 4, 5, 7, 8, 10, 14,
15, 17, 18, 19, 20, 21, 23곡이다. 전체 24개의 노래 중에서 무려 15곡이 단순
3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볼 때, 이 형식은 ≪겨울 나그네≫의 노래 형식들
중에서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겨울 나그네≫에서 나타나는 다른 형식들로는 유
절 형식(strophic form)과 변형된 유절 형식, 바르 형식(bar form) 등이 있다.
특히 사이클의 시작 노래와 마지막 노래가 유절 형식으로 되어 있다는 점은 특이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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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가서 주제 재현은 음악에 내재된 시간성에 주목하도록 만드는 음악
고유의 장치이기도 하다. 지나간 음악의 궤적을 뒤돌아보게 하면서, 음악은 주
제 재현을 통해 언어에 존재하지 않는, 음악 고유의 시간성을 투사한다. 이어
지는 분석에서 본 논문은 두 가지 유형의 주제 재현을, 이와 관련된 현상학적
시간과 관련지어 논의할 것이다. 본 논문이 목표로 하는 지점은 두 가지다. 첫
째, 음악이 어떻게 주제 재현이라는 구조적 장치를 통해서 가사의 의미에 또
다른 층위의 의미를 더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둘째, 음악과 가사 사이의
상호 작용이 주제 재현과 관련된 시간의 경험을 어떠한 방식으로 생성하는지
를 설명하는 것이다.
Ⅱ. ‘강 위에서’(Auf dem Flusse)의 재현부와 현상학적 대화
Der du so lustig rauschtest,
그리도 즐겁게 흐르던 너,
Du heller, wilder Fluß,
맑고 활기찬 강물아,
Wie still bist du geworden,
작별인사도 없이,
Gibst keinen Scheidegruß.
어찌 그리 조용해졌느냐!
Mit harter, starrer Rinde
단단하고 딱딱한 껍질을
Hast du dich überdeckt,
넌 덮어쓰고 있구나,
Liegst kalt und unbeweglich
차갑고 미동도 없이
Im Sande ausgestreckt.
모래 위에 뻗어 누워있구나.
In deine Decke grab’ ich
나는 너의 껍질 위에
Mit einem spitzen Stein
뾰족한 돌멩이로 새긴다
Den Namen meiner Liebsten
사랑하는 이의 이름과
Und Stund’ und Tag hinein:
시간과 나날을.
Den Tag des ersten Grußes,
우리가 처음 만난 그 날,
Den Tag, an dem ich ging;
내가 떠난 그 날,
Um Nam’ und Zahlen windet
이름과 숫자 둘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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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ch ein zerbroch’ner Ring.
깨어진 반지로 휘감는다.
Mein Herz, in diesem Bache
내 마음아, 이 냇물에서
Erkennst du nun dein Bild?
너의 모습을 알아보겠느냐?
Ob’s unter seiner Rinde
얼음껍질 아래에서도
Wohl auch so reißend schwillt?
세찬 물살이 흐르지 않느냐?14)
뮐러의 ‘강 위에서’는 대화체로 되어 있다. 하지만 뮐러의 가사에서 시적 화
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대상은 강(Fluss)과 방랑자 자신의 마음(Herz)이다.
이들은 모두 현실세계에서 말을 할 수 없는 대상이다. 따라서 시의 대화체에
도 불구하고, 시적 화자가 실제로 이야기를 건네는 대상은 자기 자신이다. <표
1>은 슈베르트가 뮐러의 시에 어떻게 음악을 붙였는지를 보여준다. 재현부는
마디41부터 시작되고, 노래의 후반부 전체는 시의 마지막 연인 5연에만 붙여
졌다. 5연은 두 개의 의문문으로 구성된다. 이 마지막 연은 방랑자가 대화를
건네는 상대가 외적 세계인 ‘강’에서 내적 세계인 자신의 ‘마음’으로 바뀌는
부분이다. 루프스 홀마크(Rufus Hallmark)가 지적하는 것처럼, 시의 중간부
분에서 이처럼 수신자(addressee)가 바뀌는 것을 고전 수사학에서는 돈호법
(apostrophe)이라고 부른다.15) 동시에 뮐러의 시에서 돈호법이 등장하는 부
분은 슈베르트의 음악에서 재현부가 시작되는 지점에 해당된다. 음악에서의
재현부는 음악에 순환성을 부여하는 구조적 사건인 반면, 뮐러의 시에서 돈호
법이 사용되는 부분은 감상자들의 주의를 시적 화자의 내면 세계로 전환시키
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강 위에서’의 재현부의 시작점은 슈베르트의 음악의
시간성이 뮐러의 시의 시간성과 매체적 충돌을 일으키는 구조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4) 본 논문에서 사용된 뮐러의 시에 대한 한글 번역은 Wilhelm Müller, 뺷겨울 나그
네뺸, 김재혁 역, (서울: 민음사, 2001)과 한미숙, 뺷슈베르트의 겨울 여정: 가곡집
≪겨울 나그네≫ 분석뺸 (서울: 예솔, 2018)을 참조했다.
15) Rufus Hallmark, “The Literary and Musical Rhetoric of Apostrophe in
Winterreise,” 19th-Century Music 35/1 (2011),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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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 ‘강 위에서’의 형식 구성
마디
가사
가사의 연 음악-가사
조성
5
그리도 즐겁게 흐르던 너,
맑고 활기찬 강물아,
작별인사도 없이,
어찌 그리 조용해졌느냐!
1
14
단단하고 딱딱한 껍질을
넌 덮어쓰고 있구나,
차갑고 미동도 없이
모래 위에 뻗어 누워있구나.
2
2
23
나는 너의 껍질 위에
뾰족한 돌멩이로 새긴다
사랑하는 이의 이름과
시간과 나날을.
3
3
31
우리가 처음 만난 그 날,
내가 떠난 그 날,
이름과 숫자 둘레를
깨어진 반지로 휘감는다.
4
4
41
내 마음아, 이 냇물에서
너의 모습을 알아보겠느냐?
얼음껍질 아래에서도
세찬 물살이 흐르지 않느냐?
5
5
e-g♯-e
55
내 마음아…… (반복)
(5의 반복)
6
e-f♯-e-g-e
음악
시제
형식
1
e-d♯-e
A
현재
E
B
과거
A’
현재
(?)
이 재현부의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마지막 연의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새
로운 수신자가 시적 화자 자신이라는 점이다. 시적 화자는 자신의 마음을
‘너’(du)라고 의인화하면서, 자신의 자아를 대상화한다. 다시 말해, 시적 화자
와 강물 사이의 암시된 대화는, 시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방랑자의 독백으
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강 위에서’의 재현부는 진정한 의미에서
이 노래의 심리적 드라마가 시작되는 부분이다. 이 지점에서 마지막 연의 가
사는 슈베르트의 음악에서 되풀이하여 반복된다. 이 부분에서 음악과 시에 내
재된 시간성 사이의 충돌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로 이어진다. 슈베르트의 음악
은 어떻게 감상자들로 하여금 방랑자의 내적 시간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는가?
