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기사 ■ 금융, 수학 그리고 퀀트 최재혁 (투자은행1) 퀀트) 퀀트란 어떤 배경의 사람들인가? 들어가는 말 저는 박사학위를 받은 후 지금까지 8년여 동안 금융수학의 내용을 직접 얘기하기 전에 어떤 사 월가의 투자은행에서 금융수학에 관련된 일을 해오 람들이 퀀트란 직업을 갖는가에 대한 얘기부터 시 고 있는 퀀트(quant)입니다. 그간 우리나라의 수학 작할까 합니다. 1980년대부터 월가의 투자은행들 계에서도 학문적으로 혹은 졸업생들의 취업이라는 이 수학․물리학 분야의 박사들을 채용하기 시작합 실용적인 측면에서 금융수학에 대한 관심이 큰 것 니다. 컴퓨터가 대량으로 생산되어 본격적으로 금 으로 알고 있습니다. 금융수학을 소개하는 좋은 글 융업무에 쓰이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금융계산을 컴 학계 밖의 금융 현장에서의 얻 퓨터 프로그램으로 만들 수 있는 전문 인력이 필요 은 제 경험이 금융수학을 이해하는데 좀 더 보탬이 했고, 주식 옵션과 같은 비교적 새로운 금융 상품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글을 기고합니다. 의 가격을 계산하고 분석하는 능력이 필요했기 때 들이 이미 많지만,2) 퀀트(quant)는 quantitative analyst를 줄여 부르 게 된 용어로 ‘계량분석가’ 혹은 ‘금융공학자’ 정도 로 번역할 수 있겠지만, 그 자체로서 새로운 의미 를 담게 된 용어이므로 편의상 ‘퀀트’라고 하겠습 니다. ‘금융수학’과 ‘금융공학’은 그 차이를 정확히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동일한 의미로 편 의에 따라 바꿔 쓰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비전문가 독자를 대상으로 쉽게 쓴 글이니 내용이 다소 정확 하지 않더라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입니다. 어떤 글에서는 냉전 시대가 끝나고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 개발 계획의 예산이 삭 감되면서 물리학 박사들이 직장을 구할 수 없게 되 자 월가의 투자은행으로 눈을 돌리면서 퀀트라는 직업이 탄생했다고도 합니다. 어느 설명이 먼저이 든 복잡한 금융상품을 분석할 수 있는 수학적 능력 을 가진 퀀트가 생기면서 투자 은행은 그런 거래를 더욱 활발하게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러면서 퀀트의 수요가 더욱 더 필요해지는 선순환 구조가 최근의 1) 고용주의 사정으로 투자은행의 이름을 밝히지 못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 글의 내용은 고용주의 의견과 관 계없는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이 글은 금전적인 보상이 없이 작성되었음을 아울러 밝힙니다. 2) 구형건, ≪대한수학회소식≫ 제132호(2010년 7월), “금융수학이란 무엇인가?” 2 ∙ 대한수학회소식 제 153호 서브프라임 금융위기 전까지 이어 오면서 퀀트들의 한국 학교들이 참고해 볼 수 있는 모델이 아닌가 숫자가 급속히 증가해 왔습니다. 생각합니다. 최근에 와서는 수학, 물리 같은 자연과학뿐만 아 퀀트라는 직업이 생기던 그 시절에 비해서 지금 니라 공학 분야의 학위 소지자들도 퀀트의 대열에 은 퀀트의 수요가 늘었을 뿐 만 아니라 분야가 훨 합류하면서 전공에 대한 편중이 사실상 없어졌고, 씬 더 다양해 졌습니다. 먼저 Black-Scholes 모형 미국, 영국 같은 금융 선진국에서는 수학, 산업공학, 으로 대표되는 파생상품의 가격과 위험을 계산하는 경영 등과 같은 과에 걸쳐 금융수학만을 전문적으 분야가 로 교육하는 석사과정이 개설되어서 그 졸업생들이 (counterparty)가 되어 고객이 원하는 파생상품을 증가하는 퀀트 수요의 일부를 채우고 있습니다. 거래하거나 파생상품을 이용한 투자 상품을 투자자 저는 2005년에 응용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에 퀀트로서의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응용수학 중에서도 유체역학과 같이 자연계에서 발견되는 현 상을 수학모델을 만들어 설명하는 연구를 했습니 다. 제가 했던 연구가 Black-Scholes의 옵션 가격 모형에서 쓰이는 확산 방정식(diffusion equation) 이란 측면에서 금융수학과 연관이 없는 것은 아니 었지만 그것이 제가 퀀트가 된 직접적인 계기는 아 니었습니다. 박사과정에 있을 때 제가 첫 박사과정 제자였을 정도로 지도교수님(Martin Bazant)이 젊 으셨는데, 제가 졸업 후 진로에 대해서 상담을 받 던 중 당신이 학위를 받을 당시에 직업으로 퀀트가 되는 것을 고민했다는 얘기를 듣게 되면서 퀀트라 있습니다. 투자은행은 거래 상대자 들에게 판매하는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합니다. 저도 이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구체 적으로 채권과 이자율(Fixed Income) 부서에서 일 을 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외환(foreign exchange 혹은 FX), 주식(equity), 신용(credit), 원자재 (commodity)등 기초자산의 종류(asset class)에 따라서 부서(desk)마다 퀀트들이 포진해 있고, 업 무의 종류에 따라서 트레이더(trader)와 팀이 되어 상품의 거래에 직접 관여하는 front-office 퀀트, 거래를 후방에서 돕는 middle-office/back-office 퀀트, 거래 시스템을 개발하는 IT 개발자, 가격 모 형을 검증하는 model validation 퀀트 등의 다양한 역할이 있습니다. 는 직업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골드만 삭스(Goldman Sachs)에서 퀀트로 일하 금융수학에 관련한 수업을 경영대학 MBA과정에서 면서 파생상품의 가격 모형 연구에 많은 공헌을 했 수강하고 관련 서적들을 읽으면서 취업에 필요한 고, 현재는 컬럼비아대학(Columbia Univ.)의 금융 지식들을 습득했습니다. 당시에 제가 있던 MIT 대 공학과정 학장으로 있는 Emanuel Derman 같은 학원에는 금융공학 과정이 따로 없었지만, 학교 내 사람이 이 분야의 대표적인 퀀트라고 할 수 있습니 여러 과들의 기존 과목들을 조합하여 금융공학과 다. 이 사람이 쓴 ≪My 관련된 과목을 몇 개 이상 수강하면 대학원생 누구 Life as a Quant≫라는 나 금융수학 자격증(certificate)을 발부해주는 프 책이 한국에서도 ≪퀀트≫ 로그램을 수료했습니다. 제 경우는 수학과에서 학 란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 위 과정 중에 이미 수강했던 과목들이 해당 과목으 는데, 로 지정되어 있어 쉽게 자격요건을 갖출 수 있었습 상황이 그려져 있으니 참 니다. 비록 학위(diploma) 과정은 아니지만 구직자 고하시기 바랍니다. 파생 의 이력서를 돋보이게 쓸 수 있는 내용이라 취업에 상품이 어떤 식으로 고객 실제로 도움을 받았는데, 예산이 크게 들지 않는다 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 는 점에서3) 금융수학 과정을 새롭게 개설하려는 고 여기에 퀀트가 왜 필 초창기 퀀트들의 Emanuel Derman (1946년생) 3) Financial Technology Option이라 불리는 이 프로그램은 2006년까지 Merrill Lynch의 후원으로 운영되었습니다. 2014년 1월호 The Newsletter of the KMS ∙ 3 요한가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거래의 예를 통해 바로 알고리즘 매매 분야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할 서 좀 더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수 있습니다.4) 파생상품 분야의 경우 퀀트는 대형 비교적 역사가 짧긴 하지만 파생상품 분야와 맞 먹을 정도로 퀀트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분 야가 알고리즘 거래(algorithmic trading) 입니다. IT기술의 발달로 주식 거래가 컴퓨터를 통해 자동 화 되면서 금융회사에 엄청난 수익을 안겨주는 수 익원으로 떠오르자, 수많은 퀀트들이 좋은 거래 알 투자은행 속에서 파생상품을 매매하고(trader) 판 매하는(sales) 사람들을 조력하는 역할을 맡는 반 면에 알고리즘 매매 분야의 퀀트는 스스로가 모델 을 만들면서 그 프로그램으로 직접 상품을 매매하 는 트레이더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매력이 있습니다. 고리즘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주식시 얼마 전에 연봉을 1조원이나 벌었다는 기사로 장에서 유동성을 공급하는 시장 조성자(marking 유명해진 James Harris Simons의 Renaissance marker)는 시시각각 변하는 사자와 팔자 주문을 Technology라는 헤지펀드가 알고리즘 매매 분야 이익을 극대화 하도록 연결 짓는 방법을 생각해야 의 대표적인 회사입니다. 보통 미국에서 가장 성공 하고, 고객의 주문을 대신해서 집행하는 브로커 한 헤지펀드 매니저로 James Harris Simons를 꼽 (broker)들은 대량의 주문을 받았을 때 어떤 순서 는데 아마도 금전적인 측면에서 가장 성공한 퀀트 로 주문을 집행해야 시장 가격의 움직임을 최소화 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Simons는 학계에서 수학 하면서 고객을 위해 좋은 가격에 거래를 마무리 할 교수로 재직할 때 미분기하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 수 있을지를 고민을 합니다. 또한 시장의 다양한 을 남기기도 했는데, 금융상품들의 가격을 분석해서 상대적인 차익거래 Technology는 퀀트를 채용할 때 금융에 관한 지 (statistical arbitrage) 기회를 포착하고 수익을 내 식을 일체 질문하지 않고 지원자가 어떤 전공이든 는 헤지 펀드들이 최근 몇 년간 우수죽순으로 생겨 박사과정 중에 얼마나 훌륭한 연구를 했는지 만을 났습니다. 심사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금융을 얼마나 많이 같은 퀀트이지만, 알고리즘 매매와 파생상품 모 형은 두 분야 사이에서의 이직이 상당히 어려울 정 도로 다른 전문지식을 요구합니다. 파생상품 가격 모델이 수치해석(numerical method), 확률과정 그래서인지 Renaissance ‘선행학습’ 했느냐는 중요하지 않으며, 학문적으로 우수한 연구를 한 인재를 채용한다면 금융 시장에 대한 지식은 입사 후에 가르쳐도 늦지 않다는 철학 입니다. (stochastic process)과 같이 어느 정도 학문으로 정립된 지식을 필요로 한다면 알고리즘 매매 분야 는 실시간 데이터 처리, 통계 분석, 시계열 분석, 매매 속도를 높이는 프로그램 구현 등 다소 기술적 인 지식을 많이 필요로 합니다. 그렇다고 하여 전 자가 후자보다 우수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수익을 내는 알고리즘은 보안상 외부로 유출되지 않는 특 성과 결합해서 알고리즘 매매 분야는 금융수학 과 정의 학과목으로 정립되기 힘든 실정입니다. 하지 만 앞서 퀀트들의 전공분야가 수학, 물리를 넘어 이공계의 전 분야로 확대되었다고 말씀드렸는데, James Harris Simons (1938년생) 4) 파생상품과 알고리즘 매매로 양분한 퀀트들의 구분을 보통은 sell side와 buy side로 나누어 하는 경우도 많은데, 정확한 구분이 아니라고 생각되어 이 용어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4 ∙ 대한수학회소식 제 153호 Thomas Peterffy (1944년생) 자동화 주식거래의 년 한국시리즈는 삼성 라이온스와 두산 베어스가 선구자로 Interactive 마지막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삼성이 우승을 Brokers라는 회사의 차지했습니다. 제가 한국 시리즈를 통해서 제안하 창업자인 Thomas 는 파생상품은 간단히 얘기해서 우승팀 알아맞추기 Peterffy에 대한 이 내기입니다. 상대와 내기를 해서 예상하는 (혹은 야기를 얼마 전 한 응원하는) 팀이 이기면 미리 정한 판돈만큼을 더 팟캐스트(pod cast) 받고 지면 판돈을 내기 상대에게 잃게 됩니다. 여 에서 통해서 알게 되 기에 더해서 다음 몇 가지를 기본으로 가정하도록 었는데,5) 하겠습니다. 많이 알려 지지 않았지만 이 사 람 역시 시대를 대표하는 퀀트 중의 한 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역시 대단한 자산가로 2012년 미국 1) 경기는 무조건 승패가 결정되고 무승부는 없음 2) 두 팀의 전력이 대등하여 승률은 50대 50으로 예상됨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였던 Mitt Romney를 3) 7차전 동안 각 경기마다의 승패에 대한 내기를 지지하는 TV 광고를 스스로의 비용으로 제작해 방 걸 수 있는 ‘시장’이 있어 누구나 참가 할 수 송해서 정치적인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있고 어느 팀에 베팅을 하든 반대 팀에 베팅을 하는 내기 상대를 쉽게 찾을 수 있음 이 같은 가정 하에서 투자은행이 ‘한국시리즈 우 이해를 돕기 위한 가상의 파생상품: 한국시리즈 우승팀 맞추기 승팀 맞추기’ 파생상품을 고객과 거래한다고 합시 다. 예를 들어, 두산의 우승에 베팅하는 고객과 거 그렇다면 현대 금융이 얼마나 복잡해졌길래 전 래를 한다는 것은 투자은행의 입장에서는 고객의 에 없던 퀀트라는 고도의 전문직을 새롭게 탄생시 반대편에서 삼성의 우승에 베팅하는 내기 상대가 켰을까요? 흔히들 말하는 파생상품이 어떤 성질의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고객의 예상대로 두산이 금융 거래인지를 설명을 드릴까 합니다. 앞서 말씀 우승한다면 은행은 손해를 입는 위험(risk)을 안고 드렸듯, 최근 들어 퀀트의 업무 분야가 다양해지면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투자은행이 어떻게 하면 서 모든 퀀트들이 파생상품 분야에서 일 한다고는 세 번째 가정에서 언급된 ‘경기별 내기’ 시장을 이 볼 수 없지만, 파생상품은 퀀트를 탄생시킨 이유이 용해서 고객과의 거래에서 오는 위험을 상쇄시킬 며 여전히 많은 퀀트들이 파생상품의 가격 결정과 수 있을까 하는 것 입니다. 위험 관리에 관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만들어진 상황이긴 하지만, 실제로 거래되는 대표적인 파생상품 하면 교과 전혀 현실성이 없는 얘기는 아닙니다. 양쪽 구단의 서에 가장 먼저 소개되는 예가 콜(call)/풋(put) 옵 기업(삼성 혹은 두산)에서 자기 팀이 우승하는 경 션이겠지만, 얘기를 좀 더 재미있게 풀어 나가기 우에 고객 감사 이벤트를 열고 싶은데 비용이 10 위해서 제가 만들어 낸 가상의 파생상품 하나를 소 억 정도 든다고 합시다. 기업의 자금 관리 측면에 개할까 합니다.6) 서 불확실성은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이 경우 5억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는 일곱 경기 중에서 네 경 을 자신의 팀에 베팅 하는 거래를 누군가와 할 수 기를 먼저 이기는 팀이 우승을 차지합니다. 2013 있다면 팀의 한국 시리즈의 우승 여부와 관계없이 5) NPR Radio: Planet Money http://www.npr.org/blogs/money/2013/06/14/191668134/episode-396-a-father-ofhigh-speed-trading-thinks-we-should-slow-down 6) 퀀트 입사 면접에서 제가 잘 내는 문제입니다. 2014년 1월호 The Newsletter of the KMS ∙ 5 5억을 고정 비용으로 책정할 수 있으므로7) 충분히 로 진행합니다. 승률이 50대 50으로 양 팀의 우승 고려해 볼 수 있는 거래입니다. 기업이 먼저 투자 확률은 대칭이므로 대각선 아래쪽은 그림에서 생략 은행 쪽에 거래 의향을 물어 볼 수도 있고, 이런 했습니다. 