방랑자의 내적 시간
183
슈베르트의 음악에서 음악과 가사의 반복은 어떠한 의미를 만들어내는가? 슈
베르트의 음악은 마지막 연의 방랑자가 던지는 존재론적 질문에 대해 어떤 해
석을 가능하게 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는 ‘강 위에서’의 재현부가 어떤 방식으로
지나간 음악의 과정을 뒤돌아보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A 섹션과 B 섹
션에서, 피아노 반주부가 투사하는 시간과 성악 성부가 투사하는 시간의 성격
은 대조를 이룬다. 방랑자의 목소리를 형상화하는 성악 성부는 ‘강 위에서’의
전반부에서 8마디의 규칙적인 악구로 이루어진다. 성악 성부는 큰 변화 없이
앞선 프레이즈의 구조를 기계적으로 반복한다. 그 결과, 성악 성부는 순환적인
구성의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시간을 음악에 투사한다.
반면, 피아노 반주부의 리듬은 움직임이 없는 음형으로 시작해서, B 섹션의
리듬 변주를 통해서 점차 활성화되기 시작한다.16) A 섹션의 피아노 반주부는
시의 내용을 그대로 환기시킨다. 그것은 한때 즐겁게 소리 내며 흘러갔던 강
물이 얼어붙어 있는 겨울날의 풍경이자, 얼어붙은 시적 화자의 내면의 풍경이
기도 하다. 시의 3연에서 시적 화자가 과거를 회상하면서, 피아노 반주부의
리듬적 운동은 증가하기 시작한다. B 섹션에서 피아노 반주부가 리듬적 변주
를 하는 과정은 진행의 방향성을 만들어낸다. 피아노 반주부의 음가는 B 섹션
을 거치면서 점차 짧아진다. 그 결과 이 변주의 과정에서 피아노 반주부는 점
차 앞을 향해 진행하는 시간성을 드러낸다.
성악 성부와 피아노 반주부 간의 대조되는 시간성을 읽어내는 데에 있어서
에드워드 콘(Edward T. Cone)이 주창한 페르소나(persona) 개념은 분석에
유용한 개념적 토대를 제공한다. 콘이 주장한 반주가 있는 노래에 내재된 다
수의 목소리(multiple voices)는 “발화의 이중적 형태”(dual form of
utterance), 즉 성악적/언어적 발화와 기악적/비언어적 발화에 기초를 둔
다.17) 이 두 가지 형태의 발화의 조합은 음악적 페르소나(musical persona)
16) 이 노래 B 섹션의 리듬 변주에 대한 상세한 분석에 대해서는 다음의 문헌을 참조
하시오. 이내선. “가사에 담겨있는 대비를 표현하는 음악적 대조: 리트 ‘넘쳐흐르
는 물’과 ‘얼어붙은 강위에서’에 사용된 매개변수의 다양한 결합 방식,” 뺷음악이론
연구뺸 20 (2013), 24-29; 한미숙, 뺷슈베르트의 겨울 여정뺸, 184-185.
17) Edward T. Cone, The Composer’s Voice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74), 17.
184
정 이 은
를 구성한다.18) 가사와 음악을 통해 성악 페르소나(vocal persona)에 의해
투사된 시간성은 반드시 기악 페르소나(instrumental persona)의 시간성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기악 페르소나 내에서도 피아노 반주부의 여러 성부들
은 각각 다른 시간성을 투사하기도 한다. 하나의 노래 안에서 들리는 여러 페
르소나들이 투사하는 다양한 유형의 시간성들은 다수의 목소리들 사이의 대위
적 관계를 관찰하는 도구가 된다.
이러한 관계는 ‘강 위에서’에서 일어나는 음악적 사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강 위에서’의 B 섹션에서 일어나는 리듬적 변화를 통해 기악 페르소나가 투
사하는 시간성이 점차 들리는 것으로 되어가는 과정에서, 시적 화자의 독백은
그와 강물 사이의 현상학적 대화를 소리로 경험하게 한다. 이 대화를 생성하
는 것은 뮐러의 시가 아닌, 슈베르트의 음악이다. 또한 이 점진적 리듬적 변화
의 과정은 겨울날의 얼어붙은 강물이 지나간 사랑을 추억하는 시적 화자의 의
식 속에서 지난날처럼 즐거운 소리를 내며 흘러갔던 기억을 되살리는 과정임
을 소리로 감각하게 한다.
마디38-40의 피아노의 간주는 B 섹션에서 A’ 섹션을 이어주는 재경과부
(retransition)의 역할을 한다. 리듬적 변주의 최고점에서, 성악 성부의 반종
지(마디38) 이후 이어지는 피아노의 베이스 성부의 순차 하행은 으뜸음을 목
표점으로 움직인다. 이 목표점에 도달하는 것은 주제의 이중 재현(double
return)의 시작점과 일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베이스 성부의
진행은 갑작스럽게 마디40의 전체 휴지와 함께 멈춰버린다. 베이스가 으뜸음
에 도달하는 것을 예상하는 감상자들의 음악적 기대감은 무너진다. 목표점을
향한 움직임은 목표점이 도달하기 바로 직전에서 사라진다.19)
18) 나중에 콘은 자신의 페르소나 개념을 수정했다. 그는 기악 페르소나라는 개념을
버리고, 그에 따라 총체적 음악적 페르소나의 개념도 폐기했다. 대신, 그는 페르소
나에 대한 자신의 초기 개념을 수정하여 단일한 성악-기악 주인공의 모델을 제안
했다. Edward T. Cone, “Poet’s Love or Composer’s Love?,” in Music and
Text: Critical Inquiries, ed. Steven Paul Scher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2), 177-192. 베르톨드 회크너는 콘이 처음에 주장한 페르
소나 개념과 나중에 수정한 이론적 모델을 모두 재검토하고, 자신의 개념인 시적
페르소나(poetic persona)를 추가하여, 노래의 독립된 요소로서의 시 텍스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Berthold Hoeckner, “Poet’s Love and Composer’s
Love,” Music Theory Online 7/5 (2001), http://www.mtosmt.org/issues/
mto.01.7.5/mto.01.7.5.hoeckner.html [2020년 8월 15일 접속].
방랑자의 내적 시간
185
<악보 1> ‘강 위에서’, 마디33-45
목표점을 향한 베이스 성부의 진행이 갑작스럽게 침묵과 함께 중단되고 나서
야 비로소 재현부가 시작된다. 그러나 재현된 주제의 위치는 뒤집혀있다. 주제
는 성악 성부가 아닌, 피아노 반주의 베이스 성부에 주어지고, 방랑자의 프레
이즈는 분절된다. 이로써 마디40의 피아노 반주의 베이스 성부 약박음
19) 종지적 프레이즈의 마지막에 삽입되는 갑작스러운 침묵은 슈베르트의 기악 작품에
서도 종종 관찰된다. 예를 들어 그의 ≪A장조 소나타≫(D959)의 1악장에서 2주제
군은 그러한 종지적 목표점을 갑작스럽게 중단시키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중단된
목표점에는 침묵이 이어지고, 그것은 예상치 않은 2주제의 반복으로 이어진다. 이
에 대해서는 졸고, “‘천국적인 길이’: 슈베르트의 확장된 제2주제군과 현상학적 시
간,” 뺷서양음악학뺸 22/1 (2019), 151-180을 참조하시오.
186
정 이 은
(anacrusis) B는 중요성을 얻는다. 이 B음은 원래의 주제 선율에 들어있지 않
은 음이기 때문이다. 이 약박음 B와 함께 피아노 반주의 베이스 성부는 원래
의 화성적 베이스의 역할에서 벗어나, 주제 선율의 역할을 한다. 마디40의 약
박음 B와 마디38의 베이스 음 B음을 비교해보라. 두 음은 같은 음고이지만,
마디38의 B음이 종지적 딸림화음을 뒷받침하는 화성적 베이스인 반면, 마디
40의 B음은 주제 선율의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전혀 다른 기능을
수행한다. 음악의 구조적 사건이 시작되는 이 순간, 변화된 B음의 기능은 피
아노의 반주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순간이기도 하다. 기악 페르소나의 목소
리를 대변했던 피아노 반주부는 이제 방랑자의 내면의 목소리가 된다.20) 또한
이 변화는 마지막 연에서 일어나는 대화의 수신자가 변했다는 점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방랑자와 강물 사이의 암시된 대화는 이 부분에서 방랑자의
현상학적 대화로 탈바꿈한다(<표 2> 참조).
<표 2> ‘강 위에서’의 다성적 목소리의 배치
음악 형식
A(제시부)
시의 연
1-2
성악 페르소나
기악 페르소나
B(대조적 중간부)
A’(재현부)
3-4
5
시적 화자(‘나’)
강
(수신자)
→
외부 세계 / 대화체
시적 화자의 마음
(수신자)
내적 세계 / 독백
<악보 2>는 원래의 주제가 성악 성부와 피아노 반주부의 베이스에 어떤 방식
으로 재현부에 배치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노래의 주제는 피아노 반주부의
베이스 성부에서 시작한다. 이 베이스 성부는 방랑자의 내적 자아의 목소리를
형상화한다. 하지만 베이스 성부는 원래 주제의 시작 부분만을 반복한다. 성악
20) 데이비드 루인(David Lewin)은 ‘강 위에서’의 다성적 목소리를 듣는다. 그에게 성
악가는 방랑자의 목소리이자, 시인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이 점에 대해서 본 논문
의 해석은 루인의 해석과 같은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루인의 해석은 피아노 반주
부의 성부를 더 상세하게 나눈다. 그는 피아노의 윗성부와 아랫성부를 각각 얼어
붙은 시냇가의 표면과 얼음 아래에서 흐르는 급류를 상징하는 것으로 읽어낸다.
David Lewin, “Auf dem Flusse: Image and Background in a Schubert
Song,” 19th-Century Music 6/1 (1982), 47-59.
방랑자의 내적 시간
187
성부가 종지 악구를 진행하는 부분(예를 들어 마디45와 52)에서 피아노의 베
이스 성부는 화성을 뒷받침하는 원래의 역할로 돌아온다. <악보 2>는 A’ 섹션
전체가 주제의 반복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드러내는 한편, 주제의 기본 아이디
어(basic idea)가 다른 조성에서 등장할 때에도 항상 피아노의 베이스 성부에
서 시작됨을 보여준다. 이렇게 두 개의 다른 성부로 쪼개져서 재현되는 주제
는 성악 페르소나와 기악 페르소나가 하나의 통합된 음악적 페르소나를 구성
하고 있다는 콘의 주장을 환기시킨다.
<악보 2> ‘강 위에서’의 재현부와 주제의 분할 배치
188
정 이 은
재현부에서 성악 성부와 피아노 반주부의 뒤집힌 관계는 가사가 없는 피아
노 파트가 주제 재현의 중심에 있음을 상기시킨다. 결국 기악 페르소나가 노
래하는 재현부의 주제는 방랑자의 내적 자아가 방랑자에게 건네는 노래가 된
다. 그러나 시적 화자 자신의 내면의 자아가 스스로에게 건네는 말을 시적 화
자는 듣지 못한다. 방랑자의 독백을 듣는 감상자들이 이 모든 과정을 제3의
관찰자로 바라보고 듣게 될 뿐이다. A 섹션의 시적 화자와 강, 그리고 A’ 섹
션의 시적 화자와 그의 마음 사이의 이분적 구도는 강 역시 시적 화자의 심리
적 상태가 투영된 대상이라는 점을 깨닫게 해준다. 강물과 방랑자의 마음이라
는 두 가지 다른 대상은 재현부에 이르러서 강렬하게 서로 얽히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얽힘은 재현되는 주제가 성악 성부가 아닌 피아노 반주부로, 기악
페르소나의 목소리를 통해 소리를 냄으로써 가능해진다. 방랑자의 첫 번째 질
문은 시냇물과 자신의 마음 사이의 관계를 드러낸다. “내 마음아, 너는 이 시
냇물에 비친 너의 모습을 알아보겠느냐?”(Mein Herz, in diesem Bache /
erkennst du nun dein Bild?)
방랑자의 두 번째 질문은 다음과 같다. “얼음껍질 아래에서도 세찬 물살이
흐르지 않느냐?”(Ob’s unter seiner Rinde / wohl auch so reissend
schwillt?) 이 두 번째 질문에서, 노래는 피아노의 베이스 성부를 3도 음정으
로 중복한다(마디48). 방랑자는 마치 복화술사가 된 것처럼, 자신의 분열된 자
아와 이중창을 노래한다. 동시에 B 섹션의 리듬 변주 음형이 피아노 반주부의
상성부에서 다시 등장한다. 중단되었던 변주 음형이 다시 시작되면서, 음악은
중단된 과거(음악적 과거이자 동시에 방랑자 자신의 아름다웠던 기억들)의 일
부를 방랑자의 의식에 다시 가져온다.
방랑자의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음악에 주어진다. 뮐러의 시와는 달
리, 슈베르트의 음악에서 이 질문은 다섯 번이나 되풀이된다.21) 방랑자가 던
지는 대답 없는 질문이 계속 반복되면서, 반복이 지닌 수사적 힘은 커져간다.