먼저 네 번을 이기는 팀이 우승하므로 기업의 요구를 먼저 파악한 투자 은행이 기업에 먼 오른쪽 위의 네 점은 두산이 우승하는 경우가 됩니 저 제의를 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축구 월드컵 다. (맨 위 점은 4:0 우승, 한 칸 오른쪽 아래 점은 이 열릴 때마다 한국팀의 16강 진출을 조건으로 3:1 승리 등등) 문제로 돌아가서, 은행의 헤지에 기업들이 수많은 이벤트가 걸리는데 대부분 보험 대한 답이 명확하게 나오는 지점은 양 팀의 승패가 계약을 통해 위험을 전가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 3:3으로 7차전을 치러야 하는 (1) 지점입니다. 이 다. 이 경우에도 16강 진출과 상관없이 기업은 비 경우 다음 한 경기의 승자가 바로 우승팀을 결정하 용으로 보험료만 지불하면 되는 구조가 됩니다. 므로 투자은행은 고객의 베팅 금액 100을 고객이 대충 눈치 채셨겠지만, 이 ‘한국시리즈’ 상품은 ‘경기별 내기’를 기초 상품으로 하고 있는 ‘파생 상 품’이 되는 것이고, 제가 낸 문제는 은행의 입장에 서 고객에게 판매한 파생 상품을 기초 상품을 이용 해서 어떻게 헤지(hedge) 하는가, 즉 위험을 전가 하는가에 관한 문제입니다. 바로 퀀트들이 투자은 행의 책상에 앉아서 고민하는 문제입니다. 배팅한 팀에 똑같이 경기별 내기에서 배팅하면 위 험을 전가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이기던 고객 과 한 거래와 경기별 내기의 결과가 서로의 손익을 상쇄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상황을 더 확장하기 전에 고려할 점은 (1)의 시점에서 경기별 내기의 베팅할 액수뿐만 아니라 (1)의 3:3 상태에 도달하 기 전까지의 경기별 내기를 통해서 따고 잃은 금액 의 합을 생각해야 합니다. (1)의 경우는 그 합이 0 그렇다면 투자은행은 어떻게 ‘경기별 내기’를 이 용하여 목적을 달성 할 수 있을까요? 구체적으로 질문해서 두산이 우승하는데 100만큼을 베팅하는 고객과 거래를 했다면 은행은 1차전의 경기별 내 기에서 어느 팀에 얼마만큼 베팅하는 것으로 헤지 를 시작해야 할까요? (다음 문단부터 답을 설명드 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0이 아니라면 두 내기의 결과가 상쇄되더라도 마지막에 이익 혹은 손해가 나게 되므로 완전한 헤지를 한 것이 아니게 됩니 다. 이제부터 매 경기 상황마다 경기별 내기에 배 팅할 금액 D와 그 상태에 이르기 까지 손익의 합 P를 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8) 릴 테니 혼자 생각하고 싶은 독자들은 지금 시간을 갖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문제를 7차전의 경우부터 생 각해서 시간 진행의 역순으로 계산해 오시면 답을 구하실 수 있습니다. 우승팀이 결정되기 전까지의 모든 경우의 수를 옆 의 그림과 같이 격자로 그려 볼 수 있습니다. 가장 왼쪽의 꼭지 점이 한국시리즈를 시작하는 시 점(0:0)이고 오른쪽 방향으로 두산이 이기면 위로, 지면 아래 7) 우승하지 못할 경우는 투자은행과의 베팅으로 잃은 5억이 비용, 우승할 경우는 이벤트 비용 10억과 베팅으로 딴 5억을 합쳐 역시 5억이 비용임. 8) D는 ‘Delta’, P는 ‘Profit & Loss’ 의 각 첫 글자를 따 왔습니다. 6 ∙ 대한수학회소식 제 153호 이제 시간을 돌려서 양 팀의 전적이 3:2인 (2)의 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실제 파생상품의 거래에서 상태를 생각해 봅시다. 두산이 이번에 이기면 4:2 는 투자은행은 고객이 원하는 거래를 스스로가 상 전적으로 우승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고객에게 대가 되어 성사시키는 것에 대한 일종의 서비스 요 100을 손익은 금을 받는데, 이것이 파생상품을 거래하는 투자은 P=100이 되어야 합니다. 반대로 삼성이 이긴다면 행들의 일반적인 수익 모델입니다. 고객은 기초자 방금 막 분석한 전적 3:3의 (1)의 경우가 되므로 산 시장을 이용해서 파생상품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P=0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50:50의 확률로 모르거나, 안다 하더라도 대부분 비금융권의 고객 P=100 혹은 P=0의 상태로 나가는 분기점이 바로 은 매일매일 변하는 시장상황에서 헤지를 실행하기 (2)의 상태이므로 P=50이어야 하겠고 경기별 내기 힘들기 때문에 수수료를 은행에 지불하고 은행에 에서는 D=50 만큼을 두산에 배팅해야 한다는 결과 그 일을 대신 맡기는 것입니다. 물론 투자은행이 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한 단계씩 뒤로 나름대로 분석을 통해서 상대팀의 우승 확률이 높 계산을 밟아 나가면 모든 상태에서의 D와 P값을 다는 결론을 내리고 헤지를 덜 하지 않거나 필요 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적 3:1의 (3)에서 이상으로 해서 스스로의 수익을 위해 배팅을 할 수 는 P=75, D=25, 전적 3:0의 (4)에서는 P=87.5, 도 있는데, 이런 경우가 바로 최근의 금융위기 때 D=12.5를 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풀어 나오면 대형 은행들을 파산 직전까지 몰고 간 자기자본거 1차전 직전에는 D=31.25 만큼을 두산에 배팅해야 래(proprietary trading)가 됩니다. 돌려줘야 하므로 한다는 결과를 얻을 수 그 때까지의 있습니다.9) 이렇게 구한 결 과대로 경기별 내기 시장을 잘 이용한다면 투자은 행은 고객이 원하는 파생상품의 거래 상대자가 되 면서도 그 위험을 ‘경기별 내기’라는 기초상품 시 장에서 완벽하게 헤지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퀀트와 금융수학에 대해서 오해하 시는 것 중의 하나가 퀀트들은 고도의 수학 모형을 사용해서 시장을 예측(예를 들어 주식시장의 등락 을 예측)한다는 것입니다. 이 예에서 보셨듯이 금 융수학은 시장을(어느 팀이 우승할지를) 예측을 하 비록 가상이긴 하지만 실제 시장에서 거래되는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장이 바뀔 수 있는 모든 파생상품과 그 가격 모형을 잘 설명해 주는 예입니 상태를 확률적으로 염두에 두면서 거래의 현재 상 다. 금융수학이란 학문의 문을 연 Black-Scholes- 태의 위험을 연구를 하는 것입니다. Merton의 옵션 가격 모델의 핵심은 파생상품을 기 초자산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동적으로 거래하는 방법으로 똑같이 재현(replicate)할 수 있다는 것인 데, 이 거래 예에서 ‘경기별 내기’에 경기 상황에 따라서 다른 금액을 배팅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투자은행은 기초상품이라 는 기본 재료를 이용해서 고객이 원하는 파생상품 을 만들어 내는데 그 설계를 퀀트들이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 거래되는 파생상품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한국시리즈’ 상품의 확장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 다. 만기가 1년인 파생상품은 휴일을 제외하면 약 250일 정도의 시장 변화를 거쳐야 확정 가격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시리즈 한 경기의 승패를 하루 동안의 시장 변동으로 생각한다면 만기가 1 년인 상품의 가격과 헤지 방법을 구하기 위해서 4x4가 아닌 250x250의 격자가 되어야 하니 계산 이 훨씬 복잡해지겠죠. 실제 시장에서는 하루에 한 투자은행은 고객과의 거래로 오는 위험을 완전 번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헤지가 가능한데, 야구의 히 헤지함으로써 결국은 손익을 0으로 만드는데 예로 비유하자면 경기가 시작하고 스코어가 있는 그렇다면 은행은 수익을 어떻게 낼까요? 위 문제에 상황에서 배팅을 해야 하므로 승패의 확률이 9) 비전공자를 위해서 얘기를 쉽게 풀었지만 편미분 방정식(PDE)의 해를 컴퓨터로 푸는 finite difference의 전형적인 형태입니다. 2014년 1월호 The Newsletter of the KMS ∙ 7 50:50에서 벗어나게 되므로 계산을 다르게 해야 더해 확률 변수의 시간에 따른 변화와 성질을 연구 합니다. 또한 실제에서는 헤지 거래를 하는데 비용 하는 분야입니다. 주식, 환율, 이자율 등의 자산 가 이 발생하는데, 비유하자면 경기별 내기를 이용할 격의 시간에 따른 변화를 바로 확률 과정으로 이해 때마다 수수료를 내야 하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이 할 수 있습니다. 확률 과정을 이론적으로 깊이 있 렇게 실제 거래에서는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들이 게 공부하려면 측도 이론(measure theory) 같은 문제를 어렵게 만드는데, 바로 퀀트들이 이런 문제 순수수학의 바탕이 필요하겠지만, 실무에서는 거의 를 해결하면서 월급을 받습니다. 쓰이지 않고 확률 이론의 계산적인 결과들을 주로 이용하는 편입니다. 실무에서는 컴퓨터를 이용하여 파생상품의 가격 금융에서 쓰이는 수학 이나 위험을 최종적으로 계산해야 하므로 다양한 한국시리즈 상품을 통해서 파생상품이 어떤 것 수치 해석(numerical analysis) 지식 역시 필수적 이고 퀀트라는 전문가들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는 곡선 내삽법 느낌 정도는 받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spline interpolation), 방정식의 해를 수치적으로 퀀트들이 현장에서 실제로 어떤 수학 이론들을 사 찾는 뉴튼법(Newton’s method)부터 복잡하게는 용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앞에서 파생상품 모형과 비선형 최적화(non-linear optimization)나 수치 알고리즘 매매라는 퀀트의 두 부류를 말씀 드렸는 적분(numerical integration)까지 거의 전 분야의 데, 제가 파상상품 모형 분야에서 일하고 있어 제 수치해석 방법들이 실제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분야를 중심으로 설명 드림을 양해바랍니다. 미 완성되어 있는 수치 해석 패키지를 가져와서 쓰 먼저 기본적인 확률과 통계의 개념은 필수적인 는 경우도 많지만, 속도와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 흐름(cash 금융 업무에 최적화 할 수 있도록 직접 방법들을 flow)를 어떻게 현재 가치(present value)로 환산 구현하는 경우 또한 적지 않아서 기본을 잘 이해하 하느냐는 금융과 재무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 고 있어야 합니다. 파상상품의 구조가 조금만 복잡 다. 파생상품은 기본적으로 미래 시점의 시장 조건 해져도 그 가격을 수식으로 구하기가 불가능하므로 에 따라 현금 흐름이 달라지는 금융계약이라고 볼 몬테 카를로 시뮬레이션(Monte Carlo simulation) 수 있으므로 거래의 적정 가격을 계산하는 것은 각 을 통해서 구할 수밖에 없는데, 시뮬레이션 역시 시장 상황의 현금 흐름에 그 상황이 실현될 확률을 수치해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결과가 곱한 기대값(expectation value)을 구하는 확률 문 어느 정도의 정확도와 수렴을 보장하기 위해서 되 제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퀀트들의 입사 면접에 도록 많은 경우(path)의 수를 돌려야 하는데, 거기 서 지원자들이 얼마나 순발력있게 문제에 접근하느 에는 시간과 계산 비용이 따르므로 경우의 수를 최 냐를 시험하기 위해서 수학 퀴즈(brain teaser)를 소로 하면서 정확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 퀀트들이 많이 물어 보는데, 제일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실례로, 금융 모형의 이 아마 확률통계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예를 들 시뮬레이션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수학 함수는 어, 제가 많이 물어 보는 질문 중의 하나는 ‘앞면 정규 분포의 누적 분포 함수(cumulative density 이 두 번 연속으로 나올 때까지 동전을 던지기를 function)로 다소 정확도는 떨어지지만 다항식을 한다고 하면 평균 몇 번을 던져야 하는가?’ 입니다. 이용한 근사로10) 바꿨더니 계산 시간을 상당히 단 지식입니다. 미래의 불확실한 현금 현대 금융수학의 이론적인 토대라고 할 수 있는 확률 과정(stochastic process)은 확률에 시간을 축했던 적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수학 모형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10) Abramowitz and Stegun, Handbook of Mathematical Functions 8 ∙ 대한수학회소식 제 153호 옮길 수 있는 코딩 능력 역시 아주 중요하다고 하 시는 분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분들께 겠습니다. C, C++, Java 표준 언어들이 많이 쓰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제 개인 고 자료 처리를 위해서 Perl이나 SQL같은 언어를 적인 생각이지만 몇 가지를 적어 보았습니다. 부분적으로 쓰기도 합니다. 골드만 삭스 같은 회사 는 금융 업무에 최적화된 컴퓨터 언어를 퀀트들이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언어에 관계없이 모형이나 계산 과정을 실패 없이 실행하고 나중에 확장이 용이하도록 잘 디자인 하 는 능력은 공통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많은 분들이 퀀트라는 직업이 앞으로 계속 전망이 있을지에 대해서 궁금해 하십니다. 특히나 최근의 금융위기 때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같이 이 해할 수 없는 복잡한 상품에 투자했다 손해를 본 경우가 많아 금융수학이 비판을 받았고, 그로 인해 앞으로 퀀트의 수요가 줄 것으로 걱정하시는 분들 금융 현장에서 사용되는 수학을 몇 가지 나열해 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퀀트의 수요는 예전의 속 보았는데, 이는 필수적인 내용이지만 금융수학의 도는 아니더라도 계속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생각 영역이 꼭 이 항목들에만 국한 되는 것은 아닙니 합니다. 더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퀀트 다. 퀀트로서 현장에서 일하는 경력이 쌓여 갈수록 의 전유물인 금융수학적인 분석능력은 금융위기와 금융수학의 범위와 내용을 정의내리기가 점점 더 관계없이 더 많은 금융의 영역에서 수요가 더 늘어 어렵게 느껴집니다. 퀀트로 일하는 동안 금융위기 날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번 금융위기가 금융공학 전후로 시장이 변하는 모습을 보았고, 또 퀀트 업 으로 만들어진 파생상품이 한 원인이 된 것은 사실 무를 넘어서 은행 업무를 좀 더 넓게 보고 듣게 되 입니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분야에서 사용되는 면서 “금융에서 쓰이는 수학”은 모두 폭 넓게 금융 파생상품과 위험관리기법이라는 대세를 되돌릴 수 수학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Black- 는 없습니다. 