반복의 과정에서 피아노 반주는 시냇물의 얼음껍질 아래로 흐르는 휘몰아치는
급류를 암시하는 것이자, 방랑자의 고통스러운 내면의 풍경이 된다.
21) A’ 섹션에서 두 번째 질문은 다섯 번 반복된다. 다섯 차례의 반복이 나타나는 부
분은 다음과 같다. 마디48-51, 52-54(부분적 반복), 61-65, 66-68(부분적 반복),
68-70(부분적 반복).
방랑자의 내적 시간
189
방랑자가 던지는 질문의 표현적 힘을 만들어내는 것은 음악의 반복이다. 재
현된 주제의 일부는 기악 페르소나의 목소리를 통해 지속적으로 음악이 진행
되는 과정에서 파편으로 다시 등장한다. 그것은 마치 방랑자의 마음속에서 과
거의 기억이 여전히 맴돌고 있는 것과 같다. 마지막 질문이 반복될 때마다, 피
아노 반주부의 음형은 B 섹션의 리듬 변주 음형을 동반한다. 즉, 이는 뮐러의
시의 마지막 질문이 피아노의 변주 음형과 쌍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다. 동시에 이것은 변주의 막다른 끝이다. 무엇이 이 변주 음형의 다음에 올
수 있을 것인가? 반복은 변주의 막다른 끝에서 음악을 지속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이다. 사실상 음악은 계속해서 뮐러의 시의 마지막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그 대답은 시냇물의 얼음껍질 아래서 흐르는 급류가 방랑자의 마음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음악의 표면에서 일어나는 일은 다르다. 음악은 계
속해서 가사를 반복하면서 마치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모르는 듯 연기한다. 자
신의 내적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방랑자는, 계속해서 질문을 구하며, 자신의
질문을 반복하고 그 반복은 마지막 질문의 절규에 가까운 외침으로 변해간다.
Ⅲ. ‘가짜 태양들’(Die Nebensonnen)과 생략된 재현부
≪겨울 나그네≫에서 마지막에서 두 번째 노래인 ‘가짜 태양들’에서 논의의 중
심을 이루어 온 것은 ‘가짜 태양들’이 의미하는 바였다.22) 어떤 해석에서는 시
의 처음 네 행이 시적 화자가 인지한 시각적 환영을 드러내는 것으로 읽는다.
방랑자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가짜 태양들은 그 눈물로 인해
굴절된 이미지라는 것이다. 또 어떤 해석에서 가짜 태양들은 환일(幻日,
parhelion)이라고 알려져 있는 기상 현상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환일
현상은 태양의 오른쪽, 왼쪽에 밝은 곳이 나타나는 기상 현상이다.23) 더 나아
가서 유엔스는 두 개의 환각적 태양은 사랑했던 이의 두 눈에 대한 상징이라고
주장한다.24) 사실상 가짜 태양들이 의미하는 바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은 뮐러
22) Youens, Retracing a Winter’s Journey, 291.
23) OED Online, s.v. “parhelion,” http://www.oed.com/view/Entry/137885?
redirectedFrom=parhelia [2020년 8월 15일 접속].
190
정 이 은
의 시에서 얻을 수 있는 해석의 단초가 풍부하지 않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1
Drei Sonnen sah ich am Himmel steh’n,
하늘에 뜬 가짜 태양들을 보았네,
Hab’ lang und fest sie angeseh’n;
오랫동안 꼼짝 않고 바라보았지;
Und sie auch standen da so stier,
태양들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네,
Als könnten sie nicht weg von mir.
나를 떠나지 않으려는 듯이.
5
Ach, meine Sonnen seid ihr nicht!
아, 너희들은 나의 태양이 아니야!
Schaut Andren doch ins Angesicht!
다른 이들의 얼굴이나 쳐다봐!
Ja, neulich hatt’ ich auch wohl drei;
그래, 내게도 전에는 가짜 태양들이 있었지,
Nun sind hinab die besten zwei.
이제 가장 멋진 두 개는 지고 말았어.
Ging nur die dritt’ erst hinterdrein!
세 번째 태양도 뒤따라 사라진다면!
10
Im Dunkeln wird mir wohler sein.
차라리 어둠 속이 더 편할 테니까.
뮐러의 시는 전반적으로 시간적 순서를 따르며 서술한다. 시간은 과거 시제
로 된 7행과 8행을 제외하면,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이어진다. 첫 네
행은 과거 시제를 사용해서 시적 화자가 과거에 가짜 태양들과 마주했었던 상
황을 설명한다. 시제는 5행에서 갑작스럽게 현재 시제로 바뀐다. 또한 이 갑
작스러운 전환은 시의 어조의 변화와 함께 일어난다. 시적 화자의 수신자
(addressee)는 태양들로 바뀐다. 그는 이 태양들을 복수의 “너희”(ihr)로 칭한
다. “아, 너희들은 나의 태양이 아니야! 다른 이들의 얼굴이나 쳐다봐!” 7행과
8행에서 현재 완료 시점으로의 전환은 시적 화자가 아주 먼 과거가 아니라 두
24) Youens, Retracing a Winter’s Journey, 291.
191
방랑자의 내적 시간
개의 태양이 지고 난 시점에서 시를 노래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더욱 중요한
것은 7-8행의 어조가 다시 이전의 어조로 돌아옴으로써, 앞서의 5-6행은 마
치 겹따옴표 안의 직접 화법처럼 읽히게 된다는 점이다. 마지막 두 행에서 시
적 화자는 자신이 어둠 속에서 더 편하겠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죽음을 강하
게 암시한다. 이 마지막 두 행은 가정법으로 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시제의 변
화를 고려했을 때, 뮐러의 시에는 두 번의 중요한 분기점이 있다. 첫 번째는 5
행이다. 5행에서 시제는 암시된 직접 화법의 형태로 현재시제로 변한다. 두
번째 분기점은 9행에서 일어나는데, 이 부분에서 가정법은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암시한다.
뮐러의 시가 전반적으로 시간의 순서를 따르고, 점차 시적 화자의 내면 깊
숙한 곳으로 들어가는 반면, 슈베르트의 음악은 매우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구성해낸다. 시의 5행과 6행에 붙인 음악을 제외하면, 전체는 거의 동일한 리
듬형으로 된, 코랄풍의 텍스쳐와 단순한 화성의 음악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가짜 태양들’의 근본적인 특징은 노래의 형식 구조에 있다. 그리고 이 형식
구조는 시의 시간 구성과 상호작용을 한다. 슈베르트의 음악에서 드러나는 다
른 시간성은 이 노래의 듣기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가? ‘가짜 태양들’의 형
식 구조는 감상자로 하여금 방랑자의 내적 시간과 어떠한 방식으로 조우하게
만드는가?
<표 3> ‘가짜 태양들’의 형식 구조
마디
가사
음악 형식
조성
시제
1
하늘에 뜬 가짜 태양들을 보았네,
오랫동안 꼼짝 않고 바라보았지.
태양들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네,
나를 떠나지 않으려는 듯이.
A
A
과거
16
아, 너희들은 나의 태양이 아니야!
다른 이들의 얼굴이나 쳐다봐!
B
a
현재
20
그래, 내게도 전에는 가짜 태양들이 있었지,
A’ ⇒ B
이제 가장 멋진 두 개는 지고 말았어.
거짓 재현부
C, A
과거,
현재완료
26
세 번째 태양도 뒤따라 사라진다면!
차라리 어둠 속이 더 편할 테니까.
A
미래
A’
재현부
192
정 이 은
<표 3>은 슈베르트의 ‘가짜 태양들’의 형식 구조와 뮐러의 시 사이의 관계를
도식화한 것이다. 노래는 단순 3부 형식으로 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마디20
에서 일어나는 거짓 재현부(false recapitulation)이다. 이 거짓 재현부 부분
은 주제의 이중 재현이 일어나는 마디26을 지나면서 대조적 중간부인 B 섹션
으로 재해석된다(A’ ⇒ B, <악보 3> 참조).25) 마디20에서의 주제의 재현은
분명 C장조라는 조성에도 불구하고, 주제의 기본 아이디어를 가져오고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재현부로 들린다. 그러나 마디26의 주제가 원조에서 다시 등
장할 때, 즉 주제의 이중 재현이 일어날 때, 이 곡을 분석하는 이들은 다시 마
디20으로 돌아가 마디20이 재현부의 시작점이라는 처음의 해석을 수정하게
된다.
이러한 소급적 재해석(retrospective reinterpretation)은 과정은 음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두 차례 일어난다. 그것은 뮐러의 시의 5행과 6행과 관련
되어 있다. 처음에 감상자들은 마디20을 주제가 재현되기 시작하는 지점으로
인지할 것이다. 마디20은 C장조라는 조성에도 불구하고 주제 재현이 일어나
는 지점일 뿐만 아니라, 뮐러의 시에서도 앞부분의 어조가 다시 재현되는 부
분이기 때문이다. 마디20에서 앞선 부분의 시적 어조로 되돌아 올 때, 시적
화자가 5행과 6행에서 노래한 것들은 감상자들의 마음속에서, 마치 희곡의 방
백처럼, 뮐러의 시에는 존재하지 않는 겹따옴표 속에 넣게 될 것이다. 따라서
마디20의 거짓 재현부는 마디15-19의 부분을 암시된 직접 인용으로 만든다.
25) 본 논문은 쟈넷 슈말펠트(Janet Schmalfeldt)의 이론을 따라 음악의 진행 과정에
서 형식 기능의 변화를 지시하는 기호로서 화살표를 사용한다. 슈말펠트에 이론에
대해서는 다음의 저서를 참조하시오. Janet Schmalfeldt, In the Process of
Becoming: Analytic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on Form in Early
Nineteenth-Century Music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1).
슈말펠트의 일방향 화살표(⇒)에 대한 대안으로 양쪽을 상호 참조하는 화살표(⟺)
의 사용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시오. Nathan Martin and Vande Moortele,
“Formal Functions and Retrospective Reinterpretation in the First
Movement of Schubert’s String Quintet,” Music Analysis 33/2 (2014),
148-149.
방랑자의 내적 시간
<악보 3> ‘가짜 태양들’, 마디16-32
193
194
정 이 은
두 번째로 일어나는 소급적 재해석은 피아노의 간주(마디24-25)의 과정에
서 점차적으로 발생하여, 원조에서의 주제 재현이 일어날 때 완성된다(마디
26). 거짓 재현부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고조된 분위기는 피아노 간주의 데크
레셴도(decrescendo)를 통해 점차 하강한다. 거짓 재현부의 시작 부분에서
주제는 C장조에서 재현된다. 하지만 이 악구는 거짓 종지(마디23)를 통해 A
단조로 이동하고, 종국에는 2마디의 피아노 간주를 통해 원조의 반종지로 마
무리되어, 주제의 이중 재현을 끌어낸다. 이러한 일련의 종지적 우회의 과정은
거짓 재현부의 시작점(마디20)에서 원조에서의 반종지(마디25)에 이르는 부분
전체를 소급하여 현상학적 괄호 안에 넣는다. 또한 이 재해석의 과정은 앞에
서의 현상학적 괄호(마디16-19)를 마디25까지 확장시킨다. 그것은 대조적 중
간부의 확장을 의미한다(<예 1> 참조).
<예 1> ‘가짜 태양들’의 마디16 이후 소급적 재해석을 통한 괄호치기의 과정
괄호치기의 과정은 감상자들의 기대감과 좌절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
다.26) <예 1>에서 뮐러의 시의 5행과 6행(마디16-19)을 마음속의 겹따옴표,
26) 음악 분석과 연주를 포함한, 넓은 의미의 듣기 과정에 일어나는 고쳐듣기(혹은 다
시 듣기), 재해석, 괄호치기 등의 과정은 음악이론가 슈말펠트가 ‘소급적 재해석’이
라고 부른 것과 유사하다. 특히 본 논문에서 논의하는 괄호치기의 과정과 슈말펠
트의 개념은 모두 음악 형식의 과정적 성격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점이 있
다. Janet Schmalfeldt, In the Process of Becoming: Analytic and
Philosophical Perspectives on Form in Early Nineteenth-Century Music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1)을 참조할 것. 하지만 슈말펠트의
이론과 본 논문의 괄호치기의 주요한 차이점은, 괄호치기의 과정에서 어떤 형식
단위가 듣기의 과정에서 해석의 수정을 거치고 재해석의 과정에서 형식 기능
방랑자의 내적 시간
195
즉 <예 1>의 작은 괄호 안에 넣는 현상학적 행위를 유발하는 것은 뮐러의 시
7행(마디20에서 시작)이다. 따라서 마디16-19에 대조적 중간부(B 섹션)에 해
당하는 음악이 세팅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두 번째 괄호(<마디1>
의 큰 괄호)는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마디20-25의 음악을 대조적 중간부의 일
부로 재해석하게 만드는 것은 마디26에서의 주제의 이중 재현이다. 이 과정에
서 괄호가 마디25까지로 확장되면서 거짓 재현부는 주제 재현에 대한 재경과부
가 된다. 이러한 괄호치기의 과정은 이 노래의 형식 구조가 동적인 과정이자,
시간적 과정에 근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하지만 ‘가짜 태양들’의
괄호치기의 과정은 윌리엄 킨더만(William Kinderman)이 베토벤의 후기 음
악에서 ‘괄호로 둘러싸기’(parenthetical enclosure)라고 칭한 것과는 차이가
있다.27) 또한 이 괄호치기의 과정은 앤드류 데이비스(Andrew Davis)가 쇼팽
의 피아노 형식에서 ‘삽입구적 이탈’(parenthetical digression)이라 칭한 것
과도 다르다. 이 두 개념은 모두 삽입된 부분을 규범적 악구 구조로부터의 이
탈로 간주하고 있고, 또한 형식 구조의 동적인 성격을 강조하지 않는다.28)
(formal function)이 완전히 바뀌더라도 처음의 해석에서 읽은 그 부분의 형식
기능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이다. 또한 본 논문은 이를 통해 형식적 과정의 순환
적 절차를 강조한다. 감상자들이 음악의 진행 과정에서 지나간 형식 단위에 대한
읽기를 수정하는 순간, 수정된 단위는 괄호 안에 들어간다. 이러한 듣기의 과정적
행위를 만들어내는 것은 해석의 수정을 요구하는 형식 단위와 음악이 진행되면서
소급적으로 수정되는 형식 단위 사이의 유사성이다. 즉, 형식 단위들 사이의 반복
성은 이 괄호치기 과정의 핵심에 있다.