이번의 금융위기는 파생상품의 사용 Scholes가 주식 옵션의 가격 이론을 제창하면서 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부작용의 하나로 볼 옵션의 거래가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그 이전부터 수 있고, 이를 통해서 파생상품의 사용이 금지되기 옵션이란 금융상품은 시장에 존재했고 수요 공급에 보다는 건전한 규제를 통해서 부작용을 줄이는 방 따라 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되었던 사실에 주목할 향으로 발전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미국이나 유럽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시장에 필요에 따라 새로운 선진국들의 경우 금융위기가 5년 가까이 지난 지 거래기법이 먼저 탄생했고 금융수학이 그 이론적인 금에도 금융 규제의 세부 시행 규칙을 마련하고 있 토대로 제공 해 준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부터 10 는데, 파생상품을 표준화하여 거래를 보다 투명하 년 20년 후에 금융이 더 진화한다면 그 때는 어떤 게 하고, 쌍방거래(bilateral)를 중앙 청산소(central 수학 이론들이 금융수학의 영역으로 들어와 있을지 clearling house)를 통하게 하여 거래 상대자 사이 모를 일입니다. 따라서 위에서 열거한 항목에 더해 의 신용 위험을 줄여주는 방향으로 파생상품 시장 서 퀀트가 필요한 자질은 앞으로 변화하는 금융 환 을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경에 맞도록 어떤 이론이라도 가져다 응용 할 수 있는 개방적 마인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만 금융수학 지식에 대한 수요의 증가가 퀀트 수의 증가로 직접적으로 이어지지는 않으리라 예상 합니다. 금융수학이 더욱 대중화 되는 방향으로 나 간다면 꼭 금융수학을 사용하는 사람이 꼭 퀀트로 직업으로서의 퀀트 제한될 필요가 없습니다. 퀀트와 비퀀트의 경계가 이제 다시 퀀트라는 직업에 대해서 좀 더 말씀 허물어지는 것입니다. 퀀트는 연구와 자동화라는 드릴까 합니다. 아마도 학부건 대학원이건 졸업을 직업의 특성상 그 수요가 파생상품의 거래량에 비 앞둔 수학 전공자들 중에서 퀀트로 취업을 생각하 례하여 증가하지 않습니다. 퀀트 한명이 새로운 가 2014년 1월호 The Newsletter of the KMS ∙ 9 격 결정 모형을 만들어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코딩 구직 후에 도움이 될 만 한 몇 가지 조언을 드리겠 했다면, 상품의 거래 규모가 10배, 100배 늘어도 습니다. 같은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되고, 뉴욕이건 런던이 건 지역이나 부서를 떠나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누 구나 같은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됩니다. 물론 모형 을 꾸준히 유지 발전시키는데 인력이 필요하고, 또 모형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모형 이용자들에게 모형의 이용에 대해 조언을 해야 하므로 거래량이 많아지면 좀 더 많은 퀀트 인력이 필요한 것은 사 실입니다. 금융위기 이후로 이러한 직업의 특성이 한 은행 내부를 넘어 금융 업계 전체적으로 적용되 는 것이 현재의 추세입니다. 파생상품의 특징 중에 서 쌍방거래라는 특징을 설명 드렸습니다. 예를 들 어 A와 B라는 은행이 한 상품을 거래 한다면 가격 결정과 위험관리를 위해서 각각의 은행에 퀀트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파생상품의 거래가 투명화 되면서 쌍방간의 거래가 아닌 거래소(exchange)나 중앙청산소를 통해 거래가 이루어지게 되면 중앙청 산소의 퀀트가 만든 표준 가격모형을 모든 거래 참 첫째, 주로 박사학위자 분들께 해당되는 되는데, 투자은행이 연구소나 학교가 아니듯 퀀트가 연구직 이 아님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퀀트가 업무 중에 가끔은 정답이 없는 문제를 해결하고, 논문으로 나 와 있지 않은 모델을 새로 만들어 써야 하는 경우 가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순수 연구를 위해서 할 애 할 수 있는 시간이 전체 업무 시간의 10%를 넘 지 않습니다. 새로운 모델의 개발보다는 현재 있는 모델을 잘 운용해서 매일매일 차질 없이 거래를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유지하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많은 시간을 이미 이용하고 있는 모델의 유 지 보수에 할애해야 하고, 새로운 모델을 교체할 때는 새로운 모델이 가져올 가격과 위험의 변화를 수없이 테스트해서 모형 교체 후에 사고가 발생하 지 않는데 많은 시간을 씁니다. 따라서 박사과정에 서와 같이 창조적인 연구 활동을 기대하시고 퀀트 가 되신다면 나중에 후회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자들이 이용하게 되므로 결과적으로 시장 전체의 퀀트 수는 줄어들게 됩니다. 둘째, 정량적인(quantitative) 의사소통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수학을 전공하신 분들은 다른 공대 하지만 부정적인 전망을 상쇄하는 긍정적인 변 화들도 있습니다. 말씀 드린 것처럼 파생상품의 거 래는 증가 추세에 있고, 금융위기 이후 파생상품을 규제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유형의 퀀트 업무가 생 기고 있습니다. 모형의 실수로 발생하는 시스템 위 험을 줄이기 위한 모형 점검(model validation)에 관한 업무가 하나 예입니다. 모형 퀀트는 일선의 퀀트들이 만들어 놓은 모델을 독립적으로 점검해서 문제점을 지적하는 업무를 수행합니다. 금융위기 이후에 각 중앙은행들은 (미국의 경우 연방준비은 행(federal reserve bank)) 파생상품 거래를 모니 터하고 규제하기 위해서 퀀트를 채용하고 있습니 다. 전반적으로 은행의 자본에 대한 규제가 강화 되면서 여러 가지 종류의 위험척도(risk metric)가 요구되는데, 은행의 입장에서 볼 때 누군가 더 많 은 계산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퀀트를 직업으로 고려하는 분들께 구직 중이나 10 ∙ 대한수학회소식 전공자들에 비해서 이론을 말로 풀어나가는 데 익 숙하지 않은 경향이 있습니다. 아마도 말보다 기호 와 수식을 사용하는 수학의 특성 때문이 아닌가 생 각합니다. 하지만 파생상품 거래와 같은 퀀트 업무 에서는 큰 돈이 걸려 있어 업무 강도나 긴장감이 높은 편인데, 이런 상황에서 빠른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의사소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월가 에서는 퀀트를 채용할 때 서류심사를 통과한 지원 자들에게 면접 시에 수학 퀴즈를 내서 풀어 보도록 합니다. 답이 틀렸더라도 어떤 추리 과정을 거쳐서 그런 답에 도달했는지를 논리 정연하게 설명할 수 있는 지원자들이 후한 점수를 받는데, 그것이 바로 퀀트 실무에서 필요한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퀀트 들끼리 모델을 얘기하는 경우는 물론이고, 퀀트들 이 만든 모형을 이용하지만 전문적인 금융공학 지 식이 없는 트레이더에게 모델의 특성을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 153호 마지막으로 꼭 퀀트를 커리어의 목표로 두기보 역사를 통해서 끊임없이 발전해 왔듯이, 금융수학 다 은행의 다양한 직종을 폭넓게 염두에 두셨으면 역시 금융의 변화와 함께 진화해 나가는 흥미로운 합니다. 퀀트는 전문화된 직종이라 보편적인 은행 학문이 될 것으로 기대하며 글을 마칩니다. 의 업무에서 다소 거리가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단적으로 얘기해서 미국의 월가든 한국의 여의도건 [저자 약력] 퀀트 업무만을 잘 수행하는 것만으로 은행의 CEO 자리에 오를 수는 없을 것입니다. 퀀트만의 전문 영역을 넘어 본편적인 업무에서 은행의 수익 창출 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커리어가 발전되어야 하 므로 퀀트 업무를 하면서도 수학 모형뿐만 아니라 1994~2000 카이스트 수학과 학사 2000~2005 MIT 응용수학 박사 2005~현재 월가의 투자은행 퀀트 KMS 금융 시장과 은행의 비즈니스를 모두 폭 넓게 이해 하려는 노력을 하셔야 합니다. 앞서 말씀 드린 금 융수학의 대중화라는 측면에서 금융수학의 분석능 력이 중요하게 사용되는 영역이 점점 늘고 있는 추 세입니다. 퀀트로 우선 취업을 하셨더라도 다른 영 역으로 업무를 확대해 나갈 수 있는 환경이 앞으로 더 좋아 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끝맺는 말 동 소식지에 앞서 실린 “금융수학 소개”라는 글 은11) ‘아이러니컬하게도 가장 순수한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 수학과 가장 응용적인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 금융이 서로 맞닿아 있는 곳이 금융수학’ 이라는 얘기로 글을 시작하는데, 적절한 지적이 아 닐 수 없습니다. 금융수학이 사용되기 시작한 지난 30년 동안 파생상품의 거래는 엄청나게 증가했고, 사람이 아니라 컴퓨터를 통해서 몇 만분의 일 초 단위로 주식 거래가 이루어지고, 퀀트라는 새로운 직업군을 탄생시키는 등 금융수학은 금융을 양과 질 모두를 크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러한 급속한 팽창의 과정에서 금융수학의 문제점이 2009년의 금융위기를 통해서 노출되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금융수학이 이루어 놓은 긍정적인 변화는 되돌릴 수 없는 대세로 굳어졌으며 금융 시장은 드러난 문 제점들을 보완하여 금융수학의 성과를 더욱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금융이 인류의 11) 전인태, ≪대한수학회소식≫ 제106호(2006년 3월), “금융수학 소개” 2014년 1월호 The Newsletter of the KMS ∙ 11 ICM 2014 특집기사 ■ ICM의 꽃 필즈상과 역대 수상자 소개 김도한 (서울대학교, ICM 2014 공동 자문위원장) 머리글 2009년 4월 중국 푸저우에서 열린 국제수학연 맹(IMU) 연례 집행위원회가 2014년 세계수학자대 회(ICM) 개최지를 서울로 결정한 후 어느 덧 5년 이 지나 세계수학자대회를 여는 해를 맞이하여 ICM의 꽃인 필즈상에 관한 글을 쓰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 대한수학회와 처음으로 관계를 맺은 필즈상 수 상자는 히로나카 교수이다. 히로나카 교수는 1970 년 필즈상을 수상한 후 1972년 4월 한국을 방문하 여 서울대 문리대 대강당에서 대수기하학에 관하여 2008년 5월 선릉에서 (사진 왼쪽부터) 히로나카 교수, 필자, 박형주 교수 강연을 하였다. 그 당시 필자를 포함한 많은 대학 원생들은 대수기하학이라는 분야가 있는 줄도 몰라 AID 차관(Act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loan, “‘대수학과 기하학’은 아니겠지?”하고 얘기하던 기 개발도상국의 경제개발을 위해 미국이 제공하는 장 억이 난다. 히로나카 교수는 한반도에서 가까운 야 기융자의 하나임) 지원으로 열린 서울대 국제 수학 마구치현 태생이라 항상 한국에 친밀감을 가지고 워크샵에서도 강의를 하였고, 2010년 전후 3년간 있었고 또한 브랜다이스대학에서 임덕상 교수와 같 서울대 수리과학부에서 초빙석좌 교수로 가르치면 이 재직 중 경쟁적으로 연구를 하면서 쌓은 우정으 서 우수한 학생들을 배출하였다. 그 중에 한 명인 로 그 당시 수학 연구가 거의 불모지였던 한국을 허준이 군은 현재 미국 전체 박사과정생 중에서도 방문하였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에도 1979년 여름 가장 우수한 학생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고 한다. 12 ∙ 대한수학회소식 제 153호 그 다음은 젤마노프 교수이다. 김종식 교수가 대 [1950년] 한수학회장으로 재임 중이던 1992년에 명효철 교 ‣ 로랑 슈와르츠(Laurent Schwatz, 1915~2002, 수가 다음(1994년) 필즈상 수상자는 제한적 번사 프랑스): 이론 물리학에 나오는 디락 델타 함수를 일 이드 문제를 해결한 젤마노프 교수가 틀림없으니까 반화한 범함수 개념의 초함수(distribution)를 발전시 1년 전에 초청을 하여 집중 강의를 하고 강의록을 켜 미분 연산을 자유롭게 하고 해석학의 지평을 넓힘. 제작하여 팔면 대박이 날 것이라고 조언을 하였다. ‣ 아틀레 셀버그(Atle Selbrg, 1917~2007, 노르웨 그 당시 주위에 젤마노프 교수를 아는 사람이 하나 이): V. Brun의 체(sieve) 방법의 일반화를 발전시켜, 도 없어 모두 반신반의 하는 분위기였으나 김종식 리만 제타 함수의 영점 정리에 관한 주요 결과와 소수 회장은 선배의 말을 믿고 젤마노프 교수를 초청하 의 정리의 초등적 증명. 여기서 초등적 증명이란 쉬운 여 강의록을 만들었다. 이 강의록은 1994년 취리 증명이 아니라 복소수적 방법을 쓰지 않았다는 뜻으로 히 세계수학자대회 프로시딩에서 파이트(W. Feit) 증명은 훨씬 더 복잡함. 교수가 젤마노프 교수의 업적 소개를 할 때에도 참 고 문헌으로 나왔다. 참고문헌에 나온 것을 그대로 적으면 《Nil rings and periodic groups, Korean Math. Soc. Lecture Notes 1992, Korean Math. Soc. Seoul, South Korea》인데, 강의록은 생각보 다 팔리지 않았지만 대한수학회를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충분히 하였다고 생각한다. 젤마노프 교수 는 그 이후에도 고등과학원 초빙 석좌교수로 재직 하면서 한국 수학의 국제화와 서울 ICM 유치에도 음으로 양으로 큰 역할을 하였다. 2014년 1학기부 터는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에 초빙 석좌교수로 강 [1954년] ‣ 구니히코 고다이라(Kunihiko Kodaira, 1915~ 1997, 일본): 조화적분론에서 주요 결과를 얻어 캘 러 다양체, 더 구체적으로 대수적 다양체에 응용. 또 한 층 코호몰로지(sheaf cohomology)를 사용하여 이 러한 다양체가 호지(Hodge) 다양체인 것을 보임. ‣ 장-피에르 세르(Jean-Pierre Serre, 1926년생, 프랑스): 구면의 호모토피 군에 관한 주요 결과, 특히 스펙트럴 수열의 방법을 써서 얻음. 또한 층의 이론을 사용하여 다변수복소해석학의 주요 결과들을 다시 정 립하여 확장함. 의를 할 예정이다. [1958년] 먼저 52명의 필즈 메달 수상자의 아주 간략한 업적이나 전공 분야 소개 다음에 국가별 통계와 기 관별 통계, 필즈상의 역사, 여러 가지 재미있는 사 실을 간락하게 적도록 하겠다. ‣ 클라우스 로스(Klaus F. Roth, 1925년생, 영국): 대수적 수를 유리수로 근사시키는 것에 관한 투에-지 겔(Thue-Siegel) 문제를 해결하였고 등차수열에서 3 항이 빠진 수열은 밀도가 이라는 1935년 에르되시 (Erdös)-투란(Turan)의 예상을 증명함. ‣ 르네 통(Rene Thom, 1923~2002, 프랑스): 필즈 메달 수상자와 간략한 업적 소개 [1936년] ‣ 라스 알포스(Lars Ahlfors, 1907~1996, 핀란 드): 전해석함수와 유리형함수의 역함수의 리만곡면에 관련된 덮개공간의 연구로 해석학의 새 분야 개척. ‣ 제시 더글러스(Jesse Douglas, 1897~1965, 미 국): 고정된 경계로 결정되는 극소곡면을 구하는 플라 토(Plateau) 문제 해결. 1954년 대수적 위상수학에 코보디즘(cobordism) 이 론을 창안 발전시킴. [1962년] ‣ 라스 회르만더(Lars Hormander, 1931~2012, 스웨덴): 편미분방정식의 연구, 특히 초함수 이론을 사용하여 선형미분작용소의 일반 이론 확립. ‣ 죤 밀너(John W. Milnor, 1931년생, 미국): 7차 원 구면이 여러 개의 미분구조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미분위상수학을 탄생시킴. 2014년 1월호 The Newsletter of the KMS ∙ 13 [1966년] 모듈라이 다양체의 존재와 구조의 문제와 대수곡면론 ‣ 마이클 아티야(Michael F. Atiyah, 1929년생, 영 에 여러 중요한 공헌. 