27) William Kinderman, Beethoven, second edition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0), 239-245.
28) Andrew Davis, “Chopin and the Romantic Sonata: The First Movement
of Op. 58,” Music Theory Spectrum 36/2 (2014), 270-294.
196
정 이 은
방랑자의 내적 시간
197
단순 3부 형식에서 재현부(A’)는 그것이 반복하는 대상(A)을 참조한다. 조나단
구에즈(Jonathan Guez)는 재현부에 가해지는 변화가 빨라짐(acceleration) 혹
은 느려짐(deceleration)과 같은 시간적 인식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한다.29) 그
의 이론에 비추어본다면, ‘가짜 태양들’에서 재현부 A’에서의 시간적 변화는
빨라짐이다. 왜냐하면 A’ 섹션의 물리적 길이는 그것이 참조하는 A 섹션보다
훨씬 짧기 때문이다. 또한 마지막 한두 행이 한 번 혹은 두 번씩 반복되는
≪겨울 나그네≫의 다른 노래들과 달리, ‘가짜 태양들’의 마지막 두 행에는 반
복이 전혀 없다. ‘가짜 태양들’에서 대조적 중간부에서 주제의 이중 재현에 이
르기까지의 우회를 고려했을 때, 또한 많은 반복을 특징으로 하는 A 섹션과의
비율적 불균형을 생각했을 때, 마지막 부분에서의 반복의 부재는 ‘가짜 태양
들’의 이례적인 특징이다.30)
A’ 섹션은 4마디의 노래와 이어지는 3마디의 피아노 후주로 구성된다(마디
26-32). <악보 4>는 이 주제 재현이 어떤 방식으로 앞선 A 섹션을 회고하는
지를 시각화한다. 먼저 재현부의 시작은 노래의 시작 부분인 마디5-6을 그대
로 재현하지만, 이 악구는 변형된 반복, 즉 A 섹션의 두 번째 악구인 마디
12-13을 지시하면서 끝난다. 다시 말해, 재현부의 첫 4마디는 A 섹션의 8마
디를 부분적으로 생략하는 방식으로 노래를 재현한다. 그 결과 재현부 전체의
물리적 길이는 그것이 반복하는 대상, 즉 제시부의 길이보다 훨씬 줄어든다.
하지만 이 생략된 재현에서 시간은 삭제되고 잘려나간 방식으로 경험되지 않
는다. 마지막 악구가 화성적으로 완전정격종지(PAC)로 끝을 맺고, 그 종결감
이 피아노 후주의 코데타(codetta)를 통해서 강화되지만, 이 재현부는 원래의
노래의 구조를 그대로 반복하지 않음으로써 불완전하게 끝을 맺는다.
29) Jonathan Guez, “Schubert’s Recapitulation Scripts” (Ph.D. diss., Yale
University, 2015), 14-34.
30) ≪겨울 나그네≫에서 대부분의 노래들의 마지막 한두 행은 완전 종지에 이를 때까
지 부분적으로, 혹은 완전하게 반복된다. 음악은 그대로 반복되거나, 겹침
(elision), 거짓 종지(deceptive cadence) 등을 통해 프레이즈의 구조가 확장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 ≪겨울 나그네≫의 세 곡, ‘우편마
차’(Die Post), ‘환영’(Täuschung), ‘가짜 태양들’은 예외적이다. ‘우편마차’는 마
지막 행을 반복할 필요가 없다. 뮐러의 시 자체가 일종의 후렴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편마차’는 자연스럽게 반복된 프레이즈를 후렴구로 반복한다.
‘환영’과 ‘가짜 태양들’은 공통적으로 압축된 재현부를 특징으로 한다.
198
정 이 은
뮐러의 시에서 마지막 두 행 사이의 관계는 다소 모호하다. 9행(세 번째 태
양도 뒤따라 사라진다면!)은 10행(차라리 어둠 속이 더 편할 테니까)에 대한
조건절이다. 하지만 이 두 행이 하나의 문장을 형성하는 데에 있어서, 9행을
마무리하는 느낌표는 두 행 사이의 미묘한 거리를 만들어낸다. 표면적으로 보
았을 때 슈베르트의 음악은 이 두 행을 화성적으로 완성된 하나의 악구로 만
듦으로써, 두 행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로 뮐러의 마지막 두 행은 슈베르트의 음악 속에서 압축된 형태로 나뉘어져
있다(<악보 4>). 9행이 A 섹션의 첫 번째 악구를, 10행이 두 번째 악구를 반
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랑자의 마지막 악구가 과거를 재현하는 방식은, 노래
되지 않고, 연주되지 않은 시간이 여전히 그것의 부재 속에서도 자신의 역할
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생략된 재현부의 불완전함은 피아노 후주의 코데타 반복으로 이어진다(마디
30-32, <악보 4>). 이 마지막 세 마디에서 나타나는 반복은 전체의 음악적 궤
도에 덧붙인 생각(afterthought)이라는 형식적 기능을 지니지만, 이것이 반복
하는 대상 역시 원본이 생략된 형태로 되어 있다. 후주는 두 개의 코데타로
구성된다. 첫 두 마디는 A 섹션의 두 번째 간주(마디14-15)를 반복한다. 또한
마지막 마디는 바로 앞의 코데타(마디30-31)의 메아리이다. 이 두 개의 코데
타는 불완전한 노래의 악구를 완성된 것으로 되돌리지 못한다. 이 반복은 완
성되지 않은 것, 생략된 것을 강조할 뿐이다. A 섹션과 A’ 섹션을 비교하는
것은 이 축약이 어떠한 방식으로 변화된 반복을 만들어내는지를 설명한다. 예
를 들어, A 섹션의 두 번째 간주(마디14-15)를 반복하는 후주의 첫 두 마디
(마디30-31)를 보자. 앞서 마디14-15의 피아노 간주는 마디10-13의 방랑자
의 악구 네 마디(마디10-13)를 두 마디로 생략한다. 피아노 반주는 방랑자의
노래에 대해 메아리이고, 그것은 시간의 흐름 바깥에 존재한다.31) 반대로, A’
섹션에서 후주의 첫 두 마디는 재현의 대상을 가지지 않는다. A 섹션과 비교
했을 때, 그것이 회상하는 원래 부분이 삭제되었기 때문이다. 반복으로서의 피
31) Daniel K. L. Chua, “Untimely Reflections on Operatic Echoes: How
Sound Travels in Monteverdi’s L’Orfeo and Beethoven’s Fidelio, with a
Short Instrumental Interlude,” The Opera Quarterly 21/4 (2005), 581;
Daniel K. L. Chua, “Adorno’s Symphonic Space-Time and Beethoven’s
Time Travel in Space,” New German Critique 43/3 (2016), 124.