국): 히르체부르흐와 -이론 공동연구, 싱어(Singer) 와 함께 복소다양체 위의 타원작용소의 지표정리 증 명, 보트(Bott)와 함께 공동연구로 렙쉐츠 공식과 관 련된 부동점 정리 증명. ‣ 폴 코헨(Paul J. Cohen, 1934~2007, 미국): 힐 버트 23개 문제 중의 첫 번째 문제인 선택공리와 일 반화된 연속체가설이 독립적이라는 것을 증명함. ‣ 알렉상드르 그로땅디크(Alexander Grothendieck, 1928년생, 무국적): 웨유(Weil)와 자리스키(Zariski) 의 업적을 사용하여 대수기하학 전반의 기초적 발전에 큰 공헌. 그로땅디크 군과 환을 통하여 -이론의 개 념을 도입하였고 호몰로지 대수에 혁신을 가져옴. ‣ 스티븐 스메일(Stephen Smale, 1930년생, 미 국): 5차원 이상에서의 일반 푸앵카레 예상, 즉 모든 닫힌 차원 다양체가 차원 구면과 호모토피 동형이 면 차원 구면과 위상동형인 것을 증명함. [1970년] ‣ 알런 베이커(Alan Baker, 1939년생, 영국): 힐버 트 제7 문제의 해인 겔폰트-슈나이더 정리를 일반화 하여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초월수들을 만듦. ‣ 헤이스케 히로나카(Heisuke Hironaka, 1931년 생, 일본): 대수 다양체의 특이점 해소에 관한 자리 스키의 정리를 임의의 차원으로 확장함. ‣ 세르게이 노비코프(Sergei Novikov, 1938년생, 소련): 미분다양체의 폰트라긴 류의 위상적 불변성 등 의 증명을 통하여 위상수학 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함. ‣ 죤 톰슨(John G. Thompson, 1932년생, 미국): 파이트(W. Feit)와 함께 모든 비순환 유한단순군의 위 수는 짝수인 것을 보였음. 이를 확장하여 모든 극소유한 [1978년] ‣ 삐에르 들린뉴(Pierre R. Deligne, 1944년생, 벨 기에): 리만 가설을 유한체로 일반화하는 3가지의 웨 유 예상을 해결하였고 대수기하학과 대수적 정수론을 통합하는데 큰 역할. ‣ 챨스 페퍼만(Charles L. Fefferman, 1949년생, 미국): 저차원 복소해석학에서의 고전적인 결과들을 고차원 조화해석학으로 바르게 일반화시키는 혁신적인 연구를 수행함. ‣ 그레고리 마굴리스(Gregori A. Margulis, 1946 년생, 소련): 리(Lie)군의 구조 이론에 혁신적인 방법 을 도입하여 조합론, 미분기하, 에르고드 이론, 동력학 계와 리군 등 여러 분야에서 많은 문제를 해결. ‣ 대니얼 퀼런(Daniel G. Quillen, 1940년생, 미 국): 고차원 대수적 -이론을 구축하여 군론과 모듈 이론 등을 포함한 대수학에서의 중요한 문제 해결. [1982년] ‣ 알랭 콘느(Alain Connes, 1947년생, 프랑스): 작 용수 대수 이론, 특히 일반적인 분류와 III형 인자의 구조 정리와 대수의 미분기하에의 응용에 공헌. ‣ 윌리엄 서스턴(William P. Thurston, 1946년생, 미국): 해석학, 위상수학, 기하학의 상호작용을 보여 2, 3차원, 즉 저차원 위상수학 연구를 근본적으로 바 꿈. 그리고 아주 많은 종류의 닫힌 3차원 다양체가 쌍 곡구조를 갖는다는 개념으로 공헌. ‣ 싱-퉁 야우(Shing-Tung Yau, 1949년생, 중국): 미분방정식, 대수기하학에서의 칼라비 예상, 일반상대 론의 양질량 예상, 실 및 복소 몽쥬-앙페르 방정식 분 야에 많은 공헌. 단순군, 즉 진부분군들이 가해인 유한단순군을 모두 결정. [1986년] [1974년] ‣ 엔리코 봄비에리(Enrico Bombieri, 1946년생, 이태리): 소수, 한잎(univalent) 함수와 국소 비버바흐 예상, 다변수복소해석학, 편미분방정식과 극소곡면론, 특 히 다차원에서의 번스타인 문제의 해 등에 큰 공헌을 함. ‣ 데이빗 멈퍼드(David Mumford, 1937년생, 미국): 14 ∙ 대한수학회소식 ‣ 사이먼 도널드슨(Simon Donaldson, 1957년생, 영국): 4차원 exotic 공간, 즉 4차원 유클리드 공간과 위상동형이나 미분동형은 아닌 4차원 다양체의 존재 를 보임. ‣ 게르트 팔팅스(Gerd Faltings, 1954년생, 독일): 정수론에서 50년 동안 미해결이었던 유명한 모델 제 153호 (Mordell) 예상을 증명. 러시아): 곡선의 모듈라이 공간의 교점 이론, 파인먼 ‣ 마이클 프리드먼(Michael Friedman, 1951년생, 도형과 저차원 위상, 토러스 작용을 통한 유리 곡선의 미국): 4차원 위상다양체에 관한 푸앵카레 예상 증명. 개수 계산, 푸아송 다양체의 변형 양자화 등 현대 이 [1990년] ‣ 블라디미르 드린펠트(Vladimir Drinfeld, 1954년 생, 소련): 양자론과 수론, 특히 랭글랜즈(Langlands) 예상의 아주 특수한 경우를 해결. ‣ 본 존스(Vaughn F. R. Jones, 1952년생, 뉴질랜드): 론물리학에 관련된 수학의 구조에 관한 연구. ‣ 커티스 맥멀렌(Curtis T. McMullen, 1958년생, 미국): 클라인 군, 쌍곡 3차원 다양체, 복소 동력학계 에 관한 연구. [2002년] 폰 노이만 대수의 다항식 불변량을 매듭 이론에 도입. ‣ 로랑 라포르그(Laurent Lafforgue, 1966년생, ‣ 시게후미 모리(Shigefumi Mori, 1951년생, 일 프랑스): 함수체에 대한 일반적 랭글랜즈 대응 관계 본): 3차원 대수 다양체 분류에 관한 모리 프로그램 (또는 극소 모텔 프로그램) 정립. 증명. ‣ 블라디미르 보에보트스키(Vladimir Voevodsky, ‣ 에드워드 위튼(Edward Witten, 1951년생, 미 1966년생, 러시아): 대수 다양체의 모티브 코호몰로 국): 양질량 예상의 단순한 증명, rigidity 정리, 위상 지와 호모토피를 도입 발전시켜 체의 -이론에 양자장 이론을 통하여 기하학과 양자장 이론의 결합. 관한 밀너(Milnor) 예상을 증명. [1994년] [2006년] ‣ 쟝 부르갱(Jean Bourgain, 1954년생, 벨기에): ‣ 안드레이 오쿤코프(Andrei Okounkov, 1969년 바나흐 공간의 기하학적 성질, 조화해석학, 에르고딕 생, 러시아): 그로모프-위튼 불변량을 완전히 기술하 이론, 비선형편미분방정식을 아우르는 해석학 전반에 였음. 무작위 분할의 분포와 가우스-에르미트 확률 행 관한 연구. 렬의 고윳값 분포의 관계를 규명하고, 통계역학의 이 ‣ 삐에르 리용(Pierre-Louis Lions, 1956년생, 프 랑스): 해밀튼-야코비 방정식의 비스코시티 해와 볼 츠만 방정식의 재규격화된 해를 제시하여 비선형편미 분방정식 전반에 관한 연구에 공헌. ‣ 쟝 요코즈(Jean-Christophe Yoccoz, 1957년생, 프랑스): KAM 이론 확장을 통한 동력학계 전반에 관한 연구. ‣ 에핌 젤마노프(Efim Zelmanov, 1955년생, 러시 아): 리-대수에서의 제한적 번사이드 문제 해결. [1998년] ‣ 리처드 보셔즈(Richard E. Borcherds, 1959년 생, 영국): 전공 분야는 카츠-무디 대수로 몬스터 군과 타원곡선 사이에 상호 관련성을 주는 문샤인 예상 증명. ‣ 윌리엄 고워즈(William T. Gowers, 1963년생, 합체(dimer) 모형의 상도표(phase diagram) 및 경계 면 극한 곡선을 대수기하학적으로 기술함. ‣ 그리고리 페렐만(Grigori Perelman, 1966년생, 러시아): 푸앵카레 예상과 더 일반적인 서스턴의 기 하화 예상 증명. ‣ 테렌스 타오(Terence Tao, 1975년생, 호주): 조 화해석학, 편미분방정식, 조합론 여러 분야에서 탁월 한 업적을 냄, 특히 그린과 함께 “소수의 집합이 임의 의 길이의 등차수열을 포함하느냐”는 오래된 문제를 해결. ‣ 벤델린 베르너(Wendelin Werner, 1968년생, 프 랑스): SLE(Schramm-Loewner evolution) 방법을 사용하여 평면 브라운 운동의 바깥 경계의 프랙털 차 원이 4/3이라는 만델브로트 예상을 증명. 영국): 조합론을 사용하여 바나흐 공간 분야에 중요 [2010년] 한 공헌. 또한 조합적 정수론에서 에르되시-투란 예상 ‣ 엘론 린덴스트라우스(Elon Lindenstrauss, 1970 에 관한 연구. ‣ 막심 콘세비치(Maxim Kontsevich, 1964년생, 2014년 1월호 년생, 이스라엘): Littlewood 추측과 quantum unique ergodicity 예상을 에르고딕 이론을 이용하여 해결. The Newsletter of the KMS ∙ 15 ‣ 응오 바오 차우(Ngo Bao Chau, 1972년생, 베트 남): 랭글랜즈 프로그램의 기본 보조정리 증명. ‣ 스타니슬라프 스미르노프(Stanislav Smirnov, 1970년생, 러시아): 통계역학의 대표적인 이산 모형 인 삼투 모형과 이징 모형의 경우, SLE(SchrammLoewner evolution) 방법을 사용하여 경계면의 척도 수상시 재직 기관별 필즈 메달 수 메달 수 13개 7개 5개 4개 3개 극한의 존재성과 등각 불변성을 증명. ‣ 세드릭 빌라니(Cedric Villani, 1973년생, 프랑스): 2개 볼츠만 방정식의 맥스웰 균형해로의 수렴성과, 플라즈 마 물리학의 비선형 란다우-감쇠에 대한 수학적 증명. 1개 필즈상의 역사 1924년 ICM은 원래 뉴욕시에서 개최하기로 되 국가명 프린스턴대학 파리대학 프랑스고등과학연구소 케임브리지대학, 하버드대학 옥스퍼드대학 매사추세츠공과대학,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 브럿셀자유대학, 모스크바국립대학, 스탠퍼드대학, 임페리얼대학(런던) 리용고등사범학교, 캘리포니아대학(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샌디에이고), 제네바대학, 예루살렘대학, 하르키브대학, 교토대학, 낭시대학, 피사대학, 럿거스대학, 스톡홀름대학, 스트라스부르대학, 위스콘신대학 어 있었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1922년 4월 취소 되고 토론토에 양보하였다. 회의는 조직위원장인 필즈(J.C. Fields)의 헌신적인 노력과 기금 모금으 로 차질 없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재정적으로 도 재원이 남아 필즈는 국제적인 수학상을 제정하 는 것을 국제수학계에 제안하였고 상을 위한 기금 을 헌신적으로 모으기 시작하였다. 필즈는 과로로 1932년 8월에 사망하여 9월에 열린 취리히 세계수학자대회에는 참석하지 못하였 필즈 메달의 모양 필즈 메달 앞면에는 아르키메데스 초상과 라틴 어로 Transire suum pectus mundoque potri(자 신 위로 올라서 세상을 꽉 붙잡아라)라는 문구와 로마 수자로 메달이 만들어진 연도가 적혀 있는데 MCMXXXIII(1933) 대신에 MCNXXXIII로 오자가 있다. 다. 대신 평생 독신으로 지내 대부분의 재산을 새 로운 상 기금으로 기부하였다. 필즈의 이러한 노력 으로 취리히 ICM에서 필즈가 제안한 상을 받아 들 여 필즈상이라 부르기로 하였고 2명의 수학자에게 수상하기로 의결하였다. 국가별 필즈 메달 수 메달 수 11개 10개 9개 6개 3개 2개 1개 16 ∙ 대한수학회소식 뒷면에는 라틴어로 CONGREGATI EX TOTO 국가명 미국 프랑스 러시아(소련(3) + 러시아(6)) 영국 일본 벨기에 독일, 호주, 중국, 핀란드, 이스라엘, 이탈리아, 노르웨이, 뉴질랜드, 스웨덴, 베트남 ORBE MATHEMATICI OB SCRIPTA INSIGNIA TRIBUERE(전 세계에서 모인 수학자들이 탁월한 업적에 (이 상을) 수여한다)라고 쓰여 있다. 배경은 나무 가지 뒤에 아르키메데스가 가장 자랑스러워 한 결과인 구면과 외접하는 원기둥의 겉넓이의 비 가 2:3이라는 사실을 설명하는 묘비의 그림이 새겨 져 있다. 제 153호 필즈 메달에 관한 특기할만한 여러 가지 사실 ‣ 1954년 수상자 세르는 27살에 메달을 받아 최연 소자가 되었고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면 한국에서 도 필즈상 수상자가 빠른 시일 내에 나올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KMS ‣ 1966년 수상자 그로땅디크는 소련의 동유럽에 대한 무력 사용을 비난하고 모스크바 ICM에 불 참석하고 메달은 대리 수령하였다. ‣ 1970년과 1978년 수상자인 노비코프와 마굴리 스는 소련 정부의 불허로 ICM에 참석할 수가 없 었다. 노비코프의 부인은 한국계(카레스키) 3세 로 성은 최씨이다. ‣ 1982년 ICM은 바르샤바에서 개최 예정되었으나 계엄령으로 인하여 1983년으로 연기되었다. 이 때 필자가 한국인으로는 유일한 참석자이었다. ‣ 1990년 위튼은 필즈 메달을 받은 최초의 물리학 자가 되었다. ‣ 1998년 페르마 예상을 증명한 와일즈는 나이 제 한으로 필즈 메달은 받을 수가 없었고 대신 은 패(silver plaque)를 받았다. ‣ 2006년 페렐만은 필즈 메달 수상을 거부했고 ICM에 참석하지도 않았다. ‣ 2명의 필즈 메달 수상자를 제자로 둔 수학자는 E.M. Stein(페퍼만과 타오)과 Gerard Laumon (라포르그와 응오)이다. 결어 2007년 우리 수학계가 IMU 2등급에서 4등급으 로 상향 조정된 것을 축하하는 연회에서 2014년 세계수학자대회를 유치한다고 선언하였을 때 가능 하리라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많은 참석자들 은 대신 2018년이나 2022년에 유치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를 기원하였다. 그러나 수학계가 단합하 여 꿈과 희망을 가지고 이 일을 이루어 내었다. 한국에서 필즈상 수상자가 나오는 것도 마찬가 지라고 생각한다. 현재 상황에서는 한국인 필즈상 수상자가 나오는 것이 조금 시간이 걸린다고도 생 각할 수 있으나 우리 수학계도 다시 꿈과 희망을 가지고 단합하여 우수한 학생들과 젊은 수학자들이 2014년 1월호 The Newsletter of the KMS ∙ 17 이만근의 수학 오디세이 ■ 현대 수학의 고향을 찾아서 하버드대학교의 야우(2) 이만근 (동양대학교) <기획 시리즈> 이만근의 수학 오디세이 현대 수학의 고향을 찾아서 1. 2. 3. 4. 제150호(2013년 7월호) IAS의 랭글랜즈(1) 제151호(2013년 9월호) IAS의 랭글랜즈(2) 제152호(2013년 11월호) 하버드대학교의 야우(1) 제153호(2014년 1월호) 하버드대학교의 야우(2)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에서 오랫동안 미해결 문 제로 남아있던 문제, 짝수 차원의 다양체에서 중력 장에 대한 아이슈타인 방정식을 풀었다. 이로부터 자연스럽게 ‘우주의 에너지의 합은 양(positive)이 며 우주는 안정적’이라는 결론도 얻게 되었다.” 아인슈타인은 모든 물리적 존재는 반드시 안정 적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에너지라는 개념을 우주 우주에 대하여 생각할 때마다 나는 ‘진리의 바닷 에 도입한 그는 독립되어 있는 물리적 시스템이 안 가에서 모래알을 가지고 노는 어린이’라는 뉴턴의 정적이면 중력과 물체를 포함한 모든 에너지의 합 표현을 되새기게 된다. 도대체 얼마나 더 긴 세월 은 양이 될 것이라고 추측했다.2) 이 가설은 상대성 이 흘러야 우리는 우주의 모양을 알 수 있을까? 야 이론의 바탕이 되는 것이었지만 누구도 증명할 수 우는 내가 만나본 그 누구보다도 우주에 대하여 많 없었다. 야우의 증명으로 인해 아인슈타인의 이론 이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는 은 논리적으로 완벽한 체계라는 사실이 비로소 확 일이었다. 나는 굶주림에 지친 아이가 먹을 것을 인된 셈이다. 찾듯 쉼 없이 질문을 쏟아 냈다. - 당신의 중요한 또 다른 업적으로 우주가 안정적이라는 - 시스템이 안정적이라는 것은 우주가 팽창하거나 축소하 증명이 있는데? 지 않고 제자리에 멈추어있다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칼라비의 추측을 증명하고 3년 후, 숀1)과 함께 “우주의 팽창이나 축소와는 관계없는 이야기이다.” 1) 리차드 숀(Richard Schoen, 1950~현재): UC버클리대학교 수학자, 미분기하학 2) 이 이론은 ‘양 질량의 추측’이라고 불린다. 18 ∙ 대한수학회소식 제 153호 그는 전혀 다른 이야기라고 했다. 칼라비 추측에 대한 그의 증명이 여기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에 대하여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불가 능한 일이리라. 이 증명은 극소곡면(minimal surface)3)에 대한 여 러 연구 결과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극소곡면에서 사용되는 방정식은 보통의 미분기하에서 사용되는 것과 다른 것이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곡선이나 곡 면을 표현하기 위하여 미분방정식을 사용하지만, 극소곡면에서는 비선형 편미분 방정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 분야가 특히 어렵다고 미분기하학자들은 말한다. 야우는 시공간에서 극소곡면이 어떻게 생 겼는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분석함으로서 아인슈 타인이 정의한 질량이 옳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현 야우의 연구실에는 자신이 편집한 그의 아버지의 철학 전집(가운데 4권의 책)이 있다. 재 극소곡면에 대한 연구는 5차원 이상으로 확대 되면서 위상수학, 대수기하, 상대성이론의 발전에 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의 두 증명이 물리학자들에게는 블랙홀이 어 떻게 형성되어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매우 중요 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이 공로 로 그는 1982년 필즈메달리스트가 되었다.4) - 뉴욕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당신 인생에 가장 영향 을 끼친 사람은 부친이라고 말했던데? “내 아버지는 철학자셨는데 내가 수학을 공부하 도록 격려한 분이다. 아버지는 내가 14살이 되던 해 에 돌아가셨지만 그와 가졌던 수많은 대화는 나를 200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60주년 행사장에서 야우 문학과 철학을 사랑하는 청년으로 만들어 주었고, 추상적인 사고의 힘과 매력을 알게 해주었다. 특히 수학을 연구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이 무렵 나는 평면기하의 아름다움에 완전히 매료되어 있었다.” 부친에 대한 그의 존경심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책이 그의 연구실에 있었다. 야우는 부친 사후 30 년 만에 그의 육필 원고를 자신이 직접 편집하여 4 권의 책으로 출판했다. 중국 고전이나 철학, 역사 - 어린 시절의 당신 삶은? “홍콩 변두리의 가난한 동네에서 전기도 수도도 없는 생활이었다. 당시는 본토에서 많은 교수들이 홍콩으로 건너와 자리를 찾던 시절로, 특히 홍콩은 영국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영어를 잘하는 사 람을 우대하던 때였다. 영어를 할 줄 몰랐던 내 아 버지는 연봉 2,000홍콩달러에 만족해야 했다. 당시 3) 이를테면 비눗방울은 항상 부피는 최대로, 겉넓이는 최소로 가지려는 형태로 변화되는데, 이런 형태의 변형을 극소 곡면이라 부른다. 4) 그는 편미분 방정식과 칼라비 추측에 대한 공헌으로 1982년 필즈메달리스트가 되었으나, 당시 폴란드 바르샤바에 서 열리기로 한 세계수학자대회가 1년 연기되는 바람에 실제 수상은 1983년에 이뤄졌다. 2014년 1월호 The Newsletter of the KMS ∙ 19 홍콩 변두리의 방 2개 아파트의 월 임대료는 1000 사학위를 받았다. 2년 만에 모든 과정을 끝낸 것이다. 홍콩달러 정도였다.” 졸업과 동시에 IAS(Institute for Advanced Study 야우가 태어난 해에 공산당이 중국 전역을 장악하 자 그의 부친은 가족을 모두 데리고 홍콩으로 이주 했다. 부친은 누군가의 강요에 의하여 복종되는 분 위기를 싫어했던 자유주의자였다고 야우는 설명했 다. 그의 부친은 한 작은 전문대학5)에서 철학교수 at Princeton) 멤버가 되어 1년간 프린스턴에 머물 다 다음 해에 그는 뉴욕주립대학교6) 부교수로 임 용되었고, 이후 스탠포드대학교, IAS, UC샌디에고 대학교 교수를 거쳐 1988년 이래로는 현재까지 25 년 동안 하버드대학교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로 자리를 잡았지만 10명의 대가족이 그의 월급으로 살기에는 항상 부족했기 때문에 그의 모친은 뜨개 질과 수공업제품을 만들어 가족의 생계를 도왔다. 그의 부친의 사망이후, 그도 다른 아이들처럼 사 춘기를 겪었다. 학교에 무단결석이 잦았고 거리의 갱 리더로서의 역할을 학교생활 보다 더 즐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수학은 항상 가까이 있었다. 깊게 이해할수록 수학에 대한 흥미는 더 커져갔다. 수학 은 너무나 우아하고 매력적이어서 도저히 그 아름 다움에 저항할 수가 없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그는 동시에 수학과 관련된 분야, 이를테면 물리학이나 공학까지도 관심을 넓혀갔다. - 당신 이력을 살펴보니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을 것 같 은데? “실제로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학사학위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런데 그것을 아무도 하버드 스퀘어(위)는 하버드를 대표하는 공간이다. 이 길을 따라 걷다 오른쪽으로 돌아서면 수학과가 있는 사이언스 센터(아래) 건물이 보인다. 신경 쓰지 않는다. 박사학위면 충분하지 않은가? 하하…. 홍콩대학교에 입학하여 3년이 되던 1969 년에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는 행운이 내게 찾아 - 중국에서 당신은 연예계의 스타 못지않게 유명하다는데? 왔다. 여러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던 UC버클리 출 “어찌 수학자가 그런 대중적인 인기를 누릴 수 신 교수님 한 분이 나에게 미국에서 공부해 보라고 있겠는가? 비교할 수 없는 일이다. 단지 필즈메달 제안했다. 결국 나는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장학 수상 이후부터 중국인 사이에서 내 이름이 널리 알 금을 약속한 UC버클리로 향했다.” 려진 것은 사실이다.” UC버클리 첫 학기에는 6개의 강좌를 듣기 위해 하버드대학교 물리학과 스트로밍거(Andrew Stro- 점심을 건너뛰는 것이 그에게는 흔한 일이었다. 22 minger)교수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에서 살이 되던 1971년에 당시 전설적인 중국인 기하학 의 그의 명성을 ‘중국 과학계의 떠오르는 황제’라 자 신셍 천(Shiing-Shen Chern)을 지도교수로 박 고 묘사하며, 그의 인기는 유명한 영화배우 부럽지 5) 1963년에 현재의 홍콩대학교의 일부로 흡수된 전문대학 6) State Univ. of New York at Stony Brook 20 ∙ 대한수학회소식 제 153호 않을 정도라고 말했다. 야우의 자작시가 중국의 음 는 계기가 되었다. 악교수에 의해 작곡되어 학회 만찬장에서 연주되었 다는 기록도 있는 것을 보면 그에 대한 중국인들의 사랑을 짐작할 만하다. - 중국 수학 발전을 위하여 무척 애를 쓴다고 들었다? “현재 중국에는 내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여 만 든 수학연구소가 3개(홍콩, 베이징, 항저우) 있다. - 장쩌민7) 주석과의 만찬에서 있었던 한시(漢詩) 암송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나는 연구 기금을 모으고, 이 세 기관의 책임자로 서 역할을 하기 위하여 정기적으로 각 연구소를 방 “저녁 만찬자리에서 몇 잔의 술이 오간 후, 흥에 문하고 있다. 그렇다고 연구소에서 월급을 받는 것 겨워 장쩌민 주석은 이태백 시의 첫 소절을 낭송했 은 아니다. 나는 중국에서 단 한 푼도 해외로 돈을 다. 미국에서 온 48세의 젊은 수학자가 가지고 있 가져간 일이 없다. 이 돈은 젊은 수학자들의 연구 는 중국의 고전에 대한 지식을 시험해 볼 요량도 를 위해 쓰여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있었을 것이다.” 중국 뿐 아니라, 야우는 국립이론과학센터(NCTS) 장쩌민의 첫 소절에 이어 야우는 시의 남은 부 를 타이완에 만드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으며 분을 모두 낭송함으로서, 만찬 자리는 그의 중국 한동안 그가 직접 자문위원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고전 지식에 대한 해박함의 칭송으로 가득했다고 때로는 학자로서 연구하고 가르치며, 때로는 로비 전해진다. 스트로서 자금을 모으고, 때로는 전쟁터의 군인처 럼 분쟁을 마다하지 않는 그는 중국의 과학을 세계 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한다. 2004년, - 중국 본토 고향을 다시 찾아 간 적이 있나? “비록 중국 광둥성에서 태어났지만, 너무 어린 그의 조국은 인민문화대궁전에서 훈장을 수여함으 로서 그의 공헌에 깊은 감사를 표했다. 나이에 본토를 떠났기 때문에 내 고향에 대한 기억 은 홍콩뿐이다.” - 공개적으로 베이징대학교의 연구비 낭비를 비난하기도 세계적인 수학자로 명성이 널리 알려지던 1979 했는데? 년, 그는 처음으로 중국 본토에 있는 자신이 출생 지를 찾았다. 산악 지역인 고향 산토우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중국 당국의 허락이 필요한 때였다. 처음 에는 거절하던 중국 당국도 거듭된 그의 요청을 끝 까지 거절할 수는 없었다. 포장되지 않은 흙길이었 “당시 베이징대학교는 해외의 유명한 학자들을 교수 명단에 끼워 넣고 겨우 몇 달만 일하게 한 후 일반 교수와 같은 월급을 지급하곤 했다. 한국도 그런가? 이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지만 자동차가 다닐 수 있도록 잘 다듬어진 길을 중국 대학들의 이런 방법은 해외의 유명 교수들 따라 고향에 도착하니 마을 사람들이 천재 영웅의 이 이룩한 영광에 올라타서 같이 영예를 누리려하 귀환을 환영하며 소를 잡아 잔치를 벌여주었다. 세 는 것으로, 이 또한 젊은 학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월이 한참 지난 후에야 그는 자신이 이용한 고향길 연구비의 중요한 몫이 엉뚱한 곳으로 빠져나가는 이 오로지 그의 방문을 위하여 만들어졌다는 사실 것이라며 그는 분개했다. 을 알게 되었다. 그는 두고두고 그런 일이 생겼다 는 사실을 미안해했다. 이 방문은 그에게 자신의 조국의 과학과 기술 수준의 후진성에 대하여 깨닫 - 페렐만의 증명8)에 대한 당신의 부정적 언급과 월 7) 江澤民(1926~현재): 그는 1990년부터 2003년까지 중국의 최고지도자로 재직했다. 2014년 1월호 The Newsletter of the KMS ∙ 21 간지 뉴요커(The New Yorker)와의 논쟁에 대하 이 없다. 단지 모든 사람이 이해하기에는 부족하다 여 물어도 좋은가? 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증명을 검증하는 데 “모든 수학자는 다른 수학자들의 연구를 감시하 고 비평할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여기 3년이나 걸린 것이다. 증명의 진실성을 밝히는 것 은 학자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에 비전문가인 미디어(The New Yorker)가 끼어 2006년 10월 뉴요커는 다시 한 번 페렐만에 관 든 것이다. 그들은 수학의 속성을 이해할 수 없다. 련된 기사를 실었으며 여기에서는 야후의 입장을 나의 발언을 ‘가십거리’로 만든 것은 매우 부당한 어느 정도 설명해 주는 내용을 추가했다. 사실 이 일이다. 모든 수학적 논쟁은 학자들 사이에 이루어 질문은 나도 몇 번이나 망설이다 마지막으로 아주 져야 한다. 유쾌한 기억은 아니다.” 조심스럽게 꺼냈던 것이다. 학자의 자존심, 학문적 페렐만의 증명이 소개된 초기에 야우는 이 증명 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끈 이론 관련 학회의 한 연설에서 페렐만의 연구는 ‘중요한 아이디어가 대략적인 스케치로 이루진 경 우도 있고 완전한 증명이 빠져있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후 페렐만의 증명을 검증 하기 위하여 구성되었던 수학자 그룹이 페렐만의 경쟁자에 대한 존중심등에 관련된 것이라 더욱 조 심스러웠다. 인터뷰를 마치며 나는 야우가 칼라비 에게 보냈던 첫 번째 증명을 떠올렸다. 고대 그리 스 철학자처럼, 그는 완전하게 증명되기 전까지는 어느 것도 믿지 않는 수학자의 기질이 가득한 사람 일 것이다. 게다가 이 논쟁은 그의 수학적 업적과 는 전혀 상관이 없다. 증명은 도약이나, 빈 곳이 없는 완전한 것이라고 하버드에서 만난 천재 수학자와의 인터뷰를 마 발표함으로 야후의 언급이 페렐만을 무시하는 행동 칠 무렵에는 한밤중이 되었다. 그는 내일 아침 일 이었다는 비난이 있었다. 특히, 2006년 8월 뉴요커 찍 중국을 향해 떠나야 했다. 한국을 방문했던 그 는 ‘다양체의 운명(Manifold Destiny)’이라는 기사 의 기억을 소재로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며 연구실 와 함께 페렐만의 목에 걸린 필즈메달을 낚아채려 을 나섰다. 생각해보니 아직 난 저녁을 먹지 못했 는 야후의 모습을 삽화로 실었다. 스페인 마드리드 다. 어딘가에 가서 무엇이든지 먹어야겠다고 생각 에서 열린 필즈메달 수여식에 나타나지 않은 페렐 하면서 불 꺼진 하버드 스퀘어를 가로 질렀다. 사 만과 이를 시기하는 수학자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언스 센터 빌딩 위로는 차가운 공기를 뚫고 밤하 야후는 분노했다. 명백하게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 늘의 별이 빛나고 있었다. 려는 의도가 있는 기사였다. 그는 자신의 의도와 전혀 다르게 해석된 이 기사에 대해 반박하는 자신 의 주장을 12쪽 편지로 작성하여 웹에 게시했다. 2013년 4월 5일, 보스턴의 MIT 여기까지 왔는데 MIT를 보지 않고 보스턴을 떠 날 수는 없었다. 하버드 스퀘어의 한 샌드위치 가 - 논쟁을 이해할 수 없다. 의심하는 것은 수학자들의 본성 아닌가? “나는 페렐만의 증명에 도약이 있다고 말한 적 게에서 점심을 해결한 후, 여기서부터 MIT까지 걸 어 보기로 했다. 여행의 백미는 걷기이다. 걸으면 주위를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는 여유도 생기고, 8) ‘4차원 도형에서 표면에 놓인 모든 폐곡선이 수축되어 한 점이 될 수 있다면 이 도형은 본질적으로 3차원 구면과 같은 것’이라는 추측이 1905년 프랑스 수학자 푸앵카레(Henri Poincaré)에 의해 제기되었다. 이 추측은 많은 수학 자들의 관심을 불러 모았다. 특히, 1982년 콜롬비아대학교 교수였던 해밀턴(Richard Hamilton)은 공간의 형태를 조사하기 위하여 리키 흐름(Ricci flow)이라는 방법을 고안해 냈고, 야우는 이 방법이 푸앵카레 추측을 풀게 해줄 것으로 확신했다. 야우와 해밀턴이 공동 연구에 착수했으나 이 분야에서 큰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던 2003년경, 러시아 수학자 페렐만(Grigory Perelman)은 이 추측에 대한 증명을 인터넷에 올려놓았고, 많은 수학자들이 이 증 명이 옳은지 검증에 참여했다. 22 ∙ 대한수학회소식 제 153호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이 때문에 나는 여행 중에 가 자리 잡은 지역에 이르렀을 때 나타난 계단은 짧은 거리는 주로 걷는 편이다. 조금 긴 거리도 시간 마치 공사장의 임시계단이나, 뉴욕 외곽 어디쯤에 만 허락한다면 걸을 수 있는 곳까지는 걸어보려고 있을 법한 건물 외부의 소방용 비상계단처럼 아무 시도한다. 