방랑자의 내적 시간
199
아노의 후주는 그것의 원본이 없는 채 그것이 재현하는 대상을 기억으로서만
환기한다. 마지막 마디32는 전체 노래에 대한 최소한의 흔적일 것이다.
A’ 섹션이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잘려나간 음악들은 노래되지 않는다. 그
러나 잘려나간 부분들은 기억의 형태로, 혹은 불완전함에 대한 충족되지 않은
열망의 형태로 감상자들의 마음 속에 남게 된다.32) 즉, 생략된 재현부에서 잘
려나간 시간들은 그것의 부재 속에서도 계속해서 존재한다. 실제의 물리적 세
계에서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잘려나간 시간들은 ‘가짜 태양들’이 생성하는 시간
성에 주목하게 한다.
압축된 재현부는 음악의 진행(pace)을 빠르게 하는 것이 보통일 것이다.
‘가짜 태양들’에서의 압축된 재현부에 대해서 유엔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환영’(Täuschung)과 ‘가짜 태양들’에서] 반복되는 음악의 시작 부분은
같은 이유에서 압축된다. 방랑자는 더 이상 자신의 일을 생각하거나 말할
수 없을 지경에 있다. 그리하여 노래는 갑작스럽게 마무리된다. 슈베르트
의 음악은 외견상 비율적 불균형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음악적 형식을
완성하는 기술을 보여준다.33)
압축된 재현부에 대한 유엔스의 논거가 설득력있게 읽힘에도 불구하고, 본
논문은 지금까지 방랑자의 마지막 프레이즈와 이후의 피아노 후주는 ‘갑작스
럽게’ 중단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가짜 태양들’의 재현부에서 음악
에서 생략된 부분들이 그것이 부재에도 불구하고 노래의 재현부에서 기억된
시간으로 듣게 되는 것은, 재현부가 반복하는 A 섹션의 ‘반복적인 구조’ 때문
이다. 그렇다면 유엔스의 주장과 달리 ‘가짜 태양들’의 생략된 재현부는 음악
의 진행을 빠르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아마도 그것의 정반대를 경험
할지도 모른다. 이 재현부가 기억하고 있는 부분의 형식적 구조와 반복성은
이 생략된 재현부의 진행이 마치 느려진 것처럼 듣게 해준다.
‘가짜 태양들’에서 경험되는 시간은 음악학자 막수인(Su Yin Mak)이 “음악
32) 반복과 기억, 그리고 시간적 대상으로서 음악이 가지는 현상학적인 의미에 대해서
는 졸고, “‘천국적인 길이’: 슈베르트의 확장된 제2주제군과 현상학적 시간,”
151-180 참조.
33) Youens, Retracing a Winter’s Journey, 79. 필자의 강조.
200
정 이 은
의 언어적 순간”(linguistic moment in music)이라고 부른 것에 상응하는
듯하다.34) 이 용어를 사용하면서 막은 문학비평가인 힐리스 밀러(J. Hillis
Miller)의 ‘언어적 순간’ 개념을 음악에 가져온다. 밀러의 ‘언어적 순간’은 어
떤 담론의 시간적 흐름이 “그 자체의 매체에 대해 숙고하거나 논평을 할 때”
중단되는 현상을 일컫는 개념이다.35) 감상자들이 이 변형된 재현부에서 시간
이 압축되거나, 잘려나갔음을 인지할 때, 우리는 이것을 음악의 언어적 순간이
라고 할 만하다. ‘가짜 태양들’의 생략된 재현부는 우리가 음악 속에서 시간을
듣는 행위 자체에 대한 숙고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또한 ‘가짜 태양들’의 시간적 현상은 다니엘 추아(Daniel Chua)가 베토벤
의
≪영웅
교향곡≫의
1악장의
재현부를
논의하면서
아도르노의
‘순
간’(Augenblick) 개념을 가져온 것을 떠올리게 해준다.
아도르노에게 순간은 그저 아무런 순간이 아니다. 그것은 ‘영웅 교향곡에
대한 아도르노의 논의에서 가장 핵심’에 있는 것이다. 음악이 ‘앞으로 갔다
가 동시에 뒤로 갔다’(forwards and backwards at the same time)고
듣는 것은 시간을 순간으로 압축하는 것이다. [아도르노적] 순간은 음악이
영원한 순간으로, 그것의 초월을 만들어내는 기술적인 수단이다. …… 이
공간 내에서 시간은 ‘모든 것이자 아무 것도 아닌 것’(everything and
nothing)이 된다. 당신은 영원한 순간 속에 있다. 과거, 현재, 미래는 ‘구
조적 듣기’(structural hearing)라는 영속적 행위 속에서 구체화된다. 전
체의 시간적 과정이 시간 그 자체를 영원한 것(timeless)으로 만들기 때문
이다.36)
34) Su Yin Mak, “Wenn in Time: Linguistic Moments in Robert Schumann’s
Dichterliebe,” Kronoscope 14/1 (2014), 51-70.
35) J. Hillis Miller, The Linguistic Moment: From Wordsworth to Stevens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7), xv. 막은 슈만의 ≪시인의 사
랑≫에서 노래와 노래 사이의 연결 지점들을 밀러의 언어적 순간이 적용되는 지점
으로 읽는다. 즉, 그것은 물리적인 측면에서도 음악이 중단되는 순간인 것이다. 이
에 반해 본 논문은 밀러의 언어적 순간을 변형된 재현부에서 일어나는 시간적, 과
정적 측면에 적용한다.
36) Daniel K. L. Chua, Beethoven and Freedom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7), 65-66. 또한 아도르노의 ‘순간’의 개념에 대해서는 차
지원, “악흥의 순간: 엄밀한 상상력, 혹은 아도르노적 순간의 청취,” 뺷음악과 민족뺸
32 (2006), 123-145을 참조하시오.