하버드대학교에서 MIT까지는 40여분 정 런 장식 없이 철근 구조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 도 걸으면 충분한 거리로 아주 멋진 산책 코스였다. 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발아래로 느껴지는 강철의 진동음은 이곳이 세계 첨단 과학의 메카 MIT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기 충분했다. 가장 고 전적인 느낌의 본관 건물 집기들조차 현대식 철 구 조물의 간단하고 가벼운 것들뿐이어서, 멋진 가죽 소파와 무거운 탁자로 연상되는 보통 대학의 중후 한 느낌은 찾을 수 없었다. 이전에는 전시회에서 위용을 보였을 법한 거대한 기계장치들이 건물 곳 곳에 별 관심을 받지 못한 채 가림막으로 덮여 있 MIT의 상징인 본관(위)과 그 건너편에 자리한 조각 장식품(옆). 사람의 모습을 한 이 기하적 구조물조차도 숫자와 수학적 기호로 가득하다. 는 것이 무심해 보였다. MIT는 고대 그리스 신전이나 파리의 유명 건축 물을 본 뜬 듯한 입구를 제외하고는, 그야말로 미 국의 실용성과 공과대학의 시스템이 결합된 구조물 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본관 건물의 맞은편에 자리 한 사람 형상의 조형물조차 각종 수학기호를 강철 로 엮어낸 현대적 구조물이었다. 학교 건물은 투박 했으며 실내는 갖가지 현대적 시설물과 실험 장치 로 가득했다. 미적 감각은 별로 고려하지 않은 듯한 정사각형 모양의 콘크리트 건물들이 거의 빈 공간 철근 구조를 그대로 들어낸 계단(위)과 휴게실의 단순한 현대식 가구(아래)는 전통적인 미국의 다른 대학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었다 없이 들어 차 있었고, 이 많은 빌딩들이 서로 연결 되어 마치 규모가 큰 한 건물을 걷고 있는 듯한 느 낌을 주었다. 캠퍼스 지도를 보니 모든 빌딩이 연 결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건물 집단별로 연결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대리석 장식이 멋진 중앙 출입구를 지나 수학과 2014년 1월호 The Newsletter of the KMS ∙ 23 수학과를 찾아 중앙의 돔 빌딩으로 들어선 나는 많은 사람들이 바쁜 걸음으로 한 방향을 향해 부지 런히 걷고 있음을 깨달았다. 분위기에 압도된 나머 지, 수학과의 위치를 물어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저 무리의 뒤를 부지런히 따라갔다. 긴 복도의 끝에 이르자 그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모두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이들을 따라 나도 방 향을 바꾸는 순간, 그들이 모두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 많던 이들이 모두 강의실도 들어가 버 린 것이다. 강의실 앞을 서성이다 조교(젊은 교수 일수도 있다)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이 무리의 정체 를 물었더니, 그들은 인근의 중고등학교 학생으로 MIT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하여 이 곳을 찾은 것이라고 답해주었다. 이 또한 MIT가 지역과 인류를 위하여 공헌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의 거의 전부를 사용하고 MIT 건축물 중 대표적인 크레스게 강당(Kresge Auditorium)은 케이마트(Kmart) 창업자의 기부에 의하여 1955년 건축된 것이다(위). MIT 수학과 사무실(아래) 있는 MIT 수학과라고 하여 다른 학교와 특별히 다 를 것도 없었다. 간혹 교수들 사이의 격렬한 토론 이 밖으로 새어나오는 연구실 앞 복도는 적막할 정 도로 인적이 없었고, 복도의 긴 벽면은 데카르트, MIT는 미국의 다른 명문대학에 비하면 비교적 최근에 개교한 학교이며, 미국 명문의 상징인 아이 비리그에 속해있지도 않다. MIT와 견주어지는 하 버드대학교보다 200년 정도 늦은 1861년에 실험 교육과 산업체와의 협력을 중심으로 하는 자연과학과 공학관련 학과를 중심으로 시작된 대학이다. 이 전 통은 그대로 이어져 199개의 공학 관련 프로그램 만을 대상으로 하는 대학 평가에서는 MIT가 1등을 놓친 적이 거의 없다. 종합적인 대학 평가에서는 파스칼, 리만 등의 유명수학자 얼굴의 포스터와 이 학교 출신 교수들의 업적과 낡은 사진이 걸려 있는 정도였다. 나는 수업을 막 마친 듯한 빈 강의실에 들어가 구석의 한 의자에 자리를 잡고 휴식을 취했 다. 칠판에 빼곡하게 적혀있는 수식과 창밖으로 보 이는 찰스강변 너머 보스턴 중심 빌딩의 풍경이 아 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버드대학교와 MIT의 공통점 중의 하나는 너무도 평범하여 오히 려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2, 3위를 오르내리는 이 대학은 노벨상 수상자 78 명, 미국 과학상 수상자 52명을 배출했으며, 졸업 생이 창업한 회사의 규모가 세계 11위 국가의 경 제 규모와 같다고도 한다. 재학생 10,000명(학부 4,000, 대학원 6,500)정도의 대학에서 교육된 소수 의 엘리트들이 한 나라의 먹을거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인 셈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카이스트나 포항공대가 이 학교를 롤 모델로 삼고 출발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24 ∙ 대한수학회소식 강의가 막 끝난 듯 칠판에는 수식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제 153호 강의실 밖으로 보이는 찰스 강변의 모습. 강 건너편은 보스턴의 중심부이다. 야우가 설명하는 나의 연구9) 뉴턴은 중력이란 두 물질이 서로 잡아당기는 힘, 곧 물질의 분포라고 믿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중력은 시공간의 곡률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1915년 다음의 방정식을 이용하여 나타냈다. 물질텐서 분포 이 식의 왼쪽에 쓰여 있는 수식이 시공간의 곡률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를 계산해보면 우주의 모 습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곡률은 매우 복잡한 양이다. 물속에 당신이 들어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사방에서 당신에게 물의 압력이 가해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4차원 시공간에서 곡률을 계산 한다는 것은 사방에서 가해지는 물의 압력을 계산하는 일처럼 어려운 일이다. 이 식의 값을 0이라고 가정하고 계산하면 우주는 진공상태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우 주는 텅 빈 진공이 아니다. 따라서 이 식의 값은 0이 되면 안 된다. 내 연구에 앞서 칼라비는 이미 캐흘러 다양체10)위에서는 이 식의 값, 즉 중력(곡률)이 0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나는 닫힌 우주(경계가 없고, 컴팩트하며 특이점이 없는 우주)를 찾아보려 했다. 이런 경우 (리키 곡률)이 되고 식 det det 이 성립하는데 이 모델을 사람들은 칼라비-야우 다양체라고 부른다. 끈 이론의 기본적인 모델이 되 는 다양체이다. 특히 은 기하적으로는 초대칭이라는 성질을 갖는다. 이 공간은 입자물리학에서 양-밀스 측정이론(Yang-Mills gauge theory)이라 불리는 성질이 성립되는 구조이다. - 다음 호에 계속(브라운대학교의 멈포드) KMS 9) 필자의 영어의 미숙, 수학적 지식의 부족, 받아 적기에는 너무나 빠른 대화 등으로 인하여 충실하려고 노력했지만 많은 내용이 잘못되었을 것이다. 전공자들이 읽고 잘못을 지적해 주면 다음호에서 반드시 정정내용을 밝히고 바로 잡겠다. 10) Kähler manifold: 복소구조, 리만구조, 심플렉스 구조를 동시에 갖는 다양체 2014년 1월호 The Newsletter of the KMS ∙ 25 2014년도 세계수학자대회(ICM 2014)의 역사적인 서울 개최를 앞두고, 김성숙 교수의 『ICM의 역사』를 본 호를 시작으로 4부작 시리즈로 게재합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ICM의 역사 ■ ICM의 초기역사 (태동기부터 제5차 ICM까지를 중심으로) 김성숙 (배재대학교) 2014년 8월 서울 코엑스에서 세계수학자대회 는 국제수학자연맹을 꿈꾸었다. 1888년에 그는 이 이하 러한 생각을 담은 편지를 독일과 프랑스의 여러 수 ICM)가 개최된다. 100여년 전에 시작된 본 대회의 학자들에게 보내어 벨기에, 스위스 혹은 네덜란드 역사를 돌아보면 2014년도 ICM을 더욱 의미 있게 와 같은 중립적인 장소에서 만날 것을 제안하였으 치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 ICM의 역사를 4부 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가 1890년 독일수학회 로 나누어서 게재하려고 한다. 의 초대 회장이 되었을 때, 또 다시 국제수학자대 (International Mathematical Congress, 19세기말에 많은 수학 연구결과가 나오게 되어 이 결과물을 출판할 논문집이 필요하게 되었다. 각 나라마다 새로운 저널들을 만들어 논문을 게재하였 고 이러한 연구 결과에 대하여 여러 나라 간에 공 독일 할레대학(현 Martin Luther Univ. of HalleWittenberg, 당시는 Univ. of Halle 였음.)의 교수로 중이던 게오르크 칸토어(Georg Cantor)는 일찍이 이러한 국제적인 협력의 필요성을 느껴 함 Georg Cantor (1845~1918) 26 ∙ 대한수학회소식 하여 각 나라에서 이러한 국제회의의 필요성에 대 하여 논의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1890년 8월에 발터 폰 딕(Walther von Dyck)이 펠릭스 클라인(Felix Klein)에게 보낸 편지에 “칸 동연구의 필요성도 강조되었다. 재직 회를 구상하여 다른 나라의 여러 수학자들을 설득 께 공동연구를 할 수 있 토어가 최근 내게 국제 수학자대회에 관련된 계 획에 대하여 편지를 했 는데 나는 그 필요성을 모르겠다.”고 쓴 것으로 보아 수학자들 중에는 칸토어의 의견에 동의하 지 않은 수학자들도 있 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Felix Klein (1849~1925) 제 153호 러나 불과 23세의 나이에 대학교수가 된 클라인은 하지 않았고 그가 추구하 칸토어의 생각을 받아들여 국제수학자 대회의 필요 였던 국제연합회에 대한 성을 느끼게 되었다. 어떤 기록도 없다. 그는 다만 칸토어의 생각을 받 아들여 국제수학자대회의 1. 태동기 필요성을 알게 된 것으로 1893년 콜롬버스의 미대륙 발견 400주년을 맞 여겨진다. 아 시카고에서 과학과 철학에 관한 많은 국제대회 가 열렸다. 그 중의 하나로 시카고대학(The Univ. of Chicago)에서 수학자와 천문학자들의 국제대회 가 열렸다. 이 때만 하더라도 수학 연구의 중심은 유럽이었고 시카고는 수학자들의 중심에 들지도 못 하였다. 수학분과에는 45명 정도가 참석한 적은 규 모의 모임이었지만 유럽대륙과 미주가 모인 첫 국 제회의였기에 매우 의미 있게 평가되어진다. 클라인의 연설 후에 수 학 분과를 가졌는데 참석 Henri Poincaré (1854~1912) 한 45명중에는 당시 세 계의 수학을 이끌고 있었 던 데이비드 힐베르트(David Hilbert), 샤를 에르미트 (Charles Hermite), 클라 특별히 괴팅겐대학(Univ. of Göttingen)의 펠릭 인, 막스 뇌터(Max Noether) 스 클라인은 당시 독일제국의 황제였던 빌헬름 만 외국에서 참석하였고 (Wilhelm)의 특사로서 참석을 하게 되었다. 클라인 다른 수학자들은 주로 미 은 수학자들이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함께 연합하 국에 거주하는 수학자였 여 노력하여야 하며 수학자들이 국제연합회를 만들 다. 그 당시 시카고 대학 어 국제수학자대회를 여는 것이 앞으로 수학의 발 수학과에 3명의 교수가 있었는데, 그 중 두 명이 전을 위하여 나아가야할 길이라고 강조하며 “The 클라인의 제자였다. 클라인은 독일에서 논문을 여 present State of Mathematics”라는 주제로 개회 러 개 가지고 와서 시카고 회의에 참석한 수학자들 사를 하였고 “Mathematicians of the World, 에게 전달하였다. 클라인은 대회를 마친 후에 참가 Unite!(세계의 수학자들이여 연합합시다!)”라는 슬 자들의 요청으로 1893년 8월 28일부터 9월 9일까 로건으로 개회사를 마쳤다. 클라인의 개회사가 지 노스웨스턴대학(Northwestern Univ.)의 콜로퀴 1897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개최되었던 제1차 ICM 엄에서 강의를 하고 그 강의에 대한 일련의 강의록 의 씨앗이 되었다고 평가되고 있고 그가 제시한 국 을 냈다. 지금까지도 내려오 제수학자연맹의 생각은 1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는 에반스톤 콜로퀴엄은 미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지만 그보다 앞서 국제연합을 국에서 시작된 첫 번째 수 구체적으로 시도하였던 수학자는 칸토어였다. 1896 학 콜로퀴엄이다. 년 1월 칸토어는 국제수학자연맹을 만들기 위하여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가려고 정부에 경제적인 지원 을 신청하였지만 프러시안 문교부장관에 의하여 좌 절되었다. 동시에 앙리 푸앵카레(Henri Poincaré) 도 칸토어와 연락을 끊고 말았다. 클라인은 역사적 으로 국제연합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연을 하였지 만 클라인은 국제연합회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 2014년 1월호 Charles Hermite (1822~1901) 이 회의에 참여하였던 수 학자 중에는 시카고대학의 연구원이었던 메리 윈스턴 (Mary F. Winston)이라는 여성이 있었다. 클라인은 그 녀가 더 깊은 연구를 할 수 있도록 괴팅겐대학으로 유학 Mary F. Winston (1869~1959) The Newsletter of the KMS ∙ 27 올 것을 그녀에게 제안하였다. 그녀는 크리스틴 라 린델뢰프(Ernst Lindelöf), 에밀 피카드(Émile 드 프랭클린(Christine Ladd Franklin)으로부터 Picard)와 비토 볼테라(Vito Volterra) 등이 있다. 500달러를 지원받아 독일로 유학을 가서 미국인으 공식적인 언어는 독일어와 프랑스어였다. 기조강연 로서 최초로 독일에서 수학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은 은 프랑스의 푸앵카레와 스위스의 허레비츠, 이탈 여성이 되었다. 리아의 주세페 페아노(Giuseppe Peano)와 독일의 클라인이 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푸앵카레가 건강 이 악화되어 참석을 못하자 취리히연방공과대학의 2. 제1차 ICM 수학교수인 제호므 프라넬(Jérôme Franel)이 그의 칸토어는 1895년 9월에 첫 번째 ICM의 장소로 논문을 읽었다. 그 당시 4개 국가에서 한 사람씩 스위스와 벨기에를 생각하고 있다가 석 달 후에 스 기조강연을 한 것은 매우 균형 있는 선택이었다고 위스가 벨기에 보다 국제적인 관심의 대상이어서 평가되고 있다. 취리히가 좋겠다고 결정하였다. 1896년에 스위스 의 수학자들은 첫 번째 ICM을 취리히에서 개최하 기로 공식적으로 결정하였다. 1896년 11월 17일 스위스 취리히연방공과대학(ETH Zürich)에 있던 헤르만 민코프스키(Hermann Minkowske)가 힐버 트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요즘 며칠 동안 세계수 학자대회(International Mathematical Congress) 의 개최에 대하여 회의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써 있다. 1897년 새해에 세계수학자대회의 개최 알림 을 여러 국가에 보냈는 데, 대회 초대자들의 Charles de la Vallee-Poussin (1866~1962) Vito Volterra (1860~1940) 이름은 아돌프 허레비 츠(Adolf Hurwitz), 클 라인, 안드레이 마르코 프(Andrei Markoff), 민코프스키, 괴스타 미 타크-레플러(Gösta Mittag-Leffler)와 푸앵 Gösta Mittag-Leffler (1846~1927) 카레를 포함한 유명한 수학자들이었다. 드디어 제1차 ICM이 1897년 8월 9일부터 11일 까지 스위스 취리히에서 개최되었다. 4명의 여성수 학자를 포함하여 16개국에서 208명의 수학자들이 참가한 성공적인 학회로 평가된다. 학회 참석자들 중에는 에밀 보렐(Émile Borel), 칸토어, 펠릭스 하우스도르프(Felix Hausdorff), 샤를 드 라 발레 푸셍(Charles de la Vallée-Poussin), 에른스트 28 ∙ 대한수학회소식 제1차 ICM의 개최장소였던 스위스 취리히연방공과대학 폐회식에서 프랑스가 다음 ICM의 개최지로 결정 되었다고 발표되었고 프랑스수학회에서 다음 ICM 을 초대하는 발표가 있었다. 이 관습은 첫 ICM부 터 지금까지 전통으로 내려오고 있다. 마지막 날 저녁 만찬은 위에틀리베르크 산 정상에서 가졌는데 많은 사람들이 기차로 올라가서 식사 후, 밤늦게까 지 월광과 야경을 즐겼다고 한다. 제 153호 제1차 ICM 프로시딩 앞부분에 ICM의 목적이 써 시카고에서 있었던 국제대회에도 불구하고 취리 있는데, 첫 목적은 서로 다른 나라 수학자들 사이 히대회가 첫 번째 ICM으로 받아들여진 이유는 시 에 관계를 도모하는 것이고 두 번째 목적은 최근에 카고에서의 대회는 천문학자와 함께 한 회의였고 핫이슈로 떠오르는 수학 분야에 관하여 연구결과를 취리히대회가 수학자들만이 모인 첫 국제대회이기 보고하고 강의하며 평가하는 것이다. ICM의 목적 때문이라 여겨진다. 중 하나가 수학자들 간에 관계를 도모하는 것에 대 하여 많은 사람들이 인상 깊었다고 말한다. 제1차 ICM포스터에는 5명의 유명한 스위스의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Leonhard Euler), 다니 1897년 당시 세계는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 엘 베르누이(Daniel Bernoulli), 자코브 베르누이 아와 러시아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대부분의 수학 (Jakob Bernoulli), 요한 베르누이(Johann Bernoulli) 자들이 유럽에서 왔으며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온 와 야코프 슈타이너(Jakob Steiner)와 ICM의 개최 수학자는 미국에서 온 7명 뿐이었다. 이런 맥락에 장소인 취리히연방공과대학의 건물이 그려져 있다. 서 보면 19세기말의 국제적이라는 말은 오늘날과 는 달리 극히 제한적인 의미로 보인다. 취리히대회 의 큰 업적은 ICM을 계속 개최되게 한 것이다. 첫 3. 제2차 ICM ICM에서 두 가지를 결정하였는데 첫 째는 ICM은 두 번째 ICM은 파리 만국박람회와 19세기의 마 3년에서 5년에 한 번 열도록 하며 다음 장소는 이 지막을 기념하는 의미로 3년 만에 1900년 8월 6 전 회의에서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일에서 12일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열렸다. 1차 취리히대회에서 정해진 규약이 받아들여져서 이후 ICM은 3일 동안 열렸지만 2차 ICM은 7일 동안 회의에서도 그 규약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열렸다. 26개국에서 2명의 여성수학자를 포함해서 지금은 ICM이 4년에 한 번씩 열리고 있지만, 취 250명의 수학자가 참 리히에서 만들어진 규약에 따르면 당시 ICM은 3년 가 하였다. 두 명의 에서 5년 간격으로 개최되게 되어 있었다. 여성은 시카고대학에 서 괴팅겐대학으로 유 학 온 메리 윈스턴과 미국 브린마이어대학 (Bryn Mawr College) 의 샬롯 스콧(Charlotte Charlotte A. Scott (1858~1931) A. Scott)이었다. 앙리 푸앵카레가 조직 위원장이었으며, 샤를 에 르미트는 명예위원장으로 추대되었다. 기조강연자 는 독일의 모리츠 칸토어 (Moritz Cantor), 프랑스 의 푸앵카레, 스웨덴의 미타크-레플러와 이탈리 아의 볼테라였다. 역사적 제1차 ICM 포스터 2014년 1월호 으로 매우 의미 있는 데 Moritz Cantor (1829 ~1920) The Newsletter of the KMS ∙ 29 이비드 힐베르트의 강 4. 제3차 ICM 의는 기조강연으로 들 어가야 하지만 논문을 늦게 제출했기 때문에 수학사 분과에서 ‘10개 의 수학난제’ 라는 제목 으로 강연을 하였다. 후 에 프로시딩을 편집할 David Hilbert (1862~1943) 때 13개의 난제를 포함 하여 “20세기에 해결해 야할 23개의 수학난제” 라는 제목으로 출판하였다. 힐베르트의 강연으로 인해 이 학회는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 있었던 ICM 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후 20세기에는 모든 수학자 들이 23개의 수학난제를 풀기 위하여 노력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제2차 ICM의 폐회식에서 독일수학회가 세 번째 ICM을 독일의 바덴바덴에서 개최한다고 발표하였 으나 일 년 만에 대학도시인 하이델베르그로 바꾸 기로 결정하여 제3차 ICM은 1904년 8월 8일부터 13일까지 독일 하이델베르그에서 열렸다. 19개국 에서 2명의 여성수학자를 포함해서 336(동반자 60 명 포함하면 393명)명의 수학자가 참가 하였다. 파 리에서 열렸던 2차 ICM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 였지만, 26개국이 모였던 파리대회보다는 7개국이 적은 19개국에서만 모였다. 스트라스부르대학(Univ. of Strasbourg)의 하인리히 베버(Heinrich Weber)가 조직위원장으로서 이 행사를 계획하고 조직위원들과 함께 참여도를 높이는 데에 큰 노력 을 기울였다. 그는 많은 학교들과 과학에 관련 제1차 ICM에서는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같이 사 된 여러 기관에 초청장 용하였는데 파리에서는 프랑스어만을 쓰게 하였기 을 보내기로 결정하여, 에 이 회의에서는 공식 언어에 대한 비판이 많았 16개 저널의 명단에서 다. 특히 샬롯 스콧은 총회의 모든 연설과 대부분 이름을 추려 의 논문이 프랑스어로만 되어 있어서, “손님들에 장의 초청 엽서를 보냈 대한 예의가 아니다.” 라고 비판하였다. 프로시딩 다. 그 결과 참가인원이 에는 독일어로 발표된 논문조차 프랑스어로 번역하 파리대회보다 86명이나 여 실었다. 프로시딩을 보면 이탈리아어로 된 논문 더 많이 늘어났다. 이 1편, 영어로 된 논문이 8편, 독일어로 된 논문 몇 편 이외에는 모두 프랑스어로 되어 있다. 심지 어 당시 가장 중요한 논문으로 평가받는 논문인 힐 베르트의 논문 “20세기에 해결해야 할 23개의 수 학난제” 도 독일어로 실린 것이 아니라 안젤리크 로젤(Angélique Laugel)이 프랑스어로 번역하여 “Probèmes futurs des mathématiques” 라는 제 목으로 실려 있다. 몇 개의 논문은 영어로 쓰였는 데 이 중의 하나는 일본인의 논문이다. 카잔대학 (Kazan State Univ.)의 알렉산더 바실리에프(Alexander Vassilief)는 일본인들의 노력을 치하하면서 머지않 아 일본인들이 수학에서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 고 말하였다. M. 2,000여 Heinrich M. Weber (1842~1913) 조직위원회는 기조강연을 영어권, 독일어권, 프 랑스어권과 이탈리아어권에서 각각 하나씩 총 4개 를 준비하여 각 나라의 균형을 맞추었다. 영국의 알프레드 그린힐(Alfred Greenhill), 프랑스의 파울 팽르베(Paul Painlevé), 독일어권에서는 비엔나의 빌헬름 비르팅거(Wilhelm Wirtinger)와 이탈리아 의 코르라도 세르지(Corrado Serge)가 기조강연을 하였다. 또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한 모든 강의는 발표된 언어로 출판하기로 결정되었다. 이것은 두 번째 ICM에서 있었던 공식 언어의 문제를 해결하 려는 노력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분과는 이전 학 회와 비슷하게 산술(Arithmetic) 과 대수(Algebra), 해석학(Analysis), 기하학(Geometry), 수학사(History of mathematics), 수학교육(Pedagogy)으로 나누었 30 ∙ 대한수학회소식 제 153호 다. 달라진 점은 이전에 있던 기계학과 수리물리학 이 대회에서 부다페스트에서 온 쥴리어스 쾨니 분과 대신에 응용수학분과를 만든 것이다. 기조강 히(Jules König)의 “연속체의 가설에 대하여”라는 연 외에 78개의 발표가 있었는데, 이것은 파리대회 강의에 대한 일화가 전해 내려온다. 그가 칸토어의 보다 두 배가 넘는 것이다. 가설이 틀렸다는 강의를 한다고 광고하여 모든 참 개막식은 베버의 강연으로 그 당시에 유명을 달 리한 수학자들을 추모하며 시작되었는데 그 중에는 1897년에 서거한 카를 바이어스트라스(Karl Weierstrass), 1901년에 서거한 에르미트, 1899년 에 서거한 마리우스 리(Marius Sophus Lie), 1895 년에 서거한 아서 케일리(Arthur Cayley)등이 포 함되었다. 또한 대회가 열리던 해가 칼 야코비 (Carl Gustav Jacob Jacobi)의 탄생 100주년이 되 는 해였기에 특별한 행 사가 계획되어 있었다. 베버의 강연 후에 하이 델베르그대학(Heidelberg Univ.)의 레오 쾨닉스베 르거(Leo Königsberger) 가 야코비에 대한 추도 사를 하였다. 이 학회에 석자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모두가 그의 강의를 듣길 원했기에 모든 분과를 없애고 쾨니히의 강의 를 듣게 하였다. 이 강의에는 힐베르트와 칸토어도 참석하였고 강의 후에도 힐베르트, 칸토어와 함께 토론을 하였지만 그 때에 는 아무도 쾨니히의 논리 의 실수가 있음을 알지 못했다. 이 소식은 곧 신 문에도 났고 당시에 그 지역에 큰 관심을 불러일 으켰다. 바로 다음날 에 른스트 제르멜로(Ernst Zermelo)가 쾨니히의 논 리에 실수가 있음을 발견 하였지만 칸토어는 이 일 Ermst Zermelo (1871~1953) 로 큰 상처를 받았다. 금전적으로 도움을 주었 Carl Gustav Jacob Jacobi (1804~1851) 던 편집인 튜브너(B. G. Teubner)는 쾨닉스베르 5. 제4차 ICM 거가 야코비에 대해 쓴 1908년 4월 6일부터 전기를 출판하고 학회 참석자들에게 정가의 삼분의 11일까지 네 번째 ICM 일의 가격으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또한 뮌 이 고대문명의 중심지 헨에서 온 칼 룽게(Carl Runge)는 이전에는 미래 인 의 계산기의 발전에 대하여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22개국에서 10명의 여 ICM에서 1674년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Gottfried 성수학자를 포함 535 Wilhelm von Leibniz)가 만든 계산기에 대하여 강 명의 수학자가 참가하 연을 하면서 역사의 과거만 본 것이 아니라 미래도 였고 에미 뇌터(Emmy 보게 되어서 새로운 계산기에 대한 영감을 얻게 되 Noether)가 었다고 말하였다. 이 대회 때 도서 전시와 수학 모 참가하였다. ICM의 참 델을 전시하였는데, 여러 나라에서 출간된 900여 가자들의 규모는 이 대 권의 수학 관련 책들이 전시되었고 300개가 넘는 회가 수학자들에게 꽤 플라스틱이나 나무로 만든 수학모형이 전시 되었 인기가 있었음을 보여 다. 또한 1894년에 독일어로 출판된 수학백과사전 준다. 제네바대학(Univ. 을 프랑스어로 번역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of Geneva)의 앙리 페 2014년 1월호 로마에서 열렸다. Emmy Noether (1882~1935) 처음으로 Henri Fehr (1870~1954) The Newsletter of the KMS ∙ 31 르(Henri Fehr)에 의하면 실제로 참가자들은 학술 개막식의 또 다른 행사 대회보다는 로마의 매력에 더 빠져들었다고 한다. 는 ‘구찌아(Guccia) 메달’ 개회식은 멋진 의사당에서 열렸는데, 이탈리아의 시상이었다. 수학자 지오반 왕이 사회를 보았다. 강연은 티베르 강가에 있는 니 구찌아(Giovanni Guccia) 르네상스 스타일의 멋진 건물에서 이루어졌다. 환 는 1884년에 팔레르모 지 영만찬도 티볼리에 있는 빌라 아드리아나의 철학자 역 수학회를 만들었고, 팔 의 방에서 열렸다. 레르모 이탈리아인들은 지금까지의 지역 수학회지 ICM의 관행과는 다른 몇 가지를 진행하였다. 첫 (Rendicontti del Circolo 번째는 여름이 아닌 봄에 대회를 개최한 것이고 두 Matematico di Palermo) 번째는 기조강연자들을 9명으로 늘렸으며 응용수 의 학분야가 처음으로 기조강연에 들어간 것이다. 또 ICM을 위해 두 가지 일을 했는데, 하나는 구찌아 한 대수 메달을 위한 상금을 기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프 (Algebra), 해석학(Analysis), 기하학(Geometry), 로시딩을 출판한 것이다. 구찌아 메달은 하이델베 수학사(History), and 르그대회에서 “Algebraic twisted curves 이론에 수리물리학 중요한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기념하기 위하여 제 (Mathematical Physics)과 측지학(Geodesy)분과 안되었다. 심사위원은 막스 뇌터, 푸앵카레와 세르 를 만들었다. 기조강연자들 중에는 프랑스의 푸앵 지였고, 제출된 논문들이 심사위원의 지지를 받지 카레와 장 다부르(Jean Gaston Darboux), 독일의 는 힐베르트와 클라인, 이탈리아의 볼테라와 주세페 Padova)의 프란체스코 세베리(Francesco Severi) 베로네세(Giuseppe Veronese), 미국의 천문학자 가 받았다. 그는 대수 사이먼 뉴컴(Simon Newcomb)이 있었다. ICM 기 적 곡면 기하학(The 조강연에 미국인이 포함된 것은 처음이었다. 1902 geometry of algebraic 년에 surfaces)에 전통적인 Didactics)외에 분야인 산술(Arithmetic), 철학과 이전에는 노벨물리학상을 교육(Philosophy 없었던 수상한 헨드릭 로렌츠 발행인이었다. 못했지만 그는 결국 상은 많은 연구를 한 것으 조연설을 하였는데, 기조강연의 사회는 이탈리아의 로 알려져 있다. 이것 물리학자 피에트로 블라제르나(Pietro Blaserna)가 이 ICM에서 처음으로 보았다. 이 때, 힐베르트와 클라인은 강의를 거절 수여된 상이었다. 그 하였고 푸앵카레는 개 러나 상금을 기부하던 인적인 사정으로 강 구찌아가 연을 할 수 없었다. 사망하여 구찌아 메달 후에 푸앵카레가 편 은 처음이자 마지막으 찮다는 소식이 입에 로 단 한 번만 시상되었다. 때 많은 사람들이 놀 랐다고 한다. 이 대 회의 강연 중에 가장 높게 평가 받았던 강 Hendrik Antoon Lorentz (1853~1928) 32 ∙ 대한수학회소식 의는 제르멜로의 강 파도바대학(Univ. of 대하여 (Hendrik Antoon Lorentz)가 응용수학 분야로 기 서 입으로 전해졌을 Giovanni Guccia (1855~1914) 1914년에 Francesco Severi (1879~1961) 한편, 이 학회의 프로시딩의 논문 중 51편이 프 랑스어로, 53편이 이탈리아어로 쓰여졌다. 페르는 “이를 보면 프랑스 학자들이 프랑스어를 강요해서 가 아니라 대다수의 학자들이 프랑스어로 쓸 수 있 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ICM 의 공용어로 프랑스어를 계속 사용해야 한다.” 고 의였다고 한다. 제 153호 포함하여 총 574명의 결론을 내렸다. 