방랑자의 내적 시간
201
슈베르트의 생략된 재현부도 아도르노가 ‘순간’이라 말한 것과 매우 유사한 것
을 감각하게 한다. 압축된 시간 속에서, 감상자들이 경험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노래되고 연주되는 시간 이상의 것이다. 물리적 세계에서 짧아진 재현부는 그것
이 과거의 음악을 반복하고 회상하는 방법과 맥락에 따라 현상학적 세계에서 늘
어난 시간으로 경험되기도 할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이러한 시간의 경험은
아도르노가 ‘순간’과 관련해서 말하듯이, ‘시간 의식의 중단’(suspension of
time consciousness)이라고 할 수 있다.37) 더 나아가서, 슈베르트의 음악을 통
해 감각되는 시간의 존재는 이 곡이 ‘환각’ 혹은 ‘착시’를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
서도 해석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가짜 태양들’에서 감상자들이 경험
하는 것은 방랑자의 시각적 환영에 대한 청각적 등가물이기 때문이다. 슈베르트
의 음악에 새겨진 시간은 방랑자의 시각적 환영을 청각적 환영으로 변환시킨다.
Ⅳ. 나가면서
주제의 재현은 앞서 등장했던 음악이 다시 소환되고 기억되는 음악의 구조적
사건으로서 그 형식적 기능을 수행한다. 본 논문에서 살펴본 ≪겨울 나그네≫
의 두 곡의 노래에서 슈베르트의 재현부는 음악의 순환성을 만들어낼 뿐만 아
니라, 시적 화자가 자신의 자아와 조우하게 되는 구조적 사건임을 드러낸다.
또한 재현부과 함께 등장하는 시적 화자의 사색은 재현부가 그의 내적 시간을
음악에 투사하는 음악적 시간으로 변모시킨다. 결국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시
적 화자의 정신을 투사하고, 그것을 감상자에게 전달하는 것은 슈베르트의 음
악이다. 재현부에 내재된 시간의 감각은 뮐러의 시에 존재하지 않는 음악의
시간성을 통해서 생성된다. 재현부에 새겨진 방랑자의 내적 시간을 들으면서,
과거, 현재, 미래 사이의 경계는 무너지고, 감상자들의 시간 감각은 일상적 시
간의 방향성을 잃는다. 음악 속에서 시간은 물리적 시간의 존재와 관계없이,
멈추어 있거나, 잘라져 나가거나, 늘어나는 것으로 감각된다.
37) Theodor Adorno, “The Radio Symphony: An Experiment in Theory,” in
Essays on Music, ed. Richard Leppert, trans. Susan H. Gillespie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2), 256.
202
정 이 은
앞서 살펴본 두 곡의 노래의 재현부에서 시간의 경계가 혼란스러워지는 현
상은 또한 ≪겨울 나그네≫ 전체의 시간 프레임이 열려있다는 점을 상기시키
키도 한다. 방랑자의 이야기는 그를 거절한 이가 살고 있는 마을을 떠나는 데
에서부터 시작한다. 방랑자가 그의 여행을 시작했을 때, 그의 사랑은 이미 기
억으로 존재한다. 연가곡의 첫 곡, ‘잘 자요’는 현재 완료 시제로 시작한다.
“이방인으로 나는 도착했고, 이방인으로 나는 떠나네.”(Fremd bin ich
eingezogen, fremd zieh’ ich wieder aus) 연가곡의 마지막 곡, ‘거리의 악
사’(Der Leiermann)는 방랑자가 던지는 두 개의 질문으로 끝을 맺는다. “기
이한 노인이여, 내가 그대와 함께 가리오? 내 노래에 맞춰 그대의 손풍금을
돌려주겠소?”(Wunderlicher Alter, soll ich mit dir geh’n? Willst zu
meinen Liedern deine Leier drehn?) 방랑자의 겨울 여행의 마지막은 그
렇게 그 여행이 종착역 없이 계속될 것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이 마지막 노래
에서, 슈베르트의 음악은 강박적으로 조각난 파편들을 반복하고, 이 반복의 사
이에는 시간의 층위를 벗어난 메아리가 울린다. 그것은 거의 음악적 무형식에
가까운 수준으로 방랑자의 황량한 내면의 풍경을 그려낸다. 슈베르트의 음
악을 통해서 감상자들은 뮐러의 언어에 담긴 시간의 너머를 탐험한다. 또한
≪겨울 나그네≫를 들으면서, 우리는 이미 뮐러의 시에 대한 비평적 읽기와
음악의 적극적인 전유에 동참하기도 한다.38) 그 속에서 연가곡으로서의 ≪겨
울 나그네≫의 위태로운 지위는 역설적이게도 연가곡의 가장 본질적인 측면을
드러낸다.
한글검색어: 프란츠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내적 시간, 음악 현상학, 재현부
영문검색어: Franz Schubert, Winterreise, Inner Time, Phenomenology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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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ubert’s
방랑자의 내적 시간
207
국문초록
방랑자의 내적 시간: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와 주제 재현
정 이 은
본 논문은 슈베르트의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의 두 곡, ‘강 위에서’(Auf
dem Flusse)와 ‘가짜 태양들’(Die Nebensonnen)을 중심으로 노래의 형식
구조 안에서 주제 재현이 음악의 시간성의 인식과 맺고 있는 관계를 살펴본
다. 성악 음악에서 가사는 음악의 시간성을 구성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차
원을 이룬다. ≪겨울 나그네≫를 구성하는 노래들은 대개 단순 3부 형식으로
구성된다. 이 형식에서 주제의 재현은 음악 고유의 시간을 구현하는 하나의
방법이자, 가사에 존재하지 않는 순환적 시간을 만들어내는 음악구조적 장치
이다. 본 논문에서 다루는 두 개의 노래의 재현부에서 작곡가는 시적 화자의
내적 시간을 음악의 전면에 가져온다. 즉, 시적 화자의 내적 시간은 주제의 재
현을 통해, 또한 그것이 회상하는 음악의 지나간 시간에 대한 변주된 반복을
통해서 들리는 소리로 전달된다.
208
정 이 은
Abstract
The Wanderer’s Inner Time:
Schubert’s Winterreise and Thematic Reprise
Chung, Yi Eun
This paper explores the interrelationship between thematic return
and temporality of the songs by examining two songs from
Schubert’s Winterreise — ‘Auf dem Flusse’(no. 7) and ‘Die Nebensonnen’
(no. 23). In vocal music, text occupies an important dimension in
constituting temporality of music. The thematic return in the
mostly ternary formal design of individual songs in Winterreise is
an intrinsically musical device that enables us to experience the
cyclic time that is absent from the text. At the thematic return,
Schubert’s setting of the text to the music brings the poetic
speaker’s inner time to the fore. In other words, the poetic
speaker’s inner time is made audible through the thematic return
and the subsequent varied repetitions of the preceding section.
[논문투고일: 2020. 08. 31]
[논문심사일: 2020. 09. 15]
[게재확정일: 2020. 0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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