이 대회에서 중요한 점은 데이비드 스미스 (David Eugene Smith)의 제안으로 국제수학교육 위원회(International Commission on Mathematical Instruction)의 전신인 ICTM(Inter- national Commission on the Teaching of Mathematics)이 만들 어진 것이다. 이 때, David Eugene Smith (1860~1944) 초대회장으로 클라인이 선출되었다. 20세기가 시작되면서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는 교육의 수요 가 증가하였으며 대부분의 나라에서 수학교육체계 의 재정비가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 당시 클라인 을 설득해서 회장을 맡도록 하는 데에는 스미스의 활약이 매우 컸다. 그래서 위원회에서 “여러 나라 의 중등학교에서의 수학교육의 방법의 비교하며 연 구하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하였기에 클라인 교수, 그린힐 교수와 페르 교수가 이 문제를 연구하고 보 고서를 작성하여 다음 회의 때 제출해 주기 바란 다.”고 결의하였다. 이로써 수학의 연구뿐만이 아 니라 수학의 교육에도 관심과 발전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수학자들이 참가(동반 자 134명)하였다. 이 대회에서 통계, 경제, 보험수학, 천문수학분 과가 새로이 신설되었 다. 영국인들은 기조 강연자로 영어권에서 두 명, 프랑스의 보렐, 독일의 에드문트 란다 우(Edmund Landau), George Darwin (1846~1912) 러시아에서 성 페테르 부르그아카데미( St . Petersburg)의 보리스 갈리친 왕자(Prince B. Galitzen)를 결정하 였지만 이탈리아인들 은 한 명도 없었다. 발 표자들은 순수수학과 응용수학으로 나뉘었 고 응용수학분야는 다 시 세 부분으로 나뉘 Edmund Landau (1877~1938) 었는데 공학수학분야, 통계, 경제와 보험수학분야 와 천문수학분야였다. 이 대회에도 계산기가 전시되었다. 방문자들의 숙소는 남자 참가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남자 학 교에 있었지만 여자 참가자들의 숙소는 여자 학교 6. 제5차 ICM 에 준비되었다. 바서대학(Vassar College)의 엘리 다섯 번째 ICM은 갑작스런 푸앵카레의 서거 몇 자베스 코울리(Elizabeth B. Cowley)가 The AMS 주후에 영국의 대학도시 캠브리지에서 1912년 8월 Bulletin에 기고한 보고서를 보면 “역사적인 건물 22일에서 28일까지 열렸다. 대가의 죽음에 영국의 에서 지내며 누구나 대학에서의 삶을 나눌 수 있는 하늘도 슬펐는지 회의 기간 내내 비가 오락가락 하 세심한 배려에서 주어진 기회”라고 극찬을 아끼지 였다고 한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아들 않았다. 이며 천문학자인 조지 다윈(George Darwin)이 조 캠브리지철학회(Cambridge Philosophical Society) 직위원장을 맡고 1904 년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 의 조지 다윈경이 대회의 사회를 보면서 이 ICM을 한 레일리 백작(Lord Rayleigh)이 명예위원장을 통하여 대륙의 수학자들로부터 고립되어 있던 영국 맡았다. 참가자들은 15년 전의 취리히대회 이후 꾸 의 수학자들이 그 고립을 깨고 나올 수 있는 기회 준히 증가하여 28개국에서 30명의 여성수학자를 를 얻었다고 하였다. 바로 이어서 옥스포드대학 2014년 1월호 The Newsletter of the KMS ∙ 33 (Oxford Univ.)의 애드윈 엘리엇(Edwin Bailey 구를 제안했을 때 이렇게 대단한 노력이 필요하리 Elliott)은 “얼마 전까지도 영국의 수학자들은 자기 라고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라며 스미 중심적인 생각에 빠져있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스를 클라인, 그린힐, 페르와 함께 ICTM의 집행위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빠져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원으로 포함시키도록 요청하였다. 이제 다른 나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깨 달으며 지금은 서로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 다.”고 말하였다. 지난 대회에서 지원받은 몇몇 과 그 후 1916년 스톡홀름에서 열리기로 했던 6차 ICM은 1914년에서 1918년까지 일어났던 제1차 세계대전으로 열리지 못한다. 제들의 진행상황이 보고되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중 요한 것은 당시 다섯 권에 달하는 오일러의 업적물 의 출판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폐 회식에서 다음 ICM은 1916년에 스웨덴 스톡홀름 에서 열리기로 결정되었음을 알리고 스웨덴의 미타 크-레플러가 제6차 ICM을 초대하는 발표를 하였 본 원고는 필자의 아래 논문을 중심으로 소식지에 맞게 재편집한 것임을 밝힙니다. 강미경, 김성숙, “ICM의 초기역사”, 《한국수학사학회지》, 제25권 제2호, 23-34. - 다음 호에 계속 KMS 다. 대회의 마지막 날에 바르샤바대학(Warsaw Univ.)에서 온 사무엘 딕슨(Samuel Dickson)의 제 안으로 참석자들은 밀로드 묘지에 가서 케일리의 묘에 헌화하고 참배하였다. 다윈은 나중에 “이 일 은 우리 대학 구성원들을 감동시켰다.” 라고 언급 하였다. 이 때 8명으로 구성된 여성 위원회가 탄생 되었다. 이 대회에서 클라인이 또다시 ICTM의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클라인은 중요한 이슈와 수학교육에 대한 보고서를 출판하기 위하여 18개 국가들이 속 한 국제적인 위원회를 만들고 수학교육에 관한 여 러 양상들에 관한 국제적인 연구조사를 시작하게 이끌었다. 이 위원회에 속한 18개 국가는 독일, 오 스트리아, 벨기에, 덴마크, 스페인, 프랑스, 일본, 네덜란드, 헝가리, 이탈리아, 호주, 아르헨티나, 루 마니아, 러시아, 스웨덴, 스위스, 영국과 미국이었 다. 그는 또한 개혁하려고 했던 두 개의 주된 이슈 를 연구하도록 위원회를 이끌었다. 한 가지 이슈는 미분적분학의 입문을 고등학교 고학년에서 가르치 게 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좀 더 높은 기술적 인 교습에서 수학의 역할이었다. 페르의 보고서에 따르면 ICTM은 1920년까지 18개 나라로부터 310 개의 논문이 포함된 187권의 책을 출판하였다. 뮌 헨대학(Ludwig Maximilian Univ. of Munich)의 딕은 “로마에서 스미스 박사가 수학교육의 비교연 34 ∙ 대한수학회소식 제 153호 학회후기 ■ MYNT, 젊은 수론학자들의 모임 선해상 (충북대학교), 김지영 (서울대학교), 김병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2012년 봄, 자칭 혹은 타칭 젊은 수론 학자라고 는 Festival이 전체 수론 연구자들의 모임이라면, 하는 몇몇이 모여서 새로운 학회를 조직해보자는 매년 여름에는 이제 막 연구를 시작하는 대학원생 꿍꿍이를 내보였다. 내가 무엇을 했는지 보다는 내 들과 이제 막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하는 신규 박 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수론 전공자들에게 소개 사들이 모여서 조금 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본인 연 하는 것에 무게를 두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편하 구 분야를 소개하고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게 의견 교류하는 자리를 마련해보자는 취지에서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것이 젊은 수론학자들의 Meetings of Young Number Theoriests(이하 모임, 제2회 MYNT의 시작이었다. MYNT)라는 이름으로 2012년 7월 고등과학원에서 소박한 막을 올렸다. MYNT라는 상큼한 학회명은 Number Theorist들 사이에 신선한 분위기가 되기 를 바라는 뜻에서 mint를 연상하며 경남대 박부성 교수께서 제안하셨다. 더욱이 나의 수론(My NT)이 란 중의적 의미 또한 담고 있다. 한편, 학회의 공 식 한글 명칭인 소장 수학자 모임(소수 모임) 역시 박부성 교수의 아이디어다. 그 다음 고민은 학회 장소를 정하는 것이 고민 이었다. 지금까지 수론 모임이 주로 학교에서 개최 되었으니, 학교를 벗어나서 해보는 것은 어떠냐는 제안이 학회장소 섭외를 더욱 어렵게 했다. 이때, 선해상 교수가 해석학 모임이 빈번히 열린다는 풍 문이 있는 청풍리조트를 추천했다. 세 주최자 모두, 학교를 벗어난 곳에서 모임을 주관하는 것이 처음 이라 여러 걱정들이 있었다. 특히 학회 장소인 청 2013년 2월 Number Theory Festival이 열린 풍리조트는 교통편이 불편해서, 오가는 길이 편하 서울대 상산관 대형 강의실 구석에서 Number 지 않은 점이 최대 걱정거리였다. 그러나 숙소와 Theory Festival처럼 MYNT도 일회성 모임이 아 학회장 밖으로 보이는 호수의 시원한 풍광은 답답 닌 정기적인 모임으로 이어나가 보자는 모의가 있 하게 막혀있는 난제들에 대해서 시원한 해결책이라 었다. 학회의 일정을 2013년 8월 27일부터 사흘간 도 제시해 줄 듯 했다. (물론 본 필진에게 그런 행 으로 정했다. 또한 학회의 방향은 매년 겨울에 있 운은 없었다.) 2014년 1월호 The Newsletter of the KMS ∙ 35 나누면 아래와 같다. 먼저 강원대 강순이 교수, 고 등과학원 임수봉 박사, 룩셈부르크 대학의 유화종 박사, 항공대 최도훈 교수, 고등과학원 이정연 박 사는 modular form과 관련 있는 주제들을 발표해 주셨다. 경북대 문현숙 교수, 서울대 김나영 학생, 포항공대 김재선 학생은 크게 봐서 대수적 수론으 로 분류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한 강의를 해주셨다. 그리고 해석적 수론의 범주에서는 고등과학원 조시 훈 박사, 포항공대 박정호 학생이 멋진 강의를 해 주셨다. 특히 박정호 학생은 MYNT의 마지막 강의 를 circle method의 역사와 적용 가능한 경우에 대해서 명쾌하게 설명해주어 학회를 멋지게 마무리 하는데 일조하였다. 그리고 조합적 수론의 매력을 알려주신 카이스트 이상준 박사와 고등과학원 김장 수 박사의 강의는 특별한 배경지식 없이도 강의를 따라 올 수 있도록 치밀하게 계획되어 비전문가들 에게 조합론의 매력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서울시립대 박의용 교수와 카이스트 백 상훈 교수께서 얼핏 보기에는 수론과 관계없어 보 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 표현론과 Flag variety에 대한 강의를 해주셨다. 물론 위 분류는 대략적으로 나눈 것으로 modular form과 관련된다 고 해도, 해석적인 관점부터 대수적인 관점까지, 전 통적인 학회장에서 바라본 청평호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교통편이 불편한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교통이 불편하니 참석자들이 모든 식사를 함께 하게 만들어주었고, 중간에 자리를 비 modular form부터 quantum modular form까지 다양한 분야가 소개되어 수론의 방대함 을 새삼 느끼게 해주었다. 여러 박사들과 대학원생 들의 훌륭한 강의를 통해서 우리나라 수론 연구의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지 않고 모임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하였다. 세계의 리서치 스테이션들이 교통 안 좋고 풍광 좋은 곳에 있는 이유가 있다 싶었다. 제2회 MYNT에서는 수론의 다양한 분야에 대해 서 폭넓은 강연이 있었다. 기조 강연은 강원대 강 순이 교수께서 해주셨다. 강순이 교수께서 모임 취 지에 맞게 q-series의 modularity에 대해서 관련 역사와 중요한 문제를 명쾌하게 짚어주셔서 이후 기조 강연을 맡으신 강순이 교수 강의의 모범이 되었다. 강연 주제들을 대략적으로 36 ∙ 대한수학회소식 제 153호 사실 이번 MYNT의 야심작이라면 문제 공유 세션 온 만큼, 연회 역시 야외에서 바비큐로 진행하였다. 이었다. 문제 공유 세션에서는 경남대 박부성 교수, 호반에서 석양과 함께 삼삼오오 테이블 별로 맛있 인하대 양재현 교수, 충북대 선해상 교수, 서울과 는 바비큐를 그릴에서 직접 구워 먹으며 친목을 도 기대 김병찬 교수가 문제를 공유해 주셨다. 문제 모한 즐거운 시간이었다. 자체는 간단하여 짧은 시간에 이해할 수는 있었지 만 이해 가능하다고 풀 수 있다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양한 전공자들이 모여 있었기에 새로운 관점이 제시되기도 했다. 특히 박부성 교수가 소개 한 문제는 특정한 이차형식이 특정한 수를 표현가 능한가에 대한 문제였는데, 포항공대 박지훈 교수 가 이 문제가 Calabi-Yau quintic과 관계가 있다는 신선한 관점을 제시해서 모두들 신기해했다. 연회장 모습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이야기, 즐거 운 공부에 2박 3일간의 일정이 정말 너무도 빨리 문제 교류 세션 지나갔다. 모임이 끝나면 항상 아쉬운 점이 있기 마련이다. 모임을 정리하다보니, 너무 욕심이 많았 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부터는 강연 일정을 좀 더 교류를 중시하는 모임 취지에 맞게, 학회장은 발 여유 있게 하고, 문제 교류 세션을 미리 준비해서 표 시간 이외에도, 밤 늦게까지 개방되어서 활발한 Arizona Winter School처럼 각 워킹 그룹별로 연 토론이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특히 숙소에는 인터 구 성과를 낼 수 있을 정도로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넷이 되지 않고, 학회장에서만 인터넷이 가능했던 바람이 있다. 무엇보다도 MYNT는 대학원생들과 탓에 늦게 까지 많은 사람들이 남아있었다. 밤 늦 이제 막 학위를 취득하신 박사들을 위한 자리로 기 게까지 다과와 담소를 즐기고, 또 수학 이야기도 획된 만큼, 대학원생들과 포닥들의 참여가 더욱 많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학교를 벗어나 야외로 나 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엇보다도 바쁘신 와중 2014년 1월호 The Newsletter of the KMS ∙ 37 에도 흔쾌히 강연을 수락해주신 강연자분들과 멀리 MYNT가 가능하도록 지원해주신 한국연구재단 까지 와서 즐거운 시간을 함께 해준 모든 참석자 (NRF)과 포스코 청암재단에 감사드린다. 제3회 분들께 감사드린다. 주최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MYNT는 경남대 박부성 교수, 숭실대 이종규 교 갖은 궂은일을 도와주신 경남대 박부성 교수, 숭실 수, 고등과학원 임수봉 박사가 수고해주기로 했다. 대 이종규 교수, 그리고 지금은 룩셈부르크에 포닥 MYNT가 앞으로 더욱 발전하는 모임이 될 수 있 으로 가 있는 유화종 박사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 도록 많은 분들의 관심을 부탁드린다. KMS 다. 특히 박부성 교수는 MYNT 학회 참석 기념품 으로 달력을 디자인 해주셨다. 달력의 각 날짜가 재미있는 수식으로 되어있어, 참석자 모두에게 작 은 즐거움이 되었다. 한편 유화종 박사는 다과 준 비 및 짐 나르기, 카트 끌기 등 각종 노역 작업에 젊음을 과시했고, 덕분에 학회 참가자들이 불편 없 이 지낼 수 있었다. 가장 어린 죄로 명찰을 만들고 있는 세 박사들, 고학력 미숙련공들은 명찰을 뒤집어 넣는 실수를 범하고야 말았다. MYNT 기념품 일부 38 ∙ 대한수학회소식 제 153호